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신학서론

하나님아들 2023. 9. 10. 20:46
신학서론


 


서철원 교수


제1장 신학(神學, Theologia)
1) 신학의 정의
신학은 일반 학문과는 달리 창조주 하나님의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자연이성으로 접근하여 그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성으로 하나님을 직접 탐구하여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 인간의 지성으로 하나님을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드린다. 따라서 신학은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여 종합, 통일하는 학문이다.
2) 일반학문의 방법론
희랍철학의 초기부터 확립되었다. 감각은 현상 세계에만 국한하여 바른 지식에 이를 수 없음으로 미망의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신적 부분인 이성에 의해 지식을 탐구해야 바른 진리의 지식에 이르는 것으로 여기게 되어 이성을 지도자로 삼아 바른 지식의 탐구에 이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플라톤에 의해 정립되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론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본질에 이르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3) 근세의 학문의 방식
데까르트는 지식의 참과 거짓의 포준을 이성에서 구하고 그 지식의 확실성도 이성에서 구하므로 내재철학 곧 근세철학을 세웠다. 그는 진리의 표준과 지식의 확실성을 이성 내에로 갖옴으로 근세를 열은 것이다.
근세 영국 경험론은 지식을 이성이 추론으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표상들 혹은 관념들을 연합시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므로 본격적인 근세를 도입하였다. 이 일은 죤 록크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모든 지식은 다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표상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4) 독일의 칸트
경험론의 주장대로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표상들만이 지식을 구성하는 유일한 재료라고 하여 지식의 대상을 현상계에 국한하였다. 감성이 시간과 공간의 표상현식을 부여하므로 지각들이 질서가 있게 되고 오성이 법칙들을 부여하므로 감각재료들이 지식이 된다. 그러므로 지식의 대상을 대상세계에 국한한 것이다.
5) F. 슐라이어막허
19세기 초엽 신학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출발하여 신학을 재구성하였다. 그는 칸트의 영향 아래 신학을 하였으므로 하나님에게서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 곧 종교적 체험에로 그 출발점을 옮기고, 또 신학이 도달하는 결론도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되었다.
그는 인간의 종교적 의식 즉 자기의 종교적 의식을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하여 신학이 내재신학이 되어 종교학이 되었고, 종교 공동체인 교회와 종교체험만 남고 하나님은 없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자리에 절대 의존의 감정만 남게 되었다.
6) 루터
이성은 창녀와 같다. 편견과 억측이 과도히 심하여 바르고 객관적인 실재의 지식을 줄 수가 없다. 죄성이 이성에 과도히 역사하므로 물질적인 실재에 대한 지식도 바르게 제시할 수 없다. 이런 이성으로 신학할 수 없다. 이성으로 신학하면 신학은 신학이 되지 못한다.
7) 신학의 대상
인간의 이성이 포용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존재이고 절대자이며 무한한 영이시다. 신학이 대상으로 삼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창조주이시므로 사물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그에 관한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며 파악할수 없다.
칼빈은 유한은 무한을 파악 할수 없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이 개혁신학의 근본원리이다.
8) 신학
신학은 그 대상 때문에 경험과학의 방식으로 신학할 수 없다. 신학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지각들을 이성이 지식으로 구성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신지식을 추구할 수 없다.
신학은 그 지식을 자연이성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획득한다.
신학이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신학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무한한 영적 존재이므로 지성으로 직접 하나님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그의 계시에 의존해서만 신학한다.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지식을 추구한다.
9) 계시의 조명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영광과 지혜가 무한하셔도 계시를 받아드리는 존재의 능력에 맞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받아들릴 수 있도록 조명하신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계시의 수납자인 인간이 감당할 수 있도록 인간의 능력에 맞게 적응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을 굽히어 계시하셨다. 이것을 하나님의 자아겸비라고 한다.
10) 신지식
신학은 하나님의 학문이다. 신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기 지식을 계시하신다. 신지식은 계시를 통하여 얻는다. 또한 신지식은 직접적 획득이아니고, 계시에 의해 매개된 지식이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뿐만 아니라 그의 사역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에 관하여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계시가 성경 계시이다. 개혁신학은 모든 성경 계시를 모든 신지식의 원천으로 삼는다. 자연은 신지식의 부차적 원천이다.
그리고 신지식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어서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섬기게 한다.
제2장 신학의 대상
신학의 대상의 하나님은 절대적 인격이므로 학적 탐구의 직접적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을 직접 탐구의 대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배운다. 하나님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즉 그의 인격만이 아니라 그의 사역까지를 배우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존재
1)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은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자기의 경륜 곧 자기의 작정대로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셨다. 자신을 구속주로 계시하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말씀으로만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만 일하지 않으시고 자기 인격으로 친히 일하사 구원을 이루셨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로 계시하신 하나님
여호와로서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신 존재이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 계시로부터 왔고, 이그나티우스가 가르친 대로, 그리스도가 육체 안에 오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분명히 밝혀진 하나님의 존재이다. 이 진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이어서 기독교가 기독교 되는 것은 이 삼위일체 교리 신앙 때문이다.
4) 무한한 영 곧 절대적 인격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무한한 영이시므로 절대적 생명이시다. 그의 활동은 무한하여 창조를 이루시고, 그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시사 살게 하신다.
2.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존재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은 창조, 섭리, 구원, 창조의 완성으로 이루어진다.
1) 하나님의 창조
창조에 대한 그의 경륜은 영원하여도, 창조된 존재는 하나님의 존재처럼 영원하지 않다.
말씀으로만 일하셔서 만상을 조성하셨다. 그의 지혜와 권능이 무한하고 그의 경륜이 영원하므로 그렇게 창조하실 수 있었다. 6일간의 정비 이전에 하나님은 태초에 곧 창조 주간 첫날에 혹은 처음 물질의 출현 순간에 모든 물질과 우주를 창조하셨다.
시간도 창조되었다. 시간이 창조와 함께 출현하므로 시간이 모든 피조물의 존재 방식이 되었다.
영의 세계도 처음 창조 시 곧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창조하셨다.
우주는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로 지으시므로 우주가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현시한다.
칼빈은 창조를 하나님의 영광의 무대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자기 향유를 위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조성하셨다. 창조를 다시리심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 창조를 즐기심이다. 창조의 자기 향유가 하나님의 우주 창조의 목표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인격을 뜻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 자기를 섬기게 할 목적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교제하기를 기뻐하셨다.
이 창조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작정되었다. 그러므로 창조는 백성의 거소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된다.
2) 하나님의 섭리
섭리는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를 다시리고 보존하심을 말한다. 창조주는 자기의 창조를 다스리신다. 창조가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창조는 계속하여 유지되고 통치되어야 한다. 피조물의 근본특성은 의존성이다.
섭리의 근본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다.
