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아들 2013. 3. 5. 00:11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겔36:3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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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역사에는 일정한 규율과 원칙이 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자기의 뜻대로 하실 수 있지만 절대로 아무렇게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반드시 그분이 정하신 규율과 원칙대로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규율과 원칙을 초월하신 분이요,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자기 뜻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가운데 한 가지 기묘한 일을 발견할 수 있으니, 그것은 곧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다 자기의 뜻대로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규율을 따라 행하시며 자신을 규율 아래 넣어 스스로 규율의 지배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의 원칙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은 바로 사람이 기도함으로서 하나님과 동역해야 된다는 것이다.

전에 기도 잘하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영적 역사에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는 것이요,

둘째 단계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분의 자녀들에게 계시해 주심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갈망과 소망을 알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여 다시 하나님께 들려드리는 것이다.

 

이런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의 반향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히 합쳐질 때, 우리는 자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말하게 된다.

그 결과 넷째 단계에서 하나님은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시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첫째 단계에 주의하려는 것이 아니고, 둘째 단계에 주의하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셋째 단계, 곧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서 하나님께 다시 고할 수 있는가이다.

「다시 고한다.」는 이 다섯 글자를 주의하기 바란다.

 

가치 있는 기도는 모두 다시 고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다만 우리의 계획과 소망을 구하는 것이라면 그 기도는 영적으로 가치 없는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에게서 시작하여 다시 우리의 반향으로 나오는 것만이 가치 있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기도에 지배를 받는다.

허다한 경우, 하나님은 원하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의 동의를 기다리신 후 역사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하나의 큰 원칙이요, 성경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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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36장 37절의 말씀은 너무도 기이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는 하나의 목적이 있으니 그것은 곧 그가 『이스라엘 족속의 인수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결정이다.

하나님이 일단 결정을 세우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이루시지 않고 기다리신다.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그들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해야만 내가 그들에게 이루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많아질 것을 정하셨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분을 향해 묻고 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며, 묻고 구할 때 비로소 그들에게 이루어 주신다.

당신이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 자신이 한 가지 일을 정하신 후 즉시 하시지 않고 사람이 그에게 동의할 때를 기다린 후에 비로소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자기의 뜻만으로 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자녀들의 동의를 표시한 후에 이루신다.

이것은 기이한 일이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영적 역사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뜻을 세우시고 그분의 자녀들이 찬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 역사의 대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그들이 묻고 구하여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스라엘 족속이 묻고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언젠가 이스라엘 족속이 참으로 묻고 구하는 날, 하나님은 곧 그들에게 이루실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은 보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원칙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일을 시작하시고 반드시 우리가 기도하기 전까지 수행하지 않으신다.

 

교회가 형성된 이후로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자녀들이 기도하지 않은 일은 한 가지도 역사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에게 그분의 자녀들이 있은 뒤로,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자녀들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고 무슨 일이든지 그분의 자녀들의 기도 가운데 놓으신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실까?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이 위치에 놓으시고 기쁘게 이 일을 하시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그분의 뜻을 행하시는 것이다.

또한 예로 이사야서 62장6-7절의 말씀을 들어보자.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찬송을 받게 하심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나님은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워 그들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하게 하신다.

 

왜 부르짖어야 하는가?

 

「너희가 탄식하지 않으면 나도 탄식하지 않는다.」우리가 여기에서 쉬지 않고 부르짖음으로서 하나님도 쉬지 못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응답하시고 그분의 일을 수행하실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세워 찬송을 받게 하시려는 뜻을 이미 정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예루살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그들이 기도할 때에 비로소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가 단 한번에 끝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계속 쉬지 않고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계속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실 때까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기도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의 내용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 조금도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어떤 형제는 「하나님의 뜻은 기차와 같고, 우리의 기도는 철로와 같다.」고 말했다.

 

기차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기차는 철로위로만 갈 수 있다. 기차의 능력은 매우 커서 동서남북을 다 갈 수 있으나 오직 철로가 깔린 곳만을 갈 수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는 분이 아니지만 사람의 기도의 지배를 받으신다. 가치 있는 기도는 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철로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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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이리하여 우주에는 세 가지의 의지가 있게 되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요, 다른 하나는 사탄의 의지요, 또 하나는 사람의 의지이다.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은 일 분 내에 사탄을 다 멸하시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사람과 함께 사탄을 처리하기 원하신다.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고, 사탄에게는 사탄의 의지가 있으며, 사람에게는 사람의 의지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가 그분과 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단독으로 사탄을 멸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기를 원하시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단독으로 행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이 땅에서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일을 하실 때, 먼저 그분의 뜻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넣어 주시고 우리가 그 뜻을 기도로 반향한 후에야 비로소 그 일을 행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이러한 수속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이 그분과 동역하시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은 그분과 함께 하는 의지와 함께 하는 마음을 원하신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 우리 사람이 없이 하신다면 우리는 아무 소용없는 존재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뜻을 다 우리로 준행하게 하시며, 우리의 의사가 그분의 뜻과 합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제일보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도는 하나의 역사이다.

