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
1)장소와 시간의 강조점이 다르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장소에 대해 마지막 주간만 제외하고 공관복음에서는 주로 갈릴리 사역을 다루고 있으나,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지방에서의 사역이 강조되었다.
시간상으로도 공관복음은 한번의 유월절만을 언급하여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이 1년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세번(2:13, 6:4, 13:1) 언급하여 공생애 기간이 3년 이상이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2)언어상의 용법이 다르다:
공관복음에서 특징적인 표현형식은 비유이며 여기에서 교훈적인 진술을 가미한 짧고 생생한 구절들과 쉽게 기억될 수 있는 간단한 사건들이 많이 나타난다. 반면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교훈은 긴 강론형식으로 되어 있다.
3)관점이 다르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나라’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의 강론들은 대부분이 예수님 자신에 관한 것과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특별히 영생이라는 주제에 집중되고 있다.
4)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
공관복음 요한복음
의도 역사적 예수님에 대한 관심 신앙의 그리스도에 더 관심
성격 예수님 사건의 역사성을 중시 예수님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중시
연대 65-80년 사이 90년대
배경 66년부터 시작된 유대전쟁을 유대전쟁의 충격으로부터 시간적으로
역사적 배경으로 함 지리적으로 벗어나 있음
갈등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갈등 기독교와 종교혼합주의 사이의 갈등
(전통으로부터 점차 분리되는 과정) (전통으로부터 이미 분리된 상황)
내용구조 갈릴리 – 예루살렘 구조 예루살렘에 여러번 올라가심(3회)
예루살렘에 한번 입성하심 유대 중심
말씀 비유, 논쟁 등 주로 짧은 말씀으로 주제화 된 긴 말씀(비유없음),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선포함 하나님의 나라 대신 자기계시적 용어사용
(예고이미지)
이적 많은 기적 보도 적은 기적 보도, 예수님의 신성과 귀신추방
이적이 많음 영광을 가리키는 표징(귀신추방이적 없음)
수난사 대리자적 속죄 죽음 부활과 영광의 빛 아래에서 죽으심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차이
신약성경 제일 처음부터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가리켜 공관복음이라고 하며, 거기에 요한복음을 합쳐 4 복음서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은 앞에 3복음서(공관복음)와는 내용면에서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일간신문처럼 다루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시사 주간지처럼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간신문은 그날그날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다루어 기사화 하지만 시사 주간지는 그 신문 기사 중에서 관심이 있는 것을 뽑아 심층 취재하여 다루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복음서의 시작을 보면,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족보이야기..... 마가복음서는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에서 출발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배경부터 적어가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부터 계셨던 예수님에서 부터 출발하면서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로고스라는 말은 헬라어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말씀(Word)과 이성(Reason)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중요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공관복음과 구별됩니다.
1.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의 차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과 똑같이 "복음서"라고 하는 문학적 쟝르에 속한다.
요한복음에도 공관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기적 사화들이 그의 교훈적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과 나란히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요한복음의 저자가 공관복음서에 관해 전부, 혹은 일부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직도 의견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료의 문체와 표현에 있어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서 사이에 명백하고 직접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로서 요한이 마가와 누가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듯 하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독자적인 자료가 많은 걸로 보아서, 그 두 복음서가 요한복음의 기초자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요한복음의 형식적인 근거들에 의하여 공관복음서들과 세가지 면에서 구별된다고 할 수 있겠다.
첫째는 예수님의 공생애활동의 시작에 관한 차이가 있다
공관복음서는 세례요한의 투옥 후에 설교자로 나선다.(막1:14, 눅3:18, 20, 마4:12) 그러나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의 활동과 예수님의 공적활동의 중복기간이 상당히 나타난다(요3:22-30, 4:1,2)
둘째, 예수님의 공생애 전도 활동 무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세 복음서에는 예수가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하다가 마지막 일주일을 예루살렘에 체류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에 반하여 요한은 최소한 세 번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2:13, 5:1, 7:10) 그 대부분이(7:10ff)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예수에 대해서 서술되고 있다.
셋째로 공생애 기간의 차이,즉 유월절 방문기록에 대한 차이이다.
