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노시스주의 (Kenoticism)
케노시스주의 (Kenoticism, The Kenotic Theology, The Kenosis Doctrine) I. 역사적 발전 1. “Kenosis” 어의 출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7) 위 본문 중 그리스도께서 자기를“비어(ekenosen)"에서 동사 “kenoo”으로부터 명사형“kenosis”라는 말을 취하여 만든 이론이다. 2. 역사적 발전 케노시스 신학은 독일 루터 신학계에서는 1860-1880에, 영국 신학계에서는 1890-1910에 발전하였다. 인성은 자라고, 배워야 한다. 신성은 배울 필요가 없는 전지 전능하다. 이 두 사이의 모순을 조화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 기간 중 신 성 일부를 포기하였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체(form)를 비우셨다. (1) Gottfried Thomasius(1802-1875)--신성에는 외적, 상대적 속성과 내적, 도덕적 속성 이 있는바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하시는 동안 전지성, 전능성, 편재성 같은 외적, 상대적 속성(relative attributes)의 사용을 포기하셨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내적, 도덕적 속성(영원성, 거룩성, 진실, 사랑)은 유지 된다. (2) W.F. Gess와 H.W. Beecher--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신의 자살행위로 보아 신속성 전폐 론을 주장하였다. 거룩성, 영원성, 진리성 등 절대적 내재적 속성을 포기하였다고 주 장한다. 성부로부터 神적 생명을 전달 받으므로 하나님이 되시더니 로고스의 지상 생 애 기간 중 신적 생명 전달이 중단되어 모든 신적 속성은 수면하게 되어 무능하게 되 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때 전적으로 신격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셨다. 일종의 신적 자 살에 의한 성육신을 제창하였다. 그리스도는 인성의 무능으로 축소된 로고스였다. 이 는 로고스의 인체 내의 수면기라고 볼 수 있다. (3) 의미론적, 하위적 케노시스론--로고스는 신적 속성 가졌으나 신적 속성 사용을 비웠 다. 또는 신성을 가졌지만 그것을 성부의 권능에 예속시켜 신적 속성의 독자적 사용을 하지 않았다. 혹자는 신성의 특권과도 같은 신성의 외적 형태를 비웠다고 한다. 3. 성경적 근거 (1) 빌 2:6-8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 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4)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 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 빌 2:7의 “비어”의 의미 A. 번역 문제 “but emptied himself”(ARV)--오역 “but emptied himself”(RSV)--오역 “But made himself of no reputation”(KJV)--OK “but made himself nothing"(NIV)--OK “오히려 자기를 비어”(빌 2:7)--? 자기를 비어버렸다는 번역은 신성 포기의 오해 여지가 있어 완전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B. NT의 ekenosen의 용례 분석 (롬 4:14; 고전 1:17; 9:15; 고후 9:3)에 따르면 “헛되 다”라는 상징적 의미가 배어있다. -- “헛것이 되고,” “헛되다,” “of no effect," "of no account,' "to make void," "of no reputation." 이런 용례에 나타난 점에 비추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적 권위를 사용하지 않고 헛것으로 여겼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지니신 신권 사용의 자기 제한은(요 17:5) 큰 희생이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the morphe theou--form of God--very nature of God)를 비운 것이 아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 지 아니하시고”에서 보여 주듯 성부 하나님과의 동등성을 포기하셨다. 그는 자기의 신적 속성을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께 굴복하신 것이다. 따라서 포기하신(ekenosen) 것은 하나님의 본체(하나님의 고유하신 특성과 영광 및 속 성)가 아니고 종의 신분을 취하신 점에 대비되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이었다. 빌립보서 2:6-7에서 신성을 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하신 존재방식을 비우고 종의 형체를 취하신 것이다. God's form(morphe) <----> servant's form(morphe, schema) 신적 형체와 본성 종의 형체 (항구적) (일시적) 다음 성경 본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비운 것이 아닌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히 1:3).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기속 하의 존재로 사셨고, 부요함을 포기하였으며(고후 8:9), 하늘 영광을 포기하였으며(요 17:4-5), 권위를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일을 포기하셨다 (히 5:8). 그리스도의 신성은 또 다른 형태인 종의 형체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완전한 인성을 취하지 않았다.“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의 메시지가 보여주듯 연약하여진 인간 본성을 취하셨고 종의 모습으로 구속적인 순종의 길을 걸으셨다.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그 영광을 지니신 채 오셨다면 우리는 그의 임재하심의 광채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광채를 보고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영광의 나타나심이 가리워졌다.