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자의 복
이사야 30:18-26
어느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시험을 칩니다. 시험관이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습니다. 10분이 지나도 시험관이 오지 않으니까 시험생들은 여기저기서 불평을 합니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니까 ‘시간도 지키지 못하는 회사가 월급이나 제 때 줄 수 있느냐’고 하며 시험을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관은 CCTV를 통해서 그 장면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 중에 몇 사람은 조용히 눈 감고 시험관 앞에 무슨 말을 듣고 대답을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험관은 한참 후에 들어와 누구든지 다 답을 쓸 수 있는 문제로 시험을 쳤습니다. 그래서 모두 답을 쓰고 합격을 기다렸습니다. 시험관은 누구를 합격 시켰을까요? 답을 다 썼다고 그들을 합격 시킨 것이 아니라 시간이 늦어도 말없이 참고 기다리던 사람을 합격시켰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다 떨어뜨렸습니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고 실력이 얼마나 좋으냐를 보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엄마가 학교에 간 아이가 돌아 올 시간이 되면 기다립니다. 아이가 돌아 올 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러다 문을 열고 아이가 들어오면 반갑게 맞아 줍니다. 기다리는 것은 심리적인 고통입니다. 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불안해 집니다.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밖으로 나가 아이가 오는 쪽을 바라봅니다. 그래도 오지 않으면 찾아 나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이 복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은 기다림이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기다리는 자 마다 복이 있도다”(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다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릴 존재가 없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기다릴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누가 더 행복합니까? 바꾸어서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기다려 주는 부모가 있는 아이와 기다려 주는 부모가 없는 아이, 누가 더 행복합니까?
요즘 많은 아이들이 집이 싫다고 합니다.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파 누워있어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합니다. 누워 기다리던 사람이 죽고 나면 더 이상 기다리는 사람이 없을 때 집에 돌아오면 허전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일을 마치면 서둘러 집에 옵니다. 기다리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집에 들어 설 때 마다 공허감을 느낍니다.
‘기다림’은 삶의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저녁을 기다리고, 저녁이 되면 내일을 기다립니다. 나간 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부자 되기를 기다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기를 기다립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 것을 기다립니다.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를 기다리다가 성취하면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것이 오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합니다.
태종대 바닷가에 외롭게 서 있는 작은 바위를 ‘망부석’이라고 합니다. 고기 잡으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이 풍랑으로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축복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8).
누가 누구를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를 천년 같이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복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받을 자세를 기다리십니다. 복을 주시고자 해도 복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복을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복 받을 자세가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심리적 고통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속이 타는 것 같은 고통입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이 큽니다. 하나님은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신다는 말씀은 하루를 천 년 같은 고통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와 아버지, 누가 누구를 기다렸습니까? 탕자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탕자를 기다렸습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잠인들 제대로 잤겠습니까? 밥인들 제대로 먹었겠습니까? 하루인들 마음 놓고 지내지 못하고 문 밖을 바라보며 아들이 돌아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약 맺은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를 기다리실 때 마치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큰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을 낳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낳기를 기다리는 것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더 이상 참아 기다릴 수 없어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것은 기다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큰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람이 아니라 ‘열국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이 되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람 때 낳았습니다(창16: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아브람이 99세 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17: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직후 곧 바로 하나님은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까지 하나님은 참아 기다리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들 낳기를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되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동안 아브람은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의 말을 했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창15:2)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불평을 할 정도라면 아브람의 기다림이 얼마나 괴로웠던가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돈을 달라면 즉시 주지 말고 ‘내일 아침에 준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내일 아침에 돈을 준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아침이 되었을 때 아이는 약속을 잊어버렸지만 엄마는 약속대로 돈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우리 엄마는 한 번 약속하면 받드시 지키신다고 믿습니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내일이면 주실 것을 믿고 오늘은 참는 것이 기다림입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실망이요 불신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도 얻지 못하고 크게 실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엄마는 내일 준다는 말로 아이를 속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불신만 키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하시려고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십니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입니다.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이 여기려 하심이라”(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맺은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풍성한 양식과 영적 평안과 치유의 약속을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까 일어나십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을 때 앉아 기다리지 않습니다. 일어나 아이를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셨다는 것은 기다림의 적극적인 행동의 표현입니다. 일어나시기까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 우리를 기다리셔도 우리가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느 만큼이나 간절하게 기다리시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일어나실 정도로 간절하게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간절히 기다리는 자 마다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준비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이 무엇입니까? 더 이상 통곡하지 않게 하는 복을 준비하셨습니다.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19), 통곡은 슬픔과 고통의 절규입니다. ‘통곡’은 그냥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의 절규입니다. 지옥불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슬픔과 고통으로 통곡하지 않는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한 통곡을 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른 길을 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환란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고 마시는 육체적 고통에서 길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을 만나서 바른 길로 가라고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0,21).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지만 바른 길로 가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바른 길을 알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 다녔지만 바른 길로 가라고 하시는 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땅의 풍성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십니다. “네가 땅에서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23,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땅에 뿌린 종자에 비를 주십니다. ‘비’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현실적으로 나태는 상징으로 성경에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적절하게 오기 때문에 어디든지 곡식들이 잘 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둡니다만 중동 지역에는 비가 오지 않아 곡식들이 자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셔서 곡식이 풍성하도록 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가축들이 광활한 목장에서 자라는 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모자람이 없는 풍성한 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상처를 싸매 주시는 복을 주실려고 기다리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2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는 자에게 상처를 싸매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상처는 죄악 세상에서 마치 강도 만난 자와 같이 빼앗기고 맞은 상처 투성이지만 하나님은 맞은 상처를 싸매주시고 고쳐주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달빛이 햇빛같이 햇빛이 일곱 배가 되는 것과 같은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처럼 복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복 받을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기다리십니다. 복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수 있도록 성숙한 믿음 회복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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