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회사!!

고대 교회사

하나님아들 2020. 12. 7. 11:58

고대교회사

 

 

 

1. 시대의 중요성

예수님이 오신 시기

 

 

정치적 입장

 

 

문화적 입장

 

 

종교적 입장

 

 

왜 그 시기에 오셨을까

왜 예수님이 그 전도, 그 후도 아닌 그 시기에 오셨을까

 

정치적 입장, 종교적 입장, 문화적 입장을 볼 때 정확한 시기를 예비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

 

 

로마의 시대적 배경

당시 로마의 시대적 배경

 

가이사 아구스도는 옥타비아누스로서 율리어스 시저의 양아들

- 가이사 아구스도 재위 27년

 

로마의 상황

알프스와 북아프리카까지 세력을 이루고 전유럽 통치

 

 

로마의 통치 방법

 

- 지중해를 이용한 해양 중심 통치

- 군대를 이용한 과시적인 통치

(군대는 신분 상승의 도구)

- 로마의 성문법

(행정/식민지배의 도구)

 

문화 건축술의 발달

화폐/도량형의 통일

 

 

헬라 철학의 개요

 

당시 로마 사상의 기반은 헬라 철학

- 기독교 사상이 유입되기 좋은 환경

 

소크라테스

- 자연에서 인간으로 관심을 돌림

- 철학의 목표는 사람

- 사람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던 존재지만 레테우 강을 건너면서 이데아 세계를 모두 잊어버림

- 헬라 철학의 공부방식은 회상

 

 

Platon철학 개요

Platon철학

 

이데아 세계 - 현실세계

 

- 2분법적 세계관

- 이데아 세계가 완전한 반면 변하는 이 세계는 악하다

- 현실은 이데아의 모사

 

 

헬라철학과 기독교사상

 

플라티누스 사상

- 신은 로고스를 통해 세계를 창조

- 신은 한 명, 알 수없는 존재

 

기독교 사상

태초에 말씀(logos)이 계시니라

- 말씀이 곧 하나님

- 기독교는 철학을 이용하여 예수님의 세계관을 전파함

- 철학은 신학의 시녀

 

 

유태인 신앙 공동체

 

유태인 공동체가 복음전파의 도구로 사용됨(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

- 유태인 문화, 공동체

- 각 지역에 흩어져 있음

- 각 지역별 복음 전파의 주역

 

 

기독교의 전파

우상 숭배와 음란이 가득한 곳에 유태인들에게 다가간 깨끗한 기독교 사상이 크게 어필됨

 

황제 숭배 사상에 대한 반발이 기독교로 흡수

 

 

 

2. 팔레스틴에 기독교인이 없는 이유

기독교 신앙의 시작

 

 

팔레스틴의 기독교인

왜 팔레스틴에는 기독교인이 없을까

 

인도에 불교인구가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에 기독교 인구가 매우 적음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까?

이는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까지 복음이 전해지기 위함

 

 

예수님의 생애

성장기 : 0 ~ 30세

사역기 : 31 ~ 33세

절정기 : 마지막 일주일

부활전 기간 : 3일

부활후 기간 : 40일

 

 

교회의 시발

 

 

오순절

예수님 승천 후 10일

- 교회의 시작 (성령강림)

- 썩어질 인간의 육신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함

- 예배의 시작

 

 

유태인과 기독교인

 

유태인 : 육적인 선민

기독교인 : 영적인 선민

 

당시의 기독교인은 이 차이를 잘 알지 못함

유태인인 기독교인은 율법과 교회행사를 모두 지킴

 

 

유태인의 종류

 

히브리파 신자

팔레스틴, 특히 예루살렘 지역의 유태인

열성적 유태인

 

헬라파 신자

팔레스틴 밖의 유태인

헬라철학을 수용

일부 이방인도 포함

절기에만 예루살렘으로 모임

 

 

예루살렘의 박해

 

 

초기 기독교인 중 예루살렘의 유태인이 가장 심한 박해를 당함

- 예루살렘 주위 도시에 교회가 세워지는 계기가 됨

 

 

선교사의 파송

선교사의 파송과 유태인의 입장

 

선교사의 파송

 

예루살렘이 교회의 중심이었으나 타지역 교회로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유도

 

유태인들의 입장

 

유태인들은 유태공동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함

 

 

유태인 독립운동

 

유태인들은 구체적인 나라의 설립을 위해 메시아를 기다림

 

AD 66년

: 유태인의 로마 수비대 공격

 

예루살렘 교회의 전쟁 불참

- 펠라로 이주

 

AD 70년

유태군이 로마 티토장군에게 패배

마사다에서의 패배

 

 

유태인 기독교인 분리

 

유태독립운동 불참으로 기독교인 내 유태인들이 유태공동체에서 완전히 분리됨

 

펠라 피난사건이 유태교와 기독교 분리의 시발점이 됨

 

 

교회의 의미

 

하나님은 미신적으로 건물을 숭배하는 건축된 성전이 아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 곧 교회에 거하길 원하심

 

 

 

 

3. 초대교회의 예배

 

