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인역(septuaginta)이란 무엇인가?
70인역 출애굽기 일부분
칠십인역을 라틴어로 70을 뜻하는 셉투어진타(septuaginta)라고 부른다. 셉투아진트(Septuagint)로도 불리며 LXX로 간략히 표기한다. 70인역은 기원전 300년경 번역되었거나 집필된 고대 그리스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헬라어로된 구약성경인 것이다. 그리스 정교회는 아직도 공식 전례 본문으로 인용한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은 맛소라 사본을 기본 텍스트로 삼아 번역한 것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구약성경의 순서는 맛소라가 아닌 70인 역을 따른다.
70인 역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아리스테아스 편지(the Letter of Aristeas)에 남겨져 있다. 이 편지는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BC 285-246)가 이집트를 다스릴 때 기록한 것이다. 당시 관리였던 아리스테아스라는 그리스 사람이 썼다. 편지 안에는 플로레미 2세의 요청으로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학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했다고 나온다. 아리스테아스라는 명칭은 유대인 사가인 요세푸스가 <아리스테아스의 책>이라 부름으로 시작되었다. 편지라는 용어는 4세기, 파리 Q사본에 최초로 적용되었다.
70인 역에 대한 이야기는 필로와 요세푸스, 탈무드와 교부들의 글에도 가끔씩 나타난다. 신약에서 인용된 구약은 70인 역을 따른다. 구약을 완전히 번역하기까지는 적어도 한 세기 이상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세기 전에는 완전히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구약의 율법서인 모세오경의 번역이 끝났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비평학적으로 볼때도 모세오경과 그 이후의 번역들은 질적으로 차이가 다르다. 모세오경은 거의 직역에 가까우며 맛소라 사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이후의 번역들은 의외로 조잡하고 허술하다. 학자들은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만지거나 여러사람이 조잡하게 번역한 것을 모은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용 자체가 신비스럽고 유대인들이 가진 유일신 사상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푸스가 인용한 것으로 보아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주전 직전에 유대인들의 인식 속에 보편적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에서 온 번역자들은 ‘파로스’라는 곳에 정착해 번역을 시작한다. 서로 70명이 넘는 번역자들은 각자 다른 곳에 격리 되어 72일 만에 번역을 완성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번역한 번역들을 비교한다. 그런데 모두가 일치했다고 한다. 필로는 70인 역의 번역을 대단히 칭송했으며 히브리어 성경과 다르지 않게 보았다.
*72명의 번역자는 12지파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한 6명씩을 모은 숫자이다.
제롬은 70인 역을 근거로하여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역을 번역했다. 제롬은 70인 역을 번역한 번역사들은 필로가 말한 것처럼 예언자들이 아니라 박학다식하고 언어에 능통한 번역사들일뿐이라고 말한다.
한 구도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목사님, 70인역에 대한 것이 궁금해요. 어떤 분들이 쓴 것인지요? 자주 인용하든데요. 70인역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칠십인역[七十人譯, Septuagint]은 한 마디로 말하면 가장 오래된 헬라어역 구약성경(삼상12:11 난외주, 70인역 역본에는 ‘바락’)을 말합니다.
칠십인역(70인역, 七十人譯) 성경은 라틴어의 70(셉투아진타, septuaginta)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셉투아진트"(Septuagint)로도 불리며 LXX로 간략히 표기합니다. "70인역"은 기원전 300년경에 번역되거나 집필된 고대 그리스어인 코이네 그리스어(헬라어)로 작성된 구약성경(또는 히브리성경)을 말합니다. 현재까지도 그리스 정교회에서 공식 전례 본문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국에 흩어져 사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인 학자 70여 명이 B.C.250~200년경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성경입니다. 즉, 헬라의 알렉산더 대제(Alexander, B.C.356-323년)가 국어정책을 수립하여 제국 내 피정복민들은 헬라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 정책에 따라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식민한 유대인들도 헬라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를 잊어버리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BC.250년 톨레미 2세(Ptolemy Philadephus, B.C.285-247년 애굽 왕으로 재위)는 유대 율법의 헬라어 번역본을 그가 자랑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소장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당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Eleazer)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6명씩 총 72명을 택하여 율법 두루마리와 함께 애굽으로 데려왔다. 이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마련된 72방에서, 72일간 자기가 맡은 율법서를 번역했고 이것을 하나로 모았는데, 이것을 '70인역'이라 부른다. 70인역은 그 후도 계속 번역되어 B.C.130년경 아퀼라(Aquila)에 의하여 구약성경의 헬라어역이 완성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2세기에 데오도션(Theodotion), 2세기 말 심마쿠스(Symmachus), 3세기 오리겐(Origen) 등에 의해 수정 작업이 계속되었다.
