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아들 2021. 10. 22. 00:21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

 

   

    저자 - 그레엄 골즈워디

 

저작동기

성경 전체를 하나로 묶는 통합된 신학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와 완전 영감을

받아들임을 보여주려 한다. 어떤 작은 본문도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경의 통일성 즉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어느 정도나마 파악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1. 성경신학 왜 필요한가?

성경신학에서는 성경의 통일성을 전제하고 있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수많은 주제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가 있다.

성경신학은 성경해석학에 꼭 필요한 것이다.

 

2. 성경신학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이 이미 실재의 본질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잇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인간들처럼

우리의 법칙을 따라야만 하는 존재로 보려고 한다.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으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신학이란 단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알려면 그분과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중립적인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신학을 해야 하는 것이다.

 

타락 이전에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자연과 양심으로부터 인식하였다.

(이런 전제는 그의 스승 존 브라이트로부터 배운 듯 하다 - 성령과 연합되지 않은 인간론?)

그러나 언제나 초자연적인 말씀이 필요하다.

이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므로 자연을 통해서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초자연적인 말씀이 없이는 죄 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모든 창조세계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가장 큰 관심과 주장은 구약의 모든 해석에서 실재되는 그리스도를 드러냄이다.

구약 안에서 예수님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님의 역사를 발생하기도 전에 해석한 경우가 된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에 일어날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뜻이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성경의 메시지 전체를 연결하는 주제로서 <언약과 새 창조>를 성경의 통일성을 유지시키는 중심요소로 삼았다.

 

3. 성경신학 무엇이 그 내용인가? 

 

저자는 누가의 저작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관심이 많다.

성경전체에 걸쳐서 구원과 심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한 활동으로서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에 상호 보완적인 사역이다.

 

인간이 금단의 열매를 먹어 선악을 아는데 이르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진리와 이 진리의 근원에 대한 반역을

저지르게 된다. 즉 인간은 악을 거절하고 선함 가운데 남아 있음으로서 선악을 아는 대신에, 선을 거절하고 악하게 되는 것을

선택하였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스림은 인간 지도자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신다. 중보자인 지도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분의 백성에게

반사해야만 한다(성령을 통한 통치 보지 못함).

하나님의 약속들의 성취는 그분이 선택한 인물들을 통해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이방인들도 구원사역의 초기부터 언약의 복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방법은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 이외에 달리 계시된 구원의 방법은 없다(할례에 참여하여 언약백성됨).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구원역사의 사건들은 장차 올 단 하나의 참되고 완전한 구원사역의 패턴을 따라

미리 보여주는 것이며 예증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믿음을 통해 은혜로서 구원받는 길을 잘 드러내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혜서와 시편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 의해 구원받은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이 매일 그분과 나누는

교제의 표현이다.

 

다윗의 메시아 역할은 그가 실제로 왕이 되기 오래 전에 시사되었고 또한 그가 하나님의 옹호하심이 있기 전에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같은 인물을 볼 때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경건과 믿음의 모범이 된다는데 있지 않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을 계시하고 미리 예시하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구원전략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구약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특히 그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확증인 것이다(고후1:20).

 

구약성경의 약속들은 결국 만물의 거듭남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과 모든 창조계가 각자의 역할을 온전히 성취하면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재창조이다. 하나님의 구원전략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 그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구약에서 그림자(?)로서 예시되었던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재로서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의 영향력 아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통해서 임하는 것이다.

제자들의 사역이 세계적이라는 의미에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의심할 것 없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었다.

구약성경의 신자들 안에 성령님이 계셨듯이 이 제자들 안에도 성령님이 계셨다.

제자들 안에도 오순절 이전에 성령님이 계셨다.

 

사도행전 2장과 오순절 기사와 요한복음 7:39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성령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 그분 및 그분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다.

오순절의 경험은 매우 독특하다.

오순절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성령님은 언제나 구원 사역과 연관하여 임재하신다.

오순절에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과 연관해서는 처음으로 임하신 것이다.

 

옛 시대의 종말은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 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새로운 시대를 구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시대는 새 시대와 더불어 계속 존재한다.

 

 

 

 

 

그리임 골즈워디의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해설은 이 ‘복음’이 어떻게 구약 특히 창세기에서부터 전개되어 나왔는가를 아주 간략하게 보여줌. 복음의 주제에 대한 이러한 식의 전개방식을 특히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라고 말함.