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리워졌으니 곧 보이지 않는 영광이 보이는 사람의 형체 안에 감취어졌다.”(소망, 23). “신성(神性)을 나타내기 위하여 선택된 표상은 별로 주목을 끌만한 것이 못 되는 평범한 덤불이었다”(소망, 23) C. 빌립보서 2:7의 문맥 2:2 oneness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마음가짐이 문제이다. 1:27-28 2:3 Lowliness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허리를 굽히는 자기 비하의 모습이다. 2:4 Helpfulness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D.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은 우리의 모본이 된다. 그리스도의 하신 일 중에서 우리가 모본으로 삼을 수 없는 부분도 있으며(대속사), 모 본으로 따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의 자기 포기의 모본은 우리가 따를 수 있는 것 이며 이 모본이야 말로 빌립보 교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다. 마 11:29 요 13:12-17 13:34 21:19 고전 11:1 살전 1:6 벧전 2:21-23 요일 2:6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신 생애를 하시는 중에 구주께서는 빈번한 왕래와 날마다 자기를 따르던 군중에게서 물러나야 할 필요를 깨달으셨다.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을 찾아 당신의 아버지와 중단되지 않는 교통을 하시기 위하여 쉬임 없으신 활동과 사람의 곤궁에 응하시는 생애에서 돌아서셔야 하였다. 우리와 하나같이 되시어 우리의 곤궁함과 연약함을 지니신 자로서 예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은밀한 기도처에서 하늘의 능력을 구하셨는 바 이는 의무와 시련에 견딜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소망, 362-363). “하나님의 천사들은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항상 왕래하고 있다. 곤고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적은 천사들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소망, 143) 요 5:30 14:10 마 12:28 그리스도는 스스로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자기권리, 자기 경험, 자기 능 력, 자기의견을 다 포기하는 대 모본이 되신다. 자기가 죽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알아도 무식한 것처럼, 의인이어도 죄인인 것처 럼, 유명하지만 비천한 자처럼 살아간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비운다. II. 케노시스주의에 대한 평가 1. 하나님의 불변성에 맞지 않는다(말 3:6; 약 1:17). 2. 삼위일체 교리를 파괴한다. 3. 전지성, 전능성, 편재성과도 같은 신의 속성과 신의 본체 사이의 관계를 이완시킨다. 4.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통일성을 파괴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III. Wm. T. Hyde의 신성 수면론 A. 주장 Wm. Hyde는 H. Crosby가 The True Humanity of Christ (1880)에서 그리스도의 전 화육 기간 중 예수의 본질적 신성은 방해받지 않고 존속되었으나 의식적 신상 사용은 전적으로 잠잠하였고 부활 시부터 신성의 사용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계승하고 있다. [Wm. T. Hyde, A Biblical Theology (Anguin, CA: Pacific Union College, 1993).18.] Wm. Hyde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기간 중 본질적 신성을 지녔지만, 신성을 의식적으 로 사용하는 일은 전적으로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잠잠하였던 그의 신성 사용은 그리 스도께서 부활한 때부터 이었다. 그리스도의 무덤에서는 그의 신성은 수면을 취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B. 근거: (1) 5BC 1113 (막 16:6 주석) “신성은 죽지 않았음(요 1:1-3, 14; 빌 2:5-8; 골 2:9; 히 1:6,8; 2:14-17; 4:15)―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성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으로 바뀌었는가? 아니다. 신성과 인성이 한 개체 곧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비스럽게 잘 조화 융합되어 있었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을 때 죽으신 것은 그의 인성이었다. 신성이 함몰되거나 죽지 않았 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잇주석, 막 16:6) (2) 3SP 203, 204 예수의 영은 무덤에서 그의 육신과 함께 잠잤다. “The spirit of Jesus slept in the tomb with his body, and did not wing its way to Heaven, there to maintain a separate existence, and to look down upon the mourning disciples embalming the body from which it had taken flight. All that comprised the life and intelligence of Jesus remained with his body in the sepulcher; and when he came forth it was as a whole being; he did not have to summon his spirit from Heaven. He had power to lay down his life and to take it up again.”