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짧은 이야기 긴 감동 Ⅰ
1부 하나님의 유머
1.하나님의 유머
기독교 철학자인 엘튼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의 저서 중에는 ‘그리스도의 유머’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하나님은 매우 유머가 풍부한 분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유머 넘치는 분인지 알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께 다가가는 방법은 훨씬 더 부드러워지고 훨씬 더 친밀해질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경 속에 그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의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가 다 되어가고 그의 아내는 이미 경수가 끊어져 생산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사라가 그 뒤 장막문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킥킥거리고 웃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웃기시네요. 제가 이 나이에 어떻게 아이를 낳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 부부에게 약속한 자녀를 주셨고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웃기셨다는 뜻입니다.
한 여집사님 한 분이 어느 날 저에게 찾아와서는 “목사님, 제가 하나님을 웃겼더니 하나님이 제 기도에 응답하셨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지 물어보니까 이러한 내막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오랜 시간동안 우리 남편을 위해 금식하고 통곡하며 기도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오히려 남편은 교회에 나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예배 때 남편 구두를 교회 가지고 나와서 강대상에 놓고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구두가 먼저 나왔사오니 주인도 이 구두 따라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요. 제가 기도하긴 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지요. 그래서 그날 다른 기도는 하나도 못하고 실컷 웃다가 돌아갔는데 그 다음 주일날 남편이 갑자기 저를 따라 교회 간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요즘 계속 교회에 나오고 있답니다. 제가 하나님 한 번 웃겼더니 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16: 11
2.용서받을 기회
미국에서 서부를 개척할 당시에 텍사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하도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 아예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 한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한참 흥겨워진 술자리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렸습니다. 그 중에 한 젊은이가 옆에 앉은 친구를 권총으로 쏴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을 쏜 사람이 평소에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언제나 이웃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던 젊은이였습니다.
살인을 한 젊은이가 사형에 처할 운명이 되자 그 젊은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구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램이 담긴 탄원서가 주지사에게 전해졌습니다. 탄원서를 읽은 주지사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 청년을 만나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죄를 짓고 난 뒤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을 자포자기하여 비뚤어진 생각만 하고 나중에는 행동까지 난폭해졌습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가지고 그를 면회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여러 사람의 구명 운동 덕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큰 은혜를 그는 저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으로 인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용서하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기회를 잃고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 12:17
3.설교는 곧 삶
어느 시골 교회에 한 목사님이 취임하여 오셨습니다. 목사님은 첫 취임 예배 때 아주 감동스럽고 놀라운 설교를 해서 은혜 받은 교인들이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교인들 모두가 새로 오신 목사님을 좋아했고 정말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일이 지나서 설교를 듣는데 그 목사님께서 취임 예배 때 하신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간에도 그 목사님은 취임 예배 때 했던 설교를 또다시 하셨습니다. 교인들은 “우리가 목사님을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수군거리며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찾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실 겁니까?”
이 질문에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그 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1:22
4.인생의 초점
세계에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Rockefeller)는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자기 인생에서 100만 불의 순수한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富豪)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53세까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 비슷한 병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 가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사업은 너무나도 잘돼서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습니다. 피상적으로 교회에 나갔던 모습은 사라지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난 후 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뉴욕에 있는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료사업을 위해서 자기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린 직후 이상하게도 그는 잘 먹기 시작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거의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5.창조적인 삶
미국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가면 꽃들이 많이 있는 로스 알토힐이라는 꽃마을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데 그 곳에 아름다운 꽃이 피게된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에 이 도시에는 요한이라는 우편 배달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항상 똑같은 길로 “편지 왔어요, 소포 왔어요”라고 외치며 우편물을 배달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쳇바퀴처럼 순환되는 삶을 15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중년이 되면서 인생과 직업에 대한 회의와 위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순하고 단조로운 삶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이 우편 배달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로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매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일을 계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그 일이 너무나 지겹고 지루한데 어떻게 계속하느냐고 묻자 하나님께서 그 일을 계속하면서 보람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이 문제로 기도하던 그에게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그것 참 좋은 방법이로구나. 자, 이제부터 다르게 살아보는 거야.’
그는 여전히 똑같은 직업을 가지고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자전거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우체부 가방 안에 꽃씨를 넣고 다니며 지나가는 집집마다 계속해서 꽃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꽃씨는 죽기도 했지만 어떤 꽃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거리는 꽃의 거리가 되었고 그가 다닌 마을은 꽃마을이 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 17
6.죄에 대하여 죽은 자
한국 초대 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그 분이 얼마나 잔인하고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시커먼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등장에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된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얻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너는 요절이 났을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로마서 6:11
7. 왕자가 된 거지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을 나가서 암행 시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이곳 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보기에 그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더럽고 꾀죄죄해서 애처롭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소년을 궁궐로 데려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왕자로 삼겠노라고 공포합니다. 이제 소년은 더 이상 거지 신분이 아니라 왕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여기 저기가 찢어져 누더기가 된 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장식과 좋은 옷감으로 만든 왕자의 옷을 걸쳤습니다. 식사도 예전처럼 구걸하지 않고도 너무나 맛있고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자신이 이제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환경이 소년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소년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중드는 신하가 당황하며 “왕자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사실은 저 다리 밑에 가면 제가 세수할 수 있는 곳이 있답니다”라고 왕자가 된 소년은 말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입니까? 왕자는 아직도 자신의 신분이 거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자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이미 거지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진정한 왕자로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왕자다운 행동을 익히는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8. 한 변호사의 간증
젊은 나이에 벌써 성공의 길에 들어선 영국의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국 의사당 앞에서 비중 높은 변호를 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 많은 긴장과 부담감을 가진 나머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하여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의 인생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착란 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이 더럽고 추한 무가치한 존재라고 자학함으로써 자살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쓸모 없다고 여기며 자살하려 했던 그가 죽음의 쇠사슬로부터 풀려 나오는 데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더럽고 추한 자신의 삶이 새로운 삶으로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변한 삶의 모습과 그 사랑의 감격을 시로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없이 있도다
찬송가 190장이 바로 그의 간증의 노래입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로서 영국 문학사에 있어서 고전 문학가로 손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스가랴서 13장 1절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라는 구절을 읽다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해방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렇게 찬양합니다.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자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로새서 3:10
9.동명이인(同名異人)
명장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과 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 이 병사에 대한 나쁜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 병사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고 웃긴 꼴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병사가 잘못할 때마다 다른 병사들은 “알렉산더, 자네는 졸장부 같네”라며 나무랐습니다. 그의 행동이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했던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이 병사의 막사로 찾아갔습니다. 그때에도 아니나 다를까 이 병사는 술에 취해 바닥에 뻗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대왕이 오셨다는 소리에 그 병사는 놀란 토끼처럼 벌떡 일어나 경례를 했습니다. 그런 졸개 병사에게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병사 이름이 알렉산더인가? 나와 이름이 똑같군. 병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네 인생을 바꾸어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에베소서4:1
10. 찰스 콜슨의 획기적인 전환
저는 가끔 설교 가운데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의 이야기를 인용하곤 합니다. 그는 미국 닉슨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정치적인 권력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머리가 비상할 뿐더러 지독할 정도로 냉철한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상원의원 세 사람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킵니다. 그들은 바로 항상 콜슨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썼던 헤트필더, 휴스, 퀴에라는 의원들입니다. 찰스 콜슨이 투옥되자, 그들은 그를 위해 날마다 기도 시간을 정하여 함께 기도하였고 그를 찾아가서 위로하며 책을 주었습니다.
찰스 콜슨의 형 집행기간이 7개월 가량 남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평상시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퀴에의 마음에 그를 위해서 대신 옥살이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변호사였던 퀴에는 특수 법조문 안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형기를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법원에 제안해 보았지만 거절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퀴에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콜슨이 마침내 감옥에서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값없이 베푼 사랑 앞에 교만하기 그지없던 그의 자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남아 있는 형기 동안 그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동료 죄수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어떻게 하면 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빨래를 자청해서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죄수들은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다른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죄수들은 자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같이 봉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감동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눕니다. 콜슨은 그의 자서전에서 “평생 동안 집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나는 저들을 사랑하면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고백할 만큼 비참할 수밖에 없는 감옥에서 사랑을 베풀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는 일평생 죄수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거듭나기’(Born Again)라는 책 한 권을 발행했는데, 그 책은 한 때 미국 사회의 커다란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결심한대로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후에 그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게 됩니다.
어느 외국잡지에 탬플턴상을 수상한 찰스 콜슨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현재 미국의 가장 건강한 사상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저술가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전도자,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가장 따뜻한 이웃인 그가 새로운 이웃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어느 누구도 그가 그런 존재가 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세 사람이 나누어 준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11.작은 겨자씨의 위력
페르시아의 유명한 장군이자 대왕이었던 다리우스 황제가 구라파를 정복하기 위해 처음 치른 전쟁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군대와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때 다리우스 황제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병사를 통해 선물을 하나 보냈습니다. 그 선물은 참깨가 잔뜩 들어 있는 부대였습니다. 다리우스 황제는 그의 군대가 이렇게 많으니 너희는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의미에서 그 참깨를 보냈습니다.
깨가 가득 들어 있는 부대를 받은 알렉산더 대왕은 답장으로 작은 봉투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우스 황제에게 보냈습니다. 그 선물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작다고 우리를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칠다. 우리는 너희들을 충분히 맞이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결국은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17: 20
12. 하나님 만날 준비
월터리드 미 육군병원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마지막 임종 순간을 맞이하기 얼마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30분의 면회시간을 얻어서 들어간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시간이 다 되어 나갈 때가 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가 조금 더 있기를 원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아니,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묻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러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주머니 속에서 성경을 꺼내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구원은 무슨 업적이 있다거나 선행을 많이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내 지난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인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영접기도를 마쳤을 때 아이젠하워가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요한계시록 3: 3
13. 기초의 차이
일본 동경에 있는 제국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사람이 건축하였습니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그 기초공사를 하는 데만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매달렸습니다. 기초공사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만큼 돈도 두 배 이상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시간과 투자를 통해서 기초공사 하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결국 기초공사에 2년, 나머지 공사에 2년이 걸려 결국 4년만에 이 호텔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공사는 돈을 무리하게 많이 들여서 지은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혔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52년이 지난 후 동경에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 때 많은 건물과 도로들이 파손되었지만 바로 이 호텔만큼은 그 안에 있는 것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후로 라이트라는 이름은 일본 건축계의 신화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 24
14. 외줄 하나에 목숨 건 믿음
줄타기 곡예사인 블론딘은 나이가라 폭포(Naigara Falls)에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외줄을 걸어 놓고 신기한 줄타기 곡예에 성공해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그가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가라 위를 가로질러 외줄을 타고 캐나다 쪽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우렁찬 환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도착한 그는 박수를 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막대기를 들고 또 다시 미국 쪽으로 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예 믿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그 앞에 앉은 꼬마들에게도 “여러분들도 내가 이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꼬마들도 그렇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앞에 있는 소년들 중 한 소년을 등에 업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사람들의 대답 소리가 아까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꼬마들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맨 앞줄에서 소리치던 꼬마에게 “얘야, 네 등에 업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크게 믿는다고 소리쳤던 꼬마는 업히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꼬마에게 물으려 할 때, 느닷없이 어떤 꼬마 하나가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믿어요. 제가 업힐게요”하며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천진난만한 꼬마를 등에 업고 안전벨트로 잘 묶은 다음 다시 막대기를 들고 미국 쪽으로 줄을 타고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꼬마를 업고 줄타기를 성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믿는다고 소리치긴 했어도 막상 자기의 생명을 맡길 만큼 그를 믿어준 사람은 어린 꼬마 하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19
15 .암흑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는 이유
1930년대 미국에 큰 공황이 찾아왔을 당시, 법률가 출신이자 무정부주의자(無政府主義者)인 클래런스 대로라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이 경제 공황에 들어가자 자기의 무신론을 선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연을 할 때마다 “여러분, 이 사태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어려운 상황을 우리에게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분명히 하나님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를 비판하면서 무정부주의적인 자기의 신념을 선전했습니다.
하루는 흑인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가 무신론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꿈과 재산을 잃었고 노래까지 잃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소리치니까 갑자기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들면서 “저는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그는 “아니 어떻게 우리가 이 지경이 됐는데 노래할 수 있단 말입니까?”했더니, 그 할머니는 큰소리로 “예수님 때문에 노래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외치자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맞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때문입니다”라고 동조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새 한 무신론자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던 강연장의 분위기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는 군중들로 인해 바뀌었고, 그는 이런 군중들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어렵고 힘든 역경 가운데서도 우리들 마음에 노래를 빼앗기지 않고 기쁨과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편 40:3
16 환경을 극복한 믿음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을 끌 힘도 없는 호흡 곤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여 드디어 열 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의 의원이 되었고,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 4
17 .당당한 그리스도인
6.25 사변 당시 충남에서 강경 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 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린 듯이 행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던 사람들까지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후배인 김장배 목사님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두껍고 큰 종이를 가져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는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에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명함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종덕 목사님은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후배 목사님에게 큰 종이를 명함 크기로 자르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명함종이에 ‘강경 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도록 했습니다. 후배 김장배 목사님은 시키는 대로 쓰면서 다시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이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다른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큰일이라도 당하시면 어떡하려 구요.”
“아니 이 사람이!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그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아서 순교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16
18. 우찌무라 간조의 명언
우찌무라는 일본의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하루는 그에게 어떤 대학생이 찾아와 심각하게 질문을 합니다.
“우찌무라 선생님, 저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셨다는 이야기, 부활하셨다는 이야기 등은 정말로 제 이성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야기나 이해할 수 없는 기적 등은 빼놓고 다른 내용으로만 성경공부를 하면 안될까요?”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학생, 성경에서 사람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들을 다 제하고 성경공부를 한다면 성경에 꼭 두 가지만 남는다네. 그것은 바로 성경의 앞과 뒤 표지뿐이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로마서 4:20
19. 영생의 약속
여러 해 전 제가 수원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저를 너무나 사랑해 주셨던 나이 많으신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아 구원을 받으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이분은 평생동안 교회에 출석하신 권사님이셨지만 제 마음에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권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권사님,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서실 확신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권사님은 “확신이라뇨? 목사님, 전 자신 없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권사님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암송해 보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구절도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암송했습니다.
저는 권사님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가운데에는 권사님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믿으시는지요?”
“네, 당연히 믿죠.”
“자,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천천히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주셨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권사님, 이 말씀이 누구의 약속이지요?”
“예수님의 약속이지요.”
“그렇다면 이 약속이 진실인 것을 믿으시나요?”
“믿지요”
“그러면 이 약속처럼 권사님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신뢰하신다면 멸망치 않고 어떻게 될까요?”
여기까지 대화하다가 갑자기 권사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영생을… 멸망치 않네요! 그렇다면 저는 천국 가는 거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 16
20. 천국시민의 자격
존 웨슬레(John Wesley)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메소디스트(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종교개혁은 대단한 실수였나 보군요. 그러면 천주교인들이 다 온 모양인데 그들은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이번에도 천사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웨슬레는 천사의 대답에 큰소리로 되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이오?” 천사는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개인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인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것이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진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21. 영생의 선물
오래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미국의 모든 시민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한 어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어린 소년의 이름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였습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해서 그만 에이즈(AIDS)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어른들의 부주의로 소년의 인생은 이제 죽음의 길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너무나 밝게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하였고, 그를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소년의 이야기는 신문에 매일 게재되었고 텔레비전 등의 매체에서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거부 부동산 업자,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선물도 주고 위로하며 관심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후 라이언은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살에 죽었습니다.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 한 크리스천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 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22.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인가?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고 싶어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안내자는 방문객에게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무덤에 묻혀 있는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고, 현재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 지도 알려주었습니다. 안내자는 모든 설명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방문객들에게 더 궁금한 것이 있는 지를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온 한 여신도가 안내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해서 여러 가지 내용을 자세히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에 답을 준비하지 못한 안내자는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 10
23 자녀의 특권
미국에 월버 체프만이라는 유명한 전도자이자 목사님이셨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 어떤 교인이 13세 때 가출한 아들을 찾으러 매일 돌아 다녔답니다.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던 중 드디어 18년만에 우연히 필라델피아 역전에서 그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역전에서 막 나오려는데 어떤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이 초점 없는 눈으로 방황하며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마약환자처럼 보이는 이 청년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25전만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그는 구걸하는 청년이 자기 아들인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야, 너 톰 아니냐. 나는 니 애비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초점 없는 눈동자로 “아저씨, 25전만 주세요”라고 계속 구걸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아들을 덥석 껴안으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25전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바로 네 아버지야. 너는 나의 아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 집과 내 돈 그리도 나의 농장이 다 네 것이야. 내 생명조차도 네 것이란다. 나의 가진 모든 것이 네 것이야. 가자 집으로 가자. 그리고 나와 함께 같이 살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 8:32
24어느 한 사람의 쓸모 있는 인생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중학교 입학할 때 집안형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인데도 가정 교사로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기 자신이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성공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힘겹게 지탱해나갔던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지게 되어 그가 집안 식구들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의 첫 실패와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은 그에게 너무나 힘겹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는 종종 죽기로 결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 전체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영어 성경공부 모임에 나오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는 혹시 영어공부가 인생의 마지막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그는 인생의 주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복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암흑과 같은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한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그 후 그는 4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간증이 끝났을 때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형제의 간증은 이상하게 놀라운 감동이 있어. 만약 형제가 주님께 삶을 드린다면 주님은 형제를 놀랍게 쓰실 것 같은데 왜 전도자로 헌신하지 않소?” 이와 같은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계속 듣게 되자, 그는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 용솟음쳤습니다. 쓸모 없게만 느꼈던 나의 인생이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일은 그의 인생을 180도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에서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그의 삶을 바꾸었고, 찬송은 그의 간증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찾은 후 그가 즐겨 부르던 찬송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내 인생의 미래를 만날 수 있네.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모든 공포는 사라졌네.
그분이 내 인생의 미래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 찬송의 간증 때문에 그는 오늘도 이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저 이동원의 삶을 바꾸었던 살아계신 주님은 오늘 당신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내게 주셨던 기쁨의 삶을 당신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을 지키신 부활의 주님이 동일하게 당신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쓸모 있는 인생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다시 사셨고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 살아 계신 주님이 당신에게 기쁨의 삶, 소망의 삶을 약속하십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
25. 진주와 같은 삶
오래된 서구 풍습에는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건네는 관습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불리는 이 진주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에 대한 교훈이고, 또 하나는 눈물을 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눈물은 가치 있는 것임을 교훈 해주려는 엄마의 의도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진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진주는 본래 아비큘레대라고 불려지는 굴속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굴속에 모래알들이 굴러 들어오게 되면 즉각적으로 나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카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진주는 더욱 커져 값진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진주라도 수개월이 걸리고 어떤 진주들은 수년씩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오는 모든 모래알이 진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굴 자체의 선택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래알을 그대로 놓아 둘 수도 있지만 굴이 모래알을 일단 받아들이면 나중에는 결국 그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생산해서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하면 이것이 고귀한 진주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모래알들이 계속 굴러 들어옵니다. 그 때 우리들이 이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보배로운 진주로 만들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하나의 값진 진주를 생산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 3
26.요나가 다닌 신학대학
데어도로 에프라는 목사님이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나를 삼킨 이 물고기는 얼마나 위대하냐. 이 물고기의 뱃속은 요나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신학대학이었다.” 맞습니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고난의 의미를 깨달았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었으며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기도를 배웠고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했으며 하나님을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이 신앙의 감격을 알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또 하나의 물고기를 예비하실 수 있습니다. 환난과 파도와 커다란 물고기로부터 삼킴을 당하기 전에 주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은 정말 복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가 마땅히 배워야 할 모든 교훈을 다 배웠을 때 주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령하십니다.
“그를 토하라!”
요나는 물고기 배에서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얼마나 감격적이고 위대한 순간이었을까요? 이날은 요나가 물고기 신학대학을 졸업하는 날이었을 뿐 아니라 새사람이 되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27.하나님 앞에서
몇 년 전 제가 평양에 다녀올 때에는 북한과의 왕래가 드물었기 때문에 주위의 많은 분들이 염려하셨습니다.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함께 갔던 목사님들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평양의 모든 호텔에는 빈틈없이 도청 장치가 되어 있기 때문에 호텔에서는 특별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니 도청 장치 정도가 아니라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으니까 행동까지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겁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얘기했었는데 일단 호텔 방에 들어가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저를 감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등골이 오싹해 지면서 정말 말과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신경이 쓰였습니다. 제 평생에 방안에서 그렇게 경건한 행동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공산당이 지켜보고 있는데 목사 체면에 속옷 바람으로 돌아다닐 수 없어서 옷을 다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작은 행동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관찰하시며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생활하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지 세밀히 보시며 듣고 계십니다.
존 칼빈의 삶의 좌우명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는 일평생을 하나님 앞에 산다고 생각했기에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도 칼빈처럼 하나님 앞에서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성실하게 감당하며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생활 가운데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8
28.무사들을 위한 문구
고대 그리스의 연무장에는 무사들의 경기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주목하라! 모방하라! 반복하라!”
이 문구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한 번 적용해 봅시다.
‘주목하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도록 하신 그 사랑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방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복하라.’ 예수님을 본받는 삶의 노력을 거듭거듭 반복하십시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29.로마의 독특한 성인식
로마에서는 아들로 태어나면 한국에서 아들이 대접받는 것과 정반대인 듯 합니다. 로마는 아들에 대한 독특한 관습을 치릅니다.
먼저 아들을 양자 삼고 성인식(成人式)을 치르기 전까지는 친아들이라도 아들처럼 대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장 영리한 노예를 아들의 가정교사로 두어 자기 아들을 종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합니다. 가정 교사는 시간이 흘러 아들이 성인이 되면 주인에게 이렇게 보고합니다.
“주인님, 이제서야 아드님께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적, 도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올바른 정신 그리고 건강한 육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때서야 성인식을 치르고 아들을 진짜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갈라디아서 4:1-3
30.역사적 반성
한 배에 열 명의 사람들이 탔는데 그들은 각각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항해를 하던 중에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났는지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열 명중에 세 사람만 없으면 그런 대로 무게를 지탱해 육지까지 갈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어떤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진하여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서로 눈치만을 보고 있었습니다. 몇 분이 지났을까요?
갑자기 영국 사람이 일어나서 “대영제국의 명예와 신사도를 발휘하여 내가 먼저 뛰어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미국 사람이 “저도 카우보이 정신을 지켜 여러분들을 위해 희생하겠습니다”라며 뛰어내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만 남았는데, 그때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랍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 삼창을 하더니 발을 들어 옆에 앉아 있는 일본 사람을 걷어차 물 속으로 빠뜨렸답니다. 참으로 재미있지만 의미 있는 우스갯소리입니다.
한국이 일제통치 하에 있으면서 받았던 말할 수 없는 민족의 서러움 때문인지 아직도 한일 관계를 보면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어떻게 해서 나라를 잃게 되었는지 깊은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신명기 5:6
31.감당할 시험
어느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쇼핑센터에 갔습니다. 아들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아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아빠는 사고 싶은 물건들을 골라 아들의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한 두개는 거뜬했는데 여러 개를 집어넣으니까 점점 장바구니가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무거워하면서도 낑낑거리며 장바구니를 들고 아빠를 따라다닙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여인이 속으로 ‘속 좁은 남자지, 자기 아들에게 저렇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하다니’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그거 무겁지 않니?” 그러자 꼬마가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는 제가 얼마만큼 들 수 있는지, 제가 얼마큼 감당할 수 있는지 알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아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환난 가운데 빠져서 좌절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찾아오셔서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절망과 한계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 13
32.선택의 긴박성
마틴 루터가 말한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날 사단과 그의 부하들이 땅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전략을 짜기 위해 모였습니다. 사단이 모여 있는 모든 부하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무슨 계략으로 인간들을 사로잡겠는가?”
한 악령이 대답하길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는 의심을 넣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답에 사단은 “우리가 그 전략을 오랫동안 써 봤는데 이제는 잘 통하지 않더군. 사람들의 마음에는 종교를 부인하면서도 신은 부인할 수 없는 종교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들 마음 깊은 곳에 아직도 하나님을 찾는 열정이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는 사람들을 무너뜨릴 수 없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악령은 “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집어넣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안심하고 있을 때 지옥으로 끌고 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략도 통하지 않을 걸? 인간들이 살고 있는 그 세상 자체가 무서운 지옥 같기 때문에 지옥을 항상 두려워 할걸세”라며 사단이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악령 하나가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기독교인들만을 집중해서 공격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끊임없는 고난을 주어서 예수를 믿으면 재앙이 온다는 의식을 집어넣고 필요할 때에는 죽는 고통까지 주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단은 “그 방법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야. 예전 우리가 완전히 실패한 전략이기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네.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핍박도 많이 하고 죽이기까지 했네. 그러나 오히려 박해받는 성도들을 보며 주님을 위해 당하는 죽음을 영광스럽게 여기더군.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있다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구석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악령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급히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믿으면 된다는 마음을 불어넣겠습니다. 이 전략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지옥에서는 “바로 그거다!”하며 시끌시끌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그거야! 우리가 사용한 전략 중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인간들을 포박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 15
33.흔들리지 않는 신앙
번역 선교사인 타우센트(Townsend)는 남미를 전도하는 중에 돈 빌레모라는 한 원주민 젊은이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명령대로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전도자가 된 돈 빌레모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타우센트 선교사에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이제 사표를 내겠습니다. 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으니 받아주십시오.” 타우센트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지요?”
“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렵고 힘든지 몰랐어요. 전도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요. 이제 사람들이 욕하는 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그들의 비난을 견딜 수가 없어요. 제가 왜 그런 비웃음을 받아가면서 전도해야 하지요? 사실 제가 아쉬운 게 뭐 있어요?”
이 젊은 전도자인 돈 빌레모의 불평을 듣고 있던 타우센트가 말했습니다.
“돈 빌레모,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얼마 지난 후에 나에게 찾아와서 한 말을 기억합니까? 그 때 당신은 ‘주님께서 저를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십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사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셨으니 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도 주님뿐입니다. 당신이 지금 나에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 아뢰고 주님 앞에 직접 사표를 내십시오.”
청년은 주저하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주님께 사표 낸다고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안 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교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주님께서 사표를 받으시지 않으신다면, 그 분은 아직도 당신을 사용하셔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젊은이는 선교사의 말을 듣고 마음의 감동을 받아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선교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는 곧장 일어나서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복음 전도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 침체에 빠지는 순간이 있고 어떤 때는 신앙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4
34.그리스도인을 죽이는 마음의 부패
옛날 로마의 황제는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에 대하여 큰 위협을 느껴 신하들을 불러 놓고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황제가 먼저 로마의 법률을 강화시켜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황제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황제의 방법보다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지는 말고 잔인하게 고문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저 예수쟁이들은 심한 고문을 받기만 하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진다고 기뻐하며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이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하게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부패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주님이 기대하는 거룩함을 지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11:3
35. 올바른 선택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주일 저녁에 두 명의 젊은이가 타락하기를 작정하고 도박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박장 바로 옆에는 한 작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도박장으로 들어가던 두 청년 중 한 명은 우연히 교회 입구에 적혀있던 그 주일의 설교 제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귀를 보자 그 청년의 마음에 갑자기 죄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른 친구에게 “야, 우리 오늘 도박장에 가지 말고 교회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한번 결심을 했으면 가야지. 교회라니 무슨 소리야?”라며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결국 한 사람은 처음 결심한 대로 도박장으로 갔고, 다른 사람은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 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 청년은 설교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 회심한 청년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유명한 클리브랜드(Cleveland) 대통령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그 순간, 30년 전 도박장을 선택했던 젊은이는 감옥에서 자신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취임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한 순간의 선택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상품 광고에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우리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영원이 좌우됩니다. 클리브랜드 대통령이 도박장과 교회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운 갈등에 놓였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갈등에 끊임없이 놓이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대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잠언 14:16
36.감만 보이네
제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신자였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좀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서 주변 분들의 권유로 금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에게 40일 금식은 부담될 것 같아 20일을 작정하고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독정리 마을에 방 하나를 얻어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작심 삼일이라고 사흘이 되니까 서서히 배에서부터 요동을 치며 유혹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그 때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감나무에 몇 개의 감이 매달려 있더군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감!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감만 가득하네.’
눈을 감아도 감만 보이기 시작하는데 몇 번이고 입에 침이 고이더라구요. 그래서 감을 떼어 던져 버릴까 생각해보았지만 예수님도 40일 금식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당하셨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유혹을 이겨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1주일을 넘기고 하루하루를 보태며 넘기는데 12일 아침, 결국 나의 인내는 바닥이 나고 감을 따먹음으로써 금식기도는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한일서 2:16
37.최선의 삶
지미 카터가 쓴 ‘살아있는 신앙’이라는 책에는 그의 신앙생활에 대해 적혀 있는데 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보다 높은 삶의 표준과 기대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의 원칙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원칙은 일반적인 종교 규범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개인의 행동과 일생을 기준 하는 유일한 규범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기준들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자진해서 때로는 억지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탁월한 삶, 그것은 율법을 순종하는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가치관, 그 가치관의 실현을 위해서 드려지는 최선의 삶, 우리는 그 이하일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카터가 이러한 삶의 좌우명을 갖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을 받기 전에 유명한 해군 제독인 릭오버 제독과 면담을 갖게 됩니다. 이 해군 제독은 젊은 해군장교인 카터에게 전술과 전략에서부터 군인의 자세, 태도에 이르기까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카터는 땀을 흘리면서 대답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제독이 화제를 돌려서 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공부했는가를 물었습니다. 또한 웃으면서 성적은 어떠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카터는 성적에는 자신이 있어 점수와 등수를 대답했더니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적이 자네가 최선을 다한 결과인가?” 카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최선을 다했다고야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이때 제독은 무섭게 쏘아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카터는 더 이상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카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은 이 해군 제독이 던진 것과 비슷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실 지 모른다. 이때 만약 주님께서 이렇게 물으신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그날 그는 인생의 좌우명을 얻었습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린도전서 3: 13-15
38.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고자 했던 민족 청년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43년 7월 14일 일본에서 일본 유학생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1945년 2월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인생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그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그가 어떻게 2년 동안의 감옥생활을 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가 있었던 일본의 규수 후쿠오카 형무소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고향집에 편지해서 차입한 신약성서를 옥중에서 읽고 있다. 그는 날마다 이 책에 빠져있다.”
이 글은 형무소에서 그의 삶의 동태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적어놓은 기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최후를 마무리하고 있었던 그에게 시는 그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산 그는 진정 최선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 10
39.하나님의 시선
16세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천재 미술가 미켈란젤로를 불러 유명한 시스틴 성당의 천지창조 벽화를 그려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당시 이런 제의는 정말 미술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최대의 특권이자 위대한 특권이기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미켈란젤로는 이 엄청난 특권 앞에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누워 4년 동안 천장만 바라보며 벽화를 그리는 일에만 자신의 열정과 땀을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전 인생을 바친 벽화가 완성되었는데, 그는 여전히 천장에 붙어서 계속 작은 선을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와 가까이 지내던 어느 추기경이 성당에 들어와 둘러보더니 “그림이 다 완성되었는데 뭘 그리는가? 내가 볼 때는 다 끝났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볼 때는 끝났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리도전서 4:1-2
40.전진하는 인생
1961년 9월 30일은 이화여대 총장이셨던 김활란 박사님께서 이임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이임식장의 분위기는 그의 이임을 아쉬워하는 흐느낌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 매우 침통했습니다. 마침내 김활란 박사님께서 단상에 오르셨는데, 오르자마자 갑자기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면 아주 가며 아주 간들 잊을소냐.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씨구 좋다.” 이임식장은 갑자기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는 담담하게 이임사를 낭독하다가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앞날이 있네. 맨 처음의 일은 오직 그것을 위하여 있나니.’ 이 시는 저의 경우와 같습니다. 저 역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참으로 아쉽지만 이것으로 인생을 끝맺는 것이 아니라 다만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 떠나갑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41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소년이 깊은 산골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퍼 붇는 바람에 집 앞에 있는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소년은 혼자서 그 나무를 치워보려고 기를 썼지만 소년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이 나무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물었습니다.
“얘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 보았니?”
“예, 아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보았는데도 이 나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아니다, 네가 아직도 하지 않은 일이 한가지 있단다. 그게 무엇인지 알겠니?”
“잘 모르겠는데요?”
“너는 이 아빠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
당신은 정말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까?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 15
42.진정한 승리
이 사건은 아프리카 우간다 어떤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당시 우간다는 독재자인 이디 아민이라는 악명 높은 사람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이 교회의 목사인 케파 샘팡기 목사님는 종종 정부의 불의를 책망하는 예언적인 설교를 하곤 했습니다. 이 사건이 난 아침에도 7천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부활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목사님이 교회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5명의 비밀경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우리는 국가의 명으로 반국가 사범을 처단하기 위해 왔소”라고 하면서 목사님에게 총을 겨누었습니다.
이때 케파 목사님은 아주 담담하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아침입니다. 나는 부활을 믿는 사람으로 죽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지만 나에게 2분의 시간을 주신다면 잠시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2분의 시간을 허락 받은 목사님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간다의 통치자 이디 아민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의 명령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받들어야 하는 불행한 이 5명의 형제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간다 국민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내 사랑하는 조국이 사랑의 땅과 의의 땅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죽음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이 땅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쳤을 때, 목사님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기도를 듣던 경찰들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경찰의 통솔자인 한 사람이 무릎을 꿇으면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목사님은 피신하여 교회에 계시지 않는 것으로 보고하겠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떠나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믿음은 죽은 후의 육체적인 부활의 소망을 약속할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승리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43.아니마밈의 노래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꼭 아니마밈의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 제목인 아니마밈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본래 혹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작사, 작곡된 노래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서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동료들이 비참하게 가스실로 불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절을 이렇게 슬프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 메시아는 너무 늦게 오신다.”
그러나 그 수용소 안에 있던 젊은 외과 의사 출신의 한 유대인은 이 노래 부르기를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용소에 갇혀 죽을 수밖에 없고 언제 가스실로 데려갈지 모르는 상황 가운데서도 자신의 추한 모습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죽음을 받아들인 듯 체념하고 깊이 잠들어버린 한밤중에도 그는 홀로 일어나 어느 날 우연히 줍게 된 유리 파편 조각 하나를 날카롭게 갈아서 피가 날 정도로 면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또다시 죽음의 사자처럼 나치 군병들이 그들의 방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나치 군병들은 수염하나 없는 창백한 청년의 모습을 보고는 차마 그를 죽음의 가스실로 데려 가지 못하고 매번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갔답니다. 왜냐하면 깨끗한 청년의 모습에서 삶의 강렬한 의지가 보여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나고 그는 적은 수의 생존자들 중에 하나가 되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수용소의 문을 빠져 나오면서 아니마밈의 노래를 이렇게 고쳐 불렀습니다.
“나는 믿는다. 나의 메시아가 나를 돕기 위해 반드시 나를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서두른다.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
그 후 그의 일기가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그 일기 속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가장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은 이렇게 서두를 것이 못된다. 죽음 앞에서 살아 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
전쟁이 끝나 그는 스웨덴으로 가서 병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친척들을 불러 놓고 이 가정만은 전혀 다른 아니마밈의 영가를 불렀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우리의 삶이 막혀 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회의하면서 하나님은 내 삶을 간섭하지 않으시거나 너무 더디 오신다고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유대인 청년처럼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그가 늦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서두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44.핍박받는 자의 복
주님은 핍박의 가시밭길을 통하여 우리의 인격을 단련시켜서 주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엎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영원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열 두 제자의 마지막 최후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몸의 가죽을 벗기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도하며 순교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습니다.
안드레는 에데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맛디아는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을 맞고 쓰러진 뒤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누가는 헬라에서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칼에 목이 떨어지면서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다 죽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백 살까지 온갖 시련을 겪다가 죽어간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의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 10
45.영광의 주인공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군인들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런던 거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영국의 상, 하원 의원들과 귀족들이 새벽부터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 여왕이 자리에 앉자 마침내 영국 군인들의 개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렬의 처음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따르며 해병대가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영국 여왕을 비롯해 귀족들과 서민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 작은 부대를 향해 한없이 박수를 칩니다. 그 작은 부대는 상이(傷痍) 군인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눈 혹은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 행렬의 진정한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나고 역사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앞의 상이 군인들처럼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일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 13
46.순교의 신앙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맡아 시무하셨던 조셉 톤 목사님은 너무 유명해서 루마니아의 공산정권과 독재자들에게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루마니아 정부는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차마 이 목사님을 죽이지 못하고 추방하였습니다.
