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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주의(根本主義)

하나님아들 2023. 7. 11. 23:09
근본주의(根本主義)              
 
1. ‘근본주의’의 발생
1.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독일과 영국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말 미국에서 강한 세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객관적 계시와 정확무오한 권에 대하여 회의를 느꼈다. 모세오경의 저작권, 구약의 연대적 순서, 복음서 기록의 정확성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대속교리, 육체 부활 등 바울신서의 저작권 등에 대해서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학적인 공격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공격도 퍼부었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성경 내용을 불신하는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진보하여 가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2. 이와 같은 비평에 대하여 순수 기독교 신앙, 즉 초자연적인 복음의 변호와 전파를 위하여 일어난 것이 근본주의(根本主義)운동이었다. 이 운동에는 알미니안파, 침례교도, 장로교도, 그리고 세대주의자(世代主義者)들이 한데 뭉쳤는데, 그들은 20세기 초까지 공동의 적인 자유주의를 대항해서 싸웠다. 결국 이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과 진화론 같은 현대 과학 이론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으로 새로운 신학 전개라기보다 오히려 순수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촉진하려는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란 말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긍정적이기 보다는 늘 편협하고 논쟁 지향적이며 분파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와 현대 사상에 대하여 공격적이고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20세기 초 미국의 종교와 세속 분야에 불어 닥친 모더니즘 경향들에 반대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다.

2. 용어의 사용
3. 이 ‘근본주의’라는 말은 1920년 침례교기관지 편집인 커티스 리 로우즈(1868∼1946)가 북침례교 총회안의 반 현대주의자들을 가리켜 사용한데서 비롯된다. 이 용어는 현대주의 신학과 현대문화의 세속화 양상에 대항하여 싸우는 복음주의 개신교도들을 총체적으로 넓은 의미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를 들자면 이 용어는
• 첫째로 복음주의적 개신교도들에게 적용되었다.
• 둘째는 반 현대주의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그들은 전통적, 초자연적, 성경적인 기독교의 원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셋째로는 세속화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용어의 사용은 다소 복잡하다. 때때로 일반적으로 ①종교상의 반 현대주의자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지만 혹은 ②근본주의 사람들 중 복음적 부흥운동에서 도를 지나치거나 반(反) 지성주의적인 사람들을 가리켜 막연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운동들의 공동 기원은 19세기 미국 부흥운동의 다양한 활동에 두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그래서 그들은 보통 근본주의자로 불리어졌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흥운동가들이었다.

3. 영미에서의 근본주의
4. 영국에서 근본주의라는 말은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근본주의는 성경의 고등한 견해와 근본적인 주장들을 가지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를 가리켜 사용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가 호전적인 반현대주의적 백인 복음주의 자들을 가리켜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흑은 복음주의 자들은 흔히 스타일에서는 부흥사이고, 교리 면에서는 근본주의이며, 윤리 면에 있어서는 반 현대주의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4. 근본주의의 특징
5. 근본주의는 어떤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명칭이라기보다는 광범위한 종교적 흐름을 나타낸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근본주의자라는 명칭보다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모든 보수적 복음주의자가 곧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근본주의 신학은 5개 조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①성경 무오설과, 문자적 영감설, 인간 존재의 전적 타락, 그리스도에 관한 4개의 교리, 즉 ②동정녀 탄생과 대속적인 죽음, ③육체적 부활 그리고 육체적 재림, ④그리스도의 기적들, ⑤천년왕국 이전의 재림 교리 등이다.
근본주의의 중심점은 성경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설과 축자 영감설,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강조했다. 근본주의 신학은 새로운 것이나 독창적인 것이 없었다. 근본주의는 20세기 초 자유주의와 현대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성서적이며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일어난 종교운동이다.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복음주의적 신앙과 교리를 수호하려 한 것과 자유주의의 거센 흐름을 차단하는 동시에,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자유주의의 위험성을 각성케 한 것은 근본주의의 역사적 공헌이다.

