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18:1-3, 히12:1-2
시리아지방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A.D. 30-35년경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칠십여 평생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의해 잉태된 자"라는 별명으로 불리어졌습니다. 그에 대한 전설에 의하면,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셨던 그 어린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였다고 합니다.
2세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그나티우스에 대한 존경과 신망이 얼마나 두터웠는가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입니다. 폴리갑, 이레니우스, 유세비우스 그리고 제롬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A.D. 108년경 트라얀황제의 치세에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로마로 압송되던 중 서머나에서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하고 있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탄원합니다. 나에게 "불합리하게 친절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도착하도록 내가 야수들을 위한 먹이가 되도록 하십시오. 내가 순수한 빵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밀이고 나는 야수들의 이빨에 의해 갈아지고 있습니다. 내가 일단 잠에 떨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나의 무덤이 되어서 육신의 어떤 것도 뒤에 남겨놓지 않도록 야수들을 달래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이 더 이상 나의 몸을 보지 못할 그때, 나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단들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에게 희생이 되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그나티우스에게 있어서 순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에게 기울어가는 것"이며(2:2), "기독교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며(3:2),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4:2),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5:3),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며(6:2),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6:2), "하나님의 고난의 모방자"(6:3)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처럼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것까지도 기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구약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많이 받은 자로 그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을 듣고 더욱 많은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1.항상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즐거워합니다.
1)항상 주님을 바라봅니다.
신약 본문 2절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하며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 잘해도 승리하는 삶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어떠한 고난과 수치를 당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느새 고난과 수치가 사라지고, “이 정도의 고난과 수치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어떤 고난과 수치를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주님을 바라보기만 해도 큰 힘이 납니다. 사실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뿐입니다. 결국 최고의 신앙은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달은 헬렌 켈러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녀는 없는 것을 고민하지 않고, 있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런 감사의 고백이 입술에서 끊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육신의 눈을 어둡게 하시고 대신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영적인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 그는 실낙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불평하면 불평의 조건이 늘지만 감사하면 감사의 조건이 늡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2)주님을 계속적으로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누구에게 끌리고 있느냐, 무엇에게 끌리고 있느냐를 보면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지고, 아프지는 않는지, 문제는 없는지 걱정이 되고 소식이 기다려집니다.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주님에게 끌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누구를 생각하며 사는가?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생각 속에 주님에 관한 생각은 얼마나 많은가? 주님을 모르고 마음에 주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전혀 주님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영접했어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으면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로 다급한 일이 생기면 주님 생각하고 찾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감사한 일이 생기면 맨 먼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더욱 주님 생각하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것을 주님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이 일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 주님은 나의 어떤 부분을 고치기를 원하셔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주님께서 이런 사건 혹은 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뜻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 들어가든지 그 상황을 보고 계시는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요,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구약 본문을 기록한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모반 중에 도망치는 중 돌을 던지며 저주하는 시므이를 보면서도 그를 통한 주님의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시기하여 여러 번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을 내가 손댈 수 없다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며 죽이자는 부하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매사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을 따르기를 힘썼습니다. 오늘 우리도 먼저 주님 생각 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항상 주님 앞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이제 꼬마 숙녀가 되가는 지우가 이웃집에 새로 이사 온 철이와 노는 재미에 푸~욱 빠져버려 밤 9시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느 날 지우엄마가 지우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매를 들었습니다. 지우엄마는 "조금만 놀고 오랬지? 그런데.. 왜 항상 늦어.. 오늘 너 좀 맞아야 하겠어 종아리 걷어!... 하면서 매를 때리니까 지우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다시는 안그럴께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그러자 지우엄마가 "엄마라고 하지도 마.... 엄마 말도 안들으면서... 엄마는 무슨 엄마야?" 그러자 지우가... 엉엉 울면서 던진 결정적 한마디에 엄마는 매질을 멈춰야 했습니다. 아줌마!.. 다신 안그럴께요.. 아줌마.. 용서해주세요. ㅎㅎㅎ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생각만 나고 이상하게 그 사람하고 계속 붙어 있고 싶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는데 그와 결혼하기 위해 7년을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니까 7년의 기간을 수 일 같이 여겨졌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하고 함께 있는 것이 싫습니다. 보기도 싫고 그 사람의 목소리 듣는 것도 싫습니다. 만나는 것을 회피합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도 마음은 딴 데에 가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주님 말씀 듣고, 읽는 것이 꿀처럼 맛이 있고 좋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예배 시간, 기도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세상 연락 보다, 연속극 보는 것 보다, 친구 만나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신앙이 뜨거워지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신앙이 식어지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뜨거운 신앙으로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합니다.
1)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신약 본문 1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잡아매고, 무겁게 하는 많은 짐들이 있습니다. 가족 부양의 짐, 양육의 짐, 사업의 짐, 질고의 짐, 염려의 짐, 인간관계 가운데에서 오는 짐, 죄의 짐 등 많은 짐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를 가장 속박하고, 가장 무겁고 힘들게 하는 짐은 죄의 짐입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마라톤 경주는 1등을 하여 월계관을 쓰게 되면 좋지만 마라톤의 더 큰 의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완주에 있습니다. 이 마라톤에서 완주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모든 무거운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가방을 둘러메고 달리거나 도시락 통 들고 마라톤 하는 사람 봤습니까?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리고 가장 간편한 복장을 하고 달립니다.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은 마라톤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병을 치료하지 않고 달리다가는 불상사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죄는 병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 죄를 그냥 달고 다니면 결코 완주할 수 없습니다. 죄를 벗어버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회개밖에 없습니다. 회개생활이 없는 신앙생활은 진보하기는커녕 불상사를 당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죄를 그냥 덮어두고 살다가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의 달려 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켜 칭찬과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속죄를 위해서라면 징계도 축복입니다.