예배의 처소

 

 

초대교회 예배의 시작

초대교회 예배의 시작은 유태인의 예배의 연속에 약간의 첨가

유태인의 예배의식에 신앙을 더함

초대교회의 예배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음

생명력이 넘침

 

 

유태인 예배의 장소

 

1.성전 : 일년에 3번씩 모임

민족적 중심지

희생제사는 성전에서만 지냄

 

2.회당 : 성전에 모이지 않는 날들은 회당에서 모임

.에스라시대부터 시작

.지역적.지파적 예배의 장소

.한 마을의 생활의 중심

.오늘날의 교회의 역할

.안식일 월요일목요일에 모여 예배드림

 

 

기독교인들의 예배

팔레스틴에서 : 유태계 기독교인들은 유태인의 예배 형식을 그대로 따름

유태교의 의식과 기독교의 의식을 함께 지킴

예루살렘 함락 후 : 유태인과 기독교인이 분리됨

유태인의 의식을 함께 지키는 것을 중단함

 

 

예루살렘성전의 무너짐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않음

하나님은 예수님 속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심

임마누엘의 약속이 성취됨

우리가 언제나 어느때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게 됨

 

 

성소

성소(거룩한 장소)

: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지만, 육신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는 약간의 한정이 필요

기독교인들이 회당에 들어갈 수 없게 되므로 개인의 집에서 예배 드리기 시작

 

 

예배의 처소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하여 예배의 처소를 짓기 시작

 

 

예배의식

기독교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유태인들의 예배는 회당에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음

카톨릭의 예배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과 부활승천을 반복해서 재구성하는 과정

말씀으로 깨닫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은혜를 받는다고 함

 

 

이방인 교회

이방인의 교회

예배의 형태가 독자적으로 바뀌어 짐

유태교의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어짐

희생제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대속으로 대치됨

따라서 더 이상 희생제물이 필요치 않음

 

 

예배순서

설교

성경봉독

기도

찬양

신양고백

성례식:성찬과 세례

등등...

 

정해진 예배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안식일과 주일

유태인의 안식일 : 신앙보다는 의식을 강조

기독교인의 주일 :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짐

콘스탄틴황제가 주일을 휴일로 만듦

 

 

 

4 . 초대교회의 박해

 

박해의 이유

 

 

박해의 진행

 

 

교회의 역사

 

초대교회 : 교회 전체의 역사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웠던 때

 

하나님의 뜻

: 겸손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교회뒤에 감춰져 있는 영광의 빛이 보임

 

- 311년 박해의 마감

-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신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밀라노칙령

 

 

초대 기독교

 

 

311년 이전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불이익의 감수

기독교 : 금지된 종교

 

313년 이후

90% 이상이 크리스찬

 

 

박해의 이유

 

박해 : 사탄이 자신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 박해당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

- 오랜 시간 유지되지 못함

- 오히려 박해가 없으면 사탄의 고차원적 수법

: 모든 것이 잘 되면 오히려 사람들이 믿지 않음

 

 

기독교의 박해 : 황제들에 의해 이루어짐

 

트라잔 황제

- 기독교가 불법 종교

 

테시우스 황제

- 250년

- 그 이전까지는 박해가 국지적

- 이후 로마 전역으로 박해가 확대

 

1. 유태인들의 박해

 

- 유태인들의 믿음과 다르게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룸으로 유태인들이 싫어함

: 예수님의 십자가, 스데반의 순교, 야고보의 순교등

 

2. 로마의 박해

 

기독교인은 로마신 섬기기를 거부함

- 로마신을 섬기지 않음

- 노예를 형제처럼 대함

- 로마의 문화를 따르지 않음

 

로마인의 박해에 동굴로 숨어듬

 

 

선교시의 주의점

 

1. 문화를 건드리지 말라

- 죄악이 아닐 때는 문화에 대하여 인정하라

 

 

네로의 박해

1. 네로의 박해(64년)

 

- 자신의 잘못에 대한 희생양으로 기독교를 지목

 

2. 도미티안 황제(81년)

-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를 요구

- 황제의 신격화

: 기독교인의 불복종

- 안드레, 마가, 오네시모의 처형

- 요한의 밧모섬 유배

 

 

데시우스 황제

3. 데시우스 황제

 

249 ~ 251년 박해

옛날 신앙으로 회귀

제우스를 앞세움

그 외 타종교를 말살하려 함

 

결과

-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의 배교

- 속사도들의 순교

: 순교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씀

 

 

디오클레티안 황제

디오클레티안 황제(284 ~ 305)

 

303 ~ 311년 박해

칙령선포

- 제국내의 모든 교회당은 파괴

- 모든 성경은 불태워져야 한다

- 모든 기독교인은 공민권, 시민권 박탈,공직에서 떠나야 함

- 신들에게 희생제물로 드려져야 함

: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순교

디오클레티안이 305년 은퇴

: 사위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음

- 311년 기독교 박해를 중지함

 

 

박해의 결과

박해의 결과

 

