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현대신학 정리

하나님아들 2021. 7. 4. 22:42

현대신학 정리

 

 

 


(범례: -보통, ★★-중요, ★★★-매우 중요)


1. 현대신학 서론 ()

현대신학은 20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 기간에 이루어진 신학적 논의를 뜻한다. 20세기는 연대기적으로는 1901년부터 2000년까지 계속되는 시간대이지만 사상과 분위기의 변화로 보면 1914년부터 20세기가 시작한다. 왜냐하면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서구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무한한 발전과 진보의 사상으로 가득해 있었으므로 19세기의 연장 혹은 계속이라고 말함이 타당하다. 인간의 선함과 이성의 무한능력에 대한 신뢰, 과학기술에 의한 자연의 정복과 이로 인한 인간생활의 진보와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에 의해 인류사회가 인간적인 바른 문명사회가 될 줄 믿었다. 그러나 1914년에 일어난 세계대전은 서구인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건설한 문명세계를 자기들의 손으로 파괴하므로, 유럽인들이 인간실존에 대한 새로운 충격과 새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지성과 선의지로만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유한하고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자 새로운 철학적 사고와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철학적으로는 양 대전 사이에 실존주의 철학이 발생하였다. 19세기 덴마크 철학자인 키엘케골이 독일어, 불어와 영어로 번역되기 시작하므로 인간의 구체적인 생활을 문제시하는 실존철학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키엘케골의 실존사상을 카알 발트가 그의 신학에 수용하므로 실존신학의 길을 열었다. 그 후에는 신학이 실존주의 철학의 체계에 의해 신학하므로 실존주의 신학 시대가 열려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20세기 발트에 의해 주도된 신학은 19세기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19세기 신학은 슐라이어막허에 의해 시작되어 체계를 구성하므로 내재신학이 되었다. 이 내재신학에 대한 반동은 한 목사의 시골교회 목회현장에서, 설교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였는데 세계대전이라는 유례없는 위기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전적타자에게로, 하나님이 말씀하심(Deus dixit)에로 돌아가므로 시작되었다.





2. 슐라이어막허의 내재신학 (★★)

19세기 신학은 19세기초 슐라이어막허(1768-1834)에 의해 시작되었고 결정되었다. 그는 독일개혁교회 출신이지만 칸트의 철학과 낭만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전통적인 신학을 완전히 새롭게 구축하였다. 그는 전통적 신학방식에서 180도 회전하여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출발점과 참조점을 다 인간에게로 가져오므로 내재신학을 만들어 신학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을 열어 19세기의 교부가 되었다.

1. 칸트의 영향: 먼저 슐라이어막허에게 큰 영향을 준 칸트의 철학에 대해 살펴보자. 칸트는 인간의 이성의 능력과 범위를 제한하여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접촉하는 현상 세계뿐이라고 확정하였다. 현상세계 배후에 있는 예지계 혹은 물자체는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신과 영혼과 사후 세계는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의 지식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표상들을 오성이 질서와 법칙을 부여하여 정리하고 정립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능력으로는 표상들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어떤 존재를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이 현상계 곧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세계 뿐이면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존재는 알 수 가 없다.
하나님과 자유와 사후 존재는 인간 이성으로 알 수 없지만 인간 사회의 도덕적 삶을 위해서 그 존재가 요청될 뿐이다. 인류세계에 윤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하며, 또 시공세계에서는 도덕적 완전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사후세계가 전제되어야 하며, 또 선악간에 심판과 상을 줄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윤리의 완성을 위해서 그 존재가 요청될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 수 없다고 한 칸트의 설정에 의하여 슐라이어막허는 하나님은 물자체이므로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여 그의 신학을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영역인 종교경험으로부터 시작한다. 슐라이어막허는 이처럼 신학을 내재화하여 인간에게서 출발하고 인간의 종교경험을 표준으로 삼게되어 내재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2. 인간중심의 내재신학 : 슐라이어막허는 신학을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종합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슐라이어막허에 의하면 종교는 절대 의존의 감정이다. 신은 인식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종교체험 곧 그리스도인의 자기종교경험뿐이다. 그러므로 신학과 종교에 있어서 사람이 출발점이고 중간점이며 도착점도 인간이다. 경건한 감정 곧 절대 의존의 감정을 갖는 인간이 모든 신학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초자연은 다 배제되고 인간이 신학의 중심에 선다. 슐라이어막허에게 있어서 신학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그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경험을 분석할 뿐이다. 그러므로 슐라이어막허의 신학은 철저한 내재신학 곧 자유주의가 되었다.

