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아버지상(像)
"(살전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살전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살전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살전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1차 사회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인간 사회의 중심이자 기본 단위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신앙의 성패가 전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며, 따라서 한 가정의 신앙 성공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1889년,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한 아이는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촌 남매였기 때문에 불법 부부였습니다.아버지는 몹시 성미가 급했고, 어머니는 주부로서의 일이나 엄마로서의 일에는 흥미가 없고 바깥 사교생활에만 흥미를 느껴 나다니기만 했습니다.그러다가 아버지는 죽고,어머니는 이 아이를 알콜 중독자인 숙모에게 맡기고 달아났습니다.16세가 된 소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했습니다.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연명하다가 결국 독일 군대에 들어갔습니다.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 그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극렬분자가 되었습니다.반란음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되어, 다시는 정치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감형 출옥의 혜택을 받았으나 더욱 맹렬히 정치 활동을 했고, 결국 1933년 독일 국민의 절대 영도자인 총통이 되었습니다.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로 그로 인해 독일과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렸고,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 많은 인류가 이 아이가 내뿜은 독기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같은 1889년에 다른 한 아이가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흡족히 받고 자라났습니다. 부모는 이 아이를 데리고 캔자스 농촌으로 이사했는데, 그 이유는 농촌 생활이 아이의 신앙 교육에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가훈을 전해 주었고, 가족 모두가 교회의 가장 적극적인 봉사자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 소년은 어른으로 성장해서도 어머니의 두 팔에 안겨 간곡하게 기도하던 매일 저녁의 일과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도 군대에 흥미를 느끼고 웨스트 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 졸업하였습니다. 1944년 6월 6일, 이들 동갑내기는 전투에서 대면하였습니다. 11개월에 걸쳐 히틀러는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싸웠습니다. 히틀러는 1945년 4월 30일, 지하 방공대피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소식을 접한 전 세계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한편 아이젠하워는 1969년 80세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애석해했습니다. 이 두 동갑내기의 이야기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교육은 돌멩이 국(stone soup)과 같다."는 고대 희랍인들의 교훈이 있습니다.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인색한 4형제가 살았습니다. 어느 현인(賢人)이 이 형제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손님으로 가장하고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손님을 대접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현자는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을 끓일 수 있는 재료를 자기가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아주 예쁜 차돌 몇 개를 주머니 속에서 꺼냈습니다. 이들은 호기심으로 손님에게 냄비 하나를 빌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현자는 냄비에 물을 넣고 차돌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끓을 무렵 현자는 여기에 된장 한 숟가락이 들어가면 더 맛있는 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맏형이 집에 가서 된장을 가지고 왔습니다.현자는 조금 후에 여기에 배추 한 포기만 들어가면 거의 완전한 국이 될거라고 말했습니다. 국이 먹고 싶은 둘째 형이 얼른 배추를 가지고 왔습니다. 현자는 셋째를 바라보며 두부 한 모만 여기에 넣으면 이제는 완전한 국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이 진귀한 국을 먹고 싶은 셋째가 두부를 제공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자는 넷째를 보면서 이 국에 고기 한 점만 들어가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넷째가 고기를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희랍 우화를 한국 식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결국 이 우화가 말하려는 교훈은 어린이 교육이란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주변에 있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고 재력을 모으고 가진 것을 합하여 투자할 때 건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학자 에릭 프롬에 의하면, 성장과정에서 자녀의 정서에 어머니가 끼치는 영향과 아버지가 끼치는 영향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따뜻함, 도와주고 감싸주는 마음, 동정심, 이해심, 정서적 안정 등 부드러운 면을 심어주는 반면에 아버지는 성취욕구, 지식, 긍지, 단련, 선악의 분별, 권위 등 강한 면을 심어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남자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농경사회에서의 남자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강한 아버지를 보고 닮고 싶어하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남자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단계적으로 배우고 알아야 할 기술, 예의범절, 지켜야 할 가치관, 신앙 등을 말과 삶을 통하여 전수하는 개인교사의 역할까지 담당하면서 남자아이들을 자기의 작품으로 빚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거장 사회학자 콜먼(James Coleman)은 "가장 강력한 교육기관은 정부의 손에 있지 않으며, 교육의 성패는 학교보다 가정에 의해 좌우된다."고 역설했습니다. 건강한 가정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안정된 반석위에서 인간화와 전인교육을 무리없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적절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교육자인 부모가 자식들에게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좋은 교육 성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주위에서 "세상에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자식 농사"라고 한탄을 늘어놓는 부모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도무지 요즘 아이들은 X세대니 뭐니 하면서 부모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가슴아프게 노래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하면
