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데살로니가전서 5:16-2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고, 나머지 제자 아홉은 산 아래 남아있을 때 한 사람이 자신의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께 그 아버지는 ‘당신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 주지 못하더이다’고 하며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기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원인은 ‘기도’와 ‘믿음’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마10:1)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나가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막6:13).
오래 된 것도 아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있게 귀신을 쫓아내고자 했지만 귀신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며칠 전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도 고쳤는데 어찌하여 오늘은 고치지 못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능력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지난번에 귀신을 쫓아내었으니 오늘도 능히 귀신을 쫓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간증하는 사람은 지난 날에 병고침을 받았든지 사업에 복을 받았던 것을 간증합니다. 그렇다면 그때처럼 그 은혜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가?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받은 은혜를 울려먹는 것이지, 지금은 은혜로운 체험을 하지 못하면서 지난 날에 은혜 체험했던 것을 자랑합니다.
‘성령 충만’과 ‘성령 소멸’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성령 받은 증거입니다. 신앙고백을 하였다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성도에게서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성도가 믿음이 좋으면 함께 하시고, 믿음이 작아지면 떠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성도에게 언제나 함께 하시지만 성령으로 나타나는 능력은 믿음에 따라 크게, 또는 작게, 또는 전혀 역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말은 믿음이 좋다는 말과 같습니다. 믿음이 좋을 때는 성령도 충만해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아지면 성령은 소멸되는 것입니다. ‘소멸’이라고 해서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은 아니고 성령의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을 ‘소멸’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력을 받았다면 지속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제자들은 며칠 전에 권능을 받아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자도 고쳤습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고 데리고 왔을 때 그에게 귀신을 좇아내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귀신을 쫓아내었던 능력이 이미 소멸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능력이 소멸된 것을 몰랐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서 항상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소멸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성도에게는 ‘성령 충만’도 중요하지만, ‘성령 소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소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언제 소멸되었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는 말처럼 성령 소멸을 알지 못하는 성도가 아무리 성령 충만을 원해도 충만하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 소멸은 성령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 주시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움에 빠져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달라고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여들고 어렵게 되는 것은 성령이 소멸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지 못하므로 그의 아버지가 ‘당신의 제자들은 고치지 못하더니다’라고 말하므로 제자들은 실패하고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실패하고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간혹 ‘저 집은 예수 믿어도 별 수 없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웃 불신자들에게 ‘교회 다녀도 잘 되는 것이 없더라’는 말을 듣는다면 성령 소멸 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안수하고 기도하면 능력이 있어 병든 자도 고칠 수 있지만 성령이 소멸되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자동차 밧데리와 같습니다. 충전하면 힘이 있어 시동이 쉽게 걸려 엔진을 돌립니다. 그러나 방전되면 시동을 걸리지 앖습니다. 밧데리의 겉은 충전이 되었는지 방전되었는지 잘 분간을 할 수 없지만 시동을 걸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성령 충만한지 소멸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지속하기 위해서 성도는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은 소멸 됩니다. 그러면 성령 소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령 소멸을 막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16-2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는 비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이 말씀대로 살 때 성령 소멸이 되지 않습니다. 성령 소멸과 관계가 깊은 것은 ‘기쁨’과 ‘기도’, ‘감사’, ‘예언(말씀)’, ‘죄악’입니다.
이 말씀에서 ‘항상’이라는 것과 ‘쉬지 말고’, ‘범사’란 말씀은 다른 말 같지만 사실은 동일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기뻐하는 것을 항상 하라. 기도를 쉬지 말고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렇다면 ‘항상’, ‘쉬지 말고’, ‘범사’란 말은 같은 의미로 언제 무슨 일이든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제일 먼저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건강의 비결은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무엇보다도 예배를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일 예배가 제일 중요합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예배를 빠지는 것은 성령 충만할 수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습관적인 예배입니다.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는 것 역시 성령이 소멸되는 구멍입니다.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아가 예배를 기뻐해야 합니다. 기쁨이 없는 예배는 성령 소멸의 원인이 됩니다. 예배가 맛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이 꿀맛 같이 달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20)라는 ‘예언’은 신구약 성경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것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말씀에 맛을 느낄 수 있을 때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와 말씀을 떠나서 성령 충만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17)는 말씀은 성령 충만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삼상12:23). ‘쉬지 말고 기도 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생활화 하라는 말씀입니다. 일도 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일하면서, 길 가면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어찌하여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 전도하려 나갔을 때는 긴장된 상태에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사람을 고치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 달라고 했을 때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성령 소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도들이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기도하고 문제가 없으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소멸하여 성령이 도와주시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 소멸을 하지 않기 위해서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8)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감사가 없어졌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성령은 소멸된 상태입니다. 감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우시는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범사’란 흥할 때나 망할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를 막론하고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를 하지만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도 감사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 소멸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이란 ‘죄’입니다. 죄라고 하면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습니다. 큰 죄와 작은 죄 어느 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큰 죄를 범하는 것, 사람을 죽인다든지 아니면 많은 돈을 훔친다든지 하는 것을 무섭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어떤 모양’이라는 것은 사소한 작은 죄, 죄같이 여기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속이거나 지킬 것을 지키지 않는 작은 죄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작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2)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인 맞아’란 ‘불도장을 맞았다’는 말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마치 양심에 불도장을 맞은 자처럼 양심이 마비되어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소한 거짓말이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죄같이 여기지 않는 사소한 죄가 성령을 소멸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부터 기쁨이 사라졌다면 기쁨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오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면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셔야 합니다. 예배를 빼먹어도 죄송스러운 생각이 없다면 성령이 소멸된 상태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손해를 보아도 예배드리는 것이 더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림으로 방전된 밧데리에 충전하는 것처럼 성령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져가는 기쁨을 회복하고 능력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힘들어도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즐겁게 느껴져야 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왜 내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 성령이 소멸된 증거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은근히 불평이 생기면 속히 자신을 돌이켜 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설거지를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지루함을 느껴지면 성령이 소멸된 상태가 아닌가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설교 말씀이 귀에 잘 들려지지 않으면 성령이 소멸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즐거워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고 말씀을 들으면 은혜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 소멸은 성도로서 누리는 복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자신을 돌이켜 보고 성령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알고 속히 성령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자신이 먼저 능력있는 성도로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서 여러분의 가정이 성령 충만하여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는 가정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기도하면 즉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 소멸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성도가 되지 말고 성령 충만하여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도와주시므로 문제가 발생해도 쉽게 해결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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