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마라나타!!!

[스크랩] 계시록 강해 1-8장 (척 스미스 목사)|(

하나님아들 2012. 11. 27. 16:19

출처...블로그,,요한계시록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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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성경은 유일하며 세상에 있는 다른 어느 책과도 다르다. 끓임 없는 오랜 비판 속에서도 성경은 오늘 날 까지 남아있다. 성경은 수 천년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망치질을 당했다. 그 망치들은 낡아 없어 졌지만 성경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성경은 2,000여 년에 걸쳐서 50여명의 저자를 통해 기록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기록한 아름다운 이야기책이다.
요한 계시록은 사도 요한 이 기록한 것이며 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요한 계시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요한 계시록1:19에서 요한 은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요한 계시록 1장에서 요한은 그가 본 것-즉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기록했다. 이 계시가 바로 요한계시록 의 첫 번째 부분이다.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현재 있는 일, 즉 교회에 관한 일, 교회의 봉사의 일, 세상에서 감당할 교회의 증거 등에 관해서 기록했다. 이 메시지가 요한 계시록의 두 번째 부분이고, 이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시대를 말하고 있다.

요한 계시록 4장부터는 계시록의 세 번째 부분으로 교회가 이 세상에서 데려감을 당한 후에 (공중 재림 후)일어 나게 될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에 속한 일이다.

요한 계시록 1:1-2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 서두에는 "신성, 성 요한 의 계시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머리말이다. 요한 계시록은 신성, 요한 을 계시한 책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한 책이다.
요한계시록 1:1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은 헬라어의 '아포칼립시스(apokkalypsis)'를 번역한 말인데 ,이것의 문자 적인 의미는 "감추인 것을 드러낸다."라는 뜻이다. 시청 앞에 제막되기 직전에 덮여있는 동상을 머릿속에 그려 보라. 벤드가 음악을 연주하고, 시장이 나와 연설하고, 그 동상을 제작한 예술가가 그 동상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이윽고 극적인 순간이 되어 덮고 있던 막이 들려진다.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앞으로 시청 앞을 장식하게 될 이 동상을 보게 된다. 그 막을 들어 올리는 것이 헬라어로 말하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이다. 감추인 것을 드러내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감추어진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있는 책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신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에 관해서 전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어두워져 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혀 없다. 혹자는 눈과 마음에 막이 덮여 있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아예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알아보려고 찾지도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해 주셨다. 과거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였고, 오늘날 같은 마지막 세대에는 그의 귀하신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니,"이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하셨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가를 충실히 나타내는 증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고 싶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잘 살피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이해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 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이 말씀을 통해서, 이 계시가 우리에게 오게된 경로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시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그에게 앞으로 드러나게 될 영광도 보여 주셨다.
십자가에 관해서 성경은,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했다.
요한 계시록의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는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영원한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게 될 자리를 그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예수는 그 계시를 그의 천사에게 주셨고, 다시 천사는 그것을 그의 종 요한에게 주었다. 그래서 요한은,"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다." (계 1:2). 요한은 첫 번째 서신에서,"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기록했다.

요한은 자기가 보고들은 바를 쓰고, 하나님께서 쓰게 하신 것을 모두 충실히 기록했다. 이 계시는 음성으로만이 아니라 환상으로도 왔다. 요한이 본 영적인 실체들은 이상 중에 본 영적인 실체들은 이상 중에 본 사람들로, 그들은 요한과 함께 대화하고 그가 본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고 있다.

요한 계시록 1:3

요한 계시록에는 축복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요한 계시록을 듣는 자와 읽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있다. 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책이었고, 요한 계시록은 이 일곱 교회에서 읽혀지기를 바라고 쓰여졌기 때문에 각 교회를 위한 사본도 만들어서 보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서점이나 수퍼마켓에 책 진열장도 없었다. 글 쓰는 종이가 매우 진귀했다. 초기 글 쓰는 종이로는 이집트의 파피루스가 있었는데, 그 당시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를 장려하여 가격을 올려 이익을 보려고 파피루스를 수출 금지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버가모 에서는 글 쓰는 종이로써 양피지를 발명해 냈다.

그러나 양피지도 역시 귀했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대형 도서관이 있기는 했지만 개인 소유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도 개인적인 서한을 쓸 제구는 갖추고 있었다. 각 교회에서는 편지의 사본을 받으면 그것을 교회에서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여러 서신서와 요한 계시록을 읽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와 읽는 자와 거기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이 복되다고 했기 때문이다.
요한 이 직접 요한 계시록을 예언이라고 말한 점을 주시하라.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을 읽을 때에는 미래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장차 일어날 일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석-요한 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과거 해석법이 있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의 모든 사건을 로마 제국에 맞서 대항한 교회의 투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요한 계시록은 여러 황제가 교회를 심하게 핍박했던 로마사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하며, 따라서 요한 계시록은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이미 완성되고 실현 된 것으로 해석된다. 역사적 해법도 있는데, 이는 요한 계시록을 세계의 체제에 대항한 교회의 투쟁사라고 본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로마 시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고 본다. 영적인 해석법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을 완전히 혼동되게 만들어서 아무도 그 실상을 알 수가 없다. 모든 사건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어서 말하는 그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은 영적인 비유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면 성경에 있는 어떤 권위나 교훈이 제거된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데로의 영적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 해석법도 있다 .
나는 개인적으로 미래주의 관점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주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경은 말한 그대로를 의미하며, 또 의미하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성경을 억지로 여기저기에 끼워 맞추려고 할 필요도 없고, 어떤 계획에 맞추려고 왜곡시킬 필요도 없다. 미래해석법은 요한 계시록을 읽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4-5
"요한 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명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일곱이라는 숫자는 요한 계시록에 여러 번 나온다. 일곱은 때로는 하나님의 완전수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함 또는 총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레가 일주일을 만들고, 일곱 음표가 한 음계를 이루며, 무지개에는 일곱 가지 빛깔이 있다. 그래서 일곱 교회는 완전한 교회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 일곱 교회는 작은 원을 이루고 있다. 소아시아에는 이 일곱 교회 외에도 많은 교회가 있었다. 그 중의 한 교회가 골로새 교인인데 요한 계시록에는 빠져있다. 그러나 일곱이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이기 때문에, 일곱 교회도 완전한 교회사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예언서에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뇌성,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등이 있는데, 모두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완전하신 심판을 나타낸다. 따라서 '여덟'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시작을 나타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덟 번째 날은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고, 일곱 음표후의 여덟 번째 음표는 새로운 음표를 시작한다. 헬라어의 알파벳에는 각각 고유한 숫자가 매겨져 있는데, 헬라어로 예수의 이름에 해당하는 모든 이름의 총 숫자가 모두 여덟으로 나누어 떨어진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다. (Jesus, Christos, Kuris).그는 새로운 시작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시고, 현재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신다.

그는 과거에 오셨고, 현재에도 계시고, 장차 미래에도 오실 분이시다. 또한 동시에 모두 계신 분이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과 '영원한 현재'의 상태에 있다.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 : 여기에서는 (요한 계시록3,4,5장에도 있다)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일곱 명이 나온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령의 완전하신 사역을 가리킨다. 이사야서 첫 부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시오 모략과 재능의 신이시오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5) 이렇게 성령의 일곱 가지 사역을 정의하여 기술하고 있다.
사도 요한 은 하나님과 성령 그리고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축복을 보내고 있다. (계 1: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 신가를 증거 하는 충성된 증인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배반당하시던 날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계셨다.

빌립이 예수께 외쳤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 이에 예수께서는,"빌립 아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라고 대답하셨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원하신다. 세상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바라시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의 매우 중대한 의무이다 .예수님께서는"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 하셨다. 우리의 삶은 예수그리스도와 그가 누구 신지를 바로 증거 하는 삶이어야한다.

'증인' 이라는 말은 헬라어로'martus'인데 거기에서 영어의 'martyr(순교자)'가 파생되었다. '충성된 증인(순교자)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나신 예수그리스도'(계 1:5).'먼저 나셨다' 는 말에서 먼저란 시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우선 순위의 의미에서 먼저라는 뜻이다. '먼저 나셨다'는 것은 탁월함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수는 다시는 죽지 않고 영생한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두 번째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예수는 다시 죽지 않을 몸으로 살아났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다.
그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다. (계 1:5). 이는 왕국 시대에 예수가 갖게될 위치와 칭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저금 못하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 귀의 면류관을 씌워 주셨다"8) 세상은 혼란하고 사탄의 세력과 지배아래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로 오실 때 임할 영광의 그 나라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5에는 예수와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치 말라! 사탄은 그 사랑을 어떻게 하든지 의심하도록 만들려고 애쓴다. 사탄은,"너는 악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지금 너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신다.
너는 틀렸다(실패했다)!너는 하나님의 규례에 맞추어 살지 않았다. 예수는 너 같은 악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라고 수군거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형편이 어떠함에 상관치 않고 당신을 사랑하신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9)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
그리고 당신이 죄인 되어 그를 거역할 때에도 그는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해 돌아가셨는데 , 당신이 그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따라 산다면 , 그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많이 체험하게 되겠는가? "우리는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계 1: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인간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사랑으로 피를 흘리셨고 우리의 모든 죄에서 우리를 해방 시켜 주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10)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요한 계시록 1 :6-7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계 1:6).또는 좀더 문자 적으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제사장들의 나라로 삼으신 그에게." 구약의 제사장에게는 두 가지 사역이 있다.
첫째로, 제사장은 하나님에게 백성들을 대표했다. 이 일을 행할 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12개의 돌이 박힌 횽패를 착용했다.
두 번째로,제사장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제사장도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중매인이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의 큰 대 제사장 이시다.

그는 그곳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리하고 계신다.11) 그 나라가 임하면 우리는 제사장들의 나라가 되어 백성을 대표하여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백성 앞에 서게 된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6).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이 땅에 곧 돌아오신다. 인간의 시대는 거의 끝이 났다. 인간에 의한 세상은 이제 거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 날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우리는 지금 강해지고 있는 날들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속히 처리하신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고 예수께서는 곧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도 그와 함께 다시 오게 될 것이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 하셨나니 ." "우리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는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오셔서 하나님 나라는 세우시고,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 땅에서 천년동안 다스리게 된다.

성경에는 우리가 해마다 예루살렘에 모여 경배를 드리고 열 국 중에 남은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리 했다.
성경에는 그 때의 통치체제 성격이라든가 그것이 어떨 것이라는 것 등은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아마도 멋지리라 생각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계 1:7).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한 곳은 많이 있다.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다니엘은,"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라고 예언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위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리어지고 구름으로 가리워 졌다. 천사들(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 리 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말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것은 성도들의 구름, 증인들의 큰 구름으로 예수님은 그 가운데서 돌아오실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 다시 오실 때 주님은 비밀히 오시지 않을 것이다.
비밀스런 작은 방으로 오시지 않을 것이며, 선택받은 특정한 몇 명의 사람만이 그것을 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온 세상이 그가 다시 오심을 알게 될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 이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1848년, 1878년, 1917년, 1918년, 또는 사람들이 제시한 많은 연대와 날짜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분명히 반박하고 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그런 이론들을 반박하면 그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우리들이 알 수 없는 곳에 오셔서 그가 온 것을 몇 사람밖에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19)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라고 말씀하신다.
그를 찌른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계 1:7). 스가랴 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짊이냐 ."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가랴 는 또,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통곡하리로다. "라고 했다.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사실로 슬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당시자기 민족이 예수가 매시야 되심을 깨닫지 못함과 현재까지도 자기 민족의 영적인 소경 됨을 인하여 매우 슬퍼하고 통곡할 것이다. "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 하리니 "(계 1:7).

