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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判斷)(비판) 에 관한 예화 모음
1.동등한 입장에서 영국에 있는 대형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어떤 젊은 신사가 이 박물관에 들어와 그곳에 진열된 작품 앞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그 작품들을 한참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노트를 꺼내 이것 저것 열심히 적으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습니다. 처음부터 이 청년의 수상한 거동을 지켜보던 수위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그 젊은 신사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같은 작품들 앞에서 이것 저것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설명 태도는 너무나 진지했고 어린이들은 아주 잘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관림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그 신사에게 수위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어째서 어제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작품을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선생은 “바로 이 아이들의 작은 키로 이들이 볼 수 있는 눈 높이에서 작품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죠.” 자기의 입장에 서서 높은 눈을 가지고 작품을 보고 설명한다면 그 훌륭란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우리라는 교사의 사려 깊은 자세는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2.판단의 기준 “그의 신을 신고 걷기 전에는 그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인도 속담) (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3.비판의 피해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Gibson 박사와 Fink박사는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그 도시에서 잘 알려진 큰 사업가이며 유명인사 한 사람이 이 병원을 찾아와서 핑크 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주 안절부절하고 긴장중에 있습니다. 푹 쉬어서 마음에 안정을 찾으려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습니다. 나의 건강상태는 양호합니다. 또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편안히 쉴 수 있는지 좀 알려주시고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핑크 박사는 그에게 말했다. “근래에 그런 문제를 다룬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이미 한 두 권의 책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그러나 그런 책들이 권하는 대로 일일이 실천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이 사회에 도대체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아니 핑크 박사님께서는 큰 정신과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면서도 뭐 좀, 스위치를 누르면 마술사가 척 해내듯이 나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까?” 그 사람이 돌아간 후에 그의 말은 핑크 박사에게 큰 도전거리를 주었고 또 자기들이 어떤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브손 박사와 함께 직원들을 불렀다. 장장 두시간의 회의 끝에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2년 동안의 모든 기록을 조사해서 그 사람처럼 긴장과 불안에 싸여 애를 쓰는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적인 요소나 특징이 혹시 없는가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작업에 착수했고, 오랜 작업 끝에 드디어 한가지 빛을 발견하였다. 그런 증상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찾아내려는 태도, 즉 남을 비판하는 정신이나 태도였다. 무슨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남에게서 찾아내어 책망하고 비판하려는 자세, 남의 잘못을 언제나 말하고 생각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이 한가지 사실이 그런 증상의 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다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직원들은 스스로 놀라서 한 두 시간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그 발견을 적용하여 즉시 시험에 들어갔다. 불안과 초조, 긴장 등의 문제를 가진 환자들 100명을 선정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 조사와 연구의 결과를 말해주고 시정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환자들은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다. 일정의 기간이 지난 후, 그 증상을 앓던 환자들을 조사해 보니 100명중 70명의 상태가 놀랍도록 좋아졌고 나며지 사람들 가운데 20명은 의사의 지시대로 행하지 않았다고 고백하였다. 남의 결점이나 잘못에 관심을 두고 생각하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자세는 심적인 불안, 고통과 심지어 정신병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비판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도 남에게 비판을 받으리라”하신 주님의 말씀은 의학적으로 규명된 진리이다.
4.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판단하겠는가? 우리는 성경 중에서 어느 것은 빼고 어느 것은 고르고 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이것은 믿겠는데 저것은 못믿겠다”고 할 처지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판단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우리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은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라고 아무리 말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하는 성경이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그 죄를 심판하신다고도 말한다. 우리는 결코 이 사실을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다 받아 들이든지 둘다를 거절하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 저기서 나에게 맞는 모양만을 골라서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취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들은 화려하고 힘있는 메시야를 원했고 자기들에게 다가온 마음에 들지 않는 메시야를 죽이면 그 소원이 이루질 것이라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거나 변경할 수 없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5. 어리석은 파리와 불나비 파리와 불나비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 중에 이솝 우화가 있습니다. 이 이솝 우화 가운데에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 맛이 있는 꿀을 발견했습니다. 꿀단지의 주변을 돌면서 조심조심 그 꿀 맛을 맛보다가 결국은 조심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깊이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그 날개가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 꿀 속에 더 깊이 파묻혀 갑니다. 그때 불나비가 한마리 날아와서 ?야 이 녀석아. 음식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으면 안되는 거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결국 죽지 않니!? 그렇게 비난을 하는 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 몸이 점점 하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빙빙 돕니다. 그 색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까이 나갑니다. 더 잘 보려고 가까이 가다가 결국은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야. 아직도 죽지 않은 채 있던 파리가,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한번에 타 죽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탐욕을 좇아 사는 인생, 쾌락을 좇아 사는 인생이 어떻게 스스로 멸망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우화입니다. 성경도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인생에게 이러한 무서운 결과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