3. 슐라이어막허 신학의 내용 : 초월적인 존재를 확정할 수 없으므로 슐라이어막허의 신학에는 신론도 삼위일체교리도 없다. 또한 전통적인 성육신 신앙도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그 성육신으로 속죄제사를 하여 인류를 구원한 구주로 고백되고 신앙되었다. 그러나 슐라이어막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 본성을 개발하여 무한한 신의식에로까지 발전하였다. 신의식은 그에게 고정적이고 다른 것은 가변적이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그 신의식을 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신적인 것이 예수 안에 고정적으로 있으므로 예수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인간 예수에게 붙인 예우적인 칭호일 뿐이다. 신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호칭할 수 있다. 슐라이어막허에 의하면 구원은 예수가 갖는 신의식을 우리가 나누어 갖는 것이며, 부활은 성경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인격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경저자가 보고한 것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에서 인류를 구출하기 위해 죽었으므로 구주인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에 구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이 슐라이어막허의 내재신학이 19세기 말엽 알브레히트 릿츌에 의해서 완전히 내재화되고 종말론도 완전히 역사화되어 역사를 마감할 아무런 가능성도 다 배제되었다. 이에 대해 발트와 그의 동료 변증신학자들인 에밀 브룬너, 트루나이젠, 고갈텐, 불트만 등이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신학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에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이 일을 발트가 시작하고 진행하며 체계화하였다. 그리하여 발트는 자기의 신학을 말씀의 신학이라고 이름하였다.



3. 카알 발트의 변증신학 (★★★)

. 서론
1. 배경
카알 발트는 20세기의 신학을 열었고, 신학논의의 방향과 재료를 제공하고 또 새신학을 구성하므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다. 발트는 1909년 신학수업을 마치고 그해 제네바 교회의 부목으로 일하여 칼빈의 강단에서 설교하였다. 그곳에서 발트는 자기가 배운 대로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설교하였다. 1911년 사펜일 교회에서 단독 목사로 부임한 이후에도 자유주의의 설교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사펜일 동네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고, 주말을 즐기기 위해 산과 들로 나아갔다. 그곳에서 발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에서 통용될 수 없음을 알았다.
더구나 1914년 하르낙을 위시한 당대 유명한 신학자들이 빌헬름2세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자, 발트는 그들의 신학과 윤리학을 따를 수 없음을 깨닫고, 성경을 다시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키엘케골을 읽고 칼빈을 다시 읽으며 칸트와 플라톤 등을 읽으며 성경을 다시 보고, 전통적 개혁신학에로 방향을 바꾸었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설교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고, 역사에 대한 경외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로 대치하였다. 인간의식의 신학을 대신하여 신적 계시의 신학을 주장하였다. 바르트는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생각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있으므로,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님이 말씀하셨다(Dominus dixit)"는 발트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더 이상 인간의 경건한 의식에서, 철학적 무한자에게서, 역사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발트의 신학이 계시의 신학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 되었다.

2. 변증신학의 시작 : 로마서주석
발트는 큰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로마서 주석을 시작하여 1919년에 출판하여 새로운 시작을 열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유주의는 내재신학이어서 신학의 모든 재료들을 다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끌어왔다. 내재신학은 하나님이 초월자이면 경험과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으므로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모든 것을 도출하였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접근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져온다. 하나님이란 절대자가 있는 것처럼 의존의 감정을 가지는 것이 종교이다. 신학은 이 인간의 종교감정 혹은 종교경험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도 전적으로 내재적인 산물이다. 밖으로부터 계시가 와서 성경에 기록되어 하나님 말씀이 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다른 책들처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발트는 하나님의 초월을 강조하였다. 발트는 키엘케골의 변증법을 적용하여 하나님은 인간과는 전적으로 다르며, 인간과 무한한 질적 거리를 갖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초월적 존재이면 그의 말씀도 책에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늘 새롭게 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책에 매여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발트는 그의 첫 작품인 로마서 주석에서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전통적인 신학도 함께 비판하였다.
발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그것은 말씀이 되는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발트는 여전히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의 일치를 거부하고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에 발트는 성경의 내용들 혹은 전통적인 신학을 새롭게 해석하기로 하였다. 발트는 하나님은 초월자여서 시간과 공간 내로 들어올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모든 사건들과 구원사건은 다 세계 내 사건일 뿐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과 연관을 가질 수 있지만 순전히 인간세계에서 일어난 일이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아니다.

. 발트 신학의 내용
1. 기독론
성육신: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고 인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죽음을 믿는 믿음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런데 발트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는가? 발트는 칸트가 설정한 한계선 안에서 신학하므로 하나님은 시공 내로 들어오실 수 없다는 입장에 곧게 섰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다. 그런데 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인가? 하나님은 창조를 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다시 짓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 창조시 예수 그리스도를 눈에 두고 창조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작정하시고 선택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짓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하나님은 교제를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의 교제를 위해 그 대상자를 지으시기로 하셨다. 그리고 사랑의 교제를 나눈 후에 그 교제의 대상자에게 자기가 사랑임을 증명해 보이시기로 작정하셨다. 교제의 대상에게 자기의 존재를 분여해 주므로 증명하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자기의 존재를 피조물인 인간에게 나누어주어서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인 합일이 일어났다. 이 신인 합일을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여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난다. 이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기로 영원 전에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시고자 작정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시고 그를 통하여 세상에 알리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고 유일한 말씀이다.
은혜와 선택: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택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작정하셨다. 아무도 이 은혜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무런 의무도 없는데 피조물을 끌어올려 자기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셨으니 이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선택이다. 아무도 이 선택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부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고 역사 안에 나서 살다가 죽으므로 끝난 존재라고 하면, 부활이 가능한가? 발트에 의하면, 죽은 자의 부활은 우리의 현상 세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것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 부활이다. 예수는 죽음으로 끝났지만 그를 주로 인정하여 우리를 다스린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트는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좌에 앉힘이라고 정의한다.

