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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변증학/로버트 레이몬드

하나님아들 2023. 9. 22. 17:51

개혁주의 변증학/로버트 레이몬드          

 

 

 

1. 들어가는 말

기독교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이란 무엇인가? 불신 세상앞에서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주장하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에 대하여 참지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변호하는 지적인 작업이다.

변증학이라는 말에는 “변호(defense), 공식적 비난에 대한 답변”이라는 헬라어 어근 “apolg"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 어근은 동사, 명사, 형용사형태로 헬라어 신약성경에 약 20회 정도 사용되었다. 이것에서 ”어떤 이의 신념이나 입장을 변호하고 정당화하는 설명을 지칭“하는 것으로 발전을 하였다.
알렌 킬렌은 기독교 변증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변증학>이란 개인의 신앙의 변증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의 교리, 신앙, 그리고 성경에 주어진 계시에 대한 공격에서 답변하는 것이다.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공격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과 성경과 주어진 계시를 변증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며, 성경에 주어진 사실들, 하나님의 계시의 합리성, 그것으로 영적필요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충족성에 대한 적극적 진술을 성경에 의지해서 발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변증학은 소극적, 변호적일 뿐만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윌클리프 성경사전 1-

이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정당화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복음을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메시야됨을 변증하였다(마22:41-46), 바울이 자기의 사도권을 변증하였다( 갈1, 2장).
특히 베드로는 변증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을 벧전3:15-16절에서 잘 표현을 하였다.

벧전 3:15-16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① 참된 신앙의 자세를 가정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의식적으로 헌신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불신자가 자기의 헌신을 인정함이 가정되어 있다.

② 기독교 신앙은 충분히 합리적 변증의 대상이 됨을 인정하고 있다.
   변증할 필요가 없는 것을 변증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③ 신자와 불신자와의 접촉점이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와 불신자와의 접촉점의 본질에 대한 변증학적인 연구를 요구한다.

④ 모든 신자에게 모든 시간에 해당한다.
  
⑤ 변증의 태도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그리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임하라는 것이다.
지적인 우월감이 가지고 변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남을 죽이거나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자세는 우리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베드로의 이 권면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전능하신 은혜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만이 사람을 천국백성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웨스트 민스터 소교리 문답 제 31문 유효한 소명에 관하여).
베드로의 이 권면의 문맥은 “경건한 증언으로 핍박을 당하는 기독교인이 이웃사람드로부터 ”왜 고생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때 그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 소망에 대해서”합리적 근거“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 권면은 신앙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변증을 하는 과제는 성경적 근거에서 일치해야 한다.

베드로의 이 권면은 막화를 내면서 폭력으로 우리의 종교적 헌신을 변증, 설득해서는 안된다. 또한 성경의 내용과 불일치하는 방법으로 변증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예를 들면 원죄와 사람이 복음을 믿기 전에 반드시 중생의 사역이 필요하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벗어난 변증방법을 생각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일 개혁신앙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신앙이라면, 그 신앙을 변증하는 방법도 개혁주의적 방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적 변증을 해야하고, 그런 변증에 의해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개혁주의 변증학  로버트 레이몬드 p9-11 정리

 

2. 변증적 과제의 제 측면

기독교 변증학은 기독교 헌신의 타당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것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는 변증가마다 다르다. 이는 변증학이 신학전체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신학은 주경신학(구약, 신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으로 나눈다. 벤쟈민 워필드와 프란시스 비애티는 변증학은 이 모든 학문에 앞서고, 그것들로부터 독립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변증학은 “아무 것도 전제하지 않는 ”학문분과이기 때문에 다른 신학 분과들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얻기 전에, “신의 존재, 사람의 종교적 본성, 계시의 진리성, 기독교의 신적기원, 성경의 신뢰성”등이 변증학에 의해서 먼저 수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신학자는 기반도 없는 허상을 다루고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발레틴 헤프, 그리고 루이스 벌코프는 변증학은 조직신학자의 작업 뒤에 와야 한다고 했다. 변증학자들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계시와는 상관없이 기독교의 진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인간 전적부패의 교리를 가진 신학이 외부의 도움없이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하나님인지를 규정한 후에야 그런 하나님이 존재하는지를 지적으로 물을 수가 있다. 하나님이 어떤 종류의 하나님인 것을 아는 것은 성경밖에 없는데 어떻게 변증학이 모든 신학분야에 앞설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견 중에서 코넬리우스 반틸은 후자가 옳다고 여기며 변증학과 조직신학은 깊은 상호 의존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변증가는 기독교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기독교 변증학을 기독교 신앙를 변증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의함으로서 아브라함 카이퍼의 입장에 동의를 하였다.

사실 이 정의는 변증학이라는 말의 근본적 의미와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무엇을 변호하기 위해서 <변호할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합리적이다. 가끔 변증학이 다른 학문분과에 앞설 때는 조직신학의 결과를 늘 전제해야만 한다는  반틸의 주장에 동감을 한다.

그렇다면 신앙의 변증으로서 기독교 변증학은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네가지로 대별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특정한 반박에 대답하는 일

성경진술에는 모순과 대립으로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반박과 반론이 제기된다. 이런 것들을 학문적인 연구와 정확한 주해에 근거해서 대답하여야 한다. 이런 노력을 경주하다보면 성도들의 믿음이 강화되고,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 간의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으며, 그들의 반론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제기된 문제들을 살펴보면 그것은 대화의 시작일 뿐이다. 이 문제는 더 근본적인 궁극적인 전제( ultimate premises)들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 이 사람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였는가?는 곧 그들이 그 문제를 본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에 변증학은 독립된 학문분과로서 기독교 변증학 고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

궁극적 전제와 근본적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그가 자신을 계시하셨는가? 만일 계시하셨다면 언제 어떻게 하셨는가? 나는 왜 믿는가? 내가 믿는 바가 참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은 변증학의 특별하고 적절한 문제이며, 이것이 확인되면 변증학은 실제로 철학적인 작업이며 또한 신학적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식론 또는 지식론 (epistemology or the theory of knowledge)의 작업이다.