 

이 성경신학은 흔히 말하는 성서신학이나 성서학이라는 것과는 매우 다름. 성서학 또는 성서신학은 그 말이 사실은 동일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철저히 다른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 성서학이나 성서신학은 성경 혹은 성서의 문서적 성격에 집중하여 문헌학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함.

 

그러나 여기에서 그레임 골즈워디가 말하는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라는 것은 성경 자체에 있는 주제들의 통일적인 연관성을 추구하는 분야를 말함.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고 알리신 활동 즉 계시 활동과 그 결과로서의 계시에 일관된 어떤 주제가 나타나고 있고, 그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연결해 볼 때에 거기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이르는 긴 궤적의 점진적인 발전 상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신학연구활동은 보수적인 활동임. 흔히 말하는 성서학 또는 성서신학이 성경/성서에 대한 비판적인 활동으로서의 계몽주의적 의심과 불신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이루어지는 성경 텍스트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를 의미한다면, 성경신학연구활동은 성경 자체의 텍스트와 증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내용상, 주제상의 연관성과 발전관계를 확인하는 연구작업을 의미하는 것임.

 

이 책은 우선 <평신도를 위한 성경신학입문>이라는 부제가 가르쳐 주듯, 매우 평이하게 설명하고자 애를 썼지만, 골즈워디의 기본적인 통찰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들이 많이 있음.

 

그 점들을 간단간단히 짚어보기를 원함

 

제1장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다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움. 익숙하고 잘 아는 부분만 계속해서 읽고 어려운 부분들은 무시하기가 쉬움. 그러나 우리가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그 난제들과 만나지 않을 수 없음 그러므로 성경을 어떻게 일고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보여주는 성경신학이 필요함.

 

서로 ‘나는 성경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 기계나 장비 등등의 물품을 구입하면, 사용설명서를 잘 읽을 필요가 있음. 그렇지 않으면 쓰지도 못하고 고장내거나 조립을 잘못해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생겨남.

- 성경을 읽을 때에도 비슷한 문제가 개재해 있음. 부분적인 이해가 신앙생활과 영혼의 건강에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음. 편식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나지 못하게 되거나 그릇된 신앙으로 빠져듬.

- 필요한 것은 성경을 전체로 이해하는 법임. 성경이 전체로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함.

-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 – 성경을 전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일어남. 성도들/목회자들.

- 또한 서로 잘 믿고자 하는 보수적인 신앙, 복음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면서도 서로 차이가 나는 해석들을 갖고 있음. 그 까닭은 성경의 구석구석을 전반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의해 크게 달라짐.

- 대표적인 예 – 안식교의 안식일, 일반 교회의 안식일… 사실 안식일은 동일하게 토요일 그러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음. 왜? 그런가? 서로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다른 격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함. 이런 주제들이 여러 가지가 있음. 성령론/교회론/재림/성찬 등등

성경의 의미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받아들인다고 말한다고 해서 동일하게 해소되지 않는다.

 

난해구절들의 예:

- 안식일

- 어미젖에 새끼를 삶지 말라

- 단은 바산에서 뛰쳐나오는 사자 새끼라

- 그대의 코는 다메섹을 바라보는 레바논의 망루다

- 거머리에게 두 딸이 있다

- 멸망하게 되어 있는 바벨론의 딸아…

- 태양이 중천에서 멈추었다

- 야훼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대로 숨쉬는 것은 다 진멸했다

 

성경신학은 난해구절들을 성경의 단일 메시지에 연결시킴으로써 문제의 난해구절들을 다룰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성경에 나오는 스토리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성경은 어떤 주제에 대한 논문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음. 스토리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이 스토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스토리들을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전해주는 통로로 보고 있음. 그 스토리가 담고 있는 진리가 명백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특정 스토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과 그의 사역 가운데서 절정에 달하는 드라마 전개의 일부분이기 때문임.

- 특히 구약에 스토리들이 많이 있음.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뭘 가르칠 것인가? 긴장? 서스펜스? 모범적인 예? 도덕적 신앙적으로 좋지 않은 예? 우리의 현재의 신앙과 어떤 연결/의미가 있는가? 어떤 효과를 볼 것인가?

