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말씀과의 관계(이승현교수)
1. 들어가는 말
1) 성령과 기록된 말씀과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의 필요성.
- 말씀주의에 빠져서 은사 중지론을 주장하거나, 은사주의에 빠져서 성령의 검인 기록된 말씀을 무시하는 경향성 : 그리고 공부하고 이성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을 가진 반지성주의 경향성.
-성령은 “진리의 영”-참된 진리는 이성에 호소하고, 그 진리의 깨달음은 마음에 감동을 가져옴.
우리는 성령님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분으로 생각을 하고 머리를 뜨겁게 해주시는 분으로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로고스)에서 논리(Logic)가 나왔습니다.
2) 성령의 두가지 다른 사역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
- 기록된 말씀의 해석을 통한 성령의 사역과 기록되지 않은 원칙들과 성도의 삶을 인도하기 위한 다양한 성령의 사역간의 구분(감동, 예언, 은사들) 때로는 하나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길을 인도해 주시기도 하시고 말씀이 적절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 가지 감동과 예언이나 사람들 환경을 통해서 인도해 가시는 겁니다.
3) 참된 성령의 사역의 증거들.
성령님께서 진정으로 우리 가운데서 역사를 하실 때 그것을 판단할수 있는 근거.
2. 성령과 말씀과의 관계 - “진리의 영”
하나님은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특성이나 하나님의 기능이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계시해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령님도 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진리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감정을 통해서 역사를 하시기도 하시고 이해를 통해서 역사하기도 합니다. 감정이 뜨거워지면 이해가 새로워지고 이해가 새로워지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누가복음 24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납니다.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풀어서 자신이 왜 십자가에 달려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그 말씀의 깨달음을 받을때에 제자들의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다시말하면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됐을때 가슴이 뜨거워졌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이해가 새로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이 없고 가슴만 뜨거워졌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의 중요한 사역을 놓치고 계십니다. 혹은 여러분은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공부는 열심히 해서 이해는 새롭게 했지만 한번도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감당할수 없는 성령님에 의해서 온몸이 떨리는 것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을 다 알지 못하시는 겁니다. 두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1) 바울 - 말씀과 능력
신약성경중에서 말씀공부를 가장 많이한 사람은 사도바울입니다.
*사도행전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 각하가 바울에게 네가 미쳤다고 말합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부를 너무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어떻게 됐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바울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구약성경보고 율법연구하고, 회심하기 전에는 율법에 대해서 보고 회심한 다음에는 율법이 어떻게 주님에 대해서 알려졌는가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바울의 편지가 13개가 있고 누가복음과 베드로후서는 바울을 굉장히 존중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이 너무나도 강하게 역사를 하니까 바울의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부인할수 없을 정도로 성령의 강력이 복음전파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말씀과 성령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여기에 보면 성령이 등장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입니다. 영들이 많이 존재를 하는데 어떤 영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어떤 영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안에 계신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오지않았는지 잘 살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신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것들입니다. 구원의 복음과 많은 성령의 은사들과 역사들과 은혜들과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보면 성령께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것들을 알게하려고 교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어디에서 왔을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겁니다. 바울은 내가 감동을 받아서 이해했다는 그 수준이 아니라 성령께서 직접 나를 가르쳐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체험하시거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이 계신 기도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과 임재로 가득채워주시면 어떤 경험을 하시나요?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에 감동이 오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우리안에 들어오면 우리몸에서 반응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배울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않고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공부를 시킵니다. 주석을 보면 칭의라는 말이 있으면 학자들의 견해가 최소한 12개는 됩니다. 어떤게 진리인지 어떻게 아나요?
제가 기도하기를 성령님께 알려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순간 제 머릿속에서 번개가 막쳤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를 하실때여러분이 공부를 하면서 이성을 쓰면서 수고를 하면서 거기서 성령의 감동을 받을수 있습니다.여러분이 기도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하나님의 임재와 말할수 없는 은혜를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도서관에서 읽으면서 똑같이 경험할수 있습니다. 말씀사역하시려면 공부 많이 하셔야합니다. 성령님께 기도하면서 가르쳐달라고 하고 지혜를 달라고 하고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합니다. 사람의 두뇌를 만드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을 기록하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날려면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님이 가장중요하게 생각하는 도구가 말씀의 검입니다.