스가랴는 그 슬퍼함이 죽은 독자를 인하여 통곡하는 여인의 통곡 같은 것이라고 했다.22)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민족적 소경 됨을 인해서 애곡 하고 슬 피울 것이다.

요한 계시록 1 :8-9

"주 하나님이 가라 사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원성을 설명하실 때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영어의 A와 Ω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 신다 .그는 처음이요 나중이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시작했고 하나님으로 끝난다. 그는 이제도 계시고 , 전에도 계셨고 , 장차 오실 분이다.
그는 영원하시다. 요한 계시록 21:6에서도 예수님은 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도 역시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존재이시라는 결론을 얻게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로 처음과 나중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똑같이 영원하신 분이다.

이어서 요한은 자기가 처음으로 환상을 볼 때의 상황을 설명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계 1 :9).
요한의 아름다운 겸손이다. 그는 자기를 위대한 지도자로 말하지도 않고, 혹은 자기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내에서 어떤 영적인 계급 체재가 이루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하나님께는 특별한 사람도 특히 좋아하시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빌리 그레함과 당신을 똑같은 관심으로 보고 계시며 Dwight Moody, Charles Finney, John Weslwy, John Knox, Martin Luther 에게 기울이셨던 관심을 오늘날 당신에게 동일하게 기울이고 계신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만 꾸준해 귀를 귀울이시는 것이 아니라 , 그들과 당신에게 똑같이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요한은, "나는 너희 형제요 동참하는 자라."고 말했다. 오늘날 사역자들이 형제요 동참하는 자와 같은 자세를 같게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라.
바울이 말했듯이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 우리는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한 백성이다.
무리가 바울 앞에 제사하려고 할 때 바울은 자기 옷을 찢으면서 말했다,"여러분 나도 당신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신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우리는 모두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을 생각하시고 사랑하신다. 그리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수가 없고,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나님을 눈 가람만 하여 적당히 대할 수도 없다.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신다. 하나님께 압력을 넣을 수도 없고 강제로 권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바라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 애를 많이 쓴다. 하나님께 당신이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똑같이 대하시고 똑같이 사랑하신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계 1:9). 예수그리스도의 참음이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야고보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기록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주 여호와를 기다리는 인내를 가지라고 격려했다. 바울 역시 인내하라고, 곧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계 1:9) 박해-로마제국하의 첫 번째 대 박해는 네로의 정권 때에 있었다.

그 때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했다. 바울과 베드로도 네로의 박해 때에 죽었다. 그 후 도미시안(A. D81-96) 황제 때 두 번째 박해가 일어났다.
약 4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죽어갔다.
요한이 밧모섬으로 귀향간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그곳에서 요한은 여호와의 이상을 받은 것이다.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해서 밧모섬으로 추방되었다.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끓는 기름 속에 던져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한은 굴하지 않았기 ? 때문에 에게해에 있는 에베소에서 약32마일(약51.2Km)떨어진 소아시아 해안의 바위가 많고 험준한 작은 밧모섬으로 보내어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밧모섬으로 추방되었다.
에베소 교회에 있는 박해와 그 소란함으로부터 덜어진 조용한 장소로 그를 옮기신 것이다.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도 밧모섬에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요한은 밧모섬 귀향 후에 (A. D96)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

요한 계시록 1:10 상반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계 1:10 상반절).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주일날에 그 계시가 임했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한 주간의 여덟 번째 날이며 첫 번째 날인 주일을 주의 날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 도주일 이었고 ,교회가 함께 모였던 날도 주일이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명하기를 매 주일 첫날에 함께 모였을 때 연보를 내어, 자기가 갈 때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다. 사도행전에 보면 기독교인들은 한 주일의 첫날에 함께 모여서 떡을 때었다.30) 초대 교회사에서는 주일을 주의 날이라 불렀다.
안식교인들은 이날은 콘스탄틴 황제가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도록 잘못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콘스탄틴 대제보다2세기 앞선 터툴리 안은 주일이 교회가 성찬식을 가지는 유일한 날이었다고 썼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그 날에 부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그의 논리이고 따라서 절대적인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주일의 첫날은 교회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께 예배하는 날로 따로 구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은 주일날에 자기가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방 -헬라어 성경에 의거해서 요한 계시록 1:10 말씀을 번역하면 "주의 날에 "라기 보다는 "주의 날 안으로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한을 시간의 방으로 데려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요한을 마지막 시대로 옮겨가게 하셨다.
거기에서 요한은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전쟁과 심판들을 직접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미래의 주의 날로 옮기셨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가 정말로 거기 있는 것처럼 이러한 사건들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변화 산에 데리고 가셨을 때도 일종의 시간의 방으로 데리고 가신 것이다. 이에 앞서 주님은 말씀 하셨다,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엿새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다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그 제자들 앞에서 변화 되셨다. 그의 옷은 빛과 같이 희어지고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났다. 제자들은 하나님나라의 일에 대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는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다.
무슨 일인가? 그 제자들은 시간의 방에 들어가서 미래를 본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장차 영광을 보았다.

주님은 모세, 엘리야 와 함께 왕국시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계셨다. 어쩌면 요한도 이렇게 주님에게 이끌려 시간의 방으로 들어갔었는지 도 모른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므로 요한을 잠시 영원의 차원으로 이끌어, 미래의 마지막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보여주시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미 보셔서 알고 계신다. 그는 전지 하시므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다음 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발생할지, 어디서 일어날지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우리들의 삶은 마치 영화의 재 상영과 같다. 따라서 요한이 장차 있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미리 보았을 가능성도 많다. 저자인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본문에서 의미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주의 날 안으로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

요한 계시록 1:10 하반절-16

요한의 이상은 계속된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이라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서, 서머나, 버가모,두아디라,사데,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 (계 1:10하반절-12)"일곱 금 촛대는 광야에서의 성 막을 연상시킨다.32) 성 막의 성소 안에 비취 된 거룩한 기구들 가운데 금 촛대가 있는데 , 이를 "황금 메노라 " 라고 부른다.
그것은 본 줄기에서 가지가 셋씩 양쪽으로 나와 있는 나뭇가지 모양의 금 촛대로, 성 막의 기구 가운데 하나이다. 이 일곱 가지에는 촛대로 쓰이는 작은 등잔들이 달려 있고, 이 촛대는 성소를 밝혀주고 있다. 이 일곱 금 촛대는 이스라엘백성이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는데, 곧 세상에 하나님의 빛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교회에 적용시키면 일곱 금 촛대는 세상에 있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빛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3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계 1:13) 일곱 개의 금 촛대 사이를 걷고 계신 이는 인자로 표현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셨고, 인자라고도 하셨다. 인자란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시 오시리라고 예언한 다니엘의 예언에서도 찻 아 볼 수 있다.34) 그리고 나서 요한은 그의 옷차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 1 :13-16).주님의 얼굴은 해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빛 낳으며, 주님은 촛대 사이를 걷고 계셨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것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은 여기에서 주님의 교회 사이에서 계시는 주님을 뵌 것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말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시고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만족시키신다.
주님은 지금도 일곱 개의 금 촛대 -모든 세대의 주님의 교회 -사이에 계신다. 요한 은 주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개의별을 보았다. 일곱별은 이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다. (참조, 계 1:20). 이 부분은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서술적으로 묘사한 바 있다.

요한 계시록 1:13-16까지의 말씀은 고난받는 구세주의 모습이 아니라 하늘에서 영광 중에 계시는 높으신 여호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은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보고 그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을 서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17장에서,"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다.
주님은 그 영광이 다시 되돌려져서 우리가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바라신 것이다 . 여기에서 요한은 우리가 나중에 뵙게 될 그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

주님의 얼굴은 한낮의 태양과 같이 빛나고 있고 그의 머리와 털은 양털 같고 눈처럼 희다. 눈은 불꽃같고 말은 풀무에 단련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으며 그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요한 계시록 1:17-18
주님을 볼 때 요한은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얻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계 1:17)
요한은 모든 환상에 완전히 앞도 되었고, 또 아주 놀라운 환상을 받은 다니엘도 항상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졌다. 다니엘도 "나 다니엘이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영적 차원을 거치고 영적인 계시를 받고 난 후 실제로 앓았다. 사도 바울도 여러 계시를 받는 것이 지극히 크므로 육체에 가시를 받았다고 했다.
여기에서 요한은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 .요한 계시록을 읽어 나가다 보면 요한은 여러 번 엎드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경험을 겪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영적인 능력의 체험이다. 예수님은 오른손을 요한에게 얻으시고 말씀 하셨다,
"두려워 말라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느니"(계 1:17-18)
예수님께서 음부와 사망을 이기셨다. 그는 승리하셨다 .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이는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은,"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라고 말씀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기억하라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 갇힌 자들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이미 죽어 무덤과 음부에 갇힌 자들에 대해서는,"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음부를 열어 갇혀 있던 영혼들을 놓아 주셨다.

사도 바울은 위로 올라가신 주님이 먼저 땅 아래 곳으로 내려오신 동일한 분이시라고 말했다. 주님은 위로 올라가실 때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으셨다.43) 베드로는 예수님이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음부를 열어 아브라함과 믿음을 가지고 메시아의 오심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자들을 구하셨다.

요한 계시록 1:19-20
요한 계시록의 열쇠-요한 계시록의 열쇠가 여기서 발견된다. 여호와께서 요한에게 말씀 하셨다,"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 1:19)'장차'라는 말은 헬라어로 'metatauta'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일 후에 '라는 의미이다.
이 명령으로 인해서 요한 계시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1)요한이 본 것으로 요한 계시록1장에 있는 그리스도의 환상,이제 있는 일로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의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 이러한 일들이"있은 후(meta tauta)"에 될 일로 요한이 보는 미래의 사건들이다 .
요한 계시록 4장이 'meta tauta',즉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무슨 일 후에 라는 말인가? 교회의 일이 완성되고 난 후에 라는 말이다.
"내가 보니 하늘에 열인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후에(meta tauta)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 4:1부터는 미래에 관한 일들이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임무가 이 세상에서 다 이루어진 후에 일어날 일들이다. 다음 양식을 따르면 요한 계시록의 구분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이 본 것, 현재 있는 일, 이 일 후에 일어날 일들로써 나눌 수가 있다. 예수님은 요한이 본 환상을 설명하신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

'사자(angels)'는 '전달자(messengers)'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사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초자연적인 존재를 일 걷는다. 그러나 이것의 문 자적인 의미를 '전달자'이다.
그러므로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전달자들' 곧 일곱 교회의 사역자 들을 말한다.