- 박해를 통하여 알곡을 모으고

- 박해에 대비한 조직을 정비

- 박해시 순교한 지도자들의 편지와 사도들의 글을 모아 기독교 권위의 기준으로 삼음

- 신앙의 덕이 향상됨

 

 

5 . 교부들과 변증가들

 

속사도들

 

 

교부

 

 

속사도 혹은 변증가 또는 논쟁가라고도 함

 

1세기말(사도시대이후)부터 기독교공인(4세기)전까지 가장 험악한 시대를 이끌어 갔던분

 

당시 기독교의 어려움

외적 어려움 : 박해

내적 어려움 : 사도들의 죽음

- 교회의 권위의 공백

- 이단문제

 

 

속사도

속사도 : 사도를 잇는 분들

예)폴리캅, 클레멘트등

변증가 : 유대주의, 이교의 박해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변호

예)저스틴

논쟁가

: 이단에 대항하여 논쟁을벌임

 

3세기이후 로마의 신학적 중요 지역

1. 알렉산드리아

: 헬라적 전통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일어남

2. 안디옥

: 팔레스틴에서 주님의 전통을 이음

3. 북아프리카

 

 

속사도 교부

 

속사도(Apostolic Fathers)

- 사도들의 죽음이후 등장

- 사도의 역할을 감당

속사도 : 예수님 제자의 제자

- 박해 속에서 흔들리는 교회를 이끌어 가는 역할

 

 

속사도들이 남긴 편지

 

- 하나님에 대한 신앙

- 깨끗한 삶

- 믿음을 통해 얻어지는 의

등 사도들의 신앙을 다음세대로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

 

속사도들의 역할

- 순교의 멍에

- 교회분쟁을 개입하여 화합

- 교회조직 강화

- 이단을 물리침

- 순교의 본을 보임

 

 

클레멘트

 

- 베드로와 바울의 제자

- 92~101년 까지 로마교회의 성직자

 

클레멘트의 글

- 그러므로 그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것은 우리 스스로나 우리의 지혜로나 ~ 거룩한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요 ~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그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축복이 있을지어다

-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폴리캅

 

- 155년 순교

- 요한의 제자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견고히 서서 주의 본을 따르라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며 형제의 우애를 도모하여 서로 사랑하며 진리안에서 함께 수고하며 주의 온유함으로 서로 존경하며 아무도 멸시하지 말라 ~ 너희 모두가 피차 복종하라 이방인 중에서 너희 행실을 흠없이 본받게 하여 너희 전한일로 인하여 너희가 칭찬을 받게 하여 너희로 인하여 주께서 비방받지 않게 하라

 

 

이그나티우스

 

- 안디옥의 감독

- 베드로, 바울, 요한의 제자

- 사도바울에 의해 목사로 안수받음

 

시리아에서 로마까지 나는 싸우면서 왔다 육로로 수로로 끌려오며 친절의 표시로 내게 고통을 주는 열마리 표범에 의해서 사슬에 묶여서 왔다

- 순교할 준비가 된 상태

- 순교에 관한 얘기를 할 때의 감사함과 긍지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순교함

- 그리스도를위한 고통을찬양

 

 

속사도 교부의 글

 

-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

- 교회일치와 교인들간의 교제를 강조함

- 엄격한 신앙 훈련을 요구

: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도록함

 

 

변증가

 

속사도들은 박해에 대하여 기독교를 변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임

2세기 중엽이후 박해와 더불어 책등을 통하여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나옴으로 인해 변호를 하기 시작

- 기독교로 전향한 철학자들이 플라톤 철학을 이용하여 기독교를 변호

 

변증가들이 하는 일

- 기독교와 외부세상을 대화시키는 매개체가 헬라철학

- 기독교 사상을 헬라철학으로 번역하여 연결시킴

 

 

카두라투스(125년경)

 

- 아테네 성직자(감독)로서 속사도이며 변증가였음

- 하드리안 황제에게 기독교를 변호하는 편지를 씀

: 기독교인은 야만인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 그들과 같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기독교인은 지상에서의 삶을 영위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외인으로서 핍박을 견디며 살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불의한 자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기독교인을 변호

 

폴리비우스 저스틴

 

- 2세기에 사마리아의 로마 식민지에서 태어남

- 혈통상 이방인

- 헬라철학을 교육받음

- 로고스 교리를 기독교인의 말로 바꿈

- 헬라사람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바라봄

 

: 교리의 체계화와 신학적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남

 

 

6 . 초대교회의 이단 - 영지주의, 말시온등

 

초대교회와 이단

-.오늘날 대부분의 이단은 초대교회의 이단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초대교회는 외적으로는 박해와 내적으로는 이단에 대항해야 했다.

 

1.영지주의

2.말시온이단

3.몬타누스이단

 

-.이들은 예수를 믿으나 잘못믿거나, 그로인해 교회에 큰 피해를 주었다.

 

 

영지주의

1.당시 헬라철학과 동방종교의 물질 경시 주의가 기독교와 만나게 된다.

 

2.그노시스(Gnosis,지식)

=>신비한 지식을 가질 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구원파

1.구원파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점에서 일종의 영지주의이다.