2) 누가 - 이성과 성령의 감동.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중요성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는 바로 그의 제자 중의 하나인 누가이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영”은 106번, “하나님의 영”은 75번, 그리고 “성령”은 54번 정도 언급한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누가만큼 성령에 대해서 강조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성령이 처음 교회를 찾아오신 오순절의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해준 자가 바로 누가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누가는 예수의 탄생과 사역들에서 그의 부모님과 세례 요한의 부모님들을 감동하셔서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다양한 예언의 형태로 계시해준 분도 바로 성령님이다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누가는 성령의 사람으로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기억되고 있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 특별히 죽으심과 부활하심 입니다.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12사도들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사도들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직접본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을 통해서 베드로를 통해서 초대교회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서 많이 기록을 했습니다. 어떤것이 참된 복음인지 어떻게 압니까? 그래서 누가가 다 읽어보고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차례대로 써보았다. 다시말하면 조사를 다 한다음에 정확한 순서를 따라 자기가 차례대로 쓴것이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복음서를 쓸때 학자의 모습으로 바울의 제자답게 모든 것을 살펴본 다음에 글을 썼습니다.
여러분 설교준비하실때 어떻게 하셔야하나요? 성령께서 감동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주일날가서 그때 주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설교하실건가요? 저는 성경을 하루에 7~8시간씩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부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3) 요한 - 진리의 영.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제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이땅에는 제자들만 남습니다. 마음이 착찹한데 예수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분을 너희에게 보내셔서 그분이 너희와 함께 영원히 거할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너희안에 거할것이다. 그분의 이름은 보혜사로 뜻은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요한은 바울처럼 우리에게 성령의 영감과 감동을 줄뿐만 아니라 가르치심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주님이 말한 모든 것,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성경중에서도 사복음서에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가르치면서 자기들이 이해를 한것을 교회 상황에다 적용을 시킵니다. 적용을 한 가르침이 서신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안에는 주님의 가르침을 담은 복음서와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적용했던 사도들의 가르침이 담긴 서신서가 있다는 겁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주시는 것은 첫 번째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이해하게 해주십니다.
살다보면 결정할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길 원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과거에 은혜받았던 말씀들이나 읽었던 말씀들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 말씀들을 제안에서 풀어주십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맞게끔 그것들을 적용을 해주십니다. 그러면 이게 지금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시는구나 라고 확신을 하게 됩니다.
다른분이 말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음성인지 모르겠어요. 마음속에서 여기가면 편안하고 저기가면 불편한데 이 편안함이 성령이 주신 편안함인지 내가주는 편안함인지 모르겠어요. 저같은 경우는 3년전에 여기올때 성경말씀 구절을 갑자기 떠올려주시고 그것을 풀어주시고 설명해주시고 내 상황에 맞게끔 적용을 해 주시면 저는 그것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확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을 하면 실패하는 경우들이 없더라고요.
성령의 은사와 은혜를 체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공부를 하세요. 왜냐면 이것들은 과거에 성령님께서 제자들, 사도들, 선지자들에게 해주신 예언의 말씀 계시의 말씀들이기 때문에 버리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걸통해서 우리에게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두고 꾸준히 묵상하고 연구하고 탐구를 하셔야 합니다. 왜냐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실때에 과거에 말씀하셨던 계시들,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주십니다.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 안에는 성경도 포함되지만 성경을 뛰어넘는 다른 모든 것들이 포함됩니다.
예를들면 사역의 결정에 있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실때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는 것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로 우리 문화속에서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것으로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성령께서 새롭게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셔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새로운 성경을 쓴다라고 이해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깨달음과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주셔야합니다. 기록된 말씀 이외에 성령의 영감과 감동과 이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심으로 해서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3. 성령의 두가지 사역
- 기록된 말씀을 통한 사역과 기록되지 않은 가르침을 통한 삶의 인도(성령을 따라 사는 혹은 걷는 삶)
성령께서 새로운 깨달음 새로운 계시 새로운 인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해주시는데 과거에 주셨던 성경의 큰 원칙들을 깨부수는 법이 없습니다. 대 원칙과 함께 가도록 원리를 따라서 움직이십니다. 말씀은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 항상 중심에 섭니다. 그리고 굉장히 우월합니다.
한 개인이 살다가 하나님으로부터오는 음성을 들었다거나 인도를 받았다거나 깨달음을 받았다거나 교회가 어떤 결정을 할때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에 반해서 결정할수 없습니다. 과거의 성경의 말씀에 반해서 성령님께서 지금 가르치실수 없습니다. 말씀이 항상 중심에 서는 것이고 말씀이 우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5-33 성령의 사람 선지자 시므온.