 

기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데, 이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이며,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의 뜻에서 나온 기도는 모두 무익한 것이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듯에 화합하는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안 후 그 뜻을 다시 기도로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화합하는 모든 기도는 다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사람은 전달하고 반향 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서 시작된 기도는 모두 영적 가치가 없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歷史)를 읽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언제든지 큰 부흥은 다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가 원하시지 않는 일을 하시라고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그가 원하시는 일을 하시라고 구할 수는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그분을 조금도 변하게 할 수 없고,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하시게 할 수 없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지 말라고 구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통로가 필요하시는데, 만일 우리가 동역하지 않으면 그분의 역사는 우리로 인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그분이 원치 않는 일을 하시도록 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변케 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애걸하여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을 구하는 것은 헛수고요,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을 하시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한 가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기도로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합심할 때 그분의 역사를 이루신다.

 

성령이 오순절 날 강림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백 년 전, 요엘시대에 말씀하셨다.

그러나 성령은 많은 제자들이 기도한 후에 임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이 정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사람이 기도한 후에 이루어진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반드시 사람이 기도한 후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홀로 하실 수 있지만, 그분은 사람이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하기를 좋아 하신다.

많은 일들을 하나님은 정녕 하실 수 있지만, 그분은 당신의 동의를 기다리신다.

 

많은 일들을 하나님은 미리 원하고 계셨지만 그분은 당신이 원하기를 바라신다.

 많은 일들을 하나님은 벌써부터 하시려 하지만 당신이 그분을 향하여 동의를 표시하지 않으므로 그분은 계속 기다리시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하시도록 할 수는 없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하시게 할 수는 있다.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너무도 많은 영적 축복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전적으로 기도의 봉사를 한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이 그분과 동역하여 그분이 그분의 일을 수행하실 수 있기를 기다리신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왜 하나님은 죄인들을 더 많이 구원하시지 않을까? 왜 하나님은 성도들 개개인을 승리하게 하시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우리가 깊이 믿는 것은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시지만 사람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하시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먼저 그분과 동역하는 자를 얻기 원하신다.

 언제든지 사람이 하나님과 동역할 그 때, 하나님은 곧 역사하신다.

 

모든 영적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의 표현을 기다리신다.

일의 성패의 여부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과의 동역을 표시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축복하시고 싶어 하신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구하느냐 구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고 싶으면 하시지 왜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는 것을 자꾸 많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의지도 강제로 꺾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기도를 거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시면 그가 하늘에서 이루신 것같이 땅에서 이루시지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시면 임하게 하시지 왜 제자들에게 『나라 임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이 만민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하시면 스스로 그렇게 이루시지 왜 제자들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이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역사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사람과 동역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철로를 깔기 원하신다. 철로가 많이 깔리면 깔릴수록 그분의 역사도 많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로망처럼 깔려져야 하며 많이 깔릴수록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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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위해 철로를 깔 수 있을까?

에베소서 6장 18절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하고』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마땅히 모든 면에서의 기도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전적인 기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여러 면의 기도와 간구가 적다.

너무 적고, 너무 빠트리는 것이 많고, 너무 세밀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사탄이 들어올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충분히 세밀하고 치밀하여 각 방면의 기도가 있을 때 사탄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형제가 나가서 전도를 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뜻이 그의 몸을 통해서 능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함으로서 그분을 위해 철로를 깔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그를 위해 단지 몇 마디로「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고 보호하시고 공급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엉성한 망이다.

당신은 반드시 치밀한 기도의 망을 처서 사탄이 조금도 틈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기도는 어떤 것인가?

당신은 그가 나갈 때 그의 몸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짐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차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차 안에서의 시간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차 안에서 자고 먹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만나게 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차에 앉은 후의 모든 일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어느 곳에 간 후 잘 곳을 위해 기도하고, 그와 동거하게 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쓸 모든 물건을 위해 기도하고,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관계된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참으로 그를 위해 이렇게 치밀한 기도를 할 때, 사탄은 그를 공격해 들어올 틈을 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사역이야말로 실제적인 사역이다.

게으른 사람, 미련한 사람, 허술한 사람은 기도의 사역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 참으로 간절히 여러 방면으로 기도했을 때, 그대로 그 일이 성공되는 것을 보아왔다.

