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본문: 딤전 6: 11- 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11, 12)
톨킨의 고전 「반지의 제왕」 삼부작이 몇 해 전에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그 두 번째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도는 절망에 빠져 녹초가 되어 그의 친구에게 『샘, 나는 더 이상 못하겠어.』라고 털어놓습니다. 좋은 친구로서 샘은 이렇게 격려의 말을 해줍니다.
『이건 위대한 이야기들의 내용과 비슷해... 어두움과 위험으로 가득 찬 그런 이야기들 말이야. ... 그 이야기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물러설 기회가 무수히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들은 계속 전진했어. 왜냐하면 그들은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지.』
이 말에 프로도는 『샘,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 거지?』라고 재빠르게 반문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으로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타락하고 망가진 세상에 살면서 가끔씩 우리가 어둠의 세력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 금방이라도 항복할 태세가 되어 있을 때,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딤전6:12)는 충고를 따르는 것이 현명합니다.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궁극에는 선이 악을 이기며, 우리가 언젠가 우리의 주인이요 지도자이신 주님을 직접 대면하고, 그와 더불어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는 사실을 붙잡읍시다.
당신이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최후 승리가 보장되는 이 위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의 고난 속에 지치고 희망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이 나의 처소가 되시네 밖이든 안이든 주님은 나에게 승리를 얻을 힘을 주시네
이 세상의 시련은 천상의 승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것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11절)이라 부르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는 이 권면을 네 단어를 사용해 강조했습니다. 『피하라』, 『좇으라』, 『싸우라』, 『취하라』(11~12절). 이 명령을 지켜야 할 기한은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14절)이며, 그 기준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는』 온전한 것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하시며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고 감히 볼 수도 없으며 존귀와 영광을 영원히 돌려 드려야 하는 분입니다. 아마 디모데는 전율을 느끼며 바울의 권면을 마음속 깊이 새겼을 것입니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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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부자들에 대한 경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정 문제는 항상 어렵습니다. 오죽했으면 지갑이 세례를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의 세례를 믿을 수 없다고 했을까요? 돈의 힘은 막강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신앙 공동체를 변질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들은 재정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가르치고 교훈하며 훈련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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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개인적인 교훈의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영적 교훈만큼 변질되기 쉬운 것도 없습니다. 말만 하고 실천이 없는 삶, 그럴듯한 말과 변론으로 서로를 속이는 것 등이 영적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참된 영적 지도자는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싸워야할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은 곳은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개인의 명예나 재산에 욕심으로 얽매이게 되면 우리를 부르신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만과 탐욕과 거짓 교훈들에서는 달아나야 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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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한 싸움은 건전하고 부동의 종말론적인 자세에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이 이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참된 축복의 근원이 되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살아 계시고 가까이 갈수 없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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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바울은 부자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소유는 정함이 없는 재물이 아니라 현세와 내세에서 누리는 영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의의 면류관을 받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 선한 싸움을 싸워 수호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싸우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요 마귀가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싸울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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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피할 것을 피해야 합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신앙 때문에 불신 가정에서 쫓겨나는 위험을 무릎 쓴 성도가 많았습니다. 신앙 양심을 따라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해고 당할 위험을 무릎 쓴 성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역시 타락한 성 문화에 굴복하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소외당할지 모른다 해도, 하나님의 진리 편에 용기 있게 서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옥중에 갇혔습니다.(창39:7-21) 바른 신앙인에게 세상에서의 삶은 때론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거기에 찾아오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진리가 결국 승리함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부활 사건의 예표입니다. 다니엘은 살았고, 다니엘을 죽이는데 성공했다고 개가를 부르던 자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니엘은 믿는 자의 최후 승리를 우리에게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자요, 만왕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만유 역사를 주관하시며 믿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비록 지상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의로운 심령이 상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진실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불의는 영벌로, 의는 영생으로 심판받을 것을 확신하며 부활 신앙으로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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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바울은 피할 것을 나열하였습니다. 즉 변론과 언쟁,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 돈만을 사랑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들에 대해 피하지 않고 환영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 자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악인의 길도 피하고 죄인의 길도 피해야 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도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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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집에서 할 일이 없다며 계속 음란 비디오를 보는 남편을 둔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비디오를 함께 보자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자녀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잠들기 전, 30분씩 그림 성경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매일 30분씩 생명의 공기가 들어가자 아이들의 생활이 밝아지고 좋아졌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집에 와서 친구가 아주 더러운 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욕을 했는지 묻자,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그런 욕을 입에 담아요?』라고 하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30분씩 생명의 공기가 어린 자녀들 속에 들어가니 자녀들은 아버지와 달리 이렇게 성결해진 것입니다.