그분은 미국으로 오셔서 여러 신학교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분이 가는 곳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 분은 위대한 목회자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조셉 톤 목사님은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신학은 순교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신앙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순교의 신앙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쯤에는 공산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에 미국 복음주의 잡지사의 한 기자가 조셉 톤 목사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동구권이 개방되는 것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그 분은 “저는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기자가 의아한 얼굴로 “아니, 공산권이 무너지고 당신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은혜로 여기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그것 때문에 더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 열심을 낸답니다. 하지만 제가 두려운 것은 동구권이 개방이 되어 나의 조국에 돌아갔을 때, 내 조국의 교회가 주님을 위한 고난을 은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질 까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서 1: 29
47.하나님께로 나오게 하는 고난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깊은 수렁을 지나 마지막 벼랑 끝에 섰을 때에 자기의 삶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나를 맞으실 때 칼을 들고 나오실 지라도 나는 그분의 발 아래에 내 몸을 던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나의 최후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난의 극한 상황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절박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고도 그 분을 신뢰하고 믿는 것을 더 복되고 귀한 신앙으로 평가하십니다. 그러나 평범한 가운데 사는 사람이나 절망의 깊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폭풍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폭풍우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의 손길입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C. S. Lewis)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메가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 야고보서 5:13
48.가이사가 주님이시다
로마제국이 세계를 통치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자신의 주님이 가이사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유로 때로는 콜로세움 형장에서 야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반드시 “가이사는 주님이시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은 가이사입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든지 바로 로마 군인에게 잡혀가야만 했습니다. 가이사는 로마황제의 칭호로서 황제 이외에 그 누구도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말이 곧 법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주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결코 가이사가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걸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로새서 1:23
49.현재에 충실
11세기 독일에 살았던 왕 하인리히 3세는 어느 날 왕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를 느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수도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가 수도사가 되려는 동기가 올바르지 않다며 한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폐하,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할 규율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수도사가 되려면 폐하도 이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명령에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우리 수도원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 수도원 원장인 저와 이 수도원에서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 거기에도 순종할 수 있습니까?”
“알겠소. 그렇게 하겠소.”
“그러면 이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폐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백성 다스리는 일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위한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부터 인내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간다면 장차 우리에게 어떠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50.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평생을 동역 하신 조지 베브리 쉐아(George B. Shea)라는 복음 성가 가수의 간증입니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NBC의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저음의 바리톤은 방송을 통해 전 미국 국민에게 울려 퍼졌고 노래에 매료된 사람들이 그에게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갑자기 그는 유명 스타가 되어 여러 방송사에서 끊임없는 계약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앞으로의 그의 인생은 출세와 돈이 보장된 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는 왠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어와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그 시간에 그의 어머니도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도 아들의 출세의 길이 눈앞에 보였지만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의 책상 위에 조그마한 쪽지 하나를 갖다 놓았습니다. 그가 종이를 펼쳐보니 어머니가 자주 애송하던 밀러 부인의 성시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성시를 조용히 읽다가 감동을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멜로디를 종이에 써 내려갔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그는 지금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백발을 휘날리면서 전도와 간증과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1983년 네덜란드의 암스텔담에서 전세계의 전도자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는 특별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이 끝나자 장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끝없는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 박수가 끝난 후 그가 남긴 한마디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숙연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주신 박수 갈채와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한일서 2: 15
51.오직 그리스도뿐
모라비안의 지도자였던 진젠도르프 백작이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인 지위와 조건들을 모두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맨발로 뛰쳐나갔을 때 그의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자네의 야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뿐 오직 그 분뿐”
깊은 밤에 성 어거스틴이 성경을 묵상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 속에서 주의 천사가 나타나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깊은 꿈 속이었지만 그의 의식과 신앙을 지배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밖에는요.”
에쿠아도르 강가에 자기의 젊은 피를 뿌렸던 선교사 엘리옷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내가 진짜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 어차피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붙들려고 애쓰는 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거, 그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버린 것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만물이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도다.”
우리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어나 욕망이라는 인생의 행로를 달려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우리의 손을 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주께서 내 안에 계시면 또 내가 주 안에 있으면 내 삶이 참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내 중심에 계시니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1
52.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진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이 어떻게 해서 그려졌을까요? 최후의 만찬은 그의 나이 43세 때에 밀라노의 어떤 백작의 요청에 따라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제자들이 양옆에 앉아서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처음 그림에는 예수님께서 오른 손에 컵을 들고 계셨다고 합니다. 현재 그림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작품이 완성될 무렵 다빈치는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가 대뜸 “다빈치, 여기 예수님이 든 컵은 꼭 진짜 같은데”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말일 수 있겠지만 다빈치에게는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진짜 같이 보이는 컵을 지워버리고 예수님의 팔이 가만히 탁자 위에 올라가 있는 모양으로 그림을 수정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들 가운데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는지요. 신앙의 어려움은 삶의 초점이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한복음 3:30
53.인생의 주인
제가 미국의 디트로이트 시에서 공부할 때, 어떤 목사님께서 그 도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자동차 공장들이 많이 몰려있는 디트로이트 도시의 어느 겨울날, 시외에 살고 있는 유명한 정비사가 아침에 출근하는 도중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차를 길옆에 세워 놓고 고장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열심히 차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인은 발견할 수 없고 날씨는 점점 추워져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세단(sedan) 하나가 멈춰 서더니 노신사 한 분이 차에서 내려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비사는 속으로 ‘디트로이트에서 가장 유명한 정비사인 내가 못 고치는 차를 자기가 고치겠다니’라고 생각하며 노신사를 보았습니다. 노신사는 차의 몇 군데를 만지더니 시동을 켜 보라고 했습니다. 그 정비사는 별 기대감 없이 시동을 켜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동이 쉽게 걸린 것입니다.
‘도대체 저 노신사가 누구인가? 나도 고칠 수 없었던 차를 손쉽게 고칠 수 있다니...’ 궁금해하는 그에게 노신사는 명함 한 장 주고 떠나버렸습니다. 그 명함에는 놀랍게도 ‘헨리포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그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주 하나님, 그가 우리 인생의 홀로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후서 2: 21
54.교회의 참된 주인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한 분이 천국에 도착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목사님을 보자마자 너무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의 평신도들이 예수님께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세상에서도 목사님들이 제일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천국에서까지도 예수님은 사람을 차별하며 환영하십니까? 너무하십니다.”
이런 항의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너희들이 참으로 오해하였구나. 목사를 차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하도 오지 않다가 아주 오랜만에 왔길래 너무 반가워서 내가 이렇게 환영하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목사를 너무 바라보거나 높여서도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나의 교회라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참된 주인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56.파인애플의 진짜 주인
정글지역에서 선교하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정글에서 사역하면서 인간적인 소원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파인애플을 실컷 먹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주민 형제들과 함께 파인애플 나무를 심었는데 시간이 흘러 파인애플을 먹을 때가 되어 가보니 열매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왜냐하면 파인애플이 익자마자 바로 원주민 형제들이 따 가지고 갔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님은 너무나 황당해서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내가 필요해서 나무를 심었는데 말도 없이 열매를 모두 따 갈 수 있소?”
“선교사님, 당연히 우리가 심었으니깐 그 파인애플은 우리들의 소유입니다. 왜냐하면 정글의 법칙은 심은 사람이 주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선교사님은 “그렇다면 다시 나무를 심되, 심는 대가를 주겠소. 그러니 열매를 반반씩 나누어 가지기로 합시다”라고 말하며 확약을 했습니다.
그 후 추수 때가 되어 가보니 또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에게 그들을 위해서 운영하고 있는 간이병원의 문을 닫겠노라고 위협하기도 하고, 파인애플 주변에 개로 경비를 서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은 애간장이 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파인애플이 누구의 것이냐? 네 거냐? 내 거지.”
선교사님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욕심을 부리다가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또 다시 원주민 형제들이 열매를 모두 따갔지만 선교사님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원주민 형제들이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선교사님, 올해는 왜 우리에게 화를 내지 않으십니까?”
“여태 난 그 나무가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더러 파인애플을 훔쳐 가는 원주민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훔쳐간 사람들의 아이가 병이 난다든지 하면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것을 훔쳐서 아이가 아픈 것 같아.”
이렇게 하다보니 점점 그 정글에서는 도둑이 없어졌고, 선교사님도 자기가 심은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을뿐더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57.겉보기와 다르다
남아프리카의 한 인쇄업체에서 미국 시카고의 유명 회사로부터 인쇄기 한 대를 비싼 값에 지불하고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인쇄기에 문제가 생겼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인쇄기 판매업체에 문의해서 나름대로 손을 대보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미국 시카고 회사에서 현지로 전문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에 한 명의 전문가가 남아프리카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를 본 현지인들은 모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파견되어 나온 전문가가 20대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너무나 젊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지인들 생각에는 어떻게 저런 애송이가 우리도 해결 못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의아해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에 다시 이런 내용의 팩스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 없소. 그러니 노련한 전문가를 다시 파견해 주시오.”
이런 내용의 팩스에 대하여 시카고 회사에서는 단 세 줄로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당신들이 겉모습으로만 어리게 판단한 그 젊은이가 바로 그 기계를 설계한 장본인입니다. 그 사람만이 그 기계를 고칠 수 있습니다. 아무 말 말고 그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르십시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58.짧은 인생
한 설교자는 자신의 어떤 글에서 미국 사람들이 평균 75년 정도를 산다고 기준할 때 그 75년을 어떻게 사용하며 사는지 설명했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 사람들은 20년은 잠자는 데, 20년은 일하는데, 7년은 노는데, 6년은 먹는데, 5년은 텔레비전 보는데, 5년은 내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고민하며 옷을 사는 쇼핑에 시간을 보내고, 3년은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일에 소모하고, 2년 반은 화장실에서, 2년 반은 잡념과 잡생각을 위해서 그리고 일생 중 2년은 커피를 마시는 일에, 그리고 1년은 전화 받는 일 등에 75년의 시간을 사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나눠 생각해 보았습니다. 15살이라면 그 학생은 아침 9시 38분을 지나고 있는 것입니다. 20세라면 10시 51분, 25세라면 12시 4분, 30세라면 1시 17분, 45세라면 4시 56분, 50세라면 6시 8분, 55세라면 7시 55분, 60세가 되면 저녁 8시 34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65세라면 9시 47분, 70세라면 11시, 70세를 넘으셨다면 당신은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결산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 짧은 인생에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골로새서 4: 5
59하나님이 맡기신 시간
수년 전에 우르바나(URBANA) 세계 선교 대회에서 런던의 세계적인 신학자이고 목회자인 존 스타트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설교 중반에 사람들은 계속해서 박수 갈채를 보냈는데, 그 때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은 시계를 보셨습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요란한 박수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자, 목사님은 앉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제게 할당된 설교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았으니 제발 제 시간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그 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기 위하여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디모데전서 1: 12
60.시간을 잘 사용하는 지혜
교회 역사에서 짧은 생애 동안 엄청나고 극적인 성취를 이룬 모델을 든다면 존 웨슬레(John Wesle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웨슬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만약 10시간 후에 오셔서 우리 생애의 종말이 된다면 그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때 웨슬레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내가 계획한 대로 살 것입니다.”
이 짧은 대답을 통해 그의 삶이 얼마나 철저하게 기도와 계획 속에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레는 그의 생애 50년 기간에 42,000번의 설교를 하였고, 200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약 40만Km의 전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50년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먼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하는 동안 그의 하루하루를 철저하고 빈틈없이 계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작한 감리교 운동과 감리교도들을 가리켜 영어로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방법, 규율, 질서를 뜻하는 ‘메소드’(method)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초기의 감리교도들이 얼마나 철저한 계획과 질서 속에서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5, 16
61.시간의 청지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입금을 하면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안에 반드시 이 돈을 써야 하는데 조건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익하게 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1,44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금된 돈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은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그 돈을 찾아서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기분 좋게 다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또 쓰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는데 그 돈을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1,440만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1,440분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이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7: 4
제2부 요구할 대상이 있는 행복
1.우울한 잔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선교사님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의 표정이 항상 저렇게 울상이지? 특별히 한국 교인들은 예배당 안에만 들어오면 그렇게 짜증스럽고 울상인 분위기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네.”
그 질문에 저는 한참 생각하다가 별로 신통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인들이 늘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웃으시면서 다시 반문했습니다. “아니, 한국 교인들은 그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잊어버렸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 15
2.변화의 법칙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생산의 80%는 20%의 사람을 통해서 생산되고 우리가 소비하는 80%의 소비는 20%의 사람들이 소비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경영학에서는 80대 20법칙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어느 학자가 근면과 성실의 상징인 개미를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자가 개미를 자세히 연구해 보니 실제로는 개미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80%의 대부분의 개미를 열심히 일하는 20%의 개미만이 먹여 살린다는 얘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오늘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 중에 20%를 차지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추구하며 주님의 바램처럼 소금과 빛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회와 역사는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20%가 아니라 10%만이라도 정말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말씀을 삶의 원리와 지침으로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 나라 사회, 문화, 경제, 역사 모두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 5:13
3.환상을 좇는 어리석은 자
크롬웰(Cromwell)은 영국의 유명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며 수상까지 역임한 바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있어 가장 인기가 많고 최고의 권력을 가졌을 때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크롬웰이 그의 가장 가까운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시골로 돌아가고 싶네. 이제부터는 작은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조용히 주님을 섬기고 싶어.” 그의 부하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상 각하, 각하께서는 아직 충분히 능력이 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골로 떠나려고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힘차고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결코 환상을 좇지 않네. 오직 주님의 뜻을 좇고자 하네."
크롬웰에게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권력이나 존경받는 것이 환상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즐겨 보는 동화책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맑은 날에 엄마와 어린 딸이 넓은 들판으로 소풍을 나왔습니다. 아이가 꽃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잡으려고 쫓아가자 어머니는 딸에게 급하게 소리질렀습니다.
“안돼, 거기로 가면 안 된다." 어머니는 아이가 나비를 보느라고 바로 앞에 있는 절벽을 보지 못한 것을 알고 소리지른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권력과 성공의 바로 건너편에는 어쩌면 인격의 파멸과 영혼의 파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환상을 좇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 17
4.적용하기 어려운 말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마크 트웨인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께서 성경을 읽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이해하시나요?”
그러자 마크 트웨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마음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는 말씀조차 삶에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요한복음 6:63-64
5.1페니의 힘
영국의 어떤 교회에서 5살 먹은 소년이 지정헌금을 했습니다. 그 소년은 1페니를 헌금하면서 이것으로 꼭 신약성경을 사서 인도에 보내달라고 지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그냥 우습게 지나칠 수 있는 이 5살 된 소년의 헌금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의 뜻대로 돈을 조금 더 보태어 아주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사인을 넣어 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목사님과 소년은 그 일을 잊었습니다.
20년이 지난 후 목사님은 인도의 어떤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참으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절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말하기를 20년 전 어떤 선교사가 찾아와서 작은 신약 성경 한 권을 건네 주셨는데, 그 성경이 복음화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 떨어지고 남루한 작은 신약 성경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허름한 신약성경의 마지막 표지에는 20년 전 자기 교회의 5살 짜리 소년의 사인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 2- 3
6.십일조의 축복
시골에 살던 열 여섯 살 된 어떤 소년이 가슴에 큰 꿈을 안고 뉴욕 도시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뉴욕의 바닷가를 거닐다가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의미 있게 삶을 사는 방법까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는 무슨 재주가 있니?”
“저는 시골에서 아버지와 함께 비누나 양초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요.”
“그러면 비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일해서 돈을 벌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는 대로 십일조를 드리거라. 만일 하나님이 너에게 계속 더 큰복을 주시거든 십일조만 드리지 말고 십의 이조, 십의 삼조, 십의 사조, 그 이상까지 드려서 하나님을 위해 멋있는 삶을 살아보렴.”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렇게 해볼게요.” 그 그리스도인은 소년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 소년은 비누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인의 말대로 꼬박꼬박 하나님께 정성껏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조금씩 잘 풀려나가게 되어 조그만 비누공장을 인수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속적인 축복으로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비누 공장뿐 아니라 양초와 치약까지 만드는 공장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콜게이트 치약’을 만든 윌리암 콜게이트(William Colgate)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7.하나님 돈은 내 돈, 내 돈은 내 돈
주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주일학교에 다니는 유치부 꼬마 아들에게 헌금을 줍니다.
“우리 예쁜 아들, 엄마가 동전을 몇 개 줬지? 두 개지? 한 개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리고 나머지 한 개는 네가 사먹고 싶은 것을 사먹는 거야.” 엄마는 아들에게 돈을 주면서 꼭꼭 다짐을 해 둡니다. 엄마가 동전을 두 개 준 이유는 혹시 동전 하나만 주면 교회에 가다가 다른 것에 유혹을 받아서 쓸까봐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노래를 부르며 교회로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발을 잘못 딛어 넘어지는 바람에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 두 개 중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떨어진 동전이 하수구 속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것을 본 꼬마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합니다.
“아이 참, 하나님 동전이 하수구 속으로 들어갔잖아.”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14
8.하나님께 빚진 자
그리스도인이었던 A. A. 하츠는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십만 불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파산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에 그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감동을 받은 하츠는 그날 저녁에 자기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면서 상당한 액수를 교회에 헌금하였습니다. 친구와 친척은 물론 아내까지도 그의 행동에 무척 놀랐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빚을 많이 진 상태에서의 그의 결정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 때 하츠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업이 조금만 더 잘되면 주님께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구요. 저는 마음으로만 헌신하려고 했던 거지요. 그런데 오늘 새벽 우연히 말라기 말씀을 읽는데, 그 말씀 가운데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만 정작 내가 빚을 지고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분의 빚부터 갚기로 결심하여 헌금을 한 것입니다.”
그 후 하츠는 사업을 재기하여 성공하였고 신화적인 백만장자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재산으로 복음 사역을 위해 힘쓰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라기 3:8
9.아빠 마음은 달라
때로 사람들은 운전면허를 따기 전에 운전하는 법을 조금 배우고 나면 너무 재미있어서 자꾸만 차를 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운전을 배울 때 얼마나 운전하고 싶어하든지 시간만 나면 열쇠를 달라고 해서 운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열쇠만 주고 혼자 내보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아빠, 차 열쇠 주면 멀리 나가지 않고 집 앞에서 조금만 타고 올께”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쳐다봤습니다. 서로 한참을 째려본 후에야 아이는 “아빠, 난 알아”하면서 가더군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너는 아빠를 몰라”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장성한 성인이 되어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열쇠를 주고 싶지만 아직 때가 안 되었기 때문에 열쇠를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아빠 마음을 아들은 모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주님이 주시는 경계와 금지의 말씀이 무겁지 만은 않습니다. 그것이 나를 위한 말씀이고 나의 유익과 축복 그리고 인생의 승리를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면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큰 감격일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이 시대를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6; 32
10.존재를 원하시는 하나님
한 선교사가 인디안 부락만을 찾아다니며 선교하다가 어느 날 인디안 추장을 전도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인디안 추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후 그리스도 안에서 삶이 변화되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습니다.
얼마 지난 후 선교사에게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고자 사슴가죽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선물을 드리면서 “선교사님, 우리들은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이 사슴가죽을 하나님께 바치기 원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선교사는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사슴 가죽을 쓸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인디안 추장은 실망하며 돌아가더니 얼마 후에 아주 멋진 백마를 가지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선교사님 이것은 나와 아주 중요한 사람들만 타고 다니는 귀한 말인데 이 말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선교사는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장은 더욱 낙심하여 돌아갔고 그 다음에는 뼈로 만든 머리장식을 가지고 다시 왔습니다. 머리장식을 보고 이상이 여긴 선교사가 “왜 이것을 드립니까?”라고 물어보니, “이 장식은 추장의 상징으로서 나의 권위와 명예까지도 다 주님께 바친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선교사는 “미안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이 장식이 쓸모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낙심하면서 “그러면 내가 무엇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저의 소중한 모든 것은 다 바쳤고 이제는 제 생명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당신의 생명을 원하십니다.” 그리고는 성경을 펼쳐 인디안 추장에게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11.다스리지 못한 분노
‘나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말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함으로 큰 불행을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클레토스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인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서 장군으로 봉사하였습니다. 한번은 이 친구가 술에 잔뜩 취해 알렉산더의 많은 군졸들 앞에서 대왕을 모욕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 알렉산더 대왕은 순간적으로 옆에 있던 군졸의 창을 빼앗아 클레토스에게 던졌습니다. 죽이려는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창이 그 친구의 가슴에 정확히 꽂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순간적인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하며 자살하려고 했다가 옆에 사람들의 만류로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는 정복했지만 자기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16:32
12.미지의 신
제가 처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지 3년 동안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神)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교회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 청년회 총무와 회장이라는 중임을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갑자기 담임 목사님이 저에게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그날 따라 매일 가지고 다니던 기도문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매우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기도하나 못해서 자존심을 깎이기는 싫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멋지게 기도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갑자기 영감처럼 떠오른 말이 있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오! 미지의 신이시여.”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서 3:2
13.연약한 피조물
인류의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의 군사적인 천재를 말하라면 단연 나폴레옹일 것입니다. 이 나폴레옹이 군사를 이끌고 러시아를 침략하기로 계획을 세웠을 때, 그와 가까웠던 신복이 그에게 나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번만큼은 러시아 침략을 취소하시면 좋겠습니다. 정복한 나라들도 많은데 이만하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마지막으로 간곡히 폐하에게 매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시여! 모든 일은 사람이 계획하지만 하나님만이 그 일을 성취시키십니다. 이번 러시아 침략은 취소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나는 모든 일을 계획도하고 성취도 한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정복의 계획은 나폴레옹 생애에서 몰락은 알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나폴레옹은 센트 헬레나의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그 한계성을 받아들여야 할 연약한 피조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14.여호와는 나의 목자
한 부흥 강사 목사님이 어떤 교회의 집회에 앞서서 그 교회로부터 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교회 사무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는데 설교 제목과 본문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본문이 시편 23편이고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 직원은 제목이 이상하게 들렸는지 “그것이 전부입니까?”라고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맞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사무직원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가 전부입니까?”라고 되묻는 것입니다. 사무직원의 물음에 목사님이 하도 답답하셔서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다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하고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이 때 목사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무직원에게 갑자기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목자가 되신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여호와가 목자시면 족하군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 1
15참된 성별(聖別)
한 사람이 유명한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 다가와서는 “목사님! 안식일에 소가 구덩이에 빠진다면 건져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두고 교회에 가야 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당연히 그 소를 건져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안식일마다 계속 구덩이에 빠지거든 제발 그 소를 팔아 치우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그 사람에게 안식일에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날들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헌신과 성별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리도전서 6:12
16.모방과 진짜의 차이
오래 전 미국과 중국의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고 있던 한 중국 사람이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국사람이 어찌나 미국 사람과 똑같은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제스추어에 얼굴 생김새까지 미국 사람과 똑같았습니다. 아마도 중국 정부에서 10억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미국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한 명을 뽑아서 아주 철저하게 훈련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할 지라고 그 사람은 미국 사람과 비슷할 뿐이지 진짜 미국 사람은 아닌 중국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으로 태어난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겉모양만 비슷하게 모방했을 뿐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17.뜻이 맞는 자와의 동행
80년대만 해도 골프라는 스포츠는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지 않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만큼 대중화되지 못한 고급 스포츠였지요. 그러나 박세리 선수의 등장으로 골프는 왠지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친숙한 스포츠가 된 것 같습니다.
골프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프로 골퍼가 미국의 제 38대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의 초청으로 함께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답니다. 이 기회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영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필드를 거닐며 자신의 기상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분된 일입니까? 골프 회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친구는 무척 궁금한 듯이 물었습니다.
“자네, 지금 심정이 어떤가?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친 소감 말일세.”
“소감이라고? 말도 말게나 기분이 너무 언짢았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모두가 자네를 부러워했는데.”
“대통령만 나온 게 아니라 빌리 그래함 목사도 함께 나왔거든.”
“빌리 그래함 목사가 자네 기분을 언짢게 만들기라도 했나? 혹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던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면 도대체 기분이 왜 나빴는데?”
“자네도 나와 함께 골프를 쳐봐서 잘 알다시피, 다른 때와 달리 골프 칠 때는 내 입버릇이 좀 거칠지 않은가? 더욱이 그린에서 퍼팅 할 때면 약간씩 욕을 내뱉어야 시원스럽게 경기가 풀리는데, 나와 함께 한 대상이 이 나라 정부와 교회에서 가장 높은 분들이니 마음놓고 욕을 할 수가 있어야지. 정말 오늘의 골프 경기는 최악이었네.”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아모스 3:3
18.진리를 찾는 사람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John Bunyan)은 인생과 영혼에 대한 의문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기 전까지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분명히 깨닫기 전까지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리라. 아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구 어디라도 갈 것이며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심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깨닫게 해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는 주님을 찾은 그 놀라운 감격을 기록하여 위대한 저서, ‘천로역정’을 남겼습니다. 그 책에 나타난 기독교도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자 지금도 진리를 찾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위대한 주의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천로역정’에서는 크리스천이라는 주인공이 순례의 여정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신실’과 ‘소망’이라는 이름의 두 사람과 만나 함께 길을 가다가 의미가 없는 헛된 박람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장사꾼들은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물건들을 사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한 장사꾼이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사길 원하십니까?”
이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기 원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얻어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것이 아닌, 물질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대답을 얻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들은 허무하고 불안한 마음에 영광스러운 진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
19.정글은 내가 곧 길
아프리카에 파송된 선교사 한 분이 선교 대상 지역을 답사하는 도중에 깊은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 한 사람을 가이드로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주민이 안내하는데 계속 이상한 곳으로만 다니며 정글 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당신 도대체 길을 아시오?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오?”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원주민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정글에는 길이 없어요.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6
21.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제가 진지하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였지만, 처음 3년 동안은 ‘도대체 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65년에서야 진정한 복음을 찾았습니다.
그 때까지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끌어안고 답답해하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교회를 다녀보았지만 별 차이가 없고 결국 기독교라는 것이 도덕의 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의 독특성과 왜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야간 신학교를 기웃거리면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캐나다의 오스왈드 J. 스미스 목사님이 쓴 ‘구원의 길’이라는 작은 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구원의 진정한 길이 아닌 것 여러 가지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노력과 도덕적인 선행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갈라디아서 2장 21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저는 저의 노력을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이 십자가에 내 대신 죄 값을 치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깊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오만했던 지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날 밤의 깨달음은 저에게 형언할 수 없는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복음과 십자가가 참으로 제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성경의 말씀이 한 구절 한구 절 저를 지배하고 감격하게 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성경을 들고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복음을 중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21
21.진리를 무시한 군중심리
어떤 심리학자는 군중 심리가 개인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한 실험을 했습니다. 비슷한 크기의 두 판에 하나는 검은색으로 칠하고 또 다른 하나는 회색으로 칠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과 50명의 학생 중 40명의 학생들끼리만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은 이러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판이 검은색입니까?”라고 물으면 40명의 학생 모두가 회색 판을 가리키기로 한 것입니다. 이때 나머지 10명의 학생들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를 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심리학자는 이 실험을 열 번에 걸쳐 실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열 명 모두가 진짜 검은색 판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계속 실험을 반복하자 마지막에 가서는 한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9명이 모두 회색을 검은색이라고 가리켰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진리를 좇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누가복음 23:18
22.평화의 제물
돈 리처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로부터 들은 간증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속한 큰 섬인 이리안자야에는 식인종이라고 알려진 사위 족속 부락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워낙 싸움을 즐기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족속이라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들은 배반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보다 가룟 유다를 더 받아들이고 영웅으로 떠받드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전통의식을 바라보다가 아주 멋진 영감을 하나 얻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두 부족이 싸우다가 한 부족이 지면 진 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상대 부족에게 제물로 갖다 바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치름으로써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그 모습을 보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생각해 냈고 그 의식이 행해질 때 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평화의 아이를 주셨으니 이는 아이가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 평화의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그때부터 이 사위 족속은 복음을 깨닫게 되었고 점차 싸움을 즐기며 공격적이던 그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로마서 5:10
23걸인 행세하는 부자 걸인
영국에 사는 줄리안 모리스는 어린 시절 미아가 되어 구걸하며 삶을 유지했던 걸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굉장한 부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졸지에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부자가 되었는데도 걸인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매일 아침 날이 밝으면 걸인의 옷을 다시 입고 면도날이나 비누, 샴푸 같은 것을 집집마다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도 일년에 한 두 번쯤은 파리를 비롯한 구라파의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하고, 한 달의 한번은 자기의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런던의 초호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날이 밝으면 다시 비누와 샴푸를 들고 나가 집집마다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다 떨어진 남루한 옷차림과 초점 없이 흐릿한 눈동자를 보면 그는 영락없는 거리의 걸인이었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18-19
24.신분에 맞는 삶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는데 목사답게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다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시간을 갖게 되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에 저희 내외가 하와이로 모처럼 만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랜 간만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하와이에 있는 동안만큼은 실컷 편하게 지내고 옷도 야하기 입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한껏 폼을 잡고 호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떤 사람이 타면서 저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이동원 목사님 아니십니까?”하는 것입니다. 당황한 쪽은 나보다도 내 옆에서 아주 야한 옷을 입고 서있는 아내였습니다. 괜히 그 사람에게 소개하지 않으면 오해할 것 같아 아내를 소개하자, 아내는 몸둘 바를 몰라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해변을 향해 가면서 아내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보, 이 세상에 피할 데가 어디 있겠어요. 당신과 저는 어차피 공인이에요.” 아내의 말을 들으며 이제부터는 해변에 갈 때도 검은 양복은 한 벌씩 가지고 다니기로 결심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립보서 1: 27
25.연약한 심령
아프리카에는 뱀잡이수리라는 아주 특이한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평소에는 잘 날아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고통을 감지하거나 위험한 것을 느끼면 갑자기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하고 맙니다. 날 수 있는 능력을 망각한 새는 땅을 기어다니다가 끝내는 목숨을 잃어버리거나 다치게 되는 특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뱀잡이수리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당한 훈련에 의해서 의지적으로라도 날마다 조금씩 기도를 하며 주님을 바라보고 삽니다. 그러나 막상 기도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갑자기 기도를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며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 26
26.내가 산 것이 아니요
한국 초대교회 선교사였던 모펫트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모두 마치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위해서 비석을 세우자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의 개념이 아니라 기념의 차원에서 비를 세우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모펫트 선교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은인이자 내 신앙의 선배이십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분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분의 동상을 세우신다면 나는 도끼로 그 동상을 때려부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우십시오. 또 다시 나는 부술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최권능 목사님의 충정을 이해하신 모펫트 박사의 간절한 만류로 기념관만을 세우기로 결정되었다고 교회사에 남아있습니다. 칼빈도 자신이 죽은 후에 자기의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그것은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가리워질까 두려워한 이유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 20
27.우리는 하나님 편
미국 남북전쟁 중 북군이 남군에 비해서 전세가 불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링컨에게 한 참모가 와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각하, 하나님은 우리 북군 편에 계실까요, 남군 편에 계실까요?”
이 질문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신가, 적의 편에 계신가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지 않네. 오직 나의 고민은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나 하는 것이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바라지만, 진정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만한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 3:5
28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2차 세계 대전 초기에 영국의 작은 기선 한 척이 중요한 임무를 띠고 미국을 향해서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적선들의 공격을 피해 미국까지 항해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선장에게 임무를 지시한 상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이 비밀부호를 사용해서 무전을 치면 당신에게 곧 답신이 갈 것이오.” 선장은 이 말을 믿고 그 험한 바다를 자그마한 배로 헤쳐나갔습니다. 저 멀리서 갑자기 적의 함선이 나타나자 그는 재빨리 지시 받은 비밀부호로 무전을 쳐서 이런 답신을 받았습니다.
“다 알고 있다. 우리도 적을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선장은 이 답신을 받고 용기 백배하여 무사히 자기 배를 끌고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배가 항구에 들어 올 때, 그는 자신의 배 바로 뒤에 보이지 않던 배 한 척이 갑자기 나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배는 바로 잠수함으로서 적들로부터 선장의 작은 배를 보이지 않게 지켜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곁에서 계속해서 용기를 불어넣었던 그 답신- “두려워 말라. 우리가 그대 곁에 있음을 잊지 말라.” - 때문에 위대한 작전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29.한 소년의 헌신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동안 계속되는 집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할 사람을 계속해서 초청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마지막 날, 한 작은 소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동안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이 겨우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람,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이 소년만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으며, 그 소년은 “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에게 아프리카를 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리빙스턴입니다. 작은 한 소년의 눈에 일어났던 불꽃이 흑암의 아프리카 대륙에 새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단지 먹고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전부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마가복음 4: 31- 32
30.더 높으신 분의 부름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했습니다. 독학을 하면서도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여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케리의 친척동생이 자신이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 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부름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서 인도로 떠났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31.하나님께 영광 돌린 무신론 철학자
무신론 철학자인 머들린 머리 오헤어(Maudlin Marey O'Hare)는 미국의 무신론 협회장을 지냈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반 크리스천 운동(Anti Christian Movement)의 핵심 리더였습니다. 그가 몇 해전 미국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면 안 된다고 하는 기도금지 운동을 벌였고, 결국 이 문제를 가지고 법정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그가 법정에서 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카고 법원에서 내린 마지막 판결은 그의 승리였습니다. 승리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는 이기는 순간, 법정에서 손을 들어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모습이 기자들 눈에 띄었고, 뉴스에 보도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무신론자가 승리의 축하를 하나님께 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칼 융(Carl Jung)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의 여러 의식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의식은 신(神) 의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신론자의 마음속에서도 그렇다”는 말을 했습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온 세월을 보내는 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그러기 위해서 주야로 신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절대로 벗어버릴 수 없는 의식이야말로 신 의식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고 신앙을 떠나서 결코 살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의미로든지 종교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 데, 이 필요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 23
32.어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께서 어떤 원주민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에 감탄하여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 할머니는 문맹에다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전도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교사님을 찾아와서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선교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의 요구대로 성경을 찾아 빨간 줄을 그어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글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할머니인데 왜 그런 부탁을 할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시간쯤에 동네 학교 정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라며 말을 건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하니 학생들은 거절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요?”라며 다가옵니다.
“사실은 이 할미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눈이 잘 안보여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 빨간 줄 쳐 놓은 부분만 좀 읽어주겠어?”
그러면 학생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줍니다.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학생은 방금 읽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가르쳐줄게.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거야. 나와 학생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게 된단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많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그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로새서 4:3
33.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미국에서 유명한 바바라 월터는 저널리스트이자 텔레비전에서도 매우 인기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의 남편도 유명한 기자이자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여자와 남자가 부부가 되었다면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할텐데 이들은 이혼을 했습니다.
이 여자와 이혼한 남자는 ‘이제는 좀더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겠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적합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며 컴퓨터 통신에 광고도 내고 사람들의 추천도 받아서 컴퓨터에 많은 여자들의 리스트와 자료들을 입력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 여자들 가운데 자신과 잘 맞고 어울리는 사람을 순위별로 살펴본 결과 10위까지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위 중 가장 적합한 결과로 나온 1위의 여인은 바로 자기와 이혼했던 바바라 월터였던 것입니다. 부인을 바꾸면 남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 때문에, 상대방이 바뀌면 좀더 우리 가정이, 직장이, 사회가 바뀌겠지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 변화되고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 42
34.부정적인 삶의 태도
오래 전에 미국에서 방영되었던 스누피(snoopy)라는 만화 중에 한 남편이 매사에 부정적인 자기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작가였던 부인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든지 항상 글의 첫머리에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이런 부인의 글을 보다 못한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좋은 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써보지 그래?”
“그럼 어떻게 써야 하는 데요?”
“음, ‘옛날 옛적에’라는 말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부인이 남편의 조언을 좋게 받아들여서 큰마음을 먹고 첫 문장을 다시 썼습니다.
“옛날 옛적에 어둡고도 우울한 밤이었습니다.”
이렇듯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에베소서5:4
35.히스토리컬(historical)과 히스테리컬(hysterical)의 차이
나타난다라는 단어에는 역사적(historical)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는 단어와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남자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마누라는 부부 싸움을 할 때마다 얼마나 히스터리컬(historical)한 지 모르겠어.”
그러자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지적하기를 “그럴 때에는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컬(hysterical)이라고 하는 거라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아, 이 친구가… 내가 영어를 모르는 줄 아나? 나도 잘 아는데 우리 마누라는 너무나 히스터리컬(historical) 하다구.”
친구가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 마누라는 싸울 때마다 늘 과거를 들추기 때문에 히스터리컬(historical)이라고 한 거라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32
36.장점을 보는 눈
C. S. 루이스(C. S. Lewis)는 성경을 읽다가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 다음과 같은 풍자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루이스는 의기양양하게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고양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너 지금 어디를 갔다오니?”
“예, 저는 영국의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푸쉬야, 그럼 너는 런던에 가서 무엇을 보았니?”
“저는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그 고양이는 크고 아름다운 런던의 왕궁에 어렵게 가서는 위대한 엘리자벳 여왕이나 황홀하고 찬란한 궁궐 안을 본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겨우 여왕의 의자 밑을 기어다니는 생쥐를 보고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은 보지 않고 그 안의 어두움이나 단점들만 캐내어 보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37.청년과 노인의 차이
시드니 그린 버그(Sydney Greenberg)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을 믿으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을 믿지 않으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인생을 즐길 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의 전통과 방법에만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참으로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과거만을 회상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친교와 즐거움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행복을 갈망한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회상만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사랑을 줄줄 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만약 우리가 꿈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청년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을 포기하고 오늘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는 노인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1-3
38.의인은 없다
네 명의 그리스도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어느 날 야고보서를 공부하던 중에 그들은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약 5:16)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약점에 대하여 서로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한 사람이 자기의 약점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긴 하지만 줄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서 교회에 갈 때에는 담배 피우고 나서 입을 닦고 간다네.”
