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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전 있는 편을 향해 기도하거든/왕상 8장

하나님아들 2012. 10. 7. 22:01
왕상 8장

성전 있는 편을 향해 기도하거든

김지찬



Ⅰ. 성전 봉헌 기사의 중요성
1. 이스라엘 왕의 원형적 인물로서 솔로몬
열왕기에서 솔로몬의 삶에 대한 기사(왕상 1~11장)는 어떤 왕보다 훨씬 길다. 우선 이것은 솔로몬의 행적이 갖는 역사적 중요성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솔로몬 내러티브는 열왕기의 주제를 발전시키는 데 매우 핵심적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열왕기에서 긍정적인 왕의 원형적 인물일 뿐 아니라 부정적인 왕의 원형적 인물(prototypical figure)로 묘사된다.
이상적인 왕으로서 솔로몬은 다윗 왕국과 다윗 언약의 적법한 후계자요, 지혜로운 왕의 모델이요, 성전 건축자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동시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다윗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끝내 우상 숭배로 돌아선 악한 왕을 대표하기도 한다. 실제로 솔로몬 내러티브(왕상 1~11장)의 구조는 율법을 지키는 지혜로운 왕으로서의 솔로몬의 모습(3~8장)과 율법을 어기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말과 여자와 부를 추구하는 솔로몬의 모습(9~11장)의 모습으로 구분되어 대조되고 있다.1 따라서 우리는 솔로몬 내러티브를 살펴볼 때, 우리가 이 가운데서 택한 설교 본문이 솔로몬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성전 봉헌 스토리(왕상 8장)는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긍정적 태도를 보여주는 열왕기상 6~8장에 속해 있는데, 이 큰 단락은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부정적 태도를 보여주는 열왕기상 11장 1~13절과는 대조된다.2

A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긍정적 태도(6~8장):
솔로몬의 거대한 성전 건축,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사랑,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 받음 등이 나타난다.
A`´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부정적 태도(11:1~13):
솔로몬의 이방 산당 건축, 솔로몬의 이방신 사랑,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말씀 받음 등이 나타난다.

결국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봉헌 기도에 대한 내러티브는 이상적 왕으로서의 솔로몬의 모습과 이방 신당을 건축하고 이방신을 사랑하는 배도한 왕으로서의 솔로몬의 모습을 대조한 후에,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2. 성전의 중요성
이것은 열왕기의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구체적 역사 서술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우상숭배(11:1~13)는 북방과 남방의 분열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방의 다산 종교를 허용한 것이 결국은 애굽의 바로 시삭에 의한 성전 약탈로 이어졌다고 내레이터는 본다(왕상 14:22~26). 어디 그 뿐인가? 성경 기자는 유다 왕 아하스와 므낫세가 성전 안에 이방 신상을 세우고 마술과 점 등 해괴한 풍습을 도입한 것이 끝내는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왕하 16:10~18; 21:13).
이와는 반대로 요시야는 성전 건물을 수리하고, 므낫세가 세운 우상들을 철폐하고 예배 개혁을 실현함으로 선한 왕의 이상을 실현시킨 인물로 열왕기 기자는 제시하고 있다(왕하 22~23장). 선한 왕으로 칭찬을 받는 유다의 다른 왕들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개혁 조치로 칭찬을 받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성전은 이스라엘 왕들의 운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성전에 대한 태도가 하나님께 대한 각 왕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며, 이런 태도는 하나님에게서 축복 아니면 저주를 받게 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열왕기에서 우리는 살펴보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성전은 선택된 언약 백성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안과 안식과 복지를 가져다 주었지만, 끝내 왕과 백성들의 배도로 말미암아 성전은 바벨론 군대의 말발굽 아래 짓밟히게 되고,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따라서 열왕기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 내러티브(왕상 6~8장)는 므낫세의 성전 더럽힘(왕하 21장)과 요시야의 청결(왕하 22~23장), 그리고 바벨론인들에 의한 멸망(왕하 25장)으로 이어지는 성전의 마지막 역사와 잘 대조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둘 때, 솔로몬 내러티브의 핵심이 성전 건축과 봉헌(6~8장)에 놓여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열왕기상 8장의 솔로몬의 봉헌 기도는 성전이 열왕기 전체의 신학에 얼마나 핵심적인 주제인지를 잘 요약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본문의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Ⅱ. 본문의 구조
1. 전체 개요
우선 열왕기상 8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를 살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Richard Nelson 의 열왕기상 8장의 구조 분석이 가장 적절하게 보이기에 아래에 소개한다.3

A 내러티브 행동(법궤 이동): 1~13절
B 신학적 논평: 14~21절
C 왕조를 위한 기도: 22~26절
D 들어가는 전이(transition in): 27~30절
C´ 7 개의 청원 기도: 31~51절
D´ 나오는 전이(transition out): 52~53절
B´ 신학적 논평: 54~61절
A´ 내러티브 행동(제사): 62~66절

8장은 고도의 신학적 통일성과 탁월한 문예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처음(A)과 마지막 단락(A´)은 법궤를 옮기고 봉헌 제사를 드리는 내러티브 행동을 담고 있다(1~13절; 62~66절).