3) 하나님의 구원 = 창조의 회복
창조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큰 사역은 인류의 구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구속주가 되사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므로 구원은 율법의 길이 아니라 은혜이다. 전적으로 은혜여서 믿으'瀏� 받기만 하면 된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거져 받기만 하는 것을 말한다.
구원을 성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지만 그것을 개인들에게 적용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구원에 동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4)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령의 역사로 적용되어 모든 택자들이 다 중생하여 거룩한 자들이 되면 구원의 진행이 완료되므로 이루어진다.
창조의 완성은 창조가 계발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거의 다 현시됨으로 이루어진다. 창조의 완성 때는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해져서 하나님이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신다. 그의 충만한 임재가 통치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인류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 창조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으로 이루어진다. 악을 소제하고, 의가 완전히 서므로 백성들이 영생에 이른다.
제3장 신학의 근본원리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창조주와 구속주 되심을 아는 것이다. 창조주의 엄위와 영광을 아는 것이고 구속주의 구원 곧 사랑의 큰 역사를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지식을 얻으면 그는 멸망에서 구원되고 영생에 이르게 된다.
이 신지식을 얻는 길은 구속주 하나님에게서 시작한다. 구속주를 믿음으로 그 구속주가 창조주이심을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지식의 시작이고 전부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참 신지식의 표준이며, 원리이다.
※신개신교주의 - 기독교를 자연주의화하는 것이어서 성경의 그리스도를 다 방기하였다. 성경의 원리를 방기하여 일반계시에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포기하였다.
제4장 그리스도의 계시
신학의 출발점과 표준
신학은 계시에 의존하고 계시에 근거한다. 이 계시는 일반계시가 아니라 특별계시이다.
모든 신학은 그리스도 계시에서 출발해야 한다.
1) 창조계시(자연계시)
창조계시(자연계시)에서 신학을 시작하면 영광의 신학이 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곧 인간의 자연 이성에 의해 신학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계시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도 존재일반을 창조한 존재가 아니고 존재일반에의 동참이 최상이기 때문에 최고존재인 것이다.
2) 자연신학
자연신학은 피조물들의 성질들을 부정하여 신의 성품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적극적인 방법에 의해 피조물에게 나타난 선, 아름다움, 거룩등의 경우들은 이 성품들의 부정에 의해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유비에 의해 하나님께 이르러 간다. 존재유비에 의하여 구성된 하나님은 최고신이어도 순수유이고, 사유 자체여서 사고를 사고하는 사고가 된다. 또한 자연신학은 비중생자의 신학이어서 특별계시에 의한 신학을 전적으로 배제하게 된다. 결국 신개신교주의가 된다.
이후 18세기의 합리주의 신학에서 이성의 표준과 판단에 따라 신학을 구성함으로 초자연적 요소를 배제하여 자연주의가 되었다.
⇨신학은 그리스도 계시에 의해 출발하며,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계시가 신학의 출발점이고 그 근거이지만 또 신학을 판단하는 표준이고 원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계시 곧 성경 계시에 의해 모든 종교를 볼 때만이 그 종교들의 본질을 바로 보게 된다.
제5장 계시에 의존해서 신학함
계시 = 신지식의 길
하나님의 자기 계시만이 피조물이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다. 이 계시에서 하나님 지식을 얻고 그를 알게 된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계시에 의존해서만 신학한다. 하나님은 실재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1) 계시의 가능성
하나님은 무한한 영이시지만 인격적 존재이므로 스스로 자기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다.
2) 계시의 내용
신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여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고, 자기의 사역을 계시하였다. 자기의 창조를 설명하고 해석한 것을 인간에게 알리셨다. 그리고 인간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을 삼아 섬기게 하시며 창조를 계발하여 활용하므로 창조주를 모방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창조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계시의 중요 부분은 인류의 구원 작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세상을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백성을 모으시고 조성하셨다. 이 구원이 완성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세상을 정화하시고 완성하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설 것을 계시하셨다.
그리스도가 모든 계시의 유래처이고, 그 목표이며, 하나님 계시의 절정이다.
3) 계시 = 신지식의 길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원천이고 근본이다.
제6장 성경에 근거해서 신학함
성경 = 신학의 형식적 원리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계시이다. 따라서 신학할 때 성경계시에 의존해서 신학한다.
1) 성경 = 신지식의 원천
성경은 하나님의 최종 계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계시의 완성이고 계시의 절정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계시로 성경을 보충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은 성경에 자기의 존재와 그의 작정을 다 계시하셨다.
헤겔은 하나님이 이성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러므로 이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철학자에게 자신의 계시를 가장 완전하게 하신다고 하여 이성을 신지식의 원천으로 삼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자연 이성으로 신학을 구성하였는데 그것은 자연신학이어서 성경이 증거하는 창조주와 구속주 하나님에게 이르지 못한다.
슐라이어 막허는 인간의 종교경험을 신지식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옳지 않다.
2) 성경 = 신지식의 외적 원리
성경은 완결된 계시이므로 신적 권위로 역사한다.
성경은 영감에 의해 즉 하나님이 호흡하시므로 무오하게 기록되었다.
성경이 자기 가신성(自己 可信性)을 가지기 때문에 성경에 의하여 신학이 판단받는다. 성경의 자기가신성은 성경의 문장이 외부의 강제나 가르침 없이도 스스로 그 내용대로 믿게 하는 힘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자기 해석자여서 성경 외에 다른 유전과 교회의 가르침에 의해 명료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학 작업에서 교회의 교리는 이차적 표준으로 역사한다.
제7장 교리의 지도를 따라 신학함
교리=신학의 이차적 규범
조직신학은 성경 계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으로 여긴다. 교의신학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할 때 교회의 교리들의 안내를 따라 이 작업을 한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았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칭의 교리를 근본 교리로 받지만 성경의 권위를 더 중시하고 결정적으로 여긴다.
1) 교리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근본 진리를 뜻한다. 하나님의 구원 진리를 신적 권위에 근거하여 교회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표현한 명제이다. 즉 교회 존립의 근본으로 삼는 것이 교리이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왔고 성경에 근거되어 공식화되었으므로 신적 권위를 갖는다. 성경계시의 내용 곧 구원 진리를 공식화한 것이므로 교리는 성경적인 권위를 갖는다.
교회사는 성경해석사이다. 그것은 바로 교리 해석의 역사였다. 시대정신을 따라 해석하는 것은 교리의 변형이고 무효화이다.
각 교리는 일정한 견지에서 구속 종교로서 기독교를 전체로서 표현한다. 삼위일체교리는신론의 입장에서 기독교 전체를 대변한다. 또 기독론의 교리도 구원자의 입장에서 기독교 진리를 전부 드러낸다. 이신칭의 교리는 구원 획득의 방식에 있어서 어떤 교회가 은혜의 종교인지를 드러낸다.
(1) 삼위일체 교리
세계의 창조와 섭리에 있어서 또 교회의 설립과 인도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한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하나님이 그 내적 존재에 있어서는 삼위격으로 계신다. 세 위격은 한 동일 실체이고 그 동일 실체는 분할 불가하다.
