기도!! 기도문 !!

[스크랩] 기도하는 훈련

하나님아들 2013. 7. 13. 21:40

기도하는 훈련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된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교회에 다닌 지 아무리 오래 되어도 또 아무리 열심히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해도,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시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엄밀한 뜻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기도하는 습관이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기도하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기도를 할 줄 모르고, 기도를 할 줄 모르니까 기도하는 습관이 붙지 못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붙어 있지 않으니까 기도란 힘들고 괴로운 것으로만 생각되고,

그래서 기도를 안 하니까 그 신비하고 오묘한 맛을 모르고, 모르니까 또 기도를  안 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정 기도를 하는 것이다.

작정 기도란 아주 급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나, 하나님께 각별히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

일정한 기간을 미리 정해 놓고 그 기간 동안 외치고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 작정 기도는 때때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데 일단 정해 놓은 기간 동안은 하루도 빠지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만큼,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기에 더 없이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작정 기도

  

작정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세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1) 작정 기도의 날 수

2) 기도하는 시간

3) 기도의 제목

작정 기도의 날 수는 흔히 3일, 7일, 21일, 40일, 3개월, 반년, 혹은 1년, 등으로 잡는데,

그것은 이들 숫자가 뜻이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필요에 따라 임의로 날수를 정해도 상관없다. 꼭 3일이나 7일이 아니라 5일도 좋고 10일도 좋고 2주간도 좋다.

또 그 기간의 길이는 그 구하는 것이 큰 것일 때에는 길게 잡는다. 스스로 연단하기 위해서나

자신을 시험하고자 할 때, 어떤 중요한 결단을 해거나 하고자 할 때에도 대개 그 기간은 길게 잡는다.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은사를 받기 위한 작정 기도라면 적어도 6 개월 이상,

무슨 중요한 결단을 하기 우한 작정기도라면 21일이나 40일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알맞는 기간을 잡는 일이다.

욕심을 부려 너무 기간을 길게 잡았다가 도중에서 포기하고 마는 것은 좋지 않지만,

너무 짧게 잡아 힘 안들이고 너무 쉽게 작정 기도를 미쳐도 별로 은혜가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기간은 자신이 간당하기에 약간은 벅차 보이는 그런 길이이다.

날 수를 채우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작정한 날수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뜨겁게 간구하면서 드디어 작정한 일수를 마쳤을 때, 충만한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나 혹 나의 게으름 때문에 정한 기간 동안에 기도하는 것을

하루나 이틀을 걸렸을 때에는, 그것이 비록 작정한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한 날수는

다 무효가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작정한 기도의 날수를

다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두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거나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정 기도는 흔히 생각하듯 하나님 앞에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앞에 작정하는 것이며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인 것이다.

 

내가 작정 기도를 도중에서 포기했다고 해도 그것은 나와의 약속 위반이고

내가 작정한 것을 내가 이루지 못한 것뿐이지 그것이 누구 앞에서도 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죄책감 같은 것 가질 필요 없이 마음 가다듬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으로, 혹은 불성실로 인하여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때에는,

그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작정 기도 날 수를 채우지 못한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게으름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은 작정 일수를 채우고 못 채우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작정 일수를 채우려고 노력했느냐,

얼마나 진정으로 기도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한 여자 성도가 있었다. 40의 나이로 처음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방언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방언의 은사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방언 은사를 받기 위해 새벽 기도 21일을 작정했다.

매일 아침, 새벽 기도가 끝나면 그는 강대상 앞으로 나와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난생 처음 다니는 새벽 기도라 퍽 힘이 들었다. 믿지 않는 남편의 눈치도 살펴야 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났다.

이 주째 되는 첫날, 그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째 되는 날 새벽 그는 눈을 뜨기는 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는 세 번째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주일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벽마다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불평하는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그만

하루를 빠져서 또 실패하고 말았다. 네 번째는 몸이 아파서 시계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못했다.

네 번째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날 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와 캄캄한 예배실 강대상 앞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작정 기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눈물콧물 쏟아가면서 소리쳐 울며

하나님 앞에 회개 개도를 올렸다.

그때, 갑자기 입술에 경련이 일어나며 방언이 터져 나왔다. 작정 기도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던 것이다.


작정 기도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그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한다.

그 기도 시간은 기도하는 사람 임의로 정하면 된다. 새벽 시간, 낮 시간,

밤 시간, 아무 때나 상관없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편리한 시간이면 된다.

기도를 시작하는 시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도 정해 놓는 것이 좋다.

물론 그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도 기도하는 사람 임의로 정한다. 하지만,

명색이 작정 기도니까, 하루 적어도 1 시간, 최소한 30분은 넘어야 할 것이다.

예로,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기도하기로 작정했다면 적어도 5분전에는 자리에 앉아 준비 기도를 하고

시계 바늘을 노려보다가 정각 11시가 되면 기도를 시작한다.

끝날 때에는 아무리 기도가 안 되어도, 지루해도, 다리가 저려도 작은 바늘과 큰 바늘이

12자 위에 하나로 겹쳐질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1분 늦게 시작해도 안 되고 1분 빨리 끝내도 안 된다. 자신에게 아주 엄격해야 한다.