2.구원을 선포하기는하나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구원파의 큰 맹점이다.

 

 

영지주의의 특성

-.영지주의 배경이 되는 헬라철학은, 물질은 악하다는 전제에서 물질을 거부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성경보다는 당시 문화나 지식을 따라 믿음을 가진다.

 

-.예수는 물질과 연결된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은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지식의 틀 안에서 왜곡되게 해석한 것이다.

 

 

-.숫자와 영지주의

-.숫자에 대한 강조 및 신비적 해석.

 

ex)예수의 30세 사역시작, 포도원 비유의 시간의 합, 물고기 153마리 해석 등.

 

 

지혜와 영지주의

1.지혜의 신(sophia)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스스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이 불확실이다.

 

2.이 불확실이라는 존재가 무질서한 물질의 세상과 장인(匠人)을 만든다. 이 장인이 이 세상의 무질서를 정리해 조화롭게 만드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이다.

 

3.이제 물질로 인해 고통스러워진 세상에,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다.

4.그 예수가 신비한 지식을 주며, 그는 육체적 고통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말시온

1.말시온은, AD40년경의 조선업자였다. 그가 로마에서 영지주의를 만남으로 왜곡되이 나아간다.

 

2.구약과 신약의 신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구약은 악한 신이고, 신약의 신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3.구약과 신약의 구별을 근거로,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도 구별했다.

 

 

성경과 말시온

-.신약성경에서 구약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한다.

 

1.구약성경거부.

2.마태,마가복음 삭제.

3.누가복음에서도 구약적인 요소를 제거.

4.결국 요한복음과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성경을 만든다.

 

 

예수와 말시온

1.예수는 AD29년에 별안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다.

몸처럼 보였을뿐 몸은 없으신 분이다.(도케티즘)

 

2.구약의 하나님이 자신의 율법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했다.

그러나 죄없는 영혼을 죽인 대가로, 구원받을 영혼들을 예수에게 건네주었다고 한다.

 

3.그리하여 말시온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말시온의 금욕

1.영지주의처럼 그들도 물질을 악하다고 생각하며 금욕을 강조한다.

 

2.기독교의 금욕은 육신의 훈련을 위한 것이지만, 말시온의 금욕은 물질과 육신을 멸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3.결혼금지, 육신금지, 성생활금지 등의 강력한 금욕이 강조된다.

 

-.말시온의 영향 : 말시온 이후 교회의 정경화 작업이 가속된다.

 

 

몬타누스

1.몬타누스 이단은 성령운동과 관계되어 있다.

 

2.성령은 말씀과 관계되어 역사한다는 관점과 달리, 신비적 영적 체험을 강조한다.

 

3.영적체험을 위해 금욕, 금식 등의 방법론을 강조한다.

 

 

몬타누스

1.AD150년경 무당이었던 몬타누스는 예수를 믿은 후, 자신의 이전 방법으로 신앙을 적용한다.

 

2.두 명의 여예언자와 함께 예언을 시작한다.

 

3.교회에서 쫓겨난 후, 성령의 시대가 왔다고 선포한다.

 

4.예수 재림의 시한부 종말론을 시작한다.

 

 

성령과 몬타누스

1.몬타누스는 성령의 외형적 증거, 구원의 외형적 증거에 대한 강조로 오류에 빠진 것이다.

 

2.몬타누스 이후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절제되는데, 특별히 예언 등을 절제하게 한다.

 

3.교회는 성경과 교리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7 . 사도의 전통

 

신앙의 전통

1.우리의 신앙은 사도성 곧 사도의 신앙과 믿음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점이다.

 

2.기독교는 20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종교이다. 그 전통의 뿌리는 사도들의 신앙이다.

 

 

 

2세기의 상황1

-.2세기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진리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1)성경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었다.

 

(2)박해의 시기였다.

 

(3)1세기에는 최고의 권위가 예수의 제자 곧 사도들의 권위였다.

 

 

 

-.2세기의 상황2

(4)사도들이 죽고 사도의 제자인 속사도들 마저 순교당함으로 사도계열의 제자들이 존재치 못했다.

 

(5)박해와 이단의 문제상황 가운데 행동적으로나 교리적 영적인 문제에 대해 지도해 줄 수 없었다.

 

 

 

 

1.목회자의 권위

 

1.AD100년 경 대도시 교회를 중심으로 감독이 나타난다.

 

2.감독을 중심으로 교회가 연합하여 지도력을 발휘하고, 구제, 감독, 지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3.지도자로 자처하는 분위기로 지도력이 분산되는 시기에, 사도성의 계승이 대두된다.

 

 

-.사도성의 계승

1.사도의 권한을 계승하면서 교회에 사도성이 계승되기 시작하였다.

 

2.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데, 목회자는 사도의 권한을 이어받고 있다는 점이다.

 

 

 

-.로마교회

1.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카르타고, 콘스탄티노플, 로마교회 중 로마교회만이 남게 되었다.

 

2.이로인해 로마교회만이 남아서 황제의 정치력과 더불어 사도성을 확립하게 된다.