"네가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 1:20).'일곱 교회'는 완전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완전한 교회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메시지를 세 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첫째는, 이 메시지가 아시아의 일곱 교회 앞으로 쓰여진 것이고 ,바로 그 당시의 교회가 당면한 문 재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지엽적인 적용).둘째는, 이 메시지가 교회사의 일곱 시기를 가리키고 있다는 역사적인 적용이다.
셋째는, 이 메시지가 교회에게 주는 보편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실재로 이 메시지들은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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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메시지
요한 계시록 2:1-3
에배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계 2:1).

일곱 교회에 보내는 모든 메시지에는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 메시지들이 모두 친히 보여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고 있으며, 요한 계시록 1장의 환상 가운데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이는 교회의 사자를 붙잡고 교회 사이에 다니시는 예수님께서 보내는 메시지이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에게 그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네 행위를 알고 "(계 2:2).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일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 이면에 있는 동기까지도 알고 계신다. 어떤 행위는 다 타버릴 것이다 .그것도 헛된 영광(남에게 보이려고)을 구하려고 하는 행위인데 ,그런 일에 대해서 주님은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 -그 행위의 종류와 태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 (계 2:23,;20:13).
예수님은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계 2:2).
초대 교회 때에 이 교회와 저 교회를 순회하는 목회자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무리가 있었는데 , 첫째는 사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사도임과 그 사도의 귄위를 주장했다. ) 또 다른 한 부류는 선지자들로써 개체 교회를 방문하며 목회를 하는 자 들이 있었다.

이 당시 여행을 하며 다니는 이 목회자들은 거짓선지자 들 때문에 교회의 문제 거리가 되었다. 거짓선지자들은 교회에 가서 말을 함부로 하였다.
이런 일에 대비해서 거짓선지자를 만났을 때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알아내는 방법을 교회에 경고해 주는 소책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와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큰 칠면조 요리를 준비하라!'"고 예언했다면 그는 그 칠면조 요리를 먹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사람이 그 칠면조요리를 먹는다면 거짓 예언자이다.
또는 그가 성령으로 당신에게 말하기를 자기에게 선물을 갖다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선지자이다. 순회하는 목회자들은 원래 이틀 간 유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 머무르면서 자꾸만 무언가를 뜯어내려고 한다면 그는 거짓선지자이다. 이러한 조언들도 순회하는 목회자들을 보호하여 계속활동 하도록 하고, 교회에서 금전상의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었다.
에베소 교인들도 자칭 사도라 부르지만 거짓사도였던 사람들을 잘 분별하였다.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주님도 잘 분별한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인 순결도 칭찬 하셨다.
에베소 교인들은 악한 것을 행하지 않았다 주님도 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 하셨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3)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활동적인 교회였다. 그들은 그 수고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인내하고 잘 분별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잘 해냈다.

요한계시록 2:4-5

처음사랑으로 돌아 오라. 하지만 주님은,"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신다.(계 2:4)

에베소 교회는 여전히 활동은 하고 있었으나 그 사랑을 잊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 움직이지 않았고 이제는 압력과 습관과 형식과 의식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의 성직자로서 봉사가 하나의 직업이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바울도,"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말했다.
바울이 강권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꾕과리가 되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일을 할수 있다. 교회에서 가장 열심 있고 부지런한 일꾼이 될 수도 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쉬지 않고 몰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혹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나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많은 사람들은, "저런, 당신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셨군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버리는 것이다 .만일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을 다시 찾을 곳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할 만한 장소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언가를 내버렸다면 그것을 다시 찾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시 발견하는 방법과 다시 찾아오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그것은 세 가지의 R이다."그러므로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Remember)"전에 가졌었던 그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라."회개하여 (Repent)"그리고 나서 반복하라(Repeat),곧"처음행위를 하라"처음사랑의 행위로 돌아 오라. 처음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라. 그 행위들은 사랑으로 유도되어 옮겨진다.
예수님께서는 대부분의 교회에 대하여,'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교회는 회개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주님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교회는 두 곳 뿐이었다.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 옮기리라"(계 2:5).회개하지 않고 처음사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신다. 그 자리가 어디인가?

그 자리는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촛대사이에 계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없는 교회에 나는 머무르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이다.
불행히도 오늘날 교회에는 당파, 분쟁, 분 열등으로 가득 차 있어 많은 경우에 촛대가 그 자리에서 옮겨져 있다. 교회에 가도 예수그리스도의 임재 하심과 그 능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는 당파 문제와 다른 모든 압력과 긴장 등을 느끼게 된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랑이 없는 교회에는 있지 않겠노라."고하셨다.

요한계시록2:6-7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니골라당'이란 헬라어의 'nikao laos'에서 온 말로'평신도 위에 제사장 교권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 교회는 영적인 서열을 세우는 것을 싫어했다. 주님도"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어떤 사람을 다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두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서 다른 어떤 사람을 거쳐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그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문을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어 놓으셨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기 전에 다른 누구를 거쳐가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다. 모든 교회에 대하여 주님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 내가 .....주신다."라고 말씀하셨다.
각 교회에는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다. 모든 교회마다, 심지어 타락한 교회일지라도 그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를 진실로 아는 이기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일을 주어 주어먹게 하리라."고 약속하였다. (계2:7).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을 수 있는 과실나무들을 주셨다. 특별한 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하나는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이고 , 또 하나는 생명나무인데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영원히 산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는 나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이 즉시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었을 법한데, 생명나무의 열매 대신에 선악과를 따먹어 버렸다. 왜 그들이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기 전에 선악과를 먼저 먹었을까? 아마도 선악을 아는 지식이 생명보다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선택권이 놓여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생명나무를 원한다면 그것을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악, 어려움, 질병들을 모두 아담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않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된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인해서 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지식적인 문제에 걸려있다.

그들은 지식을 자기의 신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성육신의 의미와 목적 ,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 속의 죽음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나무를 취하지 않는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좇아 내셨다.
그리고 다시 와서 생명나무 열매 마저 따먹고 죄지은 상태로 영생하지 못하도록 동산 위에 그룹들과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
실제로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 긍휼히 하나님이신 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으로만 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심판으로 잘못 생각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 하심으로 사람이 다시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람을 위해서 동산 입구에 그룹들을 세워서 지키게 하여 사람을 보호하셨던 것이다.

생명 나무는 하나님의 낙원동산 중앙에 있다. 이기는 자는 그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우리도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 에 베 소는 초대교회로써 요한 이 사망할 때까지 (약 A. D.99년)존재 했었던 사도 교회이다.
요한 이 요한 계시록을 저술할 시기만 해도 초대 교회에는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뜨거웠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주를 사랑함이 동력이 되어 어디든지 갔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로 온 세상을 두루 다니도록 강권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처음 사랑이 점점 식어 지기 시작했다.

요한계시록 2:8-9

서머나-역사적으로 보면 서머나는 에베소 뒤에 생긴 교회이다. 그 후로 2세기(2세기-4세기)동안 있었으며, 로마 정부의 잔학한 박해도 겪었다. 로마 정부가 기독교를 말살시키려 할 때 신앙을 지키고 순교한 사람도 약 6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측된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계2:8)'사자'라는 말이 교회의 감독을 가리킨다면 요한의 제자로 당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Polycarp)을 말한다.
그는 90대의 나이에 순교했다. 로마 정부는 90대의 폴리캅을 화형에 처해 죽였다. 폴리캅의 주위에 장작을 모으고 집행관은 말했다. "나도 당신 같은 늙은이가 이렇게 죽는 것은 보기 싫소 .당신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만 하면 우리는 당신을 놓아주겠소 .

그러면 당신은 남은 여생도 평화롭게 살수 있을 것이요 ."
이에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다,"난 80여 년 동안 나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섬겨왔다. 그 동안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나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 그러니 나도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불이 뜨거울 텐데" 집행관이 말했다.
"네가 당할 불보다는 뜨겁지 않을 것이다. " 라고 폴리캅이 말했다. 집행관은 장작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불꽃이 폴리캅의 주위에만 붙어 그의 몸을 하나도 상치 않았다. 이것을 보고 집행관은 창으로 폴리캅을 찔렀다. 쏟아져 나온 피로 불이 꺼졌다.
기독교인들은 폴리캅의 시체를 가져다가 기독교장례를 치러주었다. 교인들이 박해와 시련을 당해야 하고많은 순교자가 있는 교회에서 교회의 감독 마져 순교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초기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양육하고 목회하는 사람들보다 더 위에 있지 않았다. 그들은 양 무리와 함께 똑같이 시련과 고통을 나누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데 "(계2:8).

서머나 교회 사람들이 순교를 당해야만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을 일깨워 강조하신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죽음을 이긴 승리를 일깨워 주심으로 주님은 죽음을 직면한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신다. 서머나 교회에게 요한은 글로 전하고 있다.
"네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계2:9).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와는 대조적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우리는 부요하다"고 했으나 주님은, "너희는 궁핍하다."고 하셨다. 때때로 우리의 평가 기준과 주님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서머나 교회가 자기를 평가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궁핍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주님은,"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 라고 말씀 하셨다. "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지 아니하셨느냐."

"네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희라"(계2:9)초대 교회가 당한 박해는 대부분 유대인이 선동하고 부추긴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각 성에서 그를 대적하도록 선동하기도 했다. '유대인'이라는 말은 유대교를 따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국적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우리도 실상 변절하여 유대인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유대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회당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단의 희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너는 누구의 자손인지 아무도 모른다. "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말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너희는 나를 믿어야 하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나를 증거 하였기 때문이다. " 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또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는 너희아비의 행사를 하는 도다."라고 하셨다. 8)

요한계시록 2 :10-11

서머나 교회에서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계 2:10).
주님은 교회가 당할 모든 시련과 박해 뒤에는 사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 하실 때에도 우리를 실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하고 악한 행위 뒤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란을 받으리라."'십일'은 로마 정부가 행한 열 차례의 커다란 박해를 가리키는 말 같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네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나쁘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희개 하라고도 않으셨다. 서머나 교회는 핍박을 받아 깨끗하게 될 교회이다.
그들은 순교할 것이며 큰 환란을 당할 것이다 .환란을 결코 교회를 상치 못한다. 언제나 교회를 깨 끗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충성하라고 권고하신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생명의 면류관이 있고, 의의 면류관도 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 하리라"(계2:11).둘째 사망은 요한 계시록 20장에도 나와 있는데, 이는 온 세상이 (기독교인은 제외하고)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심판 앞에 서게 되는 때를 말한다.
이 때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주게 된다. 어린양의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봇물에 던 지워 지는데 이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성경에는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 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계20:6)라고 씌여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나라를 세우실 때, 사단은 천년동안 묶여 무져갱 속에 갇히게 된다. 그 천년동안 예수님은 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
이 때 교회는 왕과 제사장으로 주님과 함께 다스리신다. 천년이 지나면 사단은 잠깐 풀려나서 열 방을 속이려고 다시 세상을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사단은 큰 무리의 군대를 모아 그리스도를 무찌르고 예루살렘에서 그를 몰아내려고 한다. 때때로 교인들이 내게 묻는다,"천년이 다 끝날 때 제가 사단에게 속으면 어떻게 합니까?"그러면 나는 "결코 그럴리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 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당신은 새로운 육체가 될 것이고 따라서 그 때에는 결코 사단에게 현혹될 리가 없습니다.
천년왕국 마지막 때인 사탄이 잠깐 놓일 때에, 천년왕국 통치기간동안 강제적으로 의롭게만 살아온 자들에게 일시적인 믿음의 시련이 올 것이다.
마귀의 유혹에도 변함 없이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따를 것인지 혹은 아닌지를 시험하는 때이다. 놀랍게도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를 배반할 것이다.