이것이 작정 기도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대하시지만, 우리는 나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대하시다는 것을 핑계 삼아 나 자신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을 미리 생각하고 쉽게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하고,

나 지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이것이 믿는 자의 자세인 것이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1시간 쯤 기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앉은자리에서 기도 1시간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필자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을 때,

어느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앉은 자리에서 1시간씩 기도할 수 없고, 반대로 앉은 자리에서 1시간씩 기도를 하면

반드시 성령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날부터 나는 시계 풀어 앞에 놓고 가끔 눈을 떠 시계 바늘을 쳐다보면서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60 분 채우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생각나는 기도  제목을 길게 늘여서 기도하고

한 번 더 반복해서 기도하고 떠 뭐 기도할 것 없나 생각하고 생각나면 또 천천히 시간 끌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눈을 떠도  겨우 10분이나 15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시간 메우기가 쉬어졌고 한 달쯤 후에는 무릎을 꿇고 앉은 자리에서 시계 보지 않고

한 시간을 거뜬히 채울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차츰 기도가 뭔지를 알기 시작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에게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초신자 중에는, 때로는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 중에도, 기도하라고 하면

5분도 못하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오래 하라고 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뭐 더 할 말이 있어야 하죠.”

이들은 기도를 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할 말이 없어서 더 못하는 것이다.

실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우선 내 교회를 위한 기도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날의 교회야말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곳이다.

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각 기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그 교회의 각 가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고

기관 하나하나 그 기관의 이름을 부르고 그 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병석에 누워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석에 누워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마치 내가 그 환자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 자세로 아픈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며 기도한다. 아마 이것만으로도 30분은 족히 될 것이다.

    

교회를 위한 기도는 매일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도 상관없다.

시간이 남으면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해도 나쁠 것은 없다.

왜 당신은 교회를 위하 기도를 한답시고 매일 같은 말만 하나요? 하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면 된다. 당신은 왜 똑같은 성경책을 자꾸 반복해서 읽나요?

교회를 위한 기도가 끝나면 이번에는 가족들과 천지와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한다.

믿지 않는 가족이 있을 때에는 더욱 열을 내서 간절히 기도한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기도를 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차례로 떠오른다.

그럼 그들을 위해 차례대로 기도를 한다.

 

성도들 중에는 남에게 기도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는 도맡아서 다 해 준다. 그러다보면 1시간도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몇 달만 열심히 기도를 계속하면 차츰 기도하는 법을 알게 되고,

기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고,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도의 초신자들은 가급적 크게 소리를 내서 기도할 것. 혼자 하기 보다는 여럿이 모여서 크게 외치며

기도할 것. 옆 사람의 기도소리가 들리면 방해가 되어 기도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옆 사람의 기도 소리가 방해가 되면 옆 보다 더 큰 소리로 기도를 하면 된다.

기도는 주위가 조용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그것에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할 때에는 조용해서 기도하기 좋고, 시끄러울 때에는 또 시끄러워서 기도하기 좋다.

마음 놓고 크게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크게 외치며 기도할 때에는 나도 같이 외치고, 모두가 조용히 소곤소곤 기도할 때에는

나도 그렇게 하고, 모두들 소리 없이 묵상 기도를 할 때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일종의 묵계이다. 모두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혼자서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옳은 태도는 아니다.

기도의 분위기 깨어놓는 행위로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하는 기도는 듣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귀가 멀어서 크게 외쳐야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니까.


작정 기도는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그것만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고,

특별히 정해진 기도 제목 없이 이것저것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 작정을 한 것이라면 물론

그 기도 제목만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의 10분이나

20분 동안은 작정한 기도 제목의 기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기도할 수도 있다.

기도하는 장소는 기도하기에 편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다 좋다.

다만 작정 기도에 있어서는 일정한 장소를 정해놓고 언제나 그곳에서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정 기도가 아니라도 기도는 가급적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왜 그런지, 해 보면 안다.  

 

작정 기도를 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는 교회이다.

자기 집에서 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평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집에서 매일 정한 시간에, 거르지 않고 꿇어앉아 기도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도 집에서 혼자 하는 것보다는

교회에 나와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새벽 기도를 작정하는 것이다.

새벽 기도 40일 쯤 작정해 놓고 시작해 보면 좋을 것이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좀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 새벽에 눈 비비고 다니는 그 작정 기도 동안 성령께서 힘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작정 기도의 효과는 참으로 놀랍다. 작정 기도를 해 본 사람은 그것을 안다.

다급한 기도 제목이 있거나 하나님께 각별히 구할 것이 있어서 드리는 작정 기도는

그 기도의 응답이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뒤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떻든 그 드린 기도는 결코 헛되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루어 주시는 기도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드는 기도가 될까?

육신의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를 놓고 생각해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자녀이다. 내가 육신의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할 때

어떻게 하나를 생각하고, 또 내 육신의 지녀가 나에게 무엇을 구할 때 어떻게 하면

내가 그 구하는 것을 선뜻 들어주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악을 쓰며 울며불며 하는 기도는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이나 장난감을 사 달라고 울

며 떼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믿음의 어린 아이들이 이런 방법을 쓰면 하나님께서는 곧잘 들어 주신다.

그러나 번번이 이런 방법만을 쓰거나 믿음의 어른이 되었어도 계속 이런 식으로

울며불며 땅바닥을 뒹굴며 떼를 쓰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는 더 이상 듣지 않으신다.

무엇을 구할 것인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합당한 것을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속히 들어주신다.

땅의 썩어질 것보다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들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각별히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하는 자의 믿음에 합당한 것만 주신다.

그가 그의 믿음으로는 받기에 벅찬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믿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의 믿음으로 자라게 하시고,

그래서 그의 믿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 자랐을 때, 그것을 주신다.