2. 삼위일체론
발트의 신학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고 나사렛에서 나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난 사람이면 전통적인 교리인 삼위일체가 성립할 수 있는가? 발트는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전적으로 배격한다. 하나님이 두 위격이어서 아버지와 아들간에 은혜언약을 체결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 두 신을 도입하는 우상숭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인격 안에 세 위격이 있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하나님은 한 위격적 한 하나님이다. 이는 삼위일체교리는 현금에서는 필요없는 교리라고 말한 슐라이어막허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이다.
그렇다면 발트에게 있어서 삼위일체는 무엇인가? 발트는 삼위일체는 계시에서 유래되었으므로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피조물에서 그 유비를 구해오면 안 된다고 말한다. 통상적으로 계시는 계시자와 계시과정과 계시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계시자는 계시작용을 통해서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한다. 이는 말하는 자가 말하는 작용을 통하여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과 같다. 이 계시자는 계시작용이라는 자기와 구분되는 과정을 통하여 계시한다. 이 셋은 서로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고 일치한다. 이 계시 과정 중 계시자는 아버지에, 계시 작용은 아들에, 계시 내용은 성령에 각각 상응한다. 이 계시의 세 계기가 삼위일체이다. 이런 삼위일체 외에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는 의미로 삼위일체는 불가능하고 합당하지 않다.

3. 결론
발트는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출발하는 슐라이어막허와 19세기 내재신학을 비판하였고, 종교 또한 비판하였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신학을 거부하였다. 하나님의 신성의 재발견으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로 돌아가기 위해 변증법을 도입하여 신학을 재구성하였다. 이 운동에 에밀 브룬너와 프리드리히 고갈펜, 루돌프 불트만, 투르나이젠 등이 합세하였다. 발트는 하나님이 신학의 주체이고 술어가 되게 하였으나, 슐라이어막허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인간에 집착하였고, 모든 신학의 내용을 변증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전한 현대주의가 되게 하였다.

4. 불트만의 비신화화 작업과 실존적 해석 (★★★)


1. 신약의 비신화화 작업
불트만은 발트와 함께 변증신학을 시작하였지만 그의 배경이 깊은 자유주의였으므로 변증신학과 분리하여 과격한 신약 비판 작업을 수행하였다. 불트만은 헤르만 궁켈에게서 종교사적 방법을 배워 신약에 이를 적용하여 말틴 디벨리우스가 발전시킨 양식사비판을 완성하였다.
불트만은 성경에 들어있는 내용들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다 이방 종교들에서 온 사상들이라는 종교사적 방법을 신약 연구에 도입하였다. 따라서 신약에 들어있는 내용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주장들은 다 교회가 예수의 입에 넣은 것이지 예수가 자신을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구주,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예수가 했다는 것은 교회의 신앙이 자라가므로 교회가 점차 예수를 높이고 신격화하므로 나중에는 하나님이라고까지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이방종교의 신화적인 배경에서 왔다. 이방 종교들은 다 신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화는 이 세상의 일들을 저 세상의 일들로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불트만은 제시한다.
그런데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는 1세기의 세계관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신화적으로 구성되었다. 1세기의 세계관인 삼층천으로 위에는 하늘이 있고 거기에는 하나님과 선한 영들이 있으며, 중간처소인 땅에는 사람들이 살며, 땅 아래에는 사탄과 악령들이 산다. 땅위와 아래 영역에 사는 영들이 땅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신화적 세계관에 근거해서 예수의 사건이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보좌 위에 앉아 있다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내려와 여인의 몸에 열 달 있다가 출생하여 30년을 은폐해 살다가 3년간 복음을 전도하고, 기적을 행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십자가에 대속적 죽음을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였는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올 것이다.
이런 복음서의 제시는 다 신화이다. 이런 신화는 현대인들이 받지 않고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다 비신화화해야 신약의 사신을 현대인들에게 전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불트만은 신약을 비신화화하기로 하였다. 이 비신화화는 근세신학의 아버지 슐라이어막허가 시작하여 체계화하였고 칸트가 설정한 프로그램을 완성한 것이었다. 신약을 비신화화하면 신약에 들어있는 인간 이해를 현대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불트만은 보았다.

