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예화- 부활절 예화 19편
1.부활(復活)
수 십만명의 사람들이 조그마한 장소에 모여서 자기네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땅을 망쳐버리려고 제아무리 기를 써보더라도, 또 그 땅 위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돌을 깔아 덮어버리더라도, 석탄이나 석유, 연기로 그을려 놓는다 하더라도 아무리 수목(樹木)을 베어버린다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봄은 역시 봄이었다.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 쬐자 풀은 되살아나서 송두리째 뽑아버리지 못한 곳이라면 가로수 길 옆 잔디는 물론이요 포석틈바귀에서도 파릇파릇 싹터 올랐다. 자작나무 백양나무 벚나무는 끈기 있고 향기로운 잎사귀를 벌리고 보리수는 빵긋이 벌어진 싹을 부풀려 올리고 있었다. 까마귀와 참새 그리고 비둘기들은 봄을 즐기는 듯이 벌써 보금자리를 마련하기에 바빴고, 파리들도 양지바른 담장 가에서 윙윙거리고 있었다.
이처럼 초목과 새들과 벌레들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즐거웠다. 그러나 인간은 – 끊임없이 자기를 속이고 괴롭히며 또 서로 속이고 또 서로 괴롭히고 있었다. 인간은 이처럼 아름다운 봄날 아침을 신성하게도 귀중하게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자… 여기서 문제 들어갑니다. 위의 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작가의 유명한 책 처음 시작 부분입니다. 누구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번쯤 읽었을 책입니다. 맞춰보세요. ⓒ최용우
2. 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전 세계에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나라마다 등장인물이나 배경은 약간씩 다르지만 이야기의 맥락은 거의 비슷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재림, 그리고 성도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뚜렷한 전달수단이 없던 옛날에 입에서 입으로 각 나라에 전파되면서 약간씩 변형된 것이 아닌가 하고 보기도 합니다.
하늘의 선녀들이 깊은 산 속에 있는 폭포에 내려와 목욕을 하는데,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덫에 걸려 죽어 가는 노루를 구해준 댓가로 노루가 알려준 대로 천사들을 발견하고 천사의 날개옷 하나를 감춥니다. 선녀는 하늘로 귀환하지 못한 채 결국 나무꾼과 결혼해 자녀까지 낳고 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날개옷을 돌려 받은 선녀는 홀로 하늘로 귀향해 버리고 나무꾼은 노루가 절대로 날개옷을 꺼내주면 안 된다고 했던 다짐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스토리는 서양버전입니다.
선녀가 자녀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하늘로 올라가고 이어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게된 선녀들이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긷자 나무꾼이 두레박을 살짝 타고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는 스토리는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양버전입니다.
한국 버전은 또 다른데, 하늘로 올라간 남편은 지상의 노부모가 걱정되어 선녀가 준 용마를 타고 지상에 내려오지만 노모가 끓여준 뜨거운 팥죽을 먹다가 흘리는 바람에 용마가 놀라 도망가 하늘행을 포기하고 노부모와 함께 여생을 산다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기독교 버전으로 바꾼다면 아마도 나무꾼이 노부모까지 용마에 태워 하늘로 데려간 뒤 온 가족이 함께 영생을 누리는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의 여정이 바로 성도들의 천국행이 해피앤딩으로 끝남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최용우
3. 3일의 비밀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단골 손님이 할머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언제나 즐거워 하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천만에요.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내게도 고통스러운 일, 짜증나는 걱정거리가 생긴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즐겁게 사실 수가 있어요?
나는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산답니다.
3일의 비밀이라니요? 그게 무엇입니까?
’3일의 비밀이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맡겨버리고 조용히 3일을 기다리는 것이라오. 예수님이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그 문제가 해결되는데는 3일이면 족하다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이 와도 3일 후면 언제나 광명의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사는 게 늘 즐겁기만 하지요 ⓒ최용우
4. 나 보이니?
연예인들의 특성상 그들이 신앙을 갖기란 매우 힘들었는데, 각고 끝에 연예인들을 모아놓고 성경공부를 가르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 제자들과 말씀하시는 장면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 맨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이지요?
미리 성경을 읽어오라고 누누이 말을 했건만 바쁜 일정에 누구도 성경을 읽어오지 않았으니 알 턱이 있나요.
모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이리 저리 휘저으며 유령 같은 몸짓으로 하는 말
예들아~ 너희들은 내 몸이 보이냐?….
