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안식일의 차이
1. 요일의 형식이 언제부터 로마에까지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온 세계가 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태양계 행성 중에는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우리 태양계가 태양(일), 달(월) 그리고 이 5개 행성을 포함하여 7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요일의 이름은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7개의 천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현재 쓰고 있는 영어의 요일 명칭은 앵글로색슨 인들이 로마인들로부터 7일제의 주를 배우되, 요일을 로마의 신들에 상당하는 자기네의 신들 이름으로 불렀다.
(또는 본래 일요일이란 말은 그 근원이 바벨론에서 비롯되어 해와 달과 5 개의 별의 이름을 따서 요일을 만들었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 월, 화, 수, 목, 금, 토성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도 함. )
2. 신약 성경에서 안식일이란 단어는 56절에 58회 정도 등장한다. 그 중에 단 한번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으로 기록된 없다.
그나마 대개 복음서에서 사용되었고 사도행전에서 몇 번 사용되었는데 이 모든 경우가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고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유하셨는지에 대하여 기록되었거나 안식일에 바울이 어떻게 선교하였는지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마태복음 9회 마가복음 10회 누가복음 17회 요한복음 9회, 사도행전 9회 그리고 골로새서 1회 나타난다.
3. 영혼이 쉰다는 것은 영혼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속사람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4.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일어난 토요일 다음날인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정당하고 바른 관습이다.
주님은 우선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으며(마 28:1, 막 16:1, 요 20:1), 승천하시는 날까지 모두 열 한 차례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으며, 그 중 여섯 번은 첫날(주일)에 나타나셨다(요 20:11-18, 마 28:7, 눅 24:13-33, 요 20:19-23, 요 20:24-29). 약속된 성령님의 강림도 주의 첫날에 이루어졌고(행 2:1-4), 바로 그 주 첫날에 베드로에 의한 최초의 복음 설교가 있었으며, 사도 요한은 수년 후의 주일에 인봉된 계시의 말씀을 받았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영혼은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되어 거듭남으로써 안식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믿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서 장차 성도들의 몸도 부활하여 죄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것이 약속된다(고전15:20).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으로부터 영혼과 육체의 실체적인 안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일(일요일)은 부활의 승리를 위한 축하의 날로서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결국 주일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날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주일은 주님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후대에 정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날을 완성하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 이 날을 지킨 것이다. 날을 지키는 것은 감사의 차원이지 법적인 차원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고전16:2)와 드로아(행20:7) 등지에서 주일에 집회를 가졌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초대교회가 주일에 예배드리는 전통을 시행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구속(救贖) 사역이 완성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안식(安息)이 도래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날의 구별이 없다는 말은 옳다.
초대 교회들이 예배의 날로서의 주일을 성경 속에서 받아들이게 된 배경을 살펴볼 때, 주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구속하시고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기뻐하고, 기념하고, 즐기고 경배하는 날로 받아들였던 것을 본다. 이것은 다시 구약적 의미의 날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5. 안식교인들은 일요일 예배의 기원을 고대교회의 배도(背道)에 돌린다. 이교도들이 일요일에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배도한 교회가 이들로부터 그 관습을 도입하여 교회에 물려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식교에서는 신구약 성경 어느 곳에서도 주일을 지켰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주일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321년 일요일(Sunday)을 공휴일로 선포하면서라고 주장한다.
처음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릴 때 그들은 그 날을 ‘일요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첫 날 또는 제8일이라고 불렀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배하던 그 날이 나중에 일요일로 호칭되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날은 공교롭게도 페르시아의 빛의 신인 미드라스(Mithras)를 비롯한 이교도들의 태양 숭배일이었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이교도들에 의해 태양 숭배자로 오해받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공적 휴식의 날로 지정한 것은, 그 휴업령의 문구를 볼 때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주후 321년 3월 3일 그가 공포한 말에, "존엄한 태양의 날에"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의 칙령을 꼼꼼히 읽어 보면, 그 칙령은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공인하는 과정에서 초대교회의 예배일인 일요일을 공휴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과, 평일이었던 일요일을 기독교인을 위하여 공휴일로 지키라는 내용이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콘스탄틴이 321년 내린 명령서를 살펴보자.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 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적절한 계절은 짧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생명의말씀사, 회사 핸드북 144쪽).