공관복음에는 문맥상 예수의 공생애에서 일년으로 한 번 유월절이 반영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유월절이 세 번 언급되고 있다(2:13, 6:4, 11:55). 여기에 더하여 요한의 기사에 의하면, 예수는 5장 1절에서 이름이 밝혀지지 아니한 어떤 절기동안, 그리고 7장 2, 10절에 나오는 장막절 동안, 그리고 10장 22절에 나오는 수전절 동안에 예루살렘에 있었다. 사실상 요한의 기사에 따르면 예수는 10장 22절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다시 떠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참고적으로 말하자면, 수전절은 겨울철이다. 사실상 이 절기는 12월이고 유월절은 4월 중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의 이야기 안에서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은 며칠 동안 체류한 것이 아니라 몇 개월 동안 체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네 번째로 사상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문체 뿐만이 아니라 그 신학적 내용이나 개념들까지 공관서와는 많이 다르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공관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본다면 오히려 요한은 영생과 생명에 그 주제가 있으며, 공관서는 미래적인 종말을 강조한데 반하여 요한은 현재적인 종말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관서는 율법논쟁이나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반하여 요한은 상대적으로 율법논쟁, 윤리적인 삶의 교훈이 약하며 교회와 회당에 대한 확고하게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공관서에서는 이원론적인 개념을 찿아볼 수 없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어두움'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 등 이원론적인 개념들이 사용되고 있다.
다섯 번쩨, 실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의 차이가 있다
요한은 성전청결사건을 공생에 초기에 일어난 일로 기록하고 있다면(요2L13-22), 공관복음서는 공생애 마지막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막11:15-17, 마21:12-13, 눅19:45-46)
주님의 수난일도 공관복음서에서는 유월절에 일어난 사건으로, 요한복음은 유월전 전날 예비일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섯 번쩨, 기사상의 차이가 있다
요한 복음서에는 공관 복음서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마귀 쫓는 기적이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공관 복음서에는 없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싣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신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2,1-12), 38년 동안 반신불구였던 사람을 치유하신 기적(5,1-19), 태중 소경을 보게 하신 기적(9,1-7), 나자로를 죽음에서 소생시킨 기적(11,39-44)들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요한이 요한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가정할 때 공관 복음서에 없는 기적들을 의식적으로 골라서 기록함으로써 공관 복음서를 보충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곱 번쩨, 예수님의 말씀에서의 차이가 있다
공관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들은 하나님 나라가 기본 주제이며 거의 짧은 말씀들로 되어 있는 반면 요한 복음에서는 "나는 --이다."라는 형태(예를 들면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길, 진리, 생명이다 등등)의 자기 계시적이며 긴 말씀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기 계시적인 말씀들은 이 세상에 대해 예수님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가 연관성이 없을만큼이나 차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으며 공관 복음서에서도 역시 1인칭 문체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덟 번째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는 시점
공관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점진적으로 밝히는 반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1,41) 이처럼 공관 복음서가 예수님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데에 반해 요한 복음서가 시초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본다해서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즉 공관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있으며 요한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번째 유대교에 대한 태도
공관 복음서에서는 유대인과 예수님의 관계가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 나빠지는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처음부터 나쁘게 나옵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서가 1세기 말엽의 시대 상황인 교회와 유대교의 분리를 예수 시대때 예수님과 유대인의 분리라는 상황으로 소급하여 서술했기 때문입니다.
여덟번째) 종말론의 차이
공관 복음서에서 심판과 하나님 나라는 세말에 오는 것을 나타나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실현된 종말론, 현재적 종말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말에 얻게 될 구원으로서의 생명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이 현실에서 이미 그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믿는다면 참다운 생명은 이 세상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다만 죽어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3,36-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그리스어 성서를 보면 동사의 시제가 현재로 나타나 있어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5,24-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 섰다.) 요한 복음서의 종말론이 이렇다하여 현재성만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적 생명관 역시 존재합니다.(5,29/6,40/6,44/11,25-26) 그리고 이 생명은 파괴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 예수님과 누리는 친교이며(17,3) 이것은 믿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인데 이 믿음은 사변적인 것이 아닌 실천적인 것 곧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그것은 한 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지속적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락방 강화(講話) (0) | 2022.12.09 |
---|---|
4복음서의 핵심내용 대비표 (0) | 2022.09.20 |
4복음서 핵심 (0) | 2022.09.02 |
4복음서 비교표 (0) | 2022.09.01 |
산상수훈 4. 온유한 자가 기업으로 받는 땅 (0) | 2022.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