내가 아는 한 남자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왔다가 크게 은혜를 받고는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작은 기업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기서 생기는 모든 이익금은

저희 식구 생활비 빼고는 모두 하나님 일만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러니 이 기업체를 큰 기업으로 성장시켜 주십시오.”

 

물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드렸다.

그리고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이익금을 다 하나님께 바친다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그 작은 기업체가 눈 덩이처럼 켜져서 이제 곧 큰 기업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타난 결과는 그가 믿고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큰 기대를 걸고 새로 투자했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 부도가 나고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빚쟁이에 쫓겨 기도원으로 숨어 다니며 기도와 금식 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나날을 2년 가까이 보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믿음은 자라기 시작했고,

어느 날 기도 중에 갑자기 하나님의 숨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께 바친 그 작은 기업체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므로 그것은 내 손을 떠났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기업체를 주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기업체를 나에게 맡겨주실 것이다. 이익금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써야 하는,

쓸 수밖에 없는 100% 하나님의 기업체를 나에게 맡겨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청지기로 삼으실 것이다.”

이렇게 깨닫자 갑자기 힘이 솟기 시작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기적이 일어났다.

뜻밖의 협력자가 나타났고, 그의 회사는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 놀랍게 커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남자 집사님이 한 분 있었다.

이 집사님 역시 작은 기업체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돈 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집사님은 이 일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에 나와서 “하나님, 돈을 댈 자본주를 보내주시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시면 그 이익금의 절반을 교회에 바치겠습니다.”하고

아침마다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헌금도 자주 드렸다.

기도를 시작한지 1개월, 2개월, 3개월. 반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반년이나 기도를 드렸는데, 이익금의 절만을 교회에 바친다는데, 그리고

그간 헌금도 적지 아니 바쳤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

도대체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건지 아닌지 답답하기만 했다.

 

하루는 이 집사님이 나를 붙잡고 사정 이야기를 하며 기도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은 이 집사님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별로 믿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과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그가 교회에 나온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인간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는 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하고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래서 그는 그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 남보다 많은 헌금을 드리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 일을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저 기도원에 가셔서 한 사흘만 금식 기도를 해 보시죠.”

나는 그가 금식 기도를 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좀 깨닫기를 바랐다

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을 좀 깨닫고 그 철저한 기복 신앙에서 조금은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세상에는 기복 신앙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지만, 기복 신앙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고 계시며,

그래서 우리가 달라고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넘치도록 물질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물질이나 바라는 얕은 기복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최소한 그런 기복 신앙은 초월해야 한다.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긴다. 물질은 복이 아니다. 물질은 도구이다.

물질을 복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도구로 받는 것이다.

물질은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복으로 변하지만,

육의 정욕을 위해 사용할 때에는 저주로 변한다.

 

그 집사님은 기도원으로 떠났다. 그리고 무사히 사흘간의 금식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무 깨달음도 없었다.

사흘 동안 오직 돈줄만 생각하고 괴로움을 참고 밥을 굶은 것이다.

그리고 사흘 동안 금식 기도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는 목적은 금식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영적으로 좀더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영이 자라고 믿음이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금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합당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여러 날을 금식하며 외쳐도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이런 아주 간단한 이치를 알지 못했다.

사흘이나 금식을 하고 기도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금식을 보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집사님은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기업체에 돈을 댈 자본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도하는 기쁨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두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이루어 주시지 않는 기도가 세 가지 있다.

1)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2) 중언부언하는 기도.

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ㄱ)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

ㄴ) 사람에게 듣게 하려고 미사여구만을 나열해서 하는 기도.

ㄷ)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을 구하는 기도.

3)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그에게 해가 되거나 믿음을 떨어지게 하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지금 말한 세 가지를 빼고는 모두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루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자금 당장은 이루어 주시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도를 해도 지금 당장 이루어주시지 않는 기도는 또 어떤 기도일까?

1) 아직은 그것을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없을 때.

2) 아직은 때가 아닐 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시점에서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나의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때라도

이 사실을 믿고 쉬지 말고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3) 계속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자 하실 때.

그렇다면, 믿음은 언제 자라는가?

ㄱ) 기도할 때.

ㄴ) 하나님을 체험할 때,

ㄷ) 말씀을 알거나 듣고 깨달을 때.

ㄹ) 하나님의 일을 할 때.

ㅁ)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조금 전에 말한 이루어 주시지 않는 세 가지 기도만을 빼고,

모두 다 이루어 주신다. 어떤 때는 기도하자마자 이루어 주시고, 어떤 때는

한참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조차 잊고만

훨씬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다가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시기도 한다.

필자는 <기도 일기>를 쓰고 있다. 그날그날 드린 기도에 대해 기록해 두는 것이다.

독자께서도 기도 일기를 써 보면 좋을 것이다.

써 보면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끔 그 기도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데,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에 내가 드렸던 기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내가 그런 기도를 들렸다는 사실을 잊은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셨다가 이루어 주신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즉시 이루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도 가끔 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치아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앞니 두 개가 뿌리 쪽부터 까맣게 썩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 데는 지장은 없었으나 말을 할 때면 시커멓게 썩은 부위가 드러나서 보기가

여간 흉한 것이 아니었다. 치과에 가서 썩은 이를 갈아내고 의치를 끼우면 되지만

그때 나에게 그런 돈이 없었다. 그래서 몇 달을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썩은 부위가

자꾸 켜져서 신경까지 도달하고 급기야는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치통은 견디기가 어렵다.

