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해볼 만한 예화
가치 있는 삶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대신해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질병과 고통을 한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으심으로 모든 죄와 저주를 다 청산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뿌 리를 두고 요동치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있습니까?]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실존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시기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브리서3:4)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오두막집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건축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물며 이 거대한 우주와 만물 이 어떻게 우연히 생겨났겠습니까.
우리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려면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합니다. 성경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한복음1: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기노국(棄老國)
백 년 전, 아니 5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빨리 늙기를 원하고 빨리 노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니었던가 싶다.
고종 황제의 밀사 노릇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Homer Bezaleel Helbert)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 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조선'이라 했고, 미국 공사를 역임한 샌즈의 회고록에도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했으며, 최초의 선교 의사인 앨런도 '노인(老人)과 망인(亡人) 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즐거운 노인 천국'이라고 극찬하였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맞는 말들이다. 노인 천국의 증거로서 내외국인이 써 남긴 많는 문헌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려보아도 알 수 있다.
첫째, 문성(問晟)이라 하여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 때 아들 며느리로부터 문안을 받는다.
둘째, 신과(新果)가 나거나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노부모가 먼저 드신 후에 입을 댄다.
셋째, 주부권을 상징하는 뒤주 열쇠와 안방 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게 이양하지 않는다.
넷째, 문중 사람은 물론이요, 한 마을에 사는 남들일지라도 출타하거나 출타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마을 노인에게 인사를 드린다.
다섯째, 길가다 노인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거나 말을 타지 않았으면 걸음을 멎고, 지나갈 때까지 두 손 들어 읍을 한다.
여섯째, 마을에서 잔치가 있으면 아무 연고가 없더라도 반드시 마을 노인들을 모셔다 상석에 앉혀 대접한다.
일곱째, 마을에서 추렴해 돼지나 소를 잡으면 배장(配臟)이라 하여 내장을 그 마을의 노인들에게 등분하여 보내드린다.
여덟째, 부모가 늙으면 벼슬을 고향 가까이 옮겨주어 봉양케 하고, 보다 늙으면 봉양을 위해 유급 휴직시켰다.
아홉째, 그러다가 죽으면 영혼이라도 3 년 동안 한 집에 살며 조석으로 살아 있는 식구들과 똑같은 밥상을 받으면서 공생 공존하며, 3 년 후라도 1 년에 한 번 제삿날에 상봉하니 죽어도 영생하는 것이 된다.
열째, 회갑이 지나면 그 고을 현감이, 고희가 지나면 감사(監司)가, 백수(百壽)가 지나면 임금님이 춘추를 가려 주시어 옷을 내려 연지(年齒)를 치하하였다.
동서고금에 이렇게 노인을 우대한 나라가 어디 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도 또 책에서 보지도 못했다. 그 노인 천국이 노인 지옥으로 타락하고 만 것이다.
노부모 모시기가 힘겹다 하여 관광지에 유기하고 훌쩍 이민 떠나버리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병도 없는 노부모를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몇 달간이고 유기하는 신판 고려장이 예사로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게에 져다 거리나 쓰레기통이나 산속에 버림받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조선은 기노국(棄老國)이 돼버렸다.
깨끗한 공기
스톡홀름 부근에 있는 한 강물이 대단히 오염되었었는데 압축 공기 기술로 정화되어 물이 본래의 질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방법을 산소가 거의 없는 호수의 깊은 물을 압축기로 빨아들여 압축기속의 공기와 섞어 새로운 산소를 만들어 다시 호수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물에 산소를 공급하는 것은 호수의 기온에 아무 변화 없이 할 수 있으며 수년간 오염되어 있던 호수바닥을 정화하여 신선하게 통풍되어 산소가 풍부한 맑은 호수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물고기와 수중식물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가지 오염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한 것을 발견하여 점진적으로 정화해 나가야 한다.