아버지는 아무에게서도 유래하지 않으시고 아들은 아버지에게서만 출생되시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 이 삼위일체에 선후나 대소가 없고, 세 위격은 자신에게 동등하고 영원하다. 삼위일체는 영광과 권능과 의지가 하나이고 동일하다.
(2) 기독론 교리(하나님의 성육신 교리)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오 참 사람이시다. 사람이 되실 때 성령으로 성육신하사 독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 그가 참 사람이 되심에 있어서 합리적 영혼과 육체를 취하사 한 그리스도 독생하신 아들이 되시되, 두 본성에 한 인격으로 계시지만 두 본성은 혼합없이, 변화없이, 분열없이, 분리없이 한 인격을 이루시사 한 아들과 독생하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3) 이신칭의 교리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우리의 속죄와 구원을 이루었으므로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다. 단지 믿기만 하므로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른다. 종교개혁의 칭의 교리도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와 자력 종교로 결정하는 표준으로 역사한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면 완전한 구원에 이르고, 인간의 공로가 가입하면 완전한 구원 종교이기보다는 율법주의 종교에 귀결되고 만다.
제8장 믿음으로 신학함
믿음=계시 수납의 손
신학은 믿음으로 하고 자연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을 탐구하는 방식인 지성으로는 결코 하나님 지식을 얻을 수가 없다. 지성은 사물 지식의 탐구에도 부적합하다. 근세 철학에 의하면 이성은 사물의 본질도 바로 알수 없다. 아는 것은 표상인데 그 표상은 이성이 만든다고 한다. 물질 세계를 탐구하는 능력인 이성이 사물들도 바로 알 수 없는데 더구나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하다.
하나님은 피조 지성의 능력과 범위를 넘어가므로 지식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1) 믿음 = 신지식 수납의 손 = [지식의 내적 원리]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지식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믿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2) 믿음의 본성
믿음은 본래 논증없이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확실성을 얻는 영혼의 기능이다. 영혼이 자기 확실성을 수립하는 기능이 믿음이다. 확실성을 얻을 때 논증 없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획득한다.
학문의 출발점으로 삼는 보편법칙의 경우는 전혀 증명이 안되고 처음부터 확실한 것으로 믿음으로 받는다. 또 사회생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도 믿음에 근거한다.
3) 믿음의 발생
자연적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받는 것은 불신자의 믿음이어서 역사적 믿음일 뿐이다. 믿음은 중생으로 시작한다.
4) 믿음의 요소
믿음은 믿음의 대상과 사람의 주관적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교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이다. 성경이 선포하고 증거하는 복음 곧 하나님의 구원과 약속을 확실하고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므로 무한자를 우리의 자연적 능력으로 받을 수가 없다. 성령께서 우리의 지각을 여사 우리로 받아들이게 하신다. 이 받아들임이 곧 믿음이다.
우리는 유한하므로 무한자를 수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로 받아들이게 역사하실 뿐 아니라 칼빈의 가르침처럼 성령께서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손 노릇을 하신다. 신앙의 대상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5) 믿음의 인식
신 지식 수납에 있어서 전적으로 믿음이 그 방식이지만 중생한 이성이 인식 작업을 한다. 즉 믿음의 내용을 이해하는 일을 중생된 이성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이해하게 하므로 받아들인다.
믿음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 권위에 의해 수납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 때문에 자기 가신성을 가지므로 우리로 믿게 한다. 이 받은 말씀을 믿음으로 신학한다.
제9장 중생 이성의 역할
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1) 들음으로 신학한다.
성경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계시를 들음으로 신학한다. 그러므로 사변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말씀에서 사고한다. 주께서 말씀하시므로 듣고, 그 말씀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해한 말씀을 내 말로 반복한다.
하나님의 지식 체계와 상응해서 지식을 얻어 자기의 지식 체계를 구성한다. 또 하나님의 지식 체계에 의해 참 지식 체계를 얻는 것이다.
2) 성경 계시에 순종해야 할 이성
이성이 계시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판단하는 자는 성경 계시이고, 이성은 성경의 재판에 순종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성이 그 말씀에 의해 조명 되어야 한다. 이성이 계시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이 계시에 의해 그 활동의 타당성이 판단받고 제시받는다.
3)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사고함.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사고하는 것은 말씀 곧 계시의 내용을 반복하고 그 내용을 따라 사고하는 것을 뜻한다. 계시를 따라 사고하고 그 계시에 의해 사고작용이 이루어지고 계시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신학적 사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합의된 내용들을 중심사상에 의해 조명받아 사고하여 풍성한 내용을 밝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성은 계시의 자기 주장을 존중해야하고, 이성의 판단과 자기 법칙에 맞지 않는다고 계시를 변용하여 자기의 합리성에 맞추면 안된다.
제10장 신학의 분류
1. 신학의 분류
신학은 계시의 이해와 접근 방식에 따라 몇가지로 분류된다.
(1) 주경신학
성경 계시의 역사적 전개와 유기적 전개에 중점을 두고 계시의 본문을 직접 다룬다.
(2) 역사신학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를 살핀다.
(3) 교의신학 혹은 조직신학
성경 계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여 계시의 내용을 믿음의 항목으로 확정한다.
(4) 실천신학
말씀의 적용을 다루는 신학분과이다.
2. 조직신학의 분류
1) 변증학
기독교 진리를 변호하고, 기독교 신앙이 합리적이고 바른 진리임을 증명하고 그릇된 사조를 공격하는 임무를 한다. 완성된 기독교 진리를 진리로 제시하며 그 합리성을 제시하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일을 변증학이 한다.
2) 교의신학
교의신학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해석하고 확립한다. 성경 계시를 전체로 이해하여 성경진리를 믿음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3) 신조학
우리가 믿고 채택한 교리 체계를 그 자체로 탐구하여 우리의 믿음을 확실하게 하는 신학분과이다.
4) 교리사
우리가 믿는 교리들을 그 발생 기원과 공식화에 이르는 모든 과정들을 함께 밝히므로 왜 이렇게 교리를 받을 수 밖에 없는지를 밝혀서 이 교리를 공식화대로 받게 한다.
5) 윤리학
교의학이 진리를 문제시하면 윤리학은 교리의 적용을 다루는 분야이다. 본래 이 둘은 분리될 것이 아니고 하나이지만, 근세에 이르러 둘로 분리되었다.
윤리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의 진리에 의거해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밝히는 일을 한다.
제11장 교의신학
1. 교의신학의 자리
신학은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신학 곧 교의 신학은 교회가 믿는 믿음의 내용과 가르침과 관계한다.
교회는 믿음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선포한다. 바르고 합당한 선포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바른 신학적 정립이 필수적이다. 교의신학은 믿음의 내용을 확립하고 진리의 체계를 이룬다. 그러므로 교의신학은 설교에 필수적이고, 그 준비 작업에 해당한다.