나는 내 두 손가락을 썩은 두 앞니에 대고 기도를 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이 치통을 6개월 동안만 멈추게 해 주십시오.”

6개월 동안이라고 한 것은 6개월 쯤 있으면 치료할 수 있는 돈이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렸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그들의 시선이

내 썩은 앞니에 쏠리는 것이 의식되었다. 남의 눈에도 그 썩은 이가 어지간히 흉해 보였던 모양이다.

석 달쯤 지나서 돈이 들어와 치과에 갔다. 치과의사가 내 이를 들여다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 아프지 않으세요?”

“아뇨. 조금도 안 아파요.”

“신경이 이렇게 바깥까지 나왔는데도 안 아파요?”

“안 아프니까 여태 있었지. 아프면 벌써 왔게요. 이 아픈 것 참을 수 있나요.”

옆에 있던 아내가 농담하듯 한마디 했다.

“이 양반은 신경이 너무 둔해서 그런가 봐요.”

 

치과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잠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손을 놀려 작업으로 들어갔다.

치료를 다 마치고 거리로 나왔을 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신경이 바깥까지 나왔어도 조금도 아프지 않았던 그 비밀, 그 치과의사가 자신의

의학적 지식이나 임상 경험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던 그 비밀을 나는 알았다.

석 달 전, 손가락을 앞니에 대고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통증을 멈추게 해 주셨던 것이다. 통증이 멈추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치통을 위한 기도를 했다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시고 치통을 낫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내 앞니 신경에 역사하셔서 이가 아프지 않게 해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고 계속 그것을 이루어주신다.


기도하는 능력


우리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도하는 능력이란 어떤 능력인가?

1) 우리 주위에서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

2) 그 찾아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이 기도하는 능력이다.


그럼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 하자.

세상을 보고, 기도 제목을 발견하는 능력, 무엇에 대해,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하는 그 기도의 제목을 우리 주위에서 찾아내는 능력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할 제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기도의 초심자들은 절실한 기도의 제목이 생겨야 기도를 한다.

어려움이 왔을 때, 간절한 소원이 생겼을 때,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기도 제목이 타의에 의해서 주어졌을 때에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미숙한 기도자란 기도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물이 흐르듯 유창하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도를 잘 하는 사람,

기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늘 그럴 사한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면 그는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란 한마디로 우리 주위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자. 이때 <나라와 민족>은 기도 제목이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하는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려고 할 때, <나 자신>이 기도 제목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하는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돈벌이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부자가 되는 것>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것인가?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그 <무엇>을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기도 제목을 찾나내는 능력인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은 사람의 입장에서 기도 제목을 찾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 입장에서 기도 제목을 찾는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우리가 드리기를 원하시는, 그런 기도 제목을 찾는다.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하자.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교인 머리수나 늘게 해 달라고,

헌금 많이 들어오게 해 달라고, 교회 건물 크게 높게 짓게 해 달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찾아낸 기도 제목이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교회를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어 기도 제목으로 한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님 입장에서 찾아낸 기도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어 기도 제목으로 하는 능력이 바로 성숙한 기도자의 능력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도 제목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 기도 제목을 놓고 실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 뿐 아니라

그 찾아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 이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이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은 다음의 두 가지다.

1) 내적 능력 (영적 능력)

2) 외적 능력 (신체적 능력)

내적 능력이란 영적 능력을 말하며, 외적 능력이란 신체적, 기술적, 혹은 정신적 능력을 말한다.

 

기도의 영적 능력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므로

이런 기도의 영적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기도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입으로 중언부언하는 기도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영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력의 크기에는 커다란 개인차가 있다.

영력이 강한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쉽게 이루어 주신다.

영력이 강한 사람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런 기도의 영력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의 능력을 사모하며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신다.

그것을 받는 방법은 그것 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쉬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야말로 영적 능력을 받고 그것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며 오직 하나의 방법이다

.

다음, 기도의 외적 능력이란 무엇인가?

외적 능력의 첫째는 인내심과 끈기이다. 인내와 끈기가 없으면 기도는 할 수 없다.

한 시간, 두 시간, 계속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또 그 기도가 응답받고 이루어질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인내심과 끈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몸이 아프면 기도는 할 수가 없다.

몸이 괴로우면 영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기도를 많이 하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건강 뿐 아니라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인내심과 끈기도 생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도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사실은 기도하는데 어떤 각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기도하기만 하면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

 인간은 기도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존재인 것이다.


깊은 기도

기도하는 훈련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늘 생각은 하면서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오래된 사람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교회에 다닌 지 아무리 오래 되어도 또 아무리 열심히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해도,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시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행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엄밀한 뜻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기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기도하는 습관이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기도하는 것이 고역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기도를 할 줄 모르고, 기도를 할 줄 모르니까 기도하는 습관이 붙지 못하고,

기도하는 습관이 붙어 있지 않으니까 기도란 힘들고 괴로운 것으로만 생각되고,

그래서 기도를 안 하니까 그 신비하고 오묘한 맛을 모르고, 모르니까 또 기도를  안 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정 기도를 하는 것이다.