콘스탄틴의 명령서에는 안식일을 폐지한다거나 변경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콘스탄틴의 칙령은 안식일 변경의 칙령이 아니었다. 콘스탄틴은 교회를 박해한 왕이 아니고 오히려 교회에 박해를 중지시켰던 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콘스탄틴의 칙령은 기독교를 돕기 위하여 그들의 예배일이었던 주일을 공휴일로 만들어 준 ‘공휴일 칙령’이었다. 일요일은 콘스탄틴의 321년 칙령이 있기까지 평일이었다.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한 특별한 날이거나 공휴일이 아니었다.
콘스탄틴은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보다는 아마도 제국의 분열을 더 우려했다.
그래서 일요일은 당시 동방밀교의 태양신의 축제일이면서 또한 상당히 성장하고 있는 기독교도들이 예배하는 날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나라가 하나의 질서에 의하여 통제되기를 희망했다. 로마에는 일찍부터 동방 밀교가 독버섯처럼 번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주기(週期)와 기독교의 주기가 꼭 같이 7일이었고, 공교롭게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동방 밀교의 태양신을 기념하는 날이 일치가 되었던 것뿐이다.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의 전통적 태양신 예배일인 일요일과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과의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AD 321년 3월 7일 일요일 휴업령을 반포하여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기독교인들도 예배를 드리도록 명령했던 것이다.
만일 로마황제의 독단적인 칙령으로 교회의 예배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려 했다면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반발하며 강력하게 저항했을 것이다.
콘스탄틴의 휴업령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태양신을 섬기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도리어 태양신을 섬기던 사람들의 의식에서 마침내 태양신은 완전히 퇴색하고, 태양신을 섬기던 날이 주님의 날로 변화되어간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들 중에 아무도 일요일에 태양신을 섬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온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을 주님의 날 곧 主日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6. 안식일교의 주장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주님이 부활하신 이후 초대교회가 상당기간 안식일에 모인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지켰다는 신약의 여러 다른 기록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이다.
둘째, 콘스탄틴 대제가 선포한 것은 일요일을 주일 중 공휴일로 선포한 것일 뿐 안식교에서 주장하듯이 콘스탄틴이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날로부터 그날이 주일로 바뀌어 지켜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안식일 후 첫째 날 주님이 부활하신 후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렸으며, 그 후에 초대교회는 안식일과 주일을 함께 지켜오다 점차 안식일에서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바뀌어 갔던 것이다.
A.D. 321년 콘스탄틴에 의하여 주일(일요일) 예배가 강제적으로 시작되었다면 콘스탄틴 이전에는 주일 예배가 없었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자료들에 의하면 콘스탄틴 훨씬 이전에도 주일(일요일) 예배가 초대교회에서 드려지고 있었다는 사실들이 있다.
이 같은 기록은 신약의 바울 서신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당시의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앞서 기독교인들의 박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지방관리 소 플루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이나 순교자 저스틴, 그리고 터툴리안의 기록에 나타난다.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날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성찬식과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던 것이다. 사도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와 쉼의 날(a day of worship and a day of rest)로 이미 지켜오던 일요일(주의 날)을 콘스탄틴 대제가 단지 로마 제국 전체에 공식적으로 매주 공휴일로 발표한 것뿐이다. 콘스탄틴 대제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함으로써 안식일 성수에서 주일성수로 바뀐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313년 밀란의 칙령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사건이 아니라 기독교를 제국의 합법적인 종교 중 하나로 공인해준 것일 뿐이다. 기독교 공인 이전까지는 로마 정부가 기독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해주지 않았었다. 밀란의 칙령 이후에야 비로소 기독교가 로마의 합법적인 종교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아 주의 날 부활하신 주님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공식적으로 허락 받은 셈이다. 3세기 초 터툴리안이 증언하듯이 콘스탄틴 대제가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일인 주일은 기독교회의 초기부터 성수되었다. 그것은 안식일(주간의 일곱째 날)을 지키는 유대교로부터의 이탈이었다. 한 주간의 첫날로 옮긴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마다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4세기초 콘스탄틴의 시대까지는 주일(일요일)이 공휴일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의 이른 아침이나 늦은 시간에 예배 모임을 가졌다”(생명의 말씀사, 라이온사, 교회사 핸드북 9쪽).