요한 계시록 2:12-17

버가모-"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버가모 시는 우상 신을 관능적으로 숭배하던 도시였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계 2:13).이방 우상 숭배가 극심한 버가모 에서도 충성스런 남은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끝가지 잡고 있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계2:13)
예수님께서는 이방 세계에서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교회의 일원이었던 안디바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버가모 교회의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신다. "그러나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2:14)
이방의 우상 숭배는 보통 가장 지독한 관행으로 표시된다. 이 교신 전에는 여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들은 실재로는 매춘부 였으며, 대부분의 이방 우상 신전의 재정은 매춘으로 충당되었다. 종교의식 가운데는 이 여 제사장들과의 성적인 난 행도 있었다.
아시아의 버가모 지역에 있는 영지주의자들은 모든 물질적인 것은 죄악시하였다. 하나님은 물질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육체에는 무엇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나님은 죄 많은 육체에는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오로지 여러분의 영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영지주의 자들은 어떤 종류의 음탕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 서를 통해서 이러한 것을 경고한바 있다.
버가모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인이기 때문에 이미 은혜를 덧입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어찌 되었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은 현재 기독교 인 일지라도 영지주의자들은 이러한 이교도의식을 통해 예배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발람의 교훈이었다.

우상을 섬기고 행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이것은 제사장의 교권을 세우는 것이다. 주님은,"내가 이것을 미워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말씀은,"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는 것이었다. (계2:15-1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7)

'감추었던 만나'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이다. 주님은,"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라고 하셨다.12)
'흰 돌'은 실제로 인정 또는 승인을 나타내는 돌인데, 투표할 때 사용되었다. 흰 돌은 '찬성'을, 검은 돌은'반대'를 나타냈다.
오늘날에도 어떤 단체에서는 아직까지 이와 비슷한 용례를 채택하고 있다. 회원 신청자를 정회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결정할 때는 흰 공이나 검은 공을 투표함에 던지는 것이 그것인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검은 공을 던져 넣으면 그 신청자는 정회원이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흰 돌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다. 이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흰 돌 위에는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7)

두 가지 죄악이 교회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상 숭배와 제사장 교권 도입이다. 역사적으로 버가모 교회에서 A. D.316년 콘스탄틴 황제 하에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시작이었다.

요한계시록 2:18-22

두아디라-"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데." 성경에서 '주석'은 심판을 상징한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계2:18-19). 두아디라 교회는 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주위의 가장 활동적인 교회들 가운데 하나 였으며,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인내와 섬김, 이와 같이 훌륭한 특징들을 지닌 교회 였다.
그러나 주님은,"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 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 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계2:20).그 이세벨 제도는 교회의 우상을 들여와 영적인 간음을 하게 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행음을 회개 하고자 아니하는 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를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 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계2:21-22).교회가 앞으로 대 환란을 겪게 될까요?
나의 대답은 "그렇습니다. 한 부분의 교회가 대 환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다. 대 환란을 지나게 될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인데, 그 이유는 여자 이세벨의 교훈, 곧 영적 간음과 행음을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대 환란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회개치 아니한 두아디라 교회를 두고 말할 수 있다.

요한 계시록 2:23-29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 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2:23-29).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천국에서 다스리시는 권세를 주시고, 새벽 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아름다운 약속이다.
철 장은 왕국시대의 지배 형태를 나타낸다. 사람들은 선한 일만을 행하도록 강요될 것이며,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교회로서 그의 의를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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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메시지
요한 계시록3:1-6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 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1-3)

개신교는 살았다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어 있다. 개신교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비극적이다. 대다수의 목사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는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속죄 죽음도 믿지 않는다. 천국이나 지옥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실질적으로는 믿음을 부인하고 있다. 많은 개신교 교회는 단순한 사교 클럽이나 사교적인 집단과 비슷하다. 그들은 살아있는 이름을 같고 있으나 실제로는 죽어 있다. 주님께서는 그 남은 것들을 굳게 할 고 권고하신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신교개혁(종교개혁)에 대한 한 가지는 충분히 개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개신교들은 버가모 교회나 두아디라 교회가 많은 이방우상 종교의 관습 등을 계속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개신교는 여전히 유아 세례를 베풀고 있다. 아직도 개신교는 너무나 많은 이방 우상 종교의 상징들을 갓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이방우상 종교의 축제일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개혁은 불완전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서 너의 행위의 완전함을 발견하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기억하느냐?

그것을 굳게 하고 회개하라 네가 만일 일깨지 아니한다면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너희는 내가 어느 시간에 올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주님은 개신교 교회에게 주님의 재림을 경고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그들이 깨어있지 아니하면 주님 깨서 그들에게 도적같이 오실 것이며, 그들은 갑자기 놀라움으로 주를 맛 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이 오실 그 시간을 모르니 깨어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 날이 도적같이 올지라도 우리는 어두움 속에 속한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들이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올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다. "그러나 사데 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4-5).
생명 책에서 그 이름을 흐리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은 그대로를 의미하신다. 내가 이 책을 제하리라고 생각지 말라.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장에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그의 이름도 생명 책에서 제해질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계22:19). 나는 내 이름이 흐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라고 묻겠지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겠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3:6).

요한계시록 3:7-13

빌라델비아-빌라델비아 교회는 마지막날까지 하나님을 충실하게 믿은 믿음의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되도록 도우시기를 바란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아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 "(계3:7-8).
우리는 그렇게 능력이 있지는 못하다. 우리에게는 적은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 있는 적은 능력도 하나님께 감사하자."네가 내 말을 지키며."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여 그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기도록 도와 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도 않았고 그가 누구이신 지도 부인하지 않았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 회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네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계3:9).
그 나라가 임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교회를 사랑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 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계3:10).

이 말씀은 대 환란 때 하나님께서 신실한 믿음의 교회를 대 환란에서 면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누가복음 21장에는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 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계3:11-13).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우리는 왕국시대의 한 부분이 될 것이며 ,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요한 계시록 3:14-17

라오데게아-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지막 때의 타락한 교회이다.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데 "(계3:14)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참되고 충성스런 증인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란 헬라어로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의 근원이 되신다는 의미를 갖는다.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5)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곧 창조력이요 요한 계시록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하나님의 창조의 근본.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 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 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
그들이 미지근한 이유는 다음절에 나온다."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 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 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계 3:17).
유물주의를 의지한 그들은 미지근한 상태에 이르렀다."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두 가지를 섞으면 미지근한 상태가 된다.

"네 곤 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계3:17).참으로 대조적인 관점이다 .하나는 그들 라디오게아 교회가 자기 스스로를 보는 관점이고 , 다른 하나는 그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판단할 때에 그 기준을 사람의 표준에 맞추어서 판단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종종 우리 주위를 돌아보고 사람의 표준에 맞추어 우리 자신을 판단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준은 우리가 판단 받게 될 기준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아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기준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 .여러분 자신을 주님께 맞추어 보고 참된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까 를 생각해 보라. 만일 여러분이,"글쎄요 저는 척 스미스 목사님보다는 낫네요 "라고 말한다면 당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주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자기가 가진 의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의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히신 그 의 뿐이다. 믿음으로 얻은 그리스도의 의가 당신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요한계시록 3:18-22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 대해서 그것과 다른 견해를 갖고 계셨다."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요 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8-19).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영기지 말며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채찍질 받지 않는 다면 당신은 사생아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만을 꾸짖으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꾸짖으실 때 낙심하지 말아라. 오히려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그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신다면 징계하지도 않으신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 미지근함을 치료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미지근함을 치료하는 두 번째 방법은 열심을 내라는 것이다.

그런 미지근한 상태에서 벗어나라. 미지근함을 치료하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열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주님도 당신과 가장 가깝고, 깊고, 가장 친밀한 교제와 사귐을 갖기를 원하셔서 예수님 스스로가 초청을 요구하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높으신 하나님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보좌에서 다스리게 될 것이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계3:22)



요한계시록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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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재림(휴거)

요한계시록4:1
여기서부터는 요한 계시록의 세 번째 부분이다. 4장은 헬라어로'meta tauta(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4:1). 여기서부터는 땅에서의 교회 역사의 마지막이며 교회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이다. 마지막 네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예수님은 재림을 말씀 하셨다. 다시 오실 것을 교회에게 경고 하셨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대 환란을 면치 못하리라고 경고 하셨다.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 주님께서는 시험의 때에서 그들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일 후에"-교회가 이 땅에서 그 증거를 다 마친 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후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그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
교회는 7년 동안 하늘에 옮겨져 있을 것인데, 이 칠 년 동안 땅에는 대 환란이 있을 것이다. (교회의 예수 공중 재림을 맞는 일에 대한 주석을 더 참고하려면 본 저자의 "(Snatched Away!"를 보라) 교회의 증거 사역이 모두 마쳐지면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게 된다. 나팔소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기독교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울릴 것이다,
"이리로 돌아 오라!" 나는 "일어나 씻으라!"고 하는 나팔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고,"잠자리에 들라."고 하는 나팔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와서 먹으라!"그리고"돌격하라!"고 하는 나팔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리로 올라 오라"는 나팔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나 팔소리가 어떠한 종류의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들으면 곧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죽은 자들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니 "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에는 우리가 영원히 하늘나라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는 우리가"주님과 함께 있으리라고 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기독교인인 우리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와 절대로 떨어질 수가 없다.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우리도 이 세상에 다시 올 것이다. 그가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시면 우리도 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말하기를,"나는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토록 아무 할 일이 없이 손가락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원치 않는다. "고 한다.

중생 된 그리스도인들 도 그런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 대 환란이 있을 7년 동안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늘나라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에 다시 와서 통치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다시 와서 천년동안 제사장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 다음에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며 다스릴 것이다.

