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언서 17권의 요약
A. 서론
구약성서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책들, 즉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이 중에서 애가와 다니엘은 성문서를 연구할 때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모두는 15권의 책으로 예언서라고 부른다.
예언서 중 이사야(66장), 예레미야(52장), 에스겔(48장)은 히브리어 사본에서 한 두루마리 전체의 공간을
필요로 하기에 충분한 길이가 된다.
그래서 이 세 권을 대 예언서라고 부른다.
나머지 열두 권은 길이가 비교적 짧다.
열두 권 중 가장 긴 두 권은 호세아와 스가랴인데 모두 14장이다.
그리고 가장 짧은 장은 한 장으로 된 오바댜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열두 권의 책을 소 예언서라고 부른다.
1. 예언자 이해
구약성서 안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있다.
이들 예언자를 지칭하는 단어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나타난다.
'호제'(hoze), '로에'(roe), '나비'(nabi)이다.
먼저, '호제'와 '로에'는 그 말뜻이 선견자로 번역될 수 있다.
'로에'는 '본다'라는 뜻이며, '호제'는 '환상을 보다' '꿈을 꾸다'라는 말이다.
일차적인 뜻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보는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나비(Navi 혹은 Nabi)'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카디안어의 나부(Nabu)와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본다.
( Nabu는 '부른다' '알린다'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나비'를 '부름 받은 자' 혹은 '알리는 자'로 이해하고 있다.)
언어상으로 구약의 예언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출애굽기 7장 1절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신할 아론을
나비의 역할을 담당케 하신 곳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때의 나비는 대언자로 해석된다.
따라서 예언자는 미리 점치는 점성술이나, 복술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어느 사람에게
부탁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사명은 현재 일이나 미래의 일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이 말하라고 명하고 위탁하고 맡긴 말씀을 전한다.
그것이 예언자의 사명이다.
즉 예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의 주된 임무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고해 주는 일만이 아니었다.
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을 하나님과 같은 시각에서 그 상황을 보고
하나님의 판단을 선언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주로 한 일은 백성들이 잘못한 일로 인하여 파멸을 당하지 않도록 회개를 촉구한 것이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하게 지켜 진실 된 삶을 살 것을 계속적으로 촉구하였다.
구약의 예언자를 오늘 설교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예언자들은 오늘날 어느 계층보다도 설교가들을 더 닮았다.
차이점으로는
1)교회를 가지고 있지 않다.
2)특정한 회중이 아닌 어쩌면 예언을 거부하는 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3)교회 조직과 같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다.
예배분위기 다른 환경에서 메시지를 전했다.
4)청중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찾아다니며 예언한다
(시장어귀, 왕과 일대 일로 대면).
5)전달방법은 몇 마디 말, 글 등을 사용하여 전달하였다.
2. 초기 예언자들
역사서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등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예언자이다.
나단은 다윗왕의 죄를 지적하고, 왕위 계승은 아도냐가 아닌 솔로몬이라고 예견하였다.
아히야-여로보암 1세때 여로보암에게 나라를 분리하도록 자극을 준 사람이다.
스마야-여로보암에게 군대를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하고,
유다가 시삭을 침략을 받을 것을 예언하였다(왕상12:24, 대하12:8).
예후-바사왕을 정죄하고 여호사밧 왕을 책망하여 여호사밧 왕의 통치에 대하여 기록을 남겼다(하나니의 아들).
이름모를 예언자-아합왕이 외국과 동맹 맺는 것을 책망하였다.
미가야-길르앗 라못에 재앙이 있을 것을 예언한 이믈라의 아들이다.
야하시엘-요호사밧에게 전쟁을 일으키도록 자극을 주었다.
엘리에셀-여호사밧이 외국과 동맹을 맺는 것을 정죄하였다.
이름모르는 젊은 예언자- 엘리사의 대리자로 예후를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
또한명의 이름 모르는 예언자- 아마샤왕이 용병을 사용한 데 대하여 책망하였다.
이들 예언자들의 특징 중 첫째로는 끊임없이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갖는다.
둘째는, 자기들 민족의 복리는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 하는 데 달려 있다고 믿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예언 운동의 시조라 할 만큼 예언자가 해야 할 기본적 사명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예언자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며 어떠한 분이냐 하는 신관의 문제를 분명히 가르치는 사람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느냐 하는 윤리의 문제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이다.
또 이스라엘이 한 민족으로서 어떤 역사적 사명을 가진 것인가 하는 민족 책임 문제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다.
엘리야 이후 예언자들은 활동시대와 강조점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모두가 엘리야가 문제 삼고 중요시한
신앙의 문제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사마리아에서 예언한 것이 특징이다.
나머지는 남 유다에서 예언을 했다.
이사야와 미가는 주전 8세기 중반에서 말까지 유다가 번영하여, 도덕과 윤리가 부패하였을 때 활동했다.
에레미야-두 사람보다 늦게 나타났다.
주전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서 바벨론 망하게 될 때까지 예언 활동을 하였다.
3. 문서 예언자들
1)주전 8세기 예언자
아모스(주전 750), 호세아(주전 740), 이사야(주전 742-700), 미가(주전 722-701).
2)주전 7세기 예언자
나훔(주전 612), 스바냐(주전 628-622), 하박국(주전 605), 예레미야(626-587),
3)포로기 예언자(587-538)
에스겔(593-571), 제2이사야(540), 오바댜(포로기 중)
4)포로기 이후(538년 이후)
학개(520-515), 스가랴(520-515), 제3이사야((500), 요엘(500-350년 사이 중에), 요나(포로기 중), 말라기(500-450년 중에)
예언자들은
1)이스라엘 신앙의 대변자이며,
2)민족의식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고 개혁하는 개혁자들이라 말할 수 있다.
아모스는 정의를, 호세아는 사랑을, 이사야는 믿음을, 예레미야는 새 마음을 주장하였다.