엉뚱한 말 한마디로 어색한 분위기는 갑자기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엉뚱한 연예인이 바로 코미디언 구봉서 장로님이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와 웃음은 사람에게 여유를 갖게 합니다. ⓒ최용우
5. 부활절의 첫 복음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6.부활절 달걀
십자군 전쟁 때의 일이다. 로잘린부인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틈을 이용해 재산을 가로챈 후 로잘린을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안착했다. 마침 부활절을 맞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나무를 하나씩 정하렴. 그리고 나무 밑에 둥지를 만들어 놓아라. 그러면 둥지에 예쁜 알이 들어있을 것이다.
로잘린은 둥지에 형형색색의 그림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글이 적힌 달걀을 놓아두었다. 어린이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색달걀을 받았다. 그런데 한 소년이 달걀을 들고 친척집을 가던 중 길가에 쓰러진 부상병을 만났다. 소년은 부상병에게 달걀을 주었는데 부상병은 그곳에 적힌 글씨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내 아내 로잘린의 그림인데. 그리고 이것은 가훈이 아닌가
그때부터 부활절 달걀은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7.속이 빈 프리스틱 계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교회학교에 나오는 여덟 살 짜리 소년 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이 많아 몸이 늘 아프고 힘이 들어서 늘 휠체어에 실려 교회에 나오는 소년이었습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톰의 교회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속이 비어 있는 플라스틱 계란을 주며 그 속에 무엇이든 생명이 있는 것을 넣어 오라고 했습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이 차례로 계란을 열어 보았다. 꽃이나 나뭇 잎, 곤충 등 아이들은 생명이 있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 왔습니다. 톰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톰의 계란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걸 본 몇몇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앓고 있는 톰을 동정해서 교사는 부드럽게 준비하지 못했어도 괜찮아. 톰이 많이 아팠나 보구나.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하지만 톰은 선생님께 이렇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생명을 준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그 무덤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살아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잖아요.
이 소년은 10개월 뒤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의 관에는 꽃 대신 빈 플라스틱 계란이 놓여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누우셨던 무덤을 비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활의 소망을 가득 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8.위기를 기회로
세상을 변화시킨 기독교 역동성의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수없는 박해와 도전을 만났지만 언제나 위기를 갱신의 계기로 삼아 스스로를 정화하며 세상을 압도하는 생명력으로 변화의 주체가 됐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신앙의 초석이며 변화된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 어떤 슬픔과 공포,회의와 실망,고통과 상처도 부활의 사실을 믿고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살며 부활 복음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침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체험하는 감격의 부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길자연 목사
9. 부활 증인과 증거
인류가 소유한 기록 가운데 4복음서보다 성스럽고 진실된 피 묻은 기록은 없을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의 거의 절반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일주일 간의 기록이다. 사도행전의 수백 명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이었다.
인류 증언사 가운데 일찍이 예수님의 부활 증인들보다 진실되고 다수의 순교자를 낸 것은 없었다. 공모 사기 사건이라면 무슨 대가를 바랐을까. 금생과 내세, 영육간에 백에 하나도 유익이 없는 일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기의 순교를 해야 했던 심리적, 도덕적 동기가 설명이 안 된다.
안식일이 주일로, 할례가 세례로, 회당이 교회로 바꿔진 사회학적 이유도 부활의 역사성 이외에는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 /예수칼럼 : 김준곤
10.토마스 아놀드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 (Thomas Anold)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중이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 역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만일 기독교가 예수의 부활을 허위로 선전했다면 기독교가 2천년 후인 오늘까지 존재할 수 없고 점차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본심에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순교를 하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런 사람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 성경: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6)
* 묵상: 나는 주님의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는가?
11.교회 힘의 근원
인도 수상 네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 참조: 마28:1-8, 요20:1-10
12.스탈린이 부활할까 봐
스탈린의 유해를 국내에 안치하는 것을 꺼림직하게 여긴 후루시쵸프가 드골에게 청해서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앙바리드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드골은 앙바리드는 영웅을 모시는 묘지라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워싱톤에 알아보았지만 앨링톤 묘지도 스탈린만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영국의 영웅 이외에는 사절하겠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에 부탁을 해보았는데, 뜻밖에도 학살자의 유해를 인수하겠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다만 회신 끝에 이러한 추신이 있었다.