안식일은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쉬는 날이며, 안식 후 첫날의 주일을 초대교회 사도들이 예배날로 제정하였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켰다고 하는 것은 안식일 날에 쉬었다는 의미이고, 주일을 지켰다는 것은 주일에 주일 예배를 지켰다는 의미이다. 초대교인들에게 일요일은 쉬는 날이 아니었고, 예배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7. 어떤 종파에서는 가톨릭에서 안식일을 변경시켰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가톨릭의 책자를 인용한다. 이러한 주장 역시 엉터리이다. 가톨릭은 4세기 이후에나 나타난다. 그러나 주일예배는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8.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9. 안식교인들은, 콘스탄틴 이전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고 있었는데, 콘스탄틴 황제가 태양신을 섬기는 날에 휴업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결국은 기독교가 제 7일 안식일을 잊어버리고, 제 8일 혹은 주중 첫날을 지키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교도들은 출31:16절을 인용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언약이 대대로 영원한 언약이라고 주장한다. 대대로 영원한 규례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 폐하진 규례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월삭이나 무교절, 초막절 등의 절기도 다 대대로 영원한 규례로 명하셨으나 그것들은 그 법의 시효가 만료되기까지 계속되어야 할 규례라는 뜻이지 참으로 다함이 없이 문자적으로 영원한 규례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도 문자적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면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잡아다가 돌로 쳐야 한다.
10. 안식교에서는 구약의 안식일(the seventh day Sabbath)이 주일(Lord’s Day)로 바뀌게 된 근거를 신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오순절 이후에도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의 안식일에 모여 토라 및 시편을 낭독하고 기도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토요일에 사도들이나 기독교 공동체가 모여 성만찬을 거행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예배에 참여했던 것이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주(週)의 첫 날이 일요일이라고 불리기 전에 그 날 만났었고 유대인들은 토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전에 휴식의 날로서 토요일을 지켰었다.
11. 사복음서에서 공히 “안식 후 첫날”이라는 표현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서술하는 데만 사용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본래 ‘안식 후 첫날’은 유대인들이 당시의 날자를 헤아리는 평범한 일상의 용어였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일상의 용어가 성경의 기자들의 손에서 기록되는 방식에 있다.[안식 후 첫날]이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다. 이 말은 이미 복음서를 기록한 사도들의 언어에서 익숙해져 있던 말이다. 예수님의 생애와 그의 사역을 기록한 사 복음서 기자들 중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 사건 외에는 이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가가 기록하고 있듯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 20:7) “올라가 떡을 떼어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행 20:11)는 기록 등을 통해서 주일날 믿는 자들이 모여 성찬을 거행하며 주일을 지켰던 사실도 알 수 있다. 글리슨 아쳐(Gleason Archer)가 지적하듯이 사도행전 20장 5절부터 12절에 나오는 주일 저녁 예배는 전도나 성경공부를 위한 특별 집회로 보기보다는 정기적인 집회의 연장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명백한 사실은 성찬을 하기 위한 교회의 회집으로서 안식 후 첫날이다. 또한 사도행전 20장 16절에서 바울 사도가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서둘렀던 것도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바울 사도가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고 그 이튿날 떠나려고 한 것이나, 오순절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렀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당시 바울 사도가 주일 예배를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게 연보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 고린도교회도 갈라디아교회처럼 하라고 명하면서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고 부탁을 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지금까지 “안식 후 첫날”이라고 부르던 것이 “매 주일 첫날”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왜 다른 날이 아니고 안식 후 첫날이 예배의 날로서 이해되었고 회집되었는가? 결국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결론이다.
12. 신약 성경 중 가장 늦게 기록되었다는 요한 계시록 1장 10절에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를 기록하면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말한다. 주의 날(kuriakh/| h`me,ra| Lord's Day, 주일)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매우 선명하게 등장한다. '주의 날'이란 표현은 세속문헌에서는 그 유례가 없고 오직 기독교 자료에서만 처음으로 나타난다. '주'라는 명칭이 예수님이 구약에 계시된 주가 되신다는 확신에서 주어진 것처럼, '주의 날'이라는 표현도 그 날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날이라는 확신에 의해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 여기 사도 요한이 언급한 “주의 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 곧 “안식 후 첫날” “매 주일 첫날”을 의미하는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가 안식일의 주인 됨을 충분히 깨닫게 된 기독교신자들은 예수님이 반역 당하시던 밤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날 저녁에 그와 함께 먹고 마셨던 제자들이 한 것 같이, 식탁교제를 위해 일주일 중 첫 날에 모임으로서 그 날에 일어났던 정말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였던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떡을 떼며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일을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로 여겼다.