이들 모두가 조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 활동하였다.
예언자들의 특징적 행위는 황홀경에 빠지고, 음악에 영향을 받고, 대중심리의 영향을 받는다.
때론 모든 긴장을 풀어 버리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
이사야는 나체로 예루살렘 거리를 뛰어 다녔으며 신발도 신지 않았다(사 20장).
예레미야는 나무로 만든 멍에를 자기의 목에 매달고 돌아 다녔다(렘 27장).
떼를 지어 살기도 하였다.
이것을 예언자 학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모든 예언자가 다 모여 산 것은 아니다.
집에서, 성소에서, 왕궁에 속하여 예언한 자도 있었다.
B. 주전 8세기 예언자
1. 아모스
구조. 아모스서는 8장으로 된 책이며, 네 부분으로 나뉜다.
1-2장 : 세계 열국에 대한 탄핵(심판선언)
3-장 :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
7-장 10절 : 심판의 이상(5가지 환상)
9장 11-15절 : 회복의 약속
활동 연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로 주전 750년경이다.
당시 남 유다에는 웃시아왕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모스는 구약의 예언자들 중 특색 있는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문서 예언자(Writing Prophet)의 처음 사람이며, 12소선지자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단기간(短期間)의 예언활동을 한 사람이다.
아모스의 생애는 그의 고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목자요 뽕나무를 기르는 자"(7:14)라는 말을 통하여 그가 농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인 아모스를 불러 북이스라엘에게 예언하였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치리 하에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정치적, 경제적, 군사력에서 이전의 왕들보다 단연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부는 지배계급에 해당된 것이었으며,
가난한자와 힘이 없는 농촌의 농부들에게는 "가난한 자는 신 한 켤레에 팔렸고
농부들은 그 가족과 함께 팔렸다"는 9장 이하의 현실이 적용되었다.
그렇지만 부자들은 여름 피서지와 겨울 별장을 두었으며(6:4),
그 여인들은 절제함이 없이 낭비와 정숙하지 못한 행동을 하였다(4:1).
메시지
북왕국 이스라엘은 번영하는 모습 속에서 부패한 종교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팽배하였다.
이 때 아모스는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려 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5:2)고 외치면서 정의의 하나님을 전하고 거룩하신 뜻을 따르라고 외쳤다.
그의 메시지의 중심은 "정의와 공도(公道)"였다.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5:24).
이 말은 그의 예언을 대표하는 말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였으며, 공동체의 사회정의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2. 호세아
구조.
1)1-3장 :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
2)4-9장 : 이스라엘의 죄와 책망
3)10-14장 : 이스라엘의 죄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
활동 연대
호세아는 아모스보다 약 5~10년 정도 후대인 주전 745년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메시지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는 여로보암 2세가 죽은 뒤 정치적 안정기가 끝나고 극도의 혼란기였다.
우상은 나라 안에 가득하고(4:12이하, 7:1이하, 9:1이하), 종교의 부패는 극심하였다.
호세아서는 호세아의 가정생활을 통하여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지만 고멜은 세 자녀를 낳고 떠나버린다.
그러나 그는 부정한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그녀를 맞아들인다.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생활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예언자의 상징적 행동"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결혼한 여인이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멜을 다시 맞아들이듯이 하나님께서도 부정한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다시 맞아주신다는 것이다.
호세아에게 있어서 종교란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복종하는 일이었다.
죄란 이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불신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배은망덕한 죄에 대한 심판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고멜이 용서받듯이 심판은 죄의 처벌의 차원을 넘어서서 구원을 위한 출발이며, 진통이다.
그러므로 호세아에게 있어서 심판은 단지 파괴와 멸망이 아니라 구원과 속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3. 이사야
이사야서는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1-39장 : 이사야
40-55장 : 제2 이사야
56-66장 : 제3 이사야
이사야서를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위와 같은 3부분이 시대적인 배경이나 중심사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구분을 놓고 학자들 간에 오랜 세월 동안 논란이 되었다.
이사야서의 구조(1-39장).
1)1-12장 :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
2)13-23장 : 이방인과 이방국에 대한 예언
3)24-27장 : 이사야의 묵시
4)28-35장 :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5)36-39장 : 역사적 배경(왕하18:13~20:19)
이사야의 활동.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예언자 아모스와는 다른)이며, 주전 8세기 중엽, 남유다에서 활동하였다(742-700).
그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세 왕에 걸쳐 40여년간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유다 왕국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소명을 받았고, 요담 왕과 아하스를 걸쳐,
히스기야 왕때 앗수르 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까지 계속 활동하였다.
메시지
초기 활동(742-734): 이 기간은 주로 요담의 치세 기간으로 비교적 안정되고 풍요로운 시대였다.
따라서 아모스와 호세아 처럼 유다의 교만, 탐심등 죄악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야훼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이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1:4).
이사야는 유다의 병패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였다고 보았다.
이들은 부를 축적하기에 급급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등한이 하고
마술사와 점쟁이들의 유혹에 걸려들었고 관리들도 과부와 고아의 신원을 보호하는 대신 뇌물에 눈이 어두웠다(1:23).
이사야는 시리아 - 에브라임 전쟁 때 아하스가 앗수르에 원군을 요청한 것을 비판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강조하였다(임마누엘 예언신탁, 7:10-17).
두 번째 시기, 잠정적 은둔 기간(734-715년) :
아하스가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자 그의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에 들어간다(8:16-17).
이 시기에 그는 제자에게 글을 남기게 된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이라"(8:16).
세 번째 시기(715-705) : 중기 활동으로, 아하스가 죽고 히스기야가 즉위하자 그는 다시 공적인 활동을 한다.
이 시기에 북쪽의 사마리아와 다메섹 도시는 앗수르에게 패배하였고,
711년에는 앗수르에 반기를 든 이집트-팔레스틴의 동맹국들이 패배를 해 블레셋의 아스돗이 파멸 당했다.