『바벨론, 즉 죄악 된 세상에서 나오라.』 이 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소가 들어오면 이산화탄소가 나가듯, 변화가 없는 듯해도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동안 나쁜 것들이 빠져나갑니다. 작은 일에도 신경질이 나고, 조그만 서러워도 견디지 못한다면 영적 이산화탄소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생명의 맑은 공기를 불어넣은 것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충만하게 임하시면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 나가고, 나쁜 것이 들어오면 토할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심판자로서 이 땅에서 악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에게 주어질 승리를 내다보면서 바벨론에서 빠져나와 그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행하는 것도 영적인 전투입니다. 열심히 행하다 보면 시험이 오지 않습니다. 한가하게 놀고 있을 때가 시험 들기 쉬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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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영생을 받은 확신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을 잃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항상 감사하면서,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확신은 마귀를 물리치고 시험을 막으며 유혹을 쫓아냅니다. 미지근한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열렬하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면 어떠한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영생을 취한 자만이 온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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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국회를 보고 욕을 하지만, 진짜 국민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싸워야 합니다. 국회뿐입니까? 인생은 언제나 싸움판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세상의 넓고 넓은 전쟁터에서 싸우며 삽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고, 이웃과의 경쟁에서 싸우고, 악조건의 자연과 싸우고, 험악한 세상과 싸우고, 세상 배후에 있는 악마와 싸웁니다. 싸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가지고 싸우지 말고 큰 것을 가지고 싸워야 하고, 거짓 편에 서지 말고 진리 편에 서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거짓 세상을 둘러엎기 위해서 싸움을 주려 오셨고(눅 12:51) 심지어 싸울 검을 준비하라 하셨습니다(눅 22:36). 바울은 성도를 싸우는 투사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리며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딤후 4:7). 성도는 싸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 뜻을 이루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언제나 십자가 사랑의 비폭력이어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와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싸움으로 세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싸움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련이나 어려움 등을 이기려고 애쓴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싸움은 긍정적인 의미의 싸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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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은 멀고 험한 길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공의를 추구하십니다. 세상이 실용을 추구할 때 하나님은 원칙을 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세속에 물들어 편안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 다른 세계의 가치관은 맞서고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이 힘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전의 나의 삶이 나를 믿음의 길에서 자꾸만 끌어내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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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이러한 싸움의 연속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권면합니다. 왜 싸우라고 할까요? 그것은 디모데가 하나님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는 특별히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바르게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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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 잘못된 교리와 그로인한 잘못된 생활을 피하는 것입니다. 이단과 그 가르침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지녀야할 성품입니다. 셋째,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선을 이루지 못합니다. 넷째, 영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신 영생의 기쁨을 오늘의 삶속에서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을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선한 싸움을 싸워야하고 고난을 당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 모든 것이 끝나게 될 날이 오게 됨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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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50장 (통393)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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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마귀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2. 우리들의 입은 갑옷 쇠가 아니요 우리들의 가진 검은 강철 아니요 하나님께 받아 가진 평화의 복음 거룩하신 말씀이로다
3. 악한 마귀 제아무리 강할지라도 우리들의 대장 예수 앞서가시니 두려말고 용기 있게 힘써 싸우세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4. 죄악 중에 빠진 사람 죄를 뉘우쳐 십자가에 달린 예수 믿기만 하면 위태한 데 빠진 영혼 구원 얻어서 천국 백성 될 것임일세