만일 주님이 나더러 구름 위에 앉아 손가락이나 만지작거리며 있으라고 명하시면, 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예비하신 일이 무엇이든지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기다릴 수가 없다.
그것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지나는 것보다 훨씬 더 흥분되고 놀라운 일이 라는 것을 확신한다. 나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당신네들은 늘 '머지 않아 곧 있을 쾌락 ' 또는'하늘에 있는 완전한 행복'같은 것만 얘기한다. 그보다는 '바로 지금'현재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이 영광스런 소망을 주시는 이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나는 하늘나라에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들이 무어라 해도 상관치 않고 하늘나라만을 바라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실마리이며 해결방안이다. 예수님 계신 곳에는 우리도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시는 데에는 6일이 걸렸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2천년 동안이나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쯤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 보라! 그런데도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가?
친구여, 당신이 원한다면 모든 것이 오염된 이 곳에 머물러 있어도 좋다.
그러나 나는 올라가겠다! 교회의 휴거는 요한 계시록 4:1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교회사가 완성된 후를 말한다. 요한 은 "위로 올라 오라 내가 너에게 이 일 후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 주겠다."고 말하는 나팔소리를 듣는다. 이제부터 요한 은 교회가 이 땅에서 떠난 후에 일어나게 될 일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4:2-7

하늘나라의 광경-"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2).
요한 은 왜 '성령에 감동하였었나 ? 그 이유는 혈과 육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이 보좌는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보좌이다.
요한 이 하나님을 뵈었을 때 하나님의 형체를 본 것은 아니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계4:3)벽옥은 다이야몬드처럼 생긴 투명한 수정석으로 자주 빛을 띠고 있다. 홍보석은 선홍색이다. 그리고 홍보석은 구약시대에 대 제사장이 흉패에 붙였던 첫 번째 돌이고 ,벽옥은 마지막에 붙였던 돌이다.5)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4:3).

요한 은 높으신 곳 큰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뵈었다.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었을까! 그는 투명한 수정석으로 선홍빛이 나는 자주 빛의 찬란한 벽옥 과 홍 보석처럼 빛나는 하나님을 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를 둘러싼 에메랄드빛의 녹색무지개도 보았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킹 제임스 번역 성경에서 '자리(seats)'로 옮겨진 단어는 헬라어로 '보좌(throues)'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4:4). 이십 사 명의 장로들이 실제로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고 믿는 성경 해석가 들이 많이 있다.
이십 사 장로들은 요한 계시록19:8에서 성도들이 그러했듯이 하얀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의 의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십 사 장로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다. 교회인 우리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았는데, 그것은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다. 많은 성경 해석가 들은 장로들이 보좌에 있는 교회를 나타내며, 그들이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본다. 이것은 매우 그럴듯한 해석이다.

또 다른 가능한 해석이 이십 사 장로들은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는데,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대표들과 신약시대의 열두 사도들이다. 어쩌면 천사나 스랍과 같은 피조물 일수도 있다.
아니면 하나님보좌 주위의 이십 사 보좌에 앉은 이 특별한 일을 위해서 지어진 존재들일수도 있다. 우리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4:5).예수 그리스도께 임한 성령의 일곱 가지 사역을 기록한 사11:2을 다시 한번 보자 (참조, 계1:4주석).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계4:6) 네 생물은 야생동물이나 우둔한 동물 같은 것은 아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창조하신 존재들인데, 에스겔1장과 10장을 비교해 보면,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스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 생물은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계4:6-7).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4복음서의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라고도 본다.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유다 족속의 사자로 나타내고 있다.
마가복음에는 고통받는 종을 나타내는 동물로 송아지, 누가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로 나타내고 있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성을 상징하는 독수리로 나타내고 있다.

요한 계시록 4:8-11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 낮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 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시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지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 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8-11)

여기에는 하늘나라의 영광이 전개된다. 요한 계시록 4장을 자세히 잘 읽고 그것을 마음속에 자세히 잘 간직하라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 대도시에 처음 나온 시골뜨기처럼 주위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사람들에게 "저게 뭐지요 ?"하고 물어보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녹 보석 같은 무지개로 둘러싸인 보좌 위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이십 사 장로들의 보좌도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거룩하심을 쉬지 않고 찬양하는 스랍 들도 볼 것이다. 스랍 들이 이렇게 찬양할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위로 엎드려(지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은 그와 그의 기쁘신 뜻대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좋든 싫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만드셨다. "그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곤란하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당신은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영적인 진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부족한 부분이 모두 채워짐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방황하여 무언가를 더 이루려고 하지만 결코 이루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창조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때에 의미 있고 실현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6) 하나님을 꾸준히 찾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부족을 채우는 길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찾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그 목적을 이룰 때에 우리는 가장 만족스럽고 온전한 삶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 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느니라." 만물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대로 지으심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려 든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원한다면 그 문제에 대해서 한바탕 논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데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은 현명한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벽을 통과하기 위해서 그 벽과 싸울 수는 없다. 원한다면 벽에 부딪쳐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우연히도 그 벽 속에 무엇이 있는 지를 알게 되었다.
그 속에 철 막대기를 접어 넣고 시멘트로 채우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하는 데로 한다면, 결국 당신 자신만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벽을 한 조각이라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벽이 당신의 피로 물들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벽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싸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만 고통을 당하게 될 뿐이다.
하나님과 싸워봐야 당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는 당신이 깰 때요, 하나님과 싸움을 중단해야 할 때이다.



요한계시록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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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소유하고 있나?

요한계시록 5 :1-7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5:1).킹 제임스 성경 번역에서 '책(book)'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두루마리(scroll)'를 옮긴 말이다."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5:2-4).

성부 하나님께서 보좌 위에 앉아 계시고 그의 오른손에는 책이 있다. 책은 안팎으로 쓰여져 있고 일곱 인으로 봉해있다. 힘있는 한 천사가 큰소리로 외친다,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늘과 땅에 그 책을 능히 펼 자가 보이지 않자 요한 은 큰소리로 슬피 울기 시작한다. 책은 무엇이고 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책은 틀림없이 땅의 권리 증서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지으시고 그 땅을 인간에게 주셨는데, 그 때 인간은 에덴 동산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인간을 에덴에 두셔서 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그 동산을 지켜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가지를 금하셨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와서 하와를 유혹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고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을 속이고 유혹했던 사탄에게 자기들이 가진 땅의 권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3)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먹지 말라고 금하신 열매를 먹는 것)은 두 가지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먼저 하나님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불순종의 행위였으며, 사탄에게는 자기를 복종시킨 순종의 행위였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땅에 대한 권리를 빼앗겼다. 땅의 권리증서는 사탄에게로 넘어갔고 세상은 사탄의 소유가 되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속하러 오셨다.
다시 말해서'밭(field)'을 사려고 오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 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4) 밭에 있는 '보화'는 교회이다.
예수님은 땅을 사시려고 돌아가셨다. 처음에 세상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인간에게 주셨고, 다시 인간은 세상을 사탄에게 빼앗겼으며, 사탄은 그 후로 세상의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오시자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천하만국은 나의 것이니 내가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탄은 땅의 모든 나라를 자기 것이라고 말했고, 예수가 지기에게 절하고 경배하기만 하면, 그것을 예수그리스도에게 넘겨줄 권세도 있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그러한 주장을 꾸짖지 않으셨다. 그것은 타당한 주장이었다. 그때 세상 나라들은 모두 사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기아, 굶주림의 문제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전쟁과 범죄 문제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그리고 기형아들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전쟁과 범죄 문제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
이러한 문제들은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볼 수 없고 사탄의 명령만을 본다. 사탄은 세상의 군주이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 그리고 사도 바울은 사탄을 "이 세상의 신"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사탄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그의 진리를 알게 하셔서 우리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예수님은 세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구속시키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그 구속의 값을 치르셨다. 금이나 은 같은 썩어질 것으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귀하신 보혈로 우리를 대 속 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을 사셨지만 그것을 소유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도록 두셨으나 우리는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는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사셨으나 아직 그 권리 증서를 갖고 자신이 그 땅을 샀노라고 주장하지는 않으셨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 그는 곧 오실 것이다.
행위의 친구-유대인에게는 한가지 아주 재미있는 법이 있는데 그것은 재산 몰수 법이다 .만일 당신이 유대인인데 당신 재산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면, 그 재산은 6년 동안 새 주인에게 있게된다. 7년째 되는 해에 당신이 봉해진 증서의 두루마리에 씌여 있는 의무를 모두 이행할 수 있게되면 그 재산을 도로 반납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재산을 갚을 능력이 당신에게 없다면, 유대인의 법에 의해 당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혈족이 당신을 대신해서 그 재산을 갚을 친척을 가리켜 히브리말로 '고엘(goel)'또는 '근친 구속자' 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7년째 되는 해에 그 가족소유를 갚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 재산을 다른 새 가족으로 돌아가서 소유권은 영원히 바뀌게 된다.
그러나 다시 갚을 기간이 지나가기 전이나, 그리고 본인이나 '근친 구속자'가 문서의 요구를 다 이 행할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는, 그 재산의 소유권을 결코 잃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그 재산에 대한 돈을 지불하기를 원한다면, 성문에서 그 마을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그 앞에서 인봉한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인봉을 떼고 , 그 문서 속에 요구 사항을 모두 이행할 때에 팔렸던 그 재산을 다시 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당신이 만일 종으로 팔렸다면 6년 동안은 종살이를 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7년째는 종에서 자유 함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구속의 법인 것이다. -해방되는 법이다.

이 법은 심오한 뜻이 있다. 왜냐하면 6,000년 전에 죄의 종으로 팔렸었다. 구속받을 권리의 기간이 곧 끝이 날 무렵이다.
사탄은 이 지구를 약 6,000년 동안 소유해 왔고, 우리는 곧7,000년 시기로 들어갈 무렵에 놓여있다. 이 세상에서는 이제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의 통치가 곧 시작될 것이며, 잃었던 세상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보혈의 피로 다시 구속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 정확히 6,000년이 끝이 날 것인지 여러 가지 계산을 해 왔지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은 끝이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그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늘나라 장면에서 계시록5장 이 두루마리는 '지구의 차압문서'이다. 때는 왔고 6,000년이란 만기가 다가왔다..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이 책의 인 봉을 떼기에 합당하냐?"누가 사탄으로부터 이 세상을 다시 구속할 수 있으랴 ? 아무도 인 봉을 뗄만한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지구는커녕 자기 자신도 구속할 능력이 없다.

요한은 그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아 크게 울었다. 왜? 이 책을 펴서 계약한 것을 갚지 못하면, 이 세상은 사탄의 능력과 통치 속으로 영원히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요한의 마음에 생각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보면, 사람들이 사탄의 권위에 순종하여 얼마나 많은 비극을 자아내고 있는가! 질병, 슬픔, 고통 등이 이로 인해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상태에서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이는 진실로 슬픈 일이다.11) 그러나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그 책과 그 일곱인 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5:5).