2. 학으로서 교의신학
일반학문은 시대적 상황과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일반학문과 다른 특별한 학문이다. 그러나 신학도 학문의 기본 요건인 대상과 방법론과 지식 체계를 갖는다. 그러므로 교의신학도 학문으로서의 요건을 다 갖추었다.
일반 논리가 언제 어디서나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다. 논리는 우리의 사고를 위하여 정한 법칙이다. 신학이 일반 논리의 요구를 다 충족할 필요는 없다. 또 일반 논리를 다 충족해야 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신학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고, 그 하나님의 성육신을 대상으로 하므로 일반 논리의 범주에 다 넣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신학이 일반 학문의 요구 조건들을 떠맡아 그것들을 다 충족할 필요가 없다.
3. 교의의 정의
교리는 성경의 근본진리로서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근본이다. 즉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이다. 교회는 교리 없이 성립할 수 없다. 교리는 사사로운 가르침이나 어떤 집단의 의견이 아니라 공교회의 결정이고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에서 나온 결정이다.
교리는 기독교 성립의 필수요건이다. 이 교리를 제거하거나 부정하면 기독교가 기독교이기를 그친다.
교의신학은 이 신앙 조항의 체계이다.
4. 교의의 발생
(1) 교의는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이단들 때문에…
(2) 교회의 자체 필요성과 요구에 의하여 교의의 규명과 발생을 필요하게 하였다.
5. 교의신학의 역할
교의신학은 본래 신학과 일치되었고 성경신학과 역사신학은 다 보조 학문으로 인정되었다.
1) 교의신학은 교리의 학이므로 성경 본문 이해에 있어서 그 성경 본문의 이해에만 국한하지 않고, 또 성경 본문들의 비교와 조화, 계시의 유기적 전개에만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다. 교의신학은 성경 계시를 그 전체적인 조망에서 이해하고, 통일적으로 이해한다.
2) 교의신학은 계시의 전체적 이해에서 교의들의 근거와 유래를 분명히 밝힌다.
3) 교의신학은 교의들을 변호하고 설명한다.
4) 교의신학은 계시 이해를 깊이있게 하고 확대하므로 교의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한다.
5) 교의신학은 교회의 근본 교리에 들지 못하는 구원 진리들을 믿음의 내용으로 확정하는 일을 한다.
6. 교의신학의 방법론
믿음의 사고로서 교의신학은 전체 계시를 종합한다. 이 종합적 통일화 작업을 통하여 계시의 내용을 믿음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교의신학은 계시의 진리가 믿음의 내용으로 믿어지게 하는 권위적 정립에 신학 작업의 방법을 갖는다. 그 권위적 정립은 말씀의 권위에 근거하여 된다.
7. 개혁 신학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을 규범과 근본으로 삼는다.
(1) 신학함에 있어서 루터교회는 중생 혹은 이신칭의 교리를 실질적인 원리로 삼고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는다. 개혁신학도 동일하다. 즉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교리로 신학함의 근본을 삼는다.
(2) 성화를 강조하고, 거기에로 나아간다. 칭의에서 출발하고 칭의에로 되돌아오는 루터교회 신학과 달리 성화 곧 믿음에 의한 거룩한 생활을 강조한다. 따라서 개혁신학에서는 윤리가 합당한 강조와 존경을 받는다.
(3)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4) 다른 신학 체계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언약 사상을 중요한 교리로 삼는다.
(5) 인간의 타락상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성경대로 부정적이다. 전적인 부패와 무능을 강조한다.
(6) 은혜의 주권성을 강조하고 합당한 존경으로 신학한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과 결합한다.
(7) 구원 얻음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시작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모든 구원 은혜가 오기 때문이다.
(8)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을 강조하고 그 한계를 분명히 한다.
(9)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신학의 목표로 삼는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의 자기 영화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을 사시는 것이 아니다.
(10) 성화를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영역에 율법이 자리를 가진다. 율법은 구원의 길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규범으로 역사한다.
(11) 모든 생활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강조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 전파와 문화명령의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역사가 되어야 한다.
(12) 선포된 말씀에 강조를 둔다. 교회도 말씀의 창조로 본다. 선포된 말씀이 믿음을 일으키고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므로 선포된 말씀에 합당한 강조가 놓인다.
제12장 신학의 완성
지금의 우리의 신지식은 완성에로 가고 있는 신학이다.(나그네신학) 우리의 신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하므로 참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것과 같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어서 완성을 필요로 한다.
신지식의 완성은 피조물이 신 되는 것을 결코 내포하지 않는다. 인간은 종말에 하나님 앞에 설때에도 피조물로 남는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피조물로 살며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므로 모든 지식이 완성된다. 하나님을 직접 뵈옵기 때문이다.
제13장 신학의 목적
하나님 지식은 그냥 지식을 얻음이 아니라, 그 지식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어서, 사람이 변화된다. 하나님 지식을 얻어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만남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 지식에 의한 변화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한다. 하나님 지식은 순수한 사물 지식의 성질과 형태일 수가 전혀 없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알고 사람을 피조물로 아는 지식이어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 하나님을 섬김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이 누릴 영생은 하나님 섬김에 대한 보상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간이 창조되었으므로 그 본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영생에 이른다. 그러므로 이 생명에의 길에 하나님 지식은 필수적이다. 이처럼 신지식이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에 이르는데 필수적이다.
제2편 계시론
제1장 계시
I. 정의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곧 자기를 알리심 또는 하나님의 자기 존재와 뜻을 알리심이다. 하나님의 자기 현시로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그의 권능, 지혜, 그의 경륜, 장초사역과 구원계획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알리셨다.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권능과 영광을 알게 된다.
II. 계시의 유래, 그 과정, 내용
계시는 성부 하나님에서 유래하고, 성자 하나님 곧 하나님의 로고스를 통해서 온다. 로고스를 매개해서 온 지식만이 참 신지식이다.
계시는 아버지에게서 유래하되 아들을 통하여 매개되어, 계시의 수납자인 사람에게 이를 때 성령의 역사 혹은 조명에 의해 사람에게 그 내용이 이해되고 수납된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여서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 곧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만 이해된다.
III. 계시는 진리 형태
계시는 사건과 일을 통하여 오지만 문장 형태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해될 수 있는 형태로 표현된다. 계시 수납자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오고, 또 언어에 의해 매개된다.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IV. 계시는 존재의 통보가 아님
로마교회는 계시를 하나님의 존재의 통보 혹은 존재의 분여라고 하는 주장을 제기한다. 칼발트도 같은 견해를 갖는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 분여로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을 계시 내에서 사신다. 즉 인간을 위하여 자기의 생을 사신다고 한다.
그러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통보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알리고 그의 뜻을 알리심이다.
V. 계시의 목표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고 그를 목표하고 진행되었다. 그리스도가 모든 계시의 중심이고 절정이다.
제2장 계시의 가능성과 필요성, 그 유래처
I. 계시의 필요성
계시는 인간이 직접 알수 없는 감추인 하나님의 뜻가 경륜을 알리심이고, 자기 현시로 표현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 계시는 필수적이다.