- 성경신학은 성경전체의 그림 가운데서 어떤 특정 사건을 바라보게 해주는 수단임. 이 전체적인 그림 가운데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음.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 성경신학은 성경 내러티브 가운데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건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줌. 특정 사건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발견하는 것이 곧 그 사건이 우리에게 대해 갖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임.

 

성경신학은 어느 성경 스토리든지 간에 성경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자신에게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해 준다.

 

구약을 어찌 처리하면 좋겠는가?

- 구약에 많은 스토리들만 있는 것이 아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을 읽을 때 많은 문제들을 만남.

- 1. 구약은 기독교 이전(pre-Christian)에 해당함. 기독교신앙의 독특한 내용들을 결코 언급하지 않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약의 크리스천들이 아니었음. 그래서 ‘기독교적’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음.

- 2. 구약에는 현재 크리스천들로서 우리가 지키지 않는 많은 명령들/지시사항들을 담고 있음.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이스라엘의 제사법(의식법)과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도덕법 사이를 구별하기도 함. 그렇지만, 안식일준수와 같은 계명은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음. 폐기된 의식법인가? 아니면 아직도 유효한 도덕법인가?

- 3.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 사역에 대한 선지자들의 견해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체적인 특정한 언급이 없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의 민족의 운명을 지향하고 있음. 하나님 나라도 재건된 예루살렘에서 회복되는 성전에 집중되어 있음. 또한 선지자들은 사후세계의 문제나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기 전에 이미 죽은 신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음.

- 4. 만일 구약이 어떤 식으론가 신약에 대한 준비라고 한다면, 어째서 구약의 종교와 신약의 종교가 그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신약에 속하는) 교회 안에서 구약을 읽는 일은 이제는 사양길에 있다는 생각은 그 안에 있는 문제점을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줌. 쉽게 구약의 종교는 신약의 종교의 그림자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말에는 더 이상 구약을 보지 않고 폐기시켜버려도 된다는 주장이 깔려 있을 수 있음. 그런데 또한 신약 성경 자체 안에 그리고 초대교회의 전통들 가운데에 구약을 그렇게 던져버리지 못하게 하는 점이 존재하고 있음. 구약성경은 계속해서 그리스도교의 성경으로의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음. 그리고 그렇게 해석될 것을 요청하고 있음.

  성경신학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신약성경으로의 발전을 검토하고 두 부분의 상호연관성을 찾으려는 노력임. 신구약 관계학임. 여기에 예언, 율법, 내러티브, 지혜서, 묵시적 비전 등이 다 관련되어 있음.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경신학은 이러한 관계/관련성을 보여주는 방법론적 접근으로서 구약성경이 어떻게 기독교의 성경인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줌.

 

성경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과 사역에 대해,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모든 부분들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감(The Bird’s-Eye View)

- 밑에 있을수록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를 잘 보기 힘듦. 방해하는 것이 많음. 그래서 높은 전망대나 항공사진 등등이 중요. 즉 지도 및 지도-그리기가 중요. 조감도. 사물들과 장소들이 다른 것들,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해줌.

- 성경신학은 성경의 전반적인 메시지에 대한 일종의 지도, 혹은 조감도라 할 수 있음. 성경의 각 부분이 어떻게 일관성 있는 전체 가운데 맞아 떨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줌. 성경신학은 성경의 어떤 통일성을 전제함. 즉 서로 연관성이 없는 수많은 주제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고 봄.

 

성경신학은 성경의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게 해줌으로써 성경의 통일성의 지도를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해석의 문제

- 성경해석이란 언제나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님. “나는 그저 성경을 단순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라는 태도는 하나의 특정한 입장을 표출하는 것. 성경이해가 깊지 않을 것을 보여줌. 뿐만 아니라 다른 전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지 않을 것임. 기록된 말들, 단어들은 할당되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기호 혹은 상징들임을 알아야 함.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음. 그리고 어떤 단어는 상황에 따라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음. 또한 문자적으로 취하느냐, 은유적으로 취하느냐, 상징적으로 취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음.

-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들도 결코 그와 다르지 않음. 그리고 언제나 그 자체의 정황과 문맥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함. 그래서 해석학이 필요.

- 대부분의 주석들은 원저자 혹은 원래 화자가 의도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집중.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넘어서서 그 본문/텍스트가 현재 우리를 위해 무엇을 뜻하는 지에까지 이르러야 함. 성경저자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이해했다면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현재적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야 함. 이것을 해석이라고 하는 것임. 이 작업에 성경신학이 필수.