요한 이 돌아서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입곱 영이더라.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리라"(계5:6-7)
요한은 유다 족속의 시지 와 인 봉을 떼기 위해서 책을 취하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이 사자라기보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서 예수를 보았다.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이 하늘나라 영광 중에 계시는 주님께 아직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의 얼굴에서 상처의 흔적이 아직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잘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마리아도 부활하신 주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마 그의 얼굴이 상처로 인해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요한 이 예수님을 하늘나라에서 보았을 때도 그 모양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미래를 보면서 예언하기를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얻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에게 나타났느뇨?"라고 말함은, 이사야가 그리스도를 보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를 볼 때는 놀랄 것이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에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고통의 흔적이 아직도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왕에는 그 얼굴이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예수께서 심하게 맞으셨기 때문에 사람으로써 확인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당하신 고통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심히 무거워 진다. 우리가 그 흔적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우리의 뜨거운 마음이 예수께로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고통과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시러 다시 교회와 함께 영광 중에 오실 때에 그를 보게 될 것이다. 이사야는 사탄을 볼 때 놀라운 사실을 말하고 있다.
루시퍼를 볼 때 우리는,"이것이 세상에 모든 문제들을 일으킨 자며 나에게 그토록 주었던 문제의 인물이었다. "라는 것을 알 때에 또 놀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을 볼 때 놀라게 되는 것은 그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에 하나라고 하셨다.

요한 계시록 5:8-14

요한은 예수님을 보았는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보았다. 그는 보좌와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 사이에 계셨다. 예수님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을 집어든다. 그러자 곧이어 온 하늘에는 찬양과 승리의 외침이 시작된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 한 가득 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5:8)
당신은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라는 기도를 몇 번이나 드렸는가? 우리는 아직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도하라 시는 예수님의 첫 번째 부탁이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
우리의 첫 번째 기도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가장 바라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여기 요한 계시록 5장에서 우리의 기도는 금 대접에 담겨 하나님 앞에 바쳐지게된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의 때가 이른다. "새 노래를 노래하며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 봉을 때기에 합당 하 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 하사 각 족속의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 (계5:9-10)

이 노래를 잘 살펴 보라. 이 노래의 가사를 잘 읽어 보라. 누가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누가 이 노래를 예수그리스도께 노래 할 수 있겠는가?
오직 교회만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노래가 아니다. 그들은 열방에서 나온 자들이 아니다.
교회는 열방으로부터 빼내진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보혈로 값 주고 대속 하신 것이다.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를 주목하라. 교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실 때 하늘나라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의 기도가 향으로 드려질 때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린양은 .........합당 하시도다. " 이것은 이 땅에 대 환란을 가져오는 첫 번째 인이 때어지기 전의 일이다. 교회는 환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책을 가지고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다고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중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노래를 외우고 있다. 그 노래의 곡조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들으면 곧 따라 부를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구속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내가 또 보고 들으며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 만이요 천천이라"(계5:11).

천천 만만의 무리가 보좌 주위에 둘러서 있다. 얼마나 많은 무리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 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하리라"(계:12).
하늘과 천사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 지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수십 억 무리의 "합당하신 어린양이어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천국의 영광일 것이다. !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 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계5:13) 여기에서는 성부와 성자와 모든 피조물로부터 똑같은 영광과 경배를 받고 있다.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5:14).

이는 예수님께서 땅의 수유권리 증서인 책을 가지시고 구속사역을 마치시기 시작하는 영광스런 하늘나라의 광경이다. 그것은 그가 구속하셨음을 알리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만물이 고대하고 있는 바이다! 사도 바울 은,"피조물이 다 이제 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고 했다.
요한 계시록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그가 값 주고 사신 수유를 주장하고 계신다. 그는 책을 가지시고 권리상 당신의 소유를 다스리기 시작하신다.


요한계시록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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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한 소식
요한 계시록 6장에는 대 환란으로 알려진 7년 동안에 일어 나게될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대 환란은 요한 계시록 19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요한 계시록 6장에서 19장까지는 이 오래된 행성인 지구에 닥칠 공포, 멸망, 황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한계시록6:1-2

6장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일곱 인 봉을 때신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같이 말하되"(계6:1) 생물을'짐승(beast)'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짐승'이란 우둔한 동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살아있는 생물(living creatures)로서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스랍'이라 불리는 천사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매우 지적인 피조물이다.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계6:1-2).흰말을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흰말을 탄 자는 적 그리스도라고 본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교회를 공중재림에서 데리고 가실 때에는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막는 성령의 세력이 제거된다. 그리고 나서 영원한 죽음의 아들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세력은 오늘날 적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지 못 하게 하신다. 그러나 교회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더 이상 성령의 방해하는 세력이 없기 때문에 적 그리스도가 활동하게된다.

흰말을 탄 자가 나타난 후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따르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영광스러운 평화의 시대, 곧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천년 왕국시대가 따를 것이다.
그리고 이 흰말을 탄 자는 대 환란 시기의 초기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것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볼 수 없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라는 말은 완전한 정복을 말하는데, 적 그리스도가 세상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왕국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적 그리스도는 사탄으로부터 권세와 왕위와 나라들을 인도 받아서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한다. 이미 이 세상에서 적 그리스도의 표시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평화의 상징' 이 실제로는 적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그 표는 네로 황제에 기원하고 있는데 부숴 지고 거꾸로 된 십자가 표시이다.
나는 네로를 적 그리스도로 생각한다. (계17:10-11강해를 보라)그는 기독교를 대적하는 표로 이 평화의 상징을 만들었다.
권세 있는 사람이 일어나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사람은 평화 계획과 경제적 전략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자기 지배 하에 둘 것이다. 적 그리스도는 돈이 필요 없는 경제 체제를 마련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숫자를 받게 될 것이다. 그 숫자가 없이는 매매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게된다. 나중에는 손이나 이마에 숫자가 표시될 것이다. (계13:16). 2,000년 전에 성경은 이 제도를 말했다. 그런데 1974년 10월 미국캘리포니아 주의 몇몇 은행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라는 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은행계좌 번호만으로 요금청구서를 지불하고 모든 상거래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봉급지불수표도 확인할 필요가 없다. 은행이 자동적으로 고용주로부터 봉급을 받게되어 있다. 당신의 신용은 순전히 당신의 계좌 번호에 달려있다.
돈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위험한 필수품이다. 많은 공공기관에는 "오후7시 이후에는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안내문이 있다.
이제는 자동차휘발유를 사려해도 카드번호가 필요한 때이다. 다니엘은 적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민족과 언약을 맺어 이스라엘에게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을 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나면 적 그리스도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고 재건된 성전에서 자기의 우상을 세울 것이다. 이 우상에는 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전 세계는 그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명령을 받게된다. (계13장)

우리는 이 우상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계산하는 재정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이론화 할 수 있다. 신전에 앉아 있게될 그 우상은, 환상적인 컴퓨터 시스템으로 모든 교역도 이 컴퓨터에 의해서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은 (컴퓨터에서)숫자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 할 수 도 있겠다.
우리는 단지 그 일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까 하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일어날것이 라고 확신해야한다.
이 죄의 인간, 영원한 죽음의 아들인 적 그리스도는 나타날 것이다. 오늘날 땅을 다스라고 있는 사탄은 적 그리스도에게 넘겨줄 때까지, 이 세상은 사탄의 통치와 세력과 지배아래 놓여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6:3-4

"둘째 인을 떼실 때는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 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칼을 받았더라"(계 6:3-4 적 그리스도는 처음에는 평화적인 계획을 갖고 올 것이다. 자신을 "평화의 사람"으로 구축할 것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한동안 어느 정도의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처음 3년 반 동안 사람들은 이 사람이 이끄는 경제적인 번영과 평화로 기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평화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 그는 천재야 그는 신과 같은 존재야!"세상은 그를 경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 3)
두 번째로 전쟁의 붉은 말이 나오면 세상은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르게될 큰 전쟁과 충돌에 빠지게 된다.

요한 계시록 6:5-8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사이로서 나는 듯 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계 6:5-6).
'밀 한 되'는 약 1quart(곡식의 건량 단위로 1quart는 약 1.10l임. 역자주)이고, '한 데나리온'은 하루동안 일한 삯이다.
예수님은 품' 꾼을 얻어 포도 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집주인은 품꾼들과 하루의 품값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다. 4) 오늘날 하루 품값은 3만원-3만5천 원에 이른다.

그러므로 밀 한 되가 하루품값에 해당한다는 말은 식량의 부족이나 기근을 가리키는 것이다. 가격은 품목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밀 한 되가 약 3만원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사서 미래에 손해를 방지하려고 대비한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젓을 따져나간다면 끝까지 가장 가치있는 필수품은 시기량이다. 금이나 은은 먹을 수가 없다. 먹어도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그러니 현명해지고 싶으면 돈을 밀에 투자하라. 그러면 당신은 대 환란 때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때에 곡식과 바꿔 얻은 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땅에 극심한 기근이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림의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세상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미 어느 정도의 기근은 있다. 실제로 기근이 너무 심해서 우리가 빚을 되돌려 받을 수 도 없는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을 모두 도울 수는 없다.
우리에게도 그들에게 줄 충분한 양의 식량이 없기 때문에 극심한 기근이 든 사람들만을 도울 수 있을 뿐이다.
오늘날 현대 산업 기술 시대의 비극은 우리가 세상에 필요한 식량을 만들어 공급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해서 이러한 사태는 개선되기보다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전쟁 뒤에는 이 기근이 따른다.
지금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모든 식량 공급의 균형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이르게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2/3는 굶주린 상태로 살고 있다.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런데 전면적인 핵전쟁이 일어나 모든 식량 공급지인 땅이 오염되고 먹을 것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번 상상해 보라.
이 땅에 극심한 기근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계6:7-8).

네 번째 말을 탄 자가 오는데 그 말은 파리한 사망의 말이다. 전쟁(붉은말)과 기근(검은말), 사망(청황색)의 피리한 말이 지나면 세계인구의 1/4이 멸해 진다.
현재 세계의 인구는 약 50억에 이르니까 결국 12억 이상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말 탄 자들에게 멸해질 것이다. 그런 대 학살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요한 계시록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9-11).제단아래 있는 '영혼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이다. 그들은 대 환란 때에 순교 당한 영혼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죽인 자를 심판하여 달라고 부르짓고 있다. 제단아래 있는 이 영혼들은 교회나 교회의 순교자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미 하늘 나라로 옮겨져서 그의 피로 구속하신 어린양께 영광의 찬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5장).대 환란 때 순교 당한 이 영혼들은 계시록 7장에 가셔야 하늘나라로 올라 가게된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 순교자와 짐승의 표 -적 그리스도는 자기 우상을 세우고 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에서 말하기를 이 우상 앞에 경배하라고 할 것이다. (계13장).

이 둘에게는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다. (계13:15). 그렇지만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말아라 짐승이나 그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누구든지 그 우상에 절하는 사람은 소망이 없고 고난을 받을 것이다."(계 14:9-11)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절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 표를 받지 않고 옛 그리스도를 의지 할 것이다.