II. 비필연적 계시
계시가 하나님의 존재에 필연적이면, 그 계시는 하나님과 완전 일치되므로 세계가 하나님과 일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계시에서 자기 모든 삶을 사시는 것이 되며 세계가 다 신의 본성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각각 범신론과 유출설이 되고 만다. 또한 계시가 필연적이고 존재의 통보이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이 사라진다.
계시는 하나님의 본성의 일이 아니고 의지의 일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비필연적이다. 구원 계시도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실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인류를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III. 내신적(內神的) 계시의 필연성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필연성은 내신적, 삼위일체적 사건에 관련된다. 하나님 밖으로의 계시는 결코 필연적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내신적 사건일 때는 그 계시는 필연적이다. 내삼위일체적 자기 계시, 하나님의 필연적 자기 계시는 내신적 사건으로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하나님의 자기 통보, 자기 현시를 로고스 곧 말씀이라고 칭한다. 하나님 내에서의 하나님의 자기 현시 곧 자기 통보가 아들이다. 이 자기 통보로서의 계시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이 자기 통보는 하나님의 자기 객관화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기 객관화가 로고스이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총화이다.
IV. 계시의 유래처
모든 신계시는 로고스에게서 유래하고 그가 계시자이다.
제3장 계시의 분류와 일반계시
I. 계시의 분류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나눈다.
일반계시는 창조계시와 도덕계시로 나눈다.
특별계시는 비구속적인 특별계시(타락이전에 온 말씀계시)와 구속적 특별계시(타락 후에 창조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로 나눈다.
II. 일반계시
1. 창조 자체
창조는 하나님의 존재, 그의 권능과 지혜, 그리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의 계시 작업이다. 창조는 하나님의 지식의 가장 확실한 계시이다. 창조는 비필연적인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방편이다.
2. 창조계시
1) 창조계시는 창조 작업을 통하여 나타낸 계시라기보다는 창조 세계를 통하여 나타내시는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계시함을 뜻한다.
2) 인간의 구조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를 현시하고 자기의 존재가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현시한다.
3. 도덕계시
인간의 양심에 윤리법을 세우시고 인각하사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며 상벌을 주시는 자이심을 알게 하셨다.
1)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칸트가 말한 도덕법)
2) 윤리의 법을 허락하셨다.
제4장 일반계시의 직임
I. 일반계시의 가치와 의의
일반계시는 사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서 역할을 감당한다.
1. 모든 종교의 기초
모든 종교는 창조주의 창조와 그의 창조 계시에 기초하여 절대자를 섬긴다고 믿는다. 또 모든 종교들이 생활의 법규를 정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새긴 도덕법과 종족들에게 주신 윤리법에 의존한다. 이 종교들의 성립은 일반계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2. 문화 활동의 기초
일반계시 없이는 인류의 사회생활과 문화활동이 불가능하다.
3. 복음의 예비
일반계시는 언어, 사상, 종교, 도덕 생활을 가능하게 하므로 복음 전파의 길을 예비하였다. 즉 복음이 전파도리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일을 하였다.
일반계시도 특별계시처럼 하나님의 로고스에게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일반계시로 이방 세계에서 자기의 오심을 준비하였다.
II. 일반계시의 불충분성
1. 일반계시의 명료성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그의 신성과 영광을 분명히 알게 한다. 일반계시가 구원계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일반계시 자체의 불명료성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명백한 계시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분명한 진리의 지식에 거슬러서 범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계시는 명료하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핑계할 수 없게 정죄하는 일을 한다.
2. 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에 관하여는 불충분하다.
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영적인 사물과 인간 구원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 영원의 세계와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에 관한 것은 일반계시로는 결정할 수 없다.
말씀계시가 신인관계를 언약관계로 만들었다. 말씀계시 없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언약관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씀계시 없이는 모든 종교가 다 자연종교에 불과하다. 말씀계시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다.
일반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3. 죄는 일반계시와 이 계시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을 어둡게 하였다.
죄는 일반계시를 흐리게 하고 우리의 지각 능력을 흐리게 하고 억압한다. 죄 때문에 창조 계시를 잘 읽지 못한다. 칼빈의 말대로 아무리 아름다운 광경이 눈 앞에 전개되어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눈이 어두워진 사람은 안경을 끼어야 그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안경이 바로 성경이다. 그러므로 창조 계시만으로는 확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에 이르러 갈 수가 없다.
4. 일반계시는 일반 종교의 기초로서 불충분하다.
모든 종교들은 다 일정한 특별계시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는 다 이론 체계가 있고 진리에 대한 주장이 있다. 그러므로 일반계시는 종교의 충분한 기초가 되지 못한다.
5. 일반계시는 기독교의 기초로서 전혀 불충분하다.
일반계시를 통하여 구원의 유일하신 길인 그리스도를 배울 수 없다. 일반계시를 통하여 구원하는 은혜, 속죄 등을 알 수 없다. 일반계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구속 과정의 일부가 아니고, 그 예비과정에 속한다.
III. 일반계시와 자연신학
일반 계시에 기초한 신학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성으로 자연의 구조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증명하고 정립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이르지 못한다.
IV. 일반계시의 효능
일반계시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한 것을 칼빈이 가르친대로 핑계하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행사한다.
또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서 종교 의식이 사라지지 않게 종교의 씨를 계속 공급하신다.
V. 일반계시와 일반은총
일반은총은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주신 은사들이 인류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어 역사하는 은혜이다. 이것은 창조와 함께 왔다. 또 창조의 운행도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운행되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일반은총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창조가 정상적인 운행을 하는 것이다.
일반은총은 카위퍼의 가르침대로 죄의 근원은 제거하지 않으면서 죄의 과격한 역사를 제재하여 시민생활이 가능하게 한다.
VI. 일반계시의 부정
무신론자는 하나님 안 계시므로 계시가 없다.
불가지론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계시도 알수 없다.
범신론에 의하면 하나님과 세계가 일치하므로 세계는 신의 양태요 따라서 다 계시의 형식이 된다.
제5장 특별계시(말씀계시, 구원계시)
I. 특별계시
일반계시로는 자기의 작정과 구원경륜 또 인류의 역사진행 경륜과 역사의 종말을 알리실 수 없으므로 말씀의 형태로 인류에게 계시하셨다. 이 계시는 계시를 받으면 알수 있는 합리적인 존재들에게 하셨고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직접 적용되는 백성들에게 이루어졌다.
특별계시는 비구속적 특별계시와 구속적 특별계시로 구분된다.
1. 특별계시 = 비구속적 특별계시
특별계시는 창조 후에 말씀으로 온 계시를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언약관계로 만들었다. 또한 하나님의 계명에 매여 살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언약에 의해 결정되게 하셨다. 언약을 배반하여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거부하면 그 벌로 사망에 이르도록 작정하셨다.