70인역은 성경의 본문연구에 큰 역할을 해왔는데 특히, 본문의 연대가 오래되었다는(히브리어의 맛소라 원전보다 10세기나 앞섬) 점에 그 중요성이 크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구약성경 인용도 대부분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이고, 또 현재 통용되는 구약성경의 구분도 70인역에 의한 것이다. 참고로, 초대교회는 대부분 헬라어를 사용하던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모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70인역 성경을 자기들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좀 더 자세하게 70인역의 배경과 유대교 경전과 70인역의 따른 정경과 그 특징을 알아보자.
70인역의 배경
우리는 70인역을 "Septuagint"(혹은 LXX)로 부른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유대고대사, 제 12권 2장은 바로 이 칠십인역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지 그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때는 BC323년 천하를 통일 시켰던 알렉산더 대제(Alexander the great)가 3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자 마땅히 후계자가 없는터라, 그가 정복했었던 영토들은 그의 네 명의 부하 장군들에 의해 나뉘어 다스려지게 된다. 애굽은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 367?283 BC), 수리아(혹은 시리아)는 셀류쿠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 358?281 BC)가, 알렉산더의 고향 마케도니아는 카산더(Cas-sander, 350 - 297 BC), 그리고 비두니아(Bithynia, 흑해 남단에 위치함)는 리시마쿠스(Lysima-chus, 360-281 BC)가 다스리게 되었다.
알렉산더 이후, 4왕조로 나뉘어질 때에 유대는 셀류쿠스 왕조(Seleucid Kingdom)에 지배를 받았었으나 BC 306년 경(?, 확실치 않음) 교활한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가 속임수를 동원해 가면서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겠다며 안식일의 약점을 이용해서 유대인들이 모두 안식을 하고 있을 때에 무력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안식일에 적들의 침공을 받으며 여러번 침략과 지배를 받아 왔었다. 결국 톨레미의 지배를 받게 된 예루살렘은 애굽의 지배를 다시 한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약 22년(혹은 23년)간 톨레미 소테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필라델푸스가 뒤를 이어 다스리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오늘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70인역의 역사가 시작된다. 톨레미 필라델푸스(Ptolemy II Philadelphus, 309?246 BC)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283-245 BC)하게 되자 그동안 포로로 잡아 와서 노예로 쓰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었던 그의 왕실 도서관 담당관(?, 요세푸스는 그가 데메트리우스 Demetrius라고 함)이 유대인들의 율법도 왕립 도서관에 소장하기 위해 직접 수집(번역)하자고 왕에게 제안을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왕의 절친이었던 아리스타이우스(Aristaeus)가 유대 율법서를 번역하기를 동조하면서, 그와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포로로 잡아온 유대인들과 노예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하면서 톨레미 필라델푸스의 율법 번역의 대역사가 시작되게 되었다. 톨레미 왕은 애굽에 잡혀와 있던 전 유대인들(약110,000명)을 돌려 보내고, 그들이 속해 있었던 애굽가정에는 그들의 몸값이 지불되게 하였다. 그리고 당시 유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대제사장 엘르아살(Eleazar)에게도 엄청난 양의 돈(100 달란트)과 제물들(금은 보석)을 친서와 함께 보내며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정확한 번역을 위해 (각 지파들 마다) 장로 6명씩을 선발하여 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같은 기쁜 소식들(유대인들의 귀환과 뜻밖의 선물들)을 받게 된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톨레미 왕의 친서를 받고 (제사장들을 포함한 장로/원로 회의를 거쳐) 흔쾌히 그리하겠노라고 애굽왕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각 지파들에거 선출되어 온 72명의 장로들과 율법서를 애굽으로 보낸다. 