시므온이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성령이 항상 그 위에 머물렀더라. 그리고 어느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는데 하나님의 구원을 보기전까지는 네가 않죽을 것이다. 라는 감동이 오고 그 감동을 따라 성전으로 갔습니다. 성전에 온 아기가 많았을겁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알아보고 감동스러워서 찬양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시므온과 같은 감동이 여전히 임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더 내려놓고 의탁하고 순종을 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나를 사용하시는데 그럴때 성령의 손길이 더 강해집니다.
*사도행전 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스데반이 다른 율법학자들과 논쟁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스데반 한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기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1:1-4, 11-14; 20:22-27(현재 계시되는 성령의 감동)← 9:16 (과거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
*행21: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 바울은 과거 명백하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근거로 현재 계시되는 성령의 감동을 판단함
-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라는 대 원칙을 통하여 이 후의 모든 계시들을 판단함 ; 물론 바울 자신의 계속되는 묵상과 기도 그리고 성령의 계시들이 있었음 ;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의 교회들과의 열린 대화가 있었음.
-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예언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과거에 계시된 뜻들 혹은 성경의 대원칙들과 상충되지 않음.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통해서 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성경공부를 통해서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영역을 포함해서 옵니다. 여러분이 기도할때에 성령님께서 목사님들이나 교우들이나 가족들을 통해서 혹은 성경의 이해를 통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주실텐데 그럴때 여러분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내 교회를 향한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게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합니다.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닌 같이 교제하며 결정해야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이 여러분에게도 계시기 때문에 같이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결정해야합니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헬라어는 페리파테오입니다. 원래 의미는 성령과 함께 걸으라는 의미입니다. 행진을 할때 옆에 앞에 있는 뒤에 있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그사람의 발자국을 느끼면서 소리도 들으면서 맞추어서 갑니다. 성령과 함께 걸으라고 하는 의미도 그것입니다. 성령님하고 나하고 같이 인생을 걸어가는데 이분이 어느 보폭으로 걸어가는지 어느정도로 손을 올리는지 어느정도로 발을 올리는지 살짝 보면서 거기에 맞추어서 걸어가라는 겁니다. 행진을 할때 훈련을 많이해야 같이 걷는법이 몸으로 자연스럽게 터득됩니다. 성령님과 같이 걷는 법을 계속 훈련을 해야 성령님의 보폭이나 움직이는거나 말씀하시는 것을 예민하게 듣고 반응을 할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데 잠깐 은혜받고 잠깐 은사받고 잠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성령님과 걸어지나요? 평생을 통해서 계속 걸어가고 함께 가고 헌신하고 순종하고 말씀을 듣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갈 때 그게 가능한겁니다.
4. 참 된 성령의 사역의 증거들.
1) 하나님은 고린전서 14:33절에 보면 질서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도 질서와 평화의 하나님이시고 굉장히 균형을 좋아하십니다. 여러분과 교회중에서 혹시 은사론에 빠지거나 은사중지론에 빠지거나 말씀주의에 빠지거나 치료에 빠져서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려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않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을 보면 균형이 잘 갖춰졌습니다. 이성적으로 건전한 판단을 하고 감성적으로도 뜨겁고 영혼도 뜨겁고 머리도 건강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가장 많았던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들은 신령한 자라고 부를수 없고 젖먹이에 불과하다 왜냐면 교회안에서 방언하고 예언하는데 질서가 없고 균형이 무너지고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너희는 영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해서 고린도전서 3장에서 너희는 아직 젖이나 먹어야 된다. 말씀 먹으면 않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2) 성령님의 또다른 이름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더 주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는 곳일수록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십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하나 앉아있습니다. 그가 바라볼때 베드로가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성령께서 역사를 하시는데 베드로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지않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합니다. 성령이 참되게 역사하는 곳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 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3) 참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때에는 성령의 은사가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 우리안에 새로운 성품이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 형편없는 사람이 성령충만해질수 있습니다.(바울) 인격이 엉망인 사람도 예언의 은사나 방언의 은사가 주어질수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가 주어졌다고 해서 신앙의 성품이 성숙해졌다는 증거는 될수 없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인격이 형편없는데에서 변화가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면서 인격의 성숙이나 성장이 없을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성령충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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