두 번째 사람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실을 말할 때 자꾸만 거짓말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네.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세 번째 사람도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인이면서도 아직 도벽을 버리지 못했어. 남의 물건만 보면 자꾸만 손이 간다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네 번째 사람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야, 너는 약점이 없냐? 너도 자백하라고!”
세 사람이 모두 재촉하니까 한참 후에야 네 번째 사람이 고백을 했습니다.
“실은 난 남의 약점을 알기만 하면 그것을 불고 다니는 것이 내 약점이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39.빈손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들어갈 관의 양쪽 옆에 구멍을 내라. 그리고 내 양손을 관 바깥쪽으로 내 밀어라!”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대로 관 양쪽으로 난 구멍에 손을 내밀어 그가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이 그의 주변 나라를 모두다 정복할 때, 그는 달을 쳐다보면서 ‘이제 나는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알렉산더 대왕도 다른 이들처럼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들을 붙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디모데전서 6:7
40.황금의 손
그리스 신화 중에 나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마이대스 왕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이대스 왕에게 낯선 신이 찾아와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그래서 이 왕은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소원을 말하자마자 왕이 만지는 모든 것은 다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신이 난 왕은 하루종일 황금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만지는 모든 사람들이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황혼 녘에 절망하며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 어리석은 마이대스 왕의 절규를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정직한 통찰력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다가 삶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 우리들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누가복음 12:15
41.세상 부요의 허무함
1888년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로 당대에 명사가 되었고 수많은 돈을 벌어 사람들의 관심과 촉망을 받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일어나자마자 평상시처럼 신문을 읽으려고 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떤 기사의 서두에 자기가 죽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의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그가 죽은 것으로 기사를 냈던 것입니다. 작은 실수로 실린 기사였지만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망 기사 앞에서 깊은 침묵과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서 재물과 명성을 얻었지만, 결국 내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제조업자가 드디어 죽다”라고 실린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노벨 평화상이 시작된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 돈을 벌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할 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복음 12: 21
42.허무한 세상
요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유머 중에는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한 버스가 어떤 길을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내서 그 안에 타고 있던 많은 승객들이 죽었는데 그들 중 가장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억울하게 죽은 첫 번째 사람은 96번 버스를 타려다가 69번 버스를 96번으로 착각하고 탄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결혼식을 하루 앞둔 젊은 총각, 세 번째 사람은 버스가 출발할 때 놓칠까봐 급하게 달려와서 간신히 버스를 탄 사람, 네 번째 사람은 버스 안에서 졸다가 자기가 내려야 할 곳에서 못 내리고 한 정거장 더 가다가 죽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웃기지요. 그런데 이 웃음 뒤에 결코 울어 넘길 수 없는 진리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런 비극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 103: 15
43부(富)의 허무
미국 역사 중에 모든 미국인들의 생활에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자냐 하면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를 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하고 죽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의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리트의 회장이었던 J. 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잠언 23: 4,5
44.영원의 값어치를 아는 법
한 로마의 황제는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매일 아침 신하가 문안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폐하시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황제는 이 신하의 아침 인사를 통해 죽음을 인식하고 그의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 그리스의 철인은 사랑하는 제자가 짧고 허무한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영원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시간의 허무를 통해서 비로소 영원의 의미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시간의 허무를 깨달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영원의 값어치를 알게 됩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욥기 14:1, 2
45.소망을 이루는 기도
펜실베니아주의 필라델피아 근처에 가면 시골답지 않은 아주 큰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세워진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본래 이 마을에는 교회가 없어서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도시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사는 스잔이라는 어린 소녀로 인해 교회가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녀 스잔은 항상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마을에 교회를 세워주셔요. 많은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 기도는 스잔의 꿈이었고 열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잔은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 어린 나이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스잔은 세상을 떠났고, 그 소녀가 누었던 자리 밑에는 그녀의 간절한 기도와 열망이 담겨진 편지 한 장과 그 속에 마지막 헌금 5달러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후 스잔의 이야기는 마을 주민들과 미국 전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는 그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어 모두 앞다투어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 소녀를 기념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마을에 아름다운 예배당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소녀의 작은 기도와 5달러 짜리 지폐하나가 가져온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편 37:5
46.기도의 확실한 응답
기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조지 뮬러(George muller)는 자기 평생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건 만해도 무려 50,000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시간을 많이 들여서 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다섯 친구의 구원 문제였습니다. 뮬러는 다섯 명의 친구들을 위해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한 두 사람이 믿기 시작해서 3명은 구원받았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친구가 두 사람 있었습니다.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무려 52년 동안이나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제 노년이 되어 병석에 누운 뮬러는 서서히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남은 힘을 가지고 사랑하는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하기를 간청했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 날, 그의 안 믿는 친구가 우연히 그곳에 참석했다가 뮬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친구의 구원을 보지 못하고 뮬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그때까지 안 믿고 있었던 친구가 뮬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무려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뮬러가 죽은 바로 그 해 그 소식을 들은 이 친구는 결국 예수님를 믿게 되었습니다. 믿은 후 그 친구가 전 영국을 순회하면서 이러한 간증을 했습니다.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모두 응답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기도는 다 응답된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 7
47.그릇된 적용
제가 맨 처음으로 목회를 시작한 곳은 경기도의 자그마한 어느 시골 교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저의 설교가 청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해 매우 민감했었습니다.
시골 교회에 내려간지 서너 주간이 지난 어느 주일날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날 저는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감격스러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고 설교를 끝냈습니다.
예배 후에 문 앞에 서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성도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를 하는데 한 청년이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며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의 설교 마지막 부분 중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고 기도하면 된다는 말씀이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대로 전도사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아파서 죽게 된 돼지를 위하여 안수 기도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청년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는 말을 안수기도를 받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처럼 마음에 커다란 허탈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태복음 7:6
48.나를 변화시키는 기도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보면 때때로 인간관계의 위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 저의 속을 썩이던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그 분을 위해 30일 작정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기도를 그렇게 싫어하던 제가 매일 새벽에 나와서 그 집사님을 위해서 30일 동안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그 집사님의 마음을 좀 바꾸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매 주일마다 집사님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주시해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 집사님은 험상궂은 얼굴 그대로이고 저를 향한 태도에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한 3주간쯤 지나서 보니 저의 기도 내용이 갑자기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기도하다보니 어느새 제 마음에 이런 기도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그 집사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느 날 새벽 저는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후 주일에 그 분을 보니 그렇게 달라져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달라졌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달려졌습니다.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해서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 -누가복음 6: 28
49.절망을 극복하는 기도
아멜리아 할트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여자 비행사였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대서양 횡단은 쉽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대서양 횡단 중에 바다 한복판에서 엔진이 고장나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비행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그 위기를 넘겨 무사히 대서양 횡단 항공을 마쳤습니다.
대서양 횡단을 성공하고 돌아와 보스턴에서 기자회견이 열렸을 때 기자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엔진이 고장났을 때 그 위급하고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바다 위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기자는 자세한 의미를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제가 위기에 있었을 때는 이미 대서양의 반을 넘어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포기하면 떨어져서 죽을 것이 당연했지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앞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모두 막혀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열려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시입니다.
“한 걸음이 당신을 그리 멀리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걸어야 합니다.
한 마디 말로 당신 자신을 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말해야 합니다.
한 인치가 당신을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의 행동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행해야 합니다.”
이 시에 한 줄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단 한 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 17
50.기도의 대상
오래 전에 미국의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서 어떤 전도 집회가 열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도시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훌륭한 학자 한 분에게 대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대표 기도를 부탁 받은 학자는 그 집회에서 모든 수식어를 총동원해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기도를 들으면서 그의 기도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어떤 기독교 신문기자가 이 학자의 기도를 평가하는 글을 신문에 냈습니다. “이 위대한 학자의 기도는 아마도 보스턴 시가 창설된 이래로 보스턴 청중에게 바쳐진 가장 웅변적이며 가장 지성적인 기도였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바쳐진 기도가 아닌 보스턴 청중에게 바쳐진 기도였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 5
51.미움을 이기는 기도
홀리데이인(Holy day Inn)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제재소 직원이었던 그는 아침에 출근해보니 자기의 책상 위에 해고 통지서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당하게 해고된 그는 굉장히 화가 났고 직장과 자기 상관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제재소 옆에 똑같은 제재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집을 떠났습니다. 여러 달 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다 써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자살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
이때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한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보신 적이 없잖아요.”
아내의 말 한마디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아,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후 그는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기도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에 있었던 직장과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서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건축업이 너무 잘되어 5년만에 제 발로 설 수 있는 조그마한 사업가로서 자기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니까 맘에 드는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좋지 않더군요. 제가 호텔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고 아주 깨끗하며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되어 홀리데이인이라는 호텔이 되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 44
52.이웃에게 비춰진 기도의 빛
한 미국 사업가의 간증입니다. 그가 불신자였을 때 한번은 서부의 어떤 도시를 여행하다가 호텔을 잡으려고 하는데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 방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힐튼 호텔(Hilton Hotel)의 비싼 방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어디서 자야하나 난감해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신사가 곁에 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제 방이 2인 실이라 침대가 하나 남는데 같이 주무시겠습니까?” 그는 고마워하며 그 신사의 방에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그 신사가 “먼저 주무세요. 저는 조금 할 일이 있거든요. 불은 꺼 드릴게요”라며 불을 꺼주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저 사람이 어두운 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나’하고 자는 척하며 보았더니, 그 신사는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자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를 삭이며 조용히 기도하는 그 신사의 기도 소리는 병상의 신음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예수쟁이이거나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인생에 매우 절박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그는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크리스천이신 모양이지요. 기도할 문제가 많았습니까?”
“너무 너무 문제가 많습니다.”
“무슨 문제인데요?”
“나라 문제입니다.”
“나라 문제라니요?”
“우리 나라가 여러모로 위기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이렇게 해서 서로 명함을 교환하게 되었는데 그 신사의 명함을 보니까 국무 장관을 지내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국무장관이 나라 문제 때문에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결국 그는 그 국무장관이 아침에 기도하는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1:33
53.담대한 기도
한국 교육계에 신선한 새 모델로서 자극과 도전을 준 살아있는 고등학교의 표본, 거창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전영창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전영창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부채가 많아 쓰러져 가는 거창 고등학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학교 부채를 갚으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그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1958년 4월 학교는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찬송 그리고 담요 하나를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진 웅안현 어떤 산마루 언덕에 있는 굴속에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일주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미국 유학을 갔다와서 이 나라에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을 해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학교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는 사흘동안 주야로 매달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도 없자, 그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사흘째 밤에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응답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동아일보에다가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광고를 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협박할 수 있는 담대함으로 기도를 하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이 가슴이 시원해져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일주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학교 서무과로 편지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조우 복이라는 미국 크리스천 성도가 수표 하나를 보낸 것이었는데 그 수표에는 놀랍게도 2,050불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2,050불이라는 돈은 그 당시 부채를 정확하게 갚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 후 그가 1971년 학교 강당을 위해서 다시 한번 엎드려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이 유명한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시편 31: 24
54.이기적인 기도
어느 교회 청년회원들이 기도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청년회를 지도하시는 전도사님이 “그 동안 우리의 기도가 너무 이기적 관심에 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도할 때는 자신들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자신을 넘어서 부모님이나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하시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신 후 기도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청년회원들이 차례대로 기도하는데 어떤 자매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큰 소리로 이렇게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 동안 저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저의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무엇보다도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는 사위를 보기 원하십니다. 부디 좋은 사위를 맞이하여 그들의 딸이 행복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고보서 4:3
55.자격 없는 자를 위한 탄원
나폴레옹이 이끄는 병사들 중에 한사람이 탈영을 했다가 붙들려 왔습니다. 그 병사는 이번이 두 번째의 탈영이었기 때문에 벌로써 최고형인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나폴레옹에게 달려와서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탄원했습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두 번씩이나 탈영한 당신의 아들을 위해서 이런 탄원을 하는 것은 의롭지 않다”고 거절했습니다.
이때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황제시여, 저는 의를 베풀어 달라고 탄원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께 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비를 탄원하고 있는 것이지 의를 탄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단호하게 “한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탈영을 한 당신의 아들은 자격이 전혀 없다”라고 뿌리쳤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단념하지 않고 다시 엎드려 간절하게 빕니다. “황제시여, 제 아들이 자격이 없기 때문에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기 때문에 제 아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있다면 제가 왜 긍휼과 자비를 구하겠습니까? 그러니 폐하, 제 아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2
56환난 중에 도움을 구하는 기도
오래 전 영국에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설교하는 자는 무조건 벌을 받는다”라며 신앙을 제한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이 법을 어겨 12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아내는 거지처럼 구걸하다가 죽게 되었고, 그의 세 자녀들도 졸지에 고아가 되어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 젊은이는 감옥에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전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만약 제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저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때 주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노라.”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그 젊은이에게 이런 환상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그 유명한 존 번연(John Bunyan)이며, 그가 쓴 책이 바로 ‘천로역정’입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시편 107: 28,29
57.요구할 대상이 있는 행복
아주 오래 간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자기 살아온 이야기며, 가정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자녀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자네 아들은 어떤가?”라고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네와 마찬가지로 밤낮 돈 드는 일뿐이네. 처음에는 자전거 사줬더니 조금 있다가는 자동차를 사달라고 난리야. 눈만 뜨면 자식들이 그저 돈만 요구한다네. 자네는 어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게도 자네같이 요구하는 아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내 아들은 2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네. 죽은 내 아들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단 말이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58. 길가에 떨어진 씨
C. S. 루이스(C. S. Lewis)는 그의 저서, 「악마의 편지」에서 길가에 떨어진 씨를 설명하는 마음 밭의 비유를 탁월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어떤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습관적으로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뒤지다가 수많은 책 중에 우연히 신앙에 관한 책을 한 권 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책을 읽다가 마음에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 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사단이 찾아와 그의 마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 시간이야. 배고픈데 뭘 그렇게 생각하나? 골치 아프게?"
그 순간 그는 마음에 생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배가 고파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점심을 먹다가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나는 그 분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 때 사단은 노신사의 마음에 다시 찾아와 방해를 했습니다. 노신사는 사단의 말대로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면서 우선 식사를 끝냈습니다. 또 다시 하나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 했지만 사단의 방해 때문에 노신사는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라고 그의 마음에 솟아오르는 생각을 막았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 타자마자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때 마치 자신에게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가는 노신사의 뒤에서는 사단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마가복음 4: 15
59.시기, 질투를 누르는 축복의 힘
옛날에 영국 런던에는 세 분의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그리스도 교회의 F. B. 마이어 목사님인데 책을 무척 많이 쓰신 목사님이었습니다. 또 한 분은 기독교 역사상 제일 설교를 잘 하시는 침례교회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캠벨 몰간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세 분 중에 몰간 목사님이 잠시 미국에 가서 사역을 하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몰간 목사님과 친구 사이였던 마이어 목사님은 그 분이 미국에 있는 동안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몰간 목사님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미국이 있을 때에는 기도하기가 좋았는데 서로 같은 도시에서 일하게 되니까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게 되더군요.” 이 말의 의미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석상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는 쉽지만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축복하며 기도하기란 쉽지 않은 마음과 같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만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다른 목사님에 대한 시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스펄전 목사님처럼 설교에 인기를 얻지 못하고 몰간 목사님처럼 권위 있는 목회를 하지도 못하는 구나’라는 마음이 자꾸 생겨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에서 이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시기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이 기도하는 마이어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기도를 바꾸어라. 질투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축복의 기도를 해라.”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부터 마이어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그 교회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캠벨 몰간 목사님과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니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가득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가 담임하는 교회의 공개 기도석상에서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몰간 목사님의 교회를 축복해 주셔서 사람들이 가득 메워지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남거든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시옵소서.” 그 후 이 세 분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이 세 교회는 모두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름답게 주를 위해 사역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로마서 15:2
60.하늘 향해 두 손 든 하이든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하이든(Franz Joseph Haydn)에게 하루는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제게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작곡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며 또한 제가 작곡한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립니다."
그의 곡 가운데 ‘천지창조’라는 유명한 곡이 있는데, 이 곡은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턴의 ‘실락원(失樂園)’에 근거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되던 날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파 뒤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청중들이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내자 지휘자는 박수를 중단시키며 뒷좌석 발코니에 앉아있는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분입니다. 저 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하이든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하이든은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중단시키고는 두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직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시편 24: 10
61.도둑질한 영광
제가 전도사로 있었을 당시, 선명회의 총재였던 스탠 무니햄 박사가 한국에 방문하여 부산 구덕 체육관에서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집회의 통역을 맡게 되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떨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열심히 통역했습니다. 그날 밤 집회는 성령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진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왔을 때 부산 시내의 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매우 은혜로운 집회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세상에 이렇게 통역 잘하고 목소리와 외모까지 좋은 사람은 처음 본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기분이 좋아 ‘드디어 내가 한국 교회에서 떠오르는 샛별이 되는 구나’하며 자아 도취에 빠졌습니다.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그날 밤에는 잠조차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저녁 집회 때 또 다시 통역을 하기 위해 강단에 올라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집회가 시작된 지 5분쯤 지나자 목이 완전히 잠겨 버렸습니다. 통역이고 뭐고 목소리 자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는 다른 목사님께 통역을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참담한 심정으로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체면 손상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밤 12시가 지나자 갑자기 제 마음에서 조용한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목소리가 네 목소리냐? 통역하는 능력이 네 것이냐? 내가 준 선물, 내가 준 은사, 내가 준 목소리, 내가 준 능력을 가지고 하면서 왜 네가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느냐?” 그 즉시 저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려 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쳤는데 시편 115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저는 마음이 찔려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커다란 손이 저를 붙잡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를 의지하고 겸허하게 사역을 계속하라.” 저는 그날 새벽 주님의 위로와 받은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셋째 날 저녁이 되었는데 목사님들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날 제가 다시 기회를 얻어 통역을 시작했는데 첫날과 같은 깨끗한 목소리가 되살아나서 은혜 가운데 무사히 집회를 마쳤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제 자신을 높이고 싶은 유혹이 찾아오면 부산에서 새벽을 맞이하며 주님 앞에 엎드렸던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시 115: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
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62.죽음으로부터의 자유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Chartre)는 1980년 3월에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을 이 병원에서 발악하며 보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을 향하여 고함을 치며 절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 곁에 있는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자유라는 수많은 수필과 글을 남겼지만 그의 마지막은 실로 비참했습니다. 그는 1980년 4월 16일 입원한 지 한달 만에 몹시 괴로워하다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불란서의 신문들은 샤르트르의 죽음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에 대해서 어떤 독자는 이렇게 신문에 투고했습니다. “샤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샤르트르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샤르트르에게는 진정으로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반면 독일 고백교회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 훼퍼(Dietrich Bonhoeffer)는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간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데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자기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감방에 있던 자기의 동지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나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만날 때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감방을 나서는 그에게서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넘쳐 났습니다. 그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충격과 감동으로 보았습니다. 본 훼퍼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1:16
63.천국으로 보낸 재료
밴 다이크(Van Dike)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로마의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갔는데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 중 매우 아름다운 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은 아주 근사하고 멋있는 집이었습니다. 부자는 부러움의 말투로 “도대체, 이 아름다운 집의 주인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 집은 당신이 종으로 부렸던 사람의 집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부자는 당황하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멋진 집을 소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불평했습니다. 그의 불평에 천사는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국에는 실수가 없고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을 뿐입니다.”
천사의 단호한 대답에 더 이상 우길 수 없었던 부자는 천국의 다른 장소로 한참을 가게 되었습니다.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너무나 낡고 허술한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부자는 천국에도 이런 초라한 집이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되어 “도대체 저 집은 누구의 집이요?”라고 천사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놀랍게도 “당신 집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더럽고 누추한 집이 내 집일 수 있습니까?”
“천국에는 절대 오류가 없습니다. 실수도 없습니다. 착각도 전혀 없습니다. 이 집은 당신이 세상을 살면서 보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지금 우리의 물질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0-21
64.하늘 집을 분양 받은 할머니
제가 잘 아는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일찍이 홀로 되셔서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자녀들을 모두 교육시키셨습니다. 그 자녀들이 장성하여 나름대로 세상에서 인정받고 잘 사는데도 할머니는 자녀들과 같이 살지 않고 작은 오두막집에 혼자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녀들은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 이제 우리들도 모두 잘 사니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며 살 수 있어요. 이런 보잘것없는 집에서 혼자 살지 마시고 저희랑 좋은 집에서 사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애원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나를 위해 이런 집을 지어다오. 집 바닥은 온통 유리로 하되 기둥은 12개로 하고 그 기둥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라. 보석은 각기 다른 색깔로 하고 문은 12개가 되어야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자녀들은 하나같이 “어머니, 농담이시죠. 세상에 그런 집이 어디 있으며, 그런 집을 어떻게 짓나요?”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대한 어머니의 말은 더 걸작이었습니다.
“그런 집이 어디 있냐고? 왜 없냐? 나는 그런 집을 하늘나라에 분양 받았는데…. 그래서 곧 그곳에 살게 될 테니 나보고 더 좋은 집으로 가서 살자고 하지 말려무나.”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린도후서 5:1
제3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1.천당지점
일제 시대에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한 최권능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전하는 메시지는 오로지 “예수 천당!”이었습니다. 하루는 일본 경찰이 길을 지나가는데 목사님이 큰 소리로 “예수 천당”이라고 외쳤다가 경찰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상한 소리를 외치고 다니는 거요?”라고 일본 경찰이 묻자, 목사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예수 천당”이라고 외쳤답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이 약간의 호기심이 담긴 어투로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예수 천당이라고만 외치는데, 진짜 천당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오? 만일 있다면 예수를 보여주던지 천당을 보여 주던지 하시오?”
그 때 목사님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지금 당장 천당 본점은 보여 줄 수 없어도 천당 지점은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소. 바로 내 마음이 천당 지점이라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희망의 종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 영국의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때 영국의 황실과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영국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온 교회에서 같은 시각에 일제히 종을 울리도록 했습니다. 그 종은 전쟁 중에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 ‘희망의 종’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 희망의 종이 울리기 전 영국 황실은 영국 성공회의 주교였던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에게 전국민에게 보내는 설교 방송을 의뢰하였습니다.
윌리엄 템플 주교는 방송을 통해 역사적인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대영 제국 국민 여러분, 잠시 후 이 땅의 모든 교회에서는 종이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모두 교회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역대하 20:12
3.희망을 심어준 기사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영국 런던이 첫 번째 폭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런던에 있던 모든 언론계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때 한 저널리스트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영국 언론은 사회에 대하여 아주 예리한 비판적 안목을 가진 언론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판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전시(戰時)이고 지금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때입니다. 비판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이제 잠시 동안만은 희망을 선전하고 희망의 기사를 씁시다. 신문에서 희망을 보게 하여 우리의 현실이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과 희망을 우리 민족에게 주도록 합시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신문 기자들은 그 저널리스트의 말에 모두 합의하여 모든 기사의 논조를 다르게 썼습니다.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실었고 군대에 출정하는 젊은이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러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의 모습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지도자들의 희망에 찬 메시지가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영국 국토 전체는 한순간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고 승리를 믿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시편 62: 5
4.작은 희망
유명한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이 나치 독일 수용소에 갇혔을 때 그는 감옥 안에 있는 동료들이 삶을 포기하고 죽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저 조그마한 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한 죄수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창을 봐야 시커먼 회색 담벼락밖에 없지 않소.”
“아니, 그 회색 담벼락 저 건너편에 있는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밤에도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갈라디아서 5: 5
5.꿈을 위한 대가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스와의 대대적인 전쟁에 출정하기 직전에 자기의 보물창고를 열어 자기 휘하의 장군들에게 그 보물을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한 참모가 물었습니다. “보물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다 나누어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남겨 두었네. 바로 희망을 남겨두었지. 나는 동(東)과 서(西)로 나누어진 이 세계가 나의 꿈으로 하나가 되는 위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 이 희망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 보물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네.”
그의 희망은 세계를 향한 비전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창고에 모아 두었던 보물보다 희망이 더 위대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위대한 비전을 위해서 그 어떤 대가도 지불할 수 있는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태복음 13: 46
6내일이 없는 삶
6. 25 동란 중에 한 미국인 군목이 전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위로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 중 전쟁터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한 미군 병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나에게 한가지만 요구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요구하겠습니까?”
이 때 미군 병사는 군목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시오.”
그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불안과 운명에 대한 불안이 가장 고통스러웠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7.꿈을 잃어버린 사람
불란서의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이 한창일 때에 저항운동을 하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조국을 위하여 거사하려던 모의 계획이 모두 탄로가 나게 되었습니다. 절망한 청년들은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소리치며 낙심했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우뚝 서서 이렇게 절규하며 외쳤습니다.
“동지 여러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꿈을 잃어버릴 때, 그때가 마지막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마지막은 꿈을 잃을 때 찾아옵니다.
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8꿈이 없는 자
리처드 바크의 저서,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인 갈매기 조나단은 고독한 선구자였습니다. 갈매기들은 해변가를 조금 날아서 겨우 먹이를 찾아 먹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있다가 다시 배가 고프면 다시 가서 먹이를 먹는 일이 고작이었습니다. 그것밖에는 갈매기들이 더 이상 날아다닐 곳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갈매기 인생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꿈을 가진 조나단이라는 갈매기가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더 높이 날 수 있어. 그리고 우리는 더 멀리 바라볼 수 있어.” 그는 친구들에게 미지의 나라를 향하여 가자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갈매기들은 조나단을 미쳤다며 쫓아내어 그 사회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추방당한 조나단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 슬픔은 그들의 사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더 커다란 꿈을 모르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독한 선구자 조나단의 슬픔은 높이 날 수도 있는데, 멀리 갈 수도 있는데 친구들이 자기의 한계 이상을 거부하는 짧은 안목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미가 7:7
9.한 심리학자의 시각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이라는 유대인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심리학자로서 의무를 다합니다.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나이와 건강 등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일찍 죽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명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실제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수용소 생활을 잘 견디고 버텨나갔던 것입니다.
그는 동료들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자신도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은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내게는 행운인가! 이런 곳에서 심리학계에 공헌할 만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생존의 상관 관계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곧 이곳을 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는 희망대로 살아남아 수용소를 나오게 되었고 그 후에 「실존 분석적 의미의 정신요법」(Logo-therapy)을 창안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시 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
10.큰 바위의 얼굴
어느 마을 산마루에는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 얼굴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큰 바위에 얽힌 전설이 그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들에게 행복을 안겨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하는 어떤 장군이 나타나서 마을 전체가 소동이 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군은 실망을 안겨준 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정치가도, 시인도 나타났지만 그들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나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행복을 가져다 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으려나 보다며 희망을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오랫동안 그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위로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때 그의 모습이 붉은 저녁 노을에 비추이자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외쳤습니다.
“어네스트를 보셔요. 저 사람이 바로 큰 바위의 얼굴입니다.”
큰 바위의 얼굴을 닮은 사람은 바로 마을 토박이인 어네스트였던 것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산마루의 바위의 얼굴을 보고 그 바위를 닮은 사람을 기다리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 큰 바위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스토리는 청교도 작가인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의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 “큰 바위의 얼굴”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과연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 인지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11.산 소망
유명한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Martin Luther)도 개혁의 말기에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 누워 ‘모든 것이 끝났어'하며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때 지혜로운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상복을 입은 아내를 보고 깜짝 놀란 그는 “아니 누가 죽었소?”라고 다급히 물었습니다.
아내는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의 황당한 대답에 루터는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무슨 소리요?”라고 소리쳤습니다.
루터의 아내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안 돌아가셨으면 당신이 그렇게 누워 있을 리가 없지요.”
이 아내의 말 한마디가 루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렇지! 살아 계시지.”
그는 벌떡 일어나 그의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 3
12.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 패니 크로스비(F. J. Crosby)는 신앙이 좋은 할머니와 어머니 밑에서 성경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육체의 질병과 앞을 보지 못하는 어둠 때문에 날마다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부모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의 원망의 마음은 설교를 들어도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데오드르 캠프라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항상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뉴욕에 전염병이 유행하던 어느 날 패니 크로스비는 꿈속에서 자기의 선생님이 죽어 가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네가 나를 천국에서 만나 주겠니?”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잠에서 깬 크로스비는 자신이 천국에 갈 확신이 없음을 깨닫고 불안해졌습니다.
그때부터 크로스비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고민 끝에 간호원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착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는 뉴욕에서 간호원이 되려고 지원했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평안히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죽음 건너편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과 참된 소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1850년 11월 20일 어느 교회의 전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집회의 설교가 끝나고 이 찬송이 불려질 때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그녀는 주님 앞에 걸어 나와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님!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고쳐 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나의 인생을 주님께서 맡으시고 주관하시고 변화시켜 주십시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 2: 25
13.돈으로 살 수 없는 것
미국의 한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다만 천국을 빼놓고는.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살 수 있다. 다만 행복을 제외하고는.”
이 신문기사의 내용은 제가 인도하는 새생활 세미나에서 말한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잠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식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참된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건강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문화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금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살 수 없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디모데전서 6: 17
14.김구 선생의 변화된 꿈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그가 어렸을 때에 관상쟁이를 희망한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출세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급제해야만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돈이 있어야 급제할 수 있었답니다. 김구 선생에게는 그런 운이 찾아올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농담이 그의 귀에 들렸습니다.
“관상쟁이가 되면 돈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그래서 그는 관상쟁이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그것에 관련된 책들을 읽다가 자신의 관상에 대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관상이 천하에 불길하고 흉한 상이라고 적혀 있더랍니다. 그래서 ‘내 관상이 이 모양인데 남의 관상을 본들 무엇하리요’라는 생각이 들어서 관상쟁이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책에 “관상(觀相)은 신상(身相)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心相)만 못하다”(얼굴이 잘 생긴 관상은 몸이 튼튼한 신상만 못하고 몸이 튼튼한 신상은 마음이 순전한 심상만 못하다는 뜻)라는 마지막 글귀가 김구 선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렇다. 무엇보다 바른 심상을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계속 그 책을 읽어 가는 가운데 “심상은 마음먹은 대로 결정된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조국과 민족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결정이 그로 하여금 애국자의 길에 서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3
15.포기하지 않는 충성
어느 선교사가 여러 해 동안 아프리카에 수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충격에 부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선교사는 한꺼번에 두 아들을 잃고 부인마저 세상을 떠나 보낸 슬픔에 비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이런 큰 시련을 주실까? 나에게 이 선교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선교를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모든 짐을 싸서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탔습니다. 마침 그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을 때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수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나와 있었습니다. 군악대들의 예포소리와 함께 붉은 주단이 깔리고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대통령이 선착장을 빠져나가자 군악대의 나팔소리도 멈추고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는 홀로 고독하게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휴가를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큰 환영을 받는데, 선교를 하다가 두 아들과 부인을 잃고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구나?’ 그리고는 고독감과 실패감으로 정신없이 거리를 헤맸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에는 군악대의 나팔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내가 직접 너를 맞이할 것이다.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의 유리 길을 깔고 내가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내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음성을 들은 선교사는 그 자리에서 그 동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죄를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요한계시록 2: 10
16.맡은 자의 자부심
유명한 지휘자 마이클 코스타가 어느 날 오케스트라 연습을 시키다가 갑자기 악기 하나가 조용해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상황을 보니 한 피콜로 연주자가 연주를 멈추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장엄한 오르간 소리와 천둥 같은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으니 나 하나쯤 소리를 안내도 표가 안 날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예리하게 알아차린 지휘자는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피콜로 어디 있소!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오케스트라가 산다오. 자부심을 가지시오. 피콜로!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오케스트라가 산단 말이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복음 16:10
17하나님께 드린 기업
미국 오하이오주 나이마에 사는 스텐리 팜(Stanley Pam)이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주님을 위한 사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사업을 통해 최상의 것을 주께 드리며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경영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는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사업을 하고 나에게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면, 너는 단순히 종업원이 되어라. 끝까지 종업원으로 일하여라.”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스텐리는 회사 설립 신고를 할 때 회사의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생애를 걸고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사업을 하는 동안 다른 기업처럼 여러 번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놀랍게 발전했으며 그는 은퇴할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대로 월급을 받는 종업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18.미국 50개 주의 최고봉에 오른 장애인
20세 타드 허스턴은 1981년 4월 미국의 수상스키 선수를 꿈꾸는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수상스키 경주를 마치고 스키 로프를 끌다가 그만 배에 달린 기어 프로펠러에 다리가 끌려 들어가 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그 청년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성경을 매일 읽었습니다. 그는 하박국서를 읽으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남아있는 포기할 수 없는 인생과, 나의 가능성 그리고 내가 도달하고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을 전공한 후 남부 캘리포니아 재활병원 의학센터에 상담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와 같은 발을 잃어버리고 손을 잃어버린 장애인들을 돕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기도하다가 잠들었을 때, 꿈에서 하나님이 자꾸만 산으로 올라가라고 하시며 미국의 각 주를 보여 주셨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몬타나 주, 뉴멕시코 주 등을 계속 보여주시며 각 주마다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께 “올라가라면 올라가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희한한 꿈을 몇 번이고 자꾸 꿨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꿈에서 깨어나 웃으면서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재미있네요. 주님은 저에게 정말 저의 불편한 의족을 가지고 미국 50개 주마다 최고로 높은 산을 정말로 올라가라고 요구하시는 겁니까? 좋습니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 도전은 저와 같은 장애인 친구들에게 놀라운 꿈과 삶의 격려가 될 것입니다. 제가 그 계획을 세워서 도전해 보겠습니다.”
그는 미국 50개 주의 최고봉을 의족으로 정복하는 “서키트 아메리카”(Circuit America)라는 프로젝트로 도전했습니다. 1994년 6월 1일 드디어 알라스카 주 매킨리봉에서부터 그의 정복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죽음에 다다르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습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이런 무모한 도전에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도전이 내가 사랑하는 장애인 친구들에게 꿈과 용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드디어 그는 이 힘든 정복의 여정을 출발한지 66일째 되던 날인 1994년 8월 7일 오전 11시 57분에 50번째 주 50번째 산인 하와이의 마흐나키아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이것은 바로 50개의 산 정상을 66일 21시간 47분만에 다 정복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그 마지막 정상 높은 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찬송을 부르는 그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전지역에 방송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정상을 도전할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의 모든 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3:19
19.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
1940년대에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라는 영국의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 정복에 나섰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내려오는 길에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
약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그는 다른 산악인 두 명과 함께 역사상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을 정복했습니다. 실패는 인생의 가장 보편적인 경험으로서 다만 큰 과제는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서 승리의 미래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로마서 11: 12
20.가능성의 안목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어느 날 아주 잘 생긴 돌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돌을 보고는 거의 미칠 지경으로 큰소리로 웃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다윗이 걸어나온다. 다윗이 걷고 있어.” 주변 사람들은 그의 한심하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그 돌을 보면서 그 돌이 다듬어지고 깎여져 다윗 상이 만들어질 위대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능성의 안목입니다. 하나님은 하잘 것 없는 기드온을 바라볼 때 그의 가능성을 보시고 선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사용하실 때 일어날 놀라운 미래를 보셨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사사기 6:15, 16
21.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할 말씀
저는 몸이 무척 피곤할 때마다 “한 두 주간만 설교하지 않고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목사로 부름 받은 후부터 20년 동안을 거의 한 주간도 빠짐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논산훈련소에서 만큼은 설교를 안 할거라고 생각했지만 훈련소에 입소한지 일주일 되는 날부터 훈련소를 졸업할 때까지 설교를 했습니다.
훈련소에 입소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군종실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가봤더니 환경 조사서에서 신학교에 다닌 것을 보고 불렀다면서 설교할 수 있냐고 물어 보더군요. 군종 참모가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되어 설교할 사람이 없다며 오늘 당장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계속 설교를 하게 된 것입니다. 훈련을 끝내고 강원도 춘천으로 부대 배치를 받았을 때에는 부대 앞 교회 목사님이 일주일 전에 사임하시는 바람에 제대할 때까지 그 교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 주일 이상을 아파 본 적도 없어서 이따금씩 피곤할 때마다 제 마음에 그런 소원이 생깁니다.