2. 실존적 해석
불트만의 비신화화 작업은 현대적 해석 곧 실존적 해석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불트만은 하이덱거의 실존주의 철학이 신약의 복음을 잘 나타내주는 도식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실존주의 철학에로 복음으로 번역하기로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여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믿음의 상태로 옮아가므로 육으로 살던 삶에서 영으로 사는 삶에로 옮아간다. 육으로 사는 삶은 불신앙으로 사는 삶이어서 세상의 현구조에서 자신의 안전을 구하는 삶이다. 그러나 불안 혹은 죽음을 통해서 세상적 소유에 의존해서 사는 삶이 바른 삶이 아님을 깨닫고 자기 실존의 본래적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스도인에게서는 이 일이 십자가의 선포로 이루어진다. 십자가를 선포받으면 세상적 집착에서 벗어나 미래생을 목표하여, 보는 것에서 믿음으로 사는 생을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의 삶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쳤지만 부활은 십자가의 의미이다. 부활은 이렇게 변화된 삶에로 인도하는 역사 혹은 영향력이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선포하면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에 부활한다. 그리하여 불신앙으로 살던 데서 영으로 사는 믿음의 생활이 된다.



3. 후기 불트만 학파의 역사적 예수 탐구
불트만에 의하면 신약에 들어있는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은 다 예수의 것이 아니고 교회가 예수에게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에 대하여 우리는 복음서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것만 알뿐, 예수가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즉 성경의 진술은 모두 신앙의 진술이며 선포일 뿐이다.
그러나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에 의해 후기 불트만 시대가 도입되면서 계시에 대한 강조가 역사에 대한 강조로 옮겨갔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가 진행되므로 비신화화는 뒤로 물러갔다. 케제만 역사적 예수 탐구의 시작점을 예수의 사명에 두었다. 그는 성경을 읽으므로 예수는 단지 존재했다는 수준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것이라든가 그가 가르친 것이 당시 랍비들과는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옛사람에게 말한 바 너희는 들었거니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같은 어법은 랍비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권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범주는 메시야의 범주뿐이며, 이러한 예들을 통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케제만을 중심으로한 후기 불트만 학파는 역사적 예수 탐구는 신약의 선포 뒤로 돌아가서 선포와 상관없는 객관적인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이는 신앙의 배후에 있는 역사적 예수를 비평적, 역사적 방법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고 본 1920년대까지의 구자유주의에 대하여 불트만은 신약은 선포의 기록이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역사적 예수 탐구는 신약의 본문 뒤로 돌아가서 객관적인 예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선포에로 깊이 들어가므로 예수상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선포에서 예수상을 세우는 것이므로 신약에 나와있는 예수의 자기주장들 가령 메시야, 주님, 하나님의 아들 등은 다 예수가 주장한 것이 아니고 편집학파가 예수 입에 붙인 것으로 보았다. 후기 불트만 학파는 이런 면에서는 불트만과 동일하였다.

4. 후기 불트만 학파의 새로운 해석법 : 언어사건
불트만의 제자들은 역사적 예수 탐구와 함께 새로운 해석법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불트만의 선포신학을 받아들여 작업하였다. 가령 부활은 선포에 의해 사건으로 발생한다. 선포에 의해서 부활이 발생하면 부활은 언어사건이다. 선포하면 그 선포의 말이 사건을 일으킨다. 시약이 가장 중시하는 믿음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신약의 사신을 전파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발생한다. 언어가 믿음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믿음도 언어사건이다. 실제적으로 부활이 발생했느냐 하는 것은 신화적인 일이다.


5. 틸리히의 존재신학 (★★★)