마음을 바꾸라
우리는 자아중심주의 탐욕 거짓됨 미움 두려움 좌절감 죄책감등을 반드시 쫓아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심어주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속성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헬라원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이 말은 [마음을 바꾸라] [마음의 생각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자아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탐욕에서 주의 영광으로, 거짓됨에서 진리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두려움에서 신념으로, 좌절감에서 용기로, 죄책감에서 의로움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가난의식에서 부요의식으로, 눈먼 의식에서 하나님 나라 의식으로, 눌림에서 건강 의식으로, 율법주의에서 은혜 의식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 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 나라의 것으로 변화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反PC의 새 패러다임
세계 PC(퍼스날컴퓨터)의 80%는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디스켓 운용시스템)나 윈도우가 움직인다. 창조적 파괴로 PC의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독점제국은 난공불락이다.
정보기술 산업은 매 15년 꼴로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한다. 인터네트는 미완성의 디지탈 우주다. 주인도, 관리자도 없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며 계속 그림을 그려가는 기술혁신의 황야다."반(反)PC"도전의 전장(전장)이다.
인터네트의 연결에는 PC와 소프트웨어가 필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네트 분야 역시 기존독점의 자연스런 연장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2-3년새 인터네트 소프트웨어시장은 80%가 선(Sun)마이크로시스템과 네츠케이프(Netscape)콤비 수중으로 넘어 갔다."인터네트의 드라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 등 반(반)PC 기수들은 인터네트 전문가들이었다. "특정인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며 어떤 방식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로도 연결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인터네트의 출발이념이었다. 이후 3단계의 혁신을 겪어왔다. "네트워크가 곧 컴퓨터"라는 인식도입이 첫째다.
윈도우 프로그램처럼 마우스의 클릭으로 그래픽과 텍스트가 째깍째깍 연결되는 월드 와이드 웹(Web)이라는 브라우저(browser: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찾아본다는 뜻)소프트웨어개발이 두 번째 혁신이다. 웹 방식은 89년 제네바의 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티모티베르너스 리가 학자들 간 의사소통을 쉽게 하기 위해 창안했다. 그러나 진정한 웹 브라우저는 일리노이대학 슈퍼컴퓨터 응용연구소의 마크앤드리센과 그 동료들이 93년 선 워크스태이션용 소프트웨어의 일환으로 개발한 "모자이크"가 효시다.
앤드리센은 워크스태이션과 윈도우 PC는 물론 애플컴퓨터 기종에도 두루 사용되는 버전을 개발, 작년에 네츠케이프를 공동 창업했다. 지난 8월 상장 때 주당 28달러였던 주가는 1백70달러를 호가한다. 1천만 고객에게 "웹이 곧 컴퓨터"임을 자부한다. 선의 새 소프트웨어 언어 자바(Java)와 그 응용프로그램 애플렛츠(Applets)가 세번째 혁신이다. 그때, 그때 화상(畵像)을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상호작용(interactivity)기능을 추가시켰다.
네츠케이프 등 웹 소프트웨어 메이커들은 이 자바를 일제히 내장(內藏) 시켰다. 인텔칩에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나 윈도우 없이 바로 자바를 주입, 웹 터미날과 연결시킬 수도 있고 PC의 몇몇 표준부품과 값싼 칩으로 연결도 가능하다고 한다.
비싼 PC완제품을 사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새 패러다임의 등장이고 반(反)PC 의 인식(perception)이 곧 변혁을 몰아올 수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부랴부랴 자바프로그램을 끌어안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인터네트는 TV이후 가장 중요한 통신 및 정보미디어로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컴퓨터산업을 넘어 통신 케이블TV 출판 방송 등을 포괄하는 거대한 "다음의 파(波)"다. 어느 누구도 수중에 넣지 못하고, 나름대로 기여를 통해 그 크기를 덧붙일 수밖에 없는 예측불허의 새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비러리지
2차 대전의 전쟁이 전 유럽에 가득하던 1941년 6월, 영국의 수도 런던에도 독일군이 쏘아대는 포성으로 인해 긴박감이 돌았다. 전황은 영국군에게 크게 불리했고 군민(군민)의 사기도 거의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때 영국의회는 실업(실업) 문제의 권위자인 경제학자 윌리엄 비버리지(William Beveridge)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 보험 및 부대 서비스에 관한 부처 간 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전쟁에서 승리의 희망이 거의 무너져 가는 시점에서도 영국은 전후 복지사업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이 위원회는 전쟁 속에서도 국민들의 중지(중지)를 집결하여 혁신적인 안(안)을 마련했다.
