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개혁 !! 여러교파!!

종교개혁은 ‘16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아들 2021. 2. 15. 19:50

종교개혁은 ‘16세기 이야기’가 아니다

 

 

성직자 부패, 교회의 재산축적, 기득권 옹호 등이 개혁을 불렀다

일반적으로 루터교 학자들은 루터가 아니었다면 종교개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해 개혁운동에서 루터의 주도적인 영향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루터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개혁은 불가피했다.

그만큼 교회는 본래적 가르침에서 벗어나 부패와 타락이 심각했던 것이다.

교회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다양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교회의 부패였다.

 

교회가 부패했다 말은 교회지도자들이 썩었다는 뜻이고,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성직자들이 부패했다는 뜻이다.

물론 중세시대의 교리적 오류나 탈선, 제도적인 문제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성직자들의 취첩을 묵인하게 해주었던 세금제도(Concubinage fee)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제도라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도의 개선이 모든 문제의 해결일 없다. 보다 근원적인 것이 인간 본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일 성직자들이 타락했다면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제도 또한 불의할 수밖에 없다.

 

성직자들의 부패가 제일 원인

성직자들의 부패에 대해서는 여러 예가 있지만 가지 경우만 소개하고자 한다. 교황 보니페이스 8(Boniface VIII, 1294-1303) 1300 2 22 새로운 세기를 기념한다는 이름으로 소위 희년을 선포하고, 교황 칙령을 통해희년 동안에 베드로와 바울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죄를 아무런 보류도 없이 사해준다 선언하였던 사람인데,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의 교황 관저에는 48개의 루비, 72개의 사파이어, 45개의 에메랄드, 66개의 커다란 진주들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만드는 천재로 알려진 요한 22(13161334) 각종의 징세제도를 창안하여 교회 질서를 극도로 문란케 했고,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다.

종교개혁 직전의 교황이었던 알렉산더 6(14921503) 타락은 이전의 교황보다 심각했다.

그는 교회의 관행과 규율을 무시하고 극도의 타락과 방종한 생을 살았는데, 교황이 되기 전에도 사람의 정부와 3 1녀를 두고 있었으나, 교황이 후에 7명의 자녀를 얻었다.

 

14471517 교황 절반이 사생아를 두었고, 15세기 콘스탄츠 교구의 경우 매년 15 명의 사생아가 출산했다.

독일의 여러 도시에는 소위 여성의 (Frauenhausen)이라는 환락가가 있었고, 여성의 고객은 성직자들과 고위 관리였다.

교회의 윤리적 부패는 심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16세기에는 ()성직주의 사상이 심화되고 있었다.

 

성직자는 넘쳐나고 교회는 부패하고

중세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직교육의 부재와 성직자의 양산이었다.

이것이 중세교회가 부패할 수밖에 없었던 인적 요인이었다.

티르나겔( N. S. Tiernagel) 의하면 16세기 유럽 인구 85% 농민, 노동자였고, 10% 통치 그룹 혹은 귀족이었고, 성직자가 5% 달했다고 한다.

1500 당시 세계 인구를 5억으로 추산하는데, 유럽의 인구를 1억으로 본다면 성직자 수는 무려 5백만 명에 달한다.

 

독일 지방 쾰른(Cologne) 해도 무려 5 명의 사제들과 수도사들이 있었다.

독일에 수도사들과 수녀들의 숫자는 무려 150 명에 달했다.

어떤 지역은 인구 30명당 1명의 성직자가 있었다고 한다.

성직자의 과대한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저하시켰고, 이들을 상호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성직자의 양산은 성직자들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성직자 수의 급증은 성직자들의 혜택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호경쟁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어떤 성직자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향유하고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으나, 다른 한편의 성직자들의 빈곤과 가난은 극에 달했다.

가난한 성직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키웠다.

가난한 성직자들은 세속 직업에 종사하지 않을 없었는데 가죽 제조업, 직조, 제조업, 버터와 치즈 행상을 하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다른가?

오늘 한국교회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와 문제의 소지도 따지고 보면 성직교육의 불균형과 과다한 성직자의 배출이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성직자 수는 10 명으로 추산되는데, 남한의 인구를 4 5백만 명으로 인구 450 1명꼴의 성직자가 있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체 성직자의 10% 임지 없는비활동 인력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은 스펄존도 예상 못했던 3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합동교단의 경우 임지 없는 목회자는 15백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신의 경우 전체 목회자의 10% 해당하는 16십여 명의 목회자들이 새로운 소명을 기다리고 있다.