작정 기도란 아주 급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나, 하나님께 각별히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

일정한 기간을 미리 정해 놓고 그 기간 동안 외치고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 작정 기도는 때때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데 일단 정해 놓은 기간 동안은 하루도 빠지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만큼,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기에 더 없이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작정 기도

  

작정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세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1) 작정 기도의 날 수

2) 기도하는 시간

3) 기도의 제목

작정 기도의 날 수는 흔히 3일, 7일, 21일, 40일, 3개월, 반년, 혹은 1년, 등으로 잡는데,

그것은 이들 숫자가 뜻이 있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필요에 따라 임의로 날수를 정해도 상관없다. 꼭 3일이나 7일이 아니라 5일도 좋고 10일도 좋고 2주간도 좋다.

또 그 기간의 길이는 그 구하는 것이 큰 것일 때에는 길게 잡는다. 스스로 연단하기 위해서나

자신을 시험하고자 할 때, 어떤 중요한 결단을 해거나 하고자 할 때에도 대개 그 기간은 길게 잡는다.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은사를 받기 위한 작정 기도라면 적어도 6 개월 이상,

무슨 중요한 결단을 하기 우한 작정기도라면 21일이나 40일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알맞는 기간을 잡는 일이다.

욕심을 부려 너무 기간을 길게 잡았다가 도중에서 포기하고 마는 것은 좋지 않지만,

너무 짧게 잡아 힘 안들이고 너무 쉽게 작정 기도를 미쳐도 별로 은혜가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기간은 자신이 간당하기에 약간은 벅차 보이는 그런 길이이다.

날 수를 채우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작정한 날수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뜨겁게 간구하면서 드디어 작정한 일수를 마쳤을 때, 충만한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나 혹 나의 게으름 때문에 정한 기간 동안에 기도하는 것을

하루나 이틀을 걸렸을 때에는, 그것이 비록 작정한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한 날수는

다 무효가 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작정한 기도의 날수를

다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두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거나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적정 기도는 흔히 생각하듯 하나님 앞에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앞에 작정하는 것이며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인 것이다.

 

내가 작정 기도를 도중에서 포기했다고 해도 그것은 나와의 약속 위반이고

내가 작정한 것을 내가 이루지 못한 것뿐이지 그것이 누구 앞에서도 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죄책감 같은 것 가질 필요 없이 마음 가다듬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게으름으로, 혹은 불성실로 인하여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을 때에는,

그 나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작정 기도 날 수를 채우지 못한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게으름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은 작정 일수를 채우고 못 채우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작정 일수를 채우려고 노력했느냐,

얼마나 진정으로 기도했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한 여자 성도가 있었다. 40의 나이로 처음 교회에 나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방언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방언의 은사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방언 은사를 받기 위해 새벽 기도 21일을 작정했다.

매일 아침, 새벽 기도가 끝나면 그는 강대상 앞으로 나와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난생 처음 다니는 새벽 기도라 퍽 힘이 들었다. 믿지 않는 남편의 눈치도 살펴야 했다.

그럭저럭 일주일이 지났다.

이 주째 되는 첫날, 그는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째 되는 날 새벽 그는 눈을 뜨기는 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는 세 번째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 주일을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마지막 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벽마다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불평하는 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그만

하루를 빠져서 또 실패하고 말았다. 네 번째는 몸이 아파서 시계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못했다.

네 번째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날 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와 캄캄한 예배실 강대상 앞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작정 기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눈물콧물 쏟아가면서 소리쳐 울며

하나님 앞에 회개 개도를 올렸다.

그때, 갑자기 입술에 경련이 일어나며 방언이 터져 나왔다. 작정 기도는 번번이 실패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던 것이다.


작정 기도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그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한다.

그 기도 시간은 기도하는 사람 임의로 정하면 된다. 새벽 시간, 낮 시간,

밤 시간, 아무 때나 상관없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편리한 시간이면 된다.

기도를 시작하는 시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도 정해 놓는 것이 좋다.

물론 그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도 기도하는 사람 임의로 정한다. 하지만,

명색이 작정 기도니까, 하루 적어도 1 시간, 최소한 30분은 넘어야 할 것이다.

예로, 밤 11시부터 12시까지 기도하기로 작정했다면 적어도 5분전에는 자리에 앉아 준비 기도를 하고

시계 바늘을 노려보다가 정각 11시가 되면 기도를 시작한다.

끝날 때에는 아무리 기도가 안 되어도, 지루해도, 다리가 저려도 작은 바늘과 큰 바늘이

12자 위에 하나로 겹쳐질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1분 늦게 시작해도 안 되고 1분 빨리 끝내도 안 된다. 자신에게 아주 엄격해야 한다.

이것이 작정 기도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대하시지만, 우리는 나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대하시다는 것을 핑계 삼아 나 자신에게 관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을 미리 생각하고 쉽게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하고,

나 지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이것이 믿는 자의 자세인 것이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앉은 자리에서 1시간 쯤 기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앉은자리에서 기도 1시간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필자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을 때,

어느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앉은 자리에서 1시간씩 기도할 수 없고, 반대로 앉은 자리에서 1시간씩 기도를 하면

반드시 성령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그날부터 나는 시계 풀어 앞에 놓고 가끔 눈을 떠 시계 바늘을 쳐다보면서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60 분 채우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생각나는 기도  제목을 길게 늘여서 기도하고

한 번 더 반복해서 기도하고 떠 뭐 기도할 것 없나 생각하고 생각나면 또 천천히 시간 끌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눈을 떠도  겨우 10분이나 15분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시간 메우기가 쉬어졌고 한 달쯤 후에는 무릎을 꿇고 앉은 자리에서 시계 보지 않고

한 시간을 거뜬히 채울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차츰 기도가 뭔지를 알기 시작하게 되었고,

기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에게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초신자 중에는, 때로는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 중에도, 기도하라고 하면

5분도 못하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오래 하라고 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뭐 더 할 말이 있어야 하죠.”