그러나 한 두 주간만 설교 안하고 푹 쉬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정말 두 주간을 쉬게 되면 그 다음에는 못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답니다. 어떤 때에는 정말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다가도 막상 강대상에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다 보면 어디서 생기는 지 새로운 용기와 능력이 속에서 솟아오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라는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이런 힘이 생기는 것일 겁니다. 오히려 설교를 못하게 되는 때에야말로 저의 생(生)의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데모데후서 4:2
22.그리스도인의 D-day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불란서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불란서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불란서 서부 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 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불란서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안하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날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계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아직도 사단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브이데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디데이’와 ‘브이데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긴장 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 15
23.수전절의 유래
예루살렘의 절기중 하나인 “하누카”라 불리는 수전절의 유래입니다. BC 168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영토를 크게 몇 등분으로 나누어서 다스렸을 때, 그 당시 유대 나라를 포함한 그 주위의 지역을 시리아(수리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틴을 완전히 장악한 후,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체의 예배 행위를 금지시켰고 하나님 대신에 제우스 같은 그리스의 신들을 성전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돼지를 잡아서 그 머리를 성전 제단에 놓고 유대인들에게 예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마음으로만 분노하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먹고살기 위해서 이 악한 지도자와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끝까지 치를 떨며 분노했던 마카비라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 중에서도 유다 마카비 형제들이 유명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어지럽히고 부패시키는 이 적들로부터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성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게릴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BC 164년부터 시작되어 2, 3년 동안의 혈전을 벌인 끝에 드디어 악한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마침내 더럽혀졌던 성전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회복해서 봉헌하는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금 촛대에 겨우 하루 정도만 쓸 수 있는 기름을 넣었는데 그 촛불이 8일 동안이나 계속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환하게 성전을 비추는 그 불빛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찾은 성전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요한복음 10:22
24.황금률의 원리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 교포 2세인 대학생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학생이 한국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한국 관광객이 와서 설렁탕을 먹다가 깍두기가 떨어졌는지 “깍두기 더!”라고 소리를 치더랍니다. 이 학생이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했더니 그 관광객은 더 큰 소리로 “야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난 사장이야 사장. 직원을 70명이나 거느리고 있어”라며 신경질을 내더랍니다. 이 학생은 당혹스럽기도 하고 하도 기가 막혀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선생님, 제가 누군 줄 아세요? 저는 손님에게 깍두기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주느냐를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25.심은 대로 거둔다
제가 아주 공과 대학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성경 공부 모임을 주관하여 인도하였는데 그 중에 교수님 내외가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신앙이 매우 좋은 데 비해 교수님을 그렇지 않아서 그분을 위해 따로 많은 시간을 내어야만 했습니다. 사실 저는 와서 성경공부를 인도해 달라고 하는 요청에도 못 가는 형편이었는데도 그 사모님의 열성 때문에 교수님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사정사정 해가며 끈질기게 성경 공부를 인도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님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해서 제가 실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연락이 끊기게 되었는데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그 교수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신 겁니다. 전화내용은 자기 집에 꼭 한 번 들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찾아갔더니 그 완고하던 교수님이 완전히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물었습니다.
그 교수님이 대답하기를 “어떤 특별한 동기는 없었어요. 그런데 예전에 목사님과 성경 공부할 때 별 관심 없이 보고들은 것이 나중에서야 깨달아지더군요. 그 후에 예수님을 믿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전도도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저는 예전에 그 교수님을 보면서 그 분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깨끗이 단념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수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도 아주 뜨겁게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그분은 교수 선교사가 되어 C국에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그때 그 교수님 댁을 나와 집에 오면서 이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남을 돕고 격려하는 일처럼 피곤하고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나타나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일단 심어 놓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영광스러운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26.배워야 할 인내
유명한 설교가인 필립 브룩스에게는 무엇이든지 참지 못하는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참지 못하는 약점 때문에 그는 무슨 문제든지 늘 고민하며 하나님께 매일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어떤 일을 참지 못하여 더욱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그를 보고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브룩스 박사님, 오늘 따라 무엇을 그리 고민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내게 있는 문제도 고민이지만, 더 큰 고민은 나는 이렇게 급한데 하나님은 도무지 급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오.”
우리에게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급한데 하나님은 잠잠히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욥의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야고보서 5:11
27.인내의 필요성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기질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특성은 무슨 일이든 참지 못하고 성급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잘 참아서 그들 중에서 한국인을 가려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곳이든 줄을 설 때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사람이 있으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인내가 너무 부족한 것을 느끼고 하나님께 이렇게 절실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인내가 부족합니다. 저에게 인내를 주십시오. 지금 당장 인내를 주십시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데살로니가전서 5:14
28.쉼의 축복
우리 나라의 유명한 작가 이어령은 ‘신한국인’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지난날의 한국인과 오늘날의 한국인의 생활 양식을 밥 세대와 라면 세대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이 두 세대의 차이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속도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밥을 짓기 위해 뜸을 들이고, 또 늦게 들어오는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 밥을 아랫목에 묻어 둡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한국인의 어머니와 아내의 따뜻한 기다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대가 잘 먹는 라면은 끓여 먹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 않고 아주 간편합니다. 그리고 금새 불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기다려 줄 수도 없습니다.
근래에는 패스트푸드(fast food)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먹는 습관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가져온 현대 문화에는 비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빠른 것을 추구하느라 기다리지 못하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림과 휴식의 중요성을 많이 잊고 살아서 오히려 가만히 있거나 기다리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결국 안식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1,000년을 1초처럼
어떤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업을 하는데도 영 사업이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당신에게는 1,000년도 1초와 같은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는 영원한 존재이니 네가 한 말이 맞다”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이 사업가가 다시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1,000달러도 하나님께는 1달러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단다.”
“그렇다면 하나님, 제게 1달러만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원한다면 줄 테니 1초만 기다려라”고 하셨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8
30. 목표를 가리는 장애물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영국 해협을 헤엄쳐서 왕복한 수영선수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 후 1952년 7월 4일, 36세의 플로렌스는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에서 가까운 카타리나 섬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수영해서 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 선언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미국 전 지역에서는 그 도전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도착지점인 해변가에 와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6시간 동안 계속 수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안개를 헤치고 사력을 다해 나아갔지만 자기의 힘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안타깝게도 기권하고 자기를 따라오던 구조선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배로 해변에 도달하고 보니까 안개 때문에 안보였던 도착지점이 포기한 지점에서 불과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이 실패 후에 그녀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실패한 이유는 추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피곤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안개 때문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개로 인해 제가 목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표 지점을 볼 수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도착했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안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습니다. 그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31. 한 코미디언의 유언
미국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몇 해전 그가 죽기 전에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의 시체를 대학의 해부용 실험 대상으로 기증하겠습니다. 특별히 대학 중에서도 꼭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 부모님의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평생동안 다른 사람들을 웃기며 살았던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이어서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32.하나님의 침묵
잉거솔(Ingersoll)이라는 독일의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든지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무신론 강연에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이 절정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더니 하나님에 대한 도전장을 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에게 5분이라는 시간을 주겠소. 나는 5분 동안 당신을 저주할 것이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나를 저주하고 형벌을 내리시오.”
그리고 그는 5분 동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5분이 지났는데도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자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외쳤습니다.
“여러분, 저를 보십시오. 이만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때 그의 강연장 뒤편에 있던 한 노인이 서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감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한 그리스도인이오. 내가 감히 당신의 연설에 대해서 평가를 한다면, 오늘 당신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단지 당신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명했을 뿐이지요. 내가 믿고 경험한 하나님은 내가 그분을 떠나서 거스를 때 책망하시고 때로는 징계까지 하셨던 분이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당신에 대해서 침묵하셨소. 그분의 침묵은 곧 당신이 그의 자녀가 아니라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로마서 1:28
33.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35
34.존 듀이의 도전 정신
교육 철학자로서 유명한 존 듀이(John Dewey)의 일화입니다. 그의 90세 되는 생일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한마디씩 축하 메시지를 그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 의사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연로하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정열을 가지고 삶을 사시는지… 그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비결? 나는 산에 오른다네. 자네도 산에 한번 올라 보게나.”
“산에는 왜 오르십니까?”
“나는 또 다른 산을 보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네.”
그는 나이를 뛰어 넘어서 산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도전 정신이 나이를 초월한 정열적인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62
35.인생의 기회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자원은 기회입니다. 세리 삭개오에게도 그가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 기회를 잡았을 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축복인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모습을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스에 시라큐스라는 이상한 동상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동상의 모습을 묘사해 보면 발에 날개가 붙어 있고 앞머리에는 무성한 머리카락이 있는 반면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였습니다. 이 이상한 동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만들었습니까? 리시퍼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기회
왜 날개가 발에 달렸습니까? 빨리 날아다니기 위해
왜 당신의 앞머리는 그렇게 무성합니까? 그것은 내가 지나갈 때 사람들이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왜 뒷머리는 대머리입니까? 지나가면 도저히 다시 붙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36.진정한 깨달음
어느 날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토레이 목사님은 고민하는 이 부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인, 오늘부터 집에 가서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이 한 가지 기도만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 부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의 충고에 따라 이 부인은 집에 돌아가 이 기도만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십시오.” 이 기도를 계속 하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추하고 불결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자기의 죄악을 보며 절망한 채 일 주일만에 토레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죽어버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토레이 목사님은 “이제부터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집에 다시 돌아가 두 번째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때 이 부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절망을 선언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분을 통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으며 그로 인해 깨끗하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 8
37.인생의 의미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기사로 실린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이자 작가였던 아서 고든(Arthur Gordon)이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무력증에 빠진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작가가 글을 쓸 수 없다는 충격은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의사이면서 상담자인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네.”
우울증과 무력증으로 고민하는 고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가 어렸을 때 가장 하고 싶어했고 좋아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은 해변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일이었지.”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한 번 따라 보겠나?”
의사인 친구는 시간마다 다른 처방전을 네 장의 종이에 써주었습니다. 별다른 대안도 없고 희망도 없었던 고든은 친구가 써준 처방전을 가지고 어린 시절 자주 놀러 갔던 해변으로 갔습니다.
친구의 말대로 아침 아홉 시에 첫 번째 처방전을 펴보았습니다.
“자네가 좋아하는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를 잘 들어보게.” 우스꽝스럽지만 처방대로 바닷가에 앉아 어린 시절 듣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금 후 열두 시가 되어 두 번째 처방전을 펼쳤습니다.
“이제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참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순간들을 생각해 보게.” 그는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했던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자 마음에 조금씩 기쁨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 세 시에 세 번째 처방전을 펴 보았습니다.
“자네 인생의 동기와 의미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게.” 그는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이유가 자기의 명예와 이름을 내고 사람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마음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의미 없고 헛된 내 이름을 위해서 살았구나’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추했던 삶의 모습을 발견하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친구가 준 마지막 네 번째 처방전을 폈습니다.
“이제 자네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할 시간이네. 자네가 자백해야 할 죄들을 모래사장에 써보게.” 고든은 눈물을 흘리면서 모래사장에 이렇게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이기심과 욕망과 출세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고 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수많은 죄들을 다 쓰기도 전에 갑자기 바다의 밀물이 들어와 그가 써놓은 그의 죄들을 한꺼번에 다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고든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그 순간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38.도박으로부터의 탈출
“목사님, 제 왼손의 손가락을 한번 보시겠어요?”
어느 날 제가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는 중에 한 장로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장로님의 왼손 손가락 중에 가운데 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연을 물어보니 장로님의 기막힌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도박을 밥먹듯 즐겼습니다. 도박을 끊기 위해서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도박은 계속했지요. 그날도 밤새도록 도박판을 벌이다가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고 있더군요. 그 순간 제 모습이 너무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내가 보는 앞에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부엌에 있는 칼을 들어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자 장로님은 내밀었던 잘린 손가락을 감추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라는 속담이 맞더군요. 사흘이 지나자 다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더니 저로 하여금 도박장으로 떠밀더라구요. 결국 아내 앞에서 한 나의 다짐들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
몇 분이 지났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후로는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아픔도 별 수 없었던 나의 도박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완전히 도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골로새서 2:23
39.참 행복의 의미
기독교 철학자이며 전도자였던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박사님은 그의 생애 말년에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조국과 젊은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애의 마지막 설교를 자신의 온 힘을 쏟아 피를 토하듯 전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의 젊음을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행복한 삶을 사는 데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계십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을 목표로 삼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바로 행복만을 구하고 거룩을 구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행복은 영어로 happiness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본래 happen, ‘우연히 발생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 목표가 우연하게 일이 잘되고 우연하게 돈이 벌리고 우연하게 성공하는 것이 되어야겠습니까?
산상수훈에서 복은 happiness가 아니라 blessing이라는 단어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blessing이라는 단어는 본래 bleed, ‘피를 흘리다’라는 단어에서 나왔으며, 앵글로색슨족은 피의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했습니다. 바로 축복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세상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거룩한 삶이 바로 축복된 삶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4:6-8
40참된 만족
저는 어느 날 이름만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부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분을 만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마침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회장님은 행복하십니까?” 그 분은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행복이라고? 나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다네.” 한국 사람들에게 부의 대명사로 불려왔던 그 분의 대답 속에서 생활의 부유함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갑부 록펠러에게 어느 날 타임지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부유함에 만족하십니까?”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기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록펠러는 “조금만 더!”라는 대답을 했답니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많이도 아닌 조금 더 돈을 벌어야겠다는 아주 흥미로운 대답을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 5
41.한사람의 가치
스코틀랜드에서 목회하시는 두 분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두 목사님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역했지만 그분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두 분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먼저 한 목사님이 “사실 저는 지난 3년 동안 사역을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거듭난 성도는 아직 한 사람밖에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한 사람이 로버트 마펫이라는 청년이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커다란 기대를 걸고 열심히 집회를 인도했는데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목사님은 서로 목회 생활의 쓰라린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목사님이 3년만에 얻은 한 명의 사람, 로버트 마펫은 아프리카 선교의 기초적인 틀을 마련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목사님이 부흥회를 통해 영접한 단 한 사람,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대륙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불을 지른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단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한 사람의 가치는 정말 소중합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의 가치, 그리고 작은 것을 작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 15:7
42.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
중동 사막에는 베드윈이라는 무리가 있는데 이들은 장막을 치며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는 유목민입니다. 1947년 어느 봄철 이들 중 한 목동이 이스라엘 사해 북서쪽 어느 지역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유난히 동굴이 많았는데, 그는 심심풀이로 돌 하나를 들어 어떤 동굴을 향해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던진 돌이 동굴로 들어가더니 쨍그랑하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리를 신기하게 여긴 목동이 들어가서 보니 그 동굴 안에는 10개의 항아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10개의 항아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홉 개의 항아리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고 한 개의 항아리에서만 글씨가 적혀있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실망한 채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와서 자기 집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 가죽으로 신발 끈이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신발 끈으로도 적합할 것 같지 않아 그냥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사해사본’이라 불려지는 성경사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보물이나 진주보다도 더 귀한 역사를 보여 준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성경 사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 사본을 그저 신발 끈으로 사용하려 했을 뿐더러 가치도 모른 채 2년 동안이나 묵혀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태복음 7: 6
43.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한국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존재와 이름에 대하여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이나 한국 사람들이 다녀간 곳이면 어떤 곳이든지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남기는 것을 봅니다.
수년전 제가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유명한 인터라켄을 통해 융프라우 꼭대기를 올라갔습니다. 그 산은 아주 아름다운 산인데 그 산꼭대기에도 한국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가노라 한국 남자 김 O O.” 제가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은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은 아주 집요한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곧 영원을 사모하는 본능적인 몸짓이라 할만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
44.가치 있는 수고
유명한 영국 사상가 가운데 토마스 칼라일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평생 소원은 ‘불란서 혁명사’라는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쓴 책을 통하여 유럽 땅에서 더 이상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 인간다운 민주주의와 건강한 국민의 문화가 꽃피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성을 다해 거의 10년에 걸쳐 원고를 썼습니다.
그리고 완성하기 전 절친한 친구이자 철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에게 마지막으로 원고의 검토를 맡겼습니다. 스튜어트 밀은 서재에서 친구가 보낸 원고를 검토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침대로 가 잠이 듭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집 하녀가 서재를 청소하다가 방에 흐트러져있는 원고지를 보고 쓰레기인 줄 알고 한꺼번에 집어서 불 속에 넣었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의 그 길고 긴 노력과 수고는 한순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낙담한 채 서너 달 동안 자는 것과 먹는 것조차 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으며 생의 의욕조차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비오는 날 그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가 서서히 그치자 자기의 집 앞에 새집을 짓는 일꾼들이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터를 닦고 줄을 놓은 후 벽돌을 하나하나 쌓았습니다. 그러다 벽돌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다시 허물고 다시 쌓고 하였습니다. 허물고 쌓는 일을 반복하면서 차근차근 벽돌을 쌓는 그 광경을 보던 토마스 칼라일은 무릎을 쳤습니다.
“한 채의 집을 짓기 위해서도 저토록 정성스러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데 유럽의 역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일에 내가 다시 땀을 흘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는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가치 있는 일에는 가치 있는 도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45.다섯 손가락들의 자랑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우화 중에 다섯 손가락이 각자 자기 자랑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첫째 손가락이 자신을 뽐냅니다. “내가 엄지니까 최고야.”
둘째 손가락이 이에 질세라 자랑합니다. “무언가를 가리킬 때는 내가 제일 많이 사용된다.”
셋째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을 쳐다보며 으스댔습니다. “그렇지만 나란히 놓고 키를 재 봐. 내가 우리 중에 제일 크다.”
넷째 손가락은 잘난 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혼이나 결혼 같은 귀중한 사랑을 서약할 때 내 손가락이 사용되는 거 알지?”
손가락들은 모두 다 자기 자랑을 한가지씩 내놓았지만 마지막 남은 다섯째 손가락은 내놓을 자랑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손가락이 당당히 나와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나 없으면 병신이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말은 쓸모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디모데후서 2:20
46.시한부 인생
제가 알고 지내는 집사님 한 분이 어느 날 몸이 이상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받고 병실에 누워있는데 병실 밖에서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답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병명은 암이고 몇 달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무척 놀랐지만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때부터 집사님은 자기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집사님은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용서를 구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유서까지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암을 선고한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집사님의 몸이 멀쩡한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해 다른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전 병원의 암 진단이 오진으로 밝혀졌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주변사람들은 그가 병원의 오진을 모르고 그 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거의 다 써버린 것에 대하여 아까워하며 집사님의 심정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6개월 동안의 시한부 인생이 저의 삶 전체 중에서 가장 진지하고 보람있게 살았던 순간이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디모데후서 4:6
47.잊어버린 보화
윌리엄 허스트(William R. Hearst)라는 신문 편집인이면서 고대 미술품 수집광인 미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대 미술품이라면 뭐든지 좋아해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자기 손에 들어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유럽의 왕가에서만 사용되었다는 귀중한 도자기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야할 일을 모두 뒤로하고 즉시 유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는 도자기를 찾으려고 유럽의 이곳 저곳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도자기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한 도자기 상에게 새로운 정보를 들었습니다. 몇 해전에 미국의 어떤 언론인이 그 물품을 사갔다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그 도자기를 사간 사람이 누구인지 수소문하는 가운데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자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행복을 찾아 이 산 저 산을 넘어 헤매다가 돌아와 보니 행복은 바로 옆에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처럼 자신이 찾던 보화를 이미 오래 전에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값어치도 모르고 창고에 쳐 넣고 있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혹시 우리들도 그처럼 자신 안에 있는 보화를 잊어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48.아는 데 드는 비용
제가 잘 아는 재미 교포 사업가가 한 분 있습니다. 그분은 제지업(製紙業)을 크게 하시는데, 어느 날 한번은 그 집에 들렀을 때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얼마 전 공장에 종이를 접는 대형 기계가 고장이 나서 기술자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리하는 시간이 겨우 5분 정도 걸렸을 뿐인데 수리비로 5,000 불을 청구하더랍니다. 그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도대체 수리하는데 겨우 5분밖에 안 걸렸는데 왜 비용이 5,000 불이나 나왔냐고 따져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수리하는 데 든 비용 100불에 고장 난 곳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든 비용이 4,900불이라고 하더랍니다.
정말 대단하지요. 어떤 것에 대하여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4
49.격려의 중요성
네덜란드 출신인 어떤 사람이 런던에서 그림을 파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전도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 생애를 드리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전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사역했던 교회에서는 그의 서투른 설교에 대하여 이런 저런 비판을 가했습니다. 비판적인 영성으로 충만했던 이 교회는 이 젊은이를 세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결국 거기서 좌절하고 다른 사람의 권유에 따라 다른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의 신앙을 잃어버릴 뻔한 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Gogh, Vincent van)입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가 그에 대해 이런 흥미로운 기록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열정과 창의력을 보면 그가 만약 전도자로 헌신했더라도 세계에서 위대한 설교가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인류는 위대한 화가를 얻었지만 위대한 설교가는 잃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브리서 10: 24
50.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군대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좌절 등의 감정에 대해서 이런 재미있는 글을 썼습니다. “잠들만하면 기상, 먹을만하면 식사 끝, 외박할만하면 외박금지, 놀만하면 휴식끝, 볼 만하면 동작 그만 그리고 정들만하면 전출, 휴가 갈만하면 비상, 편지 볼만하면 소등, 그리고 놀려고 하면 개인활동금지, 편안할만하니까 전역.”
군대에 가면 공짜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모든 것을 책임져주는 아주 편한 곳 같은데도 사람들이 매우 불편한 곳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곳에서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교제하며 그 분의 도우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날마다 살아갈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편한 환경 속에서도 자족하며 평안하고 넉넉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족함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 4: 11
51.축복이 된 짐
외국 어린이 동화 중에 ‘개미들의 사랑’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 개미가 큰 길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 개미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 개미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큰길을 건너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큰길은 오래되어 낡고 험한 아스팔트길이기 때문에 아버지 개미는 무척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개미는 아들에게 건너갈 때 쓰라고 아주 기다란 지푸라기 두 개를 등에다 업혀 주었습니다. 이 아들 개미는 이것을 왜 가져가야 하느냐고 아버지께 항의했지만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투덜거리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아스팔트에 상당히 넓어 보이는 갈라진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는 개미에게 깊은 벼랑과도 같은 난관(難關)이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낙담한 채 등에 엎고 있던 지푸라기 두 개를 팽개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푸라기가 그 틈새 사이로 떨어져 어느새 틈새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지푸라기 두 개가 만든 구원의 다리를 건너가면서 청년 개미는 아버지 개미의 지혜에 감탄하며 감사드렸습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30
52.포기 할 줄 아는 지혜
올랜도 매직 농구팀의 감독인 팻 윌리암스의 저서, ‘올랜도 매직의 성공 비밀’의 내용 중 재미있는 디즈니의 한 일화입니다.
디즈니 초창기에 워드 킴벨이라는 전설적인 만화가가 있었는데, 그는 23살에 미술대학을 졸업하여 월트 디즈니사에 스카웃 되어 입사하였습니다. 그 당시 10분을 초과하는 만화가 없었는데, 그는 최초로 영화 길이와 맞먹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야심만만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이 작업을 하면서 그린 많은 그림들 중, 백설공주를 위해 난쟁이들이 수프를 끓여서 바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은 불과 4분 30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위해 그는 무려 8개월 동안이나 혼신을 다해 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매우 흡족해 하며 월트 디즈니 사장에게 그것을 갖다 드렸습니다. 디즈니 사장은 그림을 보더니 매력적이고 참 잘됐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한 그 장면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는 말을 사장으로부터 듣게 된 것입니다. 그의 8개월 동안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새벽녘쯤 자꾸만 사장의 얘기가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전체 줄거리에 별 의미가 없잖아. 오히려 이야기 흐름에 방해가 된단 말이야.” 이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다가 그는 사장의 말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전체 줄거리에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깨끗이 포기하였습니다. 포기를 배운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 8
53.하나님 없는 지식
옛날 로마에 작은 대학이 하나 있는데 그 정문 입구에는 대단히 인상깊은 표어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대학 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간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표어는 대학 설립자의 의도에 따라 정문에 설치되었고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 대학 설립자가 젊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고학생이었던 그는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애를 썼지만 학비가 없어 전전긍긍하며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 단체도 알아보고 사람들에게 동정도 구하다가 마침내 그는 로마에 사는 어느 유명한 그리스도인 귀족 부인이 젊은이들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귀족 부인을 찾아가 자신이 법률 공부를 하기 원하고 이 공부를 해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장학금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 긴 시간을 대화하지 않았는데도 이 부인은 쉽게 청년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번 학기부터 장학금을 드릴 테니 돌아가서 열심히 공부를 하십시오.”
부인의 배려에 감격하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정중히 인사하고 집을 나오려는데 부인이 다시 이 청년을 불렀습니다.
“젊은이, 잠깐만 이리로 오세요. 그 장학금을 가지고 가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먼저 이번 학기부터 등록해서 공부를 시작해야겠지요.”
“부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시험에 합격하여 제 꿈이었던 훌륭한 법률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저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후원하고 그 밖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을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좀 더 돈이 축적되고 나이가 들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사회 사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질문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그리고 … 그 다음에는 늙겠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죽겠지요 뭐.”
“그리고 그 다음에는…?”
“글쎄요…”
부인은 갑자기 청년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 그 다음도 모르면서 무슨 공부를 한단 말인가? 아까 자네에게 주었던 장학금을 돌려주게.”
부인의 호통에 청년은 매우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마음에 “그 다음에는…”이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 청년은 그 질문을 되새기다가 마침내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날 장학금을 얻으러 갔다가 그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중에 그는 자기가 세운 학교에 자기가 깨달은 뜻깊은 교훈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 경구를 정문에 붙여놓았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 7
54.제 삼의 귀
유명한 철학자 제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개의 귀를 허락하셨는데 입술은 하나밖에 주시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일보다 듣는 일을 갑절이나 더하게 하시려는 의도였다”고 말했습니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정말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자들은 대화의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말할 때 “제 삼의 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귀는 두 개밖에 없지만 또 하나의 귀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귀는 나와 얘기하고 있는 상대방이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에 들어있는 분노, 불안, 삶에 대한 짜증, 불만 등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대화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쉴새없이 이야기를 쏟아 내며 자기의 무지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언어 생활의 태도와 자세를 통해서 그 사람의 지혜로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잠언 20:5
55.하나님의 지혜
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기독교를 반대하던 세력들에 의해서 기독교 박해가 국법으로 선포된 때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 나가는 것은 당연히 금지되었고 특히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특별히 성찬식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피를 좋아하고 피를 기념한다는 이상한 소문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가다가 보초를 서있는 군인에게 붙잡혔습니다. 군인은 소녀를 잡자마자 어디 가냐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이 때 소녀는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하나님 앞에서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하고 싶지 않은 순결함 때문에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이 때 하나님께서는 소녀에게 지혜를 주셔서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큰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 가족들이 다 모여서 큰오빠의 유언장을 읽기로 했어요. 오늘은 큰오빠를 기념하기로 작정한 날이에요.” 이 말을 들은 군인은 빨리 가보라며 놓아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진짜 사실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라고 하니까 소녀와 예수님의 촌수를 따져보면 큰오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큰오빠가 돌아가셨고 큰오빠의 유언장인 성경 말씀을 낭독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큰오빠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힘든 고난과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사실을 말하고 살아 남을 수 있는 이 놀라운 지혜를 주님께서 소녀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56.영원한 샘물
영국의 유명한 학자이며 군인이자 저술가인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입니다.
그는 1919년 파리에서 개최된 평화 회담 때에 아랍 대표들과의 중재역할을 맡는 특별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는 아랍 대표들을 위해서 프랑스의 최고급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고 그들에게 프랑스의 유명한 명소를 관광시켜 주었습니다. 그들은 관광했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등의 유명한 명소보다도 호텔의 목욕탕을 훨씬 더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아주 귀한 사막지역에서 온 아랍 대표들에게는 조그만 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나오는 호텔의 목욕탕이 너무도 신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욕탕을 볼 때마다 “야, 여기 이런 신기한 것이 있었구나!”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담이 끝날 무렵 로렌스에게 그들이 묵고 있던 호텔의 직원이 황급히 찾아왔습니다. “정말 큰일났습니다. 로렌스 경, 지금 아랍 대표들이 호텔의 목욕탕을 다 뜯고 있습니다. 빨리 와 보십시오.” 그래서 달려가 보니 그들이 정말로 정신없이 목욕탕을 뜯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왜 목욕탕은 모두 뜯고 있습니까?” 그러자 아랍 대표들은 “이것을 다 뜯어서 아라비아로 가져가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대답에 당황한 로렌스는 자세한 내용을 차근차근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대답은 정말 황당했습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이 목욕탕은 정말 인기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놀랄 겁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이 목욕탕을 놓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쏟아질 테니까요.” 속사정을 들은 로렌스가 아랍 대표들에게 목욕탕에 물을 공급해 주는 수도관이 따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우 설명했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한복음 4:14
57.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한 예술가의 소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맨 처음 찾아간 사람은 종교인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 종교인은 믿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한 숙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군인은 세상에서 평화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믿음, 어떤 이는 사랑, 어떤 이는 평화라는 대답에 그렇다면 이 세 가지를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그림은 없을까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집 초인종을 누르자 그의 어린아이들이 마중을 나와 “아빠!”를 외치며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 팔에 매달리는 꼬마들의 눈동자 속에서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이 반짝거리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뒤에 나오며, “여보, 이제 오세요”하는 아내의 눈동자에서는 자기를 향한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집안에는 진정한 평화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 16:6
58.부모의 영향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바 있고 미국 영적 대각성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 역시 신앙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후손을 추적하여 그의 가계(家系)를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직계 후손은 현재까지 87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이 평범한 신앙인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맥스 쥬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교회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맥스 쥬크는 어느 날부터인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했던 사람은 그의 친구인 맥스 쥬크의 후손들도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가운데 유아사망 309명, 거지 310명, 불구자 44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별 볼일 없이 산 사람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두 가계의 대조는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제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부모가 경건한 삶을 살 때, 자녀들이 올바른 길을 갑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59.사랑 받지 못한 케네디의 암살자
오스왈드(Oswald), 그는 한 불행한 가정이 낳은 희생양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두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였고 두 번째 남편으로부터는 구타까지 당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가 열 세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세 번째 남편하고도 온전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세 남자들로부터 배신과 큰 상처만 받은 그의 어머니는 자식에게조차 사람은 믿거나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자식인 오스왈드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습니다.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소외되어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지냈지만 점차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탈되었고 부정적인 성향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적인 성격이 되어 급기야 고등학교에서 패싸움으로 인해 퇴학까지 당하게 됩니다. 중퇴를 하고 난 후 해병대에 입대했지만 그곳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하고 불명예 제대를 합니다. 그 후 유럽으로 건너가 지내다가 정체 불명의 여자와 결혼을 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생계는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끊임없이 돈이 없다고 화를 내며 그를 구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차라리 집에 들어오지 말라며 그를 밀어냈고 쫓겨난 그는 밤새도록 술을 마십니다.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내밀며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정합니다.
“여보, 이거 얼마 되지 않지만 당신이 사고 싶은 것을 사오. 그리고 나를 용서하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듯 당신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없겠소?”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며 그가 내민 몇 푼 안 되는 돈을 집어 던져버립니다. 그런 아내의 행동에 그는 절망감에 휩싸여 그만 밖으로 뛰쳐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숨겨둔 총을 꺼내들고 얼마 전 취직한 회사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케네디(John F. Kennedy).
1963년 11월 22일 시계바늘이 막 정오를 넘어가려는 순간.
“탕!”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한 사람의 비관적인 행동이 엄청난 비극을 저지른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의사 제임스 답슨(James Dob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 아들이 저지른 역사적인 비극이었습니다.”
케네디의 죽음을 놓고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이 오스왈드라는 사람에 대한 설은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이동원 목사의 짧은 이야기 긴 감동Ⅱ
제1부 모두가 축복받는 용서
1. 용서받아야 할 인간
어느 날 존 웨슬레는 사람들에게 용서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그 자리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던 아주 거칠고 난폭하기로 소문난 한 장군이 웨슬레 앞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나 나는 죽어도 나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웨슬레는 그 장군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장군님, 그렇다면 장군님은 앞으로 죽어도 죄를 짓지 마셔야 합니다.”
또한 존 웨슬레가 길을 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웨슬레는 그 친구가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원수로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웨슬레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가?"
그러자 그는 “그럼!"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웨슬레가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권면했지만 그 친구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좋네. 그럼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게. 하지만 자네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네. 앞으로 자네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짓을 해서는 안되네. 혹시 그 상대가 자네처럼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일줄 누가 알겠나?"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 13
2. 모두가 축복받는 용서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브라함 링컨(Lincoln, Abraham) 대통령은 언제나 그를 붙들고 늘어지면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욕을 안겨주는 정적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오리지널 고릴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라며 링컨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스프링필드가 링컨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링컨의 생김새가 고릴라 같았기 때문에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내각을 조직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바로 이 사람을 임명하였습니다. 모든 참모들은 링컨의 이런 개편에 충격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모들이 링컨에게 어떻게 당신의 적을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앉힐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적이 아니지 않소. 나는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가 나를 돕게 되었으니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좋지 않소.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하고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것으로 인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잃었단 말이오?”
복수는 복수하는 사람과 복수 당하는 사람 모두를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합니다. 복수를 해서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으로 링컨은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언19: 11
3사람을 변화시키는 용서
어느 날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자기의 병사 가운데서 구제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지만 너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다시 너를 징계하여 고치려 했지만 그 징계도 너의 삶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지만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너를 사형하는 길이므로 사형을 집행한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뛰어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웰링턴 제독님, 하지만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안한 것이 꼭 한가지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친구의 말에 제독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한다.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용서한다.”
그 다음부터 이 병사는 완전히 달라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 35
4. 아내의 기도
제 아내는 저보다 마음이 넉넉하고 관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한번도 아내가 남을 비판하거나 욕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남에 대해 흉을 보거나 하지 않소? 싫은 사람이 한 명도 없나보오.”
“왜 저라고 없겠어요. 저도 사람인데요. 하지만 싫은 사람이 있거나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그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는 지난번 아내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나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하고 살며시 다가가서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립보서 4:5
5. 토마스 모어의 최후 진술
‘유토피아’(Utopia)를 저술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사형 언도를 받고 마지막 재판관 앞에서 최후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모어, 당신은 최후의 진술을 할 수 있소.”
“재판관님,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천국에서 당신과 친구로서 만나고 싶다는 것이오. 당신은 지금 내게 사형을 집행했을지라도 스데반을 죽인 사울이 하나님을 만나 바울이 되어 스데반과 함께 천국에서 만난 것처럼 나도 당신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재판관은 토마스 모어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봅니다.
“어찌, 당신은 내게 그런 호의적인 말을 하오. 난 당신에게 사형을 내린 사람이오.”
그러자 토마스 모어는 “주님이 내게 그렇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라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1
6. 하나님의 긍휼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직전에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천사인 ‘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피조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 인간들은 온갖 불의로 이 세상을 더럽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천사인 '거룩의 천사'라는 이름의 천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됩니다. 그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놓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천사인 ‘빛의 천사’를 불러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빛의 천사는 “하나님, 절대로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됩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천사인 ‘긍휼의 천사’를 불러서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긍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이 세상은 불의하고 더러워지고 어두움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불의와 더러움과 어두움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저는 기어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들이 되도록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긍휼로 돌보시며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향해서 다가오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 5
7. 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의 비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어떤 시골마을에 브레인 튜머(brain tumor)라는 병을 앓고 있는 15세 소년 브라이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뇌종양과 비슷한 것으로 브라이언은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후에 그는 방사선 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졌지만 조금씩 회복되어 학교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학급에 20명 정도 되는 시골학교였는데 드디어 브라이언이 학교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학교에 오기 전, 반 친구들은 그가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서로 연락해서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 결정은 그들의 사랑하는 친구인 브라이언이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브라이언이 고통 속에서도 당당히 학교에 계속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반 아이들 전체가 머리를 모두 밀기로 한 것입니다.
브라이언의 수업 첫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보니 브라이언 뿐만 아니라 반 학생들 모두가 머리를 밀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은 이유를 알아차린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도 같이 울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의 위로는 바로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 7
8. 이심전심(以心傳心)
미국에서 아주 괴팍한 성격을 가진 여류 문학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큰 사업가였는데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늘 집안에서 글만 썼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유일한 위로는 글쓰는 것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랑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외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더욱 고립되어갔고 깊은 슬픔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부유해서 별별 치료를 다 받아보고 여행도 떠나 보았지만 그녀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글쓰는 일에도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그 여인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아들과 같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죽은 친구의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생을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살았던 이 괴팍한 여류 문학가가 처음으로 문을 열어서 이웃을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궁금해서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 죽은 친구의 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기에 갑자기 당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냥 나를 끌어안고 울더라고요. 나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회복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냥 같이 있어 주고 같이 울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 4
9. 주를 향한 무디의 순종
이 이야기는 D. L. 무디(D. L. Moody) 목사님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그의 일생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이자 동역자인 R. 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갔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높은 곳에서 시카고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보게 토레이, 나는 하나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명하시면 지금 당장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네.”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무디의 말에서 주님을 향한 깊은순종과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명기 1: 36
10. 절대적인 순종
어느 날 한 청년이 성 프란시스 형제회에 가입하고자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형제회 위원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위원들은 이 열의가 가득한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한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프란시스가 이런 엉뚱한 과제를 준 이유는, 청년이 상식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합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6: 16
11.말 없는 순종
영국 런던에는 영국 성공회에 속해있는 성 바울 대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습니다.
