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능력을 보느냐? 능력을 체험하느냐? (1월31일 설교)

하나님아들 2013. 1. 29. 14:32

제목 : 능력을 보느냐? 능력을 체험하느냐? 부제 = 엘리야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 < Where is the LORD God of Elijah? > 성경 : 영왕기하 2장 12절 - 15절 (2010. 1. 31 주일 오전 예배) 설교 : 전 원 준 목사 (☎ 051-523-8457. HP 011-847-8457 ) (607-112) 부산시 동래구 명장2동 523-27 (산상성서침례교회) <찬송=509거친세상에서,519십자가를질수있나,나의안에거하라> (왕하 2:12-25) 『[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저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의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저를 영접하여 그 앞에서 땅에 엎드리고 ,,,』 ////////////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 햇살 뜨거운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뭇잎이 강 중간쯤 이르렀을 때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 단호하게 외쳤다. “너무 더워, 난 물속으로 뛰어들 거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 “두 마리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틀렸다. 나뭇잎 위에는 여전히 개구리 세 마리가 남아 있다. 어째서 그럴까? 뛰어 들겠다는 결심과 정말 결단하며 뛰어드는 실천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녀석이 정말 물속으로 뛰어들지, 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다시 앉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오늘 아침 본문 말씀에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의 갑절을 구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들림을 받고 난 후, 엘리사의 사람을 어떻게 되었습니까?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 엘리야의 하나님은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내리 칠 때,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왕하 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이는 엘리야가 하던 방법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왕하 2: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 결심과 실천의 차이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결심하고 난 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관계나 비즈니스의 기본 원리는 너무도 단순하지만 실천에 있다.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상엔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가 분명한데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깨닫고 배운 지식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99%나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은 행동으로 실천했을 때에만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이다. 실천은 지금의 나를 내가 원하는 그 곳으로 건너게 해주는 교량이다. 믿음에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말씀을 통해 주신 약속을 붙잡고 믿음의 발자국을 내디딜 때에야 비로소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는 사건은 모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막 일곱 바퀴를 다 돌고 났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었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기억하자. ## 베드로가 배 위에서는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기적을 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배에서 내려 물속에 뛰어 들어야 기적을 체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물위로 걸어오너라, 하실 때에, 베드로는 물속으로 덜어간 것입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 물위로 걷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도 늘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뛰어들겠노라 큰소리만 치는 개구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다이어트 계획을 빈틈없이 세웠지만 체중계의 눈금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지 않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운동은커녕 아침도 못 먹고 허겁지겁 출근하고 있지 않은가. 날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했건만 혹여 주일 아침조차 허급지급 교회로 향하는 일상은 아닌가. 이래서야 어떻게 갑절의 능력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끊임없이 결심만 하는 삶이 결심조차 하지 않는 삶보다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한다. 고작 30㎝도 안 되는 이 거리를 평생 오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심과 각오만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이고 주신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미래의 놀아눈 주님의 축복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2, 엘리야의 하나님은 자기 고집과 아집이 말씀보다 앞설 때, 능력을 중지하십니다. (앞의 능력과 대조를 이룹니다) 50명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엎드렸습니다. 소위 말하면 엘리사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사가 요단강물을 가르고 걸어오는 모습을 본 후로, 엘리야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하였다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엘리야의 시신을 찾도록 허락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엘리야의 제자들이였습니다. 그래서 그 인정에 끌리어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끈질기게 요구하였습니다. 민망한 엘리사는 해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찾지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교훈을 배웁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행동을 순수하게 따랐습니다. 그러나 50명 의 제자들은 엘리사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린 것입니다. 그러니 능력이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주님이 하라시면 하고, 하지 말라시면 하지 않는, 그런 믿음되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싶어 안달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그런 헛된 인생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롬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3, 엘리야의 하나님은 열매맺는 일에 능력을 주십니다. (왕하 2:20-21) 『[20]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21]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새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의 근원으로 나아가 뿌렸더니 좋은 물이 된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게하는 물이 된 것입니다. 새 항아리 - 구원받은 성도를. 소 금 - 성령의 역사, 의미합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성도의 맛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 라틴어로 아모르 하면 사랑 이다. 아를 뺀 모르 는 죽음 이다. 서양 사람들은 사랑과 죽음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는가보다 서양의 사랑의 표현이 동적이라면, 동양의 사랑은 정적이다. (마음)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하나님처럼, 사랑하지 못하면 남을 죽이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모르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르 (죽음) 의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갑절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엘리사 처럼 엘리야의 하나님께 갑절의 능력을 주옵소서 기도합니다.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열매없는 무화과가 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4, 엘리야의 하나님은 비난 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십니다. (왕하 2: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조금전 기사에는 생명을 맺게하시고 열매를 맺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습니다. 즉시고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엘리사를 조롱하는 철없는 아이들,,, 이는 철없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성숙하지 못한 성도입니다. 그들은 남을 비난하고 성도들을 비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난하는 자들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철없는 신앙입니다. ////// 다윗도 실패를 한 사람이다. 법궤 운반하다가 웃사가 죽었다. 다윗의 정치에 치명적인 실패였다. 그리고 밧세바 여인을 취한 것이다. 그 댓가로 소중한 아들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윗에 법궤를 운반할 때 기뻐 춤을 추었다. 이것을 보고 조롱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미갈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다윗의 아내, 많은 사람들이 법궤를 운반하는데 온 힘을 모으고 있었다. 한번 실패를 맛 보았기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 묵묵히 바라만 보던 여인, 그의 입에서 조롱과 비난의 소리를 토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 미갈은 평생 자식을 낳치 못하였다. 모든 일에는 두가지 반응이 있다. 내가 그 일에 헌신하든지, 비난하던지, 주님의 일에 불평하고, 비난하는 자는 하나님의 반드시 벌을 받습니다. 나는 어떤 유형의 신앙인가? 다윗처럼 적극적이 성향인가? 미갈처럼 비판적인 성향인가? 이것이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삼 1: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결론 = 엘리야의 하나님은 요단강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신앙속에 갑절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소금처럼 변화되고 헌신하는 신앙속에 갑절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2010년 올 한해도 엘리야의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역하사하시는 놀라운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찬송 = 전능하신 나의주 하나님


     

    출처 : 산상성서침례교회
    글쓴이 : 빌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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