이들은 기도를 더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할 말이 없어서 더 못하는 것이다.

실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우선 내 교회를 위한 기도부터 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날의 교회야말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곳이다.

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의 각 기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그 교회의 각 가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고

기관 하나하나 그 기관의 이름을 부르고 그 기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병석에 누워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석에 누워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에는 마치 내가 그 환자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 자세로 아픈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며 기도한다. 아마 이것만으로도 30분은 족히 될 것이다.

    

교회를 위한 기도는 매일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도 상관없다.

시간이 남으면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해도 나쁠 것은 없다.

왜 당신은 교회를 위하 기도를 한답시고 매일 같은 말만 하나요? 하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 주면 된다. 당신은 왜 똑같은 성경책을 자꾸 반복해서 읽나요?

교회를 위한 기도가 끝나면 이번에는 가족들과 천지와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한다.

믿지 않는 가족이 있을 때에는 더욱 열을 내서 간절히 기도한다. 남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기도를 해 주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차례로 떠오른다.

그럼 그들을 위해 차례대로 기도를 한다.

 

성도들 중에는 남에게 기도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기도는 도맡아서 다 해 준다. 그러다보면 1시간도 부족하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몇 달만 열심히 기도를 계속하면 차츰 기도하는 법을 알게 되고,

기도하는 기쁨을 알게 되고,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도의 초신자들은 가급적 크게 소리를 내서 기도할 것. 혼자 하기 보다는 여럿이 모여서 크게 외치며

기도할 것. 옆 사람의 기도소리가 들리면 방해가 되어 기도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옆 사람의 기도 소리가 방해가 되면 옆 보다 더 큰 소리로 기도를 하면 된다.

기도는 주위가 조용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그것에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할 때에는 조용해서 기도하기 좋고, 시끄러울 때에는 또 시끄러워서 기도하기 좋다.

마음 놓고 크게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크게 외치며 기도할 때에는 나도 같이 외치고, 모두가 조용히 소곤소곤 기도할 때에는

나도 그렇게 하고, 모두들 소리 없이 묵상 기도를 할 때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일종의 묵계이다. 모두가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혼자서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옳은 태도는 아니다.

기도의 분위기 깨어놓는 행위로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하는 기도는 듣지 않으실 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귀가 멀어서 크게 외쳐야만 들으시는 분이 아니니까.


작정 기도는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그것만을 위해 기도할 수도 있고,

특별히 정해진 기도 제목 없이 이것저것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 작정을 한 것이라면 물론

그 기도 제목만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의 10분이나

20분 동안은 작정한 기도 제목의 기도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기도할 수도 있다.

기도하는 장소는 기도하기에 편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다 좋다.

다만 작정 기도에 있어서는 일정한 장소를 정해놓고 언제나 그곳에서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작정 기도가 아니라도 기도는 가급적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 좋다.

왜 그런지, 해 보면 안다.  

 

작정 기도를 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는 교회이다.

자기 집에서 해서 안 될 것은 없지만, 평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집에서 매일 정한 시간에, 거르지 않고 꿇어앉아 기도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도 집에서 혼자 하는 것보다는

교회에 나와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습관을 붙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새벽 기도를 작정하는 것이다.

새벽 기도 40일 쯤 작정해 놓고 시작해 보면 좋을 것이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좀 힘이 들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 새벽에 눈 비비고 다니는 그 작정 기도 동안 성령께서 힘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작정 기도의 효과는 참으로 놀랍다. 작정 기도를 해 본 사람은 그것을 안다.

다급한 기도 제목이 있거나 하나님께 각별히 구할 것이 있어서 드리는 작정 기도는

그 기도의 응답이 당장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뒤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떻든 그 드린 기도는 결코 헛되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루어 주시는 기도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드는 기도가 될까?

육신의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를 놓고 생각해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자녀이다. 내가 육신의 아버지에게 무엇을 구할 때

어떻게 하나를 생각하고, 또 내 육신의 지녀가 나에게 무엇을 구할 때 어떻게 하면

내가 그 구하는 것을 선뜻 들어주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악을 쓰며 울며불며 하는 기도는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이나 장난감을 사 달라고 울

며 떼를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믿음의 어린 아이들이 이런 방법을 쓰면 하나님께서는 곧잘 들어 주신다.

그러나 번번이 이런 방법만을 쓰거나 믿음의 어른이 되었어도 계속 이런 식으로

울며불며 땅바닥을 뒹굴며 떼를 쓰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는 더 이상 듣지 않으신다.

무엇을 구할 것인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합당한 것을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속히 들어주신다.

땅의 썩어질 것보다는 하늘의 신령한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들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각별히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하는 자의 믿음에 합당한 것만 주신다.

그가 그의 믿음으로는 받기에 벅찬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믿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의 믿음으로 자라게 하시고,

그래서 그의 믿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 자랐을 때, 그것을 주신다.

내가 아는 한 남자 집사님이 있었다. 그는 작은 기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왔다가 크게 은혜를 받고는 이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작은 기업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기서 생기는 모든 이익금은

저희 식구 생활비 빼고는 모두 하나님 일만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러니 이 기업체를 큰 기업으로 성장시켜 주십시오.”