1. 틸리히의 존재신학
틸리히는 그가 배운 관념론을 버리고 실존주의를 그의 신학의 기본 틀로 채택하였다. 틸리히는 하이덱거의 실존론을 자기의 신학에 적용하여 전통적인 기독교 전반을 재해석하고, 신존재론적 종합화를 이룸으로써 발트와 불트만과 함께 20세기 3대 신학자로 인정받았다. 틸리히의 존재신학에 의하면 신은 존재의 근거와 힘이며, 그리스도는 새 존재가 나타난 새 사람일 뿐이다.
2. 상관방법
틸리히는 철학자이면서 신학자이길 원하고, 신학자이면서 철학자로 남기를 바랐으므로 그의 신학은 철학적 신학이었다. 그러므로 신학함에 있어서 철학이 문제를 제기하고 신학이 답을 주는 방식인 상관방법을 취하며, 둘을 종합하는 종합의 방식을 취하였다. 즉 인간의 현실이 문제를 제기하면 계시가 답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인관계도 상호관계로 보았다. 하나님과 인간간에 상호의존성이 성립한다. 하나님은 자기 계시에 있어서 인간에 대해 인격대 인격의 상호성에 선다. 하나님은 행동하고, 인간은 거기에 반응하며, 다시 하나님은 거기에 반응한다. 종교생활에도 상호관계가 성립한다. 객관적 사건과 주관적 수납이 함께 오면 계시를 말할 수 있다.
이 계시 수납의 주관적 면을 틸리히는 종교라 한다. 종교 없이 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계시가 이루어지면 계시 수납자는 자기의 상황에서 곧 자기 종교에 맞게 수납한다. 기독교도 동일하다.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는 자들에 의한 수납이 곧 기독교이다. 신학은 인간의 상황을 분석하고, 기독교 메시지의 상징들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학은 두 중심점을 따라 움직인다. 즉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2. 존재물음 = 인간
인간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자이다. 존재가 비존재에 의해 삼켜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사람은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존재의 근거와 의미를 묻는다. 인간은 존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또 거기서 떨어져 있다. 여기에 인간의 유한성이 계시되며, 이러한 유한성이 인간실존의 근본 특성이다. 인간은 유한성과 무한성간의 경계선에 실존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와는 달리 유한한 자유를 갖는다. 그것이 바로 수고와 짐이다. 인간이 존재에서 분리함이 인간의 타락을 지시한다. 틸리히는 타락을 인간이 본질에서 실존에로 넘어감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인간이 본질에서 실존에로 넘어감이 소외이다. 소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속한 데서 소외되어 있다는데 성립한다. 소외 상태의 인간은 그의 생의 기원과 목표에서 분리되어 있다. 소외상태는 삼중분리를 뜻한다. 존재의 근거, 우리 생의 기원과 목표에서의 분리, 우리 자신과 동료인간에게서 분리됨을 뜻한다.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부른다. 따라서 죄는 초도덕적인 개념이며 종교적인 개념이지 윤리적인 개념은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참 존재에서 소외되어 있으므로 존재를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신은 무한해서 본질과 실존의 균열 너머에 있기 때문에 존재를 묻지 않는다.
3. 존재의 힘 =
하나님에 대해서 틸리히는 전통적 신학이 제시하는 존재자로, 인격적 신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신이 존재자이면 다른 존재자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므로 하나님일 수 없다. 하나님은 하이덱거의 존재철학이 말한대로 존재 자체이거나 만물이 동참하는 존재의 힘이거나 존재의 지반이다. 신은 모든 존재물들이 의존하는 존재자체이다. 계시를 비신화화했던 불트만의 시도에서 더 발전하여 틸리히는 신까지도 비신화화한다. 하나님은 존재자체이지 존재자가 아니라는 말은 곧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자들뿐이고 그것들이 존재하게 된 것은 창조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자체에 동참하기 때문이므로 틸리히는 존재자체를 신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신을 존재자로 여기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말한다. 틸리히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깊이에서 만난다. 깊이는 궁극적인 관심을 뜻한다. 이 궁극적인 관심이 나타나면 신을 만난다. 따라서 종교는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다. 이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이 하나님이며, 진지하게 자기 을 살아가면 그것을 통해 신을 만나게 된다.
4. 새 존재 = 그리스도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새 존재의 현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새 존재가 인격적 생에서 현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으로 역사한 것이 아니고 우리처럼 실재 역사적 인간으로서 출생과 죽음 사이에서 생을 살았다. 그는 실존에로 던져졌다. 즉 소외의 조건들 아래 섰으며, 유한한 자유를 가졌다. 그의 생에는 시험과 불안, 가난과 실패, 율법과 비극, 투쟁과 죽음이 있었다. 그래도 죄는 없었다. 이는 실존 위의 승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간의 소외, 실존의 조건들 아래 있었지만 다른 모든 인간과 달리 신과 결합해 있었다. 그는 생의 모호성에 동참했지만, 신과의 부서지지 않는 일치 가운데 살았다. 그에게는 분리와 소외가 없었고, 그의 생은 매순간 신에 의하여 규정되었다. 그는 존재의 근거와, 자기 자신과, 동료인간과 하나를 이루므로 삼중 일치를 죽을 때까지 관철했다. 그는 자신을 신에게서 분리시켜려고 한 소외의 모든 세력들에 대하여 승리했다. 그는 그의 삶에 있어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지반 혹은 근거에 투명하였다. 그러므로 존재와 화해하고 연합을 이룬 새존재 혹은 새사람 그리스도이다. 새존재의 담지자인 예수 안에서 로고스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요 새질서의 시작이다.




6. 칼 라아너의 신학 (★★)

라아너는 불트만과 발트와 틸리히 이후에 신학하였으므로 전통적인 로마교회의 신학을 현대적으로 완전히 재해석하였다. 그는 많은 철학을 배웠지만 하이덱거에게서 실존철학을 배웠으므로 실존철학으로 기독교를 완전히 재해석하여 종교다원주의를 교리화하는 공을 세웠고 바티칸 공회의의 신학을 결정하였다. 또한 칼 라아너는 진화론적 사고,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기독론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현대의 주도적 이론일 뿐 아니라, 실제로 세계구조는 진화적이며, 진화론은 그러한 세계의 진행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1. 신론/구원론
라아너에 의하면 신은 존재자가 아니다. 신이 존재자이면 대상 중의 하나가 되므로 신을 존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모든 초월이 이루어지는 그 지평이 신이다. 그런데 초월은 존재차원에서 일어나므로 신은 존재자체이다. 있음이다. 라아너는 이것을 거룩한 신비라고 말한다. 이 존재자체 곧 있음에로 초월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그리고 존재자체에 개물들이 동참하는 것이 창조이다. 창조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어떤 행동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 절대 아니며, 따라서 라아너는 창조라는 말 대신에 피조성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모든 사람들은 그 내면에서 존재자체로서의 신과 접촉되어 있다. 여기에서 라아너는 존재자체라는 신관을 통해 종교다원주의에 접근한다. 라아너에 의하면 다른 종교의 신들도 존재자체이다. 진지하게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은 유신론적 실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므로 유신론자이며, 그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는다. 내세에 대한 개념이 없으므로 자기 삶에 성실하는 것이 곧 구원이다. 기독교는 신에게 이르는 특별한 길이고, 일반고등종교는 신에게 이르는 정상적인 길이므로 모든 이교도들에게도 구원이 보장된다고 선언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종교를 인정하게 되며, 이 입장이 바티칸공회의에서 결정되었다.