1600년 후반에 런던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런던 시내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런던 시민들은 물론이고 영국 국민 전체가 침체되어 절망과 낙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영국 여왕은 국민을 위하여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멋진 예배당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의 이런 마음을 알게된 영국의 한 유명한 건축가는 자신의 평생 사역으로 그 일을 자원했습니다. 그 건축가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랜(Christopher Wren)입니다. 이런 뜻깊은 의미의 성당이 건축된다는 소문이 영국 전역에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당의 일꾼이 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 성당은 무려 35년간에 걸쳐서 세워져 드디어 1710년에 성 바울 대성당을 헌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여왕이 그 성당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했습니다. 특히 이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랜은 여왕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여왕은 그 완성된 성당을 보자마자 입에서 “정말 놀랍군요”라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크리스토퍼 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35년간의 모든 수고가 가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성당은 나의 설계와 감독 때문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열망을 가지고 35년간 그대로 따라준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에베소서 6:5
12.피난처인 예수님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기내를 돌아다니는 꼬마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대여섯 살 정도 된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였는데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아주 활달한 성격 탓인지 비행기 복도에서 춤을 추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와서 얼굴을 만지더군요. 순식간에 이 여자아이는 비행기 안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 아빠도 잊어버린 채 뒷좌석에 탄 사람들과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여기 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명랑하던 아이가 순간 기류가 이상해지고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쏜살같이 엄마의 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고통받으면 가야 할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만날 때 달려갈 수 있는 품이 있고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긍휼이 풍부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심정을 내어놓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시편 144: 2
13.나보다 한 수(手) 위이신 하나님
제가 전도사 시절, 용인의 어느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 초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와 말씀을 준비하였고, 드디어 부흥회를 인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비가 와서 예배실 이곳 저곳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여러분, 비가 곧 그치도록 기도합시다. 여호수아가 하늘을 향해 태양아 머무르라 했을 때 태양이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면 이 비가 그칠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비가 멈출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믿음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비는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고 기도하면 할수록 더욱 거세게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러다 비가 더 오면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기도를 슬쩍 바꿨습니다. “여러분, 비가 계속 오더라도 부흥회에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살짝 도(度)를 낮춰 기도 드린 것입니다.
기도가 끝난 후,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 데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가 그치기는커녕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교회 전도사님과 성도님들도 이 광경에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때가 농번기라 동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까 비를 피해 성전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밤 그 마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아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모든 것이 선하게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28
14.피할 수 없는 하나님
제가 수 년 전 어떤 한 교회에서 새생활 세미나를 인도했을 때 일입니다.
사흘째 되는 저녁에는 도덕적인 자유에 대한 강의로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인간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에 대한 중요성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때 집을 가출한 한 자매가 저의 설교를 들었는데 여러 해 동안 자기 부모를 원망하며 멋대로 인생을 살았던 자매였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았던 자매에게 인간 사이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저의 설교는 그녀의 마음에 찔림을 주었습니다.
그후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았고 자기의 죄악된 생활을 회개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화목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고민만 하다가 교회 출석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래도 양심에 찔림 때문에 다른 교회로 출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또 그 교회에 나타나 우연하게도 똑같은 도덕적 자유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제발 그 내용만은 설교하지 않기를 바랬던 그 자매는 그 설교를 듣고 더욱 괴로워져 다시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녀의 친구가 불광동 수양관에서 열리는 젊은이들을 위한 수양회에 초대하여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강사로 저를 또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자매는 같은 설교를 들으며 마음에 찔림으로 번민하면서도 집회는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수양회에 돌아와서도 끝까지 용기가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낙심 중에 세월을 보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자매는 새생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다시 저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발 그 설교만은 안 하길 기대했지만 그녀는 또 한번 그 말씀을 듣고는 결국 더 이상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비로소 그녀는 하나님께 항복을 선언하고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맡긴 후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 받았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자매에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원망했던 부모를 찾아가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그 집안이 모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자매가 저에게 전화로 그 기쁨을 알려주었을 때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분은 어느 곳에 있든지 우주를 뒤져서라도 우리를 찾아 오셔서 “거기는 바른 길이 아니란다. 바른 길은 여기 있으니 이 길로 돌아오라. 그리고 이 길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이사야 30: 21
15.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영국의 유명한 찬송 작가인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서른 두 살이 되었을 때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낀 나머지 이런 인생을 계속 살기보다 차라리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에 뛰어내릴 작정으로 마부에게 테임즈 강을 향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표정을 수상하게 여긴 마부는 청년을 내려놓고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에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돌아갑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사십시오.” 그 마부 때문에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아직 숨쉬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독제를 먹여서 살려 냈습니다. 두 번째 자살에도 실패한 그는 ‘내가 이래서는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면도날을 가지고 손목의 동맥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면도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는 꼭 성공하리라 결심하며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매단 순간 또 이웃집 사람이 와서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곧 끈을 풀어 병원으로 데려가 살렸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렴풋하게 ‘아,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인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정신병 징후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했던 이웃들의 배려와 손길을 통하여 교회로 초청 받았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분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405장)을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뉴톤 목사님은 그의 친구가 되어 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상담해주고 격려하면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목사님처럼 시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양육해준 목사님을 따라 그도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쓰여진 찬송시 중에는 찬송가가 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는 곡이 무려 67곡이나 됩니다. 그 중 우리 찬송가에 세 곡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샘물과 같은 보혈은”(190장)입니다.
그가 쓴 찬송시 중 그가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을 때 쓴 찬송시가 있는데 “주 하나님 크신 능력”(80장)입니다. 한국 찬송가는 곡조에 맞추다보니 원 작사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는데, 가사를 다시 번역하면 이런 내용의 찬송시입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도다.
그분은 경이롭게 일하시니 바다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며
폭풍우 위로 걸어가시는 도다.
저 깊고 깊은 생각 위에 내가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로써
자신의 밝은 계획을 높이 세우고 그 분의 주권 적인 뜻을 이루시는 도다.
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지니 은혜로우신 그 주님을 의뢰할지라.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짓는 얼굴을 숨기시는 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시편 18: 19
16.불행이 곧 행복
배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선원 중 한 명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극적으로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인도에서 살아나기 위해 땀흘려 나무를 모아 거의 한달 만에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오두막집이야말로 무인도에서 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에 들어갔다가 해질 무렵 다시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애써 지은 오두막집이 불 길속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집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좌절과 쓰라림으로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 그냥 멍하니 주저앉았습니다.
땅거미가 진 후 그는 나무 잎사귀들을 모아 해변가에 가서 임시 잠자리를 만들어 잠을 청했습니다. 오랜 날들을 땀흘리고 애써서 만든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절망적인 가슴을 안고 깊은 고통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쯤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는데, 눈을 떠보니까 놀랍게도 배 한 척이 도착해 사람들이 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배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들은 이 섬 앞을 지나가다가 불타는 집을 보고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고 있구나’하고 이 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집이 불타는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이 불행한 사건 뒤에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극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잠언 5: 21
17.종된 자의 삶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모두 자기가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 의식은 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장관도 대통령도 모두 국민의 종이라는 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종노릇을 해야지 지배자가 되려고 하면 독재가 되어 나라가 잘못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것은 유교적 영향을 받은 우리 한국 사회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말 때문에 목사를 ‘주의 종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호칭에서 ‘주’에는 ‘님’자가 안 붙고 ‘종’에만 ‘님’자가 붙어있어 늘 부담스럽게 들립니다. 사실 정확한 호칭으로 맞는 것은 ‘주님의 종놈’(?)입니다.
종은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인 것처럼 목자가 양을 섬기는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제직들은 종으로서 교우들을 잘 섬기도록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종은 종으로서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18.섬길 수 있는 자만이 다스릴 수 있다
미국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예수님을 알기 전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있다가 거듭난 후 교도소 전도자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은 인도 캘커타의 고인이 되신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때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연설 때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치자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더랍니다. 오히려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막히는 감동과 전율이 그들의 가슴과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테레사 수녀가 던진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빌립보서 2: 3, 4
19.황금률
어느 날 나의 일상 생활 속에서 ‘황금률이 진리다’라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반말하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아빠, 이리와, 이것 좀 줘”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들이 건방지네. 왜 우리 아이들은 무례하고 건방질까?’하는 생각에 “너 뭐라고 했어? 왜 아빠한테 반말해?” 그랬더니 단번에 “왜 못해?”라고 되묻습니다. 그때 황금률이 생각났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래서 순간적으로 전락을 바꿨습니다.
“아니에요. 미안해요 사실을 내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러자 “뭔데요? 아빠”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남을 높이며 대접하면 나에게 높이는 대접이 돌아오고, 남을 무시하는 말을 하면 나에게 무시하는 말이 돌아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누가복음 6: 31
20.하나님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감리교 운동의 창설자인 존 웨슬레(John Wesley)는 그 당시 영국과 세계에 신앙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신앙의 무대에 강력한 라이벌로서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고 설교에 관한 한 사람들은 조지 휫필드를 더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는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웨슬레에게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천국에 가서 조지 휫필드 목사님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웨슬레 목사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 만나지 못할걸요?” 질문을 던진 사람이 “그렇지요. 목사님께서는 조지 휫필드 목사님의 신앙관으로는 천국에 못 간다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그러자 웨슬레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말을 오해하셨군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종인 조지 휫필드는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감히 그 분 곁에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웨슬레는 신학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 3
21.섬기는 기쁨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여행하는 중에 어느 한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자살하고 싶은 괴로운 심정을 테레사 수녀에게 고백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묻는 그 자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자살하기 전에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세요. 딱 한 달만 내가 일하고 있는 인도의 캘커타에 와서 나의 일을 좀 도와주신다면 그 다음에 당신이 어떻게 해야 될지 말씀해 드리죠.”
그 자매는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캘커타 슬럼가에 가서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섬겼습니다. 그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하다 보니까 그녀의 마음에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자매는 그들을 돕고 섬기는 데서 순수한 환희를 느꼈고 한 달 후에는 테레사의 다른 조언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그 곳에 머물러 일하면서 테레사의 좋은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22.함께하는 삶
인도의 성자 선다싱의 일화로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어느 날 그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전도에 나섰을 때, 친구 한 사람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길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행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그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껴 그 행인을 도울 여유가 없었습니다. 같이 가던 친구는 그냥 가자고 했지만 선다싱은 그 사람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었습니다. 친구와 한참을 다투다가 결국 친구를 먼저 가도록 하고 그는 추위에 떨면서 쓰러져 있던 행인을 들쳐업었습니다.
얼마동안을 걸었을까요. 한참동안 행인을 업은 채 산길을 걸어가다 보니 먼저 떠났던 그 친구가 길에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친구는 혹독한 추위 때문에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다싱은 자기가 들쳐업은 사람의 온기 때문에 오히려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체온이 얼어붙은 추위를 녹여 무사히 산을 넘어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12
23.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선행
바그다드라는 중동의 어떤 왕국에 어린 왕자가 강에서 놀다가 그만 거센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습니다. 왕은 자기의 군대를 총동원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찾기 위해 며칠간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강 하류를 샅샅이 수색해도 왕자를 찾지 못한 왕은 자기 아들이 죽은 줄 알고 크게 낙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러 주간이 지난 후에야 왕자가 어느 깊은 강의 바위 위에서 살아있는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왕은 놀랍게 살아난 왕자에게 어떻게 살아 있게 되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왕자는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강 위를 떠내려가다가 다행히 강 한복판에 우뚝 솟은 바위에 걸려서 바위 위로 올라올 수가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빵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가 떠내려와 그것을 먹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빵이 들어있던 가죽주머니에는 “모하메트벳 핫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사람을 수색해 보았더니 강가에 정말 그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가죽에 빵을 담아서 강 하류로 떠내려보냈던 것입니다. 왕이 그에게 그렇게 한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선행을 하라, 빵을 물위에 던지라. 그러면 그대에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되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 속담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자기가 물위로 떠내려보내는 이 빵 조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한 선행이었지만 이것이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도서 11:1
24.섬김의 자부심
테레사 수녀와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순결한 인격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특별히 그녀의 질투 없는 삶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테레사가 한 어린아이의 고름을 만지며 치료하고 있을 때 함께 살고 있던 한 분이 이런 질문은 던졌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이나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혹은 높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당신은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이러한 질문에 테레사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9:35
24.값진 선물
어느 전도자가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걸인에게 돈을 주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걸인 앞으로 다가갔지만 마침 그의 주머니에는 동전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차마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의 마음에 있던 연민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손을 내밀어 걸인의 손을 따뜻하게 쥐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죄송합니다. 마침 제게 준비된 것이 없군요. 그러나 추위에 차가워진 당신의 손을 잡아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 생활을 시작해 보십시오.”
걸인은 전도자의 말에 눈물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나에게 적선한 모든 이들보다 더욱 값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 3, 4
26.되돌아오는 소리
어떤 바보스러운 사람이 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의 고민은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바보는 계속 고민하다가 자기의 인생을 비관하게 되었고 답답한 마음에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산도 자기를 아는 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얼마나 비관했는지 산에 올라가서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그랬더니 산울림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바보는 산울림에 놀라서 산에 오른 한 사람에게 왜 산이 자신을 싫어하는 지 물었습니다. 그 분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큰소리로 이렇게 외쳐 보십시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바보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이렇게 소리를 지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소리가 다시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27.천국에서의 만찬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천국과 지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긴 젓가락을 쓰는 것도 같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밥을 먹으려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각자 자기 입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짜증을 내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정하게 먹여 주면서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도 평화롭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때 행복의 기초가 세워짐을 말해 줍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누가복음 14:15
28.우스꽝스러운 비극
미국에서 역사상 제일 지독한 구두쇠로 알려진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1916년에 죽은 그 할머니의 이름은 히티 그린(Hity Green)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할머니는 얼마나 돈을 쓰지 않고 인색하게 굴었기에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 할머니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필요해서 써야 하는 것, 예를 들면 음식이 차면 데워서 먹는 것조차 전기가 든다고 일평생을 그냥 차갑게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이 다리를 다쳤는데도 조금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병원 비용 때문에 계속 미루다가 결국 절단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더 우리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것은 할머니가 남긴 유산이 1억불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삶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구두쇠처럼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는 많은 돈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산 것입니다.
가끔 우리 주변을 보더라도 이런 할머니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도리어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더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구제의 손길을 펼치는 것을 보게 되지요. 어쩜 우리들도 이와 같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사랑을 가졌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구두쇠라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
29. 3등석에 탄 사람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요 이동 수단으로 역마차를 이용했습니다. 역마차 크기는 작아도 좌석이 세 칸으로 나뉘어 있어서 1, 2, 3등석 세 종류의 승차권을 판매하여 운행했다고 합니다.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반듯한 도로가 아니라 포장되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한참 달리다보면 고장이 나서 몇 번씩 정차하여 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 순간 어느 좌석에 앉았느냐는 역마차를 탄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야말로 1 ,2 , 3등석의 차이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1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도 아무 관여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입니다. 2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면 마차에서 내려 마차가 수리될 때까지 서서 구경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3등석에 앉은 사람은 고장이 나면 즉시 내려서 마부와 함께 마차를 수리하는데 참여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부들은 출발하기 전에 누가 3등석에 앉았는지 눈여겨보곤 했답니다. 왜냐하면 3등석 승차권을 가진 사람들이 일꾼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때 역마차가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 10:44
30.그리스도인의 참된 교제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Francis)가 세운 공동체는 중세기에 가장 유명한 공동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응집되어 있기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모임을 매우 흠모하며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도 인간 관계의 위기는 언제나 있듯이 이 공동체 안에서도 인간 관계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 모인 사람들의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서로 냉담해져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여러 가지의 제안들이 나왔습니다. 한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좀더 예배를 드리자.”
어떤 사람은 큰 소리로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 수도원의 신앙훈련이 약화되었다. 좀더 강력한 훈련을 시작하자.”
또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원의 규칙을 강화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얘기가 오가는 동안 프란시스는 조용히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프란시스는 단순히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다 쓸데없는 일이네. 문제는 내 안의 교만이야. 내 안에 아직도 교만이 있단 말이야.”
그 다음날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한 필의 말밖에 없어서 프란시스가 말을 타고 다른 제자들은 걸어서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프란시스는 자기 뒤를 따라오는 제자들 중에 레오나르도라는 형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귀족 출신으로 버릇없이 자라서인지 수도원안에서도 늘 대접받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수도원의 불화 원인도 그 형제 때문이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이 레오나르도 형제가 앞서가는 자신의 뒤통수를 불쾌하게 째려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말 위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자 성령께서 그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레오나르도 형제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맞소. 나는 말 탈 자격이 없어요. 당신이 말을 타야 하오.” 프란시스의 말을 들은 레오나르도는 그 자리에 엎드러지고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며 통곡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형제가 말을 탄 프란시스의 뒤통수를 째려보면서 하던 생각을 성령께서 프란시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이 일을 통하여 놀랍게도 사랑이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이 공동체가 복음을 위해 영광을 나타내는 놀라운 공동체로 더욱 쓰임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 수도원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의 복음 증거는 강력했으며 그 가운데 영적인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 23
31.사랑의 사귐
1772년 영국 런던에는 영향력 있는 설교자인 존 길(John Gill) 목사님이 사역하는 매우 잘 알려진 교회가 있었습니다. 존 길 목사님은 평생동안의 사역을 마치고 그 교회 후임자로 시골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존 휘세트(John Fawcett) 목사님을 초빙하였습니다. 작은 마을의 목회자였던 존 휘세트 목사님에게는 다시 올 수 없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초빙을 복음을 통해 영국 전역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여기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교인들과 교회를 떠나는 일이 마음 아프긴 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하여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짐을 마차에 싣고 뜰을 나서는데 교인들이 찾아왔습니다. 떠나는 목사님을 감히 붙잡을 수 없었던 교인들이 눈물을 애써 참으며 목사님을 배웅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모님이 갑자기 “여보, 작은 교회지만 복음 안에서 참 아름다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교인들을 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라며 울먹였습니다.
사모님의 말을 들은 목사님은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목사관으로 뛰어들어가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 그는 자기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어 찬송시 한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525장이 되었습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 1
32.화합의 요건은 온유
공동체가 하나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온유한 태도입니다. 온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인격으로 인하여 우리 개인과 가정, 직장, 교회가 큰 상처를 받고 관계의 화합이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남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는 내 스타일은 “뒤끝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빌리선디 목사님께 찾아와서는 “나는 화를 잘 내는 것이 큰 흠입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는 않아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자매님, 당신의 화는 오래가지 않지만 당신이 성냄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마음에 남겨진 그 상처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 1-3
33.중보자이신 예수님
빌리 그래함이 한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전쟁 중에 통신병이 중요한 연락 사항을 명령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통신 수단이 두절되어 명령을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시간도 급박하고 연결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이 급박한 절대 절명의 상황 속에서 통신병은 양쪽의 전선을 자신의 양손으로 붙잡아 자기의 생명을 걸고 마지막 메시지를 아군 지원부대로 무사히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생명을 마쳤습니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를 붙잡아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신 중보자의 모습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로마서 5: 10
34.사랑의 희생
유명한 화가가 된 알버트 뒤러의 어린 시절은 무척 가난해서 학비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를 만나서 학교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던 중에 친구가 이런 제의를 했습니다. “뒤러야, 우리 두 사람 모두 공부를 계속할 수가 없으니 네가 먼저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나는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널 도울게. 그리고 네가 공부를 마치고 나서 나를 지원해주면 우리 둘 다 공부를 할 수 있지 않겠니?”
두 친구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뒤러의 친구는 식당에 가서 그를 위해 열심히 일하여 매월 꼬박꼬박 학비를 보냈고, 뒤러는 친구의 도움으로 미술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뒤러는 자기의 학비를 벌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한 친구의 도움을 생각하며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친구는 식당 한 구석에서 절친한 친구 알버트 뒤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친구 뒤러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 저의 손은 이미 식당 일로 인하여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으니 제가 할 몫까지 뒤러가 모두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기도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있던 알버트 뒤러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친구의 손을 바라보는 순간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즉시 붓을 들어 사랑하는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하였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뒤러의 “기도하는 손”입니다.
성숙함이 없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 인간이 줄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거룩한 것이므로 주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행전 20: 35
35.이기심을 극복한 희생
빅톨 위고가 쓴 유명한 소설 ‘나인티 쓰리’라는 책에는 아주 인상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란서 혁명 직후에 숲을 지나가던 병사들이 우연히 배고픔에 지친 어머니와 세 아이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병사들 중 한 상사가 빵 한 덩이를 그들에게 던져주자, 어머니는 지체하지 않고 빵을 세 조각으로 똑같이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던 한 젊은 병사가 빵을 주었던 상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그러자 상사는 “그게 아냐,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이기 때문이지.”
어머니의 사랑이 이기심을 극복하게 하여 희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36.마땅한 권리를 포기한 성도
중국의 유명한 성도인 윗치만 니(Wachman Nee)가 간증한 내용입니다.
어떤 마을에 예수를 믿는 한 성도가 살았는데 그의 논에는 항상 물이 풍성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마침 심한 가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루 밤새에 자기의 논에 고여있던 물이 다 빠져나가고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바로 옆에 있던 이웃집에서 자기 논의 물을 밤새도록 빼내어 간 것입니다. 그 성도는 그 물이 자기 논에 고여 있던 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 물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행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튿날 아침, 이웃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왜 당신은 나의 논에 고여 있던 내 물을 다 빼내어 갔습니까?”
그의 주장에 변명할 여지가 없었던 이웃은 못내 사과를 하며 빼내어 갔던 물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논에 나가보니 물은 또 다 빠져나가 버리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웃을 찾아가 다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몇 번씩이나 되풀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성도는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여 물을 찾아왔는데도 마음이 도대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정당한 일을 하는데 왜 저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까?”
그의 기도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왜 정당한 일만 하려고 하느냐? 나는 네가 정당한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길 바란다.”
“하나님! 그렇다면 도대체 정당한 일보다 더 위대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너도 그 사람을 대하여라.”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 의미를 몰라 여러 번 계속 물으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마음에 큰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날 밤 그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기도 전에 일찍 나가서 이웃사람이 자기 논에서 물을 빼내어가기 전에 미리 자기 논의 물을 이웃의 논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는 놀라운 기쁨과 평안이 다시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3:9
37.유대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한 유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당신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유대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라며 강한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의 대답을 통해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음을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틀리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는 당신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유대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잖아요? 기독교는 열심히 전도하니까 그렇게 믿는 수가 증가할 수 밖예요. 그러나 우리는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 믿으면 되지 다른 민족까지 믿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 때 전 다시 한번 유대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그들만의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지체이며 가족인 사실을 외면하면서 배타적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後嗣)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6
38.예수 안의 참 기쁨
어느 추울 겨울날 밤에 술이 잔뜩 취한 한 남자가 교회의 문을 소란스럽게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따라 교회를 지키는 사찰 집사님도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사찰 집사님은 취중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구시오?”
“난 신도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왜 신도가 되기를 원하시오?”
“저에게 슬픔이 많아서 기쁨을 찾고 싶습니다.”
“기쁨을 얻고 싶은 사람이 하필이면 왜 예배당에 오셨소?”
“예수님이 기쁨을 주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때 사찰 집사님의 대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런 양반 여기에 안 계시오.”
예수님이 없는 교회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마음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 4
39.선택한 기쁨
A. W. 타겟(A. W. Target)이라는 사람이 쓴 ‘창'이라는 단편 소설 가운데의 내용입니다.
어느 작은 병실에 두 남자가 입원해 있었는데, 한 사람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은 환자이고 또 한 사람은 디스크 환자였습니다. 디스크 환자는 수술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지만 폐암 환자는 하루에 한시간 정도는 자리에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곤 했습니다. 병세로 보자면 폐암말기 환자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왜 그런지 늘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디스크 환자가 창 밖을 보고 있는 폐암 환자에게 도대체 밖에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지긋이 눈을 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와 백조가 한가로이 떠있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여인들과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보이네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디스크 환자의 얼굴은 갑자기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폐암 환자의 얼굴에 늘 기쁨이 있는 까닭이 그의 침대가 창문 곁에 있기 때문이고, 자기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폐암 환자가 죽어서 나가면 저 창가의 침대를 차지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폐암 환자가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신음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스크 환자는 비상벨을 눌러서 의사를 부를까 하다가 침대를 차지하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 갑자기 옆 침대가 조용해졌고 고통받던 폐암 환자는 그의 기대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어 있는 자리에 병원의 허락을 받아 드디어 창문 곁 침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옮기자마자 그의 있는 힘을 다해서 침대를 붙들고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창 밖에는 회색의 콘크리트 담벼락뿐이었습니다.
그는 그제야 폐암 환자의 기쁨이 환경 때문에 생긴 기쁨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기쁨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쁨을 창조적인 상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 도다 -고린도후서 7: 4
40.기쁜 삶의 창조
헬렌 켈러는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3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마음의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선생님, 갈색이 어떤 색깔이에요?”
“헬렌의 머리 색깔과 같단다.”
“제 머리 색깔이 아름다운가요?”
“헬렌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곱단다.”
설리번 선생님은 상상력과 마음의 눈으로 주변의 세계를 따뜻하게 감지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를 통해서 헬렌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느끼는 기쁨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고백한 기쁨은 그녀의 유명한 자서전인 ‘마이 스토리’라는 책에 “나는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라는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을 보면 아주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내가 사흘만 눈을 떠 볼 수 있다면, 첫째 날 나는 내 인생에 참된 사랑을 일깨워 준 고마운 사람들을 먼저 만나서 그들의 얼굴을 정말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그 다음은 천진 난만한 아기들을 보고 싶고 그리고 나에게 더없이 신실한 친구였던 개 라이오네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저녁 무렵에는 숲 속을 거닐고 싶다. 둘째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동트는 광경을 바라본 다음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고 싶다. 그 곳에서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싶고 위대한 미술 작품이나 조각품을 감상하고 싶다. 저녁에는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일찍 일어나 동트는 새벽의 여명을 한 번 더 지켜보련다. 그 다음에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걷는 모습,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도 보고 싶고 또 고통스러운 아픔의 표정도 보고 싶다. 그 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뉴욕 시내를 구경할 것이다. 가난한 슬럼가도 가보고 싶고 또한 아름다운 공원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셋째 날 저녁에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극장에 가서 희극을 관람하면서 한없이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과 기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사도행전 2: 28
41.관용에서 나오는 진정한 기쁨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월남에서 부상당하여 돌아온 군인들을 위한 대대적인 위문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프로그램의 총 책임자인 감독은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인 밥 호프(Bob Hope)를 이 공연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밥 호프는 너무나 바쁜데다가 선약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밥 호프가 없는 위문 공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감독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위로해 주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라며 여러 번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밥 호프도 끈질긴 감독의 부탁에 “그러면 제가 한 5분 정도만 얼굴을 보이고 내려와도 괜찮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최측에서는 그렇게만 해줘도 고맙겠다고 해서 밥 호프는 그 위로공연에 출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공연 당일, 5분을 약속하고 올라간 밥 호프가 얘기를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밥 호프는 5분이 지나도 끝낼 생각을 안하고 10분, 15분, 25분이 넘었는데도 공연을 계속했습니다. 밥 호프는 거의 40분 동안 공연을 하고 내려왔는데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감독은 5분을 공연하기로 하고 40분을 하게 된 경위와 눈물을 흘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의 물음에 밥 호프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앞줄에 있는 두 친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나가보니까 앞줄에 상이(傷痍) 군인 두 사람이 열심히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팔을 잃어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왼팔을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오른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왼팔을, 왼팔을 잃어버린 사람은 오른팔을 사용해서 두 사람이 함께 박수를 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며 밥 호프는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저 두 사람은 나에게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 팔을 잃어버린 두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함께 기뻐해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된 기쁨을 배웠습니다.”
슬픔 많고 고통 많은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원한다면 이웃들의 허물을 덮고 그들의 삶을 세워 관용하는 정신을 배워야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베푸셨던 동일한 관용을 구하여 이웃에게 베푸는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줄 것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 16
42.희극배우 그리말디의 거짓된 기쁨
어느 날 프랑스 파리의 정신과 병원에 한 청년이 우울증을 호소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의사가 상담을 하다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방안에만 계시지 말고 밖에 나가서 그 유명한 희극 배우 그리말디의 쇼를 보십시오. 그 쇼를 보고 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달리 보일 것입니다.”
그 청년은 의사의 권고에 아무 대답도 안하고 조용히 병원을 나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선생님, 내가 바로 그 희극 배우 그리말디입니다.” 그리말디는 무대 위에서 순간적으로는 기뻐할 수 있었지만 그의 생활 가운데서는 지속적으로 기쁨을 유지시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순간적인 기쁨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기뻐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순간적인 평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평안을 지켜 가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 9
43.기쁨의 원천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과 하나님을 아는 즐거움이 어떻게 다른가를 이렇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캄캄한 시골길에 한 농부가 등불을 켜고 마차를 몰고 간다. 불행히도 이 농부는 마차에 켜 놓은 등불 때문에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을 보지 못한다.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움은 그것이 고급한 즐거움이든 저급한 즐거움이든 간에 이 농부가 마차에 켜고 다니는 등불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 등불 때문에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아름다운 별빛을 보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상 즐거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실 뿐 아니라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원천이 되시는 분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8
44.고통을 동반하는 기쁨
생물의 영역 속에서 지능이 높은 동물일수록 고통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어느 철학자는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의 고통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설화입니다. 한 여인이 현실 세계의 삶을 마치고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서 그 경계를 짓고 있는 스탁스 강 앞에 섰습니다. 그 때 웨이론이라는 요정이 나타나 여인에게 말합니다.
“스탁스 강을 건너기 전에 미틀스 계곡의 물을 한번 드셔보셔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어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는 물이라면 마시겠어요.”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기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전 이 세상의 모든 실패의 기억들을 지우고 싶어요.”
“그러면 당신의 모든 성공의 기억들도 함께 망각하게 됩니다.”
“저는 빨리 세상의 모든 상처를 잊고만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모든 사랑도 망각하고 말 것입니다.”
여인은 요정의 마지막 말에 조용히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렇다면 저는 그 샘물을 마시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설화를 통해 인생의 법칙을 배웁니다. 인생 속에 고통과 실패,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시에 기쁨과 성공,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1-4
45.염려가 부르는 죽음
중세 유럽에서 콜레라가 한참 유행할 때, 한 농부가 마차를 몰고 성을 향해 가는데 갑자기 어느 부인이 마차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 부인은 농부에게 성까지 태워 줄 수 없냐고 부탁했습니다. 농부는 부인의 부탁에 승낙하여 함께 성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분위기가 좀 야릇하게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마차를 세울 때는 몰랐는데, 태우고 나서 부인을 보니 부인이 계속해서 소름끼치는 묘한 웃음을 자신에게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콜레라 여사입니다.”
“왜 제 마차에 타셨습니까?”
“저 성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기 위해서 지요.”
“그렇다면 부인을 태워 줄 수 없으니 지금 당장 내리시오.”
“지금 날 태워 주지 않으면 당신부터 죽이겠소.”
“그러면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합시다. 내가 당신을 성까지 태워 줄 테니 다섯 명만 죽이시오.”
그래서 꼭 다섯 명만을 죽이기로 약속한 후 농부는 콜레라 부인을 태우고 성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에 도착해보니 천 명도 넘는 시체들이 성 앞에 즐비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농부는 화가 나서 “부인,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다섯 명만 죽이기로 했는데 이것이 웬 시체들이오?”
“나는 아직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 사람들은 뭡니까?”
“저 사람들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레 겁먹고 죽은 사람들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 6
46.염려를 이기는 처방
한 풍자적인 기독교 작가가 어린이를 위하여 쓴 ‘참새와 물새의 대화’라는 동화내용입니다.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참새야, 저 아래 땅위에서 허덕거리며 걸어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봐. 저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라며 말을 걸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참새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신뢰한다면 들에 핀 한 포기의 풀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시는 나의 존재를 깨닫고 허우적거리거나 삶을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염려를 이기는 첫 번째 처방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6
47.쓸데없는 걱정
옛날 오래된 학교에서는 종을 치는 종치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종을 치다가 노이로제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한 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종치는 사람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 종을 36,000번 쳐야 합니다. 매일 이 학교에서 10번씩 종을 치는데 계산해보면 일주일에 70번, 한 달이면 300번, 일년이면 3,600번이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다 끝내려면 앞으로도 10년을 더 쳐야 합니다.”
그 대답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보다 못해서 이런 지혜로운 충고를 했습니다.
“형제님! 하루에 10번씩만 종을 치시고 한번에 한 번씩만 종을 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48.주둥이 보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도 수없이 변합니다. 눈을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세상 말도 있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은 곧 삶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궁리를 하지요. 그들의 궁리 끝에 생겨난 것이 바로 보험입니다.
자동차를 많이 타다 보니 자동차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자동차 보험에 들게 되고, 요즘은 비행기를 타는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항공 보험에까지 듭니다. 그리고 건강을 보장받기 위해서 의료 보험에 가입하고, 힘들게 장만한 보금자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택 보험에도 듭니다. 또한 도난, 화재 등 여러 가지 상상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갖가지 보험에 듭니다.
유럽의 유명한 축구 스타들은 그들의 발이 생명이라고 발 보험까지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손 보험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이들처럼 하나쯤은 보험에 들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보험을 들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주둥이 보험(?)”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편91:2
49.성숙한 자의 겸손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어떤 학생이 졸업 여행으로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어느 산 속에 있는 정자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노신사를 만나 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수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 공부했는가를 묻는 노신사의 질문에 학생은 기세 당당하게 “수학을 정복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학생이 노신사에게 “수학을 어느 정도까지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 노신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나는 겨우 수학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했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노신사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학생은 그 분의 수학 지식이 비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은 ‘도대체 이분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놀랍고도 궁금한 마음에 “도대체 선생님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노신사는 “내 이름은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라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이름은 아주 유명한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수리학자의 이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1:2
50.부족한 겸손
두 명의 단짝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크리스천이었지만 다른 사람은 불신자였습니다.
어느 날 불신자 친구가 크리스천인 단짝 친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친구를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곰곰이 친구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교회당이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크리스천 친구가 자주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장 교회당으로 달려가 교회 문을 열어보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정말 전 부족한 놈입니다. 저는 매일 잘못을 저지릅니다. 용서해 주셔요.”
불신자 친구는 그 소리가 나는 앞자리로 조용히 갔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 친구의 기도를 듣고는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부족한 놈아!”
“뭐라고? 너는 뭔데? 내가 부족하다고?”
크리스천 친구는 하나님께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자신을 진정으로 부족하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로새서 2:18
51.무디의 겸손
D. L. 무디(D. L. Moody)가 미국의 한 도시에서 전도대회를 열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모 신문사의 한 기자가 무디에게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무디는 전도대회로 너무나 바쁜 나머지 그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신문 기사마다 “교만한 전도자 무디”라는 혹평의 글들이 실렸습니다.
무디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이런 거짓된 기사를 싣다니 말도 안돼”라며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화를 내야 할 무디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동료 한 사람이 무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사마다 공개적으로 선생님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화나지 않으십니까?”
“제가 화가 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기자는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쓴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는 그보다 더 교만한 사람입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편 37:11
52.하나님의 음성
저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절망했던 때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던 스무 살 때였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리셨기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 여섯 그리고 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살림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살던 집에서 쫓겨나 수원 팔달산 토굴에서 살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사느니 다 함께 죽어버리자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고 제 삶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집에 가기 싫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제 발길이 우연히 교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저의 마음에 막연히 가졌던 신앙에 대한 동경과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물밀 듯 찾아들었습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피곤해진 저는 교회의 종 탑 작은 마루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녘쯤 갑자기 환한 빛이 들어오면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저는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종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제 마음에 이런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를 위해 일하라.”
저는 그 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하나님을 믿으면 새로운 미래가 찾아오려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절대로 절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날 새벽 교회 종 탑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은 저의 삶에 새롭고도 분명한 관점을 주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다가 여섯 명의 동생을 책임져야할 장남이었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제 아내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며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결혼한 후에 들은 얘기인데, 아내가 새벽기도 중에 계속해서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저의 아내는 문제가 일어나면 주님이 책임지시기로 했다면서 어떤 어려움도 견뎌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한번도 실망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사람들의 훈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주님 앞에 엎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인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 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 음성을 너로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 큰 불을 네게 보이시고 너로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신명기 4: 36
53.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해
의사였다가 기독교 작가로 변신한 크로닌 박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광산촌에서 계속 의사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촌에는 억울하게 오해를 받아 그곳으로 쫓겨온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쫓겨온 데다가 월급마저 아주 적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여유 있고 자신 만만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병원 진료시간이 끝났는데도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더 하곤 했습니다. 그런 간호사의 모습을 본 크로닌 박사는 안쓰러워서 간호사에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가치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아실 텐데 말이야.”
이 간호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간호사의 답변은 신앙적으로 헌신되어 있지 않던 크로닌 박사의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습니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불편한 환경에서도 당당하고 빛나는 삶을 살게 한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곳에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 얼마나 내 상황이 불편한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17: 15
54.좋은 미래를 보는 눈
‘성공을 만드는 소중한 사람이’의 저자, 지그 지글러는 세계적인 기업 경영 강연자이면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직장 여성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이 여성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해서 수많은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녀는 나쁜 대우와 괴롭히는 직장 상사, 좋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쭉 나열하면서 지글러에게 상당한 동정을 기대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글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가씨의 환경이 앞으로 더욱 나빠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큰 일이 닥칠 위험이 있습니다.”