애비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은 닮고 싶은 아버지상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상실은 남자아이들의 정서에 열등의식과 무기력증을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결국 남자아이들에게 필요한 강한 측면의 정서는 이상하게 왜곡된 TV 프로그램을 통하여 형성됨으로써 남자아이들의 인격과 정서발달에 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시카고 청소년 문제 상담소의 연구에 의하면,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의 상당수가 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어머니 밑에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고유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그것이 자녀들의 올바른 정서발달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아버지는 자기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특히 요즈음은 아버지 수난의 시대라고 할 만큼 존속살해가 빈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모들이 자식들에 의해 시해(弑害)당한 수는 93년에 36명, 94년에는 41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올해들어 대학 교수까지 부친을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잘 산다고 하는 미국, 일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왕과 왕세자가 다닌 명문 학습원(學習院)대학에 재학 중인 일본 여대생이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라는 등 잔소리하는 할머니를 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고 도쿄 경찰이 4월 2일 발표했습니다. 야마다 카쓰미라는 21세의 이 여대생은 지난 1일 82세의 할머니와 점심을 먹은 후 함께 설거지를 하다가 할머니가 식탁 습관 등에 관해 야단을 치자 화가 나서 일을 저질렀다는 데 그는 경찰에서 "할머니가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야단을 쳐대다가 방의 전기 스위치도 제대로 켜고 끄지 못한다는 등 잔소리를 시작해서 그만 정신이 돌아 칼로 찔렀다."고 토로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삐삐를 구입했다고 꾸중하는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이 경기도 수원에서 있었습니다.(동아일보 95.2.26일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친자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부모들의 모임이 최근 결성돼 유사한 처지에 놓인 40여명의 부모들이 회원으로 가입, 매주 월요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자녀들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정신과 상담도중 자녀들로부터 매맞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8개월전 이 모임을 결성한 여성 정신심리분석학자 실비아 베인스텐은 "이 모임은 무엇보다 이같은 불행의 근본적인 책임이 가해자인 자녀가 아닌 부모 자신의 무분별한 애정에 있음을 인정토록 하면서 해결점을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들 부모의 대부분은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충족시켜주는 그릇된 교육관을 갖고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조선일보.95.3.24일자)
오늘날 적지 않은 아버지들이 자녀들의 진정한 필요는 외면한채 아버지의 역할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아내에게 떠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아버지 자신입니다. 물론 자녀들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영향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기 때문에 사실 자녀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과 권한은 어떤 의미에서 어머니보다 더 크며, 그 책임 또한 더욱 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집은 있지만 가정은 없고, 아버지는 있지만 아버지의 역할은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미아 아닌 미아가 되어 실종된 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찾기까지는 기나긴 방황을 하면서 지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위기를 맞은 이 시대에 모든 삶의 표준이 되는 성경에 돌아가 바람직한 아버지 상(像)을 살펴 봅시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使役) 속에서는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고 선지자 사무엘을 제자양육까지 시키면서 살았지만 정작 자기 자녀들은 올바로 양육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삼상4: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삼상4: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삼상4: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 (삼상4: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 사람이 빨리 와서 엘리에게 고하니 (삼상4:15) 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 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삼상4: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삼상4: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삼상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엘리는 요즘의 현대 부모들처럼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면서 자녀들이 그릇 행할 때에도 징계하지않고 오로지 자녀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성경은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잠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합당한 징계가 필요함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죄를 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부모가 자녀들이 지은 죄를 징계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은 더욱 큰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제물을 가볍게 여기면서 의도적으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더니, 더 나아가서는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삼상2:12-22) 그러나 엘리는 범죄한 아들들을 합당하게 징계하는 대신에 단지 가벼운 책망만으로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삼상2: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삼상2: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삼상2: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삼상2: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폴 디 마이어박사는 '그리스도인의 자녀교육과 인격계발'이란 저서에서 정상적인 자녀를 마약과 알콜로 중독시키려면 부모는 다음의 몇 가지 일들만 행하면 된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라.
