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신학 사상
생애- 어거스틴은 흑갈색 흑인(AD. 354-430). 북아프리카의 타가스데(Tagaste)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의 최대 신학자. 저술의 분량이나 사상의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흑인이었음은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초기 서방교회 신학을 형성한 라틴신학의 교부들이 대부분 북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이었다.
∎서방교회- 라틴어 사용 문화권. 북아프리카, 유럽지역교회
동방교회-헬라어 사용 문화권. 이스탄불 동쪽 소아시아 지역교회 동방정교회
고백(De Confessione)- 심각하고 진지한 영적 갈등과 실존적 번뇌의 사람이었다.
어머니 모니카의 경건한 성품을 이어받아 진리를 추구했고 영성에 갈급했다.
한 때 마니교에 심취했으며, 수사학과 신플라톤철학을 가르치는 명교수가 되었다.
한편 아버지의 세속 성품을 이어받아 방탕한 생활을 했다.
심지어 사생아 아데오다투스(Adeodatus)까지 낳았다.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에 응답 어거스틴이 밀라노 정원 뜰을 거닐면서 깊은 번뇌와 불안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의 동요소리가 들려왔다. ‘집어라’ ‘읽어라’ 그는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성경책이 보였다. 그 성경을 집어 들고 펴보니 우연히도 로마서 13:11-14절까지의 말씀이 나타났다.
이 말을 다 읽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다.
온갖 절망과 좌절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광명한 빛이 그의 마음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의 책 ‘고백’에서 ‘내 하나님, 내 영혼이 당신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 결국 그는 사제의 안수를 받고 Hippo 교구의 감독에 되었다. 성자(Saint)라는 칭호를 받기까지 경건과 신학의 깊은 차원에 이르렀다. 그의 별명은 ‘은총박사’(Doctor of Grace)였다.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은 명상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신학적 논쟁을 통해 무르익은 사상이다. ‘Living Theology’, 또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한 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이다. 그의 생애에는 크게 3가지 논쟁이 있어났다.
첫 번째는 마니교와의 논쟁이다(AD 386-395). 어거스틴의 초기작품들 가운데 대부분의 저술들은 마니교를 반박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이 마니교에 인도한 친구들이 마니교에 심취했다. 특별히 그 교리에 반박해야 될 책임을 느꼈다.
두 번째는 도나티스트와 논쟁이다.
세 번째는 펠라기우스 주의자들과의 논쟁이다. 어거스틴이 가장 중요한 신학 작품을 남겼다.
∎마니교와의 논쟁
1. 창조론
마니교는 영지주의적(Gnosticism) 이원론을 갖고 창조를 이해했다. 곧 우주와 역사를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영과 육의 대립과 갈등으로 이해했다. 창조 때부터 선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악까지도 만들어졌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우주와 역사가 열등신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영지주의적 창조론과 통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일원론(Monism)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아름다움 창조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악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은 무엇이며 악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악을 선의 부패(Privation), 타락(Lackness), 결핍(Absence), 상실(Corruption)로 해석했다. 그는 선한 천사 루시퍼(Lucifer)가 타락함으로써 선을 상실하고 악마가 되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본성(Substance)에 있어서는 악마라 할지라도 선하며 다만 선한 본성이 악하고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2. 자유의지론
마니교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선과 악의 싸움으로 역사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결정론(Determinism) 혹은 운명론(Fatalism)이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결정론 혹은 운명론을 비판하며 자유의지의 역할이 한 개인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함을 역설했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자유의지론’(AD. 395년)에서 인간은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인형이나 저항의 의지 없이 떨어지는 돌 같은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창조 시에 하나님이 인간을 인격체로 만드셨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의지가 자유롭지만 항상 선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자유의지는 선을 택할 수도, 악을 택할 수도, 죄를 지을 수도, 안 지을 수도 있는 중도적 선(Intermediate Good)이다. 아담 이후 자유의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악이 세상 역사에 들어온 것으로 해석한다. 결국 창조된 에덴동산의 아담은 죄 지을 가능성과 죄 안 지을 가능성을 함께 지닌 자유의지의 존재였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 죄 안 지을 가능성을 상실하고 죄 짓는 가능성밖에 안 남게 되었다.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죄 짓는 자유이다. 그래서 이를 갇혀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따라서 루터의 노예지론보다 어거스틴의 의지 이해는 덜 운명적이고 덜 결정론적이다. 거기에 비해 루터의 의지이해는 마니교적 요소가 짙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출처] 1. 성 어거스틴의 신학 사상|작성자 이종영 목사
∎역사관- 하나님의 도성에 관하여
1. 역사의 섭리와 인간의 역할
어거스틴은 인간의 인격(Person)이 사회 속에서 날마다 변화되고 연령이 자라면서 그의 인격도 성숙하고 발전하듯이 역사 속에 있는 인간존재의 인격의 변화와 자유의지의 역할에 따라서 역사는 발전하고 역사는 변화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역사 섭리와 계획과 예정을 말하면서도 결코 마니교적 역사 결정론(Determinism)이나 역사 운명론(Fatalism)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역사참여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2. 사랑의 역사
이 자유의지와 인격은 역사 속에서 사랑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기 사랑이 한 인격 속에서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도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벨이고 이스라엘이고 교회다. 자기 사랑은 가인이고 애굽, 바벨론, 이방인이고 로마제국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배되는 하나님의 도성은 아벨야곱, 이스라엘, 교회로 이어져 내려오고, 이기적 사랑으로 지배되는 세속 도성은 가인,에서,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로 이어져 내려온다. 결국 하나님의 도성(교회)은 세속 도성(로마) 속에서 순례를 걷고 있음을 밝힌다.