 

2.신약의 정경화

1.당시에 사도의 이름으로 오가는 서신들이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후대의 작품들이었다.

 

2.그중 많은 것들이 금욕이나 예수의 신성 등 한 부분을 극화한 것들로서 복음과는 맞지 않은 것들이었다.

 

3.말시온이 그의 사상에 입각해 성경을 만들게 됨으로, 신약의 정경화 작업이 가속하게 되었다.

 

 

-.정경화의 기준

1.정경화의 기준은 사도성이었다.

 

2.말시온의 성경에는 구약적인 요소를 가진 것을 모두 뺐으나, 정경화 작업가운데 사도성을 기준으로 재편성하게 되었다.

 

3.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문서는 므라토리안 단편으로 이것은 AD170년경의 문서이다.

 

 

-.정경의 완성

1.AD200년경에는 지금의 성경과 거의 동일한 성경을 교회들이 가지게 된다.

 

2.397년 카르타고회의에서 정경화가 완료된다.

 

 

-.교회회의와 정경

1.카톨릭에서는 정경이 교회회의를 통해서 확립된 것이므로, 성경 위에 교회의 권위를 둔다.

 

2.하지만 정경은 교회회의의 결과물이 아니라 정경 스스로가 그 권위를 가진다.

 

 

3.사도신경

1.교회들이 공동으로 고백할 신앙의 내용이 필요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성경의 내용을 이용했다.

 

2.이단의 발생으로 그러한 부분을 강화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사도신경의 완성

1.말시온 이단은 구약의 하나님을 부인하고, 영지주의는 그리스도의 육신됨을 부인한다.

2.사도신경에서 성부에 대한 부분과 성자에 대한 부분이 성령에 대한 부분에 비해 많다.

이를 통해 당시 이단에 대한 교회 신앙고백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3.5세기경에 가서야 우리가 가진 사도신경 형태가 나타난다.

4.성경에서 뽑은 질문들을 기초로 이뤄진 사도신경은 신앙의 기초이자 기준, 고백이 되었다.

 

 

요약 및 정리

1.사도성이 계승된 목회자의 권위.

 

2.사도의 기록된 문서의 정경화인 신약성경.

 

3.사도들의 가르침인 사도신경.

 

 

-.이 세 가지가 교회의 최고의 권위로서 교회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사도적 권위의 반석 위에 흔들리는 지도력을 바로세우고 초대교회를 확고하게 잉태케 했다.

 

 

 

 

8 . 박해의 종말

로마의 번영

이번 강의 주안점

A.D313년을 전후로 로마제국의 변화와 기독교에 끼친 모습을 살펴본다.

로마제국은 주전27년부터 강력해져 그 후 200년간 가장 번영한 시대를 맞는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 수록 도덕과 권위는 점점 떨어지고, 군대는 지원자가 적어져, 게르만용병들로 채워진다. 따라서, 제국은 점차 약화된다.

 

 

로마의 약화

군대는 약해졌지만, 군부는 강해져 철권정치(180-284)가 시작되고, 황제는 자주 바뀌게 된다. 로마는 혼란에 빠지고, 점점 약해진다. 이 때, 디오클레티안 황제가 나타나 질서를 잡는다. 그는 동로마, 서로마, 총독이 관할하는 4개 지역으로 나뉘어 로마를 통치하며, 자신은 최고 황제로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로마를 다스리도록 하여 질서를 잡는다.

 

 

박해의 시작

제국은 안정되지만, 그전과 같은 강력한 로마로 돌아가기엔 무리였다.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로마는 제우스신앙을 강화하고, 기독교인들은 표적이 되어 박해를 받는다. 디오클레티안의 사위 갈레리우스는 박해를 하는 칙서를 내리도록 하며, 이후 가장 처참한 박해를 기독교가 당하게 된다

 

 

마지막 박해

303년 수도 니코메리아근교의 교회에 갑자기 군대가 난입하여, 성경과 교회를 불태우고, 기독교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시작으로 박해가 시작되어, 성직자들은 잔인하게 고문당하다 죽고, 신자들은 노예가 된다.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흉악범을 위한 감옥이 기독교인들로 가득찼고, 기독교인들은 온갖 잔인하게 박해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박해자의 종말

311년에 갈레리우스는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강해지는 것 같고, 자신은 몹쓸 병에 걸리자, 죄를 뉘우치고, 박해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죽는다. 뒤를 이은 막시미안은 6개월정도 박해를 완화하다가 다시 박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막시미안도 결국 정신이 나가고, 병에 걸려 기독교인을 용서하라는 칙령을 쓰고 죽으며, 페스트가 퍼져 로마의 많은 귀족들이 죽는다

 

 

콘스탄틴과 밀라노 칙령

유일하게 기독교에 관대했던 콘스탄틴 서제국 총독의 아들 콘스탄틴은 황제가 된 후, 역시 황제라고 선포한 막시미안의 아들 막센티우스와 전쟁을 하게 된다. 이 때, 콘스탄틴은 십자가를 그려놓은 깃발을 들고, 전쟁에 나가서 승리한다. 그리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의 기독교신앙의 자유를 회복한다.

