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스크랩] 모형과 원형

하나님아들 2013. 4. 17. 16:38

 

모형과 원형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1~52의 “천국”비유에 관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우리는 성경에서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주의해야 한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성경교사)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옛” 보물들은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모형들이고, “새” 보물들은 신약 성경에서 기록된 내용을 나타낸다.  신약은 구역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안에서 “나타난다”.  어거스틴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 것은 옛 것에 포함되어 있으며, 옛 것은 새 것으로 풀이진다.”

 

  히브리서가 없이는 레위기를, 요한계시록이 없이는 다니엘서를, 십자가에 못박힌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복음서 없이는 유월절 또는 이사야 53장을 이해할 길이 없다.  “모형”과 “원형”을 대조해 가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면 성경을 기록한 분은 오직 한 분, 성령이심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구약의 모형들은 신약의 교리들을 예표하는 그림으로 된 말씀이다.  한 예로 장대에 달린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다. (요 3:14~15)  그러므로 어떤 설교자나 성경 교사도 구약의 모형에 관하여 잘 모르면 신약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  그러면 모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1~11dptj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10:11)  바울이 말하고 있는 “저희”은 누구이며 “이런 일”은 무엇인가?  물론 이스라엘 자손과 그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그 역사상의 사건들은 단순한 사건 그 이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사건들은 신약에 나타난 구원 계획의 모형으로, 결코 신화적이거나 풍유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던 사실이었으며, 우리의 경계(훈계)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도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구약의 모형들은 단지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 실체의 불완전한 모습이다.  따라서 구약의 모형들은 실제 원형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림자”이며, 실체의 불완전한 모습에 불과하다.

 

  모형은 어떤 경우에는 인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건이나 의식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나타날 인물이나 사건, 또는 의식을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모형적 인물 : 아담, 가인, 아벨, 멜기세덱, 아브라함, 이삭,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요나

2. 모형적 사건 : 노아의 홍수, 이집트의 재앙, 유월절, 놋뱀, 요단 강을 건넘, 도피성

3. 모형적 의식 : 희생을 드리는 일, 문등병자를 깨끗케 하는 의식, 일곱 절기, 희년(50년), 대속죄일

4. 모형적 건축물 : 노아의 방주, 성막, 성전

5. 모형적 기구 : 번제단, 놋대야, 일곱 촛대, 차려놓은 떡, 식탁, 향단, 언약궤

6. 모형적 색깔 : 청색, 홍색, 백색, 자주색, 주황색, 녹색

7. 모형적 숫자 : 1, 3, 4, 7, 12, 40

 

“그렇게”(So)와 “같이”(As)처럼 표현되는 것을 들 수 있다.  “as"로 시작되는 것이 모형이요, ”so"로 표현되는 것이 원형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자는 역사적이고 후자는 예언적이다.  『이는(So)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As)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한글 성경에는 이는이 생략됨  『노아의 때와 같이(As)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So)』(마24:37)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As) 인자도 그렇게(So) 들려야 하리니』(요3:14) 한글 성경에는 그렇게가 생략되어 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As) 인자도 그처럼(So)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 한글 성경에는 그처럼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모형들 중에서 그 원형이 겉으로 잘 나타나 있지 않아 성경을 표면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있다. 여기서 모형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I. 이삭과 리브가 (창세기 24:1~67)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형이다.

 

2. 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1) 이삭과 그리스도는 모두 약속의 씨였다.(창15:4, 사7:14)

  (2) 두 사람 모두 탄생이 미리 알려졌다. (창18:10, 눅1:30~31)

  (3) 두 사람 모두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있었다. (창17:19, 눅1:31)

  (4) 두 사람의 탄생은 모두 초자연적 출생이었다.

      - 사라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다.(창11:30)

      - 마리아는 처녀였다. (마1:18~20)

  (5) 두 사람 모두 “독자”로 불렸다 (창22:2, 히11:17, 요3:16)

  (6)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친족에게 조롱과 박해를 받았다(창21:9~10, 갈2:28~29, 마27:29)

  (7) 이삭과 그리스도는 둘 다 그들이 드려져야 한다는 법을 깨지 않았다(창22:2, 마27:24)

  (8) 이삭이 자신을 태울 나무를 지고 갔듯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나무 십자가 지셨다.(창22:6, 요19:17)

  (9) 이삭이 기꺼이 제단으로 갔던 것처럼 그리스도도 기꺼이 십자가로 나아가셨다(창22:9, 요10:17)

  (10)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아버지께 버림받았다. (창22:12, 마27:46)

  (11) 두 사람 모두 죽음에서 부활했다. (히11:17~19, 마28:6)


3. 엘리에셀은 성령의 모형이다.

  (1)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종이었던 것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종”이다

  (2) 엘리에셀이 하란에 가서 이삭을 위해 신부를 데려오라는 사명을 받았듯이 성령께서도 그리스도를위해 신부된 교회를 데려오도록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3) 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데려오도록 보냄을 받은 때는 하나님께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려오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4) 엘리에셀은 자신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그 주인의 아들에 관해 증거했다. 성령께서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고 계신다.

  (5) 엘리에셀의 임무가 급박했던 것처럼 성령의 임무도 급박하다(창24:53~56, 고후6:2)

  (6)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어 그 주인 이삭의 부요함을 나타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

  (7) 엘리에셀이 리브가로부터 이삭의 아내가 되겠다는 승낙을 받아낸 후 자신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왔듯이, 성령께서도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가 준비를 갖추면 신부를 데리고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4. 리브가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모형이다.