3. 목적론적 직선사관
어거스틴도 헬라의 회귀사관(Circulation)에 비판을 가하고 종말(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하나의 직선으로 역사를 이해한다. 어거스틴은 초월적 종말론을 믿을 뿐 아니라 신국의 내재성도 강조한다. 천년왕국이란 역사의 끝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교회라고 보았다. 교회 속에 쭉정이적 요소도 있지만 교회는 천국의 지상의 모습이라고 이해하였다.
∎시간관과 신인식론
1. 시간관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시간은 오직 현재 뿐이다. 곧 수직적 시간(카이로스)뿐이다. 과거는 다만 현재의 기억(Memory)이요, 미래는 다만 현재의 기다림(Expectation)이다. 수평적 시간(크로노스)은 의미가 없다.
어거스틴의 시간이해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시간성은 항상 지나가는 것 또는 연속(successio)으로 특징지어지며,
둘째, 시간성은 분열과 분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거-현재-미래를 인간의 시간성에 있어서는 동시적으로 지닐 수 없다.
셋째, 시간성은 일회적인 것이고, 비반복적인 것으로 특징지어 진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의 동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현재'라는 시제만 존재하는 그 무엇이지만 현재도 연장된 물체로서가 아니라 순식간에 '과거,' '현재,' '미래'로 분리되면서 '아직 오지 않음'과 '이미 사라짐'의 순환 과정을 계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논리적 가능성으로서의 존재하는 시간은 '영원한 현재'(eternal now)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원한 현재'는 어디까지나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바 최후의 원소로서의 가정적인 개념일 뿐, 너무나 신속하게 '미래'에서 '과거'로 이행해 가기 때문에 '쉬는 틈,' 즉 '연장'(extension)이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분명히 있으면서도 어떤 물체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실제로 주어지는 시간의 양은 동일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짧게도, 길게도 기억되거나 예견될 수 있다.
2. 신인식론(Knowledge of God)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신인식의 문제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철학에 영향을 받은 계시신학(Theology of revelation)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다.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은 아리스토틀(Aristotle)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적 신인식론을 강조한다. 곧 자연현상을 통해 창조현상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인간 이성의 사변과 의지적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인식 방법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자신을 열어보이는 계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보았다. 루터가 이러한 어거스틴의 계시 신학에 입각하여 그의 십자가 신학을 발전시켰다. 곧 하나님의 계시는 십자가 속에서 모두 드러났는데, 이 십자가의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요, 십자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온전히 알 수 있음을 강조한다.
