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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감(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아들 2013. 1. 31. 16:59

공감(마음을 같이하여)

사무엘상 14:1-15

 

시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아이를 둔 엄마가 아이에게 ‘네가 60점만 받아도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60점을 받은 일이 없을 정도로 성적이 나빴던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시험 점수를 80점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얼른 엄마에게 보이고 싶었습니다. 학교를 마치자 집으로 곧장 달려와 엄마에게 시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험지를 본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가 스스로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이란 듣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생명의 말이 있는가 하면 기를 죽이고 용기를 꺾는 사망의 말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입술의 말(입에 발린 말)이 있고, 훈계와 교훈을 하는 머리의 말(지식의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가슴의 말(마음의 말)이 있고 더 나아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영혼의 말(영의 말)이 있습니다.

 

입술의 말이나 머리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덕이 되지 않는 사망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의 말이나 혼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생명의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사망의 말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0점을 받아온 아이의 시험지를 보고 ‘이제 겨우 80점을 받았구나. 더 열심히 해라’는 정도로 말한다면 입술의 말로 아이에게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네 나쁜 머리가 아니네. 그래 열심히 하면 100점도 받을 수 있겠구나. 놀지 말고 공부해라’는 말은 머리의 말이 될 것입니다. 100점을 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부담만 가지게 된 것입니다.

 

80점을 자랑하는 아이를 보고 ‘네 마음이 좋지? 엄마 마음도 좋다’고 하는 말을 가슴의 말입니다. 더 나아가 시험지를 받아 들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며 기도를 하는 것은 혼의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의 말이나 혼의 말은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해라’고 하지 않아도 더 열심히 노력하게 만듭니다. 만약 ‘문제가 어렵지 않아서 80점을 받았구나’, ‘남의 것 보고 했제’라는 말을 하는 부모는 더 이상 그 아이에게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의 기를 꺾어버렸기 때문에 그 아이는 더 좋아질 수 없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마음)의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아 기뻐하는 아이의 마음을 엄마가 공감해 줄 때 아이는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아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담학적인 용어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은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내 마음을 누가 알아’,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고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어느 사람이 자신을 이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좋아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신의 응어리 진 것을 다 말하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게 됩니다. 이것을 상담이라고 합니다.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에게 병기든 소년이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리이다”(7)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 면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상담학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자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이 되는 해 블레셋 사람들이 일어나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 사울의 군사는 삼천명 정도지만 블레셋의 군사는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다 사울의 군사에게는 창과 칼을 잡은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땅에 철공이 없어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야만 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이 벌어졌지만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칼이나 창이 있을 뿐 이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운다는 것은 깸이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불러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를 원했지만 사무엘은 오지 않으니까 왕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지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무엘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크게 책망을 하고,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은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도우심이 떠나버렸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는 두려워 흩어지고 숨고 겨우 육백 명 가량이 사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에봇을 입은 아히야도, 제사장 비느하스도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마주하고 있는 양쪽의 산은 험한 바위가 있어 손발로 기어 올라가야 하는(13) 곳 이였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 요나단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때 요나단의 마음은 심히 무겁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제 눈을 돌려 자신의 무기 든 어린 소년에게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1)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죽으러 가자는 말과 같습니다. 모래와 같은 무리와 철통같은 무기를 들고 기세가 등등한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가자고 하는 것은 죽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가능한 현실 앞에 무기 든 소년은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소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7)라고 말했습니다. 무기 든 어린 소년의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리이다’는 이 말 한 마디가 요나단에게는 큰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에 기름을 부어 불씨를 살리는 말이였습니다. 소년의 이 말을 듣고 요나단은 일어나 블레셋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요나단은 무기든 한 소년이 마음을 같이 해 주기 때문에 블레셋의 많은 군사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기로 무장한 군사들이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손발로 기어올라야 하는 험한 비탈도 어렵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나단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마음을 같이 해 주는 어린 소년 한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공감은 하나님을 일하게 하십니다. 요나단은 무기를 든 소년에게 “우리가 이 할레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6)는 말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마음을 같이 하는 자들을 위하여 일하신다’는 이 말씀은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어린 한 소년이 요나단의 마음과 같이 할 때 하나님은 도와주셨습니다. 요나단은 마음을 같이 하는 한 소년과 단 둘이 블레셋 진영에 들어갔을 때 땅이 큰 떨림으로 진동하였고 블레셋 모든 백성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15). 블레셋 사람들은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고 요나단과 소년은 따라가며 죽였습니다(13). 마음을 같이 한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블레셋 사람들을 다 죽이고 대 승리를 하였습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공감은 안되는 것도 되게 합니다. 죽어가는 것도 살아나게 합니다. 실패도 성공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공감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도와줍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빌2:2). 특별히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주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품으라고 하였습니다(빌4:2).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교회의 여성도로서 바울의 권면을 받아야 할 만큼 서로 간에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여인이 마음을 같이하지 않으므로 교회 전체가 시끄럽게 된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유오디아의 마음을 같이하고, 순두게의 마음을 같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성도에게 마음을 같이 해 주어야 합니다.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며,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위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마음의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곳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고통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하여 교회를 찾아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해하는 사람이 찾아 왔을 때 같은 마음으로 공감해 줄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음을 같이 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롬12:16). 교회를 찾아 온 사람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주지 못하기 때문에 실망하고 떠나지는 않습니까?