박해사를 통해 고난끝에 영광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인내하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9. 313년 공인 이후의 기독교

 

공인전, 후의 신자들

이번 강의 내용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기독교의 의식과 교리, 정치에 있어서의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

공인 전의 기독교는 금지된 종교로서 신자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알곡 신자들이었다. 그러나, 공인된 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신자가 되고, 이후 기독교엔 큰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국가와 교회간의 관계, 교회행정, 예배등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교회정치

초대교회사는 313년을 전후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313-590년은 고대 교회사의 후반기이다. 313년 이전에 기도교인은 로마전역에 퍼져 있었는데, 지역중심으로 대도시에 감독(주교)들이 있었고, 서로 존중했다. 공통적인 법이 없었기 대문에, 교회일은 그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고, 서로간에 별로 없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325년 니케아에 전체 성직자를 모으고 공의회를 개최하여 삼위일체 교리등 교리를 통일하게 되고,

 

 

성직제도

하위 성직자-예배를 돕는 자로 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자이다

상위 성직자-부제(사제의 보조자), 장로(사제)

하위 성직자는 상위 성직자로 단계적으로 올라가는데, 30살에 부제, 35살에 장로, 45세에 감독이 될 수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큰도시의 감독은 주교가 되고, 그 큰 도시를 관할하는 총주교가 4명 있었다

 

 

교황의 출현

로마의 총주교는 자신을 폽(아버지-교황)이라 불렀는데, 중세이후, 회교권에 점령되고, 로마 감독만 남아 총괄하면서 이 폽의 의미가 교황으로 변한다.

교회는 점차적으로 세속사회와 같은 피라미드적 계급구조를 띠게 된다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

313년 이전의 교회문제는 교회 스스로 해결해 왔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정신적 근간으로 대두되면서 성직자와 교회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 이에 , 많은 사람들이 성직자가 되고 싶어하며, 교회는 점차 부자가 되어간다.-중세에는 유럽땅의 절반이 교회땅이 됨.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가 시작된다.

 

 

교회의 세속화

감독은 신자들간의 송사를 교회에서 하고, 세속법정에서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 점차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의식이 발달하고, 외형적 신자가 늘어난다. 교회가 세속에서 큰 힘을 가진다. 고난은 사라지고 영광만 남는다(교회의 세속화)

 

 

국교화와 주일 선포

381년에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다. 교회는 더 큰 힘을 가지고, 비싸고 호화로운 교회건물을 세운다. 그러나, 진실된 예배는 점차 사라지고, 웅장한 건물속에 아름답고 형식적 예배와 절기만 발달한다. 안식일이 주일로 선포되는데, 그 이전부터 계속 주일로 지킨 것을 공인하여 선포한 것이지 이 때부터 주일날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다-안식교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예배의 변화

주일예배가 예배와 성찬으로 이뤄지다가 후에 두가지가 합쳐져 미사가 된다.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듣는 것인데, 이것이 미사로 변하면서 의식이 강조된다. 미사는 예배가운데, 그리스도의 삶을 재생해서 참여하는 것이다. 이 재생이 의식으로 연결되어 성찬, 세례, 견진, 종무등 의식이 발달하고, 다양해진다. 믿음보다 의식이 중요해지고, 일반 신자들은 말씀에 무지해져 점차, 의식과 미신이 성행한다. 교회는 중세

 

유물과 성자 숭배

성자숭배, 마리아 숭배가 특히 심해지면서, 성자에 대한 중재기도가 심해지며, 유물이 강조되어 미신이 성행한다. 복음적인 신앙이 점차 혼탁해져 미신과 의식만 남고 세속화된 교회는 점차 중세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교회가 세상적으로 잘 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지키면서 세상것을 받아들이도록 주의해야 하겠다

 

 

 

 

 

10. 삼위일체논쟁

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논쟁

초기 교회의 삼위일체 논쟁이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정리됨

 

 

시발점

그리스도에 관한 갖가지 질문이 야기되면서 삼위일체논쟁이 시발됨

즉,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관한 것들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들

이론적 배경

 

그 당시의 주된 사상기류는

헬라철학으로

세계를 2원적 구조-물질과 이성(이데아세계->영적세계),선과 악 등으로 파악하였는데 이것이 신학에 도입됨 또한 헬라문화의 다신교적인 이해가 신학에 들어옴

 

 

저스틴(165년경 순교)

창조전에 예수없고 창조와 동시에 생성주장 신->로고스(예수)->세상창조 따라서 로고스는 피조물에 불과, 다만 로고스는 세상을 창조한 자로 하나님보다 열등한 신으로 이해

 

 

유일신 하나님 강조경향

양자론(데오도토스-195년경)

예수는 동정녀마리아에게서 신비하게 창조된 자로 인간에 불과하나 하나님이 의로운 사람,예수를 십자가사건후 양자로 택함

 

 

양태론(모델리즘-사델리우스)