여기에서 배워야할 공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탄에게는 우리가 일일이 다 기도할 수 없는 많은 간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여!! 사탄으로부터 온 모든 것을 다 주님의 보혈로 답하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보혈이 곧 사탄의 모든 역사에 대한 해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도는 사탄을 대적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이런 기도가 있을 때 사탄은 영원히 우리를 공격해 들어올 수 없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세 방면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는 반드시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가를 알아야 하고,

둘째로 우리는 반드시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셋째로 우리는 반드시 누구를 반대하여 기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허다한 경우, 우리는 단지 두 방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과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밖에 모른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면을 빠뜨린 것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누구를 향해 기도하는가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누구를 반대하여 기도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가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해치는 원수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고, 사람과 역사를 위한 것이며, 마귀를 반대하는 기도이다.

우리에게는 이 세 방면의 기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역사하신다.

참으로 주님을 위해 사역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 기도의 망을 처서 하나님이 능히 당신을 통해 역사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일하시기 전에 사람이 그분께 기도하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의 기도하는 생활을 바라시며, 하나님의 뜻은 지금 사람의 기도를 기다리신다.

당신에게 기도하고 싶은 느낌이 생길 때, 즉 당신이 기도하려고 미리 정한 시간이 아닐지라도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한 가지 일을 당신이 기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이 기도에 대한 눌림이 있을 때 하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화합한 기도이다.

이것은 성령이 당신을 재촉하여 하나님의 뜻을 당신의 기도로 나타내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이 당신에게 기도하도록 재촉할 때 당신은 마땅히 기도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기도하지 않으면 당신 속의 느낌은 답답해지고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낌이 있게 된다.

 

당신이 여전히 기도하지 않으면 그 느낌은 더욱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당신이 끝까지 기도하지 않으면 결국 당신은 기도의 영과 기도의 느낌이 점점 둔해져서 그 후에는 이러한 느낌을 가질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의 뜻에 화합한 기도를 할 수 없는 데에 이르게 된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이러한 느낌을 우리 속에 넣으실 때, 먼저 성령이 우리를 감동시켜 우리로 어떤 일에 대해 특별히 기도해야 할 눌림을 갖게 한다.

당신에게 이러한 느낌이 있을 때, 당신은 즉시 기도해야 한다.

 

당신에게 이러한 성령의 느낌이 있을 때 당신의 영 안에서 즉시 그 일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한다.

당신이 기도함에 따라 그것은 점점 풀어져 마치 큰 돌덩이를 빼내는 것과 같이 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기도하지 않으면 당신에게는 늘 어떤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있게 된다.

만일 당신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합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에 충성되어 이런 눌림을 즉시 기도로 해방시킬 때 기도는 무거운 부담이 아닌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소멸시키고 성령이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재촉할 때 그 느낌을 소멸시킨다.

그 후에는 이런 느낌이 그에게 임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그는 주님 앞에서 쓸모없는 그릇이 되어 주님은 이제 그를 통해 아무 것도 이루실 수 없게 되고, 그는 다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고할 수 없게 된다.

아.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져 이렇게 기도의 느낌이 없어졌다면 당신은 이미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과의 교통을 잃은 것이고,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통해서 그분의 역사를 하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언제든지 기도에 대한 눌림이 있을 때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 당신은 제가 무엇을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일을 하려 하십니까? 저는 무슨 기도를 해야겠습니까?」 당신이 그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즉시 당신에게 두 번째 기도를 맡기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첫 번째 눌림을 해방시키지 않는다면 두 번째 눌림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참으로 우리가 기도에 충성된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일단 느낌이 오면 즉시 그것을 기도로 해방시켜야 한다.

 

곧 기도로서 그것을 토해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 짐이 무거워서 기도로는 벗어놓을 수 없을 때, 그 때는 바로 금식해야 할 때이다.

 

기도로서 그 짐을 풀어놓을 수 없을 때는 금식해야 한다.

 금식은 그 짐을 속히 풀 수 있게 한다. 금식은 당신을 도와 그 무거운 짐을 풀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계속 기도 사역을 할 때 당신은 곧 하나님의 뜻이 흘러갈 수 있는 통로가 되며, 하나님은 일이 있을 때마다 당신을 통해서 기도하게 하신다.

아!!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의 뜻은 계속 흘러갈 출구를 찾고 있다. 하나님은 계속 사람들을 붙들어 그분의 뜻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만들려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이러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은 이들의 기도로 인하여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옮겨옴)

출처 : 아촌의 이야기
글쓴이 : 아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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