믿을 만한 국제 통계에 의하면, 성스러운 이스라엘에서 사자(死者)의 부활은 그 확률이 세계 최고임을 알아주기 바람.
고민 끝에 후루시쵸프는 스탈린의 유해를 그냥 소련 땅에 묻어 두기로 하였다 한다.
13.반박의 글을 쓰다
영국의 한 젊은 변호사 프랭크 모리슨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책을 썼는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송두리째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이 Who moved the stone 누가 돌을 옮겼나?라는 유명한 책이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을 이론적으로 따져 본다고 하여도 그것은 확실한 사실인 것이다. 예수 부활이 사실 무근이라면 십자가에 죽인 바리새인들이 큰 증거를(세워) 선전했을 것이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14.부활 신앙의 부활
미국 대통령을 지낸 부시가 부통령 시절에 소련 부레즈네프 수상의 장례식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장례식은 공산당의 관례대로 진행되었다. 모든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 색이나 붉은 색으로 덮여 있었다. 장례식의 말미에는 고인을 위한 마지막 경의를 표하는 순서가 있었고 이때 고인의 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품에 간직했던 백합 한송이를 꺼내어 관 위에 놓았다. 백합은 전통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그리고 미망인은 남편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식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여인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일어선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이 순간, 여기 저기서 미망인을 따라 성호를 긋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조지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얼어붙은 소련 땅에 기독교 신앙은 완전히 죽어 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순간 부활 신앙이 부활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 이동원
15. 이디 아민 목사
1973년에 당시 우간다라고 하는 나라에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디 아민이라고 하는 대통령이 있었다. 이 독재자로 인해 온 국민이 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그 가우데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키파샘판디라고 하는 목사님이 있었는데, 당시는 아민 대통령을 반대하는 무리면 무조건 죽어버리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암살단이 부활절 아침에 교회에 막 쳐들어 왔다. 목사님을 죽이려고. 그 분에게 총을 들이댔다. 그러니까 목사님이 싱글싱글 웃으시면서 그러시죠 뭐. 하지만 내가 이제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죽이세요. 마지막이니 그러라고 했다. 목사님은 조용히 기도를 했다. 그런다 아무 다른 기도가 없고, 예수님께서 하시던 기도 그대로 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이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아멘했더니 암살하려던 사람들이 기도해줘서 고맙습니다하고는 그냥 가더란다. 그 분 이야기는 이렇다. 지금 금방 죽는다고 하지만 아무 두려움도 없다. 왜? 부활절 아침이니까. 지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고 부활 신앙으로 충만해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 죽음에 대한 문제가 조금도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중
16 부활은 인류를 향한 최고 선물
스칸디나비아에 페드로라는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고기잡이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페드로의 어선은 나뭇잎처럼 표류했습니다. 칠흑같은 밤, 페드로는 파도와 강풍에 맞서 몇 시간을 싸웠으나 방향과 기력을 모두 잃고 자포자기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먼 곳에서 강렬한 불기둥이 솟구쳤습니다. 불기둥은 곧 육지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페드로는 사력을 다해 불기둥이 있는 곳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은 자신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맞으며 통곡했습니다. 그런데 통곡한 이유가 달랐습니다. “여보, 제 실수로 우리집에 불이 나서 세간을 몽땅 태웠어요. 이를 어떡하면 좋아요” 그 생명의 불기둥은 바로 페드로의 집에서 피어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껴안으며 밝은 표정으로 말합니다. “여보, 고맙소. 당신이 실수로 불이 난 것이 나와 아들의 목숨을 구했소. 불기등이 없었으면 우린 모두 침몰했을 것이오. 집에 불을 내줘서 고맙소”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생명의 불기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까짓 초가삼간이 불 타는 아픔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상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영생의 소망을 품은 사람은 삶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17. 묘비 없는 칼뱅의 무덤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 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18. 그리스도인의 D-day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 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 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안하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날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계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아직도 사단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브이데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디데이’와 ‘브이데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긴장 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 15)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19. 부활의 주님
한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다. 석가모니의 이 유명한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속에 시가행진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부복한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라고 했다. 기독교는 그들처럼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요 산 자를 믿는 종교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예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나?라고 하는 천사들의 책망을 들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볼 것이요, 책 한 권 쓰시지 않으셨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어 머리 둘 곳도 없으시면서도 세상의 부의 주인이 되시며, 군사 한 명 없으셨으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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