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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으로 본 우울증

하나님아들 2013. 4. 23. 14:24

성경으로 본 우울증

 

 

1. 성경에서 본 우울증

우울증이란 말은 최근에 생긴 용어이기 때문에 성서시대나 초대 교회 등에서 우울증이란 단어를 찾을 길은 없으나 우울 증상을 나타내 주는 단어는 자주 접할 수 있다. 절망, 슬픔, 낙심, 한탄과 같은 언어들은 우울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소서”(민수기 11:15)

이 말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모세의 애원인데, 우울증을 보여 주는 분명한 사례이다.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욥기 3:20~21)

이 구절은 욥이 하나님께 죽음을 애원하는 간구인데, 역시 우울증을 보여 주고 있다.

 

시편에서도 우울증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자주 나타나고 우울한 자들에게 주는 위안의 구절도 아주 많다.

 

특히 열왕기상 19:1~14에 나타난 엘리야에게서 심한 우울 증상을 읽을 수 있다. 엘리야는 멀리 광야로 도망함으로써 자신을 사람들과 격리시켰고, 로뎀 나무 밑에서 죽기를 자청할 정도로 절망했으며, 자신 혼자만의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고, 자기 열조보다 자신이 훨씬 부족하다는 열등감에 시달렸고 먹을 것이 없이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다.

 

엘리야가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울증은 사탄의 역사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요, 죄의 결과로 하나님이 주시는 징벌은 더욱 아니다.

물론 죄를 짓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나 대인관계가 소원해 지고, 거기에 따른 정신, 신체, 하는 일 등 모든 기능이 약화되는 데서 우울증은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인간 능력의 기둥 역할을 하는 영적 기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된다. 그러면 인간은 삶의 깊은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곧 삶의 의미 상실은 우울증을 유발시킨다.

 

결론으로 우울증은 인간이 어떤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신 스스로에게서 일어나는 증상이지 하나님이나 사탄의 역사는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면 우울증을 일으키는 원인은 많이 줄어들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삶에 조화가 일어나고 갈등도 감소할 것이며 따라서 우울증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물리친 후 광야로 도망 간 엘리야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원할 만큼 절망적인 상태였으나 여호와의 사자가 가져다 준 음식을 먹고 여호와가 함께 하심을 확신하면서 휴식을 취하자 우울증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40주야를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2. 우울증 치료를 위한 기독교적 접근

첫째로 치료자는 우울증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우울증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상당히 많은 병들은 환자 자신이 살아온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병이란 환자가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한 열매일 수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분노가 억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분노는 인간관계를 약화시켰을 것이다. 이들에게서 흔히 우울증의 증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울증을 통해 환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일 수 있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계속 살아갈 때 그는 결국 우울증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우울증을 어느 정도 심하게 앓았으면서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가운데 역사의 주인공들이 많은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마틴 루터, 존 칼빈, 존 웨슬리 같은 분들도 우울증을 앓았음이 알려졌고, 킬케고르는 상당히 중증의 우울증을 앓았다. 위대한 정치 지도자 아브라함 링컨이나 영국의 처칠 수상도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짐 진자들에게 “너의 우울증은 너의 지나온 삶이 키워온 산물이다”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필자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너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너는 앞으로 어느 길을 가려 하느냐?”

 

먼저 우울증 때문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이 세력은 성장과정이나 지금 현대의 중요한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어두운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지나온 자신의 삶이 현재의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함으로 받은 상처가, 30대 후반의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게 우울증이라는 어두운 세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들로 하여금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오래 전에 겪은 상처의 그림자가 장성한 지금의 자신에게 따라 다니면서 우울증을 앓게 한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현재의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하나님 앞에서 보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어두웠던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를 하나님 앞에서 결단해야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증상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은 어린 시절 받은 상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린도전서 13:11).

사도 바울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함을 외치고 있다. 이 말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나온 과거 상처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둘째로 우울증으로부터 자유하는 길은 믿음, 사랑, 신뢰, 기도, 찬양이 살아 움직이는 신앙공동체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울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결단하고 일어서기가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다른 이웃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울증 때문에 시달림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인간관계에서 얻은 상처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치유하는 길이 제일 건전한 방법이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주는 신뢰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찬양해주는 믿음의 동지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우울증은 반드시 떠나가리라 믿는다. 필자는 20년 가까운 치유그룹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직접 보아 왔다.

 

인간이 건강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할 영양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신비의 영양소와 이웃 형제 자매와의 만남에서 오는 사랑의 영양소이다.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욕구와, 존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결핍될 때 인간은 병들도록 되어 있다. 우울증이란 바로 위에 열거한 영양소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한 것을 안다면 위의 조건만 충족해 주면 우울증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믿음, 사랑, 신뢰, 기도, 찬양이 살아 움직이는 신앙공동체를 만나면 누구나 거기에서 역사 하는 성령을 체험하게 되고, 나의 아픔을 함께 아파해 주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경쟁, 불안, 시기, 질투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생명력을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에서 얻을 수 있다. 이런 공동체는 특수 공동체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 아니다. 우리 교회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설교만 듣고 헤어지는 공동체에서는 어렵다. 말씀을 거울 삼아 자신의 삶을 사는 공동체로 교회가 전환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10명 내외의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말씀과 삶을 서로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만남이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우리를 엄습할 수 있는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심한 경우라면 좀더 심도 있는 신앙공동체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신이 나도록 되어 있다. 신앙의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경받고 사랑 받을 때, 그리고 자신이 귀중한 존재로 용납되는 경험을 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체험이 몇 번 거듭되는 동안 그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존감이 회복하는 만큼 삶의 용기를 얻을 것이요.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셋째로 우울증은 삶의 의미 발견을 통해 치료된다.

삶의 의미를 상실했을 때 찾아오는 손님이 우울증이라고 이미 언급했다.

그러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발견하게만 해 준다면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예로 한 우울증 환자가 어떤 치료자를 찾았을 때 그 치료자는 환자에게 매일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사람을 찾아 도와주라는 처방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 환자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세 사람을 찾느라 분주하게 뛰었고, 그러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의 우울증은 치료되었다. 그 환자는 다른 사람을 돕는 동안 삶의 의미를 느꼈고, 의미를 느끼다 보니 우울증은 사라지고 말았다.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은 우울증을 예방할 수도 있고, 우울증을 치료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먼저 우울증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하고 신앙공동체 체험을 한 다음 삶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또는 신앙공동체 경험을 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느끼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정태기/한신대학교 교수 및 크리스천 치유목회연구원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출처 : 성경 벌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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