 

물론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드렸다.

그리고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모든 이익금을 다 하나님께 바친다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그 작은 기업체가 눈 덩이처럼 켜져서 이제 곧 큰 기업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나타난 결과는 그가 믿고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큰 기대를 걸고 새로 투자했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 부도가 나고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빚쟁이에 쫓겨 기도원으로 숨어 다니며 기도와 금식 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나날을 2년 가까이 보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믿음은 자라기 시작했고,

어느 날 기도 중에 갑자기 하나님의 숨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께 바친 그 작은 기업체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므로 그것은 내 손을 떠났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새로운 기업체를 주실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기업체를 나에게 맡겨주실 것이다. 이익금을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써야 하는,

쓸 수밖에 없는 100% 하나님의 기업체를 나에게 맡겨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청지기로 삼으실 것이다.”

이렇게 깨닫자 갑자기 힘이 솟기 시작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기적이 일어났다.

뜻밖의 협력자가 나타났고, 그의 회사는 다시 문을 열었다. 지금 놀랍게 커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남자 집사님이 한 분 있었다.

이 집사님 역시 작은 기업체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자금이 부족해서 돈 댈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 집사님은 이 일을 위해 매일 새벽 기도에 나와서 “하나님, 돈을 댈 자본주를 보내주시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시면 그 이익금의 절반을 교회에 바치겠습니다.”하고

아침마다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헌금도 자주 드렸다.

기도를 시작한지 1개월, 2개월, 3개월. 반년이 다 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다.

반년이나 기도를 드렸는데, 이익금의 절만을 교회에 바친다는데, 그리고

그간 헌금도 적지 아니 바쳤는데 아무 소식이 없으니

도대체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는 건지 아닌지 답답하기만 했다.

 

하루는 이 집사님이 나를 붙잡고 사정 이야기를 하며 기도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실은 이 집사님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별로 믿음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업과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그가 교회에 나온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란 인간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는 분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 위해서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를 하고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래서 그는 그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 남보다 많은 헌금을 드리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 일을 했다.

 

나는 그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저 기도원에 가셔서 한 사흘만 금식 기도를 해 보시죠.”

나는 그가 금식 기도를 하는 동안 무엇인가를 좀 깨닫기를 바랐다

기도를 하는 동안 하나님을 좀 깨닫고 그 철저한 기복 신앙에서 조금은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세상에는 기복 신앙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지만, 기복 신앙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고 계시며,

그래서 우리가 달라고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넘치도록 물질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물질이나 바라는 얕은 기복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최소한 그런 기복 신앙은 초월해야 한다.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하는데서 여러 가지 오해가 생긴다. 물질은 복이 아니다. 물질은 도구이다.

물질을 복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도구로 받는 것이다.

물질은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복으로 변하지만,

육의 정욕을 위해 사용할 때에는 저주로 변한다.

 

그 집사님은 기도원으로 떠났다. 그리고 무사히 사흘간의 금식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무 깨달음도 없었다.

사흘 동안 오직 돈줄만 생각하고 괴로움을 참고 밥을 굶은 것이다.

그리고 사흘 동안 금식 기도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는 목적은 금식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영적으로 좀더 성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의 영이 자라고 믿음이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금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합당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여러 날을 금식하며 외쳐도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이런 아주 간단한 이치를 알지 못했다.

사흘이나 금식을 하고 기도를 했으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금식을 보시고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집사님은 여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기업체에 돈을 댈 자본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도하는 기쁨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두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이루어 주시지 않는 기도가 세 가지 있다.

1)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

2) 중언부언하는 기도.

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ㄱ)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고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

ㄴ) 사람에게 듣게 하려고 미사여구만을 나열해서 하는 기도.

ㄷ)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을 구하는 기도.

3)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그에게 해가 되거나 믿음을 떨어지게 하는 기도.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지금 말한 세 가지를 빼고는 모두 이루어주신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루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자금 당장은 이루어 주시지 않는 것도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기도를 해도 지금 당장 이루어주시지 않는 기도는 또 어떤 기도일까?

1) 아직은 그것을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없을 때.

2) 아직은 때가 아닐 때.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시점에서 이루어주신다.

그러므로 나의 진정으로 드리는 기도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을 때라도

이 사실을 믿고 쉬지 말고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3) 계속 기도하게 하심으로 그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자 하실 때.

그렇다면, 믿음은 언제 자라는가?

ㄱ) 기도할 때.

ㄴ) 하나님을 체험할 때,

ㄷ) 말씀을 알거나 듣고 깨달을 때.

ㄹ) 하나님의 일을 할 때.

ㅁ)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조금 전에 말한 이루어 주시지 않는 세 가지 기도만을 빼고,

모두 다 이루어 주신다. 어떤 때는 기도하자마자 이루어 주시고, 어떤 때는

한참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조차 잊고만

훨씬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기억하고 계셨다가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시기도 한다.

필자는 <기도 일기>를 쓰고 있다. 그날그날 드린 기도에 대해 기록해 두는 것이다.

독자께서도 기도 일기를 써 보면 좋을 것이다.

써 보면 그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끔 그 기도 일기장을 들추어 보는데,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에 내가 드렸던 기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하나도 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기억하셨다가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내가 그런 기도를 들렸다는 사실을 잊은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셨다가 이루어 주신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즉시 이루어 주셨는데,

우리는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때도 가끔 있다.