둘째로,아이가 잘못하였을 때 꾸중만 하고 절대로 매를 들지 말라.
셋째로, 아이가 모든 결정들을 항상 혼자서 하도록 하라.
넷째로, 언제나 그 아이가 어려움을 회피하도록 도와주라.그리하면 반드시 당신의 자녀들은 마약과 알콜에 중독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풍자적으로 표현된 이 글은 자녀들을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그냥 방치해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 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아이들을 문제아로 키우는 12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십시오.
2. 나쁜 단어를 배워서 쓰기 시작하면 고쳐주는 대신 웃어 주십시오.
3. 영적인 교육은 전혀 하지 마십시오.
4. "안돼" 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5. 어질러 놓으면 따라다니면서 사랑으로 치워 주십시오.
6. 아무 책이나 상관없이 읽고 싶은대로 읽게 하십시오.
7. 아이들 앞에서 부부가 자주 싸우십시오.
8. 용돈을 달라는 대로 주십시오.
9. 먹고 싶은 것은 다 먹게 하십시오.
10. 언제나 아이 편을 드십시오.
11. 언제나 큰 문제를 일으키면 "쟤는 어릴 때부터 저 모양이었기 때문에 별 수 없어"라고 한탄만 하면서 포기하십시오.
12. 인생은 어차피 한스럽게 살 수 밖에 없으니 그런 식으로 계속 살라고 가르치십시오.(목회시사정보95.3월호)
우리나라 중 고등학생들은 4명 중 1명이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몰라서 여가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화투나 카드 등 사행성 놀이를 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도 10명중 8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들의 73%가 이런 사행성 놀이를 건전하거나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입시준비로 시간이 없어서 여가시간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며(42.6%), 가족들의 이해부족(27.6%)과 기구-시설 부족(21.4%)도 여가를 가지지 못하는 큰 이유로 나타났습니다.(부산광역시 아동청소년회관이 부산시내 중고등학생 8백 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임)이들은 주로 TV 시청(43%), 음상감상(29%)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으며, 여가 시설로는 노래방과 오락실(47.1%)을 가장 많이 이용했습니다.반면에 체육시설(10.3%)이나 도서관(3.8%)-청소년 시설(3%)등은 이용자가 적어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생활을 위한 여건이 크게 미흡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최근 극중 무술.살상장면이 빈번한 TV무협물<판관 포청천> <칠협오의>와 범행.폭력장면이 빈번한 <경찰청 사람들>, 폭력 살인을 미화(美化)시킨 <모래시계>, 존속 폭력 살해를 서슴없이 다룬 <아들의 여자> 등 의 4-9세 어린이 시청률(30.7%)이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협물은 아니나 상류층 행태를 소재로 한 <호텔>(한 여자를 두고 형제간의 사랑 싸움을 벌이는 불륜 조장 드라마)과 연예계 내막을 파헤치는 <갈채> 또한 4-9세 어린이 시청률이 21.4%,17.5%로 전 연령대별 2위를 기록,성인 프로에 대한 어린이의 무차별시청 양상을 대변하고 있습니다.(증앙일보 95.4.3일자)
"10대들의 해방구"라고 불리는 서울 돈암동 거리에는 10대 <삐끼>(일본어 '히끼'로서 당긴다는 뜻) 들이 오후 6-9시까지는 주로 소주방과 비디오방을 대상으로, 밤 9시가 넘어서면 락카페나 노래방, 자정을 넘어서부터는 심야영업을 하는 술집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들은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술을 마시면서 매상을 올리는 역할을 하며 매춘 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들 10대 삐끼들이 가출한 대부분의 원인은 그들을 억압하는 학교 교육과 가정의 불화에 있다고 합니다. 서울 부산 등 7개 대도시 남녀 고등학교 5천 2백 32명을 대상으로 가출에 대한 설문조사결과 대상자의 14.3%가 직접 가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21.9%만이 '절대 가출해서는 안된다.'고 대답한 반면 78.1%는 '가출할 수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가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경우 23.8%가 레스토랑, 카페, 술집 등 유흥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YMCA청소년 상담실) 이들의 가출 동기(가출 청소년 100명-남50명,여50명을 대상으로 함)에 대해 순위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부모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남50명,여32명)
(2) 간섭받기 싫어서(남43명,여29명)
(3) 공부가 싫어서(남39명,여41명)
(4) 친구의 꼬임(남28명,여49명)
(5) 가정불화(남25명,여34명)
(6) 부모기대와 공부에 대한 중압감(남21명,여17명)
(7) 이성문제(남15명,여8명)
(8) 부모의 이혼(남7명,여6명)
