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신앙 고백
| 본문 : 마 16:13-16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신앙 교육을 받아오면서,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떤 분이 십니까? 여러분들은 이 대답을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대합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합정동 교회에서 유년부 시간을 거치고, 또 초등부 시간을 거쳐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된 학생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앙 생활은 길게 잡으면 10년에서 12년 동안 교회에서 신앙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여기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묻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이것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 가장 시급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모습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까지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지식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에 대한 논쟁은 예수님이 살아 있을 그 당시에만 있었던 논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다 죽고 난 이후, 교회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심각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논쟁으로 인한 결과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목숨을 요구했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며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때 드디어 교회 회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결정됐습니다. 우리가 주일 오후 예배시간 마다 조금씩 소요리 문답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소요리 문답도 17세기에 영국을 대표하는 151명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여 무려 5년 6개월의 시간을 소비하여 회의를 통하여 각 문항의 내용들이 결정된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 안에 들어있는 모든 문항과 내용은 본질적으로 전 세계 기독교 교회가성경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뜻으로 고백하고 있는 신앙 고백서 입니다. 몇 주전에 배웠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1문항에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배웠는데, 혹시 기억이 나는 친구들이 있습니까? 21문항의 답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사람이 되고, 영원토록 한 인격 안에 구별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 구별된 인성과 신성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본론 Ⅰ.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 1. 신약 시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마가복음 8장과 누가복음 9장에도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랴 하느냐?” 마가복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랴고 하느냐”라고만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마태복음과는 달리 ‘인자’라는 호칭이 빠져 있습니다. ‘인자’라는 호칭은 ‘인성’을 나타내는 지칭입니다. ‘인자’는 예수님이 즐겨 사용한 지칭으로서, 문자적 의미로는 ‘인간’을 의미 합니다. 이어서, 제자들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보고 있었는지, 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대답 했습니다.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또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나 여러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들을 고치시는 등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보이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처럼 권능 있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엘리야처럼 백성들의 타락과 종교적 불의를 꾸짖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1절에서 12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레미야처럼 눈물의 선지자로 보았고, 다른 나머지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수 많은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수 많은 가르침을 직접 들었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심히 존경할 만한 위대한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한 사람이나 선한 선생 혹은 위대한 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지,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그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거나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바르게 보지 못한 상황은 예수님 당시 상황이나, 오늘날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나 똑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과 같이 그리스도에 대해 보고 들음을 통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이 행하신 사역과 인격을 골고루 살펴 보지만,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한것 같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 당시에 그들이 보았던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너무나 한쪽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 두 본성을 100% 다 가지고 계신 분인데, 어느 한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너무 강조하고, 또 다른 한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균형은 자칫 하다가는 이단을 초래 하게 되며,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영적 장애를 초래하게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강조한 경우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무시하고 인간적인 성품, 즉 인성만을 강조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위대한 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단지 존경할 만한 위인들 중의 한 사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불교의 부처와 인도의 간디, 그리고 이슬람의 무하마드와 동일시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수평적인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또한 인간적인 성품만을 강조하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성품만을 닮고 싶어 하는 열정만을 가지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한 경우 이번에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무시하고 신성만을 강조하게 되면 수도원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수도원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려다 보니, 세상 일에는 등한시 합니다. 그들은 세상 일에는 무가치 하다고 보기 때문에, 영적인 일에만 신경씁니다. 그들은 세상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가정도 내팽겨치고, 교회에서만 살고 싶어 하는 폐쇄적인 생활을 추구합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 추구하다 보면 결국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떨어져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기독교인들 말고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루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더 작게는 여러분들의 반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김새가 다양한 만큼, 생각도 다양하며 그들과 함께 친구로 지내며 공존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들과 따로 격리되어서 살 수 없습니다. 4. 교회 역사 속에서도 시대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짧게나마,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의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성향의 추구는 오늘날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계속 존재했습니다. 중세교회 시대에도 있었고, 종교개혁과 그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신성화된 육체를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없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삶의 모습은 결국 지식에 근거합니다. 바른 지식은 바른 삶을 인도하지만, 바르지 못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바르지 못한 삶을 이끌어 냅니다. 이것은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른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그 지식에 알맞은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지 못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방금 살펴보았듯이 극단적인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Ⅱ. 베드로의 신앙 고백 다시 15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 제자들 중의 한 사람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예수님을 흡족케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신앙 고백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담고 있는 매우 훌륭한 고백이었습니다. 즉, 이 고백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본질적인 신분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1. “주는 그리스도요...”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선언할 때,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야 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명칭은 ‘기름 부음 받은자’ 곧 메시야를 뜻하는 것입니다. 기름 붓는 예식은 구약 시대에 가장 성스러운 종교의식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기름 부음의 의식은 왕, 선지자, 제사장 임명시에 거행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선지자,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참 메시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베드로의 고백 중에 이번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이후에는 활동을 멈추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시대에만 활동하시고, 지금은 활동을 멈추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시대에만 활동하시고 지금은 활동을 멈추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시대에만 활동하시고 지금은 활동을 멈추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게 살아계시며, 지금도 모든 만물을 하나님의 기쁘신 그 뜻대로 주관하시며,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편 90편 1절과 2절 말씀에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고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이사야 40장 28절 말씀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예레미야 10장 10절 말씀에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 히브리서 13장 8절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살아계신 분이라는 그 뜻에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말로, 곧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 보냄 받으신 분이요, 하나님과 하나 되신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구원과 관계 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아는 이유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아는 문제는 개인의 구원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신구약 성경의 중심 메시지 입니다. 그리스도를 단순히 ‘사람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단순히 ‘하나님으로만 보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만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리스도를 어떤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인성과 신성 두 본성을 다 가지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고, 그렇게 믿으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실제로 여러분들의 신앙 고백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이성적으로 바르게 알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서 진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고, 각자가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출처 : 둥근달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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