 

시험 점수를 80점 받아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은 아이와 같이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닌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마음을 같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는 것이 같이 하는 것입니다.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울 때 어떻게 깨워야 속히 일어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얼만데 여태 자느냐?’, ‘학교 지각하겠다 빨리 일어나야지’, ‘다른 집 아이는 벌써 일어났는데 너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느냐’ 이런 말은 아이에게 조금도 덕이 되지 않는 입술의 말, 머리의 말입니다. ‘더 자고 싶제. 조금만 더 자라’고 하며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나오면 곧 바로 아이는 일어나게 됩니다.

 

여리고에 삭개오를 예수님께서 만나주시고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기까지 하신 것은 삭개오와의 공감입니다. 여리고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한 사람도 삭개오와 같이 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의 고통을 아시고 공감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삭개오와 공감해 주었을 때 삭개오는 마음이 건강해졌습니다. 자리곱쟁이가 재산의 절반이라도 팔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 진 것입니다.

 

딸들이 엄마를 좋아하는 것은 시집살이의 고통을 공감해 주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마음을 공감해 주는 시어머니가 많지 않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마음을 공감해 준다면 시어머니로부터 사랑 받는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공감 해 준다면 며느리에게 사랑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이 친구다운 친구입니다. 마음의 고통을 들어주는 친구가 참다운 친구입니다. 언제 찾아가도,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 주는 친구가 친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다운 친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더 받게 되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끔 시험에 든 성도를 보면 자신의 마음을 같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마음을 아프게 해 주더라고 합니다. 아픈 곳을 더 아프게 만드는 말을 듣고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는 일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입에 발린 말을 하거나, 아니면 훈계와 교훈을 하는 지식의 말을 하므로 해서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아무 덕도 되지 않는 입에 발린 소리를 많이 합니다. 타이르고 훈계하는 머리의 말을 많이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는 공감의 말은 들어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 앞에 끌려가서 재판을 받으시다가 부인하는 베드로를 돌이켜 보셨습니다(눅22:61). 이때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베드로를 향하여 혼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3년 이상을 가르쳤던 말씀보더 더 큰 변화를 일으키는 혼의 말씀이였습니다. 혼의 말씀은 베드로를 회개하게 했습니다. 베드로를 죽도록 충성하는 사도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참 친구가 되십니다. 좋은 상담자가 되십니다. 내 마음 아파할 때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마음을 같이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실망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같이 하여 새롭게 일어서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므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낙담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실패한 사람을 일으켜주고,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고, 기뻐하는 자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주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허창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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