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개혁교회의 예배신학

하나님아들 2012. 8. 4. 11:33

 개혁교회의 예배신학

 
개혁주의 예배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죄로 인해 무능력한 인간과의 만남의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혁주의 예배는 복음에 근거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실천하는 예배인 것이다.
 
개혁주의 예배의 신학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그간 두 가지의 다소 상반된 이미지가 있어 왔다. 하나는 성전에서 이사야를 부르시고 그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며, 다른 한 면은 멜빌(Melville)이 쓴 '백경(Moby Dick)'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로 우뚝 솟은 높은 강단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예배를 드리는 회중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보자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구원받은 자들이 드리는 예배처럼 개혁주의 예배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임재하심과 주권 하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백인 일색의 예배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개혁주의와 장로교 예배의 역사적 흐름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이에 반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연약한 인간과의 만남인 것이다.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로서 칼빈과 그 후예들의 주된 관심은 '말씀의 선포'에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해 선포되어야 하며, 이러한 강조는 예배의 중심적인 자리라는 견지에서 보건데 루터에게서 보다 더욱 강조된 점이었다. 하나님은 초월하신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다. 즉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불변하시는 분이시며 또한 그분은 지혜와 힘과 의와 거룩하심과 선함과 진실하신 인격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초기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의 개혁주의 예배가 언제나 예배의 시작 부분에서 '죄의 고백'(a general confession)이나 '참회의 시편'(penitential psalm)순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자의 현주소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과 칼빈의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하심에 대한 관심은 개혁주의 예배의 깊은 뿌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름심에 경외심을 보임과 동시에 지체함 없이 그의 범죄한 입술을 제하여 줄 것을 간구했으며,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명령하심에 자신을 헌신하게 된 것이다.
 
계시록에 나타나듯이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다분히 환상적이고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중세 가톨릭의 미사에 대항한 개혁교회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화려한 예배의 장면들을 또한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개혁교회에서는 여전히 그리스도 자신을 말씀의 중심이시며 근원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교회사가들은 당시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설교에 대한 개혁의 열정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근세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추세가 예배를 하나의 종합 예술 작품처럼 취급하려는 듯 하나 분명히 말해 예배는 '창조적인 예술 작품'이 아닌 것이다. 히스롭(D.H. Hislop)은 그의 책 "Our Heritage in Public Worship(공중 예배에서의 우리의 전통; 역자 주)"에서 비유를 들어, 개혁주의 예배의 기본 틀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것(upward)"이라기 보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틀(downward)"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위로 향하는 예배는 예배의 초점이 예배드리는 예배자나 혹은 그의 감정에게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 받으시는 분께, 또한 예배자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말씀에 두는 것이다.
 
칼빈, 부쳐, 오이코람파디우스, 베자, 파렐, 쯔빙글리 그리고 낙스와 같은 개혁가들은 매주 1회마다 성찬이 집례 되기를 갈망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사도들의 전승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 성찬은 주일 아침 예배의 정규적인 순서였기 때문이었다. 성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회중들은 성찬에 즈음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성찬을 받도록 요구되었다. 이러한 회중 각인이 성찬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한 개혁자들의 주장은 과거 종교개혁 이전의 1년에 1회 내지는 그보다 더 적게 성찬에 참여케 한 관습보다 더 주위의 급속적인 호응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의지는 무식한 관료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이들은 연 4회의 성찬집례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결국 칼빈을 비롯한 다른 개혁자들도 그들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연4회의 성찬만을 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성찬이 집례되지 않는 날에는 축성기도 부분에서 찬송과 축도로 이어짐으로 예배를 끝마쳤다.)
 
개혁교회에서는 성찬시 일상적인 떡을 사용했으며 떡을 받는 회중은 각자의 양에 맞게 떡을 떼었다. 잔 또한 떡과 동일하게 전달되었다. 많은 회중들은 주님의 떡과 잔을 받기 위해 성찬 테이블 주위에 모였으며, 그들이 받는 성찬의 의미는 주님의 희생을 회상하기보다는 우리와 맺으신 주님의 언약의 확인하는데 있었다. 또한 개혁자들은 성찬시 일반적으로 미리 정해진 축성기도를 드렸으며 그 기도는 주님께서 성례에 친히 임재하시기를 기원하는 형식이었다. 이점에 있어서 칼빈은 말씀을 통해 친히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강조했는데, 주님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제정의 말씀을 하셨다. "이것은 내 몸이니. . . 또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니. . ." 한편 쯔빙글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가 모인 회중들의 기억 속에서 기념되는 것으로 보았다.
 