드디어 1942년에 들어 비버리지안이 완성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전반적인 생활 보장 계획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보고서 속에 비로소 사회 보장(사회보장)의 내용이 부여되어 국민의 생존권 확보를 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비버리지 위원회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확신과 결의에 찬 사회를 기대케 하였다. 신념에 찬 계획은 분명인간에게 용기를 주고 나아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다.
생각의 중요성
옛날 바닷가에 어떤 사람이 살았다. 그는 해오라기와 친하게 되어 그가 바닷가에 나가기만 하면 날아와서 어깨나 손위에 앉곤 했다. 그는 그 해오라기 얘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그 해오라기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잡아올 마음을 먹고 이튿날 바닷가에 나갔더니 해오라기는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에게 해오라기를 잡으려는 기심(機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심이란 이렇게 겉으로는 아닌 체하면서 속으로 품고 있는 사심(邪心)이다.
예로부터 조류(鳥類)는 인간의 기심에 예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江南)의 아파트촌인 압구정동(狎鷗亭洞)은 세조(世祖) 쿠데타의 공신(功臣)이요 벼슬 밭에서 영화를 누렸던 권신(權臣) 한명회(韓明澮)의 정자 이름에서 비롯된 동명이다. 그는 벼슬에 욕심없이 강촌(江村)에 은퇴해 산다는 허울을 위해 이 강변에다 갈매기와 친한다(狎鷗)는 뜻으로 압구정을 짓고 아호(雅乎)도 기심을 잃은 노인이라 하여 `망기노(忘機老)'라고 자칭하였다. 하지만 기심에 예민한 갈매기는 이 정자를 피해 날았던 것 같으며, 뜻있는 선비들은 친할 `압(狎)'이 아니라 짓눌러버릴 `압(押)'구정으로 불러 내렸던 것이다.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昭顯世子)따라 우리나라에 온 굴씨(屈氏)라는 궁녀(宮女)가 있었다. 한국 땅에서 살다 죽은 이 굴 씨는 휘파람으로 온갖 새를 불러들이고, 불러들인 새를 손가락 끝으로 마음대로 다루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람들이 별다른 비결이라도 있는가고 물으면, 기심없는 천진(天眞)한 경지에 들면 새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고 대견스럽지 않게 대꾸하곤 했다.
한말, 헌종(憲宗)-철종(哲宗)-고종(高宗) 3대를 거쳐 어전에서 판소리를 읊었던 이날치(李捺致)라는 명창(名唱)이 있었다. 이 명창의 새 타령을 들은 일이 있다는 시인(詩人) 임규(林圭)는 이렇게 적어 남기고 있다. `어릴 적 고향인 익산(益山) 근처 심곡사(深谷寺)에서 이날치의 새 타령을 들은 일이 있는데 그가 새 소리를 낼 때마다 뻐꾹새인지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산새들이 날아들어 그를 에워싼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었다'고-.
신앙이나 예술이나 수양에서 기심을 잃은 신묘한 경지에 이르면 새와 사람 사이에 격의가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새가 사람을 보고 피하는 것은 권욕(權慾)이며 이욕(利慾), 명욕(名慾), 음욕(淫慾)..., 위선, 시기, 모략, 음모... 등 온갖 잡심이 범벅이 된 것을 꿰뚫어 본 때문일까-. 그렇다면 도시에서 새가 사라지는 현상은 비단 공해만도 아닌 범람하는 기심 때문이었을까-
승부의 미학
가을하늘이 높아지고 구름 빛이 솜털처럼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런 계절을 가을이라고 부른다.
가을에 생각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시골 국민학교 운동회이다.
서울이라고 하는 삭막한 공간에 살면서부터 그런 낭만적인 추억들이 사라진지 오래됐다.
문득 야구장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나의 발길을 끌었다. 아직도 스포츠를 사랑하는 팬들은 여전했다. 전과는 달리 질서의식이 많이 발전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구경을 온 부부도 아이가 버리는 휴지에 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느긋한 행복감마저 엿보였다. 어렵사리 표를 사가지고 스탠드에 가서 앉았다. 경기가 시작이 되면서부터 열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경기하는 팀은 모두 프로팀이었고 그 팀마다 자기들이 소속되어 있는 지방명칭이 붙어 있었다. 관중들은 제각기 자기도에 소속된 팀을 응원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정작 운동하는 선수들보다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열기를 올렸다.