지글러의 동정을 기대한 여인은 무척 실망했습니다. 지글러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아가씨는 직장과 동료들을 싫어하고 있죠?”
“맞아요. 저는 직장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동료들은 꼴도 보기 싫어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가씨가 직장을 싫어한다면 직장도 아가씨를 싫어할 것이고, 아가씨가 동료들을 싫어한다면 동료들도 아가씨를 싫어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누가복음 6장 31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을 황금률이라고 하는데 아가씨의 삶이 바뀌려면 직장을 좋아하고 동료들을 좋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글러의 말을 듣고 있던 그 여성은 펄펄 뛰면서 말했습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습니까?” 지글러는 백지 한 장을 주면서 직장과 동료들의 좋은 점을 작은 것이라도 써보라고 주었습니다.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게 종이만을 쳐다보고 있는 여성에게 지글러가 다시 물었습니다. “직장에서 월급은 받으시죠? 월급 받는 것이 싫습니까? 좋으면 종이에 적으십시오. 휴가 때 쉴 수 있어서 좋지 않습니까? 이것도 좋으면 쓰십시오. 또 다른 좋은 점이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세요.” 그 여성은 한참 생각하다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직장이 저희 집에서 가까워서 출퇴근하기가 편해요.” 그녀는 한 가지씩 좋은 점을 생각하며 쓰다가 보니 좋아하는 것이 스무 가지가 넘었습니다. “직장에 좋은 점이 이렇게 많은데도 맘에 안 드십니까?”
지글러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충고를 하였습니다.
“아가씨가 다니는 직장이 무지하게 좋아질 것이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과 아름답고 소중한 관계가 될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주변의 환경과 사물과 사람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좋게 보이기도 하고 나쁘게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민수기 14: 9
55.삶의 자부심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워싱턴 시를 지나가다가 한 흑인 청소부가 있는 대로 욕설을 퍼붓고 짜증을 내면서 청소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의 곁에 조용히 다가가 “이보게 젊은이,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맡기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겠나?”하며 등을 두드리며 계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청소를 할 때에는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미켈란젤로가 조각을 하듯, 괴테가 작품을 쓰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게나.”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제2부 항상 처음처럼, 항상 마지막처럼
1.항상 처음처럼, 항상 마지막처럼
어느 날 저는 설교 준비를 하다가 결혼 초기에 주 앞에 드렸던 기도문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그 기도를 주 앞에 드렸습니다.
“하나님, 서투른 아마추어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처음 보는 하늘이듯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처음 만났던 그 감격으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 여인을 처음 그렇게 바라보던 그 눈초리로 그렇게 내 아내를 보게 하소서.
처음 들어서는 예배당이듯 그 설레임으로 예배당 안에 앉게 하소서.
처음 내 마음속에 그 구원의 메시지가 내 심장을 사로잡던 그 감격으로 처음 그 설교를 듣는 그 심정으로 설교를 듣게 하소서.
오 주님, 마지막 단두대에 올라 서 있는 사형수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하늘인 것처럼 하늘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아내인 것처럼 그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보는 예배당인 것처럼 그 예배당을 바라보게 하소서.
마지막 듣는 설교인 것처럼 그 설교를 듣게 하소서.”
우리가 축복 받는 것에 익숙하면 우리는 그 축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 감격을 상실합니다. 감사를 망각합니다. 그리고 불평과 원망이 쌓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2.만족할 줄 모르는 하녀
영국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유명한 부자인 컨글튼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컨글튼 경이 집에서 쉬고 있는 데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만약 5파운드가 생긴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이 말은 들은 컨글튼 경은 그 하녀에게 다가가 정말 소원이 그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녀는 놀라면서 “그럼요, 주인님. 정말 그렇고 말고요.” 그래서 컨글튼 경은 일하는 하녀의 등을 두들겨 주면서 “내가 자네 소원인 5파운드를 줄 테니 이제부터는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게”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하녀에게는 혼자 그냥 중얼거린 한 마디의 넋두리가 정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5파운드를 하녀에게 주고 난 후 오후에 컨글튼 경이 정원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구, 이럴 줄 알았으면 10파운드라고 말하는 건데. 정말 아까워라.” 그 하녀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불평했습니다. 이 하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일에든지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5:10
3.폭풍우 속의 평안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반 학생들에게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그린 그림 중에서 두 작품이 우수한 작품으로 뽑혔습니다.
한 학생이 그린 그림은 쳐다보기만 해도 평안을 느끼게 하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마을 앞에는 잔잔한 시내가 흐르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삽살개 한 마리가 초가집 마당에서 한가로이 졸고있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슬쩍 보기만 해도 아주 평화스러워 보이는 반면에, 또 하나의 다른 그림은 아주 다른 평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폭풍우가 무섭게 몰아치는 높은 벼랑의 모습이 이 그림의 배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깎아지는 벼랑의 틈바구니 속에 깊이 패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어미 새의 품안에서 새록새록 잠들어 있는 아기 참새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평안은 전자의 평안이 아니라 후자의 평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
4.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전세계에 큰 신앙의 감동과 영향을 남긴 분이십니다. 그분의 간증 속에 실린 감동적인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코리 텐 붐은 그의 가족 모두가 유태인들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독일에서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라벤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수용소에서 가족들은 모두 죽고, 독일의 패전으로 코리 텐 붐만이 기적적으로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이 여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자기를 핍박하고 가족들을 잔혹하게 죽인 독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여 독일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간증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집회로 인하여 죄책감 가운데 사로 잡혔던 수없이 많은 독일 사람들이 죄에서 자유를 얻었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코리 텐 붐이 독일의 시골 도시에서 말씀과 간증을 모두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들 중에 어떤 한 사람이 그녀의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 사람은 감옥에서 자기 언니 벳시가 죽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죄수들을 못살게 괴롭혔던 라벤스브룩의 수용소 간수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그 간수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아 주님께 속으로 몇 번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 돼요.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할 수 없어요. 저 사람만은 안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정할 때마다 계속해서 ‘사랑하라. 그것은 명령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을 깨달아 ‘하나님, 저는 그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사랑할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해보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느새 그 사람이 자기 눈앞에 다가오자, 그녀는 사랑의 감정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에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한 감정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녀는 그 간수를 솔직히 사랑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순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 8
5.참된 사랑
그리스도인들을 무섭고 끔찍하게 박해했던 시대에 한 성도가 순교하기 직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저주하십시오. 당신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나에게 침을 뱉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입니다.
나를 구타하십시오. 나는 신음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입니다.
나를 찌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입니다.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십시오. 나는 사랑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나를 불태우십시오. 그러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용서를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주님을 닮아갑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 7,8
6.사랑의 확인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사랑이 확인되지 않으면 애인도, 부부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아주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결혼 첫날밤에 신부에게 이러한 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낯간지럽고 간사하게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은 결혼한 첫날이니까 오늘밤에 딱 한번만 하겠다. 이 한번은 평생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은 들은 신부는 매우 기막혔지만 지혜로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모르는 문제가 나한테 한가지 있어요.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예요. 다른 문제는 없는 데 이상하게 어떤 얘기를 들으면 자꾸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당신이 그 말을 날마다 해주지 않으면 나는 그 말을 잊어버릴 거예요.”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사랑의 확인이 꼭 필요합니다.
은총의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저희가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심이니이다 -시편 86:17
7.한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 셀러로 소개되었고 우리 나라에도 번역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존 웨인 쉴레터라는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 병상에 모여든 자녀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유언을 남겼습니다. 죽음 앞의 고통 중에도 어머니는 의식을 차려 이렇게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죽은 다음에 내 무덤에는 어떠한 꽃도 가져오지 말아라. 왜냐하면 나는 무덤에 없을 테니까. 나는 육체를 떠나면 곧장 유럽으로 갈 예정이다. 네 아빠가 밤낮 유럽에 데려간다고 약속만 했다가 한번도 가보지 못했잖니.” 그 때 어머니의 임종 앞에 침통한 마음으로 있던 자녀들은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자녀들을 바라보시며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자”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 바로 지식 있는 어머니라는 표현보다 지혜로운 어머니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떠나가면서도 자녀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었던 어머니의 지혜가 아름답습니다.
그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또 하나의 작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 메모에는 유언 같은 시가 기록되었는데 그 시가 더욱 감동스럽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 나 때문에 울고 싶다면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 곁에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울어다오.
너희의 두 팔을 들어 나를 껴안고 싶거든 내게 주고 싶은 바를 네 형제들에게 베풀어다오.
아이들아 나를 만나고 싶거든 내가 알았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다오.
너희가 어미 없이 살 수 없다고 느끼거든 나로 하여금 너희의 눈, 너희의 마음, 너희의 친절한 행동 속에 살게 해다오.
사랑은 죽지 않은 것. 그러므로 나를 대신해 내 사랑을 너희 이웃들에게 베풀어다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 30, 31
8.사랑의 넓이
제가 결혼할 당시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 사이에는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다”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맞다고 믿었습니다. 결혼하면 처음에는 의지적으로 사랑하겠지만 늘 부딪치고 살다보면 사랑의 불타는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정으로 사는 것이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면 사랑의 애틋하고 달콤함은 금새 사라질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아내를 생각하게 되고 한순간도 옆에 없으면 못 살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주야로 아내를 생각하다보니 저절로 아내 때문에 나훈아가 부른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도 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게 되면 사랑의 대상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모든 사고와 존재의 영역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18~19
9.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은 나 자신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존재가 나를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나의 삶의 깊이와 불안한 미래를 단번에 아시는 그분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인 예수를 대신 십자가에 달아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만약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었다면 벌써 이 세상을 박살내버렸을 텐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다니? 그분은 사랑하시는 것도 나 한 사람밖에는 사랑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날 사랑하신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할지라도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셨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 9
10.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웃 사랑
어느 교회야사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간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 아닌 네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네 번째 박사는 주님께 드릴 예물로 의약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찾아가는 여행 도중 사막을 지나다가 병들어 신음하는 환자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환자를 보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세 명의 박사를 먼저 보낸 후 그는 남아 자기의 식량과 의약품을 사용하여 그 환자를 정성껏 간호를 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고 그 환자가 소생하게 되었지만 그 때는 이미 주님께 드릴 의약품을 다 써버린 후였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돌보느라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여행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박사는 환자 곁에 엎드려서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는 메시아이신 주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의약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아픈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이 사람을 위하여 의약품을 다 써 버렸습니다. 이제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도 없고 몸도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가 주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경배합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그가 기도를 마쳤을 때 놀랍게도 그의 곁에서 신음하던 환자는 주님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 40
11.아가페 사랑
어느 마을에 인형을 무척 좋아하는 제인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에 놀러오신 이웃집 아저씨에게 그 소녀는 여러 가지 인형들을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인형을 보고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소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인아! 너는 이것들 중에 어떤 인형을 제일 좋아하니?” 그 물음에 소녀는 입을 꼭 다물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소녀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아저씨, 제가 좋아하는 인형을 보여 드릴께요. 그런데 한가지 약속을 해주세요. 제가 인형을 보여드릴 때 절대로 웃지 않겠다구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이상했지만 소녀와 약속하고는 인형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소녀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코는 주저앉고 팔 다리는 다 떨어져 나간 낡은 인형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저씨는 그 인형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 이 인형을 제일 좋아하는 구나. 그런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무슨 이유 때문에 너는 이 인형을 제일 좋아하니?” 제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왜냐 하면요, 이 인형은 제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이 작은 소녀 제인의 대답에서 아가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1
12.사랑의 언어
유명한 전도자인 D. L. 무디(D. L. Moody)가 설교를 마치고 나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설교는 너무 좋았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문법적으로 틀린 부분이 50여 군데나 되는군요.”
그 말은 들은 무디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저는 감격스럽게도 지금까지 문법도 안 맞는 엉망진창인 언어로 수천 명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정확하신 언어로 몇 사람이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셨는지요?”
주님께서는 거창한 웅변보다는 위대한 사랑으로 목마른 이웃들을 찾아가 사랑의 생수를 전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린도전서 13:1
13.눈물 있는 사랑
한 부인이 신앙 상담을 하기 위해 스위팅 박사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전도 훈련도 열심히 받았고, 성경 암송도 익숙할 정도로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저는 단 한사람도 주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이웃집의 한 자매를 전도하려고 했지만 아무 성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박사님.”
스위팅 박사는 부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당신의 눈에 사랑의 눈물이 메말라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 126편 6절을 보면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라고 시편기자는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인은 박사의 대답을 듣고 즉시 집에 돌아가 주님께 사랑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날이 다 저물기 전에 그녀는 이웃의 자매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14.사랑의 힘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엘리나라는 78세 된 화란 출신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평생 소원은 담배를 끊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50년간 담배를 끊기 위해 클리닉에도 가보고 약도 먹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슨 노력이라도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 할머니는 어느새 78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나 할머니가 79세 된 제이슨이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뒤늦게 사랑에 빠져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이슨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데 단 한가지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오. 당신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거 같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이 할머니는 “그래요? 그러면 제가 담배를 끊지요”라면서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었답니다. 그녀의 50년간 이루지 못한 평생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줄에는 “나는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의 힘은 의지의 힘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할머니의 멋진 고백이 실려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7
15.사랑의 순례
유명한 아시시의 성자인 프란시스(Francis)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겪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나환자를 본 순간 마음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 편은 그에게 가서 기도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고, 다른 한편은 ‘그에게 병이 전염되면 어떡하나’ 라는 두려움의 마음이었습니다. 결국 두려움의 마음이 이겨 나환자를 그냥 지나쳐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의 다른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시고 부담을 주셨습니다. 그는 마음에 생긴 부담 때문에 그 자리에 서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나환자를 그냥 지나쳤는데 그것이 잘못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네가 왜 그를 그냥 지나쳤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그가 너무 더럽게 느껴져서 그 병이 전염될까봐 그랬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그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그 더러운 나환자보다 나으냐? 너는 이전에 그 나환자보다도 더 더렵혀진 죄인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했단다.”
그 순간 그는 나환자보다 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이었던 자신에게 주님이 찾아와 사랑으로 받아주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나환자에게 돌아가 그에게 입맞추고 축복을 합니다. 이때부터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는 알베르나의 산록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끊임없는 사랑의 순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생(生)의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 “나의 사랑, 나의 전부이신 예수여!”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로마서 15:7
16.모두 소중한 아들
저는 예전에 다른 목사님들로부터 이런 예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을 다섯이나 둔 어떤 사람이 아들이 하나도 없는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하나도 없는 친구가 “자네는 복도 많구려.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 말이야. 그 중 하나만 내게 줄 수 없겠나?”라고 물었습니다.
아들 다섯 둔 사람은 웃으면서 “그래, 그렇게 하지. 우리 사이에 그것이 문제인가? 다섯 아들 중 하나를 줄 테니 자네 아들로 삼아 잘 키워보게나”라며 엉뚱한 친구의 요청에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다섯 둔 사람은 아내에게 친구와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펄쩍 뛰며 “말도 안돼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라며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친구와 약속한 것이니 지켜야 한다고 우기며, 다섯 아들이 잠자고 있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들을 줄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씩 쳐다보면서, 첫째 아들은 장남이라서 안 되겠고, 둘째 아들은 다섯 아들 중에 제일 똑똑하고 지혜로우니 안 되겠고, 셋째 아들은 제일 잘 생겼을 뿐더러 자기를 쏙 빼 닮은 아들이라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을 보니 그 아이는 늘 몸이 약해서 아플 때가 많았는데 준다고 생각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면서 도저히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 명도 아닌 단 하나뿐인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 -로마서 8:32
17.아버지의 마음
시골에 사는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걱정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들아, 나는 네가 꼭 다시 돌아오리라고 믿는단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네게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오렴. 혹시 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의심일랑 일체 하지 말거라. 어디서나 네가 붉은 단풍을 보게 되면 바로 그 심정으로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아들을 그렇게 보낸 후 몇 해가 지나갔습니다. 아들에게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더욱 간절하게 집밖으로 나와 서성이며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유난히도 단풍이 일찍 지고 없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안되겠다 싶어 가족들에게 홑이불을 단풍 색깔로 물들여 나뭇가지에도, 지붕에도, 돌아오는 아들이 볼 수 있는 곳 어디에든지 덮어두라고 시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은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걸어오면서 단풍나무며 지붕이며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인 홑이불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20
18.아버지라는 이름
제가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 가장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분들이 기도할 때마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혈육의 아버지가 계신데 굳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그래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았지만 북한이 고향이신 어르신네들은 “아바지시여!”라고 부르짖는 것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제 마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절대적인 신이시니까 좀더 거창하면서도 그분의 위엄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제게 기도를 시키면 언제나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라고 거창한 서두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때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나의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혈육의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 그 이상의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셨던 하나님! 그 순간 ‘아버지’라는 단어만큼 가장 제 마음을 대신 할 말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저 역시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19.사랑이 기초가 되는 지식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가 잘 되어야 튼튼하듯이 지식을 쌓는 데에도 기초공사가 필요합니다. 이 말의 뜻은 지식에는 바로 사랑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 쌓기는 때때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런 예가 있습니다.
어떤 감옥에 간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죄인들을 대하면서 그들이 죄를 짓는 이유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지식은 바로 삶의 목표이며 신념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수감되어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습니다. 그를 본 간수는 아는 것이 힘이고 배워야 산다는 신념에 따라 시간이 나는 대로 젊은이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젊은이는 꺼려했지만 간수의 끊임없는 설득에 의해서 글을 배우고 지식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식을 쌓는 동안 세월이 흘러 젊은이는 출감하게 되었습니다. 간수는 기뻐하며 세상에 나가 지식을 풀어 쓸 기회가 왔다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이는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의 죄명은 문서위조죄였습니다. 이렇듯 사랑이 없이 쌓여진 지식은 때때로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전서 8:1
20.제 아내가 되어주셔서
저는 지금도 총각 시절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저의 모습은 젊은 청년답지 않게 늘 몸이 약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여자가 이런 나를 좋아하겠는가’라는 생각에 결혼에 대해서 늘 비관적이었고 그 때문에 장가는 당연히 못 갈 줄 알았습니다. 더욱이 전도사 시절에는 빈혈이 심해서 1년에 한 두 번씩은 설교 도중에 쓰러졌다면 말 다한 거지요. 그 뿐 아니라 그런 빈약한 모습을 그 당시 처가 식구들이 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저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식구들이 모두 두 손들고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게 시집을 와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닙니까?
“정말 제 아내가 되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첫날 밤 아내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황홀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평생동안 아내를 업고 살아도 모자랄 판에 요새는 봐도 그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과 우리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놀라운 은혜를 받았어도 처음과 달리 그것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은혜나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호세아 13:5-6
21.입술의 범죄
고대의 로마시대에 기독교를 몹시 미워하고 박해하던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기독교도인을 불러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죽음을 앞에 둔 기독교도를 조롱했습니다. “도대체 너가 믿는 주라고 하는 목수 나사렛 예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그의 조롱에 앞에 서 있던 기독교도는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그 황제의 영혼을 주께 드리면서 황제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나사렛 예수는 그의 하늘나라의 목공실에서 폐하를 위하여 관을 만들고 계십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님을 망령되게 말하던 황제는 그 자리에서 그 인생의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2: 36, 37
거짓말하는 죄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합니다.
“엄마, 도적질하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거예요?”
엄마는 이 아이에게 “그야 물론 도적질하는 것이 더 나쁘지”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생각은 엄마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엄마! 아니에요. 엄마는 틀렸어요. 거짓말이 훨씬 더 나빠요. 왜냐하면 도둑질은 돌려 줄 수가 있지만 거짓말은 돌려 줄 수 없잖아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출애굽기 20: 16
22.명예의 탐심
한 마을에 존 부스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똑똑한 형과 비교를 당하며 자랐으며 부모님께 야단을 맞을 때면 늘 ‘나는 못나서 그렇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형은 매사에 일을 잘 처리하는 모범생이었고 나중에 아주 훌륭한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항상 그런 형에 대하여 많은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아주 유명한 사람을 죽이면 나도 유명해 지겠지?’ 그래서 그가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주저함 없이 링컨 대통령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한 시대가 낳은 훌륭한 위인을 죽였던 그 청년의 죄의 동기는 바로 명예에 대한 탐심이었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누가복음 12: 15
23.죽음을 부른 소유의 욕심
톨스토이가 즐겨하던 이야기 중에 어떤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왕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았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밟고 걸어 다니는 땅은 모두 다 네 것으로 주겠다.” 이 농부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동안에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좀더 많은 땅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힘을 다하여 밤늦게까지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땅을 차지하고 나서 자신이 시작했던 출발점에 도달했을 때, 모든 힘을 다 쏟아 버린 나머지 쓰려져 죽고 말았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어리석거나 우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디모데전서 6: 9
24.거짓 부부
아주 오래 전 전도사 시절에 어느 부인과 면담했던 내용입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월남전에 참전한 기간동안 홀로 남아있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다른 남자와 만나 불륜의 관계를 가졌던 여인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월남전에 있던 친구가 고국으로 먼저 돌아왔다가 친구 부인의 불륜을 알고 이 부인의 부정한 생활을 남편에게 폭로하였습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그 부인의 남편은 무섭도록 냉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이 문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처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같이 정확하게 회사에 출근하고 집에도 정확하게 퇴근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정과 자녀를 향한 경제적인 책임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아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아내와는 절대로 대화를 하지 않았고 마치 아내가 없는 것처럼 무시하며 한 집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부부였지만 속으로는 전혀 남남이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의 마음과 몸은 날이 갈수록 병들어 갔고 남편과 이혼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상담을 요청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 35: 17
25.너 자신을 아는 것
소크라테스 시대에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꼽힌 소피스트들은 마치 자신들이 모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이런 오만하고 교만한 지식인들을 보면서 소크라테스는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작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내가 저들과 다른 점이 한가지 있다면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우스개 소리로 만일 수학 선생님 같으면 “네 분수를 알라”, 국어 선생님 같으면 “네 주제를 알라”, 지리 선생님 같으면 “네 자리를 알라”, 미술 선생님 같으면 “네 꼬라지를 알라”라고 했을 것입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 5
26.어리석은 자존심
미국인 선교사인 모르갠 박사는 인디언 마을들만 찾아다니면서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언 마을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을 지나가다 우연히 길을 잃은 인디언 청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르갠 박사는 친절하게 “젊은이! 길을 잃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인디언 청년은 자기들의 생활 터전인 숲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더욱이 백인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더욱 자존심이 상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뇨, 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내 오두막집이 없어져서 찾고 있소.”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언12:15
27.너도나도 정신병 환자
용인에 한 정신병원이 있는데 제가 1년에 한 두 번 정도 설교를 하러 갔습니다. 어느 날 제가 설교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중간에서 킬킬거리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에서 예배가 허락된 사람들은 비교적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들인데 한사람이 막 웃기 시작하니까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를 쿡쿡 찌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얘는 미쳤어요. 미쳤어.”
미친 사람이 미친 사람보고 미쳤다고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강대상에서 설교를 하던 저도 함께 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사람이 저를 보고도 “저 사람도 미쳤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미친 것을 그 날 처음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 중에 악한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3
28.끊임없는 두려움
인도의 설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마술사가 쥐 한 마리를 관찰하다가 쥐가 고양이 앞에서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관찰하던 마술사의 마음에 쥐가 불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술사는 마술을 부려서 이 쥐를 고양이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변신한 고양이가 또 다시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개를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더 불쌍하게 느낀 마술사는 다시 한번 마술을 사용해서 이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개가 된 고양이는 개가 되자마자 이번에는 호랑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도 불쌍히 여긴 마술사는 또 다시 마술을 부려 호랑이로 변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변신하자마자 호랑이는 사냥꾼의 총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사냥꾼을 두려워하는 호랑이를 보면서 마술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해보았자 너의 두려움이 끝나지 않으므로 너는 별 수 없는 쥐새끼다. 다시 쥐로 돌아가라.” 그래서 다시 원래 모습인 쥐로 돌아왔습니다.
이 설화는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피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한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29.욕심과 질투의 말로
유대인들의 랍비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어느 날 한 천사가 두 여행객을 만나 함께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아주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한참을 여행하다가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분 중에서 먼저 한 분이 저에게 소원을 말하시면 제가 그분의 소원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분에게는 첫 번째 사람이 얻은 것에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행운에 기뻐해야 할 두 여행객은 오히려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했다가는 두 번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이 얻을 것이므로 말하지 못했고, 질투가 많은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보다 더 얻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다가 둘 다 아무 말도 안하고 침묵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인내심이 극에 달한 욕심 많은 사람은 참다못해 질투심 많은 사람의 목을 꽉 잡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네가 먼저 얘기해. 말 안 하면 죽인다.” 그랬더니 질투 많은 사람이 고민하다가 이렇게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소원은 눈 하나가 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어떻게 되었을까요? 질투 많은 사람은 눈 하나만 장님이 되었고 욕심 많은 사람은 두 눈이 다 멀어 버렸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15
30.혼돈을 만드는 정치인
몇 명의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 세상에 가장 오래된 직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의사 친구가 말을 꺼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직업은 당연히 의사야.” 다른 친구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 의사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뽑으셨던 때부터 수술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자 옆에 있던 건축가 친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반박했습니다. “아냐, 건축이 먼저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기 위해 세계를 설계하실 때부터 건축업은 이미 있었네.”
옆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던 철학자 친구가 무겁게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자네도 잘 모르는 군. 성경에 보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땅이 혼돈했다고 했네. 벌써 그때부터 혼돈이라는 철학적인 관념이 존재했다네.”
그때 정치가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한바탕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 친구들 여태 그것도 모르는가? 그 혼돈을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 아닌가? 흐흐흐….”
예수님이 계셨던 당시의 대제사장들은 단순한 종교인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가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가야 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라를 혼란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어 죄가 없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한복음 11:53
31.혀의 파괴력
예전에 ‘애틀랜타 저널’이라는 잡지에 모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매우 인상 깊은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혀가 초래할 수 있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관하여 시사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의 희생자를 전 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를 거느린다.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중상 모략이다.”
다른 사람들의 신상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 3:6
32.투기의 악마성
오스카 와일드가 투기에 대한 악마성을 비유의 글로 설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귀의 부하들이 리비안 사막을 지나다가 우연히 성자가 되기 위해 길을 떠난 한 순례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부하들은 이 순례자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려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성의 쾌락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등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순례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정을 대장 마귀에게 보고하자 대장 마귀는 그 부하들에게 잠자코 나를 따르라고 하면서 길 가던 순례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귀에 은근한 목소리로 무슨 말을 속삭이자 갑자기 순례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발걸음을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순례자를 무너뜨린 것을 본 부하들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부하들이 내막을 묻자 마귀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간단하지, 나는 순례자에게 너의 동생이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가 되었다고 했지.”
그 마귀는 계속해서 졸개들에게 이렇게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인간들은 투기하게만 만들어 놓으면 손쉽게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야고보서 3:14, 15
죄의 합리화
1931년 5월 미국 뉴욕에서는 사람을 잘 죽이기로 유명한 크라울리(Crowley)라는 살인범이 경찰에 의해서 체포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로 사람을 잘 죽이냐 하면, 우연히 길가는 사람이 잘못해 그의 모자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왜 기분 나쁘게 내 모자를 건드리냐"고 하면서 총을 쏠 정도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뿐 아니라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경찰까지도 죽이는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는 한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기가 언제나 정당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는 항상 정당한 이유로 살인했기 때문에 절대로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 받은 후 전기의자에 앉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마침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늘 나의 삶을 비참하게 사형으로 마치는 것은 내 죄를 끝까지 합리화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언 4:19
34.착각
어떤 여학교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신화의 내용을 얘기해주셨습니다.
나르시스라는 열 여섯 살 된 소년이 숲 속의 은빛 고요한 호수를 지나다가 우연히 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그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사랑을 고백했지만 상대방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만 호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이 수선화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 신화에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유래되었는데 그 단어의 뜻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병, 즉 자애병이라고 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있던 한 여학생이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아무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정말? 왜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거울 앞을 떠날 수가 없거든요.”
“이봐 학생, 그것은 자애병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병이란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디모데후서 3:2
35.웃지 못할 이야기
김영삼 대통령의 정권 막바지에 이르러는 엄청난 경제적인 위기의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우리는 국제화 시대에 어울리는 모양새를 갖추기도 전에 IMF라는 국제적인 용어만을 습득하게 되어버렸습니다. IMF라는 용어는 시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때 사오정 시리즈처럼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조크가 있습니다.
IMF에 돌입하기 직전 참모 하나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답니다.
“각하,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IMF로 진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IMF가 뭐꼬?”
“각하, IMF는 국제통화기금의 약자입니다.”
“어쩌자고 국민들이 그렇게 ‘국제통화’를 많이 했는고?”라고 하더랍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잠언 9:6
36.동전 한 닢의 가치밖에 안 되는 죄
하루는 아버지가 예쁜 그림이 그려진 화병을 하나 사왔습니다. 겉에 그려진 그림 때문인지 속이 보이지 않는 큰 화병입니다. 아버지는 가끔 그 화병 속에 땡그랑 소리가 나게 동전을 집어넣습니다. 그 집의 꼬마는 아빠가 동전을 넣을 때마다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꼬마는 화병이 거실 바닥에 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달려갑니다. 그리고 화병 안에 손을 집어 넣어보았습니다. 동전이 손에 잡혔습니다. 그러나 꼬마가 화병에서 손을 빼려고 하는 순간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만 병 안에 넣었던 손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콧등에 땀이 날 정도로 안간힘을 썼지만 손이 빠지지 않자,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며 울어댑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서 달려온 식구들은 아이의 손을 빼내보려고 애를 씁니다. 비누칠을 하고 식용유를 발라 보아도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의 마음은 긴장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어. 그것을 놓으면 내 손이 빠질까?”
“무엇을 쥐고 있는데?”
“아빠가 넣은 동전이야.”
이제까지 손이 안 빠졌던 이유는 바로 동전 한 닢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동전을 놔야지.”
쥐고 있던 동전을 놓자, 아이의 손은 쉽게 빠졌습니다.
우리들도 어쩌면 동전 하나의 가치밖에 안 되는 죄를 붙들고는 안간힘을 쓰며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합니다. 그것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호세아14:2
37.죄의 무게
어느 목사님께서 집회 때에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며, 그 죄가 우리를 어떻게 억누르는 가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죄의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저는 죄의 무게를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죄의 무게가 50Kg입니까? 아니면 100Kg입니까?”
이때 목사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보게 청년, 죽어있는 송장 위에 100Kg의 짐을 얹어 놓아 보게. 그 시체가 그 무게를 느끼겠는가?”
“죽은 송장은 느낄 수가 없지요.”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있으면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놓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모든 현대인들의 상태입니다. 거리로 나가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전도해보면 거의 대부분 죄인임을 거부하고 반발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2년 동안 수원에 있는 교도소에 매주 목요일마다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제가 2년간 교도소를 출입하면서 얻은 결론은 “수원 교도소 안에는 죄수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사연을 들어보면 모두가 억울하게 들어온 사람뿐 죄수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죄인 됨의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지만 진정한 깨달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고백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 9
38.반복되는 역사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어떤 학생에게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학교에 아버지를 불러오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과 그의 아버지가 함께 학교에 왔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역사를 가르치는 분이셨는데, 이 아버지는 아들의 성적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담임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제 아들이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역사 과목은 다른 과목에 비해 곧잘 할 테지요?”
담임 선생님은 학생 아버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아버님은 옛날에 학교 다니실 때 역사 과목이 어떠셨나요? 잘하셨나요?”
그러자 아버지가 쑥스러운 듯이 “그게… 썩 잘하지는 못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한 담임 선생의 말이 걸작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입니다.”
한 역사가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오늘의 역사에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사사기 2: 10
39. 제 방으로 오세요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크리스천 초등학교(Christian Elementary School)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는 어느 날, 이 학교에서는 성탄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특별 드라마를 준비하기 위해 연극에 등장할 배우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랄프라는 4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연극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연극에 출연하기 어려운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연극에 출연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고, 생각도 민첩하지 못한 일종의 정서 장애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장애는 심했지만 그래도 랄프는 연극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랄프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배역을 하나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선생님은 랄프에게 가장 적합한 배역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액션이 별로 없고 대사도 가장 적은 배역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셉과 어린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는 마리아를 맞이하는 여관 주인의 역할이었습니다.
랄프가 맡은 장면은 요셉이 아기를 밴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여관 문을 두드렸을 때, 여관 주인이 나와서 한마디 말만 하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사는 ‘방이 없어요’라는 단 한마디입니다. 선생님은 이 대사 정도는 랄프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매일 랄프에게 열심히 연극 연습을 시켰습니다. 랄프도 ‘방이 없어요’라는 한마디이니까 정성스럽게 또박또박 발음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연극의 내용상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 주인과 몇마디 더 주고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요셉이 “그럼, 큰일났는데요. 제 아내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아요. 어떻게 좀 봐 주세요”라고 말하면 “방 없어요”라고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기로 서로 합의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자 연극을 지도했던 모든 선생님들은 숨을 죽이고 랄프가 어떻게 역할을 감당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마리아를 부축하며 요셉은 다급히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드디어 여관 주인이 나왔습니다. 랄프는 나와서 또박또박 연습한대로 말을 했습니다. “방 없어요.”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가지 않고 여관 주인에게 한번 더 매달렸습니다. “그럼, 큰일났는데요. 제 아내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방을 줄 수 없나요?” “방 없어요.” 그때까지 랄프는 아주 또박또박 맡은 배역을 잘 해나갔습니다. 이제 한번만 더 하면 대성공이었습니다.
요셉이 마지막으로 사정합니다. “이렇게 사정하겠습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부탁드립니다. 저희에게 방을 좀 주세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랄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랄프는 연극의 약속을 깼고 그 이후의 내용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랄프의 그 말 뒤에 숙연한 감동이 물밀 듯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오실 수 있습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사건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40. 판사의 긍휼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을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케네디 공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뉴욕에는 케네디 공항 외에 또 하나의 공항이 있습니다. 그 공항은 라구아디아 공항입니다. 본래 이 라구아디아라는 이름은 뉴욕 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유명한 한 시장의 이름입니다. 라구아디아는 시장이 되기 전에 아주 유명한 명 판사였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한번은 라구아디아 판사가 재판석상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 없이 외롭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불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판사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판사님, 저에게 한번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잠시 동안 그 노인장을 조용히 굽어보던 판사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맞습니다. 노인장에게는 정말 긍휼이 필요하시군요.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그 20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침 제게 10불이 있군요. 제가 이 10불을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 둔 데에는 저의 책임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불이 더 필요한데 여기 계신, 이 법정에 계신, 방청하시는 여러분, 우리 사회와 여러분도 이 노인이 춥고 배고파 방황하도록 그리고 도둑질하도록 버려 둔데, 여러분도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좀 하시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재판관의 명 판결을 보고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여 그 노인을 구했습니다. 그 후 뉴욕 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긍휼이 많은 판사라고 인정하였고 그는 후일에 존경받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야고보서 2:13
41. 그게 무슨 뜻?
어느 날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과 인도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함께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 웨이터가 오자 한국 사람이 음식을 주문했습니다. 그는 미국 사람과 인도 사람에게 비프스테이크를 대접하고 싶어서 웨이터에게 비프스테이크 3인분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웨이터가 말하기를 “죄송하지만, 비프스테이크가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웨이터의 말에 손님의 반응은 각각 너무나 달랐습니다. 미국 사람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니, 떨어졌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서 소고기가 없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미국 사람은 풍요의 나라에 살다보니까 소고기가 없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도 사람은 또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비프스테이크가 도대체 뭡니까? 소를 먹다니요?” 인도 사람에게 소는 경배하는 대상이지 먹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한국 사람은 이런 반응을 보였답니다. “죄송하다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한국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것은 ‘죄송합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뭐가 그리 죄송하다는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잘못했다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낮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로마서 3:12
42. 헛된 인생의 목표
과거 러시아의 수도인 페체르부르크에 아까끼에비치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 소원이 무엇입니까?” 혹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묻기라도 하면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아주 고급 외투를 갖는 것이오.” 그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고급 외투를 하나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의 소원은 오직 고급 외투였습니다.
그 노인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평생 동안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오직 고급 외투를 위해서 열심히 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80루불의 돈을 저축하여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습니다. 그 노인은 그 고급 외투를 입고 한번 고급 사교파티에 멋지게 등장해서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외투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 날은 노인에게 성공한 날이자 인생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기대감과 흥분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만 강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힘없는 노인은 강도에게 그 비싼 고급 외투를 강탈당했습니다. 그 노인은 매우 절망했습니다. 그 노인은 단순히 고급 외투를 강탈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그는 그의 성공을 강탈당하고 그의 행복을 강탈당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 노인은 좌절의 늪에 빠졌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하루하루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페체르부르크에 추운 겨울 되면 이 거리에 이 노인의 유령이 나타나서 비명처럼 지르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고골리라는 사람이 쓴 단편소설, ‘외투’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노인의 목표는 고급 외투였지만 어떤 사람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좀 더 좋은 아파트에 한번 들어가는 것을 평생 소원으로 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에 아주 좋은 자동차를 하나 사는 것, 혹은 인생에 어떤 자리하나 차지하는 것, 이 사회의 높은 자리를 얻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조상을 자랑할 때 ‘우리 조상이 원님을 지냈다, 무슨 참판을 지냈다, 장관을 지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전혀 자랑할 거리가 안 됩니다. 그 자리 자체에 무슨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는 동안 무슨 일과 어떤 기여를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냥 자리를 차지하는 것, 좋은 집을 갖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소유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라는 심리학자는 ‘소유에 행복이 없다. 행복은 존재에 있다. 행복은 나라는 존재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소유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속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시편 119:118
43. 두 번 나면 한번 죽고 한번 나면 두 번 죽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할 때 이런 말을 제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그러나 옛날 청교도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할 때 이런 말을 많이 썼습니다.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번만 죽고, 한번만 태어나면 두 번 죽습니다.”