5. 근본주의의 역사(曆史)와 특징
6. 근본주의 운동의 특징들은 그 역사에서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에네스트 샌딘은 그의 중요한 연구서에서, 근본주의의 주요한 근원은 다비(Darby, 1800-1882)와 그 밖의 사람들의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전천년 재림 예언운동(前千年 再臨 豫言運動)이라고 지적하였다.
1830년대와 1840년대의 미국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따른 평화의 천년(천년왕국)에 대한 기대로 들끓었다. 초기에는 흩어져 있던 재림에 대한 관심이 나이아가라 사경회(査經會)를 통해 하나로 모아져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사경회는 뉴욕 시 침례교 목사 제임스 잉글리스가 1872년 죽기 바로 전에 시작하여 세인트루이스 장로교 목사이자 영향력 있는 천년왕국운동의 정기간행물〈진리〉의 편집자인 제임스 브룩스(1830~97)가 계속 이어갔다.
19세기말에 접어들면서 유명한 보스턴 침례교 목사 아도니람 J. 고든(1836~95)과 캐나다 교회 소속이었던 후론의 감독 모리스 볼드윈(1836~1904) 같은 지도자들이 천년왕국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은 해마다 하계 사경회를 열었는데, 사경회는 1899년까지 대개 몬타리오의 나이애가라 온더레이크에서 개최되었다. 나이아가라 사경회와 연관된 천년왕국론자들은 1878년에 대도시에서 시작된 공공집회들, 예를 들면 뉴욕 시에서 열린 '성서와 예언자 대회' 같은 집회들을 후원했다.
7.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장로교와 침례교 같은 중요한 교파 안에서도 근본주의의 표현들이 나타났다. 특히 세대주의(世代主義)가 이 운동의 특징이었으며, 스코필드의 관주성경은 거의 정경(正經)처럼 인정되었다. 또한 미국의 많은 세대주의자들은 영국의 온건한 성결운동의 교리를 채택하였다. 세대주의는 이 시대에 교회의 파멸을 예고하면서, 20세기 초의 공격적인 현대주의 신학의 발생에 대하여 투쟁할 것을 고무하였다. 특히 현대주의가 강했던 미국에는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신앙의 근본원리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세대주의자들이 많이 있었다.

8. 미국의 보수주의적 장로교 교인들은 우선 근본교리를 옹호하는 전략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9년부터 1915 년까지 12권으로 된 근본주의 총서「근본원리들」이 출판되어 전통적인 교리들이 옹호되었다. 이 총서는 라이만 스튜어드와 밀턴 스튜어드 형제가 희사한 25만 불과 무디 기념교회 딕슨 목사의 편집으로 이루어졌고, 집필자들은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과 영국의 보수주의 신학자들이었으며, 전국적으로 300만권 이상이 무료로 배부되었다.
이 총서는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성을 강조하는 29편의 논문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변호하는 총 90편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근본주의 단체들이, 비록 한 가지도 표준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근본주의적’ 교리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가장 공통된 요점은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동정녀 탄생, 대리속죄,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이었다.
9. 1920년대에 현대주의자들을 대항하여 열심히 싸운 근본주의자들은 주요한 북장로교와 침례교 교단들 안에서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규모의 근본주의 논쟁들이 다른 교파들 안에서도 발생하였으며,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이와 비슷한 분열들이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 있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근본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도덕적 부패를 공격함과 동시에 교회와 문화의 부패도 공격하였다. 윌리엄 브라이언(1860~1925)이 주도한 미국공립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 금지운동은 그러한 관심사의 주요한 표현이었다.
10. 그런데 1925년 테네시 주 데이튼 시의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존 스코우프스는 이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100불 벌금형의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 교육의 보급은 미국인의 생활에서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며, 도덕적 상대주의로 조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로마교회, 술, 담배, 춤, 도박과, 오락, 극장구경도 근본주의자들이 공격하는 또 다른 중요한 표적들이었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근본주의는 미국의 남북부전역과 그 밖의 영어권 나라들, 그리고 그들의 선교지역에서, 여러 가지 전통을 가진 반현대주의 크리스천들의 연합으로 성장하였다. 그 연합의 중심에 미국의 세대주의자들이 있었다.

11. 1930년대에 와서 근본주의는 어떤 특수한 교회적인 표현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효과적인 근본주의자들은 점차로 현대주의자들이 들어있는 단체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교회나 교파로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이 침례교도와 세대주의자들이었다.
그리하여 1920년대의 호전적 반현대주의자들의 광범한 연합은 1940년대에 와서는 분열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에서 한 주요한 집단은 호전성을 완화하고, 중요한 교파들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새로 생겨난 집단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신복음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들이 빌리 그래함의 협력을 얻은 것은 근본주의자들이 복음주의로 발전하는 신호가 되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의 ‘근본주의’는 이 소수의 분리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라, 넓은 복음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넓은 복음주의에는 전 근본주의자들과 여러 가지 전통의 성경을 믿는 크리스천들이 포함되어 있다.