이 특별계시는 타락 전에 왔으므로 구원을 목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별계시는 말씀의 형태로 왔지만 말씀의 형태만이 아니고 사건들과 사실들도 포함한다.
2. 구원계시 = 구속적 특별계시
타락 후에 온 특별 계시로서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왔다. 치유하는 계시로 왔다. 의약적 계시이다.
타락 후 다시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교회가 되게 하셨다. 이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성령을 백성들에게 보내사 내주하게 하여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예비하게 하셨다.
II. 특별계시의 필요성
1.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단절되었으므로, 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일반계시로 될 수가 없다.
죄성이 계시를 변조하므로, 더 밝은 빛이 와야하고, 처음 관계를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역사를 위해 치료하는 의약이 와야 한다. 이것이 구속적 특별계시이다.
2. 특별계시는 치료하는 의약으로 왔다.
창3:8-15가 특별계시의 시작이다. 타락한 인류를 치료하여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여 특별계시가 왔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하고 그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하므로 특별계시의 방식 외에 다른 길로 올 수가 없다. 그러므로 특별계시는 구속계시로서 신인(神人)관계의 회복을 목표한다. 그러므로 특별계시는 타락한 인류에게 필수적이다.
III. 특별계시의 내용
1. 특별계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이다.
2. 창조가 계시되고 설명되었다.
인류의 창조가 잘 제시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창조하였음이 잘 계시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져서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특별하게 창조되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그 의무가 지워져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언약에 의해 결정되도록 작정되었다.
3. 인류의 타락과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현시되고 설명되어 있다.
반역한 인류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심판과 동시에 구원자와 구원의 방식을 알리셨다. 반역을 무효화하므로 범죄한 인류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이키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4. 범죄 이후의 반역행위들과 그에 대한 심판으로 노아 홍수 심판과 언어의 혼란으로 인한 인류의 분파과정이 잘 개진되어 있다.
5. 아브라함의 소명과 민족 형성의 목적과 그 과정이 개진되어 있다.
6. 이스라엘 민족의 구출과 나라의 진행이 구원의 준비 과정으로 자세히 개진되고 설명되어 있다.
구주는 이스라엘에게서 나올 것이므로 그 민족의 구출과 민족 형성이 필수적이다.
7. 구원의 길로서 율법과 제사 제도의 수립과 진행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채택되고 언약을 맺어 백성으로 확실하게 세워졌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살 생활의 법도가 자세히 제시되었다.
8.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그 준비의 역사로 자세히 기술되고 제시되었다.
9.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해석이 모든 계시의 핵심을 이룬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그의 공적 사역이 자세히 제시되어 있다. 그 핵심은 구속 사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전의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목표하고 진행되었다.
10. 구원의 적용으로 교회가 이루어져 성령으로 사는 법이 제시 되어있다.
11. 구원의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약속되어 있다.
신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며, 교회가 설립된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 전파를 통하여 교회에서 진행되고 성취되고 있음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구원의 완성을 제시한다.
구원의 완성은 부활과 창조의 변환으로 이루어진다.
IV. 특별계시의 방법
1. 직접적 말씀
구원의 큰 때에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아들 그리스도로 직접 말씀하셨다. 구약에서 하신 하나님의 직접적 말씀은 그리스도를 통한 최종 말씀의 예비였다.
2. 예언의 방식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시사 말씀을 그들의 입에 넣으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진행과 구원 과정을 예언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구원계시는 약속으로 왔다.
3. 하나님의 현현
구약의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현현의 절정은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하나님의 현현의 최고점은 성육신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육체 안에 나타내셨다.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으로 자기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
4. 꿈과 환상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말씀을 하신 수 없는 경우에는 꿈과 환상으로 자기의 뜻을 알리셨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말씀 계시가 중심이고, 꿈과 환상은 말씀 계시의 보조 방편이다.
5. 이적
이적은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자기의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시는 특별 동작이다.
이적은 구원 계시의 방식의 뿐만 아니라 구원 집행의 방식이었다.
이적 중의 최대 이적은 성육신이다. 성육신 이적 이후에는 다른 특별 이적을 별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최대의 이적으로 구원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최대 이적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회복함이다.
6. 사건과 그 해석
구약의 경우 사건들과 사실이 선행하고 말씀이 사건을 해석한다.
신약의 경우 그리스도의 사건들이 진행되고 해석이 동시적이거나 추후적으로 따라왔다.
V. 특별계시의 특성
1. 구속계시이다.
구속계시는 타락 이후 특별계시이다. 죄를 완전히 제거하여 인류를 완전히 고치고 창조를 변환시켜 완전한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치료하는 계시이므로 종말에 가면 구속 계시의 역사가 곧 은혜의 역사가 중단된다.
2. 역사적 계시이다.
모든 구약 계시가 그리스도를 목표하고 진행되었고 그에게서 성취되었다. 이제 성취된 구원을 우리는 약속으로 받았다. 구원 계시는 한 민족의 역사에서 진행되고 개진되며 성취되었다. 약속과 성취의 형태로 계속되고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그 계시가 역사적 형태를 지니며 시대 제약성을 지닌다.
제6장 율법과 복음
특별계시는 율법과 복음의 형태로 왔다. 둘 다 구원의 길로 제시되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그리스도의 출생과 십자가와 부활로 종결되었다. 이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독촉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그리스도가 어서 와서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열망하게 하므로 그 임무를 다한 것이다.
1) 로마교회
예수 믿음에 율법의 준수 곧 선행으로 완전히 구원하는 믿음에 이른다고 가르쳤다. 내 선행이 내 믿음을 구원하는 믿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2) 종교개혁
복음과 율법의 관계 이해는 구원 서정적으로 이루어졌다. 믿음에 이르는 예비과정 곧 회개의 일을 하기 위해 율법이 개입해야 한다.
3) 바울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를 구원사적으로 이해하였다. 복음의 도입을 위한 준비 과정이 율법의 수여이다. 율법은 본래 지킬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고 구원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므로 구원에 이른다.
4) 루터의 전통에 선 사람들
계시는 율법과 복음으로 나타났으므로 이 둘을 늘 함께 상관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고 복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므로 복음 선포 전에 율법이 선포되어야 한다.
율법은 구원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으로 역사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구원의 길이 전혀 아니다.
율법은 의식법, 형벌법, 도덕법으로 통상 나눈다. 그리고 도덕법은 삼중용법으로 구분한다. ①ㅔ÷� 용법(큰 죄들의 억제수단), ②냅걋� 용법(죄인식), ③냠팀� 용법(생활규범)
제7장 자연과 은혜
계시는 은혜의 방식으로 왔다. 은혜는 죄에서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로마교회에 의하면 은혜는 죄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립한다.