성직자의 과도한 배출은 분별없는 개척교회의 난립과 교회 분열, 그리고 성직자간의 과도한 경쟁과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직자의 양산은 한국교회의 다른 문제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현재 신학도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심각한 경쟁자가 되었다.

성직자간의 빈부 격차 또한 심각하다.

하나님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한 소명보다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종교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교회개척이 섭생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운동

16세기에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을 우리는 흔히종교개혁이라고 하지만교회개혁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개혁자들의 가장 관심은 하나님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 건설은 그들의 일관된 개혁 정신이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리적인 개혁운동(Reform)만이 아니라 영적부흥(쇄신)운동(Revival) 성격이 있다.

교리적인 개혁이 영적쇄신운동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것은 이념화 혹은 이데올로기화되기 쉽고, 반대로 영적쇄신운동이 건전한 교리적 기초를 지니지 못하면 신비주의적 혹은 주관주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교회개혁은 교리적 개혁과 영적 부흥의 성격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 ‘설교 회복이 최대 관심사

개혁자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설교의 회복이었고, 이것은 새로운 교회관의 핵심이었다.

말하자면 개혁자들의 교회갱신의 핵심을 말씀의 권위회복에 두었고 설교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했다.

개혁자들에게는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였기에 이를성경 중심(sola scriptura)이라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바른 설교를 통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으므로 개혁자들은말씀의 신실한 전파 참된 교회의 표지로 인식했다.

이런 점에서 캠브리지대의 피터 뉴만 브룩스(Peter Newman Brooks)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목회적 성격을 운동이었다.” 했다.

 

칼빈은 참된 교회의 표식(signum)으로말씀성례 말했는데, 가지를 참된 교회의 표식으로 말했다는 점에는 루터와 다르지 않다.

루터는 하나님의 올바른 선포만 강조했지만, 칼빈은 말씀의 바른 선포만이 아니라 청중도 올바로 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칼빈은 루터와 달리 바른 말씀의 선포를 위해 청중은 그것이 바른 선포가 되도록 성경강해와 설교를 경청하고 그것이 진정한 말씀의 선포가 되도록 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낙스도 이런 칼빈의 입장을 따랐다. 청중은 설교의 바른 선포를 위해 파수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2) 하나님이냐 인간이냐

종교개혁은 오도되고 변질된 신학과 교회로부터 성경 본래의 기독교 회복운동이었다.

근거와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었다.

그동안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했으나 개혁자들은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임을 천명했다.

이것이 바로성경 중심사상이다.

말은 인간이 중심일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16세기 상황에서 보다 분명히 말하면교황이 중심일 없다 뜻이다.

교황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사죄와 은혜의 수여자라는 당시 교회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바로하나님 중심사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없고, 인간이 영광 받아야 대상일 없다.

특히 고위 성직 계급의 출현은 교회를 급속도로 인간 중심의 계급공동체로 변질시키고 전락시켰다.

본래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인간 중심의 다스림의 직분으로 오인되면서 교회는 급속히 계급 구조로 변질되었다.

교회구조는 권력구조로 개편되었고, 성직자들은 이권에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교회와 교회구조를 세속화시켰고, 나그네 공동체인 에클레시아는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안주 공동체로 변질되었다.

오늘 한국에도 노회, 총회가 지나치게 권력구조로 화해졌고, 세속 정치계와 방불할 정도의 권력구조가 엽관제도화(spoil system)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노회장, 총회장이라 하여이라는 교회 직분의수위성 말하지만 영어에서는 그냥 중재하는 사람(moderator)라고 부르고 있다.

교회 조직의 불의, 교회 문제를 처리하는 치리회의 불의하고 부당한 처리가 우리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3) 교회는 가난해질 있는가?

중세교회의 가지 문제는 권력에 대한 야망과 부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것이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었던 주된 요인이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중세교회는 물욕 때문에 영적 눈이 어두워졌다.

교회의 속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운동 일어났으나 수도원이 부를 축척하게 되자 다시 부패하였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해 수도원은 본래적인 기강을 상실하였다. 부는 영성을 파괴하였고, 나그네 공동체를 안주 공동체로 전락시켰다.

 

루이스 스피츠에 의하면 16세기 유럽 토지의 3분의 1 교회의 소유이거나 교회의 통제 하에 있었다고 한다.

교회는 많은 토지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의 헌금제도로 수입을 올렸고, 돈과 권력 때문에 8, 11살짜리 아이가 추기경이 되기도 했다.

사람이 4 도시의 대주교 직을 독점하기도 했다.