이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의 가진 증거를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원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그런 걱정은 좋은 것이다. 지금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교회가 하늘로 올리 워 졌다고 해도 구원의 기회는 그쳐진 것이 아니다. 대 환란 중에도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 있다.
교회가 들림 받은 후 예수그리스도를 반대하던 여러분의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그동안 증거 해 주었던 그 증거가 참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은 주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 때에도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실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려다가 순교한 이들은 흰옷을 입고 그 수가 차기까지, 다시 말해서 그들과 같이 죽임을 당할 사람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씀을 듣는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공중재림을 놓치면 그 다음 기회 때 구원을 얻어 제단아래 순교한 영혼으로 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 짐작에는 당신이 오늘날 교회를 도우시는 성령의 힘으로도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 어렵다면, 교회와 함께 성령 님이 떠나신 후에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교회가 옮기 워 지고 나면 당신은 혼자 힘으로 순교해야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의 교회에 계시는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들과 함께 대 환란 전에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겠는가!

요한계시록 6:12-14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달이 피 같이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 우매"(계6:12-14).유성이 쏟아지는 등 지구상에는 큰 격변의 사건이 발생하게된다.
미국 아리조나주의 Flagstaff와Winslow 사이에 있는 사막에는 거대한 운석 구멍이 있다. 운석하나는 놀랄만한 피해를 가져온다. 그런 운석이 로스엔젤레스 같은 지역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의 참화를 한번 상상해 보라. 1908년 시베리아에 운석하나가 떨어져 몇 마일에 이르는 숲을 뒤엎어 놓았다.
실제로 폭발과 피해가 너무나 엄청나서 물리학자들은 그 운석이 반 물질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론상 반 물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데로 반전 또는 전도된 물질이다. 물질은 전자를 갖고 있는 원자로 이루어지는데, 원자는 양성자의 핵 주위를 돌고 있다.

그런데 반 물질 이론에 의하면 반 물질의 원자에는 전자의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양성자가 있다. (또는 원자에서는 양성자가 전자의 핵 주위를 돌고 있다).이 이론에 의하면 물질과 반 물질이 만나면 엄청난 원자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1908년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참화는 반 물질의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이사야 선지자도 사도 요한과 똑같이 지각변동 사건을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이사야는 땅이 술에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하며 있던 자리에서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엘도 이와 비슷한 일을 기록했는데 그는 하늘의 권세가 흔들리고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도 재림 때 그러한 큰 지각변동 현상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

《충돌하는 천체》라고 하는 임마누엘 벨리코브스키 의 재미있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대 전재는 금성이 인간 역사시기에 태양계로 들어 왔다고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때에 금성이 지구에 매우 가까이 근접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갈 때 두 번째로 지구 가까이 지나갔다. 그 후에 금성은 태양계에서 오늘날과 같은 궤도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벨리코브스키는 모세 시대의 출애굽시기에 일어났던 사건들, 즉 물이 피로 변했을 때 애굽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재앙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사건들을 금성이 지구에 근접해서 그 결과 수많은 운석이 떨어 졌다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바로 그 때 지구가 궤도의 방향을 수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그 시기에 지구상에 일어났던 일들과 그 사건들을 공동으로 연구함으로써 금성이 그 시기에 실제로 지나갔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벨리코브스키가 한 행성이 태양계에 들어 올 때 발생할 사건들을 묘사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도 미래와 그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큰 지진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앞으로 별들의 위치에서 오는 지구에 대한 큰 자극으로 대 지진이 발발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태양이 어두워지고 하늘의 별똥들이 지구에 쏟아진다. 무시무시한 참화가 발생할 것이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한쪽으로 접혀 말리듯이 떠나가고 산과 섬도 모두 제자리에서 떠나간다. 임할 이것은 그 때에 지구상에 일어날 하나의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이루실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일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지구축의 이동 -앞에서 말한 지각변동 사건의 가능성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이론도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의 양극에 있는 지구축의 이동은 매 5,000년마다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머지않아 지구축의 이동이 있을 것이다.
현재 지구 축은 태양 쪽으로 23과 1/3도쯤 기울어져 있다. 이 경사로 인해서 지구에는 사계절이 생기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계절이 전과 같이 한결같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때 남극에는 숲이 있었다고 한다.
조사자들은 남극의 빙하 속 200피트 아래에서 목탄 침전물을 발견해 냈다. 북극지방과 시베리아는 전에 열대 지역이었었다.

맘모스 화석이 얼음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것은 과거의 언젠가 '순간냉동'과정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그 맘모스들의 소화계에서 고고학자들은 열대식물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과거의 지구는 현재보다 더 열대성이었으며 풀이 많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지구 축 이동은 전 지구상에 산들을 사라지게 하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미국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씨티 주위에는 원래 바다 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만이 남아 있다. 그랜드 캐년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많은 화석이 있다. 그 지역은 모두 대해 밑에 있던 부분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난번 지구 축 이동 때에 유타와 아리조나주를 덮고 있던 이 바다가 남쪽으로 범람하여 지금의 멕시코만을 형성했다고 보고 있다.
지구 축 변동이 일어나면 원래있던 모든 산들은 낮아져 없어지고 다른 부분들이 위로 솟아오르게 되며, 바다가 움직여 큰 해일이 일어날 것이다.

모든 지구의 지리적 구조와 표면은 심하게 변하게 된다. 지구의 지구 축 경사가 바뀌기 전에 지구는 마치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는 꼭대기처럼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경사가 바뀐다.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는 이미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 지구축의 이동이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한다.
그것은 아주 가능성이 있는 흥미로운 일이며 아마 이사야가 말한 그 일인지도 모른다. "땅이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하며 침망 같이 흔들리며 그 지리에서 떠나리니."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옮겨 태양의 빛을 모든 부분이 골고루 받게 하실 수도 있다.

지구가 현재의 축을 갖지 않는 다면 태양과 똑같은 관계를 갖게되므로 지구의 양극지방에 있는 빙하도 모두 녹아 내릴 것이다. 계속되는 열은 지구의 대기를 훨씬더 습하게 만들고 세계도처를 풀이 많은 열대성의 정글로 만들 것이다.
노아시대의 홍수도 지구 축 변동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일부 과학자들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지구 축 변동이라고 말한 때와 시기적으로도 매우 가깝다.
이는 홍수 사건 후에 인간의 수명이 짧아진 이유도 설명해 주고 있다. 대기가 급격하게 변하게 되면 자외선과 적외선 투과가 많아져서 결과적으로 노화 과정이 빨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과학적인 문제를 연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실제로 얼마나 기묘하고 놀라운 책인가를 깨닫는 것도 재미있다.

요한계시록 6:15-17

공산주위가 세계를 정복할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 6:15에는 여러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 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5-17).우리는 지금 은혜의 때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인내로 참고 계셨다.

그러나 주의 진노의 큰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에도 오랫동안 참으셔서 홍수를 내리기 전, 노아가 방주를 다 짖기까지 120년을 기다리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나타낸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라고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연약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은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말한다.
다윗은 부요한 악한 자들이 "여호와가 보시냐 여호와가 들으시냐 그가 세상을 심판하시겠느냐."고 말한다고 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산다.
그러나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이를 것이고 그 날은 여기에 남겨진 자들에게 비극의 날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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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두 무리
요한 계시록 6장 다음에는 잠시의 휴식으로 삽입구 적인 장이다. 그래서 7장에는 두루마리의 일곱 번 째 인이 떼어지기 전에 일어나는 몇 가지 다른 사건들이 소개되면서 이어오던 일곱 인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중단된다. 첫 번째 소개되는 것은 144000명의 무리이다.

요한계시록 7 :1-3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이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붙지 못하게 하더라"(계 7:1).
천사들이 바람을 붙잡아 불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만약 스모그를 다른 곳으로 빠지게 하는 바람이 없다면 나성이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당신은 얼마나 견딜 수 있겠는가? 단 몇 일이라도 약간의 바람이 불어야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천사들이 바람을 붙잡아 얼마동안 세상에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 하지 말라 하더라"(계7:2-3).
요한 계시록 8장에는 일곱 나팔 심판이 나온다. 그 때 요한 은 일곱 천사를 보는데 모두 각기 나팔을 갖고 있다.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 땅에 심판이 일어난다.
7장에서 요한 이 본 땅의 사방을 잡고 있는 네 천사들은 8장의 일곱 나팔 심판을 가져오는 그 일곱 천사 가운데 처음 네 천사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성경 구절로 인해 성경의 권위를 낮추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땅의 사방의 바람을 잡아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성경 기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그 당시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도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땅의 사방'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하지 않았다. 지구는 둥글다라고 했다.

몇 해 전에 미국 해병대에서는 본국의 해병대가 '세계의 사방'을 누비고 있다고 굉장히 자랑했었다. 이것은 미국 정부가 사고방식이 낡고 어리석다는 것을 말하는가? 그들은 여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모르는가? 요한 은 지구가 평평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구에는 동서남북이 있다. 그러므로 '땅의 사방'이란 오늘날에도 쓰여지고 있는 말인 것이다. 이 네 천사들은 땅에 심판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다섯 번째 천사가 등장하여 네 천사들의 행동을 막고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게된다.

요한계시록 7:4-8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계 7:4).많은 단체에서 자기들이 144000이라고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먼저 내가 말하고 십은 것은 내가 이스라엘자손의 유대민족 이었더라도 그들 144000가운데 한사람이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대 환란 동안에 남아있고 싶지 않다. 144000에 공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여러 단체들은 자기들이 바로 이 무리라고 주장하고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자기들이 144000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그들은 144000명의 충실한 증인의 무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다른 무언가를 해야 했다.
왜냐하면 144000명 이 되어도 그들이 오시리라 생각했던 주님은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 거하게 될 새로운 무리를 형성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땅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왕국시대의 자녀들이 낳는 것이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의 제일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하늘나라가 다 찼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계획의 허버트 암스트롱은 그 조직이 144000명이 라고 말했다.
그들이 당신에게 접근해 올 때 당신이 그들의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그들은 광야로 피하여야 할 그 때가 왔을 때 당신에게 전보를 보내 준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 환란 때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이렇게 영적으로 왜곡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 7:4의 '이스라엘'이 영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영적이라면 '144000'이라는 숫자도 영적인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영적인 숫자일수도 있다. 어쩌면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늘나라에 몇 명쯤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은 요한계시록 7:4절의 한 부분은 영적으로, 다른 한 부분은 문 자적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은 어째서 영적인 것과 문자적인 것을 섞어놓으셨을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일까? 나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믿는다.

나는 언젠가 144000명에 대해서 여호와의 증인과 애기해 본적이 있다. "아, 잠깐만요."나는 말했다. "당신이 그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된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좀 이상한 선생에게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단순히 그냥 읽기만 했다면 그렇게 이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는 대답하기를,"그렇지만 성경은 '저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저것'은 '이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아시죠 "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를 의미하지는 않으신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을 읽어보아라."이스라엘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 사 만 사천이니."이것은 그리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게는 매우 명확하게 들린다.

이스라엘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십 사만 사천. 이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다른 어떤 해석도 그것은 단지 해석이 될 뿐이다. 우리는 그 안에 담겨진 어떤 것을 읽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다보면 불필요한 많은 혼란에 빠진다. 자기들이 1440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스라엘백성을 다루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니엘의 70년의 '이래(7년 대 환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다.2) 예언된 이스라엘의 형편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예언의 개념을 쌓아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대 환란으로 알려져 있는 마지막 7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다루고 계신다는 것이다.
대 환난은 다니엘이 예언한 70년 가운데 마지막'이레'이며, '야곱의 환란의 때'로도 알려 져있다.