이 말에는 참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육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두 번 태어나면 한 번만 죽는다는 말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거듭나면 한번 육체는 죽지만, 우리의 영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두 번 죽는다는 것은 영원한 사망, 곧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3:3
44. 기도하는 자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중세기로 들어갈 무렵에 이탈리아의 밀라노의 한 교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도 아닌데 한 부인이 교회당에 들어와서는 교회당 뒤편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자마자 통곡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나도 통곡소리는 멎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교회를 지도하시던 암브로우스라는 유명한 감독이 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통곡하며 우는 걸 보니 부인에게 굉장히 아픈 사연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그 부인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끼고 있는 부인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인, 뭐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그 때 부인이 갑자기 그 암브로우스 감독을 보더니 “감독님, 내 아들이 이단에 빠졌어요. 어떡하면 좋아요”라며 다시 흐느꼈습니다. 그 때 암브로우스 감독은 이 부인에게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말을 한마디 남겼습니다.
“걱정 마세요. 부인. 기도하는 자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통곡을 하던 그 부인은 바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 여사였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에게 어거스틴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거스틴은 주의 손에 붙들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역사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는 거대한 거목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아직도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지켜보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돌아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
45.내가 하나님이다
제가 예전에 들었던 유머입니다. 어떤 정신병원에 한 정신병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늘 하는 소리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외쳐대는 것입니다. 같은 병원 안에 있는 다른 정신병자 한 사람이 매일 그 소리를 듣는 게 너무 지겨웠든지 어느 날 그러더랍니다. “야, 나는 너 같은 아들 둔 일이 없다.”
AD 44년 경에 유대 땅에 드다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5장 36절에 나오는 인물인데, 예수님이 승천을 하시고 나서 한 10년쯤 지난 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부활하고 승천하셨던 예수님의 환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기가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다시 오신 재림한 메시야라는 거지요. 그가 아주 확신 있게 주장을 하니까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 드다라는 인물이 한동안 유대 땅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역사를 읽어보면 이런 재미나는 얘기가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던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이 드다라는 사람에게 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다시 온 메시야라면, 정말 다시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라면 당신의 손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손에 십자가에 못 박혔던 못 자국이 있다면 당신은 진실로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일 것이요.” 제자의 이런 요구에 드다는 자기의 손을 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누가복음 21:8
46. 100% 헌신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을 읽다가 이 장면을 보고 제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영국의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새끼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송아지가 태어난 것이 너무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는 송아지 새끼 두 마리를 낳고서 너무 감사한 나머지 당장 자기 부인에게로 달려가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송아지 새끼가 두 마리야. 하나는 주님의 것으로 하고 주께 드리십시다.” 그의 아내도 “아멘”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죽었습니다. 죽은 송아지를 본 이 농부는 울상이 되어 방안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일났어. 큰일났다고!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께 드린 송아지가 죽었단 말이야.”
47. 지나친 희생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의 C. T. 스터드라는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공부에서도 수석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공부도 잘할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한 크리켓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의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그 앞에 열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캠퍼스 집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학교 당국자들은 그의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장된 출세의 길 그리고 돈과 명예, 그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자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친 희생이 아닌가!” 이때 C. T.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로 만족해서도 안 되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마가복음 12:30
48. 필립의 계란
미국 목사님이 들려준 감동적인 부활절 스토리입니다. 주일학교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정서 장애를 가진 필립이라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필립은 정서 장애자인데도 항상 명랑해서 표정이 밝고 천진난만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장애를 겪고 있는데도 필립은 성경 말씀만큼은 너무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도 좋아하고 성경 말씀도 좋아해서 예수님 얘기만 나오면 환하게 웃었습니다.
어느 부활절 아침, 주일학교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활절을 상징하는 계란을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계란은 진짜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든 계란 모양이었고 반이 열릴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계란을 나누어주면서 부활에 대한 설명을 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15분의 시간을 주며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교회 정원에 나가서 계란 속에 집어넣어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15분이 지난 후 밖으로 나갔던 아이들이 다시 교실로 모두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기가 가지고 온 것들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도록 시켰습니다. 한 아이가 나와서 자기 계란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꽃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예쁜 꽃은 생명을 상징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살아있는 꽃을 보며 박수를 쳤습니다. 두 번째 아이가 또 자기의 계란을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아름다운 나비가 들어있었습니다. 살아있는 나비는 생명을 상징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가 와서 또 자기의 계란을 열었습니다. 거기서는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 네 번째로 필립 차례가 되었습니다. 정서 장애를 겪고 있던 필립이 앞에 나왔습니다. 학생들이 바보 같은 필립이 무엇을 가지고 왔을까하고 주목했습니다. 필립은 한참을 주저하며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괜찮아. 필립, 그냥 뭐 가지고 왔니? 한 번 열어봐.” 그러니까 필립이 자기의 계란을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이 손가락질하면서 막 웃어댔습니다. “그럼 그렇지, 필립은 아무것도 못 가지고 왔어.” 그런데 필립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잖아요.”
그 때 순간적인 정적과 감동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그 분의 부활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누가복음 24:2~3
49.내 안의 죄
독일의 아우슈비츠의 참담한 수용소의 생존자였던 유대인 예이옐 디무르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히틀러 나치의 잔당들에 대한 전범 재판이 열렸을 때 히틀러의 참모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증인으로 소환이 되었습니다. 재판관은 예이옐 디무르에게 옆에 앉아 있는 아이히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을 똑똑히 봐 주십시오. 저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 좀 더 다가가셔서 똑바로 보시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재판관의 요구에 예이옐이 한참 동안 아이히만을 쳐다보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의식을 읽고 졸도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깨어난 그에게 쓰러진 이유를 물었습니다.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졸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증오심 때문에,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움 때문에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졸도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올시다.”
“그러면 왜 그랬습니까?” 이 때 이 사람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저는 놀랐습니다.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의 동료들을 어떻게 저 비참한 가스실로 몰아내도록 명령하고 집행한 사람일수가 있었겠는가? 저는 그 사실 앞에 놀란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이런 충격적인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나도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놀랐습니다. 나도 저 아이히만이 될 수가 있다. 내 속에도 아이히만이 살고 있다는 사실 앞에 놀란 것입니다. 내 속에도 광기가 있고 미움이 있고 증오가 있고 살인의 광기가 있고 모순이 있고 갈등이 있는 아이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앞에 놀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로마서 3:23
50. 고난을 견디는 힘
주기철 목사님의 아드님을 통해서 그에게 아버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감옥에서 한번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경찰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이 정도로 모진 고난을 받았으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목사님을 한번 시험삼아 내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그 감옥에서 풀려났던 그 순간, 그를 기다리던 교회로 직행했습니다.
온 교우들이 사랑하는 목사님을 만났을 때는 이미 일본 경찰대와 경찰대 소속의 고등계 형사들이 교회의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일본 경찰이 감시하는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남긴 마지막 설교의 제목은 ‘다섯 가지 종류의 기도’였습니다.
다섯 가지 종류의 기도 제목을 나누는 것이 그 분의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첫째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그 분은 그분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두 번째 제목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그는 감옥으로 돌아가 다시 고난과 투쟁할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짧은 고난은 내가 어쩌다 견딜 수가 있겠지만, 그 고난이 장기간이 되면 나도 주님을 부인할까 봐 두렵습니다.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세 번째로 나의 노모와 처자와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을 주님이 돌봐 주십시오. 그리고 네 번째, 의(義)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마지막 다섯 번째로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주기철 목사님은 이 마지막 설교를 끝내시고는 마지막 돌아 올 수 없는 그 길로 걸어 가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그분은 초인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고난을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주 목사님의 아드님은 이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초인적인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강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마음이 약하셨고, 두려워하셨고, 그리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아내의 기도, 그리고 또 하나는 교우들의 기도, 무엇보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그 길을 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18
51.모델 예수보다 구주 예수가 먼저라네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금세기의 위대한 크리스천 평신도였던 C. S. 루이스가 캠브리지 채플에서 한 번은 설교를 하면서 '예수의 구주되심'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 한 학생이 C. S. 루이스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 선생님께서 예수는 위대한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고 말했다면, 우리 모두는 선생님에게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수는 구세주이다’라는 케케묵은 기독교의 교리를 얘기했음으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이 때 C. S. 루이스는 그 청년에게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정말 예수가 완벽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가?"
“아, 그럼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러면 이 완벽한 모델이신 예수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삶이라고 믿는가?"
“그렇지요."
"그러면 자네에게 묻겠네. 자네는 완벽한 도덕적인 모델이신 예수를 자네가 완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청년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완전하게 따라 갈 수는 없겠지요."
“아, 그러면 자네도 도덕적 실패를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자네의 삶 속에서 실수가 있었고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아, 인정이지요."
"그렇다면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모델로서의 예수가 아니네. 자네의 도덕적인 실패와 죄에서부터 자네를 구원할 수 있는 구세주이신 예수가 먼저 필요하다네. 죄인에게는 모델로서의 예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예수가 필요하다네.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비로소 그 분은 자네에게 모델이 될 수가 있다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52. 어리석은 인생
영국이 전 세계의 모든 바다를 지배한 해상의 왕이던 시절에 일어났던 얘기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영국의 무역선 하나가 영국 해엽에 거의 다 와서 그 해엽 근처에서 조난을 당했습니다. 파선한 무역선의 구조요청을 받은 영국은 당장 구조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너무 높아서 구조선이 그 조난당한 큰 배에 가까이 접근을 못했습니다. 별수 없이 로프를 던지며 배에 탄 사람들에게 그 구조선까지 오라고 했습니다. 무역선에 탄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그 구조선을 향하여 헤엄을 쳤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로프를 붙잡고 구조선까지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무역선에 탄 사람들 중에는 배에서는 뛰어내렸지만 구조선까지 오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죽었을까요? 그들이 죽은 이유는 무척 다양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수영을 못하거나 미처 그 로프를 못 잡아서 죽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배는 아프리카에서 오던 배로서 많은 양의 금괴들이 배에 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배와 함께 가라앉을 금이 너무 아까워서 배에서 뛰어내릴 때 자신의 허리에다 금을 가득 찼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금괴의 무게 때문에 모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복음 16:26
53 어머니의 피 흘림
수년 전에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어느 날, 구 소련에 속해 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지진으로 인하여 무려 5만 5천명이나 사망했던 굉장한 참사였습니다. 그때 9층 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철근과 콘크리트 밑에 한 어머니와 딸이 가까스로 삼각형 틈새 속에서 목숨을 유지하며 사람들의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잔나라는 어머니는 네 살 먹은 가이아니라는 딸과 함께 그 작은 틈새 속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구조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네 살 먹은 딸 가아아니는 그 어머니 옆에 누워서 비명을 지르며 한 가지 말을 계속 토해 놓습니다. 그 아이의 애절한 말 한마디는 “엄마, 목말라. 엄마, 목말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어머니로서는 딸을 도와 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머니의 머리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어떤 광경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 없었을 때에 피를 나누어 마시던 광경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주변을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바닥을 더듬다가 깨어진 유리 조각을 발견하고는 지체없이 그 유리 조각을 들어서 자기의 팔뚝을 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딸 옆으로 더 가까이 가서 자기의 그 팔뚝에서 흐르는 피를 자기가 사랑하는 딸 가이아니의 입술에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엄마, 나 목말라요”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유리 조각으로 더 힘껏 팔목을 그어서 자신의 피를 사랑하는 딸의 목에 흘려 넣었습니다. 그렇게 두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습니다. 이 딸 가이아니는 어머니의 희생, 그리고 어머니의 피 흘림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피는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2천년 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달리 살길이 없고, 달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었던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거룩한 피를 뿌렸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22
제3부 나의 존재만으로도 기뻐하시는 하나님
1. 침례를 받아야 하는 지갑
미국의 어떤 침례교회에서 목사님이 예배 시간에 성도들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순서에 맞추어 한 명씩 침례를 주고 있는데 다음 차례인 한 성도가 머뭇거리며 들어오질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들어오질 않자 목사님은 다급하게 왜 안 들어오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성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 지금 지갑을 갖고 있어서요. 지갑이 젖을까봐 못 들어갑니다.” 그 때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여, 당신과 함께 당신의 지갑도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지갑도 침례 받아야 합니다. 지갑까지도.”
침례(Baptism)라는 것은 물 속에 들어갈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이고, 물에서 나올 때 나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나를 위해서만 사용되던 이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역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질에 대한 구체적 헌신이야말로 내가 변했고 내가 회개했고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7
2. 라이스 크리스천(rice Christian)
과거 6.25사변 직후에는 한국 교회가 외국으로부터 원조 물자를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생활이 어려웠던 사람들은 그것을 받기 위해 교회에 많이 나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옛날 선교사님들은 한국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까 교회 나오는 것이 순수한 동기가 아니고 쌀(rice)을 얻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선교사들이 한국 교인들을 뭐라고 불렀나 하면 라이스 크리스천(rice Christian)이라고 불렀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런 지경은 아니지만 아직도 그런 동기를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해서 물질적인 축복에만 눈이 어두워 신앙의 유일한 동기가 물질의 축복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축복을 받지만 그것이 예수를 믿는 이유는 아닙니다. 만약 물질의 축복 때문에 예수 믿었다면 이런 사람은 신앙 생활하다가도 물질적 축복이 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고 떠나갈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보다 위대한 꿈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내 인생이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더 높은 프라이드와 더 높은 기쁨 때문에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마가복음 4:19
3.닫혀있는 16개의 관과 열려있는 한 개의 무대
많은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 가운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안에 ’춤추는 사람‘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미국에는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유명한 금문교(Golden Gate Bridge)가 있습니다. 이 금문교로 가는 도상에는 17개의 톨게이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통행료 징수대 박스가 17개 나란히 있는데, 어느 날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한 징수대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스 안에서 티켓도 끊어주고 돈도 받는 사람이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저자에게 돈을 받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저자가 그 행동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사람을 향해 물어보았습니다.
“뭘 하십니까?”
“파티를 열고 있습니다.”
“파티라니요? 누구를 초대하셨나요?”
“제가 제 자신을 초대했지요.”
얼마 후에 저자는 똑같은 징수대 박스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요금 받는 사람을 보니 예전에 춤을 추며 돈을 받았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변함없이 음악을 틀어놓고 전에 보았던 동일한 모션으로 춤을 추면서 돈을 받고 티켓을 저자에게 내줍니다. 그래서 저자는 또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 오늘도 파티를 열고 계십니까?”
“아. 물론이지요.”
조금은 호기심이 발동한 저자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파티를 열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저 사람들이요? 저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박스는 말이죠. 관(棺)입니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에 퇴근하기까지 저 사람들은 관속에 갇혀 있는 시체들이란 말입니다. 시체!”
저자는 이 색다른 대답 앞에 더 호기심이 발동해서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저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요? 나는 중요한 미션(사명)이 있어요.”
“미션이 뭡니까?”
“저는 댄스 교수가 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돈을 받고, 여기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저들의 방, 저 사람들의 방을 잘 보세요. 저게 닫혀있는 관이라면 제가 있는 이 박스 안은 열려있는 무대란 말입니다.”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잠언 10:28
4. 어린 소년의 눈물
캘리포니아에 심리학자로 아주 인기 있게 활동하는 분 가운데 레오 바스칼리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많은 책들 가운데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이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암 진단을 받은 그 날부터 이 할아버지는 매우 난폭해졌습니다. 성격이 갑자기 난폭해져 식구들을 향해서 욕을 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욕을 퍼붓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고 병실에 입원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간호원과 의사들에게까지도 포악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할아버지의 옛날 친구들을 들여보냈지만 친구들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자기의 친구들에서 큰 소리를 치며 쫓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번에는 할아버지와 절친하게 지냈던 은사들을 보내 보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을 보냈더니 목사님도 욕만 먹고 쫓겨났습니다. 카운슬러를 들여보내도 소용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동네에서 이 할아버지가 가끔 만나던 동네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쫓아왔습니다. 식구들이 반 호기심으로 “그럼 네가 들어가서 할아버지 만나 봐라”하며 그 아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30분 동안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오더니 그 이후로 이 할아버지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태도가 갑자기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고 사람들도 만나시고 얘기도 하시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이상해서 그 어린 소년을 붙들고 묻습니다.
“너, 할아버지하고 무슨 얘기를 했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할아버지하고 그 20-30분 동안 함께 있었잖니. 너는 그 동안 도대체 뭘 했니?”
그랬더니 그 어린 소년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요, 할아버지하고 같이 울었어요.”
꼬마는 단지 이 할아버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고 울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우는 꼬마를 꼭 껴안는 순간 진정한 사랑을 느꼈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느낄 때 치유의 능력은 샘솟듯 솟아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린도후서 13:11
5. 집요한 사오정
사오정 시리즈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오정이 식당에 갔습니다. 사오정이 식당 주인에게 자기가 먹을 것을 주문합니다.
“아저씨, 돈까스와 우유 주세요.”
“돈까스는 없습니다.”
“그러면 돈까스와 커피주세요.”
“돈까스는 없단 말입니다.”
“아, 알았습니다. 그러면 돈까스만 주세요.”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유머이지만, 이렇듯 상대방이 뭐라고 그러던 집요하게 계속해서 자기의 메뉴를 고집하는 이 사오정의 우직함이 우리 신앙인에게도 필요합니다. 이 끈기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끈질긴 집요함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실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누가복음 18:1
6. 여유 있는 삶
어느 숲 속에서 두 노동자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이 일을 시작에서 똑같은 시간까지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들은 일을 같이 시작했고 모두 같이 끝냈습니다. 한 사람은 점심 시간에 잠깐 한 20분 정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도끼를 들고 나무 찍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네차례 정도 넉넉히 쉬어가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시간에 일이 완료되고 나서 일을 비교를 해 보니까 네번씩이나 쉬어가며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찍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본 조금밖에 쉬지 않고 일했던 사람이 놀라서 묻습니다.
“아니,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쉬면서 일을 했는데 어째서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단 말이요?”
이때 쉬어 가면서 일한 일꾼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자네가 잘 보았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을 걸세. 나는 그냥 쉰 것이 아니라 쉬면서 도끼의 날을 세우고 있었지. 나의 도끼를 다듬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리고 나는 쉬고 나서 더 힘차게 이 나무를 찍었지. 그래서 자네보다 더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걸세.”
여유는 낭비가 아니라 성취를 돌아보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인 것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마가복음 6:31
7. 진정한 영웅
전 세계에 하나의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왔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유는 이 비극 속에 나타난 영웅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많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마지막 목숨을 내놓고 그 여인을 살리는 제프라는 주인공이 영웅이었습니다. 또 침몰하는 배를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그 키를 붙들고 배와 함께 침몰하는 캡틴 스미스라는 함장도 일종의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라이프 보트에 사람들을 실어주고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는 선원들도 영웅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동을 많이 받은 장면은 마지막 순간까지 악기를 붙들고 음악을 연주를 하던 악사들의 모습입니다. 이 밴드 팀 단장의 이름이 월레스 하틀리라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은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된 부분이 많고 특히 주인공은 지어낸 이야기지만 밴드를 지휘한 월레스라는 단장은 실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밴드의 연주를 통해서 끝까지 침착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찬양의 가사 속 메시지를 통해서 하늘의 거룩한 소망을 바라보도록 촉구했습니다. 그는 이 화려한 배로 바다를 횡단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진해서 그 배에 탄 악장이었습니다.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는데도 끝까지 배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고 착각하는 사람들과 살려고 우왕좌왕하며 발버둥치는 사람들, 정말 말이 아니게 이 배에 소망을 두고 탔던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버리는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레스 단장은 끝까지 침착하게 자기의 팀 멤버들을 격려하면서 마지막까지 이 장엄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연주하면서 그는 계속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를 가까이 하십시오. 그가 소망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지막 침몰해 가는 뱃속에서 이 찬양을 통해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월레스 단장은 이 음악을 들려주면서 끝까지 외쳤다고 합니다. “예수,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가 소망이십니다.” 진정한 영웅들, 이 무너지는 세상이라는 배 안에 타고 살면서 소망의 근거를 잘못 착각했던 사람들, 그래서 이 세상이 무너지자 아무것도 기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소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시편 115:9
8. 어떤 신학생의 성적표
신학교의 시험기간이 되어 어떤 신학생 한 명이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생은 공부를 했는데도 시험을 치르면서 이상하게도 답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는 너무 고민스러운 나머지 백지는 낼 수가 없고 시험지 맨 아래에다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정답을 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답에 동의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 교수님께서 시험을 채점한 성적표가 나왔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100점, 너는 빵점.”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33:5
9. 다수가 틀렸습니다
1842년에 아주 재미난 역사적 글이 하나 남아있었습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에 사는 의사들과 의학자들이 모여서 거창한 결정을 하나 했습니다. 그 결정은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류마티스와 폐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상한 결정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펜실베니아주 일대와 상당히 많은 미국 땅 사람들이 무려 3년 간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지 않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이론은 수년 후에야 뒤집어졌습니다. 다수가 틀렸던 것입니다.
1903년 그 유명한 라이트형제는 기계도 하늘을 날아갈 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친구들과 동네사람들은 이 형제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한낱 망상이고 만화적인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이트형제는 기계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계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다수가 틀렸습니다. 다수의 길이 진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태복음 7:13
10. 테레사 수녀의 즐거운 인생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에 유고슬라비아에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는 점점 자라 어느새 십대 소녀가 되었습니다. 소녀는 이 시절에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에 불타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선교사를 자원했고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수녀가 되었습니다.
수녀가 된 그녀는 인도의 캘커타로 갔습니다. 그녀가 간지 얼마 안 되어서 그녀는 거리를 지나다가 한 병이 든 여인을 발견합니다. 그 여인은 병들어서 엎어져 있는데 그런 자세로 매우 오랜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몸의 한쪽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길거리의 쥐들이 그 썩은 부위를 와서 파먹고 있었습니다. 이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고 수녀는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내가, 이 힘없는 연약한 여자가, 한낱 아녀자가 무엇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이런 생각 끝에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그녀의 마음을 잡아 당겼습니다. ‘네가 도와야 한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못해요.” 그때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도와도 못하겠느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가능하겠죠.”
그녀는 그냥 지나가려던 발걸음을 돌이켜서 이 여인에게로 가서 그 여인을 들쳐 엎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녀의 곁에는 불쌍한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계속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늘어나자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올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그 도시에 행정 관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녀의 숙소 옆에 있던 비어있는 힌두교 성전을 빌려달라고 해서 그곳을 클리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이 세상을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삶의 감동을 남기고 떠나간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수년 전에 영국 BBC 뉴스의 크리스천 언론인이었던 멀컴 머코리치라는 사람이 캘커타에 있는 테레사의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만히 병원을 관찰해 보니까 사람들이 병원에서 봉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며 그때 만해도 거동이 가능하고 대화가 가능했던 테레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그 질문에 이런 흥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힘들지요. 힘들지요. 그러나 즐겁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무척 힘이 듭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힘든 게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즐거운 인생을 사는 이유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11. 작은 것의 소중함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조그만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이름부터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우리 나라 이름처럼 위대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최고 수반을 대통령, 최고 학부는 대학교, 대학원, 우리 나라에서 외국으로 보내는 외교관들을 대사라고 합니다.
또한 한국의 모든 길들을 보면 다 대로(大路)입니다. 양재대로, 강남대로 등 절대 소로(小路)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놓아도 다 대교(大橋)입니다. 성수대교를 위시해서 다 대교라고 합니다. 술을 마실 때도 대포 한잔하지라고 할 정도로 하여튼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이 어떤 열등감, 작다는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들도 비하시킵니다. 자꾸만 작다는 것을 감추려고 하고 작다는 것을 무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말과 관련된 것을 연구해 보면 작다는 것은 다 안 좋은 쪽으로 쓰여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사람이 잘다’, ‘좀씨’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이 말들은 다 작고 조그맣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작은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수대교 건설할 때 작은 나사 하나, 작은 시멘트 하나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작은 것이 소중한 것인데 우리는 작은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누가복음 16:10
12.날지 못하는 독수리
제가 좋아하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조류학자가 독수리 새끼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독수리 새끼를 어디다 길렀는가 하면 닭 새끼(?)하고 같은 곳에 넣어서 길렀습니다. 그러니까 독수리 새끼가 자라나면서 꼭 병아리처럼 행동을 합니다. 독수리 새끼는 주변을 봐야 병아리밖에 없으니까 병아리처럼 걷고, 병아리처럼 삐약 삐약 노래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새끼들은 많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독수리 새끼는 전혀 독수리다운 근성을 드러내지 않고 꼭 병아리 같았습니다. 조류학자는 독수리가 완전히 병아리로 퇴화를 했는지 아니면 닭이 되었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청년이 된 독수리에게 독수리의 근성이 남아있는지 실험했습니다. 독수리를 마당에 갖다 놓고 날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는 날지 못하고 푸득 푸득, 삐약 삐약거리며 날지 못하더랍니다.
그 다음으로 조류학자는 장소를 바꾸어 청년 독수리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산 높은 곳에서 푸른 숲을 보여주고 산 공기를 맡게 하고 날도록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삐약 삐약거리며 또 내려앉아서 다시는 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강력한 바람을 뚫고 다른 독수리 한 마리가 세차게 산을 향해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주시하고 있던 이 독수리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고 합니다. 드디어 청년 독수리는 날기 시작했습니다. 그 독수리는 더 이상 닭 새끼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독수리 왕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조금 어렵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좌절하고 주저앉아 낙심한다면 날지 못하는 독수리와 같습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로마서 8:21
13. 괴짜 바이올리니스트
오래 전 영국에 괴짜 바이올리니스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연주가일 뿐 아니라 각종 바이올린을 수집하는 수집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여러 개의 바이올린 가운데서 가장 값비싼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주 옛날인데 그 당시의 가격으로 무려 이천 파운드가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영국에서 이천 파운드 정도는 큰돈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아주 큰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가장 값비싼 바이올린의 연주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몇 곡의 연주가 끝나자 많은 친구, 많은 관객들의 열렬한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갑자기 자기 바이올린을 집어던지더니 발로 그것을 밟기 시작한 것입니다. 파격적인 그의 기이한 행동에 온 관객들이 쇼크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가 또 하나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와서 다시 무대에 서자 사회를 맡았던 분이 이런 멘트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연주한 그 바이올린은 사실 이분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고가 바이올린이 아니라 이십 파운드짜리 제일 싸구려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방금 전에 부숴버린 바이올린에 대해 너무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이제야말로 가장 본격적으로 고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겠습니다.”
그 연주는 역시 감동을 주었고, 관객들은 큰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이십 파운드짜리 연주나 그 고가의 바이올린 연주에서나 결정적인 큰 차이를 느낄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 괴짜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날 이 기이한 행동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하나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악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주가 때문이다. 사람 때문이다. 위대한 음악가가 음악을 만드는 것이지 악기가 꼭 음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태복음 13:45~46
14. 앵무새의 언어훈련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인 하나가 앵무새를 길렀습니다. 앵무새를 기르게 된 동기는 자기 교회 목사님이 앵무새를 기른다는 말을 듣고 덩달아서 ‘나도 앵무새 하나 기를까?’ 하고 앵무새 하나를 사다가 길렀습니다. 그런데 교인의 집에서 자란 그 앵무새는 주인을 너무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앵무새가 할 줄 아는 말은 단 한마디였습니다. 그 앵무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의 말은 “키스해 주세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앵무새는 시도 때도 없이 “키스해 주세요. 키스해 주세요” 하니까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게 이 주인이 괜히 오해받게 생겼습니다. 앵무새의 말 때문에 당황한 교인은 어느 날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듣자 하니 목사님의 앵무새는 경건한 언어훈련이 잘 되었다고 하던데, 저의 앵무새를 보낼 테니까 훈련 좀 시켜 주세요.”
전화를 받은 목사님은 문제없으니 앵무새를 보내라고 했고, 교인은 즉시 자기의 앵무새를 목사님 댁으로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받은 즉시 자신의 새장에 같이 이 앵무새를 집어넣었습니다. 목사님의 앵무새가 주인이니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사실은 목사님의 앵무새도 꼭 한마디의 말을 할 줄 아는데 그 말은 “다같이 기도하십시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앵무새가 “다같이 기도하십시다”라고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새로 온 앵무새가 “키스해주세요”라고 그랬더니 목사님 앵무새가 전에 하지 않았던 한마디 말을 더 하더랍니다. “주께서 드디어 내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디도서 2:7
15.주님의 강렬한 부르심
카톨릭 복음주의자 가운데 헨리 나우엔은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사람입니다. 그의 저서는 아주 유명해서 개신교인들도 핸리 나우엔의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일생에서 1985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습니다.
1985년 초에 불란서에 있었던 정신지체아들을 모아서 수용하면서 그들을 섬기고 양육하는 라르쉬라는 공동체에 한 지도자가 예일대학으로 헨리 나우엔 교수를 방문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로부터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또 정신지체아들을 섬기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날은 그들이 사는 얘길 감동으로 받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다음에 이 공동체의 지도자로 있었던 장 바니에라는 지도자로부터 편지 한 장이 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자기의 공동체에서 정신지체아들의 수양회가 열리는데 거기에 왔으면 좋겠다”는 글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엔 교수는 처음에 자신을 강사로 초청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수련회에 가보았더니 “우리 수양회는 침묵 수양회입니다. 침묵 수양회(Silent Retreat)입니다. 이 수양회는 사흘 동안 열리는데 기도만 하고 행동으로만 사람들을 돌봐주고 섬기는 수양회입니다”라는 것입니다. 특이한 수양회를 참석하면서 헨리 나우엔 교수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헨리 나우엔 교수는 사흘 동안 아무 소리 안 하고 정신지체아들을 돌봐주고 발도 씻어주고 밥도 해주고 같이 식사하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마음으로 기도만 하면서 돌봐주는 침묵 수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 속에 자기 몸으로 부딪히면서 자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그들을 경험했습니다.
침묵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또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교수님이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런 우리 같은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커다란 하나님의 선물일까요.” 그 당시 헨리 나우엔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하버드대학 교수로 이제 막 옮겨 한참 할 일이 많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얼마든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는데, 그 편지 한 장이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에 도전을 주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하버드대학을 떠나서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로 나를 부르신다.’ 그의 마음에 자꾸 그런 부르심이 느껴져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는 매우 갈등했지만 주님의 강렬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결국 승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1985년 가을에 캐나다의 토론토 근처에 ‘데이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를 위해서 새로 생긴 공동체의 지도자로 떠나갑니다. 그 곳에는 단 6명의 정신지체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 6명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일지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상하다. 이것은 희생이고 이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뒤엎는 나의 새로운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가! 이상한 마음의 평안이… 이 놀라운 평안이여, 자유여, 자유여.’
그는 자기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이런 놀랍고도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공동체에 와서 처음으로 고향을 찾은 것 같은 감정을 느낀다. 탕자였던 내가 오히려 집으로 돌아온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들을 돕고 이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온 것만은 아니다. 우리 공동체 6명 중 아담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는 정신지체아였지만 깨끗하고 투명한 영혼을 가졌다. 나는 그의 영혼과 부딪치면서 그가 나를 치료하고 있다. 그가 나를 치료하고 있다. 나에게 붙어있던 찌꺼기, 그런 거짓된 위선, 가면, 이런 것들이 찢겨 나가도록 내가 섬기고 있는 아담이 내 영혼을 치료해주고 있다.”
이것은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그는 정신지체아들도 시간은 걸리지만 그들도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고 그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기 시작합니다. 1996년 9월 21일에 헨리 나우엔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떠나기 직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새롭게 경험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나는 참 행복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1:18~19
16. 기도하는 이유
어떤 부부가 어느 날 함께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나란히 함께 앉아서 기도하는데 남편이 계속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채워주소서. 채워주소서. 채워주소서. 오! 주님, 채워주소서.” 그런데 그 남편 옆에 있던 부인이 이상하게도 자기 남편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기도하는데 그 내용은 더욱 이상했습니다.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너무나 이상해서 ‘이 부부는 뭐 이렇게 기도하나’라는 생각에 그 부부의 기도를 더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까 부인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이 인간을 채워주셔야 맨 날 자기밖에 모르오니 가져가소서. 가져가소서.”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17.문제가 하나도 없는 직장
금세기에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유명한 노르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빈센트 필 목사님에게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다니는 직장에는 너무너무 문제가 많습니다. 문제없는 직장을 하나 소개해 주시죠.” 그의 부탁에 빈센트 필 목사님이 두말하지 않고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내가 마침 생각나는 직장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내 차를 함께 타고 가시죠.”
“아? 지금 소개해 주겠어요?”
“그럼요. 지금 소개하죠. 내 차를 타세요.”
그래서 그는 이 청년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합니다. 뉴욕 시외로 나가더니 갑자기 이 빈센트 필 목사님이 공동묘지 앞에 차를 딱 세우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여, 여기가 문제가 하나도 없는 직장입니다. 문제가 하나도 없는 직장!”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없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 피곤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 90:10
18. 병아리 목사님의 설교
신학교를 갓 졸업한 어떤 목사님이 처음으로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큰 기대감을 가지고 설교 준비를 잘 해서 원고도 안 보고 멋있게 설교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설교의 초반을 이상하게 시작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키가 작은 니고데모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가 너무 작아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던 니고데모는 너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나머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 목사님의 말씀에 성도들이 좀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목사님은 곧 잘못 말한 것을 깨닫고 갑자기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 순간 삭개오가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뽕나무에 올라가 있는 니고데모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올라갈 자리에 네가 왜 올라가 있니? 빨리 내려와라. 그리고 그는 그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나서 삭개오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자기 평생을 걸고 예수님을 섬겼고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시편 119:43
19. 이상한 관계
제가 몇 년 전에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갔을 때, 그 곳에 사시는 어떤 교포 한 분에게 굉장히 재미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우리 한국 교민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상이 있는데 그게 뭔 줄 아십니까?”
“잘 모르겠는데 뭡니까?”
“한국 교민들은 흑인들을 제일 무서워해요. 왜냐하면 총기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그러니까 제일 무서워하지요. 그런데 목사님, 그 흑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누구인줄 아십니까?”
“누군데요?”
“스페인 계통의 멕시코인들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그 멕시코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상은 누군 줄 아십니까?”
“그것도 역시 모르겠는데요.”
“월남 사람을 제일 무서워하지요. 월남 깽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월남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대상이 누군 줄 아십니까? 한국 사람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월남에 가서 한국 사람들이 하도 개판을 쳐놓아서 제일 한국 사람을 무서워해요.”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41:13
20.어느 대장장이의 기도
제가 최근에 미국 잡지를 읽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유엔은 이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이 함께 모여서 세계의 중요한 국제적인 분쟁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는 중요한 기구입니다. 따라서 여러 나라가 모여 있고 또 여러 종교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의 단어를 유엔의 모든 회의석상에서 일체 사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도 미국에서는 연설할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절대 유엔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유엔의 여러 기구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정책 기구 중에 하나가 안전보장이사회입니다. 6.25 참전도 거기서 결정되었지요. 그런데 최근에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쓰이는 이 투표함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철제로 만들어진 투표함을 하도 오랜 기간 사용하여서 이제는 고물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투표함을 바꾸는 과정에서 아주 흥미 있는 사실이 하나가 발견되었답니다. 그 철제함의 내부를 보니 그 곳에 무슨 글귀가 쓰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문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이 되어 인류 역사의 올바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폴 안토니오.”
이 문구를 쓴 사람의 서명까지 적혀있는 것을 본 호기심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폴 안토니오라는 사람은 그 철제함을 만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장장이로서 아주 성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 짤막한 에피소드 기사를 실었던 잡지의 기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축복이고 다행인가?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투표함에 자기의 기도를 함께 집어넣었던 이 폴 안토니오의 기도는 아마도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에 일조 했음에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유엔에도 역사하셨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14
21. 벼룩의 한계
어떤 심리학자가 여러 개의 벼룩을 가지고 벼룩이 얼마나 높이 뛸 수 있나 하는 것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모든 벼룩들이 20cm는 충분히 다 뛸 수 있고, 어떤 벼룩들은 무려 30cm를 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높이뛰기에 실력을 가진 벼룩들만 모아서 7-8cm 높이의 유리컵에 놓고 그 위에다 뚜껑을 덮었습니다. 그래도 벼룩들은 유리컵 안에서 계속 뛰었습니다. 그러나 유리컵의 한계 때문에 더 높이 뛰지 못하고 유리벽에 자꾸만 부딪쳤습니다.