2. 구조 설명
우선 첫 A단락(1~13절)에서 솔로몬은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소집하고(1~2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새로 지은 성전인 지성소로 모셔들이는(3~13절)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A´단락(62~66절)에서는 성전 봉헌식을 행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봉헌식 때 왕과 백성들이 드린 제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묘사한 후에(62~64절), 7일 동안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 후에 기쁨에 가득 차서 솔로몬을 축복하며 돌아가는 내용(65~66절)을 담고 있다. 열왕기상 8장의 솔로몬의 성전 봉헌 내러티브는 법궤 이동과 제사라는 내러티브 행동에 의해 둘러 싸여 있다. 결국 이런 외부 틀은 성전 봉헌식이 백성 전체의 일이었고(1, 3~6, 62~63절),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참여한 것임을(14[2x], 22, 55절; 참조 65절)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온 백성이 성전 봉헌식에 참여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점이 이어지는 솔로몬의 연설에 잘 나타난다.
내러티브 행동 안에서 솔로몬의 연설(B와 B´)과 솔로몬의 기도(C와 C´)가 나온다. B단락(14~21절)에서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 지성소에 모신 후에 백성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연설을 하는데, 신학적 논평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몬의 이 첫 번째 신학적 논평은 이어지는 솔로몬의 기도의 배경 역할을 한다. 한편 이 연설과 상응하는 B´단락(54~61절) 역시 솔로몬의 연설인데, 신학적 논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연설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B단락: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지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15절).
B´단락:
여호와를 찬송할 지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56절).

결국 솔로몬의 연설은 성전 봉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임을 보여준다. 성전 건축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이제 성취하신 것이라는 것이다(15절). 어디 그 뿐인가?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2장 10절에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안식을 솔로몬에게 주셨다. 솔로몬 왕국의 평강과 평안과 안전은 열왕기상 5장 4절에 잘 나타난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두 연설이 열왕기상 8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락인 중앙 단락, 솔로몬의 기도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솔로몬의 기도는 과거에 주어진 은혜를 미래에도 계속 베풀어주실 것을 성전에 임재하시는 여호와께 부탁하는 기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의 기도(23~53절)는 주제별로 볼 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왕조를 위한 기도인 C단락(23~26절)과 둘째 이스라엘 삶에 있어서의 성전 기도의 실제적 역할을 일곱 가지로 나누어서 기도하는 부분인 C´단락(31~51절)으로 구분된다. 물론 위의 구조 도표에서 보는 대로 전이 단락이 있어서 들어가는 전이(transition in) 단락은 27~30절이며, 나오는 전이(transition out) 단락은 52~53절이다.
위의 도표에서 보면 솔로몬의 기도가 열왕기상 8장의 핵심임을 잘 알 수가 있다. 다른 부분은 생략하고 솔로몬의 기도를 중심적으로 살펴보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면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으나, 솔로몬의 기도가 왕상 8장의 핵심적 축약판이기에 그렇게 해도 다소 무방하지 않을까라는 필자의 판단 때문이다.

Ⅲ. 솔로몬의 기도
1. 왕조를 위한 기도(22~26절)
솔로몬의 기도는 다윗 왕조를 위한 기도로 시작한다(23~26절). 솔로몬은 하나님은 비견할 자 없으신 분임을 찬양한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 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23 상반절).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여호와는 비견할 자 없으신 분이신가? 솔로몬은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분이시라고 고백한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23하~24절).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충성스런 종들에게 주신 언약을 지키시는 분임이 솔로몬이 지어 드린 성전 봉헌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고백한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주신 다윗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다윗 언약은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첫째 다윗의 몸에서 날 자가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12~13).

그런데 이 약속은 이제 솔로몬이 성전을 낙성하고 봉헌함으로 성취되었다. 솔로몬이 하는 것은 무엇이나 성전 건축부터 외국 무역까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의 첫 번째 내용을 신실하게 성취하신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언약의 내용이 문제이다. 두 번째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4~16).

이 두 번째 언약의 내용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아니 아직 그럴 만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에 미래에 성취될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을 솔로몬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첫 번째 언약의 내용을 지키셔 성전을 건축케 하셨으나, 두 번째 언약의 내용도 성취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왕하 8:25~26).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을 이용하여, 미래에 왕조의 안정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본다.