이 때 이사야는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를 다니는 상징적 행위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무력을 의지하여 반란을 계속한다면
포로로 끌려가는 불행을 겪게 될 것을 경고하였다.
네 번째 시기, 후기 활동(705-701) : 히스기야가 앗수르에게 반기를 들어 다른 나라들과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였다.
이사야는 바벨론이나 이집트도 믿을 것이 못되며 이들과의 동맹은 '죽음의 계약'(28:15)이라고 불렀다.
그보다는 오히려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라"(30:15)고 선포하였다.
이사야의 예언의 특색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세계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유다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체적인 세계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계의 완성을 바랐던 것이다.
이사야는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만국 평화의 웅장한 시를 썼다(2:1-4).
2)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득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아모스가 의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호세아가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한 것처럼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거하였다.
그가 증거한 하나님은 이상적인 윤리적 실재로 유일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죄에 대하여 국민과 함께 공동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
이사야에 있어 거룩하신 하나님은 한층 더 윤리화되어 체득되었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3)남은자'와 메시아 사상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국민에게 전할 사명을 받은 이사야는 조국의 참담한 죄상과 장차 올 심판을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어두웠지만 소수(少數)의 '남은 자'가 있어
하나님께 돌아와 믿음으로 새 출발 하리라 믿었으며(10:20-22),
이러한 희망은 메시아가 나타나 유다뿐 아니라 온 세계,
그리고 자연계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오실 것이라는 것이다(9:1-7, 11:1-9).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의 예언자로 일컬어지며,
구약의 최대 예언자로 평가된다.
4. 미가
구조.
미가서는 준엄한 심판의 말씀과 희망의 말씀이 교차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1)1~3장 : 심판의 말씀
2)4~5장 : 희망의 말씀
3)6~7장 7절 : 심판의 말씀
4)7장 8절~20절 : 희망의 말씀
활동 연대.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였다(722-701).
이사야가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왕가(王家)와 가까이 지낸 것과 달리
미가는 유다 지방의 작은 마을인 모라셋(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40킬로 정도 떨어진 마을) 출신이었다.
메시지.
미가는 독립심이 강한 농촌 사람으로서 부패한 도시문명을 신랄하게 공격하였다.
이사야는 시온(예루살렘)이 망하지 않으리라고 믿었지만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은 물론 성전까지도 포함된다고 하였다.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3:12).
이 예언은 한 세기 후대 사람인 예레미야에 의해 다시 인용되었다(26:18).
미가의 예언은 정의, 사랑,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함이 아니냐"(6:8).
미가는 당시 경제의 어려움이 공의를 행하지 않는 두령과 치리자,
그리고 채권자들,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한 것이며
정의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선포하였다(2:2, 3:1~3, 7:3~4).
미가는 메시아 예언에서 이사야처럼 왕의 후손으로 올 것을 말하지 않고
평민 가운데서 미천한 몸으로 날 것을 말하였다(5:2~5)
C. 주전 7세기 예언자
1. 스바냐
구조.
스바냐서의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1장 : 여호와의 날의 선언
2)2장 : 여호와의 날에 대한 경고
3)3장 1~7절 : 여호와의 날의 심판
4)3장 8절~20절 : 여호와의 날의 축복
이처럼 스바냐의 예언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이다.
활동 연대.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후손(유다왕 히스기야일 가능성이 많다)이었으며 유다의 요시야 왕때 활동하였다.
그가 종교의 부패를 크게 공격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요시야의 종교개혁(주전 621) 이전에
활동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주전 628~622).
메시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직전에 유다왕국은 종교적으로 매우 혼탁하였으며
혼합종교로 전락해 있던 상황에서 스바냐는 "야훼의 날"을 선포하였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무서운 날이다. 유다에서 전쟁의 소리가 들릴 것이며(1:7, 12, 14~16),
다른 민족들도 그들의 사악한 길들로 인하여 징벌을 받을 것이다(2:5, 9, 12, 3:8).
그리고 유다에는 겸손하고 의로운 백성들이 남을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하에 살아갈 것이다(2:7, 3:12~13).
2. 나훔
구조.
두 부분으로 나뉜다.
1)1장 1절~2장 2절 : 하나님의 정의의 선언, 니느웨의 멸망.
2)2장 3절~3장 19절 : 하나님의 정의의 실증, 니느웨 함락의 실상
활동 연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기 직전(주전 621)에 활동하였다.
메시지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다.
그러나 현대의 지명은 정확하게 어디인지 모르며 예루살렘과 가사 중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의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하박국
구조
1)1장 1절~2장 5절 : 하박국의 항의와 하나님의 응답
2)2장 6~20절 : 하나님의 심판
3)3장 : 하박국의 기도
활동 연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세계의 통치자로 등장하던 때 하박국은 활동하였다(605).
메시지
하박국의 메시지의 배경은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직전인 주전 605년 경으로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그들의 나쁜 습관에 빠져들고 있었다.
특히 하박국은 백성들이 보상과 형벌이라는 신명기적 원리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에 당황하였다.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이 의로운 행동과 악한 행동에 의해서 정확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한다.
질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오! 여호와여 유다에서 큰 악행들이 형벌을 받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나이까?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1:1-4, 1:13).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그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을 일으켜 유다를 칠 것이며
정한 때에 바벨론 사람을 심판 할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1:5-11, 2:1-4)라고 하셨다.
하박국은 모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징벌을 받을 것이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하박국의 마지막 장인 3장에는 구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시로서 끝을 맺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는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즉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3:17-19).