어깨가 빠져 라고 피칭한 공을 힘껏 타자가 쳤다. 백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관중들은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행히도 공은 파울이 되어 홈런이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숨을 죽이고 있던 상대편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승부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이성이 접근할 수 없는 감정의 세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혈질 관중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심판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어떤 관중은 열광한 나머지 웃저고리를 훌덕 벗어버리고 관중의 앞에 나와 응원을 지휘하기도 했다.
땀을 흘리며 선전하는 선수들에게 격려 대신 비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쳐 힘내라. 베터푸어(타자 바보)다" 흥분된 군중들은 모두 얼굴에 핏대가 서 있었다.
야구란 참으로 재미나는 운동임을 알았다. 마치 인생처럼 엎치락 뒤치락의 연속이었다. 이사 후에 점수를 내기도 하고 끝까지 추적을 하여 역전극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좋은 공을 골라서 치고자 하는 타자의 예리한 눈동자, 어찌하든 교묘한 방법으로 공을 던져 타자를 무력하게 하고자 하는 투수의 몸부림, 그리고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보고자 애쓰는 주자의 안간힘, 도루를 시도하다가 허무하게 아웃당하는 도루꾼들, 이 모든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희노애락을 한눈에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역감정으로 들끓던 야구경기가 끝났다.
열을 올리던 관중들도 선수들도 모두 허탈함을 공감하는 순간이 왔다.
열기 오른 관중석에는 홈런의 아름다운 환상만이 바람에 날려 딩굴고 있었다.
운동장 한 모퉁이에서는 이긴 선수들이 진편의 감독과 코치를 헹가래치고 있었다.
운동의 유종의 미가 저런 것이구나 하는 흐뭇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승부의 미학이여 모든 선수들에게 큰 축복 있을 지어다"
사람들이 다 떠나간 후 마지막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내 머리 속으로 다시 시골 학교 운동자에서 있었던 운동회의 모습이 아름답게 떠올랐다.
애국심
애국심이 강한 후보자가 농부에게 투표를 부탁하면서 자기 힘으로 내각을 바꾸어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투표하지 못하겠어요." 라고 농부는 말했다.
"어째 선가요?"하고 후보자가 물었다.
"나는 당신이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걸랑요."하고 농부는 말했다.
"말씀대로죠."하고 애국자는 대답했다. 농부는 다시 말했다.
"나도 애국자란 말이요. 그러니까 내각을 바꾸고 싶지 않단 말이요. 나는 오랜 경험으로 마른 돼지를 기르면 미친 듯 정신없이 먹이를 마구 먹어대지만 조금 살찌면 반도 안 먹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내각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새 것들은 자기를 살찌기 위해서 정신없이 먹이를 먹을 테니까요."
얼굴
사람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니까 사십이 넘은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인생을 대변해 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십 전의 인생은 자기의 얼굴을 만들고 있는 시기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사십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의 삶과 성품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얼굴은 그의 인품이 빚어내는 예술이다. 얼굴은 개성이 창조하는 일종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과 태도는 즐거운 얼굴을 만들고, 슬픈 얼굴은 비애의 얼굴을 만든다.
짜증스럽고 불만스러운 마음은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얼굴을 만들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6장 15절을 보면 전도하다가 잡혀 온 스데반의 얼굴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우리가 스데반이 받았던 이 아름다운 별명, 천사의 얼굴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
1) 그는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이었고,
2)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3)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왕덕충 맞춤 집
대만(臺灣)이나 홍콩 거리를 걷다 보면 양복점 양장점의 간판이나 쇼윈도에 `왕덕충(王德忠)'이라 써 붙인 글을 종종 볼 수 있다. 세상에 좋은 글씨는 모두 독점하고 있는 욕심 많은- 그래서 고명해진 어느 한 중국인 디자이너려니 했다. 적화(赤化) 이전의 사이공 화교가(華僑街) 촐롱에서도 그 이름을 자주 보았다. 그 사이공에서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와이셔츠를 맞춰 입을 일이 생겼다. 그래서 왕덕충이라 씌인 맞춤집을 찾아 들어 왕덕충 디자인의 와이셔츠를 맞춰 입었다. 그 후 외국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덕충이 디자인한 셔츠임을 자랑했더니 만장에 폭소가 터지는 것이었다. 망신을 하고 만 것이다.