그들은 거기서 왕의 환대를 받게 되고 일주일 동안 계속되어지는 환영잔치에 참석하게 되고 또거기서 만난 여려 애굽의 학자들(혹은 철학자들)과 여러가지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톨레미 왕은 당시 율법서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애굽에서 왠 헬라어 번역 작업이냐고 궁금해 할 수도 있는데, 기억하시나요? 톨레미의 선조왕은 본래 헬라출신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왕 알렉산더 대왕이 이미 천하를 통일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유대 장로들(72명)의 작업은 72일만에 끝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Alan F Segal은 그의 책 [Life after death: a history of the afterlife in the religions of the West] p.363 에서 70인역(Sep-tuagint, 혹은 LXX)은 BC132 년에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필라델푸스가 죽고 난 후 약 100여년 후에 완성이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손에 Septuagint(70인역)이 들려질 수 있게 된 것이고, 복음의 예언된 말씀은 전세계에 전파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교 경전과 70인역의 따른 정경과 그 특징
유대교 경전과 70인역의 따른 정경과 그 특징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재 개신교회가 사용하는 성경은 66권입니다. 구약이 39권,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천주교)은 신약은 같지만 구약이 51권으로 개신교의 정경보다 12권이 더 많습니다. 또한 권별 순서도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체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Ⅰ. 정경의 의미
캐논(canon)은 우리말로 정경(正經)이라 불리는데, 법칙, 규범, 규칙, 척도라는 뜻을 가집니다.
정경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정경 외에 많은 다른 문서 자료들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정경이 형성된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히브리어 구약 정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순서이겠습니다.
Ⅱ. 유대교 경전과 70인역의 따른 정경과 그 특징
1. 유대교 성경
주후 90년에 얌니야(Jamnia)에서 열린 유대교 공의회에서 유대교 정경이 확정되었습니다.
확정될 당시 구약성경은 전부 24권이었고, 3분법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 세 부분은 율법서(토라 5권), 예언서(느비임 8권), 성문서(케투빔 11권)로서 구성되는 정
경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교 성경
1) 창세기 2) 출애굽기 3) 레위기 4) 민수기 5) 신명기 6) 여호수아 7) 사사기 8) 사무엘상·하 9) 열왕기상·하 10) 이사야 11) 예레미야 12) 에스겔 13) 호세아,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14) 시편 15) 잠언 16) 욥기 17) 룻기 18) 아가서 19) 전도서 20) 예레미야애가 21) 에스더 22) 다니엘 23) 에스라·느헤미야, 24)역대기상·하
정경에 목차에 의한 편집 경향을 보면, 첫째 다섯 권의 율법서(토라)는 어떤 정경의 목차에서도 앞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경의 목차에서도 율법서의 위치는 맨 먼저이고 순서도 창세기로부터 신명기까지 동일한 순서입니다. 이것은 율법서가 정경화의 과정에서 제일 먼저 정경으로 채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위치의 선행은 시간적, 역사적으로도 우선하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학적 의미로서도 율법이 예언과 지혜문학에 우선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율법서 다음에 오는 것은 4권의 전기 예언서입니다. 모세이후로부터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에 입증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떠나가는 시기까지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후기 예언서로서 대예언서 3권(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과 12소예언서는 한 권으로 취급했습니다. 12소선지는 언제나 맨 끝에 옵니다. 12소선지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숫자와 일치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의 순서는 시간상의 배열이고, 호세아, 요엘-말라기 순서도 시간상의 배열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성문서는 3부류로 구분됩니다. 이 세 부분 중에서도 성문서(케투빔)이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경에 편입되었습니다.