[출처] 1. 성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작성자 이종영 목사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논쟁
1. 예정과 자유의지(Predestination and free will)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운명론 혹은 결정론과 논쟁할 때는 자유의지를 강조했으나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와 논쟁(AD 410-430)할 때는 자유의지보다 예정과 은총을 더욱 강조했다.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정하고 아담의 죄는 혼자에게만 상처, 온 인류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았기에 어린아이는 죄가 없고, 원죄의 유전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며, 어린아이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보았다. 따라서 유아세례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그에 대해 어거스틴은 아담의 원죄가 유전함을 강조했다. 유아라 할지라도 죄악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유아세례를 주장한다. 본성의 부패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유의지도 갇혀진 자유의지 상태이므로 하나님의 선택, 곧 예정에 의해 만민이 구원되며, 예정된 자를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보존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어거스틴은 구원받을 자의 예정만을 말한다. 이것은 불가항력적(irresistable)이다. 그러나 그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은총은 부드러운 강권이지 거친 폭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는 구원에, 어떤 자는 멸망에 이중적으로 예정되었다는 주장(double predestination)은 칼빈이 발전시켰다. 어거스틴은 이중 예정을 말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 없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강조함으로써 구원 완성에 있어서 인간의 의지적 참여를 말하고 있다. 선행과 공로사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곧 예정의 은총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참여와 선행적 역할을 말한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어거스틴을 따른다. 은총은 자유의지가 일하도록 움직이고 자극한다. 이점에서 어거스틴의 예정적 은총은 부드러운 폭력(soft violence)이다. 그러나 루터나 칼빈은 인간의지의 전적 노예 신세를 말하기에 예정의 은총을 받은 후에도 자유로운 의지적 행동이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의 노예 신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 은총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믿지 않기에 타락 이후에는 자유의지의 본성은 그대로 살아있고 이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구원이 시작됨을 말한다. 또한 은총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에서도 온전한 성화와 완전한 자유(Impossibility to Sin: 범죄 불가능)를 얻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은총이 임할 때 죄 안 지을 가능성이 회복되어 갇혀진 자유의지가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지만 역시 범죄 가능성이 있고 인간의 욕망이 죽는 날까지 남아 있기에 완전한 성화와 완전한 자유는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미래의 천국에서 이루어짐을 말한다. 이 세상 역사 속에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범죄 불가능을 갖고 계셨기에 죄와 상관이 없으셨고 죄에서 완전히 자유하셨다. 또한 어거스틴의 주장은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의는 성도들에게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전가되고 부어지지만 또한 동시에 성도의 본성이 변화를 받아서 성장한다는 개념을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은총과 의의 양면성을 강조한다. 웨슬리는 이 양면성 곧 은총을 받은 성도가 자유의지의 노력으로 사랑의 선행을 할 수 있음을 이해하였다. 곧 은총과 의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사랑의 선행은 이 선물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적 참여와 협동으로 이루어진다는 복음적 신인협조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펠라기우스의 신인협조설과는 다르다. 펠라기우스는 은총의 개입 없이도 인간의 본성적 자유의지는 선행과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주도권적 행동과 하나님의 응답과 참여를 주장함에 비해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주도권적 은총의 역사와 인간의 의지적 동참을 말하고 있다.
[출처] 1. 성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작성자 이종영 목사
∎도나티스트(Donatist)와의 논쟁(AD 395-410)
도나티스트란 말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생긴 용어다. 로마 황제 디오켈레티안의 박해 시에 그는 박해 방법을 독특하게 고안, 곧 성경책을 불태우거나 버리도록 강요했다. 만약 성경책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순교의 자리에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성경책을 버린 배교자들이 많이 생겼다. 심지어 감독들도 배교했다. 배교한 압툰자시의 감독 펠릭스가 안수하여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의 감독이 된 카이키리아누스의 감독 안수식을 무효로 선언하고 맨사리우스를 새감독으로 성별시켰으나 그는 곧 죽고 도나투스(Donatus) 감독이 계승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도나티스트라고 불렀다.
1. 성만찬론(Doctrine of Sacraments)
도나티스트들은 성직 안수 및 세례, 성만찬식은 도덕적으로 성별된 거룩한 감독 및 성직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비록 배교한 성직자라도 그들이 베푼 성례전은 타당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즉 성만찬 행위의 사건 자체가 타당성을 발휘하지, 어떤 인간에 의해 타당성을 갖는 것이 아님을 역설했다. 어떤 성직자의 도덕적 능력이나 인격에 의해 타당성이 부여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타당성이 인정됨을 믿는다. 참 목자는 오직 그리스도시다. 까닭에 그리스도의 이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성만찬이나 세례는 그것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성직자가 흠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타당성을 지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효력성에 있어서는 교회 안에 들어와야 함을 강조한다. 은혜의 효력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다시 살아난다고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박해 시에 배교한 성직자들에게 세례 받은 교인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올 때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다만 머리에 안수함으로써 입교를 인정하게 했다. 이 어거스틴의 해석에 의하면 천주교 영세교인이 개신교로 옮기거나 개신교 세례 교인이 천주교로 옮길 때 또는 침례 받은 교인이 약식 세례를 행하는 교회로 옮기거나 약식 세례 받은 교인이 침례 교회로 옮길 때 다시 세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한번 그리스도의 이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은 영원히 타당하고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나티스트들은 다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입교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나티스트들은 재세례파(Anabaptists)의 조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2. 교회론(Ecclesiology)
도나티스트들은 교회관에 있어서도 자연히 편협되었다. 교회는 성결한 무리들만 모이는 공동체요, 죄인들은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음을 말했다. 어거스틴은 교회 속에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Visible and invisible Church)가 있고 알곡과 쭉정이(the wheat and tares)도 함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감히 누구를 최후심판 이전에 쭉정이라고 정죄하거나 심판할 수 없다고 본다. 까닭에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교회의 일치(Unity), 사랑(Bond of love), 곧 Cathoticity(우주적, 총체적 공교회)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출처] 1. 성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작성자 이종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