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나님아들 2021. 12. 17. 23:5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 찬송의 작시자는 요셉 모어(Joseph Mohr, 1792~1848)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인 오벤도르프(Oberndorf)에 있는 성 니콜라스교회 신부로 봉직 중이었다. 당시 31세였던 이 교회 오르간 반주자이자 학교 교사였던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 1787~1863)는 이 찬송의 작곡가다.

1818년 크라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전국을 순회하는 연극배우 일행이 예수 탄생에 관한 연극 공연을 하기 위해 이 마을에 머물렀다. 그들은 교회에서 연극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오르간이 고장나버렸다. 하는수없이 도시인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온 수리공이 그 오르간을 분해하여 마루에 늘어놓고 수리를 하게 된다. 그래도 연극은 시작되었고, 작시자인 요셉 모어는 물론이요 연극을 보러 온 사람들 모두 모여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큰 감명과 감화를 받았다.

연극이 끝난 후 요셉 모어는 잘츠부르크 산 기슭, 작은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오벤도르프 마을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고요하고 거룩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별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밤, 이 작은 마을에서 그는 예수 탄생 당시의 아름다운 광경을 그려보게 된다. 요셉 모어는 갑자기 그 밤에 어울리는 시상이 떠올랐고, 자정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자신의 감상과 시상을 종이에 써 내려 갔다. 이 소박한 시 한편이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부르게 될 '불후의 명곡'이 되리라고는 그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작시자 요셉 모어는 다음 날 아침 교회 반주자인 프란츠 그루버에게 자신의 찬송시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면서 작곡을 권했다. 그날이 바로 크리스마스 전야였기에 성도들은 모두 교회에 모여 있었다. 오르간을 고치고 있던 수리공과 그루버도 그곳에 있었으나 오르간은 아직 수리가 완료되지 않아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정중히 사과하게 된다. 오르간이 고장났기 때문에 그루버는 기타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의 손에는 모어의 시에 곡을 붙인 악보가 있었다. 그는 기타 줄을 튕기며 모어에게 나오라고 눈짓을 했다. 그날 처음으로 작곡자와 작시자 둘이 함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찬송을 부르게 된다.

 

그날 저녁 오르간 수리공은 그 찬송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당시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 중이던 스트라스 어린이 합창단에게 이 곡을 알려주었다. 그들의 공연에 이 노래가 불릴 수 있도록 주선해준 것이다. 이들은 전 유럽을 순회하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선보였는데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모든 청중은 하늘에서 온 노래라며 큰 감동을 표현했다.

 

​훗날 이 찬송은 독일 섹소니 왕국의 음악 총 책임자인 폴렌츠(Pohlenz)에게 전해진다. 폴렌츠는 스트라스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1832년 크리스마스 전야에 황실 교회에서 왕의 가족들에게 들려주었고, 프러시아의 왕 프레드릭 윌리엄 4세 앞에서도 이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 아름다운 찬송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오르간이 고장나지 않았더라면, 또 그 수리공이 오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다운 찬송은 단지 그 시골 마을에서만 불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송을 특별하고 오묘한 방법을 통해 전 세계로 전하셨고, 우리에게까지 아름다운 선물로 허락하셨던 것이다.

 

 

 

출처 - 이천진 (찬송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