"(잠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17)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잠13:2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우리 나라 주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여성의 95.8%가 '매를 때려 가르친다.'였고 불과 4.2%만이 '어떤 일이 있어도 매를 들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여성동아 94.12월호,pp 608-611) 가능한대로 매를 들지않고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1. 본인이 매를 맞는 이유를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2. 체벌을 가할 때는 그 분위기가 엄숙하고 가급적 아버지가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별히 국민학교에서 남자 선생님이 여자 아이를, 여자 선생님이 남자 아이를 체벌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체벌이 심한 경우 이성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6세 이하의 아동에 대한 체벌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때는 선악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막무가내로 떼를 쓸 경우에는 떼를 무시하거나 받아주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부득이 체벌할 때도 1년에 1-2회를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4. 중학생 이상일 경우에는 매를 맞을 것인지 본인에게 묻고 매를 스스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단 매를 때린 후에는 마음의 앙금을 청산하는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때 장황한 설교가 아닌 간단한 표현이 좋습니다.
5. 매를 드는 대신에 꾸지람을 할 때도 유의해야 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잘못을 따지는 '설교형', 너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니 대책이 없구나 하는 '사방포위형', 과거의 잘못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급형', 행동을 나무라면서 공부 문제까지 비난하는 '복합형', 누구누구는 잘하는 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 하는 '비교형', 이런 짓을 하다니 참 똑똑하구나 하는 '냉소형', 네가 착한 짓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식의 '무능예언형', 한번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는 '강압형' 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꾸지람은 해당 사유에 대한 질책에 국한해야 하며,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 이유에 대한 변명을 듣고 '위엄있고 짤막하게 처분을 내릴수록 효과적입니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종류의 부모들도 있다고 합니다. 만점짜리 학부모가 되는 길(목회시사정보94.12월호)을 소개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부모가 의외로 많습니다.
1. 화풀이형(型) 부모---공부를 잘 하라고 타이르는 자세라기 보다 부모 자신의 울분을 터뜨리는 의도가 다분히 있습니다.이런 부모는 낙제점입니다.이런 부모 밑에서는 영락없이 낙방합니다.공부가 잘 안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서 죽을 지경인데 부모마저 야단치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반발심에서 부모가 보는 앞에서 더 공부를 하지 않고 놀기도 하고 용기를 잃고 주저않고 맙니다.
2. 설교형의 부모---자극을 주려고 옆집 학생은 이러저러하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는 부모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에 가야 한다고 격려해주는 부모도 있습니다.이런 부모는60점짜리 밖에 안됩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는 입시에 성공하기는 아주 힘듭니다. 백해무익한 말입니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다만 공부가 안돼서 걱정인데 그런 마음은 몰라주고 설교만 하니 쓸데 없는 간섭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짜증을 불러 일으키고 급기야는 자포자기하기 십상입니다.
3. 침묵형 부모---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모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속만 태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나 조심스럽게 살핍니다. 이런 부모는 70점짜리입니다. 해로운 말을 하여서 수험생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수험생의 고충을 알아주는 자세가 없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부모의 침묵과 감시가 오히려 부담을 주게 됩니다.