3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치아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앞니 두 개가 뿌리 쪽부터 까맣게 썩기 시작했다.

음식을 먹는 데는 지장은 없었으나 말을 할 때면 시커멓게 썩은 부위가 드러나서 보기가

여간 흉한 것이 아니었다. 치과에 가서 썩은 이를 갈아내고 의치를 끼우면 되지만

그때 나에게 그런 돈이 없었다. 그래서 몇 달을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썩은 부위가

자꾸 켜져서 신경까지 도달하고 급기야는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치통은 견디기가 어렵다.

나는 내 두 손가락을 썩은 두 앞니에 대고 기도를 드렸다.

 

“사랑의 하나님, 이 치통을 6개월 동안만 멈추게 해 주십시오.”

6개월 동안이라고 한 것은 6개월 쯤 있으면 치료할 수 있는 돈이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렸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그들의 시선이

내 썩은 앞니에 쏠리는 것이 의식되었다. 남의 눈에도 그 썩은 이가 어지간히 흉해 보였던 모양이다.

석 달쯤 지나서 돈이 들어와 치과에 갔다. 치과의사가 내 이를 들여다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 아프지 않으세요?”

“아뇨. 조금도 안 아파요.”

“신경이 이렇게 바깥까지 나왔는데도 안 아파요?”

“안 아프니까 여태 있었지. 아프면 벌써 왔게요. 이 아픈 것 참을 수 있나요.”

옆에 있던 아내가 농담하듯 한마디 했다.

“이 양반은 신경이 너무 둔해서 그런가 봐요.”

 

치과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잠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손을 놀려 작업으로 들어갔다.

치료를 다 마치고 거리로 나왔을 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신경이 바깥까지 나왔어도 조금도 아프지 않았던 그 비밀, 그 치과의사가 자신의

의학적 지식이나 임상 경험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었던 그 비밀을 나는 알았다.

석 달 전, 손가락을 앞니에 대고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통증을 멈추게 해 주셨던 것이다. 통증이 멈추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치통을 위한 기도를 했다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시고 치통을 낫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내 앞니 신경에 역사하셔서 이가 아프지 않게 해 주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다.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르고 있을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시고 계속 그것을 이루어주신다.


기도하는 능력


우리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기도하는 능력이란 어떤 능력인가?

1) 우리 주위에서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

2) 그 찾아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이 기도하는 능력이다.


그럼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 하자.

세상을 보고, 기도 제목을 발견하는 능력, 무엇에 대해,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하는 그 기도의 제목을 우리 주위에서 찾아내는 능력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할 제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기도의 초심자들은 절실한 기도의 제목이 생겨야 기도를 한다.

어려움이 왔을 때, 간절한 소원이 생겼을 때,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기도 제목이 타의에 의해서 주어졌을 때에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스스로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미숙한 기도자란 기도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물이 흐르듯 유창하게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기도를 잘 하는 사람,

기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늘 그럴 사한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면 그는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기도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이란 한마디로 우리 주위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자. 이때 <나라와 민족>은 기도 제목이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하는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려고 할 때, <나 자신>이 기도 제목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구할 것인가 하는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 돈벌이가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부자가 되는 것>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것인가? 그 <무엇>이 기도 제목인 것이다.

그 <무엇>을 찾아내는 능력이 바로 기도 제목을 찾나내는 능력인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은 사람의 입장에서 기도 제목을 찾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 입장에서 기도 제목을 찾는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우리가 드리기를 원하시는, 그런 기도 제목을 찾는다.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한다고 하자.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교인 머리수나 늘게 해 달라고,

헌금 많이 들어오게 해 달라고, 교회 건물 크게 높게 짓게 해 달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찾아낸 기도 제목이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교회를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어 기도 제목으로 한다면

이것은 분명 하나님 입장에서 찾아낸 기도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계시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내어 기도 제목으로 하는 능력이 바로 성숙한 기도자의 능력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도 제목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 기도 제목을 놓고 실제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제목을 찾아내는 능력 뿐 아니라

그 찾아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 이 기도를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어떤 것인가?

이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은 다음의 두 가지다.

1) 내적 능력 (영적 능력)

2) 외적 능력 (신체적 능력)

내적 능력이란 영적 능력을 말하며, 외적 능력이란 신체적, 기술적, 혹은 정신적 능력을 말한다.

 

기도의 영적 능력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므로

이런 기도의 영적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기도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입으로 중언부언하는 기도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영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력의 크기에는 커다란 개인차가 있다.

영력이 강한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쉽게 이루어 주신다.

영력이 강한 사람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된다. 이런 기도의 영력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의 능력을 사모하며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신다.

그것을 받는 방법은 그것 받기를 간절히 바라며 쉬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야말로 영적 능력을 받고 그것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며 오직 하나의 방법이다

.

다음, 기도의 외적 능력이란 무엇인가?

외적 능력의 첫째는 인내심과 끈기이다. 인내와 끈기가 없으면 기도는 할 수 없다.

한 시간, 두 시간, 계속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또 그 기도가 응답받고 이루어질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1년이고 쉬지 않고 계속 기도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인내심과 끈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몸이 아프면 기도는 할 수가 없다.

몸이 괴로우면 영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기도를 많이 하면 몸도 건강해진다는 사실이다.

건강 뿐 아니라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인내심과 끈기도 생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도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사실은 기도하는데 어떤 각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기도하기만 하면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

 인간은 기도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존재인 것이다.


깊은 기도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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