개혁가들의 기도서에 대한 사용은 복잡하리 만큼 다양한 차이를 보였다. 예배의 시작부분에 있는 시작을 위한 기원의 기도(The Prayers of the invocation)와 중보의 기도는 기도서를 따랐다. 그러나 때때로 설교 후의 기도는 목회자의 자율에 따른 즉흥기도가 행해지기도 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인을 위한 존 낙스의 '공동예배서'(Book of Common Order)는 대개 칼빈의 '제네바 예식서'(Form of Prayer)를 따르고 있으나 또한 다소 성공회의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를 의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7세기에 이르러 영어 사용권의 개혁주의 국가와 대륙의 개혁교회는 서로 큰 차이를 보게 된다. 1643년 웨스터민스터 성 총회를 통해 절정에 달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혁명은 국교회 내의 성공회 퓨리탄과 심지어 몇몇 분리주의자들과의 합의를 통하여 보다더 예전 중심적인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국교회 내의 성공회 퓨리탄들은 예배예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분리주의자나 회중교인들은 적대시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스코트인들은 자신들의 예전 중심적인 입장을 얻어내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들과의 타협이 불가피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타협으로 말미암아 스코틀랜드 장로교와 후대 미국 장로교,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민 청교도 예배에서의 예전신학과 예전적 형태가 감소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같은 추세로, 그 동안 여러 개혁교회에서는 비공식적이나마 지켜지던 5가지의 성서적인 절기들, 성탄절, 성금요일, 부활절, 승천일, 오순절 등이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의 청교도 시대에는 무시되거나 금지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반대로 북미의 대륙계열의 개혁교회 후예들은 비록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온 다른 분파들이 반예전적 청교도주의를 택했다 하더라도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을 고수하고 있었다.
대림절과 사순절은 비성서적이라는 이유로 개혁자들로부터 무시당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고행과 금욕적인 색깔을 띠고 있기에 구원론이 자칫 공로주의적 구원론으로 흐를 수 있으며 또다시 중세적인 예전의 악용을 불러일으킬 만한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성자축일과 성인을 위한 기도 등은 개혁자들에 의해 금지되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교회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 역사를 빛낸 믿음의 증인들과 교사들을 본받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기 위해 그들을 기념하는 설교를 강화하곤 했던 것이다.
 
초기 개혁교회의 예배에는 말씀의 선포를 3가지로 구성했는데, 구약성경, 서신서 그리고 복음서로 나뉘었다. 또한 이러한 말씀 사이에 몇 개의 시편송이 불려졌다. 성서일과가 사용되면서 점점 성경봉독과 설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해당성구와 설교본문은 완성된 책으로 제공되었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짧은 구절보다는 성경의 한 장 전체를 읽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점점 성서일과가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설교자 자신의 자유로운 본문 해석이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비록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지만 레위기나 민수기와 같은 보다 심오하고 난해한 본문들은 도외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의 절기나 회중들의 애경사가 있을 시에는 그로 인해 연속적인 성경본문의 진행이 차단되기도 했다.
 
점점 교회의 절기와 축일들이 감소되는 대신 매주 부활의 축제로서의 주일(the Lord's Day)성수가 그 의미를 더해갔다. 이와 같이 주일성수에 대한 중요성과 그 강조는 다른 주요한 기독교 전통을 이어받아 온 개혁교회의 특징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장로교와 청교도 전통은 안식일에 쇼핑을 한다든지 세상일에 몰두한다든지 그리고 주말에 휴가를 간다는 것은 금기시 했던 것이다.
 