하나님은 한분으로서 창조시(성부)->십자가사건 (성자예수)->부활승천후(성령)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

 

 

아리우스의 견해

헬라사상과 양태론을 바탕으로 하나님->예수창조->천지창조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 아님

 

 

발단

여러 이해난립하자 콘스탄틴이 325년에 동,서방교회의 감독 318명을 니케아에 소집하여 회의토록 함

 

 

전개

정통파,중도파(친아리우스적) 아리우스파로 대립하였으나 니케아신조,즉 삼위일체교리를채택(325년)-

 

참 하나님의 참하나님 창조되지 않고 나신 아버지와 동질이시며 그로부터 모든 만물이 만들어진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니케아신조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되며 완전한 하나님으로 고백

 

 

콘스탄티노플회의(381년)

니케아신조 채택후에도 5,60년간 분쟁지속되나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테오도시우스황제의 지지가운데 아타나시우스를 중심으로 니케아신조를 확고히 함

이로서 정통 삼위일체교리가 확립

 

 

 

11. 수도원 운동

수도원 제도

로마의 국교화이후 점차 교회가 세속화되고, 기강이 흔들리자, 사람들은 교회를 넘어서 무언가 자신들의 신앙을 채워줄 곳을 찾게 된다. 수도원은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공동체를 이루어 제도화되고, 경직되고, 세속화된 교회에 활력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수도원 신학

수도원운동은 교회에 활력소도 되었으나, 신학에 있어서 몇가지 문제점을 야기했는데, 물질적 육체적인 것이 악하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믿음보다는 고행같은 행위가 신자들에게 강조된 점이다. 또한 수도사들은 세상을 도피하지만, 주님은 세상에 남아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다는 점도 다르다. 수도사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굉장히 인간적 노력을 많이하게 된다.

 

 

수도원의 기원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가 핵심이라 오해하는데, 계시의 완성은 부활, 승천후 성령이 오셔서 되었으므로, 성경전체가 중요하다. 믿음의 법으로 볼 때, 복음서의 가르침과 주님의 삶을 내것으로 될 수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산상수훈을 따르려면 안 된다. 안토니우스는 산상수훈에 감동을 받아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고, 산속에서 고행을 하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다 죽는다. 이에 감명을 받은 많은 사람이 그 뒤를 따

 

파코미우스

안토니우스가 개인적인 은둔(수도)을 한 것에 비해 군인출신 수도사 파코미우스는 공동체를 조직하여 수도사를 훈련하게 된다. 이에 점차 수도원이 늘어나는데, 파코미우스가 죽을 때쯤엔 3000여명 정도가 뒤를 따랐으며, 수녀원도 있었다. 각 수도원은 자급자족을 위한 모든 시설이 있었으며, 노동과 고행, 예배를 하였다. 수도사는 3년의 견습후에 되었고, 절대적인 복종, 순결, 청빈이 파코미우스 수도원의 가르침이었다.

 

 

수도원의 성장

4C말부터 5C에 이르면서 수도원운동이 점차 퍼져 나가 발전하게 된다. 수도사는 독거수도사, 서로 돕고 자유로운 수도사, 고도로 훈련된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있었다. 수도의 방법은 주로 고행이었다. 459년에 죽은 시므온(기둥성자)은 대표적 인물로 기둥에 올라가 36년을 살았다. 그러나, 이런식의 육체적 학대로 인해 교회에서는 이를 정죄하였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이것이 지속되어 고행과 화상은 동방기독교의 특징이 된다

 

 

바실

바실은 파코미우스에 감명을 받아 자신의 고향에서도 공동체를 만든다. 그러나, 그는 수도사가 되어서도 세상과의 완전한 분리가 어려움을 깨닫고, 수도사들이 다른 이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도록 수도원규칙을 만든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수도사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 수도사는 세상과의 격리, 금욕에 힘쓴다. 한편 마틴, 제롬, 어거스틴 같은 유명한 기독교 거인들이 수도

 

 

베네딕트

동방의 수도원을 서방에 심고, 개혁한 사람이 베네딕트이다. 그는 고행은 육신을 상하게 해서 안되며, 훈련을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며, 수도사의 제일 임무를 예배에 둔다. 그리고, 수도의 궁극적 목표를 하나님의 사랑안에 자라나는 것으로 보았다. 신앙생활을 고행으로 삼는 등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운동은 교회의 타락과 세속을 막고 활력소를 주는 그 시대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12. 기독논쟁

1. 시대배경

 

 

2. 기독논쟁

 

 

3. 그리스도의 인성문제

 

삼위일체 논쟁

- 예수는 완전히 하나님이다.

- 그러면 예수는 사람인가?