제2부 성경신학-어떻게?

제2장 하나님이 자신을 알리신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자신을 허락하신다.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자신에 대해 우리가 알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끌어주실 경우에만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신학이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사용하는 말이다.

 

모든 크리스천은 한 사람의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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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신학

- 교의학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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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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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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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신학(Exegetical Theology)

- 텍스트에서 그 텍스트가 애초의 배경 가운데서 실제로 하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를 끄집어내는 절차

-1. 뭐가 텍스트냐?

  - 우리가 고대 텍스트에 대한 역본을 취급하고 있음을 알아야.

  - 그래서 textual criticism이 필수적. 믿을만한 역본을 찾아야. 원어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

-2. 텍스트의 자료가 뭐냐?

  - 원전 비평 – 누가, 언제, 어디에서 그 문헌을 작성했느냐의 문제에 집중.

  - 전승사비평

  - 양식 비평

  - 편집 비평

-3. 텍스트의 뜻이 뭐냐?

  - 당시 텍스트가 의미했던 바에 주로 관심을 기울임. Grammatico-historical exegesis.

-4. 어떻게 그 텍스트가 독특하게 계시가 되며 권위를 갖느냐를 확인하는 작업

  - 정경의 문제 – 정경학

  -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권위적인 말씀으로 확인하는 것.

 

이러한 최종적인 판단과 확인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식의 독특한 성경신학이 성립하는 것임.

 

제3장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실제하고 참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에 대해 세 가지 주요 견해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철저히 배제하는 견해이다. 인간이 모든 인식과정을 다 통제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 해도 전혀 우리와 무관하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에 대해 사람들이 믿는 바에 대한 지식만 알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독립적이라는 견해로서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진리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은 오직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계시에 의해서 오는 지식은 완벽한 그림을 얻기 위해 우리가 얻은 지식에 덧붙여질 뿐이다.

  세 번째 견해는 성경적인 견해로서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따라서 우리가 창조된 것으로부터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실은 하나님에 관한 사실인데 그 이유는 모든 사실의 창조주께서 바로 그분이고 그가 그 사실들에게 의미를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죄 때문에 혼란이 왔고, 죄인들인 인간들은 우주가 하나님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부인한다. 실재에 대한 하나님의 해석을 거부하고 우리 인간의 거짓된 해석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 계획에 따라 그의 말씀을 통해 특별계시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죄인들의 고의적인 반역의 의지를 진압, 진정시키사 이 계시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신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참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지식/인식은 하나님과 별개다 (세속 인본주의)

- 감각, 이성, 경험, 실험, 결과

- 자연의 법칙

- 인간이 자연과 세계, 우주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습득한 것이 틀림없음. 그 결과 여러 분야의 발전도 있었음. 그렇지만, 사후세계의 문제, 하나님의 존재의 문제는 다룰 수 없음.

- 이 입장의 전제를 이해해야. 인간이 지식습득의 전체 과정을 통제한다는 것.

-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음. 실재가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는 한, 모든 사실들이 다 서로 맞아떨어질 것이라고 봄.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사실들에게 영향을 주겠지만, 시간이 주어져서 우주의 모든 부분을 알게 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봄.

- 무신론적 인본주의

 

 

지식은 부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적이다 (유신론적 인본주의)

- 외계인의 예.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들어온다면?

-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 그런 지식이 있다고 봄.

- 그렇지만, 이 지식은 기존의 지식에 덧붙여지는 것으로 봄. 하나님 없이 독립적으로 잘 살 수 있다는 것. 우주도 발견하고 사실도 발견하고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고 봄.

- 그러나 영적인 영역을 채울 지식을 하나님으로부터 얻는다고 봄. 이것은 우리가 이미 얻은 지식에 덧붙여 지는 것일 뿐. (이원론적)

- 이성에 모순되는 지식은 없다. 하나님이 그런 지식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은 하나님에게 의존해 있다 (기독교 유신론)

- 창세기 1:28-30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신 첫 마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나머지 자연과의 관계를 시사 – 새로운 지식. 특별한 지식. 아담에게 하신 말씀 – 실재 해석의 열쇳말.

-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모든 자연계시는 말씀 계시를 통해 해석된다.

- 타락 이전에서 지식은 하나님께 의존한다.