2. 들어가는 전이 단락(27~30절)
27~30절은 중앙에 나오는 일곱 개의 청원 기도로 들어가는 전이 단락이다. 이 전이 단락은 중앙에 나오는 청원 기도의 후렴구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32, 34, 36, 43, 45, 49~50절)를 도입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30절).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이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고 있는데, 왜 계속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해 달라고 하는가라는 점이다. 초월하시는 하나님 인간이 만든 건물 안에 갇혀 있을 수 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성전을 만드는 것인가?
우리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 자체에 내재한 신학적인 모순,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의 신학적 긴장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기에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 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27상반절)

솔로몬이 던진 질문,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특별히 아직도 교회 건축을 구약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반드시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에 대한 솔로몬의 답은 무엇인가? 솔로몬은 자기가 던진 질문에 대해 “예”인 동시에 “아니오”의 대답을 한다. 솔로몬은 먼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27절)”라고 ‘아니오’라고 자답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곳에 거하는 것이라고 솔로몬은 기도한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29~30절).

기도는 성전 안에서, 성전을 향하여 드려지면,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하늘에서 들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이 같은 해석은 솔로몬의 성전 이해를 잘 드러낸다. 비록 기도자가 신체적으로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더라도, 성전을 향해 기도를 하면 효과가 있는 것이다.

3. 중앙 청원(31~51절)
중앙에 나오는 7개의 청원(31~51절)은 기도 응답을 받아야 하는 전형적인 위기들을 나열하고 있다.
(1) 법정적 맹세에 관한 청원(31~32절)
(2) 패배에 관한 청원(33~34절)
(3) 기근에 관한 청원(35~36절)
(4) 가장 일반적인 청원(37~40절)
(5) 이방인에 대한 청원(41~43절)
(6) 거룩한 전쟁에 관한 청원(44~45절)
(7) 포로 되었을 때의 청원(46~51절)

이 시리즈의 강조점은 일곱 번째 청원, 포로 되었을 때의 청원에 놓여 있다(46~51절).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hb;v;), 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 hb;v;)에서 스스로 깨닫고( bWv;직역하면 “마음에 돌이키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hb;v;) “돌이켜”( bWv)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간 적국의 땅”( hb;v;)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bWv)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8:46~51).

이 청원은 다른 청원보다 2배나 길다. 포로 되었을 때의 청원은 열왕기 전체를 대한 처음 독자들인 바벨론 포로민들에게는 매우 중요하였다. 여기서는 “사로잡다”(hb;v;)와 “돌아오다”(bWv)의 동사를 이용해서 일곱 번이나 워드플레이를 하고 있어 그 문예 기법이 출중하게 나타난다.
(1) “사로잡아 … 끌어간 후에”(hb;v;,); (2) “그들이 이를 마음에 돌이키고(스스로 깨닫고)”(bWv); (3) “사로잡혀 간 땅”(hb;v;,); (4) “돌이켜”(bWv); (5)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hb;v;,); (6) “돌아와서”(bWv); (7) “사로잡아간 적국의 땅”(hb;v;)

“사로잡다”(hb;v;)와 “돌아오다”(bWv)의 동사를 이용한 이런 워드플레이는 회개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비록 적국에 사로 잡혀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돌이킨다면,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아올 수 있을 것임을 멋지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열왕기의 원래 독자인 바벨론 포로민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열왕기 기자는 바벨론 포로민들에게 회개하고, 고향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열왕기상 8장은 성전이 왜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어떤 삶의 상황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면,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청원을 들어주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Ⅳ. 신학적-설교적 적용
그렇다면 이런 간략한 본문 주해를 근거로 오늘날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교적으로 이 본문을 적용할 수 있을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앞서 우리가 잠시 살핀 대로 열왕기상 8장은 성전의 성격보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품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행한 연설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이 하나님은 모세와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끝까지 성취시키는 분이시다.
왕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15절)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56절)