4. 예레미야
구조
1)1~25장 : 유다의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말씀
2)26~29장 : 예레미야에 관한 전기적 기록
3)30~35장 : 희망의 말씀(31:31~34, 새계약)
4)36~45장 : 예레미야의 수난 기록
5)46~51장 : 이방 외국에 대한 심판의 말씀
6)52장 : 유다 왕국 멸망에 관한 역사적 기록
예레미야서는 후대에 여러 차례 복잡하게 편집된 문서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 자신이 기록한 예언의 부분과 제자 바룩이 쓴 예레미야의 전기가 압도적이다.
그의 예언은 그 후 제2이사야에게 영향을 미친것으로 알려진다.
활동 연대(627~587)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3마일 정도 떨어진 것에 위치한 아나돗에서 출생했다(렘1:1).
이때는 므낫세왕의 통치 말기에 해당되며 요시야 왕 제13년(B.C. 627(6)년경)에 20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는 아비아달(8의 후손인 힐기야 제사장의 아들이었다.
예레미야의 예언사역은 약 40년간(627-587) 지속되었으며 587(6)년 예루살렘 함락과 더불어 붙잡혔다가
친바벨론 인물이라고 석방되었고,
그 후 바룩과 더불어 이집트로 도피했다. 그는 이집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였으며
그의 소식은 여기에서 끝이 나는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의 비극은 한 개인으로서 겪게 되는 개인적 성격의 것이 아닌 민족적인 슬픔을 경험하고 그 슬픔을 남겨 놓았다.
그의 생애 중 커다란 2대 사건은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과 예루살렘의 함락이다.
그는 이사야와 더불어 구약의 최대 예언자로 불린다
시대적 배경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였고, 앗수르는 612년 신흥 바벨론에게 패망하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605-562 B.C.)은 근동의 여러 나라를 수하에 넣은 뒤,
그 동안 힘이 미치지 못한 남쪽지역인 애굽 지역마저 손에 넣으려 했다.
이때 애굽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팔레스타인을 정복하고자 하여
605년 유다의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부왕의 위급한 소식을 듣고 그의 군사들과 함께 철수하였다.
그러나 20년 후 또다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이때가 유다왕 시드기야 9년인 587년 10월이었다.
이 전쟁은 육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치러졌으며 결국 바벨론에게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만다.
이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예루살렘과 성전은 온통 정복자들에게 약탈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메시지
에레미야는 유다의 부패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심판이 다가옴을 말했다.
불의를 자행하고, 계약을 깨뜨렸고, 회개하기를 거부함으로 북쪽의 세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의 예언 활동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
1)남은 자 : 무화과 두 광주리에 대한 환상(24:1-10)에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존재하는 두 가지 남은 자들을 보았다.
하나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향에 남아 있었거나 애굽으로 달아났던 사람들이다.
특히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간 포로들에게 희망을 선포했다.
남은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31:17).
2)새 언약 : 예레미야의 예언 가운데 가장 독특한 부분은 새 언약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계약은 돌판이나, 글로 써서 기록했지만 이제는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보라 새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1~34)
예레미야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개인의식이 뚜렷하여 하나님 대(對) 자기(自己)라는
개념이 명백하다는 것이다(20:7~9절 참고).
D. 포로기 예언자
1. 에스겔
구조
1)1~24장 : 심판의 말씀
2)25~32장 : 이방 외국에 대한 말씀
3)33~48장 : 희망의 말
활동 연대
에스겔서는 그의 활동과 관련하여 13회의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그가 예언자로 소명을 받은 것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온 지 5년째 되던 해 4월 5일이었다(1:1~3).
이 때는 주전 593년이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활동은 "제 27년 1월 1일"(29:17)로 기록되어 있다.
주전 571년의 일이다.
따라서 그의 활동 연대는 주전 593~571년이다.
에스겔은 포로지인 그발 강변에서 22년 동안 활동하였다.
메시지
유다왕국이 멸망하기 직전인 593년에서 587년 사이에 선포된 예언은(1장에서 24장까지)
유다백성의 죄에 대한 책망과 임박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
그리고 에스겔은 백성들이 회개하여 죄의 길에서 돌아선다면
하나님께서 예정된 징벌을 취소하신다는 것이다(18:30-32).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유다 왕국은 멸망한다.
주전 587년 유다의 멸망은 예언의 방향을 바뀌게 한다.
죄에 대한 심판과 책망에서, 이제는 희망을 말한다.
심판 후에 일루어질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말한다(33장부터).
에스겔은 다시 재건 될 새 성전, 새 예루살렘,
그리고 새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었다(40장-48장).
그리고 "마른뼈 골짜기의 환상"(vision of the valley of dry bones)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포로지에서 마른 뼈와 같은 처지가 되었지만은,
하나님께서 다시 "부활"(이스라엘의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37장).
2. 제2 이사야
구조
1)40장 1절~11절 : 아훼의 오심(서론)
2)40장 12절~44장 23절 : 제2이사야의 구두 신탁
3)44장 24절~45장 13절 : 고레스에 관한 신탁
4)45장 14절 ~55장 15절 : 제2이사야의 문서화된 시
5)55장 6절~13절 : 야훼의 은총(후기)
활동 연대
제2이사야에 해당하는 40장~55장은 그 내용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희망의 글이다.
따라서 그가 활동한 시기는 포로기간으로 보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또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도 알 수 없다.
메시지
제2이사야의 핵심 메시지는 "새 출애굽"의 꿈이었다.
새 출애굽이란 바벨론포로 생활에서 고국으로 귀향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고난의 종의 노래이다.
그 귀절은 다음과 같다.
1)42:1~4
2)49:1~6
3)50:4~9
4)52:13~53:12
위의 시 중 마지막 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학자들의 논제는 이 고난의 종이 정확하게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집중되어 왔으나
아직까지도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3. 오바댜
구조
구약 예언서 중 가장 짧은 1장의 책이다.
1)1절~16절 :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
2)17절~21절 :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희망의 말씀
활동 연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포로기 기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것 같다.
