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오직 예수(갈1:1-12)

하나님아들 2013. 6. 14. 15:28

20130602 칠정교회 주일예배 설교

경남 산청군 단성면 창촌리 633-1

조한우 목사 010 - 8722 - 9185

갈라디아서11절로 12절 말씀

 

오직 예수

 

벌써 6월이 되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한 달 한 달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셨을 텐데요, 혹독한 추위도 있었고, 모진 가뭄도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는가 했더니 요즘은 벌써 한여름 더위를 느낄 정도로 한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초롱초롱 풀꽃들이 피고, 아카시아꽃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더니, 이제는 벌써 오디가 새까많게 익어서 정말 여름이 온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절은 빨리 변하는데, 우리들의 믿음은 왜 그리도 더디게 자라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목사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해도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는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깝다는 거예요.

그거야 그럴 수 밖에 없겠죠?

콩나물 시루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밑으로 다 빠져나가 버리고 남는 물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새 콩나물은 쑥쑥 자라지 않아요?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믿음도 자라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CTS에서는 볼 수 없는 설교, 오직 칠정교회 성도님들만을 위한 설교, 그리고 다음 카페와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제공되는 칠정교회 조한우 목사의 설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었거든요.

엄청나게 큰 강단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그런 목사님이 되고 싶었는데, 꿈은 이루어진다? 안 이루어진다?

,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제가 지리산 자락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만,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말이죠.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제 설교를 볼 수가 있습니다.

진짜로 매 주일마다 제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니까요.

그래서 제가 요즘에 아주 신이 나있습니다.

설교하는 것이 너무 너무 좋아요.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말씀을 사모하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 벌써 가슴이 설레는 것이 느껴져요.

 

매주 적어도 100, 200, 300명이 우리 칠정교회 설교를 보시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앞으로는 천명, 2천명, 3천명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서버가 다운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설교 준비를 하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릅니다.

아마 사도 바울도 그랬을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은 1, 2,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고요, 가는 곳마다 전도를 하면서 항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모든 성도들의 소식을 다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있는 이 갈라디아서도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다가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쓴 편지인데요,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교회들을 개척했거든요.

사도행전 13, 14장에 보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그랬습니다.

아마 사도 바울도 나처럼 그런 그대와 설렘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금 저 사람들이 내 설교를 듣고 싶어한다. 나의 복음을 저 사람들에게도 전해야겠다.’라는 마음이 간절했었던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도 바울을 보는 눈들은 곱질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예수님을 핍박했던 사람이었거든요.

사도 바울의 원래 이름이 사울이었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핍박했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를 당할 때에도 사울은 그 자리에 있었고, 스데반 집사님을 처형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사람이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거기서 사람이 180도로 확 변한 거예요.

사도행전 9장에 사울의 회심 사건이 기록되어 있잖아요?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모릅니다.

눈에는 살기가 가득해서 대제사장을 찾아갔습니다.

대제사장님, 제가 예수 믿는 족속들을 다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올 수 있도록 체포영장 하나만 써 주십시오!”

사울이 대제사장이 써 준 체포 영장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데리고서 신이나서 다메식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예루살렘에 엄청난 핍박과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었거든요.

이것들 만나기만 해 봐라! 다 잡아죽여버리겠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저 북한의 김일성 집단이 그랬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잡아 죽이고 아오지 탄광에 보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메섹에 거의 다 와 가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이 사울을 둘러 비추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사울이 물어봤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랬더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는데,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하는 거예요.

사울은 그 자리에서 눈이 멀었습니다.

실명을 해서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어요.

그 후에 아나니아 선지자를 찾아가서 안수 기도를 받고서 눈을 뜰 때까지 3일 동안 장님으로 있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당시의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던 사울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로마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으니까 당연히 유대교인이었던 사울은 유대교의 이단이라고 생각했던 예수교에 대해서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랬던 사울이 이름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울은 큰 자’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인데요,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이름을 고쳐 버렸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 ‘낮은 자’, ‘겸손한 자’ ‘티끌만도 못한 사람그런 뜻입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땐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기처럼 교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겼습니다.

원래 사도라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3년여의 세월을 같이 보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다 목격했던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예수님의 제자 열두 명만 사도라고 불렀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도 사도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지가 뭔데??”

그러나 바울은 확실했거든요.

세상에 죄인 중에 괴수와도 같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칭 사도라고 말했던 거예요.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TV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사도 바울은 누가 뭐래도 항상 외치고 다녔습니다.

나는 사도다!’

 

우리들도 그렇게 자신 있게 소리치고 다닐 수 있어야 됩니다.

한번 따라해 보실까요!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예수쟁이다!” 그럼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에 흙이 들어오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외쳐야 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저는 장애인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레크레이션 강사로 자주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이래 뵈도 레크레이션과 웃음치료를 합친 통합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든요.