4. 위안형 부모---"마음을 크게 먹어라.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니?", "꼭 일류에 갈 것 없다.네가 원하는 공부만 할 수 있으면 된다." 는 식으로 안심을 시켜주는 부모로 80점짜리 부모입니다. 수험생에게 해를 끼치는 말은 아니지만 결코 도움을 주는 말도 못합니다. 불안한 수험생의 심정에서는 그런 부모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속과 겉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일류에 들어가기를 부모가 속으로는 기대하고 있지만 자기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좋은 상급학교에 못들어가면 자기에 대해 부모가 몹시 실망할 것이라는 점을 꿰뚫어 봅니다. 부모가 위선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5. 친절한 안내형 부모---불안해하는 학생과 자상한 대화를 나누는 부모입니다. 왜 공부가 안되는가? 기분은 어떤가?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 상급학교는 어디를 지망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고 이런저런 방침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해주는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는 90점입니다.아이의 문제를 일일이 함께 상의하고 걱정해주고 안내해 줍니다.그러나 이런 부모의 자상한 배려와 관심을 오히려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6.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참형 부모---"너 요새 힘들지? " 혹은 " 너 요새 불안하겠구나!"하는 한 마디를 던지면서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어보는 부모로써 100점짜리입니다. 그밖에는 아무 말이 필요없습니다. 아이는 그저 빙긋이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고충을 이해해준다고 느끼고 마음을 가다듬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더러는 이런 때 이러니 저러니 자기 고충을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그냥 귀담아 들어주면 됩니다. 말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들어주는 그 자체가 훌륭한 치료인 셈입니다. 아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부모 밑에서는 입시에 성공하기 마련입니다.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다음 기회에 자신있게 도전하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아이들이 입시에 성공하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의 지혜와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는 마음을 가다듬지 못합니다. 부모가 대범할 때 아이는 차분히 공부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 아이를 합격시켜 달라고 기도하는 부모보다 "축 늘어진 아이의 고달픈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롯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은 숙부인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한번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해 영원히 그릇된 인생을 살게 되는 성경 속의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갈라서게 될 때 자신과 자녀의 영적인 생활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물질적인 풍부함만을 구하면서 기름진 요단 들판을 택하였고 종국에는 소돔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창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창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창13:13) 소돔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은 소돔의 성문에 앉을 수 있는 지도자적인 지위도 얻었고 재물도 얻게 되었습니다.
"(창19:1)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그러나 롯은 영적인 면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 육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여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두 딸들은 소돔의 사고방식에 젖어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여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이고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손을 잇는 일을 하였습니다.
"(창19:30)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창19: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창19: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창19:33)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자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19:34)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창19:35)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창19:36)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창19: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창19: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이는 모두 다 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헌신하면서 살기를 거절하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모든 것이 소돔처럼 죄로 오염되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올바른 선택을, 가장된 아버지가 앞장서서 행하면서 말씀의 원리대로 자녀들 앞에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세번째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알려진 삼손은 경건한 아버지 마노아 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마노아는 자녀교육을 올바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였습니다.
"(삿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마노아의 관심사는 "(삿13:12)....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였습니다. 마노아는 나실인이었던 아들 삼손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키웠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버지가 훈계한 대로 바르게 자라지 않고 점차적으로 나실인의 규례를 어기다가 마침내는 머리까지 깍이고 두 눈이 뽑히어 연자멧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삿16: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삿16:17)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삿16:18)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삿16:19)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삿16:20)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삿16:21)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어버지 마노아는 어릴 때부터 아들인 삼손을 하나님 말씀대로 길렀지만 아버지에게서 독립을 하면서부터 삼손은 죄의 길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녀교육이 경건한 아버지의 힘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경우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녀는 아버지와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삼손이 다시 힘을 얻은 후에는 그 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한 것을 보면서 어릴 때 받은 경건한 아버지의 영향은 결코 헛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네번째 아버지 상은 에녹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다가 들림을 받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녹은 이 땅에서 365년을 살았는데 하나님과 동행한 연수가 300년이니 처음 65년 동안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과 함께 깊이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녹이 65세가 됐을 때 어떠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에녹이 65세 때에 므드셀라를 낳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창5:22)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창5:23)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패역한 세상에서 자기의 믿음을 지키면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녀의 믿음까지는 지켜줄 수가 없음을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하나님과 밀접하게 동행하면서 본을 보여주는 것만이 최선의 자녀교육임을 깨달았는지 모릅니다. 여하튼 에녹은 므드셀라가 태어나는 그때부터 므드셀라 앞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300년 동안이나 일관되게 보여주었습니다.