2. 기독론
라아너는 로마교회를 대변하는 신학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구주로 제시한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므로 절대적인 구주인 것이 아니다. 신은 절대적 존재이고 파악불가한 실재로서 존재자체이다. 그런데 어디서 하나님이 구체화되어 성육신할 수 있겠는가? 라아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초월과 신의 자기 존재 통보가 합쳐지므로 신인합일이 된 존재이다. 사람은 영이기 때문에 모두 자기 초월을 하는데, 바로 이 인간의 자기 초월과 하나님의 존재 통보가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합쳐졌다. 이 필연적인 사건이 역사 내에서 돌이킬 수도 없고 해소할 수도 없는 사건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절대적 구주이다.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이 신인 합일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 신의 존재에 동참하여 신되기가 일어난다.

3. 성육신
예수는 역사내에서 나서 살다가 죽으므로 끝난 존재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면 육체 안에 신이 들어있는 것과 같으므로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즉 완전한 성육신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완전한 역사적인 인물로서 죽음으로 끝이 났다. 요한복음에는 로고스가 육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 로고스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통보의 뜻을 말한다. 하나님의 자기 통보가 예수 안에서 그의 초월과 합쳐진 것이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성육신이다. 그 외의 다른 뜻으로 하나님의 성육신을 말하면 그것은 신화일 뿐이다.

4. 부활
예수는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의 삶은 그런 비참한 결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가 죽었지만 그의 삶이 정당하였다. 곧 그가 절대적 구주라는 주장을 정당화해 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부활은 시간의 성취이며 자유의 실현이다. 그가 자신을 절대적 구주라고 말한 것이 타당성을 가지므로 그가 죽었으나 주로서 살아있다는 확신이 부활이다. 곧 제자들의 믿음 속에서 부활한 것이다. 라아너의 이러한 주장은 불트만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렇게 라아너는 전통적인 기독교를 완전히 현대화하였다. 교황 바울6세는 아마도 라아너의 신학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아너의 신학으로 바티칸 공회의의 결정을 다 하도록 인허하였다. 로마교회가 전통적 기독교의 최후의 아성으로 인정되었는데 라아너로 인하여 완전한 현대신학이 되었다.
7.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 ()

* 배경: 자유주의 신학이 모든 인간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은 바르트가 등장하면서 교회는 실존주의 철학으로 신학함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된 실존신학은 실존과 결단만 강조하고 사회의 문제는 완전히 도외시하였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후 사회는 산업이 발전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인구이동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회정의와 부의 재분배 문제가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서구교회는 이에 대해 무능력할 뿐이었다.
이 때 독일개혁교회출신인 튀빙겐의 몰트만이 네오 맑시스트인 에른스크 블로흐의 소망의 원리에 영향을 받아 1964소망의 신학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에서의 실존주의 논리를 종식시키고 사회정의 문제를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계기를 열게 되었다.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은 정치신학으로서 흑인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여성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을 산출해내어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게 하였다.

1. 미래 자유의 나라
몰트만에게 있어서 인간의 본질은 자유이다. 몰트만의 신학은 바로 이 자유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이 자유가 실현되는 지평이 미래이다. 그러므로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은 미래 관념에 의해 지배된다. 하나님의 존재도 미래와 연관된다. 하나님은 미래로부터 그의 약속들을 가지고 인간에게 온다. 그리스도는 현재에서의 미래 기대이고, 이로써 역사의 추진세력이다. 사람은 미래의 기대에서 살고 이것에 근거해서 잠정적 설계에 다라 실재를 변형시킨다. 미래는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지반이다. 미래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자유가 실현되는 지평이 바로 하나님이다. 인간의 본질이 과거에 이미 확정된 존재가 아니라 미래에서 본질이 형성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아직 목표에 이르는 길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성될 존재이며, 미래에서 인간의 자유가 실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이루어질 자유와 공의가 완전히 실현된 사회이다.