신령한 차원에서 보면 고난이 복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약해지기 쉽습니다. 세상적으로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 같습니다. 구약 본문을 기록한 다윗에게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삼하 11장에 보면 다윗의 왕권이 확실해지고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지니 이제는 다윗이 전쟁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잘 된 상황이지만 문제는 영적으로 느슨해진 것입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전쟁을 하는데 다윗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성경은 다윗이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그만큼 해이해졌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정욕에 이끌려 충신의 아내 밧세바를 불러드려 동침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야에게 특별 휴가를 내어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전쟁 중이라 아내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충신입니다. 다윗은 결국 전사를 가장하여 우리야를 죽게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은밀히 행한 일을 다 아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고 사랑의 매로 징계합니다. 그 때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철저히 회개 합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경주를 더욱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때때로 징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성도는 징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훈련 도중 잘못을 범했을 때 코치나 감독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습니다. 이 질책은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한자 숙어 중에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는 의미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하여금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도록 격려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오직 예수께 두고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사람보다 많은 환난과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복음 진도를 했으며 또한 많은 열매를 얻었습니다(고후11:23-27).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이 약할 때 더욱 온전하여짐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고후 12:10).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은 능력이 되어주십니다.
3)목표를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신약 본문 1절 하반부에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발력이나 순간적 열정보다 꾸준한 인내입니다. 인생을 100미터 달리듯이 달리면 얼마 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게 되지만 장거리 경주자는 꾸준히 인내하며 달리면 결국 승리합니다. 기도도 폭발적인 기도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상관없이 꾸준히 기도하는 기도가 제일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경주자는 분명한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주어진 일에 열심히 노력하여 발전적인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내가 맡은 일을 성실히 잘 감당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보다 더 좋은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보다 내일, 금년 보다 내년, 금생보다 내생이 더 잘 되고 행복해지는 목표를 향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고, 영원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주셨고, 그 목표를 향해 가도록 섭리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많은 탈락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를 향해 가도록 섭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빌3:13-1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도 바울 사도와 같은 모습으로 목표를 향해 인내로 달려가 주님과 함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1)주님을 향한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에, 건강을 주시기 때문에, 형통하게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순수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들이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에 예수님을 자기들의 임금 삼으려고 한 것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다가 실패한 것도 예수님 덕분에 영광을 얻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인 순수한 아가페 사랑인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그런 순수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가정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기르던 개를 자기들이 살던 집으로 이사 오는 집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주인이 이민을 가는 날 공항까지 따라 나갔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그 개는 먹지도 않고 늘 끙끙거리기만 했습니다. 새 주인이 아무리 정성껏 보살펴 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집을 나간 개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온 동네를 다 찾아도 없었습니다. 늦게 서야 새 주인은 옛 주인이 떠나간 공항에 가서 그곳에 있는 개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개는 다시 공항으로 가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6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주인을 기다리던 개가 공항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변함없는 개를 갸륵하게 여긴 사람들이 개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 묘비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한 주인을 끝까지 사랑하고 기다린 충성스러운 그 개의 무덤을 보기 위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개가 그렇게 주인을 기다렸지만, 그 주인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며 한결 같은 믿음으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 맞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닮아갑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되면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철들지 못한 어설픈 신앙을 가지고 있을 때는 서로 큰 자,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을 가지고 주님께 구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의 목표를 세상의 높은 자리에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내가 로마에 입성하여 황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고자 하느니라 너희도 나와 같이 십자가에 죽고자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유대 대제사장들의 고소로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에 끌려 왔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심문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에 예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시므로 자신이 목적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인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요18:33-36) 그러므로 세상 나라를 목적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는 주님을 본 받아 사랑으로 겸손히 섬기는 자로 삽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지 세상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갇힌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을 자초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러한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됩니다.
3)그러한 자들이 주님과 함께 참 승리자들이 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의 모습은 참 초라하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강도 취급을 당하시고, 멸시와 온갖 수치를 다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는 완전한 실패자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시므로 사단의 세력, 율법의 정죄, 죄의 세력, 죽음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영광스런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신약 본문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했습니다. 주님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보시지 않고 멀리 내다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하시며 기도하실 때 사단은 바로 눈앞의 영광으로 시험했습니다. 금세 배부를 수 있고,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을 수 있고, 천하만국을 호령 할 수 있는 것으로 시험했지만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 장래 영광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시고, 인류의 구원을 보시면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깊은 산에서 큰 산불을 만나면 산꼭대기로 가야 합니다. 골짜기로 내려가면 불길의 방향을 몰라서 위험하지만 산꼭대기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불길의 방향을 알 수 있어서 불길을 피하는 길이 보입니다. 그처럼 믿음생활에서 길을 잃지 않고 승리하려면 주님만 바라보고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믿음의 날개를 펴고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높이 오르는 사람만이 먼 곳을 볼 수 있다.” 성도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수준을 높이고 멀리 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 바라보고 묵묵히 주님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게 될 줄 믿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즐거워합니다. 1)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2)주님을 계속적으로 생각하며, 3)항상 주님 앞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합니다. 1)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2)속죄를 위해서라면 징계도 축복입니다. 3)목표를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1)주님을 향한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 2)주님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닮아갑니다. 3)그러한 자들이 주님과 함께 참 승리자들이 됩니다.
우리 모두 세상 무엇 보다,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와 함께 영광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 6. 2.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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