지혜 문서인 시편, 잠언, 욥기가 한 그룹인데 언제나 성문서의 맨 먼저 위치합니다, 특히 두번째 그룹은 '메길롯'(Megilloth, 다섯 두루마리)으로 알려진 룻기,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더는 .다섯 두루마리로서 매년 반복되는 축제(오순절, 유월절, 장막절, 예루살렘 성전 파괴일인 아빕월 9일, 부림절) 때에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늘 한 덩어리로 편집, 보관,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 그룹은 다니엘서와 역사서인 에스라-느헤미야와 역대기 상·하입니다. 이들은 정경의 최종 단계에서 편입된 책들로서 확고한 정경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감을 줍니다. 다니엘서는 예언적인 문서인데도 불구하고 지혜문학 부분에 삽입되었고, 역대기도 열왕기와 병행되는 역사 기록이므로 정경으로서 선택의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정경은 율법, 예언, 성문서 순으로 정경의 시간적 형성 단계에 따라 편집되었으며, 정경 24권에는 외경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2. 동방정교회 70인역(LXX)
70인역(LXX)은 주전 3세기 중반에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입니다. 초대교회의 다수를 차지한 이방인 기독교인들도 히브리어를 알지 못해 이 책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70인역(LXX)은 히브리어 정경 39권 외에 외경 6권이 포함한 45권이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주후 390-405년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의 불가타역(Vulgate)은 70인역을 계승하였습니다.
히브리 정경에 비하여 70인역은 외경 6권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70인역의 목록을 보면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 성경(70인역)
1) 창세기 2) 출애굽기 3) 레위기 4) 민수기 5) 신명기 6) 여호수아 7) 사사기
8) 룻기 9) 열왕기1서(사무엘상) 10) 열왕기 2서(사무엘하) 11) 열왕기3서(열왕기상)
12) 열왕기4서(열왕기하 13) 역대상 14) 역대하 15) 에스드라2서(에스라-느헤미야)
16) 에스더 17) 에스더 부록 18) 유딧 19) 토빗 20) 마카비1서 21) 마카비2서
22) 시편 23) 잠언 24) 전도서 25) 아가서 26) 욥기 27) 솔로몬의 지혜서
28) 벤시락(집회서) 29) 호세아 30) 아모스 31) 미가 32) 요엘 33) 오바댜 34) 요나
35) 나훔 36) 하박국 37) 스바냐 38) 학개 39) 스가랴 40) 말라기 41) 이사야
42) 예레미야 43) 예레미야애가 44) 에스겔 45) 다니엘
첫째로 70인역의 편집 순서와 우리 개역성경의 편집 순서는 70인역에 첨가된 외경을 빼면 같은 편집 순서입니다. 우리 성경은 외경을 제외한 70인역의 정경 순서와 같습니다. 이 편집순서는 율법서가 맨 처음에 오고, 성문서 에스라-느헤미야와 역대기가 같은 역사서 다음에 오고, 12소예언서, 대예언서 순으로 편집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 정경과 같이 정경화의 단계별로 편집된 것이 아니라 맨 나중에 정경이 된 성문서들이 중간에 왔습니다.즉 70인역의 편집 특징은 정경의 시간적 배열이 아니라 문학 유형별 편집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서는 어느 성경에서도 마찬가지로 맨 처음에 옵니다. 정경의 역사서 뒤에 외경의 역사서인 유딧, 토빗, 마카비1,2서가 옴으로써 1)문학양식별로 편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룻기도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사기 다음에 배열되고 있습니다. 역사서 다음에 성문서가 뒤 따라 오지만 다섯 두루마리는 히브리 정경과는 달리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룻기는 사사기 다음에,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 다음에, 에스더서는 에스드라2서 다음에 배열되어 있습니다. 예언서는 12소예언서가 먼저 오고 대예언서는 소예언서 다음에 나타납니다. 특이하게 다니엘서가 예언서로 취급되어 맨 마지막 순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초대 기독교인이 사용했던 70인역은 외경을 포함 시켰고 편집순서는 문학양식별로 율법서, 성문서, 예언서, 즉 과거, 현재와 미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외경이 정경으로 채택되어 인정된 책들은 유딧, 토빗, 마카비1,2서, 솔로몬의
지혜서 집회서 등 6권이다. 우리의 개역성경도 70인역 편집 순서와 유사하나 대소 예언서의 순서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 배경에서 정경이 형성되었습니다.
'성경 배경사! 형성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서의 사본과 역본들의 문제 (0) | 2024.11.29 |
---|---|
70인경과 알렉산드리아 (0) | 2024.11.29 |
성경의 구조 (0) | 2024.11.29 |
성경 66권 ‘배열 순서’가 중요한 이유. (0) | 2024.11.29 |
사해 사본 (0) | 202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