메시지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들인 것으로 전해지는 데,
아우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구약의 곳곳에서는 그 기록이 남아있다(시137:7, 신23:7-8).
에돔이 이스라엘로 부터 독립한 것은 주전 743년의 일이다.
그리고 에돔은 이스라엘의 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에돔을 향하여 오바댜는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한다.
E. 포로기 이후 예언자
1. 포로기 이후 역사적 배경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은 뚜렷한 주권을 갖은 국가형태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팔레스틴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정치적 변화에 큰 힘을 입은 것이었다.
즉 바벨론이 고레스에 의해 평정되고, 고레스의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정책이 칙령을 통해 발표되자
팔레스틴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전의 국가들에 의해 포로로 끌려왔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 것이다.
따라서 팔레스틴 내부에서도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남아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의 공동체를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노력은 포로민의 귀환과 성전재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공동체의 재건은 주로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이 중심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다가 팔레스틴내에서 기득권을 잡은 사람들과 갈등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이 갈등의 모습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관계에서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유다지방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해왔다가 옛 주인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귀환민들이 대 페르시아 제국, 황제의 칙령을 토대로 작업에 나섰으므로
반대자들은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새롭게 펼쳐지는 그 과정에 자신들도 개입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거절당하고 만다.
이외에 또 하나의 문제는 성전재건에 필요한 재원 문제였다.
고레스의 약속에 의해 원조 받았던 재원은 팔레스틴이라는 약소민족의 성전재건에 대한 것이므로
곧 그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원조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522년 다리우스의 등극으로 인한 혼란에서 오는 정치적 기회와 예언자 학개 등의
독려로 인하여 성전재건 작업이 착수된다.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 상태는 다음과 같다.
주전 587년에 반란으로 인해 유다 땅은 황폐해졌다(렘 30:18, 32:43).
예루살렘이 점령되었을 때, 방어선이 무너지고(왕하 25:10),
성전과 왕궁 및 부유층의 저택은 불 타 버렸다(왕하 25:9).
성전의 놋쇠 집기들은 파손되었고, 값나가는 그릇들은 가져가 버렸다(왕하 25:13-17).
제사장들도 살해된 지도자 중에 포함되어 있었으며(왕하 25:18-21),
다른 사람들은 포로가 되었다(렘 39:9, 비교. 스 2장, 느 7,8장).
이런 상태의 예루살렘 상황에서 제의가 이루어지기는 힘든 상태였으며,
제의가 이루어졌다 해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학개가 활동하던 역사적 시기는 포로기 이후로 페르시아 고레스왕이 칙령을 통하여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국으로 귀환을 허용했던 때이다.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재건을 허락 받았으며 성전 재건에 필요한 기물도 가지고 가도록 허락했다.
귀환자들은 세스바살의 지도하에 복귀하였다(에스 1:11).
귀환자들 중에는 후임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대사제로 임명받은 사독가문 출신 여호수아가 있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전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성전재건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어려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 중 첫 번째 어려움은 사마리아와의 갈등으로 나타난다.
사마리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성전재건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성전재건을 반대하였다.
두 번째 어려움은 성전재건에 필요한 재원 문제이다.
페르시아 왕실이 약속한 원조가 제 때에 제공되지 않았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아
성전 건축에 많은 어려움이 초래되었다.
이에 따라 성전은 기초공사 이상 더 진척되지 않았으며 건축이 중단된 상태였다.
세 번째 어려움은 유다인들 스스로가 성전건축 규모 등에서 실망한 것에서 나타난다.
귀환 당시 가졌던 의욕이나 희망을 잃어버리고 성전건축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시대에 포로기 이후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과 밀접한 예언을 하면서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개 스가랴의 메시지가 성전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2. 학개
학개의 연대는 1장 1절에 다리오왕 2년 6월로 되어 있다.
마지막 신탁은 2장 20절에 '그달 14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학개의 활동은 4개월의 짧은 기간에 국한된 것이다.
그의 개인적 신상에 대해서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학자들은 그가 그의 이름이 축제와 관계있기에 제의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찾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성전재건파의 일원으로 보기도 한다.(3
구조
1)1장 1-15절 : 성전재건 촉구
2)2장 1-9절 : 새로운 성전에 대한 강조
3)2장 10-14절 : 이방 사마리아에 대한 거부반응
4)2장 15-19절 : 성전건축에 따른 결과(축복)
5)2장 20-23절 : 이스라엘 앞날에 대한 예고
학개서는 성전재건을 재 촉구하는 예언자의 신탁(1:2-11)과
그 사업의 지속적 추진을 촉구하는 예언자의 신탁(2:2-9; 11-19)로 나뉘어져 있다.
학개에 대한 보도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의 활동 시기는 1장 1절의 '다리오왕 2년 6월'이라는 보도를 통해
그가 주전 520년, 즉 포로귀환 후 예루살렘에서 예언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학개의 신분에 대해서는, 그가 성전재건에 대한 지속한 관심,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해 질문한 것 등의 표현을 통해 그가 성소와 관련된 제의 예언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학개의 신분에 대한 것 중 논란이 되는 것은 학개가 포로지에서 돌아온 사람인가,
아니면 포로귀향민이 아닌 거류민인가 하는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학개가 포로지에서 돌아온 자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지에서 해방과 함께 야훼의 영광이 다시 그들에게 임하고,
유다 공동체가 화려하게 복귀되리라는 꿈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포로지에서의 예언대로 현실은 맞아떨어지지를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개는 성전재건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유다 공동체 재건의 구상을 펼치고 있다.
메시지
1)성전재건의 필요성
학개서 전체를 통해 볼 때 학개의 메시지는 성전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성전이 재건되지 않았기에 이스라엘은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성전이 재건되면 모든 부귀 영화가 곧 도래할 것을 예언하므로
학개가 얼마나 성전 중심체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2)스룹바벨에 대한 메시아 기대
학개의 마지막 신탁(2:20-23)은 유대 총독 스룹바벨에 대한 것이다.