다섯째,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있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한 절차에 의해 규정된 제사를 합당한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드리는 가정이었습니다.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은 엘가나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 엘가나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전체가 하나님의 절기 준수 명령(출23:14-17)에 순종하여 함께 실로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는 엘가나의 온 가정이 하나님 말씀을 중히 여겼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말씀이 가면 따라가고 말씀이 멈추면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는 순종의 가정이었던 것입니다. 엘가나의 가정은 이처럼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할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함께 신앙 생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삼상1: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가족 중 어떤 한 사람이나 일부분만의 믿음이 전 가족의 구원을 약속받을 수 있게 하거나 전 가족의 신앙 생활을 대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온 식구가 믿음이 하나 되어 서로 아끼고 돌아보며, 주 안에서 사랑으로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하는 가정이 진정 모범적이며 복된 가정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일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여호와의 전, 곧 성전에 바치는데 남편과 아내가 뜻을 같이 했던 것입니다.
"(삼상1: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삼상1:23)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삼상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삼상1: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엘가나의 가정은 하나님과 약속(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해서 그의 아들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라게 되었고, 그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성전 생활 속에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찌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익숙하게 배우게 된 것입니다.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아버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아버지야말로 이 시대에 추구하고 따라야 할 가장 모범적인 아버지상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 아버지로 불려지는 바울을 통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살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 바울을 통해서 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유순한 유모와 같이 애정을 나타내 보이면서 성도들을 사모하며 살았던 영적 아버지였습니다.
"(살전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둘째로, 그는 목숨까지도 주기를 즐겨하는 투명한 삶을 살았습니다.
"(살전2:8)...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셋째로, 바울 사도는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는 근면한 삶을 살았습니다.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넷째로,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하는 영적 생활의 진실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는 본을 보인 삶을 살았습니다.
"(살전2: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다섯째로, 그는 아비가 자녀에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듯이 적극적인 영향을 주면서 살았습니다.
"(살전2: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살전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일반적으로 아버지들 중에는 권위주의형이 있고, 그와는 정반대로 자녀가 원하는 대로 개방적으로만 키우는 자유 방임형이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형이나 자유방임형은 모두 한쪽으로만 치우친 그릇된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녀교육과 관련해 아버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들은 자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며 대하기보다는 자기의 소유물처럼 함부로 대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속으로 쌓아가면서 생활하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지나친 꾸지람만을 받으며 자란 자녀들은 위축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매사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거나 아니면 아버지처럼 다른 사람을 향하여 독선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일그러진 인격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골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와는 정반대로 자유방임형의 아버지는 자녀의 삶 속에 바른 동기와 자세를 갖도록 도와주지는 않고 오로지 자녀의 마음만을 평하게 해주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고집이 세고 순종할 줄 모르며 자기 자신만 아는 극히 이기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매사에 절제하거나 인내하지 못하고 책임이 주어지는 일은 회피해가면서 무사안일한 삶을 살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 중심적인 아버지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그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랑 가운데서 자신과 남을 이해하며 인정해주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삶을 살게 되며,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양과 훈계로 양육을 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진리의 터 위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중심의 아버지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지혜를 가진 사람이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모하며 모든 일을 하나님과 상의하는 자, 둘째 삶의 목적과 보람을 알고 있는 자, 셋째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자, 넷째 물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자, 다섯째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결정하는 자, 여섯째 자제할 줄 아는 자, 일곱째 스스로의 약점을 알아 겸손하고 약점을 피해 일할 줄 아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삶의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먼저 자녀들이 신앙을 가지도록 교육해야만 합니다. 어버지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자녀들에게 신앙을 넣어 주기 위해서는 말씀을 강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신앙의 본을 보이라고 아버지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다한 이방인의 가치관이 우굴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광야에 있을 때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의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확고히 다져놓아야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말씀을 지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이와같이 우리 아버지들도 자녀들이 어릴 때에 말씀과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신앙을 다져주어야만 합니다.
"(잠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3:2)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3: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3: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잠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3: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3: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 하지 말라 (잠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잠3: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3: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수 없도다 (잠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잠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잠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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