2. 부조리한 사회 폭력으로 해체
그렇다면 이런 미래 사회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현실사회는 부조리가 성행하며, 기존 제도에 의한 악이 말할 수 없이 크다. 이 악을 해결하려면 부조리한 기존의 제도를 헐어야 한다. 이 부조리한 제도를 부서뜨리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 작은 악으로 큰 악을 무너뜨릴 수 있으면 폭력의 사용이 정당화된다. 몰트만은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찾는다. 십자가 처형은 부조리한 사회 제도를 대표하는 지도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부조리한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고 항거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예수 자신이 부조리한 사회 체제에 도전하다가 십자가에 죽었으므로 폭력 사용은 예수의 생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자유와 공의가 구현된 사회 구성을 위해 현존하는 체제는 극복되고 해체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폭력이 정당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3. 부활의 표준으로 자유의 나라 건설
그렇다면 부조리한 사회 체제를 해체한 후에는 어떻게 사회를 구성할 것인가?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미리 나타나 있다. 예수의 부활은 미래 하나님의 영광을 현세계로 미리 가져다 보여준 것이었다. 역사의 끝 곧 미래에서 이루어질 새 세계가 예수의 부활에서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표준에 의해서 자유와 평등이 구현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이 미래 세계 건설에 교회가 메시야 공동체로서 역사한다. 그렇다면 사회 전체를 다 해체한 후에 새롭게 구성된 사회 체제가 그 전 체제보다 낫다는 증거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것은 새로운 체제가 더 나은 선을 생산하면 그 새로운 사회를 위한 이론이 정당화된다. 즉 진위의 검증은 실천이 결정한다.

4. 결 론
몰트만은 발트와 불트만 이후에 신학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관과 기독론을 가지고 신학하지 않는다. 그가 기독교 종말론을 말해도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들과 함께 와서 세상을 심판하는 것 등은 다 신화로 여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해도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부활은 무엇인가? 몰트만은 부활이란 환상을 본 것이고 앞으로 올 것을 묵시적으로 예상한 것이다. 즉 미래 하나님의 영광에서 예수의 미래를 미리 반성한 것일 뿐이고 실제로 육체적인 부활 같은 것은 없다.


8. 오순절 운동과 성령신학 ()

1. 오순절 운동의 배경
* 오순절 운동은 성령 추구의 운동이었다. 예수만 믿음이 아니라 성령을 체험하기를 바라서 일으킨 운동이 20세기 초엽에 일어나서 20세기가 다 되도록 그 운동이 교회로서 존재하고 또 은사운동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기성 교회들에 이 운동이 파급될 때는 방언과 예언과 신유의 은사가 함께 강조되므로 은사 운동이란 이름으로 기존 교회에 파급되었다. 오순절 운동은 기독교 부흥운동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운동이었다. 오순절 운동의 기원을 찾자면 19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성결 부흥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본격적인 시작은 1900년 챨스 파함이 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1900년의 교회와 초대교회의 차이를 밝히라는 과제를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은 초대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방언을 했다고 결론을 짓고,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다. 결국 아그니스 오즈만이라는 학생이 보헤미안어와 중국어로 방언함으로써 파함과 그의 제자들은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윌리엄 씨모어라는 흑인 목사가 파함의 가르침을 받고 아주사가에서 부흥회의 주사상으로 주창된 후 오순절 운동이 발생하였다. 이 운동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어 미국 전역에 전파되어 1914년 처음으로 오순절 교회인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가 교단으로 세워진 후 1920-30년대에 2,30개의 오순절 교단이 세워져 진행되었다.

2. 오순절 운동의 확산
오순절 운동은 미국에서 곧 유럽으로 옮겨졌다. 노르웨이 감리교회 목사인 T.B. 바랏트에 의해 1907년 노르웨이와 스칸디나비아에 전파되고, 독일, 화란과 영국 등지에 전파되었다. 그리고 대전 후에는 이태리와 프랑스 등 카톨릭 지역에까지 전파되었다. 그리고 1905-1906년경에 벌써 남미의 여러 나라들에 전파되어 남미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는 개신교회 교파가 되었고, 1908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전파되어 계속 아프리카 대륙을 북상해서 부흥을 계속하였다. 한국에는 1950년대 중반에 상륙하여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교회가 크게 성장했고, 1960년대에는 인도네시아에 전파되었다.

3. 은사운동으로의 전환
오순절운동은 기존 교단들에로 파급되어 은사운동으로 이름을 바꿔 계속되었다. 오순절 운동이 은사운동이 되어 기독교세계에 전파되게 하는 일은 데이빗 뒤 플레시스가 하였다. 본격적인 신오순절 운동의 선구자가 된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반나이스 감독교회 신부였던 데니스 베넷트였다. 그가 성령세례 받고 방언함으로 기존 개신교회 교단들에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루터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등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로마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제2바티칸 공회의를 개최하기 전부터 교회갱신을 위하여 오순절 운동에 주의를 기울이며 오순절주의자들과 접촉하였다. 그후 1967년 핏츠버그의 뒤퀴슨 대학의 카톨릭 신학부 학생들이 데이빗 윌커스의 십자가와 깡패란 책을 읽고 성령세례받고 방언하므로 로마 교회에 오순절 운동이 점화되었다. 1968년 미국 카톨릭 신학의 아성인 노틀담 대학을 거치며, 이 운동은 은사운동으로 로마교회에 널리 퍼져 1975년 바티칸에서 벨기에의 추기경 수에넨스의 집전 아래 세계은사자 대회를 열어 바울6세 교황이 오순절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오순절 운동은 전세계에 퍼졌고, 모든 기독교 교단들에 퍼졌다.