6. 근본주의에 대한 평가
12. 근본주의가 초자연주의를 강조하고, 성경의 권위, 처녀탄생, 그리스도의 신성, 대속교리, 부활, 재림 등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을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거기서 몇 가지 약점이 발견되고 있다.
(1)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주권교리를 강조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주권은 다른 모든 교리를 싸고도는 중심 태양이다. 하나님은 우주의 절대적인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작정과 창조와 섭리와 구속에서 주권적으로 일하시는 것이다.

(2)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깊이 보지 못하는 점이다.
근본주의의 약점은 구약시대의 신자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은 다 같이 은혜의 언약에 속하는 구원방법의 계시이다. 구약이 은혜의 약속에 대해 계약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그 성취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양자는 연속성과 통일성은 갖는 것이다.

(3) 일반 은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다.근본주의의 약점은 일반은총(자연은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세속 학문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여 마침내는 반(反) 지식주의로 흘러가고 말았다.

(4) 기독교의 사회적, 문화적 명령을 무시한 점이다.
근본주의는 개인의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기독교의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무시한다. 종교는 개인의 기도생활과 성경공부, 그리고 교회출석에 국한되고, 경제학이나 사회학, 그리고 자연과학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는 무관한 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문화·과학은 성경신학에 의하여 지도받지 못하고 오히려 한정되고 제약을 받았다.

(5) 복음의 전파보다 옹호하려고 한 점이다.
초기 근본주의와 후기 신근본주의가 다 같이 복음을 전파하고 옹호하려는 열심은 대단하나, 옹호하려는 면이 전파하려는 면보다 더 우세하다. 적극적 자세에서 부정적 자세로, 당당한 싸움에서 사사로운 다툼으로, 은혜로움과 예절에서 비난의 언어로 그 호전성을 나타냈다.

7. 근본주의와 한국교회
13.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청교도적 개혁주의를 선교사들에게서 전수받았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 이 청교도적 개혁주의 전통 속에는, 경건주의, 신비주의, 세대주의와 함께 근본주의 등, 성경사상에 미흡한 요소들이 들어와 사상적 혼란을 가져왔다. 특히 근본주의적 요소를 한국장로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반 은총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개혁주의적 한국장로교회는 세상학문에 대한 노력을 강조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반(反) 지식주의에 흐르는 경향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계시종교와 과학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칼빈은 계시종교를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영원적인 것만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믿고 아울러 존중하며 강조하는 것이다. 
14. 아무튼 한국교회가 잘못된 경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도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크리스천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나, 그것이 경건생활이 못되고, 경건주의에 빠지게 될 때, 형식주의가 되고 율법주의가 된다. 경건주의자들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에 없는 생활표준을 세우고, 그 표준이 마치 성경인 것처럼 생각하며 생활하다 보면 서로 마찰을 일으켜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술을 마시면 절대 안 되고, 주일 성수를 하루라도 빠지면 큰일 나고, 주일날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되고, 가정예배는 꼭 드려야 하며, 십일조를 안 바치면 죄라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에는 오락을 해서는 안 되고 극장에 가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 보니 경건이 경건주의가 되고, 형식주의 율법주의로 빠지고 마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장로님들 가운데에는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다. 엄격한 율법주의자들이다.
흔히 기독교인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보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건주의가 형식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5. 한국교회 병리현상을 말하는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은 이제 한국교회 교인들이 진정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건전한 경건한 생활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 교인들은 천주교나 불교 신자들에 비해 신뢰도가 낮게 나타났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경건하게 산다고 하나 경건이 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인 삶이 타 교인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건이란 무엇인가. 경건이란 흔히 생각하듯 깊은 산 속이나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하거나 도를 닦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 성경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지키는 것이 아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숭상하고 사람을 존경하고 자신을 귀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도덕이나 윤리 신앙고백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생활과 말씀에 충실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는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16. 쉽게 이야기해서 경건은 기독교인의 신앙자세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신앙생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살려고 하는 기독교인의 모든 생활이 곧 경건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 비춰볼 때 오늘날 한국교회 교인들은 경건을 말하고 있으나 경건과는 거리가 다소 멀다.
그런데도 교회 출석률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례로 지난 98년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한미준)이 한국갤럽에 의뢰한 '한국 개신교인의 교회 활동 및 신앙의식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의 교회 출석률은 88.3%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또 매주 주일 낮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은 전체 65.2%로 나타났으며, 한 달에 2-3번이 18.0%, 한 달에 한번 3.7%, 한 달에 한번 이하 1.4%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주일성수가 무너지고 있으나 타종교에 비해 한국교회 교인들이 종교행사에 참여하는 빈도수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주일 성수를 철저히 지키려는 반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이 일치되지 못해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가식적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는 자비(긍휼)를 원하고 제사(바리새인과 같은 형식적인 행위)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12 :7)는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