  (1) 리브가가 엘리에셀의 말을 믿고 그의 요구에 자신을 맡겼듯이 교회도 성령을 의뢰하고 또 그분의 요구에 자신을 맡긴다.

  (2) 리브가가 기꺼이 이삭을 위하여 그녀의 친족을 떠났듯이 성도 역시 예수님을 위하여 기꺼이 육신의 정욕, 죄의 친족에게서 분리된다.

  (3)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그의 주인 이삭에 관한 모든 것과 그녀를 위하여 예비된 모든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가 이 지상의 순례를 계속해 나가는 동안 신랑이신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과 예비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신다.

  (4) 리브가가 이방인 신부였듯이 그리스도의 교회도 이방인 신부이다.  리브가는 이삭의 친척이었지만 이방인이었다.  히브리인의 시조는 아브라함 한사람이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후손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친척들도 이방인들인 것이다.

  (5) 리브가는 어떤 환란도 겪지 않고 집을 떠나 이삭에게로 갔다.  이와 같이 교회도 대환란을 겪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될 것이다.

  (6) 이삭이 집을 나와 들판에서 리브가를 맞이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공중에서 신부, 곧 교회를 맞이하실 것이다.

  (7) 이삭이 리브카를 만난 것이 저녁 때였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의 교회를 만나시는 때도 밤인 대환란이 오기 직전인 저녁 때가 될 것이다.

 

 

Ⅱ. 요 나

 

 어떤 모형들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 것도 있다.  선지자 요나의 예가 그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큰 물고기”에게 삼켜서 그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있었던 사실은 자신이 사흘 밤낮을 무덤에 있을 것에 대한 모형이라고 말씀하셨다.(마12:40)  그러나 한편 요나는 유대 민족의 모형이 되기도 한다.

 

  (1) 요나가 니느웨라는 이방인 도시에 메시지를 전하도록 보냄을 받은 것처럼 유대인들도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선택되었다.

  (2) 요나가 순종치 않고 다시스로 도망했듯이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사명을 다하지 않았다.

  (3) 불순종으로 인하여 요나가 배 밖으로 내던져진 것과 같이 유대인들은 자기 땅에서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되었다.

  (4)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기적적으로 보호함을 입었듯이 유대인들도 민족들 가운데 완전히 삼킨 바 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5) 요나가 지옥의 뱃속에서 회개하여 부활한 것처럼 유대인들도 큰 환란중에서 회개할 것이다.

  (6) 요나가 육지로 다시 돌아온 것과 같이 유대인들도 그들의 고토로 돌아갈 것이다.

  (7) 요나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았고 이에 순종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에게도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두 번째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것이고,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순종할 것이다.

 

 

Ⅲ. 요 셉

 

 “모형적 인물”을 한 명 더 들어보면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요셉이 있다.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야곱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듯이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셨다.

  (2)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보내졌듯이, 예수님께서도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보내지셨다.

  (3)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듯이 예수님께서도 형제들에게 배척당하셨다.

  (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은 20에 팔렸덧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은 30에 팔리셨다.

  (5) 요셉이 죄없이 고소당하고 정죄당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죄없이 고소당하고 정죄당하셨다.

  (6) 요셉이 감옥에 갇혔듯이, 예수님께서도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다.

  (7) 요셉이 감옥에 풀려나와 바로 왕의 오른편에 앉게 되었듯이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시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다.

  (8) 보좌에 오른 요셉이 이집트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듯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께서도 멸망해가는 세상을 위한 “생명의 떡”이 되셨다.

  (9) 요셉이 보좌에 오른 후 이방인의 신부를 아내로 취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이방인 신부인 교회를 아내로 취하실 것이다.

  (10) 요셉이 그 아내를 얻은 후 그의 형제들에게 기근이 닥쳤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요셉을 찾아왔듯이, 예수님께서 그 신부를 데려가신 후 대환란이 닥칠 것이며 그 때 그 형제들,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돌이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11) 요셉이 처음에 그의 형제들을 알아보았으나 그 형제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듯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 그의 형제들, 백성들을 알아보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

  (12) 요셉의 형제들은 두 번째 왔을 때, 요셉을 알아보았듯이, 예수님께서도 두 번째 오시는 재림 때는 유대인이 그분을 참으로 알아보게 될 것이다.

  (13) 요셉이 자신을 형제들에게 알리자 그들이 밖으로 나가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렸듯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면 그들은 세상를 향해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인류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외칠 것이다.

  (14) 당시 요셉이 그 형제들과 가족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켰듯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을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살도록 해 주실 것이다.


  만일 장대 위에 매달린 놋뱀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그리스도처럼(민21:8, 요3:14) 모형과 원형이 둘 다 실제로 나타났다면, 그 모형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직까지 그 원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노아의 방주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아니라, 천년 왕국에서 민족들을 구원하여 새 땅으로 옮기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의 모형이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은 대환란 중 세상에 내릴 재앙들의 모형이며, 도피성은 대환란때 남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의 모형이다.  그리고 느부갓넷살왕이 두라평원에 세웠던 금형상의 원형은 거짓 선지자가 세울 “짐승의 형상”의 모형인 것이다. (계13:14~15)   주의 절기와 제사들이 지닌 모형적 의미 통한 원형이 있다.

 

  구약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모형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들”의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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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늘향연
글쓴이 : 천향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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