한 두 시간이 지난 후 심리학자는 벼룩이 들어있던 유리컵 뚜껑을 벗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상을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벼룩들은 ‘이제 나는 그 이상 뛸 수가 없다. 이 7-8cm인 유리컵의 한계가 내 한계다’라는 생각(?)에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너무 낮게 낮추어 버리고 인생의 어떤 난제 앞에서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22.미켈란젤로의 스승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보톨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톨도 지오바니는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스승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보톨도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 때 그는 스승으로서 미켈란젤로를 테스트 해 보았습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을 본 보톨도는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고 싶으냐?”
“네,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렇다면 넌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전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자기의 문하생이 된 그날, 이 스승은 어린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서 두 군데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구경시켜준 곳은 바로 술집입니다.
“스승님,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요.”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이 조각을 사용했단다.”
이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서 아주 거대한 성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면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졌고, 또 하나는 술 마시는 흥행과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그래,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네 재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네 재능을 하나님을 위하여 쓴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 시간, 기회 등을 무엇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까?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20
23.사역의 고초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라는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역 초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말을 잘 할뿐더러 조금 야성적인 스타일의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설교자이면서 젊은 목회자로서 어떤 개척교회 같은 작은 교회에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한 번은 아주 열렬하게 침을 튀기면서 열심히 설교를 끝낸 후, 그는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교회 문 뒤로 나갔습니다. 그 때 어떤 교인들이 와서 “아! 목사님, 그런 열렬하고 뜨거운 설교는 처음 들었습니다”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서 계셨던 아주 나이 많은 목사님 한 분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기도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뭐라고 기도할까요?”했더니 그 목사님은 “교만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도 내용을 말해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교인이 오더니 “목사님! 무슨 설교를 그렇게 무례하게 하십니까? 시험 들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옆에 있는 나이 많은 목사님을 쳐다보니까 목사님이 또 "기도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다시 그는 “뭐라고 기도할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 히브리서 12:2
24.공동체로서의 인식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스펄전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꺼내며 이런 요청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 생활하는데 힘이 듭니다. 늘 시험받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문제없는 완전한 교회 하나 소개해 주세요.” 이 때 스펄전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혹시 그런 교회를 찾으면 나에게 꼭 알려주게. 나도 그 교회 가서 그 교인이 되고 싶네. 그러나 자네는 그런 교회를 찾거든 절대로 그 교회에 속하지 말게.”
“왜요?”
“왜냐하면 자네가 끼는 날부터 그 교회의 완전은 깨질 테니까 말이야. 바로 자네 때문에 말이야.”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서 형성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구적 이상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고린도전서 12:25-27
25.진정한 교제
크리스천 작가였던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이런 재미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 안에 넣어 보았다. 뜻밖에도 그들은 내 기대를 뛰어넘어서 잘 지내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번에는 새와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 안에 집어넣어 보았다. 그들은 약간의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마침내 그들도 더불어 잘 어울릴 수가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장로교인과 감리교인과 침례교인을 한 우리 안에 함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잘 지낼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교제를 소중하게 관리하지 못하는가!라는 모습을 꼬집은 풍자적인 해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빌레몬서 1:6
26.내 너를 위하여
1858년 영국에서 독일로 유학해서 공부하고 있던 여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22살 먹은 이 여학생은 목사님 딸로서 소위 명목상의 기독교인(Nominal Christian)에 불과했습니다. 이 여학생은 신앙 생활을 등한히 한 채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유학생활만 충실히 하다가 그만 병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한 친구가 자기의 집에 초청했는데, 친구의 집은 별장 같이 큰 저택이었습니다. 그녀는 친구의 집 복도를 걷다가 벽에 걸려 있는 어떤 그림 하나가 그녀의 시선을 끄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그림은 유명한 렘브란트가 그린 작품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채찍으로 맞아 고난받으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살아 움직이듯 그녀를 그림 가까이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얼어붙듯 그 그림 앞에 섰습니다. 그림 아래에는 글귀 하나가 쓰여 있었는데, 그 글귀가 그녀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나 너를 위해 이렇게 고난을 받았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주느냐?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주느냐?” 그 글을 본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잊고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망각하고 살았구나. 주님,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붓을 들어서 그 그림에서 받았던 감동과 자기 헌신의 결심을 한 편의 찬송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찬송가 185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 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27.당신 말이 옳소
탈무드를 읽다가 옛날 우리 나라 황희 정승을 연상시키는 얘기라서 혼자 웃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젊은 두 사람이 서로 갈등이 생겨서 유대인 랍비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둘은 랍비에게 자신들의 입장만을 앞 다투어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랍비는 그러지 말고 한 사람씩 와서 따로 따로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와서 랍비에게 자기의 문제를 쭉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랍비는 그에게 “당신 말이 옳소”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사람이 와서 자기 입장을 말합니다. 두 번째 사람의 말을 들은 랍비는 처음에 온 사람에게 한 말과 같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당신 말이 옳소.”
그 얘기를 뒤에서 듣고 있던 랍비의 아내가 이렇게 질문합니다. “아니, 두 사람 다 옳다고 하면 해결이 됩니까? 도대체 당신 그게 판단이라고 한 거예요?” 랍비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당신 말이 옳소. 당신 말이 옳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태복음 5:37
28. I'm OK, You're OK
심리학자인 해리슨의 저서 가운데 아주 유명한 ‘I'm OK, You're OK’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나도 옳을 수가 있고 당신도 옳을 수가 있다. 또 나도 틀릴 수가 있고 당신도 틀릴 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옳은데 네가 틀렸다’(I'm OK, You're not OK)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네가 틀렸다며 상대방을 비난하기 때문에 항상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정의의 잣대이기에 다른 사람은 항상 불의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 주관적 해석 등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들은 항상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항상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비판적인 그런 이론을 진술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거의 환자라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이기에 치료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불행하고 공동체를 불행하게 만들고 맙니다. 이런 사람들은 공동체 안의 화평과 조화를 깨뜨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 자신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누가복음 16:15
29.나체 촌에서 설교하신 목사님
국제적인 유머를 다루는 어떤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유럽의 목사님이 나체 촌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설교하고 돌아온 목사님에게 사모님은 소감이 어떠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설교를 했는지에 대하여 묻습니다. 과연 목사님은 무슨 생각하며 설교했을까요? 이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저 사람들이 헌금을 과연 낼 것인가, 안 낼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설교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 생각에는 그들이 옷을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주머니가 없어서 헌금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 신경 쓰였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 디모데전서 6:10
30.찰스 스윈돌의 위기 모면
미국에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목사님 중에 찰스 스윈돌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한 번은 이분이 주일날 설교 중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교통신호도 정확하게 지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만 이 목사님이 딴 생각을 하다가 빨간 불인데도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지나가는 순간 빨간 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서 옆을 보니까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아, 교인들이로구나! 내가 설교해 놓고 내가 규칙을 어기다니’라고 생각하며 교인들에게 들킨 것 때문에 너무나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쳐다보지 않고 차를 몰아서 얼른 집으로 와 버렸습니다.
얼마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아까 어디에 차 가지고 지나가셨죠? 내일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 만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이 아마 따지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냥 점심 같이 해요”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걱정스러웠습니다.
그 이튿날 점심시간에 굉장히 유머가 많으셨던 목사님은 목에다 무얼 걸고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거기에는 ‘나는 죄인이다’(I am guilty)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목에 걸고 나오니까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교인들은 막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환영했습니다. 교인들의 반응에 목사님은 갑자기 뒤를 돌아섰는데 뒤에는 또 다른 글이 걸려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태복음 10:26
32.첫걸음의 중요성
믿음과 순종은 한 걸음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위해 내딛는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에디슨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구 실험을 해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 전구가 얼마나 희미한지 촛불을 밝혀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재미있어요? 전구를 만들긴 만들었는데 촛불을 비춰놓고 봐야 볼 수 있었다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 첫 걸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만들어 날렸을 때, 그 비행기는 공중에 불과 12초를 머물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첫 걸음, 그 첫 걸음이 지금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도록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첫 걸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증기선이 미국 뉴욕에서 알바니아를 향해서 나아갈 때 지금 배를 타고 가면 천천히 가도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그 당시만 해도 거의 30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최초의 첫 걸음, 바로 그 스팀 엔진의 고동 소리와 함께 떠나갔던 배의 행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 자동차 실험에서 자동차는 1시간에 2마일을 갔답니다. 1시간에 2마일. 그러니까 마차하고 가면 자동차보다 마차가 먼저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마차를 타고 가던 마부들이 차라리 내 마차나 타라고 하며 자동차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출발했던 그 불완전한 자동차 시운전의 첫걸음은 중요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첫 걸음, 헌신의 첫 걸음, 봉사의 첫 걸음이 불완전해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내딛는 첫 걸음이 마침내 영광스러운 미래를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언 4:19
32.한 병사의 편지를 대필해준 링컨
링컨의 전기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계절에 링컨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뜻 있게 보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당시에는 남북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습니다. 링컨은 깊이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부상당한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전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그는 부상자를 위로하다가 거의 죽음에 이르러 피를 흘리고 있는 한 병사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세요? 제가 뭐 해 드릴 일이 있습니까?” 그 병사는 대통령인 줄도 모르고 “미안하지만 편지 좀 써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링컨은 그 병사가 불러주는 대로 대신해서 편지를 써 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살아서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러나 당신의 아들은 나라를 위해서 용기 있게 싸웠어요. 어머니, 정말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가족들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천국에서 만나요.” 링컨은 마지막 줄에 그 병사의 이름을 쓰고 그 아래에다가 ‘아브라함 링컨이 대서함’이라고 쓰고 사인했어요. 그 병사가 다 쓴 편지 좀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병사는 자신의 편지를 대신 써 준 사람이 대통령임을 알게 되었고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각하, 너무 감사합니다.”
이때 링컨은 고개를 흔들면서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게 감사를 드려야 되요. 당신은 나의 가족, 당신은 나의 아들입니다. 당신은 나를 대신해서 싸운 거예요. 내가 뭐 더 해 드릴 일이 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병사는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손을 잡기 원했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링컨의 손을 잡은 채 평화로운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 때 링컨은 그의 볼에다 키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My son),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립보서 4:18
34.참을성 없는 아브라함
히브리 사람들이 읽는 민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저녁 무렵 텐트 바깥에 나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80세 가량 되어 보이는 노인이 터벅터벅 찔뚝거리면서 아브라함이 있는 쪽으로 걸어옵니다. 그 노인은 피곤한 표정, 남루한 옷차림, 거지에 가까운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는 무척 배고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아주 찌들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80세 된 노인이 아브라함에게 오더니 “당신 장막에서 하루 밤 쉬어 갈 수 있겠소?”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저희 장막에서 쉬어 가시죠”라고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리고 이 노인장의 발을 정성스럽게 물로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기도를 안하고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난 아브라함은 노인에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하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인은 “하나님이요? 나에게는 음식이 바로 하나님이요”라고 대꾸합니다. 더욱 더 화가 난 아브라함은 “노인장, 나는 노인장 같은 노인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소”라고 말하고 쫓아버렸습니다.
그날 밤 아브라함이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하나님.”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손님이 왔지?”
“네, 그랬었습니다.”
“왜 쫓아냈니?”
“아, 하나님도 보셨군요. 아시잖아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음식이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말이야. 그 노인을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말이야, 하루 저녁, 그리고 한 시간도 참을 수가 없었더냐? ”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복음 21:19
35.신 레몬으로 레몬차를 만들어라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 범퍼에다 여러 가지 종류의 스티커를 많이 붙이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많은 범퍼 스티커 가운데 이런 스티커가 하나 있습니다. ‘아주 쓰고 신 레몬을 주거든, 그것을 레모네이드 차로 만들어라’(When life hands you a lemon, Make lemonade). 이 말은 쓰디쓴 인생의 경험이 오히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축복으로 변모할 수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 레몬을 달콤한 레몬차로 만들어 마시라는 말입니다.
시험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주실 궁극적인 유익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험은 결코 파괴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내가 인내의 사람이 되고, 내가 지혜의 사람이 되고, 내가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 주 앞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는 노래할 수가 있습니다. 울면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시편 26:2
35.깨어짐의 영성의 법칙
제가 좋아하는 헨리 나우엔의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는 중세기 어떤 수도사의 얘기를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노련하고 존경받는 수도사 한 사람이 젊은 수도사의 교육을 막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좀 건방지고 교만한 구석이 있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그는 흙을 만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아주 견고하고 딱딱한 흙을 만지면서 젊은 수도사에게, “여보게, 여기 물 좀 붓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젊은 수도사는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흙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딱딱한 흙이라서 그냥 옆으로 흘러내리고 맙니다. 노련한 수도사는 “이 딱딱한 흙은 물을 받지 못하네”라고 말하면서 옆에 있는 망치를 집어들더니 그 딱딱한 흙덩이를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에 젊은 수도사에게 다시 물을 부어 보라고 합니다. 젊은 수도사가 부서져서 부드러워진 그 흙 속에 물을 붓자 그 물이 흙을 응고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 수도사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여기다가 말이야. 씨를 뿌리면 틀림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 아니겠나? 우리는 이것을 수도하는 사람들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이라고 말하지.”
깨어짐의 영성의 법칙이란 내가 깨어지고 내가 부서질 때 하나님은 거기서 기뻐하는 꽃과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위하여 아름다운 꽃을 위하여 때로 하나님이 나를 깨부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원망하기보다 ‘하나님, 깨뜨리세요. 깨뜨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3
36.사랑 편지의 결과
어떤 형제가 한 자매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형제가 그 자매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자매 쪽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는 하루에 한 번씩 편지를 쓰기로 결심을 하고 사랑의 고백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매는 일주일이면 일곱 통의 편지를 받았지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더 독한 결심으로 하루에 세 번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국 이 자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 자매가 결혼한 상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아닌 편지를 배달한 우체부였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요한삼서 1:1
37.정직이라는 시험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매디슨 새럿이란 교수가 있었는데, 그는 아주 존경받는 경건한 크리스천 교수였습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는데, 특히 시험을 칠 때는 어김없이 이 말을 함으로써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험관은 두 분입니다. 나 매디슨 교수와 함께 시험을 감독하실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이 두 분을 다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두 가지 시험을 치르는 것입니다. 하나는 수학 시험이고 또 하나는 정직이라는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수학 시험보다도 정직이라는 시험에 패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직한 인생, 이것은 인생 전체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중요한 테스트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역대상 29:17
38.들통난 거짓말
고등학생 몇 사람이 어느 주일날 교외로 나가 신나게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들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꾀를 냈습니다.
“야, 우리 하루 더 놀자. 그리고 완전히 결석하면 안 되니까, 이따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나기 직전에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사실 주일날 우리가 교외로 놀러갔었는데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났다고 하는 거야. 더욱이 타이어를 고칠 기구가 없어서 하루 종일 애쓰다가 가까스로 고쳐서 겨우 왔다고 보고하자.” 그들은 서로 합의하여 학교에 가지 않고 월요일의 반나절을 더 신나게 놀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그들은 학교에 들어가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메모지 한 장씩을 주시더랍니다. 그리고는 각각 네 사람이 떨어져서 펑크 난 자동차 타이어가 왼쪽, 오른쪽 어느 쪽인지를 쓰게 하였습니다. 거짓은 반드시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 시편 101:7
39.탄생의 신비
폴 브랜드라는 크리스천 의사와 필립 얀시가 함께 저술한 우리 시대의 기독교 명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힐만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오묘한 육체’(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The Mystery of the Body and Soul)입니다.
이 책에서 폴 브랜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놀랄 것이 많이 있지만, 먼저 우리는 우리의 탄생에 대하여 놀래야만 한다. 인간의 탄생 이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신비 중에 신비가 아닐 수가 없다. 생각해 보라.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단 하나의 수정난 세포에서 10조개에 이르는 세포가 생성되고 드디어 거기에서 한 생명이 탄생한다. 바로 한 아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신비를 어떻게 말할 수가 있을까?”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 139:14
40.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인이 있는 작품은 얼마나 소중한 작품일까요?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미국 사람 하나가 불란서 여행을 하다가 불란서 시골 가게에서 목걸이 하나를 봤습니다. 그는 그 목걸이가 너무나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관심을 갖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목걸이를 파는 사람은 그리 비싸지 않은 저렴한 가격으로 그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공항에서 세관 통과를 할 때 목걸이에 대한 의외의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거 비싸지도 않은 물건인데 그렇게 높은 세금을 매기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세관이 하는 말이 이것은 손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고가의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세금을 지불하고 나와 그는 보석상에 가서 보석 감정사에게 그 목걸이의 값어치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런데 확대경을 가지고 한참동안 그 목걸이를 보던 이 감정사가 놀래기 시작합니다. “손님이 가지고 오신 이 목걸이는 보통 목걸이가 아니네요. 좀 보시지요.” 그래서 확대경으로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죠세핀에게 ...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그 목걸이에는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 때에 세계를 지배했던 나폴레옹의 사인이 있다고 해서 그 목걸이를 그토록 훌륭한 값어치로 취급하는데,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인이 있고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작품인 나라는 존재, 그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있습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기대하고 내 삶 속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죄 가운데 있을 때 나를 그대로 버려 둘 수가 없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게 나를 소중히 여겨주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이사야 64:8
41. 나의 존재만으로도 기뻐하시는 하나님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때 일입니다. 그때 뉴스를 보니까 중국 선수 하나가 다이빙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선수가 인터뷰를 하는데, 저는 아직도 그 인터뷰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단거리 경주라든지 수영이라든지 이런 종목에서는 동양 선수들이 불리한데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으로서, 더욱이 여자 선수로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아주 유연하고 침착한 자세로 멋진 폼을 내며 다이빙에 성공해서 금메달을 딴 중국 선수에게 한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서양 선수들과 비교할 때 왜소한 체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뛰어넘어 그렇게 유연한 몸동작, 침착한 자세, 전혀 두려움이 없이 멋지고 놀라운 모습으로 다이빙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이때 이 중국 여자 선수가 아주 흥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기자가 “어머니 때문이라니요?”라고 되묻자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100m 경주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에 자주 나갔지만 나는 자주 잘 넘어졌고 매번 입상권 안에 들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지요. 그 때마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에게는 네가 일등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네가 넘어져서 일어날 때에 네 모습이 더 아름다웠단다.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일등보다도 내게는 더 뿌듯했단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내가 다이빙을 시작할 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와서 지켜봤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하기도 하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등은 문제가 아니야. 나는 네가 운동하는 그 모습, 그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란다. 너를 보는 것이 내게 기쁨이야. 너를 보는 것이 어머니의 행복이야.’ 나는 다이빙의 그 스탠드에 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에 침착한 모습으로 언제나 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어머니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인터뷰의 내용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인생의 길을 걸어 가다가 넘어질 때에 어쩌면 이 중국 선수의 어머니처럼 우리 하나님도 내게 말씀하지 않을까! 나는 너에게 꼭 일등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란다.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내게는 더 아름답단다.’ 살다보면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일어나는 네 모습이 더 아름답구나. 나는 네가 살아 있고 존재하는 그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란다. 너라는 존재는 나에게 소중한 기쁨이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42.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유명한 스위스의 신학자였던 칼 바르트가 미국을 방문하던 날, 수많은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평생동안 신학을 연구하고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면서 당신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 이 때 이 세계의 위대한 신학자는 뜻밖의 너무나도 단순한 말을 해서 기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내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찬송을 나즉이 읊조립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찬송가 411장)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이것보다 나에게 위대한 발견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43.탐식의 비극
토마스 커스틴이라는 역사물을 저술하는 작가가 유럽 벨기에 왕가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을 썼습니다. 그 중 ‘3명의 에드워드’라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주인공은 레이놀드라는 왕자입니다. 이 레이놀드 왕자에게는 크라수스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 뜻은 ‘뚱뚱한 것보다 더 뚱뚱하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차기 왕이 될 사람인데 부왕이 갑자기 서거하자 그 동생 에드워드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형 레이놀드를 유커크라는 성에 가두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정권을 잡은 동생 에드워드가 형을 절대로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감옥을 비교적 아담하게 꾸며 살기 좋은 방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또한 감방에 작은 창문 하나를 만들어주고 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이 원하면 언제든지 창문으로 나갈 수 있고 그래서 자유인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창문이 아주 작다는 것입니다. 몸무게를 줄여야만 그 창문 바깥으로 나가서 자유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왕이 된 동생 에드워드는 신하들을 모아 놓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형이 몸무게를 줄여서 저 창문을 나올 수가 있다면, 형은 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써 자신을 잘 관리하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쁘게 내 형에게 왕의 자리를 양위하겠다. 그러나 나오지 못한다면 자기 몸무게 하나 콘트롤할 수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리고 감방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매일 하루 세 끼씩 산해진미의 음식을 형이 있는 감방에 제공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하면 언제든지 간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감옥에서 나왔을까요? 못 나왔을까요? 거의 10년 동안 나오지 못했습니다. 10년 후에 그 동생 에드워드가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되는데 그때에야 그 형은 자유인이 됩니다. 그러나 나오자마자 자기 몸을 관리하지 못한 그 형은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 레이놀드라는 왕자의 비극, 이것은 그가 왕위를 찬탈 당하고 감옥에 들어간 한 나라의 역사적인 한 인물의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한평생 탐식이라는 유혹을 콘트롤하지 못하고 탐식의 감옥에서 살다간 사람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언 23:21
44.내 안에 불꽃을 발견하라
매튜 폭스라의 글에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게으름을 치유하는 처방은 부지런함이 아니다. 게으름을 치료하는 처방은 단순히 ‘부지런해지자’라는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게으름에 가장 적절하고 유일한 처방은 당신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다(Finding the fire with in).”
게으름의 처방은 우리 안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는 바로 이 소명을 불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불꽃. 소명이란 무엇입니까? 소명이란 하고 싶은 일입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또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 그리고 할 수가 있는 일, 그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사람이 소명을 발견하면 신바람이 나고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소명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히브리서 1:7
45.내가 되면 된다
만약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올 것입니다. 한 사람은 유명한 민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고 또 한 사람은 말콤 엑스라는 사람입니다. 말콤 엑스라는 영화도 나왔었습니다. 이 말콤 엑스의 전기를 읽다보면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원망스러운 나머지 마음에 백인을 향한 증오심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백인을 미워하면서 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백인이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인을 미워하면서도 백인이 되고자 어렸을 때부터 비누, 스킨 크림 등을 사다가 그냥 계속 자기 피부를 문질러 댔습니다. 그는 좀더 백인처럼 하얗게 되지 않을까 해서 별별 짓을 다해보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말콤 엑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은 철저한 흑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그것은 까만 흑인도 나름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새로운 의식의 전환은 그로 하여금 흑인의 영웅과 지도자로 떠오르는 존재로 만듭니다. 또한 흑인 사회 가운데 이런 말을 유행시킬 정도가 됩니다. “까만 것도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내가 가진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진 독특한 은사가 있고 나만의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내 인생을 살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굳이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로마서 12:6
46.지칠 줄 모르는 자아도취
교만은 일종의 자기 숭배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교만을 정의하기를,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15세기 설교자 중 사보나 롤라라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니까 성당 마리아 상 앞에서 어떤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인 하나가 경건한 모습으로 참배를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이튿날도 똑같은 시간에 그 부인이 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결같이 같은 시각에 와서 마리아 상 앞에 참배하는 이 부인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그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 속으로 ‘아주 신앙심이 귀한 분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보나 롤라는 자기 동료사제와 함께 산책하다가 그 부인을 가리키면서, “여보게 내가 저 부인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소.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치나 똑같은 시간에 와서 저렇게 기도를 한단 말이야. 참 신앙심이 유별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제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모르는가 보네. 옛날 이 성당에 마리아 상을 처음 조각할 때, 그 조각가가 마리아 상의 모델로써 저 부인을 뽑았다고 하네. 바로 저 부인은 처녀시절에 마리아 상의 모델이 되었고, 조각이 완성된 그 다음 이튿날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빠진 일이 없다네.”
그 부인은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상을 보면서 그 부인은 자신의 얼굴을 회상하고 만족하며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의 뿌리입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신명기 8:14
47.20세기의 기적
저는 여러 해 전에 유럽을 방문했다가 독일에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독일에 주둔하면서 공산주의가 팽배한 동구권에 들어가서 성경을 전달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셨던 선교사님이셨습니다. 늘 성경을 숨겨서 들어가고 전달하는 일을 했는데, 이 분이 한 번은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좀 당당하게 성경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나.’ 그래서 보통 때는 007 작전처럼 성경을 숨겨서 들어가는 작전을 했는데, 기도가운데 담대함이 생겨 배짱 좋게 가방에 성경을 잔뜩 집어넣고, 헝가리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경계선상에서 세관을 통과하는데, 세관 관원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고할 물품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뭡니까?”라고 묻는 세관 관원의 물음에 선교사님은 가방을 열면서 “성경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세관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이것이 왜 신고할 물품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게 워낙 비싸서요”라고 말하자 “얼마나 비쌉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침착하게 “이건 너무 비싸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있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평화가 없던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죄 속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주는 말씀이 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전했습니다. 그러자 세관은 “그 책 나 하나 주시오”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그냥 들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분이 막 들어갔다가 나와서 저를 만나자 흥분된 어조로 “목사님, 기적은 20세기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적이 20세기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주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할 때 그 기적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신명기 31:6
48.순종의 대가
저는 지난 수요일 작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저의 수요일 계획은 월요일부터 수요일에 걸친 저희 교회의 세미나를 마치고, 수요일 낮 12시에 수요예배 겸, 수료예배가 끝난 후, 저녁에는 부산에서 청년 대집회가 있었습니다.
부산 시내가 생긴 후 처음으로 청년과 대학생이 함께 모여 사흘 동안 집회를 여는데, 제가 마지막 날 저녁 메시지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교회에서 2시쯤 출발해서 공항에 도착했더니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가 모두 취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김해공항의 비와 안개 때문이었습니다. 카운터에서는 40-50분 후에 혹시 늦게 비행기가 뜰 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할 수 없이 1시간 정도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었어도 비행기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산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가 못 떠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더니, 그쪽에서는 “목사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십시오. 5천명의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에 번갈아 가면서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김해공항뿐만 아니라 울산, 포항비행장 모두 취소되어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저는 다시 부산에 전화를 걸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라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수단과 방법이 다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해보았지만, 부산에서는 “목사님, 그러면 택시라도 타고 오세요. 어떤 택시는 3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합니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지만 공항 밖으로 나가 택시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3시간 30분이면 부산에 갈 수 있습니까?” “아저씨,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갑니까? 최소한 5시간은 걸립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10시가 넘어야 부산에 도착하는데 그때는 이미 집회가 끝날 시간이라 가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형편이 이래서 도저히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더니, 또 다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정말 불가능해요”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그때 제 마음에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흘 동안 교회 세미나 때문에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막무가내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다시 공항 카운터에 가니까 진주로 가는 비행기가 6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주에서 부산은 얼마나 걸립니까?”라고 했더니, 2시간정도 걸리지만 보통 차가 밀려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다시 부산에 전화해서 상황을 말했더니, 늦게라도 오시면 준비위원들이 살 것 같다고 하기에 어쨌든, 6시에 진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님 뜻이 있겠지. 하나님, 저는 모르지만, 부산 집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하나님 뜻을 이루어주십시오.’ 그리고 진주에 7시 10분쯤 도착해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엥~하면서 경찰차가 오더니 “이동원 목사 계십니까?”라며 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접니다”라고 했더니, 타라는 것입니다. 부산 KBS 홀까지 모셔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경찰차는 고속도로 순찰차였는데, 8시 45분에 저를 모임 장소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제가 도착하니까, 모두들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어요. 제 평생에 그런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준비위원이 “목사님, 10시까지만 이 홀을 사용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꼭 30분 동안만 설교가 가능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제 생애에 가장 먼 거리에 가서 가장 짤막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젊은이들이 짧은 설교 속에서 얼마나 그렇게 격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선교사로서의 부름에 초청하자 절반 이상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아왔던 사람들, 그리스도 앞에 인생을 드리고 주님을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 한 번 일어나 보십시오”라고 하자 굉장히 많은 젊은이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집회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획하셨지만, 사탄은 이 집회를 막고, 강사가 오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드디어 성령으로 역사 하셨습니다. 수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생애를 바치는 놀라운 장면을 보고 저는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순종은 언제나 기적을 가져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우리가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기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성령은 역사 하실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할 것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새 시대에는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기다립니다. 그들과 함께 주님은 새로운 역사를 진행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이사야 1:19
* 쪽글모음
어거스틴의 회심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에 사귀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그 여자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더랍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왜 모른 척 지나가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좇아오는 여자에게 어거스틴은 돌아서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오. 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는 말이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아직도 옛사람이 범하는 죄 가운데 계속 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돌아갈 수 없는 다리
오엠(OEM) 선교회 총재인 조지 보어는 젊은 나이에 구원받고 나서 예수 앞에 자기 일생을 몽땅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를 지켜보던 친구들이 묻습니다. “구원받은 소감이 어떠냐?” 그때 그는 이런 인상 깊은 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오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No Turning Back). 나는 이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화장(化粧)의 뜻
제가 어떤 분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화장(化粧)의 본 의미는 20대 결혼 적령기 여자들이 조금 얼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변질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20대는 화장하고, 30대는 치장하고, 40대는 분장하고, 50대가 되면 변장하고, 60대가 되면 환장한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어떤가요? 진정한 핵심은 왜곡되어 세상 진리로 취급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침해의 마지막 증상
우리 교회 부 목사님 한 분이 얼마 전에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치매(癡呆)의 마지막 단계 증상을 아십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 증상은 부부 사이가 갑자기 좋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왜 그게 치매의 마지막 단계냐고 물었더니 그 이유가 자기 부인이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좋아진다는 얘기입니다.
내 맘의 안식처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노후에 기독교 신앙에 귀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소에, 특별히 젊었을 때 교회를 경멸했다. 교회를 무시했다. 그러나 내 조국 독일이 어두워 졌을 때, 그리고 나치의 핍박 아래 있었을 때 내가 경멸하고 무시했던 교회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었고 사람들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노후에 인생의 석양녘에 나는 교회 이외에 내 영혼의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교회로 다시 돌아온다.”
세상풍자
한강에 국회의원과 수녀가 빠졌는데 119구조대원이 오더니 국회의원만 건져내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니, 거기 수녀님도 빠졌는데 수녀님은 놔두고 어떻게 국회의원만 건져냅니까?”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구조대원이 대답하기를, “국회의원을 그대로 놔두면 한강 물이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 시대상을 잘 풍자해주고 있는 얘기인지요.
헌신의 의미
란스 헤브너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헌신의 참된 의미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헌신은 85%로 만족할 수가 없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보십시오. 한 남자나 한 여자가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내를 향해서 “여보, 내가 전체는 못 해도 85%는 당신을 향해서 성실할께요”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85%라는 말에는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15%는 성실하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15%는 성실하지 못하겠다는 말에 만족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15%가 문제이고 그 15% 때문에 시험 듭니다. 헌신은 절대 85%일 수 없습니다. 헌신은 100%입니다. 사랑이란 전체와 전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85%와 15%의 결합이 아니라 100%와 100%를 바꾸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
영국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입니다. 한 청년이 장난 삼아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런던의 유명인사 20명이 거의 같은 시각에 모두 런던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는군요.
긴급전문 “모든 것이 들통났으니 속히 피신하기 바람.”
그 청년은 단순히 재미로 런던의 유명인사 20명을 뽑아 명단을 작성해서 일제히 같은 전문을 발송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생활이 되어버린 복수
역사적으로나 전통적으로 폴리네시안 섬사람들의 전투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 섬 중의 한 곳에서는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으면 붉은 헝겊에 그 내용을 기록하여 자신의 오두막집 추녀 밑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는 습관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매달아 놓은 붉은 헝겊을 볼 때마다 헝겊들에 쓰여진 가슴 아픈 상처들을 읽고 또 되뇌어 읽으면서 항상 복수의 마음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섬사람들에게 복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나사로는 웃었다
그리스도인 극작가인 유진 오닐(Eugene O'Neill)은 ‘나사로가 웃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는 나사로가 부활한 후에 나사로와 그의 식구들의 삶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소재로 다루었는데 그 중에 제일 인상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을 경험해 본 그는 죽어보니 죽음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한 신비가 우리를 더 깊은 공포와 절망 앞에 서게 합니다.
지옥은 밋밋한 내리막 길
평신도 신학자이고 문학가, 변증가였던 영국인인 C. S. 루이스(C. S. Lewis)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결코 벼랑이 아니다. 지옥을 향한 길은 밋밋한 내리막길이다. 사람들은 그 길을 기분 좋게 걸어간다.”
이 말은 무척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갑자기 벼랑으로 떨어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는 밋밋한 내리막길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사랑
영국을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뒤집어놓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라난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존 웨슬레의 아버지는 그의 아내 수산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수산나, 당신은 도대체 저렇게 머리가 나쁜 아이들에게 어떻게 스무 번씩이나 똑같은 말로 타이를 수가 있단 말이요? 당신도 참 대단하오.”
수산나는 남편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여보, 만일 내가 열 아홉 번만 이야기했더라면 내 말은 헛수고가 될 뻔하지 않았겠어요.”
정말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어떤 독일 마을에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자매가 혀암으로 판정을 받아 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수술을 하기 직전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그들은 그 자매에게 혀를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런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고백을 남겼습니다.
“주 예수님, 주님의 은혜가 이미 저에게 족합니다. 제가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찬양합니다.”
불행한 성공
옛날 우리 나라 정치인 중에 이완용이라는 사람은 당대에서 드물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일찍 벼슬길에 올라 주미공사와 주일공사를 지내고 외무대신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일 합병을 추진하고 도장을 찍는 순간, 그는 역사에서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그의 인생은 성공했지만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성취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얻는 지혜
어느 정년이 된 은행장이 성공적인 업무수행을 하고 은행원들의 존경과 박수 속에 명예로운 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후임자인 젊은 은행장이 그의 퇴임식 후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배님, 선배님의 그 성공적인 업무수행의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때 노 은행장은 “올바른 결정이 제일 중요하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후배는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노 은행장은 “경험이 중요하지”라고 말하니까 다시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야 그릇된 결정을 해 보면 알지.”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만이 우리가 지혜를 획득하는 통로입니다.
용서받는 기쁨
위대한 수학자요 천문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유명한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Nicolaus)가 죽음을 앞에 두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을 따라 그가 묻혀있는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바울이 가진 특권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베드로에게 주신 능력도 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십자가에서 강도에게 주신 용서를 원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기쁨은 용서받는 기쁨입니다.
한 박사의 대응
미국에 아이언사이드(Ironside)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이자 설교가인 박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청년이 손을 들며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법대로 합시다.”
이 말을 들은 아이언사이드 박사는 그 청년의 말에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법대로 하는 것을 원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을 법대로 다루셨다면 자네는 지금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아마도 자네는 지옥에 가야 마땅할 것일세.”
하나님의 살림 경영법
한 청교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런 좌우명을 가졌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이 좌우명을 평생동안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나중 잔치의 막바지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맛보았던 하객들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처음에는 좋은 것으로 대접하다가 나중에는 좋지 않은 것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집의 잔치에서는 가장 좋은 포도주를 마지막에 준비하셨군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 처리 방법이자 살림 경영법입니다.
남겨진 상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이 상담실에 불려가서 상담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성을 내기는 하지만 절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그 학생의 변명에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네. 그러나 학생! 수소폭탄이 떨어져도 오래가지는 않네. 그러나 무엇으로 그 재난의 상처를 복구할 수 있겠는가?”
칠면조의 세대
어떤 설교가가 지금 우리의 세대를 빗대어 말하기를 “칠면조의 세대”라고 고발했습니다. 그 설교가가 칠면조로 우리 세대를 비유한 이유는 그들의 습성을 보면 단번에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칠면조들은 그들 중에 한 마리가 등에 상처를 입게 되면 한우리에 있는 다른 칠면조들이 모두 달려들어 상처 입은 칠면조를 쪼아서 그 상처에서 피가 나고 쓰러질 때까지 공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약하고 눌린 자들을 더욱 치고 눌러 쓰러뜨리는 모습이 오늘의 이 세대의 비극과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지옥이 있는 곳
한 설교자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설교자는 그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계속 걸어가다가 당신의 인생 맨 끝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그 결과는 심판 받는 것뿐입니다.
천국에 가면 놀랄 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존 뉴톤 목사님께서는 임종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순간에 놀라는 일이 세 번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천국에서 만나게 될 때이고, 두 번째는 내가 마땅히 천국에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이며, 세 번째는 내 자신이 바로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깜짝 놀랄 것이다.”
스펄전의 고백
위대한 설교가로 알려진 스펄전(C. H. Spurgeon)은 그의 생(生)의 말년에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 때 한 성도가 병 문안을 하러 들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목사님, 많이 아프시죠?”
“네. 너무 아픕니다. 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가 이렇게 아플수록 더욱 가까이 제 곁에 와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놀라운 주님의 사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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