(3SP, 203-204) (3) ST June 17, 1897 인성을 취하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신성을 붙잡았다. (4) <시대의 소망>에 여러 번 나오는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였다는 기사를 근 거로 제시한다. (5) 예수는 지적, 영적 성장 과정을 거쳐 텅 빈 자리를 채워 넣었다. 눅 2:52 “그가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지식을 얻으셨기 때문에 그가 그처럼 성경에 정통 하신 사실은 그가 소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하셨는지 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으로 채워진 큰 도서 관이 펼쳐져 있었다. 만물을 만드신 그가 그의 손으로 친히 땅과 바다와 하늘에 쓰셨던 교훈을 연구하셨다. 그는 세상의 부정한 방법들을 떠나서 천연계로부터 학문적 지식을 얻으셨다”(소망, 70). (6) 매일 성령의 침례를 받으셨다(COL 139). (7) 이적 행사는 자신의 신적 권능으로 한 것이 아닌 아버지의 권능을 의존하여 하 신 것이다 (요 5:30; 14:10; 마 12:28). “곤고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적은 천사들의 봉사를 통하 여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소망, 143). C. 문제점: Wm. Hyde가 주장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기간 중 본질적 신성을 지녔지만, 신성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적으로 없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부 활 이후에만 신성을 사용하였는가? IV. 예수의 지상 생애 동안 나타난 신성 성육신의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그는 고통을 당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험하셨지만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죄와 시험을 이기시기 위하여 자기의 신성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구속사에서 자기의 역할을 확증시키시기 위하시거나,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시고자 하신 경우에 종종 신성을 드러내셨다. 1. 성육신하신 하나님(요한복음 1장 주석)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을 인성과 교환하지 않으셨고, 그의 신성 위에다 인성을 옷입으셨다(리뷰 1895. 10. 29)”(화잇주석, 요 1:1-3,14). “그리스도의 신성의 영광이 잠시동안 그가 입으신 인성으로 가리워졌지만 그가 사람이 되셨을 때도 하나님이시기를 그친 것이 아니었다. 인성은 신성을 대신하신 것이 아니었고 신성도 인성을 대신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경건의 비밀이다.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밀접하게 그리고 나눌 수 없는 하나가 되었지만 그 양성은 확연히 구별되는 개별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비록 자신을 낮추사 사람이 되셨지만 여전히 그는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이셨다. 그가 신실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신성은 그대로 있었다.”(화잇주석, 요 1:1-3,14) “예수께서 육체 가운데 있을 동안에도 하나님의 아들로 자신을 나타내실 때가 있었다.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이었고, 조롱하는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이 그것을 보았다. 그분의 신성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는가?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 몇 사람은 있었지만 이같이 특별한 기회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를 거절하였다. 그들이 눈먼 것은 깨달은 죄를 회개치 않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이었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비춰 나갈 때 그것이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그의 순결하시고 완전하신 인성은 그것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화잇주석, 요 1:1-3,14) “우리가 인성을 쓰신 예수를 바라볼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영광의 광채와 그분의 본체의 형상을 본다(사인즈 1896. 7. 30). ”(화잇주석, 요 1:14) 2. 광야시험에서 승리하신 때 “사단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질문했었다. 사단은 즉시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그가 반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신성이 고난받는 인성을 통하여 번쩍였다. 사단은 예수의 명령을 거역할 능력이 없었다. ”(소망, 130) 3. 첫 번째 성전 정결 시 “그리스도께서는 왕의 위엄을 가지시고 말씀하셨으며 그의 외모나 음성에는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명령의 말씀을 듣고 전에는 결코 인식하지 못했던 위선자와 강도로서의 자신들의 진정한 입장을 깨달았다.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치 영원하신 재판장의 보좌 앞에서 현세와 영원에 대한 선고를 받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얼마 동안은 그리스도가 선지자임을 확신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임을 믿었다. ”(소망, 162) 4. 축복의 산에서 “그의 거룩한 입술에서 확신에 가득찬 음조로 축복을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분 자신이 바로 모든 선의 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었다. 