금세기 장로교 예배의 선두 학자인 올드(H.O. Old) 박사는 그의 역작인 "Worship That is Reformed According to Scripture(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 예배; 역자 주)"에서 성경에 기초한 개혁주의 예배에 있어서의 다섯 가지 본질적 요소를 언급했는데 첫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하며 둘째,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드려지는 예배이어야 하며 셋째, 삶속에서 성령의 열매인 성화된 모습이 있어져야 하며 넷째, 예배를 통해 사랑이 충만히 넘치는 삶이 있어져야 하며 다섯째, 회중을 교육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교회의 세례의 이해는 성경과 어거스틴의 입장인 '언약의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한다. 세례는 구원을 이루어 가는 회중의 거룩된 삶으로 이끄는 의식이 아니다. 즉 회중의 훈련과 성화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의식이라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인 새로운 언약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그 강조점을 두고 있는 예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인 교회로의 입교식인 것이며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세례 뒤에 따라오는 열매로서 기대되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는 훗날 12세에 이르러 교리문답 과정을 받아야 하며 회중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야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개혁자들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사전에 철저하고 강도 높은 교리문답 교육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언약인 세례는 언제나 공중 예배시에 집례 되었다. 개혁가들은 세례를 구약의 언약이었던 모세의 할례와 연속선상에 두었으며 세례시에 성령님께서 세례 받는 자에게 충만히 임하심을 보여주는 실제적인 표식이요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외에 기름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다른 형태의 안수는 행해지지 않았으며 순수히 성경적 전통에 따라 성경에서 말하는 물을 붓는 세례만이 허용되었다.
 
세례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만찬'(the Lord's Supper)도 구약과 신약에서 행해졌던 대로 '언약의 식탁'으로 이해했다. 주님은 식탁을 통해 그분의 자녀들에게 실제로 임재하시지만, 그렇다고 주님의 임재가 아주 단순히 떡과 잔에 제한되어 그것 속에 임하신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만찬은 단순히 죽은 자를 기념하고 기리기 위한 식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주님의 임재하심의 약속이요, 언약인 것이다. 이 식탁은 주님께서 그의 12제자들에게 직접 행하시고 그들 앞에서 제정하신 예전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주님의 성만찬 예전은 중세 로마 가톨릭의 미사와 정교회 예전의 신비적이며 미신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반면 개혁교회의 성만찬은 성경을 통해 계시되는 말씀의 임재와 그 능력을 강화한다. 이 식탁에 있어서의 감사와 찬양의 모습은 시편송을 부르면서 나타나게 되며(때로는 일반적인 찬송) 중보의 대기도를 통해 창조와 타락, 성육신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상기하는 내용을 담았다. 요컨데 개혁교회의 "주님의 만찬"을 일컬어 "거룩한 신비"(Holy mysteries)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표현인 것이다.
 
20세기에 후반에 들어와 미국 장로교 예배에서 나타나는 한가지 현상은 아마도 에큐메니칼 운동의 여파와 그 동안 무미건조한 예배의식을 탈피해 예배에서의 새로운 미적인 감각과 신비함, 그리고 드라마적인 예배의 연출을 추구하려고 하는 욕구로 인해 또다시 종교개혁 이전의 예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1989년 신학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검증을 토대로 한 활용 가능한 '예배 지침서'(Directory for Worship)를 교회의 규정서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 예배 지침서에는 즉흥적인 예배를 제외한 6가지 공식적 예배 형태가 있는데, 성만찬이 있는 주일 예배에서의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매일 기도문, 특별 예배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예배 지침서에서는 과거 초기 개혁교회에서 행했던 세례와 병자를 위한 안수시 기름을 붓는 행위와 세례식이 있는 예배시 악령을 내어쫓는 행위와 초기 개혁교회 인도자들의 전통이었던 예전적인 제스쳐와 언어들이 제거되었다.
 
이 외에도 더 큰 변화를 위해 예배시 사용하는 언어와 예배, 시편가집, 찬송가집, 심지어 성경도 합당한 목적을 위해서 적절한 변화를 가져와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배의 변화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장로교를 비롯한 개혁교회들의 예배의 변화는 인간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인간적인 도구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예배의 변화는 과거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자리로서의 초기 개혁교회의 예배의 이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소지를 낳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섬김...그 아름다운 향기로...
글쓴이 : 은혜의 강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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