학개는 스룹바벨이 야훼의 택함을 받은 인(印)이라고 말한다(2:23).4
실제로 스룹바벨은 페르시아 당국이 임명한 유대 총독이었다.
학개가 스룹바벨을 통해 실질적인 유대의 국권을 회복하려는 계기로 삼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개는 오히려 성전이 재건되면 야훼의 영광이 그 위에 있고
다윗을 야훼의 종으로 삼으신다는 에스겔의 신학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학개는 유대공동체의 재건을 포로기 에스겔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신정 체제를 이어나가려 했다고 볼 수 있다.
3)사마리아와의 분리주의
학개 2장 10절에서 14절은 부정한 성물과 부정한 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12절에서는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에 닿았다고 해서 그 부정한 것이 거룩하게 되지 못하며,
13절에서는 부정하여진 것은 다른 것이 닿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부정의 전염성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부정한 것은 곧 사마리아인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와 같이 포로기 이후 유대 공동체 재건 구상에 대한 학개의 입장은 성전 중심의 신정 체제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학개의 구상은 그의 예언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더욱이 메시아로 기대되었던 스룹바벨은 얼마 못 가 페르시아 정권에 의해 숙청되고 만다.
예언의 중심사상.
예언자 학개는 성전을 폐허로 방치한 체 자신들의 집에만 안주해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힐책 한다(1:4).
그리고 백성들을 격려하면서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하도록 촉구한다.
더 나아가 야훼가 시온을 자기 통치 중심지로 삼았으며,
이방 민족들을 몰락시켜 그들의 보화로 성전을 가득 채워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화려하게 꾸밀 것이라고 하였다(2:1-9).
그리고 유다 총독 스룹바벨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새로운 이스라엘과 뭇 민족을 다스리는 주권자라는 것을 선포하였다(2:20-23).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본토에 남아있는 자들을 부정한 자들이라 하여
철저히 배제할 것을 주장하는 분리주의자적 입장을 취했다(2:10-14).
결론: 사회상을 반영하는 구절들
1장 2절. 4절에 나오는 사람들은(소수 부유층) 아직 성전을 지을 때가 아니다 라고 말함으로서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기존 체제(성전이 없는 상태)를 고수하려고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1장 4절. 성전이 무너졌지만 소수 부유층은 나무로 지은 좋은 집에 살면서도
성전을 건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개는 이를 지적하였다.
1장 6절. "씨를 많이 뿌렸어도 수학은 적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취하지 않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품꾼은 그 삯을 받아도 구멍 난 전대에 넣을 뿐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당시 가난한자들의 현실을 잘 알 수 있다.
씨를 많이 뿌렸지만 씨를 뿌린 자에게 돌아갈 몫이 적으며, 먹어도, 마셔도, 입어도,
항상 부족함을 느껴야만 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품꾼의 위치는 더욱 비참하다.
그들은 품삯으로는 삶을 영유해 가는데 있어 구멍 난 전대에 넣은 것처럼 부족할 뿐이다.
1장 10-11절. 그 당시 있었던 흉년으로 수확이 적었음을 알 수 있다.
학개는 그 원인이 자신의 풍요함만 추구하는 소수 부유층에 있음을 지적한다.
즉 하나님께서 부유한 자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백성을 외면 한체
자신의 풍요만을 추구하는 악을 범하였기에 이스라엘 전체에게 흉년과 기근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2장 10-14절. 이 구절은 학개가 제사장에게 두 가지를 질문을 하는 대목이다.
첫 번째 질문은 제사장이 만일 희생 제사에 드릴 제물로 택한 고기를 들고 가다가
그의 옷자락이 떡이나 포도주나 기름 같은 다른 음식물에 닿으면
그 닿은 음식물은 거룩한 음식과 간접적인 접촉을 했으므로 거룩한 것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거룩은 문자적인 의에서 전염성을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과 유사하나 정반대의 질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시체와 접촉을 했다던가 하는 이유로 인해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됐다면,
그리고 그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음식물들을 만졌다면,
그 음식물들이 그러한 접촉에 의해 부정해질 것인가 하는 것이 두 번째 질문이다.
제사장의 대답은 부정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의적인 부정은 전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의 교훈은 사마리아와의 관계에 대한 구절로 이해되어져 왔다.
즉 부정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건축에 참여하게 될 경우 거룩한 성소를 더럽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좀 더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12절은 학개가 잘못된 대상에 대해 실제적인 지적이다.
거룩한 것은 전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거룩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절은 두 번째 질문이며, 그 답은 부정한 것이 전염된다는 것이다.
이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유도하기 위한 누구나 아는 사실을 질문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결과로 그 시대가 불의가 만연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제의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불의이다.
14절에는 이러한 불의가 "이 백성" "이 나라" "모든 일"에 있어 만연되었음을 지적한다.
불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불의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빙자하여 특히 1:6절처럼
백성들을 착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지금까지 학개서에 나타난 사회상을 개괄하였다.
학개가 예언하던 시대는 백성들이 시대적인 어려움에 편승하여 그 어려움이 더욱 고조되었으며,
예언자 학개는 이들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야만 했던 민족적인 어려움은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는 악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악에서 돌이킬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학개는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예언자 학개는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백성의 편에 서서 예언을 하였기 때문이다.
3. 스가랴
스가랴서는 묵시문학적 성격의 책이기 때문에 본서에서는 묵시 문학적 시각에서 스가랴서를 설명하고자 한다.
스가랴 1장1절에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느헤미야 12장 4절에는 주전 520년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제사장 명단에
잇도라는 이름이 수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12장 16절에는 스가랴가 잇도 제사장 가문의 수반으로 기록되어 있다.