더구나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끼치고 축복하는 것이 그의 특권이었던 것이다”(화잇주석, 마 5:1-12) “ 그는 무한대의 권위를 가지신 분의 권위를 가지시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를 구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실 하늘의 모든 좋은 것들을 가지신 분이시다. ”(화잇주석, 마 5:1-12) “그리스도께서 억제할 수 없는 힘과, 자신의 위대성을 강하게 느끼게 하는 능력으로 그의 말씀을 가슴에 사무치게 하는 권위로서 말씀하셨고, 인간 대리자들은 그들 앞에 계신 분과 비교해 볼 때,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들의 마음에 그분은 지극한 영광 가운데서 내리셨던 명령을 반복하고 계신다는 인상을 받았다.”(화잇주석, 마 5:1-12) 5. 나사로를 살릴 때 “나사로를 살리는 이 최고의 이적은 그의 사업과 신성에 대한 그의 주장에 하나님의 인을 찍는 일이었다.”(소망, 529)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다. 맑고 드높은 예수의 음성이 죽은 자의 귀를 울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신성은 인성을 통하여 번쩍거렸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난 얼굴에서 백성들은 예수의 능력의 확실함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눈은 동굴의 입구로 쏠렸고 모든 귀는 가장 작은 소리라도 들으려고 기울여졌다. 열렬하고도 근심스러운 호기심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주장을 실증하던지 혹은 희망을 영원히 잃게 할 증거, 즉 그의 신성에 대한 한 시험의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망, 536) 6. 변화산에서 “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신성의 나타나심을 봄으로 예수가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의 치욕적인 죽음은 구속의 경륜의 일부라는 것을 앎으로써 자기의 가장 심한 고뇌의 시간에 저들이 위로를 받게 되기를 간구하신 것이다.”(소망, 420) “ 내부에서 나오는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번쩍이고 하늘에서 임하는 영광과 교차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쓰러진 자세를 일으켜 하나님과 같은 위엄으로 일어나셨다. 심령의 고뇌는 사라졌다. 그의 용모는 이제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제자들은 눈을 뜨자 산을 두루 비취는 충만한 영광을 보았다. 두려움과 놀람으로 그들은 저희 주님의 광채나는 모습을 응시하였다.”(소망, 421) 7. 성전 뜰에서 가르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이 영혼들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당국자들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즉 신성의 영광으로 넘치는 인성을 보았다.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고 예수의 말씀에 감명을 받고 돌아온 그들은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는 질문에 “이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소망, 459) 8. 승리의 입성 때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을 이 심부름을 위하여 보내시면서 주신 상세한 지시 가운데서 까지도 그분의 신성이 다시 드러났다. 그분이 예언하신 대로 “주가 쓰시겠다”는 간청이 곧 수락되었다. ”(소망, 569-570) 9. 두 번째 성전을 정결케 하실 때 “ 제사장과 관원, 바리새인과 이방인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저희 앞에 하늘 왕의 존엄과 영광으로 서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빛났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결코 나타내신 일이 없는 그런 존엄과 영광을 입으셨다. ”(소망, 590-591) 10. 가야바 앞에서 “잠시 동안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분의 인성의 자태를 통하여 번쩍거렸다. 대제사장도 구주의 꿰뚫어 보는 시선 앞에 두려워서 떨었다. 그 시선은 대제사장의 숨겨진 생각을 읽고 그의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소망, 707) 11. 헤롯 앞에서 “헤롯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 자비의 광선이 죄로 굳어진 그의 마음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 죄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이는 그의 인성을 통하여 신성이 번쩍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조롱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과 살인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그 시간에 헤롯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소망, 731) 12.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의 이적은 그분의 신성에 대한 증거이나, ”(소망, 799) 13. 돌보시는 하나님 신성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 지상에 다른 어떤 사람도 없는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우리의 맏형님으로서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불행을 느끼시는 한편,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강한 힘을 발휘하신다. ”(5증언, 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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