 

313년 기독교 공인

325년 삼위일체교리(니케아회의)

451년 칼케돈

 

 

1) 로마

1) 로마

 

의식구조

- 라틴어 사용

-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함

 

로마의 강점

- 매우 합리적

- 도덕적으로 잘 훈련됨

- 실제적인 판단기준

 

로마의 사고

- 단순함

- 뛰어난 신학자가 없음

 

로마의 구원

- 준법정신으로 이해

- 죄 문제 해결

 

 

2) 헬라

 

헬라의 사고

- 사색적, 철학적인 사고

 

헬라의 구원

- '선'의 결핍으로 이해

- 썩어짐에서의 해방되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 하나님의 신성에 관심이 많음

- 이단이 많이 나옴

 

헬라의 본거지

- 알렉산드리아

- 인성을 부정

 

 

3) 시리아

 

아람어 사용

 

강조점 : 율법

- 예수의 인성을 강조

- 대표 : 안디옥 교회

 

 

1) 아폴리 나리우스

 

라오디게아 교회 감독

 

기독논쟁의 시초

- 예수의 인성과 신성의 동시성 부정

- 로고스 : 예수의 신성을 강조

- 그리스도의 인성이 사라짐

 

안디옥 측

- 그리스도의 성품을 분리

 

알렉산드리아 측

- 그리스도의 성품을 혼합

 

 

2) 시릴과 네스트리우스

 

시릴

-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 정치적 수완가

-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시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시다.'

 

네스트리우스

- 안디옥의 감독

- 수도사

- 시릴의 주장을 반박

-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두 사람에 의해 교회가 분열

 

 

3) 유티케스, 레오

 

유티케스

- 시릴파

-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 네스트리우스파를 박해

 

칼케돈 신전

- 레오 : 로마의 감독

- 그리스도의 성품의 분리, 혼합을 부정

 

 

 

13 .어거스틴

 

어거스틴

354 ~ 430년

- 고대 전체의 물줄기를 하나로 묶어줌

- 어머님만 신실한 신자

 

16세

- 공부를 중단하고 타락함

- 어려서부터 육적인 사람

 

19세

- 시세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음

- 진리에 대한 야심을 얻게 됨

- '성경'을 읽게 됨

- 구약에서 깊이 빠져들지 못함

- 9~10년간 마니교에 빠지게 됨

 

 

 

마니교

모든 진리에 대해 과학적 해명을 제시

음과 양이 싸움

 

어거스틴의 의구심

- 책임의 모호성

- 마니교의 교주도 해결하지 못함

- 마니교를 떠나 로마로 감

 

 

 

신플라톤주의

암부르시우스

- 밀라노 교회의 감독

- 유명한 설교자

- 수사학을 공부한 어거스틴의 관심이 쏠림

- 설교의 내용이 아닌 말하는 방법에 관심을 갖음

- 자연스럽게 신플라톤주의에 심취

 

신플라톤주의

- 일자가 로고스를 만듦

- 로고스가 프시케(영혼)를 만듦

- 이를 바탕으로 성경을 읽음

 

 

 

회개

29세

- 16세의 처녀와 약혼

- 2년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여자와 관계

- 성적인 문제로 인해 갈등

- '톨렐레게 톨렐레게': 로마서 13:13,14

-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

- 결혼을 포기하고 평생을 성직자의 길을 걸어감

 

 

 

어거스틴의 영향

1. 신학하는 방법

-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고 성경을 읽음

-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고 받아들임

- '믿으면 안다':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것

- 진리는 낮은 문

 

2. 구원의 방법

- 삶을 통해 '은혜'를 경험

- 펠라기우스 논쟁: 구원에 대한 자기결정

- 예수를 믿음을 통한 은혜의 교리를 세움

 

 

 

14. 로마제국의 멸망과 기독교

로마제국의 멸망

- 고대교회는 로마와 함께 끝을 맺음

- 서구사회에 대단한 충격을 줌

- 당시 로마는 하나님이 지키신다고 여겨지고 있었음

- 410년에 한 번 무너졌다가 3일 정도에 복구됨

- 공식적으로 476년에 멸망

 

 

 

역사적 배경

게르만족

- 150년경 북부유럽을 차지

- 350년경 로마와 국경을 마주함

- 라인강 북쪽의 게르만족의 대이동

 

대이동의 배경

- 당나라에 몰린 흉노족(말갈족)의 이동

- 우랄알타이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쏟아짐

- 흉노족에 몰린 게르만이 서쪽으로 이동

 

 

 

고트족

고트족

- 튜톤족, 게르만족과 같은 의미

- 서고트족과 동로마(콘스탄티노플)의 형태로 바뀜

- 서고트족을 비롯, 동고트족과 반달족에 의해 유럽이 유린됨

- 전쟁->전영병->기근의 반복으로 로마는 무너짐

 

 

 

로마의 약화

1. 문명화

- 인구의 감소를 초래

- 부족한 군대에 용병을 들임

- 군대의 위상이 떨어짐

 

2. 중앙집권정치

- 황제에 사할이 걸림

- 부모가 일찍 죽어 아이들이 정치하는 형국

 

3. 사회보장제도

- 무위도식하는 상황이 됨

 

 

-> 도덕의 타락과 무질서

 

 

당시 기독교의 위치

로마사회의 타락에 영향을 주지 못함

- 기독교가 진정한 기독교가 아니었음

- 박해받던 시절의 열정과 희망이 사라짐

 

교훈

- 나라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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