-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에서 비롯했다.

- 하나님만이 모든 사실을 실재 그대로 해석하실 수 있다.

- 죄를 심각히 여긴다. 인식/지식에 대한 죄의 영향.

 

- 모든 입장에 출발점이 있다. 이 기본적인 가정들을 전제라고 부른다. 그 전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

 

전제들

- 전제들을 다루는 이유는 이전의 성서신학들이 인본주의적 전제 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 독립적인 인간이성의 판단 아래서 성경 텍스트들이 판단되고 난도질을 당했던 것.

 

성경신학의 전제들

1. 하나님. 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사실을 만드셨다. 하나님만이 만물과 만사를 해석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형상. 인간은 하나님형상으로 피조되었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 하나님에게 의존해있음을 안다.

3. 죄인.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이 지식을 억압하고 우주를 재해석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석한다.

4. 특별계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도달하는 구속의 말씀을 통한 특별계시가 진리에 대한 억압 및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다루는데 필요하다.

5. 성령의 역사. 회개와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있어야 죄인들이 성경에 있는 진리를 인정할 수 이싿.

 

제4장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다

신학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성경신학을 한다는 것은 중립적 관찰자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반역적인 마음과 지성을 정복하시고 그리하여 우리가 그를 주로 경배하기에 이르러야 한다. 성경신학 혹은 일반적인 신학이란 실질적인 믿음을 단초로 해서 시작하고 출발하여 믿음 가운데서 성장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믿음 가운데서 성장하는 종류의 신학이 따로 있다. 문 안으로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와야 집 안을 알 수 있다.

 

신학자는 신자여야

-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성경신학을 할 수 없다.

- 믿음이 진리를 억압하는 마음을 정복한다. 성경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만든다.

- 복음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 악을 극복해야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

- 그리스도는 죄의 영향, 죄가 만들어낸 무지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실 뿐 아니라 우리 정신을 진리에 맞게 맞추어주고, 진리의 성격을 가르쳐줌. 영적 성장과 함께 진리에 대한 지식도 성장해 나가는 것.

-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 진리를 회복하게 됨.

- 그러므로 구원받아가는 일의 일부는 제대로 신학하기를 배우는 일임. 인식의 구원도 포함되는 것.

 

그리스도가 온 성경의 해석이며 해석자이다

- 그리스도를 알아야 성경 전체를 알 수 있으며, 성경전체를 알아야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 수 있다.

- 성령의 역사 –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이며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

- 그 연관성을 볼 수 있어야

 

제5장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안다

구약의 주제는 예수님이다. 그것이 예수님 자신의 주장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약을 자신이 성취하신다고 지적한다. 구약은 그리스도의 인물과 사역 가운데서의 성취와 끝맺음이 없다면 미완성이기 때문에 홀로 설 수 없다. 구약 어느 부분도 그리스도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은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이다. 애초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로부터 단계적으로 발전해서 신약에까지 이르러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는 이 약속들의 충만한 의미에까지 이른다. 신약 이전에 구약에서 진행되는 것에 비추어서 신약을 이해하게 될 때 만물에게 의미를 제공해주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충만한 계시와 최종적인 말씀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즉 신약성경이 구약을 해석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예수님과 사도들의 구약 권위에 대한 긍정

- 하나님이 자기 종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말씀에 대한 충실한 기록으로 봄

- 이스라엘 역사의 사건들 – 예수님이 결정적 역할을 감당하는 동일한 하나의 역사의 일부로…

- 구약성경의 역사주장에 실체가 없다면, 예수님의 인물과 사역에 대한 신약의 해석도 무의미.

- 예수님의 구약성경관 –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권위로 봄.

- 마 19:4-5

- 요 10:35

- 막 12:34

- 구약성경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 예수님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 눅 24:25-27,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여…

- 눅 24:44-45

- 요 5:39-40

 

신약성경이 구약을 해석한다

- 이 말은 구약 자체의 가치를 부정하는 말이 아님

- 이 말은 구약 자체의 각 부분의 의미가 그리스도와 연결될 때 완결된다는 뜻임

- 그러므로, 그 점에서만은 미완성,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음. 그러나 문서상으로 그 자체의 완결성은 지니고 있음. 그것이 신학적 의미의 완성은 아님. 특히 약속과 성취의 맥락에서 완성이 아님.