개혁신학에 의하면 은혜는 자연을 보충하고 앙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한다. 은혜가 오면 초자연적인 것이 오기 때문에 자연질서를 억압해도 되고 능가해도 되는 줄 아는 것은 잘못되었다. 은혜는 본래의 자연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고 새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구속한다. 즉 자연 곧 창조를 회복한다. 구속은 재창조이다.
제8장 계시의 수납과 성령
특별계시는 성령의 역사로 수납된다. 우리의 죄성이 특별계시를 배척하고 반박하기 때문에 죄성 제거를 위해 성령의 역사가 특별계시의 수납에 필수적이다. 즉, 성령께서 우리의 지성이 수납하도록 설득하고, 수납의 능력을 조성한다. 그것이 중생이다.
계시 수납을 설득하고 수납의 능력을 조성하는 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로 나타난다. 성령이 그의 설득과 조명으로 계시의 진리를 수납하고 믿게 한다.
제9장 계시의 부정
1. 흰두교는 세계와 신을 일치시키므로 창조가 배제되고 따라서 계시가 부정된다. 범신론에는 창조와 계시가 불가능하다.
2. 희랍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였다.
1) 헤라클레이토스 - 만물의 보편운동의 영원성으로 창조에 의한 세계의 존재와 계시를 거부
2) 파르메니데스 - 존재만이 존재한다. 이 존재는 어떤 시점에 창조에 의해 존재된 것이 아니고, 영원히 존재한다고 하므로 창조와 계시를 배제한다.
3) 플라톤은 계시를 이해할 능력은 가졌으되 빛이 비취지 않는다고 하므로 신계시를 부인한 결과에 으르렀다.
3. 이신론은 기계적 세계상을 조성하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배제하였다. 세계가 하나님의 간섭 없이 진행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섭리가 불필요해지면 특별계시가 있을 수 없다.
4. 영국의 경험론은 고유적 관념이나 지식은 없고 모든 지식은 다 감각 기관에 의한 지각에 의해 성립한다고 주장하므로 특별계시는 다 배제하였다.
5. 칸트는 이성이 알수 있는 지식의 영역은 감각기관이 접촉하는 현상 세계에 국한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도 알수 없다. 따라서 계시도 가능한 것이 아니다. 칸트는 하나님과 그의 계시를 우리의 지식의 영역에서 완전히 단절시켰다.
6. 진화론은 물질 자체의 자기 형성과 진화로 생명에까지 이르고 인간 진화에가지 이르렀다면 하나님은 배제되고 그 계시도 부정된다.
7. 비트겐슈타인은 초기에는 계시는 세계밖에 존재한다고 하여 계시를 부정, 후기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는 언어의 한계밖에 있다고 하므로 계시를 배제하고 부정하였다.
8. 무신론은 여러 형태를 띄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부인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전부 부인한다.
제3편 성경론
제1장 성경
성경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시 자체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이고 완결된 계시이다.
제2장 특별계시와 기록의 필요성
I. 특별계시
특별계시는 기록되기 전에 계시 수납자들에 의해 전달받고 선포되었다. 처음 받은 계시는 직접적 특별계시이다. 처음 받은 계시가 책에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특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과 그 해석으로 종결된다.
II. 기록의 필요성
계시가 바로 보존되어 계시의 수여 목적을 이루는 길은 문자로 기록되는 것이다.
1. 변조와 파괴의 방지를 위해서
문자로 확정되기 전에는 전달 과정에서 계시가 와전된다. 또 본 내용보다 탈락이 많아서 계시의 본 의도를 알 길이 없다.
2. 인간의 기억 한계 때문에
계시가 구전으로 전달될 때 반복적 학습을 통하여 일정한 틀을 지니고 전수되지만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원형대로 전수 될 수가 없다. 또 구전에는 전수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전 인류를 상대할 수가 없다.
3.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온 인류에 계시를 전달하는 최선의 방식은 문자에 의한 기록이다. 모든 종족에게 전파되는 길은 문자로 기록됨으로만 가능하다.
특별계시의 문자화의 필요성에서 성경의 기록이 나왔다. 계시가 기록되므로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전되며, 모든 인류에게 전달되어 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제3장 계시의 기록 ⇨영감
I.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께서 계시 기록자들과 그들의 기록에 호흡하셨다. 하나님께서 호흡하셨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뜻한다. 성령의 특별하고 직접적인 역사로 성경이 기록된 역사를 영감이라고 한다.
1. 계시를 기록하도록 유도하고 충동하므로, 성경을 저작하게 하신 것이 영감이다.
2. 하나님께서 기록해야 할 모든 계시들의 개념을 주시되 대상들에 상응하게 주시고, 또 기록해야 할 모든 사상들과 단어들과 문장을 기록자들의 지성에 전달해 주신 것이다.
3. 이렇게 영감되었으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이 다 참이고 기록의 과정에서 오는 모든 오류가 제거되었다.
II. 저자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이시다. 그러나 실제 기록은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도구라고 말하지만 원저자에 비겨 이차적 저자들이라고 한다.
III. 영감의 성질
1. 유지적 영감
성경의 저자는 필기자로서 기록만 한 대서자가 아니다. 그런 경우도 많이 있지만 성경 저자의 교육과 지식, 인격, 문화적 배경을 다 활용하셨다.
2. 전체적 영감
성경의 일정한 부분만 영감된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에 영감이 이루어졌다.
3. 축자 영감
사상과 언어는 불리불가하기 때문에 단어들이 다 성령에 의해 공급되었다.
IV. 성경의 무오
1. 성경의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없다.
2. 성경의 계시는 담지하는 문장에 오류가 없다.
3. 성경의 기록이 지시하는 역사적 사실들과 실제 사실들 간에 일치함을 무오라고 한다. 이 역사적 사실들에는 과학적인 사실들이 포함된다. 과학적 지식이 표준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가 표준이므로 성경과 상충되는 것은 아직 성경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해서이다.
4. 성경의 첫 원본은 무오하다.
지금의 많은 사본들은 원본보다 탈락이나 잘못된 기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V. 성경 무오의 이유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오류가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가 없다.
사람의 말도 오류가 있으면 신용하지 않는데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오류를 가지면 누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용하여 하나님을 믿으며 그 구원을 참 구원으로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받을 수 있겠는가?
2. 예언과 약속의 책인 구약 성경이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 오류를 가지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이 신약이 말한 대로 인정될 수가 없다.
제4장 정경과 외경
I. 정경
정경의 특성은 선지성과 사도성이 확실한 기록과 그렇지 못한 기록과 구분시켜 준다. 즉 신적 유래가 분명하고 영감되었음이 인정되어 교회가 그 시작부터서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II. 외경
신적 유래가 불확실한 책들 곧 선지자적 유래, 사도적 유래를 가지지 않는 책들은 외경이라 하는데, 선지자나 사도들을 그 저자로 갖지 않는 책들이다.
제5장 성경의 독특성, 곧 신성성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갖는 권위와 그 특성을 가리켜 성경의 신성성이라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저자로 가지므로 특성은 권위, 충족성 혹은 완전성, 필요성, 명료성을 지닌다.