1)제1 스가랴: 1장-8장
구조
1:1-6 서론
1:7-6:8 8개의 밤 환상
1:7-15 첫째 밤 환상-붉은 말을 탄 기사
2:1-4 둘째 밤 환상-뿔과 대장장이
2:5-9 셋째 밤 현상-예루살렘 측량
3:1-7 넷째 밤 환상-하늘 법정
4:1-6(4:10-14) 다섯째 밤 환상-등불과 올리브 나무
5:1-4 여섯째 밤 환상-저주의 두루마리
5:5-11 일곱째 밤 환상-말 속의 악
6:1-8 여덟째 밤 환상-병거와 말
7:1-8:19 금식에 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하는 예언의 말
스가랴서 1-8장은 묵시적 단편으로서 묵시적인 여덟 개의 밤 환상과 예언적 말들,
그리고 예언자적 역사해석이 전제된 권고인 서론으로 되어 있다.
스가랴의 예언활동은 최소한 주전 520년 여덟째 달부터 주전 518년 아홉째 달까지를 포함한다(1:1, 7:1).
이 시기는 페르시아 식민지 시대로서 다리우스 1세가 제국의 왕권을 차지한 초기 시대였다.
스가랴의 예언은 학개와 마찬가지로 성전 재건에 대해 강조하는데,
성전재건의 이유를 이상적 왕국 유다의 재건과 관련시킨다(슥 8:12, 20-23).
스가랴는 기존사회의 재편을 전재하면서 성전재건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시 유다 지역은 사마리아 지역의 지배층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부유층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마리아와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 필요했다.
요컨대 유다지역의 기존 권력집단은 사마리아 지배층과 동일시 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백성을 속이고 공정치 않은 재판을 행하였다(슥 8:17).
이것은 아마도 농민의 토지를 빼앗아 자기 소유로 만드는 행위를 수반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왜냐하면 구약성서에서 부정한 재판은 곧잘 권력자들의 이러한 토지 착취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지역에서 성전재건이 의미하는 바는 사마리아 지배층의 세력을 배제하는 일 뿐 아니라
유다지역에서 기존의 권력층을 배제하는 일을 의미하는 사회적 재편이었던 것이다.
스가랴는 묵시적 언어를 사용하여 예언활동을 하였으며,
이런 표현 방식은 민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제2 스가랴: 9-11장
이 부분은 제2스가랴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시기는 마케도니아에 의한 페르시아 멸망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드락, 다마스커스, 하맛, 띠로, 시돈, 불레셋 등이 정복되었고(9:1-8),
그 정복자가 그리스임이 암시되어 있다(9:13).
다시 말해서 마케도니아가 시리아-팔레스틴 지역을 정복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이 책이 쓰여졌음을 암시한다.
특히 주전 331년에 있었던 사마리아 민중봉기가 구체적 배경이다.
제2스가랴는 그 당시 다시 일기 시작한 민중의 메시아 기대를 한껏 확산시키려 한다.
알렉산더의 전쟁은 하나님의 변혁행위의 서곡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인간을 무기로 삼아 불의한 역사를 극복하는 일을 벌이실 것이다.
이 불의한 일을 집행할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유다와 이스라엘의 백성들이다(9:13이하).
하지만 이들 중에는 기존 사회의 지배자들이 포함되지 않는다(10:3).
그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을 일삼았던 자들이다(11:4-5).
그들은 야훼를 들먹이며 이 일을 행했지만 도리어 야훼께서는 그들을 벌하시고 말 것이다(11:7).
이런 불의한 상황에서 예언자는 외친다.
야훼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실 메시아는 권력자가 아니다.
"그는 겸비하여 나귀, 어린 새끼나귀를 타고" 오실 것이다(9:9) 그 분은 왕족 출신도 아니고 사제귀족 출신도 아니다.
그는 바로 민중적인 존재였고, 민중적인 실천을 벌이실 존재이다.
그는 무기들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올 존재이다(9:10).
이러한 평화사상은 민중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사상이었다.
왜냐하면 권력자들은 민중을 마구 전쟁터로 몰아갔고,
정복자들이 지나가는 마을마다 남자들은 죽거나 노예로 끌려갔으며 여자들은 겁탈 당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생계수단인 농경지는 황폐해졌기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2스가랴는 정복자적인 메시아와는 상반되는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단 이 평화는 현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마케도니아의 군주도, 유다와 에브라임의 지도자들도
모두 심판의 대상에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9:13, 10:11,17).
3)제3 스가랴서: 12-14장
이 책의 내용도 제2스가랴서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제2스가랴서 보다는 후대의 것으로 본다.
제3스가랴서의 배경은 주전4세기 이후이며, 그리고 아마도 다니엘서의 형성시기보다 늦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에집트의 프톨레미 왕조와 시리아의 셀류커스 왕조의 통치시기로 볼 수 있다.
구체적 시기를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12장 10절 이하를 토대로 볼 때 이 상황은 '순교의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투쟁과 장렬한 투쟁이후 장례식이 암시되어 있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약탈당하고, 여자들이 겁탈 당하며, 주민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이다(14:1-2).
제3스가랴서의 배후에는 순교의 상황,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투쟁의 상황으로 짐작된다.
제3스가랴의 메시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 순간을 극복하는 데 메시아의 개입을 선포한다(13:8-9).
즉 하나님은 올리브 산에 거점을 정하고 나타나 온 세상을 둘로 갈라놓고 말 것이다(14:4).
그리하면 추위가 극복되고 밤이 극복되고, 메마른 땅이 극복되어 기름진 땅이 될 것이다(14:6-8).
이러한 유토피아 상에는 처절하게 착취당하는 농민의 염원이 소박하게 담겨 있다.
결국 구원은 민중을 착취하는 전제적 왕권이 재현되는 의미에서의 구원이 아닌 민중의 열망이 현실화되는 의미에서 구원이다.
