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낮 예배(0812014)
성령으로 인침 받은 사람 엡1:13~14 황성건 목사
믿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이들을 믿는 것이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믿지만, 마음속에 아무런 열망도 없고, 분노도 없고, 의심도 없고, 절망의 요소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믿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느껴보거나 그분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술의 고백으로 그친 믿음,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믿음의 자리에서 벗어나 오늘 우리 안의 주님이 역사하시기를 간구해 보라. 단 한 번도 타오르지 못한 믿음의 열정과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리고 십자가 죄 사함과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기를 소원하라. ‘우리는, 나는 주님 앞에 구원받은 자입니까?’라는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엎드려라. 그리하여 성령의 인침을 경험해보라.
고대사회에서 인(印)침은 어떤 서류의 진실성, 또는 어떤 사람의 진실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소유권을 표시할 때도 사용되었고, 아무런 간섭 또는 해(害)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성령은 그리도인의 인(印)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의 진수에 대한 결정적인 보증이 되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주는 진정한 증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 같은 체험에 의해 자신이 아들의 신분으로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내적 확신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소유주와 보호자가 되신다. 이런 관계 변화를 확증하고 보증하는 것이 ‘인침’이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증거로 인을 치셨다. 성도에게 인은 바로 성령이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성령의 사람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사람이며, 동시에 성령을 소유한 사람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평생 은혜가운데 인도하시고 복을 주신다. 성령을 통해 주시는 구원과 인침, 보증이 어떤 축복인지 함께 나누어 보자.
첫째,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에게도 임하였다.(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신다. 이 인치심은 소유권의 주장함이며, 하나님 안에서 주어질 분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분깃은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2절 말씀을 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라는 표현에는 ‘너희도’라는 무리도 포함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 성도들도 하나님의 분깃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본서는 특히 이방인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함께 나누어 가진 것이 유대인 성도들 기업 못지않게 완전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다.
이방인들도 복음을 들었고, 그리하여 유대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구원이 임했다. 13절에서 이는 그리도 안에서 ‘너희도’(included in christ) 라는 말은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그 안에 포함된 이방인 신자들을 의미한다. 신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너희의 구원의 복음이라고 불리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복음은 성도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진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들음으로써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그 지식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이 사람들은 또한 믿었다. 믿을 때에 그들은 그 안에서 인치심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가 그 구원의 영역 안에 있는 이방인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고넬료의 방문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와 그의 집안사람들에게 구원을 길을 말하기에 앞서 특별한 계시가 필요했던 베드로가 아니더라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구브로와 구레네의 이름 없는 헬라인들이 안디옥에 와서 유대인은 물론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동로마 제국 전역에는 유대인들보다 더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믿었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조건이 예루살렘 모교회의 심각한 관심사가 되었다. 누가가 기록한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현명하게 고백한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행15:8~9)
둘째,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인치셨다.(13절) “...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방인들은 복음을 믿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약속의 성령’은 성령께서 구약에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과 예수님에 의해 그 제자들에게 약속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령을 통하여 성취하신다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이후에 성령을 통해서 모든 곳에 영적으로 임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후 하나님께서 그 제자들 속에 거하시도록 하기 위해 성령께서 오신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 위에 임하셨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 성령을 받음은 구원을 확증해 주는 ‘인’(印)이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삶속에 이루신 변화는 그 삶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며 그 삶을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인할 수 없는 표시이다.
이 성령의 인치심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물세례라는 특유한 형태를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몇몇 성령의 은사(방언과 같은)로 나타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령의 인치심은 그 백성의 삶속에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대한 소유로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해석이다.
성령의 인치심은 단번에 이루어진 일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세계에서뿐 아니라 지금도 풍성하심과 선하심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신시켜 준다. 이 약속의 성령은 그가 앞으로 올 영광의 약속도 아울러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셋째, 성령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된다.(14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Who)는 성령을 가리킨다. ‘보증’이라는 말은 또한 ‘담보’, ‘저당’, 또는 ‘계약금’으로 번역된다. 고대에 이 말은 약혼반지나 계약금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보증금은 물건을 구매할 때에 지불하는 계약금과 같은 것으로 구매자가 그 거래를 완결하고 대금을 완전히 지불할 것을 약속하는 의미에서 일부 금액을 미리 지불하는 것이었다. 보증금은 구속력이 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삶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보증’은 마침내 그들이 갖게 될 모든 보배 가운데 먼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보증은 계약의 양 당사자를 묶어준다. 우리는 지금 성령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영원히 살 그 때에는 더 온전하게 그 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3)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의 인침을 통해서 영원히 그 분의 소유로 서명되어지고, 인쳐지고, 구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성도의 기업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그 맹세를 어기지 않으실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벧전1:3~4)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나 성도들은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실 때까지는 그 기업을 온전히 받지 못한다. ‘구속’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것을 가리킨다. ‘구속’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죄의 실재로부터 성도들을 완전하게 해방시킬 시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보증’이라는 단어는 바울서신에만 사용되었는데 그것도 성령에 관해서만 사용되었다. 바울은 죽을 육체의 장막을 대신할 ‘하늘의 처소’를 고대하고 있었음을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고후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렇다면 성령의 선물은 앞으로 있을 영생에 대한 보증이 된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성령론에 바울이 바친 지대한 공헌이다. 그가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말은 ‘첫 열매’이다. 성령은 대망하는 양자가 될 우리의 몸의 구속의 첫 열매이다. 여기서 뜻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의 백성 또한 부활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받는 성령은 ‘우리 기업에 대한 보증’으로 곧 복음에 약속된 앞으로 다가올 생명의 영광이 근거 있는 희망, 다시 말해서 환상이 아니라 실재임을 보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담보물인 것이다. 성도는 성령을 통해서 이 영원한 기업의 분깃을 지금 당장에 누릴 수 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 구속이 이미 그들의 소유가 되었지만 그 구속의 한 가지 국면은 아직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있다. 성도의 부활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소유를 구속하실 것이며, 그렇게 하시겠다는 그의 공약에 대한 증거로서 그 얻으신 자기 백성을 성령으로 인치셨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의 책에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그들을 무조건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 집까지 저당 잡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웃 사람들이 좋은 것을 살 때마다 그녀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사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텔레비전을 구입하고 지붕 위에 안테나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녀는 이웃집 사람에게 지붕 위에 있는, 저 나무 같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텔레비전을 사고 싶은 욕구가 충동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빚이 산더미 같으니 그 빚을 갚기 전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소." 하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주가 되자 자기 집 또 다른 이웃이 안테나를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이제 주위에 텔레비전이 없는 집은 그녀의 집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대리점으로 가서 안테나만 사서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텔레비전 수상기는 사지 못했습니다. 수상기는 없었지만 안테나만 꽂아도 그녀의 마음은 좀 가라앉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텔레비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거룩한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성령은 성도의 영광과 새 생명의 기업에 대한 보증이기도 하다. 성령이 우리가 누릴 기업의 보증이 되어 주셨기에 성도의 소망은 무한하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분명히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