제가 레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노래가 있는데, 박상철이라는 가수가 부른 무조건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틀어 놓으면 다들 신이 나서 금방 분위기가 업(up)이 되더라고요.

가사도 아주 단순해요.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나를 불러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반복되는 노랫말과 곡조에 사람들은 금방 빠져들더라고요.

노래를 들어보면 곡조이나 가사가 그렇게 적극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열정적이예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 거야 짠짜라짜라라라짠짠짠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노래 이거 정말 복음적이다.’

안 그래요, 여러분? 저나 여러분들이나 너나할 것 없이 다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고 있는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냔 말이예요?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두말 하지않고 무조건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어요?

박상철이라는 가수는 그런 사랑을 무조건 사랑이라고 그럽니다.

특급 사랑이래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래요. 무조건 달려갈 거랍니다.

설교 시간에 무슨 가요 얘기를 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그 노랫말을 들어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거예요.

물론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도 이 노래 못지않은 결연한 의지의 찬송이 있기는 합니다.

323,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인데요.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그런데 이 찬송은 신학생들에게나 어울리는 찬송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신학생들조차도 이 찬송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존귀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그게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멸시천대 십자가는 주님이나 지고 가세요! 존귀영광 모든 권세는 제가 좀 받겠습니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광을 받기 위해서 자기가 사도라고 자처하고 나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겠다는 각오로, “내가 사도요, 내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도요!”라고 목에 핏줄이 서도록 외쳤던 겁니다.

1절 말씀을 보세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누구의 은혜입니까?

저절로 된 거예요? 누구에게 배워서 된 거예요? 벼슬로 된 거예요? 아니잖아요?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4절 말씀을 다 같이 봉독해 보시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할렐루야!)

 

세상에 아무리 사랑이 크다고 해도 자기 몸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 주고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해 주신 사랑 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어요?

사도 바울은 그 사랑으로 복음을 전한 거예요.

그런데 사랑하는 갈라디아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이단 사상이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경건을 가장한 유대주의가 교회를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소식이 사도 바울의 귀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사도바울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복음, 오직 말씀만 전했는데, 나중에 들려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 보니까 이상한 소리를 해요.

어디 가만히 앉아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느냐?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느냐? 너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겠다고 교회로 들어왔으면 우리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십계명에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는데, 주일만 지켜서는 될 일이 아니다!’

하여튼 별별 이상한 교리들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거예요.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보니까 얼마나 황당하던지 말씀을 전해 준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 말씀에서 속히 떠나서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6절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 있어요? 없어요? -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만 이단들이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켜서 교회를 교란시켜놓았다는 것입니다.

8절과 9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아주 단정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을 다같이 봉독하시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있어도 내가 복음은 없잖아요?

성경을 내 맘대로 해석하고 성경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편협한 종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해요.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 걸 어쩌겠어요?

교회 안에 좀 이상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조심해야 됩니다.

가라지는 처음부터 가라지이고요, 염소는 처음부터 염소예요.

가라지가 오래 된다고 해서 알곡이 되는 법이 없고요, 염소가 자라서 양이 되는 법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가룟유다는 처음부터 도적이었습니다.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갔다고 그랫거든요.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까지 팔아 먹어버렸잖아요?

잘못된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할렐루야!)

여러분들은 사람들을 보고 사십니까? 하나님을 보고 사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계세요? 사람들의 비유를 맞추면서 사는 삶을 살고 계세요?

적어도 오늘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나오신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들인 줄 믿습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해요.

교회는 못 나오고요? 예배도 못 드립니다.

이 사람 눈치 보고 저 사람 눈치 보고, 이 사람 비위 맞추고 저 사람 비위 맞추고 그러고서 언제 교회에 나갈 거예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아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음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4:12)

 

우리 칠정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를 모신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들에게 좋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좋게 해 드려야 되겠습니까?

우리들은 성령 충만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칠정교회에는 내가 없고 우리만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모시고 하는 우리 칠정교회는 하나의 복음, 하나의 구원, 하나의 교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들마다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니까 그런 거예요.

교회는 가만히 있어도 가루 서 말에 넣은 누룩처럼 자꾸 자꾸만 불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램도 좋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프로그램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회는요, 그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옛말에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하나님께 드릴 예배는 엉터리로 드리면서 복만 받으려고 하면 되겠어요?

마을 앞에 고목나무가 속이 다 비어서 썩은 이유가 있답니다.

사람들이 자꾸 복을 달라고 빌기는 비는데, 고목나무가 무슨 복을 줄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속이 답답해서 썩어들어갈 수 밖에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는 유대교 교리가 다른 복음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기복주의 신앙이라든지 성공지상주의 사상이라든지, 물량주의 같은 것들이 다 잘못된 다른 복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복음은 절대로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붙드셔서 마지막 때에 승리하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하이얀고무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