둘째 과제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해보면 (만일 계시하셨다면 언제 어떻게 하셨는가?), 물론 변증학자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서 말을 할 것이고, 성경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연과 특별계시(성경, 기적, 현현등)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지만 죄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성경밖에는 없다고 인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적 신앙의 변증은 이처럼 복음내용을 그대로 전파하는 것 이상으로 종교의 깊은 문제들이다. 변증가는 기독교 신앙만이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3) 비기독교적 사상 체계에 도전을 하는 것

사도 시대 이후에 초기 신학자들은 분명 변증가였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식인종이다, 부도덕하다는 등의 비난에 대답하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앙의 변증은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비기독교적 사상체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현대의 변증가들은 그것으로부터 더 나아가 비기독교적 사상체계에 존재하는 비합리성을 드러내려고 하였고, 그들이 만들은 교리에 대하여 인식론적으로 타당성이 없다는 것까지 나아가려고 하였다.
여기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코넬리우스 반틸과 골든 클락과 같은 변증가로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기독교적 사상체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고, 인간 밖에서 사람에게 오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계시>을 기초로 하지 않고, 인간 내부에서 원리를 찾으려는(자유주의 또는 내재주의, 뉴에이즈 운동) 비기독교적 사상체계의 부적절함과 인식론적인 허무주의를 드러냄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기독교의 우월성를 드러내었다.


4) 진리로 향하게 하는 것

기독교 변증가는 사람들을 기독교적 입장의 진리로 설득, 인도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비록 그는 성령의 중생케 하는 사역을 떠나서는 그 사람을 권유하여 진리로 이끌어 들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기독교 변증가는 자신의 노력을 책임 있는 복음전도의 한 부분으로 인식을 하며 권면하고, 강론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변증은 성령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의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으로 변호하게 하라는 그 말은 언듯 들으면 참신하고 성경적인 것 같지만 수단과 제 2차적인 요인을 무시하는 비신학적인 발언이다.-개혁주의 변증학  p11-16

3. 기독교 변증학이 당면한 주요 문제

기독교 변증학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방법론이다. 변증가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서 <특별계시>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특별계시로 나아가게 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증거주의 또는 역사적 변증가는 특별계시를 전제하지 않고 신앙의 근거들을 드러내려고 한다. 즉 인간 이성에 적합하게 제공된 자료들을 통해서 신 존재, 기독교 계시의 사실들을 수립해보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연신학의 한 형태라고도 볼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전제주의적 변증학이 있다. 그들은 특별계시를 그들의 출발점을 삼는다.
그로부터 세상과 사람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인식론적으로 신앙적으로 충족하다는 사실,
그에 대한 반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논의한다.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특별히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첨예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4. 몇가지 중요한 변증 체계들

방법론적인 문제가 결정이 되면 보통 세가지 변증체계로 나누어지게 된다.


(1)전제주의(Presuppositionlism) 또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Credo ut ittelligam).
이는 특별계시가 전 신학 작업의 근거를 제공한다고 전제하는 체계이다. 이 체계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모든 것에 선행해야 한다(히11:3)
② 체계의 명확성은 신앙에 의존한다.
③ 종교적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통제를 받아야 한다.
④ 인간의 부패성은 인간 이성에 의존을 부인하게 한다.
⑤ 성령이 중생케 하는 특별사역은 기독교 신앙과 교훈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여기에 속하는 그룹들은 어거스틴주의자들과 철저한 개혁파 전통주의자들이다.

(2)증거주의( 혹 험증주의: Evidentialism): 나는 이해하고, 믿는다(intelligo et credo).

자연신학이 변증학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체계이다. 이 체계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종교적 지식을 찾는데에 인간 이성의 능력과 신뢰성에 대한 확신
② 신앙을 실증적이고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실들에 근거시키려는 노력
③ 종교적 명제들도 과학적 주장들이 걸쳐야 하는 똑같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

여기에 속한 그룹들은 토마스주의적 로마 카톨릭 전통과, 복음주의 험증주의적 전통, 그리고 알미니우스적 전통이 여기에 속한다.

(3)경험주의(Experientialism) 또는 “불합리하므로 나는 믿는다”(Credo quia Absurdium est). 내면적 종교경험을 신학적 구소의 근거로 여기는 체계이다. 이 이론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학적 실증주의, 신현대주의, 비합리주의, 상층구조 체계들이라고 불리운다. 이 체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계시를 실존적 만남으로 보는 것
② 주관적 종교경험을 진리의 근거로 보는 것
③ 기독교 진리는 합리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
④ 하나님의 초월성, 타자성, 숨기워지심에 대한 강조.

여기서 속한 대표적인 그룹은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이다.

(4) 내가 믿기 위해서 이해한다 (Intelligo ut Credam)
이는 자율적 인간주의나 합리주의의 변형된 형태이다. 이 견해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신적계시가 본질적인 것임을 완전 부인
②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전적인 신뢰
③ 이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만을 참된 것으로 믿는 것
④ 성경적, 초자연적 기독교에 대한 거부

불행하게도 많은 기독교 변증가들은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해시키려는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곧 자기가 변증하려는 기독교를 부인하고, 결국에는 세우려고 했던 그 기독교를 붕괴시키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공부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다.-개혁주의 변증학 p16-19를 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