과거에 모세와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지금까지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이시라면 앞으로도 그 언약만큼은 신실하게 지킬 것이라는 점을 성경 기자는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애굽에서 종노릇 하던 노예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내신 하나님,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오랜 동안 반역만 하는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신 모세의 하나님,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에 불과한 다윗을 택하고 왕위에 올리신 후에 안식과 풍요를 허락하신 후에 내 후손이 내 아들이 될 것이며 그가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후에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다윗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잠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다 하더라도 끝내는 다윗에게 준 언약을 지키시고 그의 백성을 구해 낼 것이라는 점이 잘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2. 성전의 중요성
둘째로 열왕기상 8장은 이스라엘의 삶에서 성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전은 그저 이스라엘의 종교적 집회 장소가 아니다. 성전이란 지상의 여호와의 왕궁인데, 그 안에 그분의(상징적) 보좌가 그의 백성들 가운데 놓여진 것이다. 거기서 여호와의 백성들은 여호와를 만나고, 거기서 여호와와 의논하고, 거기서 여호와를 찬양하고, 거기서 여호와께 간청하고, 거기서 여호와의 심판을 요청하며, 거기서 여호와에 대한 충성을 다시 다짐하는 것이다. 그 왕궁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을 축복하고, 율법으로 그의 백성을 가르치시며, 백성들의 간청을 들으시고, 심판의 요구에 응하시며, 백성들의 죄를 꾸짖으시고 용서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열방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곳에, 예루살렘에 임재하시기 때문에 다윗 왕가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대왕의 도시”(The City of the Great King), 하나님 나라의 왕궁이라 불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열왕기의 첫 독자인 바벨론 포로민들에게는 성전은 마지막 희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비록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왔지만, 옛날 시온성, 대왕의 도시에 서있었던 성전은 더더욱 희망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성전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성전이 있는 편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성경 기자는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29~30절).

이런 점에서 성전은 이스라엘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성전과 연관해서 한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솔로몬은 비록 성전을 건축한 장본인이었지만, 인간 건축물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27절).

이미 솔로몬은 진정한 성전은 자신이 건축한 인간 구조물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후대의 유대인들은 성전 건물을 우상시하는 그릇된 견해를 버리지 못하였다. 이에 예레미야가 맹렬히 비난한 것이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 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7:4~11).

그러나 당시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멸망한 것을 역사적 교훈으로 간직하고 있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후 1세기의 유대인들도 눈에 보이는 성전을 우상시하는 오류에 빠진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눈에 보이는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새로운 성전,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로 이루어진 성전을 세우셨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성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대의 일부 목회자들도 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일 집회 장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며 성전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9~22).

이 점을 열왕기상 8장을 설교할 때 빼어놓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비록 구약 본문이지만, 설교 시에는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새로운 성전 개념을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3. 회개의 중요성
솔로몬의 기도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회개의 촉구이다. 솔로몬의 청원 기도는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35절).

결국 열왕기상 8장은 회개를 촉구하며 모든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에서 돌이켜 기도를 듣고, 용서하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선을 베푸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36절)

비록 불순종으로 인해 포로로 잡혀가 있다 하더라도 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드리는 기도도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만일 포로된 자들이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이들에게 미래를 주실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상 8장은 회개를 진솔하게 요청할 수 있는 좋은 설교 본문이 되리라고 본다.

4. 작은 희망이지만 실제로는 큰 힘
포로지에 사로잡혀간 이들에게 과연 어떤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가? 열왕기는 포로민들이 희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열왕기는 침묵하고 있다. 그저 성전을 향해 간구를 드릴 때(33절), 회개하는 포로민들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음을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아직은 먼 미래의 가능성이다.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의 500년 왕조 역사의 죄는 쉽게 포로지에서 돌아올 만큼 적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런 상황에서 너무 쉽게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처음 들리는 것만큼 희망적인 것이 아닌지 모른다. 진정한 회복은 진정한 회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진정한 회개는 깊은 고통과 절망을 겪은 후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왕기 기자는 현재 바벨론에 포로로 잡힌 자들에게 작은 희망밖에 제시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열왕기 기자는 포로로 잡아온 자들의 긍휼이 바벨론 포로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희망의 전부였다.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50절).

비록 이런 희망은 가냘프기 그지없으나, 어찌 보면 먼 미래의 하나님의 구속을 알리는 여명 같은 것이기에 큰 힘이 되었으리라 본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을 거듭하던 지난 20세기 후반의 번영기에서 벗어나, 사회의 지탄, 특별히 언론과 매스 미디어의 지탄을 받기 시작하는 포로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이런 때에 우리는 승리주의자들처럼 호전적인 언어로 불신자들을 대할 것이 아니라, 범죄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이런 외부의 지탄과 공격을 통해 스스로 정화의 시기로 삼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주(註)
1. 참조, K.I. Parker, “Repetition as a Structuring Device in 1 Kings 1~11,” JSOT 42(1988), pp. 19~27.
2. 더 상세한 것은 김지찬,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 구약 역사서의 문예적-신학적 서론」(생명의 말씀사, 1999), pp. 381~398를 참조하라.
3. Richard D. Nelson, First and Second Kings(John Knox Press, 1987).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글쓴이 : DMpasto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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