I. 성경의 권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언제나 권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들을 믿고 순종하게 하는 힘을 갖는다.
1. 성경의 권위는 결코 교회의 인정에 근거하지 않고, 성경 자체에만 의존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자기 가신성이라 한다.
2.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와 일치한다.
3. 성경은 그 내용에 따라 역사적 권위 규범적 권위로 나눈다.
II. 성경의 충족성
성경의 완전성은 충족성인데 믿음과 행동의 모든 요목들을 포함하는 모든 부분들의 완전이요, 계시의 모든 단계들을 다 포괄하는 모든 단계의 완전성이다.
1. 성경의 완전성은 곧 충족성
성경에 하나님의 존재와 뜻, 자기 자신을 알리기에 필요한 모든 것과 구원에 이르는데 필수적인 모든 사항들을 다 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 성경의 완전성은 본질적 완전성과 보존의 완전성으로 나눈다.
1) 본질적 완전성은 영원한 구원 얻음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다 담고 있다는 뜻이다.
2) 보존의 완전성은 성경은 파괴나 허위화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게 보존되었으므로, 어떤 한 책이나 한 부분이 다른 것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전혀 없다.
III. 성경의 필요성
성경이 기록되므로 계시의 진리가 순수하게 보존되어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은 구원 얻음과 하나님 섬김과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데 필수적이다.
IV. 성경의 명료성
1. 성경의 명료성은 구원 얻음과 믿음 생활에 필수적인 진리를 누구나 읽어 밝히 이해할 수 있으므로 교회나 다른 권위 있는 자들의 지도가 없어도 누구나 밝히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2. 어려움을 제기하는 성경 부분들을 해석할 때는 성령의 인도와 조명에 의존해서 성경의 중심 사상에 의해서 해석한다. 이것을 신앙의 유비에 의해 해석한다고 한다.
3. 성경 단어들의 참 의미는 문자적 의미이다
제6장 성경의 해석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므로, 성경이 성경해석의 최종권위이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성경 모든 부분은 바로 이 중심에 의해서 해석되고 그렇게 한 해석이 정당화된다.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가 구약의 목표이므로,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예표론을 발전시켰다.
1. 신약과 구약은 함께 읽어야 한다.
2.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구약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가 구약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신약에 의해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구약을 그리스도 없이 해석하면 유대주의 율법종교가 된다.
3. 신구약은 기독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4. 신약은 그 중심인 그리스도로부터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분리된 성령의 오심과 사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기독론의 연장이다.
그리스도가 역사를 주재하고 구원적용이 완료되면 구원의 완성을 위해 재림한다. 그러므로 종말론은 기독론의 연장이다.
생활규범에 관한 성경 본문들도 그리스도로부터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주의에 빠지고 만다.
5. 성경의 해석은 문자적 의미를 참 해석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그 언어가 문장과 문맥에서 말하는 사실을 지시한다.
글자적 문법적 의미를 성경본문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 문자적 의미를 벗어나면 그것은 곧 시대사상과 합치하여 성경의 사신(使信)을 변조하게 된다. 이 변조를 막기 위하여 성경해석은 교회의 근본교리들에 부착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부분이 다 산문언어로 기록된 것이 아니다. 시적 표현과 상징적 언어의 활용이 많다. 시 부분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비유적 의미가 가능하고 허용된다. 따라서 우화적 해석이 허용될 수 있다.
6. 성경해석은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뜻을 말하도록 도와야 하고 당대 사상에로 번역하면 안 된다.
제7장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의 존재에 피조물이 동참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는 것이 아니고 죄와 사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출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칼 발트는 성경은 그 자체로 이미 발생한 계시가 아니다. 성경은 이미 발생한 하나님의 계시를 회상하는 구체적인 수단이라고 결국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별개로 분리하고 단지 주관적 결정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진 신일 합일 혹은 신 존재에의 동참이 하나님의 원래 뜻이고 궁극적 말씀이다.
발트는 하나님의 말씀의 삼중 형태를 구분한다.
1) 처음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
2) 성경 기록으로서 하나님 말씀
3) 선포로서 하나님의 말씀
발트는 여기서 신언 사건으로 성경과 계시가 일치된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혹은 계시와 일치시킬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없고 간접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궁극적 말씀인 것은 그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궁극적인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트에게는 부활이 없다.
제8장 성경과 교회
로마교회는 교회가 정경을 확정하므로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에 종속함을 뜻한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므로 성경이 최종 권위를 갖는다.
로마교회는 교회는 자체로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구원에 관한 필수적인 문제들에 관한 결정에 있어서 무오한 것은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침 받을 때만 이다.
로마교회는 교회가 무오하므로 공회의가 정한 것도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성경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말씀이 없어도 교회의 결정으로 교리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 귀결이다.
로마교회는 주교는 주교이므로 권세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주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주의 말씀과 이름에 봉사하기 위해서 부름 받았으므로 말씀을 바로 봉사할 때만이 권위를 갖는다.
로마교회는 성경을 해석하는 일도 교회가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교황이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2 바티칸 공회의 이후에 로마교회도 성경의 해석을 학자들에게 맡겼으므로 성경의 해석권이 개별 신자들에게 있어 승인하므로 스스로의 주장에 모순된다.
성경은 성령의 인도에 의해 성경에 의해 해석해야 하므로 신자가 성경의 해석을 할수 있다.
로마교회는 사도적 계승을 강조하면서 성경과 함께 사도적 전통을 두 계시의 원천으로 삼았다.
⇨성경 계시에 이미 주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한 모든계시가 다 들어 있다. 그러므로 추후에 사도들이 교회에다 새로운 계시를 말로 전달하였다는 것은 불가하고 그런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억설일 뿐이다.
로마교회는 주교는 전체로 교황과 결합하여 무오하며 교황과 결합하여 전체로 교회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주교단의 결정이 무오할 수 있는 경우는 성경에 매이고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따를 때만 이다.
로마교회는 주교단이 교황과 함께 성경을 해석해야 할 이유로 성경은 그 자체로는 죽은 문자라는 것이다. 성령이 죽음 문자를 살리므로 성경은 교회의 산 말씀에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자기 가신성과 자기 증거를 가지므로 교회가 외적으로 보증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선포가 어디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발견할지를 말해준다고 한다.
⇨교회의 해석을 통한 선포에 의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면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른다.
로마교회는 교황 무오성을 교리화하므로 교리와 윤리적 결정에 있어서 교황이 전혀 무오하다고 주장한다.
⇨로마교회의 기본 고익은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에 이름이라고 확정하였는데, 1999년에 종교개혁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름을 수납하였으니 교황의 교리 결정과 해석이 무오할 수 없다는 단적인 증거이고 교황의 무오한 결정이 성경 계시에 근거하지 않았고 그 계시에서 유래하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무오성은 성경만에 귀속하고 성경의 진술을 받는 것만이 무오한 신앙 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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