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복음
롬 3:21~31
맨 처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 마음에 들게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걸작으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서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 “저 사람 보니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느끼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너무 큰 행복에 빠져 살다가 창조주 하나님마저 잊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혹 이런 예를 들어 설명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먹을 것 없던 시절에는 누가 음식 타박했습니까? 아무 것이나 감사함으로 먹었지요.
그런데 끼니 걱정은 면하고 살게 되면서, 이 맛은 어떻고 저 맛은 어떻고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감사가 사라집니다. 자녀들에게도 엄하게 하면 말을 좀 듣는 것 같다가도 좀 잘 해준다 싶으면 아예 머리위에 섭니다. 어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좀 잘 해주면 어느 순간에 도를 넘어 무례하게 나옵니다. 이것이 아담 후손의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악 가운데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도무지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나섰습니다. 선지자를 보내고, 하나님의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어 돌아오라고 외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죄악 가운데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누구도 이런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1.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 앞에서 누가 선하고 착한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인간은 죄가 지배하고 있고 사망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빚 갚으려고 자식 둔 사람이 남의 자식을 유괴하여 산 채로 물에 던져 죽이고도 돈을 요구하는 금수 같은 사람만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죄 짓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어쩌면 용기가 없어 행동에는 옮기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 이렇듯 죄의 종노릇하는 인간에게 내려질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습니다. 율법 아래 살아가는 인간에게 단 한 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로마서 1:18절 이하에서 지난 시간까지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좋은 아침에도 죄인이라고 지적 받는 일이 무척 마음 상하십니까? 자존심 건드리는 말입니까? 그러나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인간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떻게 회복되어야 합니까?
(21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이제는”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그러나 이제는”입니다.
박윤선 박사는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여기서 ‘이제는’을, 오랜 가뭄 끝에 단비, 어둠 끝에 광명, 죽음 뒤에 부활한 ‘이제’라고 주석했습니다. 엄청난 감격과 기쁨으로 복음의 시대가 열린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진리입니다. 진리는 간단합니다.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이제 할 일은 우리가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생명이 없던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받는 우리로서는 거저 주시는 선물이지만,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의의 속성으로는 도저히 죄인인 우리를 용납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앞에서 인간은 그 죄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가 나타났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셨습니다.
화목제물이란 문자적으로 “달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제물이 되셔서 인간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 주었다는 뜻입니다. 대속의 죽음으로 인간의 불의와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2. 이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26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자존심 강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의지하고 기대해 본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찌 예수를 믿는단 말이오? 내 자존심이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약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야말로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로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죄인이며, 그 죄로 인하여 인간은 심판과 죽임을 당할 존재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자존심이나 체면 혹은 체통을 앞세우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인간을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따라오는 것은 냉혹한 죽음의 현실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은 약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다는 반증이기도합니다. 강한 사람은 어떤 말이나 거절에도 상처받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은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잘 받습니다. 진짜 보석을 가진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짜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가짜가 탄로날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성형한 미인은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쉽게 받지만, 생긴 그대로 사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웬만한 일에는 상처를 받거나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이미 돌덩어리 같던 자존심이 십자가로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래 자신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상할 자존심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많은 고난과 연단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껍데기 그리스도인은 금방 들통이 납니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심리적 변화도 심하고, 상처도 잘 받지만, 상처도 또한 잘 줍니다. 상처 받았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야 말로 남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묵은 자존심을 꺼내어 은혜의 강물에, 주님의 보혈에 적셔서 온전히 씻어버리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려 넘어뜨립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존심을 내려놓으십시다. 그래야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며, 나를 통해 드러나실 것입니다. 마치 옥합이 깨어져야 향기가 진동하듯이 말입니다.
3. 전적으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멸망 받아 마땅한 인간에게 은혜로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죄악과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시는 복음입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란 말은 본회퍼의 말대로 “값 싼 은혜”가 아니라 그 값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값 비싼 은혜”입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산 것이기에 인간의 산술로 계산될 수 없는 값 비싼 은혜입니다.
믿음 외에 이 은혜를 위해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큰 은혜여서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교계의 큰 인물 성철 스님은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산사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후로 부모가 찾아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주지 않았고,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 놓고 십년 동안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고, 십육 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팔년간은 눕지 않고 앉아서 잤다고 합니다. 대단한 고행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에 남긴 열반송의 내용을 요약하면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속였으니 지금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참으로 진실한 고백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님들도 전도해야 합니다.
언젠가 스님의 아들이 목사가 되어 그 부모를 다 구원하신 분이 간증을 들었습니다. 무속인들을 선교대상으로 삼고 전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점쟁이들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염려하고 떠났지만 다녀오신 분들의 한결 같은 고백은 생각보다 쉽다는 것입니다.
어느 점쟁이도 자식이나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서 언젠가는 교회에 나갈 것이며,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점 보러 오는 사람에게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 당신은 교회에 가야한다”며 많은 사람을 전도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복음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지 전해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입니다.
어느 전도자가 하는 간증 가운데 그분들이 받은 충격 가운데 하나는 “oo교회에서 나왔습니다.” 하는 말에 “나도 옛날에 oo교회에 다녔어요.” 하는 무속인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집사까지 됐었답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이 “저 사람들이 제대로 된 복음과 신앙교육을 받았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주신 은혜와 사랑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그 확신으로 이제 전하십니다. 스님에게도, 임종 직전에 있는 자에게도 복음은 전해져야 합니다.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그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임종을 앞에 둔 사람에게 그동안의 업적을 자랑하거나 치하한다고 편안하게 눈을 감겠습니까?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천국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는 사람은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돈 많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겉보기에 떵떵거리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공허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복음은 필요합니다.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복음은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든지 전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주를 섬기고 선을 행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는 마십시오.
(27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구원을 너무 싱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공로의식에서 그러합니다. 구원에 있어서도 자기가 한 몫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엄청난 교만입니다. 기도생활도 힘들도 어렵고 아쉬우면 누구 시키지 않아도 새벽기도회 나와서 기도하며 매달리다가도, 조금 나아지고 해결되는 듯 하면 언제 내가 아쉽고 궁했는냐 하는 듯한 모습들을 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은혜의 복음, 이것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인간은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 오직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믿음은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에게만 자신을 내맡김으로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과 삶은 별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율법입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죄인인가를 발견합니다. 다른 하나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나같은 죄인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제 죄인이 복음으로 변화를 받아 의를 사모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죄를 지어도 양심에 아무런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죄에 대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성령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성령께서 죄악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에 제동을 거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처음 형상을 회복하는 길,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의 옷을 입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 곧 말씀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죄를 이기에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 은혜의 복음만이 세상에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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