- 몇 년 전의 기독교 학자들의 연구방식 – 신약연구, 구약연구의 분리, 특별전문화함. 이것은 비기독교적인 접근방법임. 통일성을 상실함. 그 결과 설교학에도 영향을 줌.

- 기독교신앙의 원칙은 구약을 신약에 의해 해석한다는 원칙들.

- 그리스도를 먼저 받아들이고, 구약 연구에 들어가야 하는 것임.

- 도표: 구약에 대한 비기독교적 접근 

- 도표: 구약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구약성경은 점진적으로 계시된 말씀이다

- 구약의 전체적인 역사적 과정을 진지하게 취급해야 함.

- 일관성과 이어지는 단계를 발견할 수 있음

- 거기에서 통일되어 있는 신학을 발견하게 됨.

- 특히 신약성경이 이러한 통일되어 있는 점진적 계시의 요점들을 제공해 줌.

- 특히 아브라함 3대의 족장시대와 다윗 시대가 중요.

 

제6장 성경은 신적-인성적 말씀이다

하나님은 신적이며 동시에 인성적인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볼 수 있다. 그가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이시다. 그의 인성을 낮추어서 신성을 높이지 않고, 반대로 신성을 무시하면서 인성을 공대하지 않는다. 성경은 육체가 되신 그 신적 말씀 가운데서 그 의미를 찾는다. 그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신적-인성적 말씀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라는 대행자(일꾼)들을 통해서 인류에게 임하고 인류 역사 가운데 임한다. 이 사실이 어떤 해석 방법에는 간과되어 있다. 문자주의적 해석과 알레고리적(풍유적) 해석이 그렇다. 문자주의적 해석은 역사의 해석자로서 계시의 지위를 깎아내리고, 풍유적 해석은 계시의 무대로서의 역사를 제거해 버린다. 성경은 역사가 하나님의 점진적 계시에 중심적인 모형론/예표론typology를 포함하고 있다.

 

 

제7장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하고 끝난다

성경신학은 성경의 각 부분을 우리 자신과 어떻게 연결시키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스도가 신학의 고정되어 있는 참조점/준거틀이기 때문에 먼저 그 텍스트/본문이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고, 그 다음에 우리가 그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찾으면 된다. 이 두 가지 물음은 예수님이 복음을 이해하고 계신 방식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예수님은 복음을 구약성경의 성취의 맥락에서 바라보았으며,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나라의 도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러한 복음의 관점은 끊임없이 성경신학을 요구하는 성경의 차원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이러한 차원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텍스트/본문의 문학적 차원(단어,문장,구문,장르,수사법)이며 역사이며, 계시이다. 성경신학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에서 시작하며 구약에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모든 것에 신약의 증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기를 추구한다. 그리스도는 성경신학의 기본적인 패턴이다.

 

그리스도가 진리다

-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충만한 말씀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다.

- 그리스도는 성경의 모든 부분과 우리 자신과의 연결이다.

 

우리는 복음과 더불어 시작한다

-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파워다. 복음에 의해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다.

- 막 1:15,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임했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그리스도의 임하심(오심)이 중요.

- 사탄의 왕국에서 하나님(그리스도)의 왕국으로 – 회개와 믿음

-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며, 그가 우리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 하신 일을 말함.

첫 번째 요소

- 세 가지 요소 – 문헌, 역사 기록, 내포된 신학 혹은 계시

- 문헌 – 성경의 말씀/단어들 –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 성경이 말하고 있는 대로 이해할 때에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음.

- 말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알아야. 문법적, 수사법적 차원들, 장르의 차원들.

- 이야기체? 비유담? 찬송? 율법? 명령? 묵시적 환상? 상징? 장르를 결정할 줄 알아야

 

두 번째 요소

- 역사

- 사건 자체의 파악 뿐만 아니라 사건들의 이어짐, 연결성을 볼 줄 알아야

- 세속사가들과 다름

- 구속사적 관점

 

세 번째 요소

- 계시

- 영원과의 연결

- 역사의 주인이 사건들을 통제하시면서 최종 목적지로 이끌어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그리스도는 성경신학의 전범(패턴)이다

- 그리스도가 모든 계시의 종합. 그에 대해 계시된 바가 성경신학하는 방식을 통제

- 그리스도가 출발점이며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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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8장부터 한 장씩 맡아서 발표할 것!

 

출처 : 청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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