4. 오순절운동 신학의 내용
중생 후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물리적 증거로 반드시 방언을 한다. 방언을 하면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고, 성령세례를 받으면 반드시 방언을 한다. 이러한 오순절운동의 주장은 학습방언과 모방방언을 유행하게 만들었다.
성령세례는 중생 후에 받는다. 예수를 믿으면 중생함으로 구원을 받으나,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봉사와 전도에 있어서 능력을 받게 된다. 이 성령세례는 누구나 받아야 할 출생권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원하고 받아야한다. 성령세례는 예수를 믿으면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을 이행해야만 받는다.
성령세례를 받으려면 최소한 3,4가지 많게는 7가지 조건들을 이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토리는 행2:38을 근거로 7가지 성령세례의 조건들을 제시했고,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토리의 견해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토리에 의하면
첫째 단계는 회개하여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죄를 폐기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죄를 폐기함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넷째 단계는 마음의 순종을 보이며,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다섯째 단계는 성령세례에 대한 열렬한 욕망이다.
여섯째 단계는 성령세례를 위한 결정적인 기도이다.
일곱 번째 단계는 믿음이다.

5. 오순절 운동의 신학에 대한 평가
이상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오순절 운동은 인간의 주도권이 전면에 서고,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도권에 대한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조건 이행의 정도에 따라 은사를 배분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오순절 운동은 인간의 주도성과 열성이 문제를 결정하는 핵심으로 인식하므로 공로주의를 드러내며, 인간의 주도권을 강조하므로 알미니안 신학을 계승하고 있다.
또한 오순절 운동에서는 자기가 갖는 경험이 성경의 참됨을 결정하므로 경험주의 신학이 그 중심에 선다. 즉 내 경험이 성경에 있기 때문에 성경이 참인 것이라고 여긴다. 오순절 운동은 웨슬리가 주장한 완전성화 자리에 성령세례를 대치시킴으로 성화에 대한 강조가 없다. 그러므로 깊은 회개가 없이 천박한 회개에 그치고 만다. 노래와 간증이 위주가 되고, 말씀 선포가 거의 없으므로 초대교회의 경험과는 다르다. 체험을 강조함으로써 교리의 필요성은 없어지고 결국 교리는 사리지게 된다.
오순절 운동은 성령 받기를 강조를 하지만, 성령은 자기 증거자로 온 것이 아니라 선포자로 오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만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은 예수 믿을 때 선물로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성령은 목표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음으로 신앙인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잘 알고 믿으며, 복음을 설교를 통해 잘 선포할 때 성령이 역사하고, 열심히 기도할 때 능력 받아 바르게 목회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20세기 신학의 반성과 21세기 신학에 대한 전망>

1. 20세기 신학의 반성
19세기 신학은 칸트철학으로 조성되고 표현된 신학이다. 그렇게 조성되고 표현되므로 그것은 전통적인 신학을 전적으로 부정한 자유주의 신학이 되었다. 20세기 신학은 칸트철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으로 신학을 표현한 새 해석의 신학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현과 용어만 다를 뿐이고 19세기 신학의 연장이다. 19세기는 초자연을 완전히 배제하기로 하므로 성경에 초자연적인 것은 다 불합리한 것으로 배제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신학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그대로 받되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시작된 비신화화를 완수하였다. 즉 하나님은 초월자요 창조주로 계신 존재자가 아니고 존재 자체이고 존재의 힘이다. 존재를 설명하고 파악할 수 없으므로 신은 신비이다.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라 그에게서 신인합일이 이루어진 인간 예수일 뿐이다.
* 발트는 성경에 가깝게 해석해도 전통적 신학에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입증하였다.
* 불트만은 성경의 내용이 신화적 세계관에 의해 구성된 신앙의 산물이므로 성경의 진술을 비신화적으로만 이해하도록 확정하였다.
* 틸리히와 라아너는 신을 완전히 비신화하여 존재자체로 만들므로 인격적 신과 창조주 신앙은 불가능한 것 으로 만들었다.
* 몰트만은 신학은 내세와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의 개선을 위한 작업임을 확립하였다.
20세기 신학에 의해 기독교의 자기 해체가 완전히 성취되었다. 그것이 바로 종교다원주의이다. 예수는 한낱 사람일뿐이므로 모든 종교는 다 동일하다. 구원종교라든가 절대적인 종교는 성립하지 않는다.


2. 새세대 신학에 대한 전망
새세대 신학에 대한 한가지 확실한 전망은 전통적인 개혁신학에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비신화화되어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났다가 사라질 종교가 되었다. 지금은 작끄 데리다 등의 후기현대주의가 전세계 지성계를 지배한다. 신학자들도 이미 이 철학적 조류에 따라 비평적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기독교가 자기부정을 완전히 하여, 무종교의 세계가 실현될 가능성도 있다. 기독교 없는 사회의 질서와 법은 어떻게 유지되며, 어떻게 인륜사회로 존속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이성이 주창되어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성도 이미 역사화를 다 이루어서 무슨 보편적인 행동의 원리를 제출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현대신학이 다 부인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하나님, 곧 성경의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은혜를 입히신다면 전통적인 기독교가 부흥하여 세계를 구원하는 선교를 전개할 것이다. 그 길은 현대신학적 방법을 버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방법에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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