하나님은 지난날 이스라엘백성을 재앙에서 인 치셨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 하고 애굽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리라. 너희 장자를 구하려면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에 바르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되리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자녀의 집에 애굽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인을 치셨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을 두루 다니 실 때 문설주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에서는 모든 장자가 죽음을 당했다.
에스겔 9 장에도 백성에게 임할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그 땅에 일어나는 모든 가증한 일로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심판이 이르면 천사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남겨질 것이다 인 맞은 특별한 무리가 있다는 것 -
이것은 요한계시록 7:4에 있는 상황과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의미하고 계신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 했는지 말해 주세요 ."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혼란이 온다. 허버트 암스트롱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노라 할 것이고, 여호와의 증인들도 하나님은 이것을 저렇게 말씀하신다 할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교파도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신다 할 것이고, 하나님의 명백한 아들들이라는 교파도 제 나름대로 해석하여 말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다르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해석하려고 하는 우리들의 시도가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협잡을 하는 이런 상황을 예견하신 것처럼 매우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144000무리를 말씀하실 때 단순히 '이스라엘'이라고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열두 지파의 이름도 다 기록하셨다.

바울은 우리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 된 사람이라 했다.5)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영적인 지파를 말하지 않았다.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를 지파로 나누지 않는다. 열두지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브라함의 실제적 후손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자녀의 지파들은 영적인 자손이 아닌 아브라함의 실제적 후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무리를 영적으로 보고 그 수를 헤아려 보지만, 반면 하나님께서는 열두 지파에서 인 치심을 받은 사람들을 각각 12000명씩 부르고 계신다.
"유다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지파 중에서 일만 이천이요."그리고 다음 지파 들에서도 일만 이 천명씩 인을 맞았다. .:갓,아셀,납달리,므낫세,시므온,레위,잇사갈,스불론,요셉,베냐민(계 7:5-8). 열두지파는 성경에 언제나 나온다는 점도 흥미롭다. (12는 통치, 다스림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에는 나와 있지만 다른데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은 지파가 있다. 일반적인 관례에 따르면 레위 지파는 열두 지파 가운데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두 지파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첨가되어져 있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지만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즉 야곱의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파가 되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보면 열두지파 가운데 레위지파와 요셉지파는 빠지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가 들어가게 된다. 그른데 여기 요한 계시록 7장에 보면 단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빠지고 레위지파와 요셉지파가 들어가 있다.

단 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인 맞지 않고 레위지파와 요셉지파가 대신 열두지파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신명기에서 하나님은 가족이나 지파나 그 누구든지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면 그는 백성 가운데서 끓쳐 지리라고 말씀하셨다.
단지파와 에브라임지파는 여로보암이 세운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우상으로 두 개의 금송아지를 세운 지파였다. 이 지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끓쳐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두 지파는 인 맞지 않고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대 환란의 모든 시련을 당하고 겪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지파들의 인 맞은 자들은 바람이 그들을 사아치 못한다.
요한 계시록 9장에 보면 무저갱에서 나온 마귀들이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 즉 144000명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하나님의 심판에 남겨지게 된다. 요한 계시록 7장에는 단지파와 에브라임지파가 안나와 있지만,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고 에스겔서에 있는 대로 땅을 재분배하실 때에 가장 첫 분깃이 단지파에게로 돌아간다.

단지파는 우상 숭배에 빠져서 인치심을 받지 못했지만 가장먼저 땅을 분 깃으로 받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많이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은혜로 회복시키시고 다시 주신다. 주님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요한계시록 7:9-17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계 7:9). 수를 헤라릴 수 없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으로는 요한 계시록 6장에서 5번째 인에 나오는 '제단아래'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울면서 "대 주재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 까지 하시려 나이까."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고 했다. 그들은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여기 요한 계시록 7장에서는 6장에서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던 죽임을 당해야 할 사람들의 수가 완전히 채워졌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된다. 각 나라와 백성과 족속과 방언에서 나온 그들 무리는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의 앞에 서 있다. 나는 이 '큰 무리'가 교회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한 장로가 요한에게 물었다.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계 7:13).이 질문은 하늘나라에 있는 이들이 요한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은 대답했다,"당신이 알 리이다. " 만약 그 무리가 구약성경의 인물들이었다면 요한은 그들을 알았을 것이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변화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보고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무리가 교회였다면 요한은 하늘나라에 있는 그들을 쉽게 알아보았을 것이다. 요한은 이 즈음 하나님께서 이방나라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계신다는 교회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비밀은 사도 요한에게 드러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서 교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요한은 계시를 받을 때 밧모섬에 있었지만, 에베소에 있는 이방교회에서 목회를 했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한은 각 나라에서 나온,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이 큰 무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자 그 장로가 대답하여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이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4). 그 들은 대 환란 때에 순교한 자들이다.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적 그리스도와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지기들의 증거를 지키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큰 무리'가 하늘나라에 왔지만 교회와 같은 위치에 있지는 않다는 점을 주의하라."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 7:15).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어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반면에 교회는 섬기는 자로 하늘나라에 있지 않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리스도와 혼인 예식을 한다. 교회인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다스릴 것이다.
이 큰 무리는 큰 소리로 외쳐 말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계 7:10-11).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요한이 처음으로 본 하늘나라의 모습인 요한계시록4장에서 먼저 있었다. 스랍들이 하나님께 경배를 돌릴 때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던졌다.
여기에서는 이 큰 무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들이 받은 구원을 인하여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하자, 네 생물(스랍)과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한다.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 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하더라"(계 7:12).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 귀와 능력과 힘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음을 주목하라. (기근과 오염된 물로)대 환란을 오래 겪으면서 그들의 끔찍한 배고픔과 갈증을 경험했다.

그러나"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7:16)(요한 계시록 16장에는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사람들을 불로 태울 권세를 해에게 주신다)."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셈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니라"(계 7:17).



요한계시록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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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이제까지 여섯 개의 인을 거쳤고 이제 일곱 번째 인에 이르렀다. 일곱 번째 인에서는 일곱 나팔의 심판이 나오고, 나팔 심판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일곱 번째 인에 들어가 있다.

요한계시록 8:1-2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계 8:1).
고요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씌여진 해석도 많고 주석도 많다는 점이 재미있다. 우리는 하늘의 고요에 대해서 침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우리들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상이다.
고요함-그것은 하나님의 나팔심판이 이르기 전에 있는 폭풍전야의 두려움이다.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계 8:2). 어 떤 사람들은 이 일곱'천사'가 일곱 천 사장이라고도 한다.
성경에는 미가엘 만이 천 사장으로 언급되어있다. 미가엘은 주요한 천사가운데 하나이다. 가브리엘은 미가엘을 "군장중의 하나"라고 불렀다.

하나님 앞에 시위한 다른 한 천사는 가브리엘이다. 가브리엘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고 있던 사가랴에게 나타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부르도록 전한 천사다.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라고 말했을 때 이 천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들이다. 외경 가운데 에녹서에 보면 여섯 천사의 이름이 나와 있다. 그들의 이름은 라파엘,미가엘,가브리엘,우리엘,라쿠엘,사라기엘이다. 애녹서에는 그들을 신성한 천사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여섯 천사가 모두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 아닌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천사라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 8 :3-6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불기를 예비하더라"(계 8:3-6)
이것은 하늘나라의 광경이다. 거기에는 성도들의 기도들과 합해진 향이 있는 금 향로가 있다. 성경시대의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에 있는 비유들을 매우 친숙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다.
구약시대에 금 향로는 제사장이 성막으로 매일 들어가면서 사용했었다. 제사장은 제단에서 숯을 조금 떠서 이 작은 금 향로에 집어넣고 거기에다 향을 조금 첨가한다. 향로의 연기가 피어오르면 제사장은 성막에 들어가 재단 앞에서 이 금향로를 흔든다.
피어오르는 향로의 연기는 성도들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땅의 성막 제도와 관련된 이런 제사장의 행동들은 하늘나라의 일에 대한 모형 또는 본보기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 요한계시록 8:2-6에서는 이 땅에 있었던 성막이 모형이 되었던 하늘의 광경이 나와 있는 것이다.
천사가 제단에서 숯을 받아 그것을 성도들의 기도인 향과 합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8:7-11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어 피 석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사위더라"(계 8-7). 첫째 나팔심판은 땅과 땅에 있는 식물에 내려진다.
현재상황으로도 식량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나팔 심판으로 인해서 식량공급원인 땅이 삼분의 일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풀은 전멸되고 모든 수목의 삼분의 일도 전멸된다. 피가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져서 나무와 푸른 풀들은 타서 없어진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계 8:8-9).
바다로 떨어지는 불의 큰산이란 공해를 말하는 것 같다.지구는 오염되어 나무들은 죽어 갈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대기 중에 있는 핵폭발로 생긴 스트론튬90은 식물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생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핵무기의 대기 중 시험검사가 중단된 것이다. 그런데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부산물인 방사선 물질은 농작물과 땅에 막대한 손상을 입히게 될 것이다. 바다도 오염되어 삼분의 일 가량의 생물이 죽고, 삼분의 일 가량의 배가 파괴될 것이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계 8:10-11). 셋째 나팔심판은 깨끗한 물 공급원에 내려진다.
강들과 깨끗한 물 샘의 삼분의 일이 파괴된다. 깨끗한 물 공급원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고 난 후에 있을 갈 즈음 상상해 보라.

요한 계시록 8:12-13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외에도 세 천사가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계 8:12-13).

처음 네 천사들이 나팔을 불자 다른 한 천사가 나타나 하늘을 날아다니며 큰 소리로 말한다, "화, 화, 화."이것은 성경의 예언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표이다.
네 번째 천사는 해와 달을 어둡게 만들어 해와 달의 삼분의 일만이 빛이 날뿐이다. 이것은 처음 세 가지 나팔재앙의 결과로 대기 중에 일어난 일인 것 같다.
남태평양에 있는 화산섬인 Krakatua가 분출했을 때 그 섬은 완전히 폭발되었다. 섬이 폭발하자 바닷물은 분화구 속으로 마구 밀려들어갔다. 굉장한 격동이었다.

실제로 그 때의 폭발소리는 2000마일 밖에서도 들렸다. 그 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최소한 평방 1600km의 물질이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린 이 거대한 폭발로 인해서 그 후 2년 동안 지구의 일몰은 먼지로 뿌옇게 되었었다.
요즘 겨울에는 과테말라에 분화하고 있는 화산들 때문에 일몰의 광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 화산들 때문에 대기 중에는 재와 먼지가 가득하게 되어 매우 다채로운 일몰을 볼 수 있다. 땅과 바다 그리고 깨끗한 마실 물에 내려진 이 재앙들은 대기 중에서도 내려져서 해와 달을 어둡게 만들고 달을 핏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출처...한국강해설교연구원.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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