제3스가랴는 현실의 고통스런, 암울한 투쟁 속에서 민중으로 하여금 '예정된' 승리를 향해
불굴의 의지로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3스가랴가 펼치고자 했던 묵시운동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4)결론: 사회상을 반영하는 구절들
스가랴서는 묵시서로서의 위치 때문에 백성들의 현실을 토대로 쓰여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스가랴는 당시의 어려운 현실에서 고난당하는 백성들에게 야훼의 임박한 개입을 알리고 있다.
7:9-12절(8:15-17). 이 절에서 스가랴는 불의한 재판과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한 사실과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무리한 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 마음이 금강석같이 단단하여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듣지도 않으려고 귀를 막았다.
스가랴의 8개의 환상은 위와 같이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지적과 심판에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이스라엘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불의를 행하는 소수 권력층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불의는 소수의 권력층에서 비롯되어 이제는 이스라엘의 모든 사회가
거짓 맹세와 해함을 도모함과 진실을 외면하기에 이른 것이다(8:15-17).
9:9-17. 나귀 새끼를 타고 등장하는 평화의 왕에 대한 묘사이다.
이 모습은 모든 백성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왕이며, 그 왕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사회이다.
이 평화의 날에는 이전의 압제하는 모든 세력을 꺽고(9:10), 갇혔던 자들을 놓아주며(9:11),
이전에 당한 불이익에 대한 보상이 있으며(9:12),
그리고 민족적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그 어떤 무리들도 제거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다(9:13-15).
10:2절.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는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여기에서 포로기 이후 사회에 거짓예언이 행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짓예언은 백성들을 압제하는 데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그 같은 체제를 공공연하게 인정하도록 하였다.
스가랴는 학개와 마찬가지로 포로기 이후 예언자의 특징인 제의에 대한 관심이 많았으며, 백성들의 편에 서서 예언을 하였다.
포로기 이후 예언자들이 희망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
학개와 스가랴는 포로기 이후의 이상적인 사회상을, 지금껏 압제 당했던 백성들이 회복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학개는 스룹바벨에게, 스가랴는 여호수아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신정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시대에 나타난 모습은 예언자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역대기사가가 그리는 포로기 이후의 이상적인 사회상은 신정적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중요한 두개의 기둥은 예루살렘 야훼 제의와 다윗왕 이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의 모습을 볼 때 제의적 공동체의 모습은 이루어졌으나,
다윗계통의 한 왕에 의해 왕국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대기사가가 바라는 신정적 메시아 상은
종말론적 희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대기 사가는 초월적이 아닌 다윗 왕국이 다윗 시대처럼 재건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러한 역대기사가의 사상은 포로기 이후 학개, 스가랴에게로 전달되고 있다.
그들의 메시지에서 다윗왕조의 재건에 대한 부분은 빈약하였지만 신정적 유대 공동체를 희망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4. 제3 이사야
구조
1)56장~59장 : 하나님의 훈계
2)60장~66장 : 하나님의 약속
활동 및 메시지
제3이사야는 포로기에 활동하였던 제2이사야의 제자로 추정된다.
그러나 제3이사야는 제2이사야와는 또 다른 역사적 정황에서 활동하였다.
제2이사야는 훗날 이루어질 포로귀환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제3이사야는 기대와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져 포로상태로 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귀향한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경제적 빈곤과 성전을 둘러싸고 일어난 주도권 싸움,
그리고 정치적 회복의 불가능이 많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3이사야는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창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였다.
"종말론적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5. 요엘
구조
두 부분으로 나뉜다.
1)1장~2장 27절 : 야훼의 날 내림(來臨)의 상징으로서 메뚜기 재앙
2)2장 28절 ~ 3장 21절 : 희망의 메시지(야훼의 날의 축복)
활동 및 연대
포로기 이후 페르샤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전 500~350년, 그 어느 시기에 활동했을 것으로 본다.
요엘서에는 참혹한 메뚜기의 재앙과 피해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메뚜기의 재앙은 하나님의 징벌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2:12).
요엘은 "야훼의 날"을 선포하였다.
이날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축복하는 날이다.
6. 요나
구조
1)1장 : 하나님의 부르심과 요나의 도피
2)2장~3장 : 요나의 감사기도와 니느웨에 대한 예언 선포
3)4장 : 요나의 노함과 하나님의 교훈
활동 및 메시지
요나서의 주제가 이스라엘과 이방민족과의 관련성이며,
에스라-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의 배타성과 고립성에 항거하는 반항문학으로 보아 기록연대를 포로기 이후로 잡고 있다.
요나서의 메시지는 야훼의 사랑이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에게 적용되며 이스라엘은 그 사랑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회개의 중요성이다.
이스라엘의 미움의 대상인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징벌을 취소하셨다.
7. 말라기
구조
1)1장 1절~4장 3절 : 6회에 걸친 말라기의 예언
2)4장 4절~ 6절 : 예언서 전체의 마무리 부분
활동과 메시지
말라기가 쓰여진 때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 성전과 제사장들의 부패상을 언급한 점으로 보아 적어도 성전 재건 이후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해볼 수 있는 것은 말라기에 기록된 각종 죄악과 사회의 부패상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면서 느끼고 한탄해 했던 상황과 거의 비슷하며,
그의 개혁에서도 이런 점들이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말라기의 연대를 470년경으로 본다.
말라기가 예언했던 시대는 크세르크세스의 통치 시기였던 것 같다.
학개와 스가랴의 영향을 받아서 희망이 고조되었던 시기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종말론적인 전망도 사라져 버렸다.
선지자는 열정이 식어버린 제사장들이 가진 잘못을 보았다.
사회적 무질서를 질타했으며, 성전에서 부과된 각종 세금이 바쳐지지 않음을 질타했고
아내와 이혼한 남자들, 심지어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아 사는 것을 질타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서 오실 메시아를 예언했다.
그리고 그에 앞서 한 사신을 보낼 것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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