왕덕충이 사람 이름이 아니라 고급 맞춤이란 프랑스 말 Haute Couture를 중국 음으로 표기한 것임을 그때야 알았던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외국어를 음역(音譯)으로 직수입하는 법이 별반 없다. 기껏 유묵(幽默:유머), 위사기(威士忌:위스키) 등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던데, 그 중에 왕덕충이 끼였던 것 같다. 외래어를 수용할 때는 인명(人名) 아니고는 의역(意譯)으로 새 말을 만들어 버린다.
에스컬레이터를 전동부제(電動扶梯), 헬리콥터를 직승비기(直昇飛機), 라디오를 수음기(收音機), 콘크리트를 혼응토(混凝土), 스키를 골설(滑雪), 텔레비전을 전시기(電視機)하는 식으로-.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코카콜라마저도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 의역하고 있다. 중공에서는 미국 상품이라 하여 고가고래(苦加苦來)로 달라지고 있다지만.... 영어에 오염된 프랑스 말을 씻어내는 순화 운동이 프랑스에서 한창인 것을 비롯, 자기 나라 말을 외래어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은 20 세기 말의 한 추세가 되고 있다. 영어와 프랑스 말이 공용어(公用語)로 돼 있는 캐나다 퀴벡주(州)에서는 텔레비전의 농도 조절 표시인 콘트라스트를 두고 프랑스인 계와 영어계가 계속 맞대결하고 있다.
Contrast와 Contraste의 차이인데 서로 양보를 하지 않아 Cont로 줄이는 절충안을 냈으나 이 말은 상스럽고 음탕한 말 Cunt와 발음이 같다 해서 협상이 깨지고 있고-. 유태인이 3천 년 간 헤어져 살았으면서 구심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의 말 히브리어를 오염시키지 않고 집요하게 유지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새로운 문물이 물밀듯 밀려들고 있는 이 현실에서 그에 묻어 든 외래어를 뜻으로 거르지 않고 소리로 옮겨 쓰고 있는 우리를 새삼 뒤돌아보게 해준다.
유대인
러시아의 유대인가 신학교에서 랍비와 학생들이 징병으로 끌려 나가게 됐다.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랍비와 학생들은 훈련 중 사격에 월등한 성적을 나타냈다.
러시아인 장교는 몹시 기뻐했다. 훈련이 끝나자 랍비와 학생들은 장교에게 인솔되어 전선에 나서게 됐다.
전선에 닿자 러시아인 장교가 칼을 뽐아 "사격개시!"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총성을 전혀 나질 않았다. 러시아인 장교는 다시 한 번 칼을 높이 쳐들어 "사격개시!"하고 외쳤다. 그래도 총성이나 그밖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너희들은 훈련 중에는 사격에서 그렇게 우수한 성적을 올렸는데 어째서 총을 쏘지 않는 거냐?" 러시아인 장교는 화가 몹시 나서 소리쳤다. 그러자 2등 병의 제복을 입은 랍비가 대답했다.
"어째서라 고요? 앞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질 않나요?"
인격의 주춧돌
타락한 성격,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자기 교만, 탐욕, 육신에 의지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파괴해 버리고 자기 스스로의 운명도 파괴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신자들이 이런 질문을 해옵시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해서 결혼하고 가정도 이루고 사업도 하고 일도 계획했는데 왜 중간에 와서 이렇게 혹독한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며 모든 일에 시련의 눈보라가 치고 사막을 지나는 것 같은 고통이 다가옵니까? 전진도 후퇴도 못할 정도로 죽게 되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셔서 그 것을 영원히 누리게 하기 위해 먼저 타락한 인격의 찌꺼기를 제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건축공사장치고 기8茄 다지지 않고 건물 먼저 세우는 것을 보았습니까. 어느 도로공사장치고 지반을 파내지도 않고 바로 길을 닦는 것을 보았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업을 맡기고 큰 축복을 해 주시기 전에 먼저 인격적인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이는 어떠한 환난의 幣냄李 휘몰아쳐 와도 우리가 요동치 않고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 축복을 올바르게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처] 참고해볼 만한 예화|작성자 치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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