따라서 “안식 후 첫날”에서 “매주일 첫날”로 그리고 “주의 날”로 점점 더 발전되며 초대교회가 주일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기념하고 지켰던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의 지방장관 소 플루니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문헌에 의하면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점으로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인들이 구분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더 그리스도인들이 안식교의 전통을 버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면서 독자적인 전통을 구축해 나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3. 주일 성수는 2세기를 지나 3세기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3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유명한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의 증언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3세기초에 터툴리안은 안식일을 지키는 의무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담과 아벨, 노아와 에녹, 그리고 멜기세댁과 롯도 이런 것들을 지켰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안식일은 죄로부터의 휴식을 상징하고,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최후로 휴식할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은 율법의 다른 제의 규정들과 마찬가지로, 이것들은 그림자로 삼는 실체들을 소개할 새로운 입법자가 일어설 때까지만 지속되도록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터툴리안의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3세기에 들어오면 이미 교회는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구약의 안식일 대신 주일을 거룩하고 성스럽게 지켰던 것을 알 수 있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고 이것이 3세기에 들어오게 되면 교회 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과는 절연하고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거룩하게 지켰던 것이다. 안식일은 유대인이 지키는 절기로 인식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중요한 날로 지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매우 흥미 있는 증언이 3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시리아어 「사도들의 가르침」(The Teaching of the Apostles)이라는 작품에서 발견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주일 첫날’을 기독교 예배를 위한 날로 선정하였다고 말한다.
사도들은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명했습니다. 주 첫날에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봉헌을 드립시다. 왜냐하면 주 첫날에 우리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으며, 그리고 주 첫날에 그가 하늘에 승천하셨고, 그리고 주 첫날에 그가 드디어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마지막 날에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14. 안식일에 대한 견해들
1) 종교개혁 시대의 재침례파의 견해→ 율법과 복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의 전제 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제 4 계명은 폐기되었다고 믿는다. 제 4 계명 전부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는 견해. 안식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과 절기의 구분을 금지하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된다는 것.
2) 영국 국교회 →주일, 혹은 일요일은 기독교회의 완전히 별개의 제도이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며 안식일의 계승도 아니다. 주일은 어떤 식으로도 제 4 계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주일 제도가 최소한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기록되지 않은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 믿는다.
3) 루터의 견해 →루터는 1520년에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이 계명의 기초를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것에 두었다. “그래서...우리는 엿새 동안 하던 일을 쉰다. 이 안식일은 이제 일요일로 바뀌었다. 일요일은 안식일 (rest-day) 혹은 휴일(holiday), 혹은 거룩한 날(holy day)로 불리운다.”
“이제 진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거룩한 날들이며,..., 모든 날들이 일하는 날들”이라 선언함.
영적인 안식은 우리가 단지 우리의 노동과 사업을 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루터는 많은 성구들의 인용을 통해, 영적인 안식은 자아에 대해 죽고 육신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루터에 의하면, 일요일은 실제적 필요성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정한 것이다.
“현재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목적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명령된 바도 아니다.”
제 4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며,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루터는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있어 제 4 계명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거룩하게 여겨 그것을 듣고 배우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존중이 제 4 계명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주일이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하다는 개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이 거룩한 날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든 날들을 거룩히 여겨 거룩한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간직하는 것이다.”
“이레에 하루”라는 것은 7이라는 숫자 그 자체에 신비한 영적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소한 칠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자주 모일 형편에 있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였다. 주일의 본질적 목적은 아직 어린 자들과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의 진정한 직분은 말씀의 사역의 직분이며 젊은이들과 가난한 무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고대에 일요일이 지정되었는데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나 사람들이 정한 것이기는 하나 루터는 우리가 그 날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주일의 일차적 의미가 기독교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이라는 주장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공통적이다.
4) 칼빈 →칼빈은 제 4 계명의 모형적인 부분은 모두 폐지되었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본다. 칼빈에게 있어서 주님 자신이 진리이시므로 그 분의 임재로 모든 모형들이 사라진다. 그가 몸체이며 그의 출현으로 그림자는 뒤로 제쳐진다. 그는, 감히 말하건대, 안식일의 참된 성취이시다.
제 4 계명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있어 핵심인 “영적 안식”이란 ,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일들을 내려놓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의 내적 실재인 “영적 안식”은,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의 모든 도모를 중지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게 하고 우리는...그 분 안에서 쉬는 것”이었다.
칼빈이 “영적 안식”을 우리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라 말할 때 “우리 자신의 일”이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들”을 지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칼빈에게 있어 영적 안식의 핵심은 자아를 죽이는 것과 자기 의에 대한 불신 및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존이라 말할 수 있다. 주일은, 그의 표현을 따르면, “나태한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와 묵상에 바쳐야 할 시간”이었다.