[후렴] 일심으로써 힘써 나가세 일심으로써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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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전쟁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꿈을 위해 싸운다면 가장 격심한 전투 중에도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벗들이 모두 희망을 잃는다 해도, 선한 싸움이 가져다주는 평화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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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싸움』이란 다름 아닌 『자신과의 싸움』, 『믿음과 불신앙의 싸움』입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찾아오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고요와 평화입니다. 『선한 꿈』을 위해 혼신의 힘으로 자신과 싸우면, 싸움 중에도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얻습니다. 담대하고 단호하게 싸우십시오. 내 힘으로 하지 못할 것이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대적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당신을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무한히 강합니다. 당신은 절단나고 파멸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전쟁은 평생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대적의 어떠한 능력이나 책략도 당신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싸웁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 전쟁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 참여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대적이 그 악한 궤계를 이루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 편에서 싸우십니다. 이 전쟁이 당신 생애의 마지막에 끝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조만간 당신에게 승리로 관을 씌우실 것입니다. 이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싸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영혼의 대적은 완강하고 사납습니다. 그들과의 중재를 위한 평화는 없습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악 벗은 형제여, 마귀들과 싸웁시다. 무서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싸웁시다.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갑시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들고 앞서나가 담대히 싸웁시다. 곧 개가를 부르고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경건한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살아갑시다. 이 땅에 욕심을 죽입시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건의 훈련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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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난 아들과 아버지가 어느 날 저녁 호수에 가서 작은 민물고기를 낚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낚싯대가 크게 휘자 아들이 흥분합니다. 아버지는 큰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아들의 모습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여태껏 잡은 어떤 물고기보다 큰 농어입니다. 그때 아버지는 성냥불을 켜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봅니다. 밤 10시입니다. 농어 낚시가 허용되는 시각은 밤 12시부터입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한 번 쳐다보고, 아들을 한 번 쳐다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다시 물속으로 보내야겠지?』 아이가 『아빠!』 하고 소리칩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잡으면 되지.』 아들은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처럼 큰 농어는 다시 잡지 못할 거예요.』 아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낚시꾼이나 낚싯배가 없는 것을 확인합니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쳐다보지만 아버지의 얼굴에서 이미 결정이 났음을 깨닫습니다. 그 아들은 성장해 때로 자녀들과 함께 그 호수를 찾아갑니다. 물론 그 후로 그처럼 큰 농어를 잡아 본 적은 없지만, 그는 도덕성의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 물고기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옳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결정이 아들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선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삶을 자연스럽게 영위할 수 있습니다. 선에 속한 것은 하나씩 이뤄 가야 하는 평생의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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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언제 어디서나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 뒤에는 타락과 오염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선한 양심과 복음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믿던 사람들조차 선한 싸움에서 패배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아프게 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순간적인 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소중한 믿음의 유산을 빼앗겨 버린 불쌍하고 연약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 곧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잃어버리면 보충할 수 있지만, 믿음을 잃어버리면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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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모든 달리기 선수들이 같은 출발점에서 달리지만 1등을 하는 선수는 하나인 것처럼, 우리들도 달려갈 길을 열심히 싸워나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도중에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중도에 하차해서도 안 됩니다. 믿음의 주가 되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부지런히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잘 싸워서 승리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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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오늘도 저희들에게 복된 말씀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 저는 전신갑주를 입고서 영적 전쟁터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는 준비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죄와 이 세상의 악한 풍조에 대해 단호하게 싸우며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게 하소서. 오늘 말씀 받아 이 말씀대로 세상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주님, 연약한 종을 붙잡아 주셔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 없는 말씀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 보내주소서.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사 변론과 언쟁,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 돈만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게 하시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우게 하시며, 영생을 확고하게 취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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