소위겸직제도부재직임제(absenteeism) 정당시되고 합법화되어 성직자들의 사치와 탐욕이 가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유럽의 양심이라고 불린 버나드(St. Bernard) 교회나 성직자가 부를 통제할 신앙적 자제력이 없으면 차라리 가난해지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당시 교회는 그런 영적 통제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교회는 가난해야 한다 말했다.

루터는 (소유) 분배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핍절된 이웃을 위해 분배되지 않는 제물은소유의 본질(nature of possession) 상실한 것들로 규정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제 중산층 이상의 교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없지 않다.

종교 귀족들이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부 성직자들은 정도 이상의 부를 향유하고 국민의 10% 인구만이 즐길 있는 골프를 치고 외제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이도 있다.

교회 재산은 교회분규의 핵이 되고 있다.

성직자는 가난할 있어야 하고 가난한 삶으로 얻을 있는 영적 유익을 생각해야 한다.

 

부르주아란 말은 원래성안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특권층이란 말이다.

오늘 우리가성안에 사는 사람들 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비판해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기독교적인 것처럼 오해하지만, 이제 한국교회가 싸워야 대상은 우리시대의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은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우리의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고 가치관에 깊숙이 빠져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부를 통제할 영적 능력을 지니든지 아니면 소유의 본질을 상실할 위험을 억제해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4)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임의로 나누지 말라

종교개혁은 기독교적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새로운 빛을 던져 주었다.

성속(聖俗) 이원론적 구분이나 성직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길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바로잡아 주었다.

루터는 수도원적인 삶만이 고상하고 보다 거룩하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고, 사람이 무슨 일에 종사하든 소중한 것임을 석명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하였다.

점이 그의 직업에서의소명론(召命論)인데, 그에 의하면 모든 직업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고, 아래로 이웃을 섬기는 행위이므로 모든 직업은 동등하게 의미를 지닌다.

 

칼빈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했을 , 주장은 우리 삶의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거룩한 성화의 삶은 세속으로부터 격리된 수도원에서의 삶이 아니다.

어쩌면 세속화될 있는 위험마저 있지만 세상 속에서 악과 불의와 맞서 믿음의 선한 싸움(아곤) 하는 것이 진정한 거룩임을 일깨워 주었다.

예수님께서너희는 세상 빛이요, 소금이라 했을 말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말이었다.

종교개혁은 교리적 개혁(Reform)만이 아니라 신자의 전체에 의미를 주는 영적 부흥(Revival) 성격이 있다.

 

5) 교회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종교개혁은 교회의 신학의 갱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포함한 인간의 삶의 영역에 대한 개혁운동으로 확장되었다.

점에 있어서는 루터보다 칼빈의 기여가 컸다.

사실 루터는 근본적으로 보수주의자였고 기존질서(정치권력) 대해 평행적 관계를 지녔지만 칼빈은 단계에서 진일보하였다.

트릴취(Emst Troeltsch, 1865-1923) “(칼빈주의자들은) 어느 곳에서나 사회 전체의 삶을 계획적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과 일종의기독교 사회주의 대한 시도가 있었다.

칼빈주의는 교회가 삶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고, 루터교처럼 종교적인 요소와 비종교적인 요소를 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로마 천주교처럼 몇몇 기관을 세워 두고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하였다.

 

트릴취의 말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칼빈주의자들은 사회를 성속 이원론에 따라 분리하여 이분화(Dichotomy)하지도 않았고 사회와 제도를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

정리해서 말하면 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의 근거와 가능성을 가지 점에서 말할 있을 것이다.

 

첫째, (() 이원론적 구분은 개혁주의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성과 속의 이원론적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성속 이원론은 영역분리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영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의 삶과 행동양식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종교행위를 단순히 주일예배와 이와 관련된 행위로만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게 하며 반대로 소위 세속적 영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없게 한다.

같은 형태는 한국적 컨텍스트로 말하면 무교(Shamanism)적이다.

 

둘째, 사회·사회구조는 절대불변의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세적 세계관은 우주와 사회를 위계체계적인 존재의 사슬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사회조직은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았다.

사회를 절대불변의 구조로 보지 않는다는 말은 사회는 타락했고, 타락할 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란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있는데, 그것도 단순한 개인의 집단이 아니라 일정한 틀의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사회란 다수의 개인들의 집합만이 아니라조직혹은구조라는 성격이 더해져 있다.

 

그래서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과 구조에서 오는 불의나 모순이 있을 있다.

예를 들면 정치조직이나 세금제도, 임금제도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인간은 악하다 말할 인간의 집단인사회는 악하다라고 단순히 말할 정도 이상으로 사회는 악할 있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으로 개개인의 악들이 합해진 것보다 사회는 악할 있다는 점이다.

이상규고신대교수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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