칼빈은 “우리 자신의 일들”에 대해 철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일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는 한 참된 안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어떤 날들도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은 아니며 날들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일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양심에 올무를 놓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의 율법주의적 주일 성수에 대한 반발로 칼빈은 공예배 날을 정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칼빈은, “주일을 안식일이라고 하면서 성수를 주장하는 것은 율법주의와 미신적 사고에 기인한 것으로 결국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빛을 가리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주일 노동을 금지했던 것은 “원리”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 때문이었다. 즉 일요일 노동이 그 자체로서 악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학습과 묵상”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일요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칼빈에게 있어 주일 성수의 본질은 자아를 죽이는 것(mortification)과 하나님 일의 묵상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안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육신적 욕망들을 버려야 한다. 칼빈의 안식일 신학은 성화 교리에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칼빈은 안식일을 “성화의 상징”이라 묘사한다.
5) 청교도 안식일 신학의 창시자요 완성자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바운드의 [안식일 교리]라는 안식일 신학의 결정판격인 저서→바운드의 이러한 주일관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1640년대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 고백의 안식일 조항이었다.
하나님은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지정하셔서 거룩히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는 한 주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 성경에서 그것은 주의 날로 불리우며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계속된다.
6) 콕세이우스(Cocceius)와 보에티우스(Voetius)와 의 투쟁
→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천지 창조 때였는가 아니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는가? (보에티우스는 전자를 주장하나 고마루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1655년 콕세이우스는 히브리서를 강해하면서 제 4 계명은 전적으로 의식법이라고 가르쳤다. 고마루스처럼 안식일은 에덴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제정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최고 수준의 개혁주의 정통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간단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논쟁이 야기될 정도로 까다로운 쟁점이다.
7) 호주 개혁교회 (The Reformed Churches of Australia)는 내부적으로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오랜 논란 끝에 196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 (Reforemd Ecumenical Synod)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올렸다. “제 4 계명의 연구를 위해 RES가 위원회를 선임하여 그 문제와 관련된 모든 주석적, 교리적, 목회적 측면들을 검토하게 함으로 다양한 개혁주의 전통들 사이에 합의를 위한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대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4년간 이 문제를 연구하여 차기 대회에서 보고하게 결정했다. 1968년의 대회에 의해 지명된 위원회는 1972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RES에 다수와 소수 보고서 두 개를 제출했다.
① 다수 보고서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모든 신뢰를 포기하고 죄책과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쉴 때 우리는 주일을 올바로 지킨다 할 수 있다고 그들은 선언했다.
다수설은 구체적 주일 성수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주일에는 우리의 일과를 제쳐 두어야 한다. 둘째는 예배의 의무였다. 셋째, 기쁨의 중요성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즐거운 축제일로 지켰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축하하는 날은 기뻐하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영혼이 소생하는 날이다. 주일은 의식법적 규례들의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선언되었다.
마지막은 선행의 실천이었다.
② 소수 보고서→소수설은 구약의 십계명이 여전히 신약 교회에도 유권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구약 안식일에 대한 계명의 요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가 예배를 위해 그것을 따로 떼어 두셨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신명기28:9-11; 고후 4:23 이하 및 겔46:1 이하 등의 본문으로부터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광야 시절 이후로 이 “안식의 날”은 동시에 “공적 예배”를 위한 날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소수설은 주일과 안식일의 단절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것이 부당하며 안식일과 주일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 답변했다. 안식일은 창조 사역과 출애굽에 근거한 것이나 주일은 한 주의 첫 날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었다. 주일은 비록 “신적 명령”은 아니지만 일요일의 안식은 “신적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③ 다수설과 소수설 사이의 공통점은 주일을 공중 예배의 날로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로서의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양자의 견해가 일치되었다.
15. 폴 주잇에 의하면,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어거스틴은 "옛 언약 안에서 안식일이 지켜졌고, 새 언약 안에서 주일이 지켜졌다"
16. 안식일은 구약의 계명이지 신약의 계명은 아니다. 안식일은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이며,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이외의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신약에 언급된 많은 죄들 중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코 한 번도 죄로 언급되지 않는다!
17. 신약의 교회는 오순절에 탄생하였다. 이런 점에서 오순절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 로마서 14:4-6, 10, 12, 13도 역시 어느 한 날을 고집하면서 다른 날을 지키는 것을 정죄하면 그것은 잘못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날을 지키든지 각각 마음에 확정하면 되는 것이다.
19.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을 찾는 이유는 바울이 유대교의 신자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거기 가서 앉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만나기 가장 용이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날과 그 장소를 이용한 것 뿐이다.
이한규 목사
[출처] 주일과 안식일의 차이|작성자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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