7. 비방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셔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심방가면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그 집에 대해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라고 권고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심방 가서 눈에 띠는 것 중에 마음이 들기만 하면 칭찬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집에 갔는데 참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것도 칭찬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그 사모님은 수를 참 잘 놓았다고 한참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선물이 왔는데 그 책상보를 잘 개어서 다리고 포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목사님 사모님이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겠읍니까? 그것까지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말이 돌기를 목사님 사모가 얼마나 탐심이 많은지 그 가난한 집의 책상보를 빼앗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거동을 못하고 말을 잘 못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야 아무 생각 없이 쉽게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사건의 내용을 모르는 채 얼마든지 남의 가슴을 찢어 놓을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아픈 부분을 모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형편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서 이야기하는 것, 특별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간의 대화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방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비방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8. 외모 언젠가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함부르크의 어느 호텔에서 새로 채용된 한 접객주임이 한창 열을 올려 열심히 청소를 시키며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원 한가운데서 손님들을 위해 마련히 놓은 깨끗한 고급 벤치에 인상도 그리 안 좋고 옷차림도 지저분한 한 늙은 남자가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보았다. 그 접객주임은 이런 훌륭한 고급 호텔의 분위기가 행여나 저런 누추한 사람의 모습 때문에 깨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슬며시 그 사람 뒤로 돌아가서 ?여보십시오. 남의 눈에 뜨이지 않게 즉시 이곳을 떠나 주십시오?라고 씌여진 쪽지를 넘겨주고는 그를 밖으로 내쫓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그 접객주임에게 다음과 같은 쪽지가 전달되었다. ?여보시오. 미안하지만 남의 귀에 소문나지 않게 오늘 즉시 이 호텔에서 나가 주십시오. 남루한 옷차림의 주인공 백? 깜짝 놀란 이 접객주임이 그 남루한 옷차림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고 알아보았읍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 호텔의 경영주 스티너스 선생이었다. 그는 큰 회사를 12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호텔은 그냥 부업 삼아 경영하고 있던 굴지의 대재벌이었다. 사람을 외모로만 보고 판단했던 이 접객주임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 호텔에서 해고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사람을 외모로만 보기 때문에 사람은 많은 실수와 죄를 짓게 된다. 우리도 이 접객주임처럼..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신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하나님을 믿는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중심보다는 사람의 외모에 더 관심을 기울이느 사람들이 아닌가?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여 차별 대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9. 나 때문에 미국 어떤 마을의 제빵업자가 가까운 농장에서 버터를 사오곤 했는데 버터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이었다. 하루는 그 사온 버터를 저울에 올려 놓고 달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농장의 버터 무게가 많이 줄어 있었다. 화가 치민 제빵업자는 고발하였다. 그 버터공장 주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사가 ?집에서 어떤 저울을 사용하고 있소.?라고 하자 ?우리는 저울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버터의 무게를 안다는 거요.? ?네. 그것은 간단하지요. 1파운드짜리 빵의 무게와 같게 만듭니다.? ?그럼 그 1파운드짜리 빵은 어디에서 사오는 거요.?라고 하자 그 낙농공장 주인은 고소인을 가리키며 ?우리는 늘 저 제빵업자한테서 사다 먹습니다.? 결국 버터의 양이 줄어든 이유는 제빵업자의 빵이 줄었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세상이 잘못됨이 나 때문임이 아닌지, 교회에 말썽이 생기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교회의 어떤 부서가 잘 안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잘못은 내가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는지, 가정에 화평이 없는 것이 나 때문이 아닌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나부터 바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0. 성급한 판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가정의 짐, 직장에서의 짐, 혹은 육체적인 짐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좀더 자상하고 덜 비판적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나는 내가 목회하던 한 교회에서 겪었던 부끄러운 경험을 기억합니다. 주일학교 교사 중의 한 사람이 자기 반은 열심히 가르쳤지만, 교회의 봉사에는 충실치 못했습니다. 나는 그에 대하여 담당자에게 심한 몇 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당신은 이 교회에 얼마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집을 방문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의 집을 방문해 보십시오. 그 후에 판단하십시오.? 나는 방문을 했고 내 마음은 깨졌습니다. 그 사람 집에는 병든 자식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엾은 처지였습니다. 지금은 그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으로 존경합니다. 그를 사랑할 수 있었고 인정하며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겪는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 이러한 격언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다? 이것이 전적으로 사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성급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얼마나 빨리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11.교리와 윤리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서 많은 시간을 지냈던 한 미국인 의사가 쓴 [코리아 패턴](Korea Pattern)이란 책을 읽어 보았다. 복잡하고 미묘한 우리나라의 여러 패턴을 책 한 권에 집약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그런대로 잘 표현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한국의 기독교인에 대해서 평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이 성 Sex 대해 엄격한 도덕이 없고, 술․담배를 허용하는 데 대해 놀란다. 한편 미국 신자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기업윤리나 공중 도덕이 부족한데 대해 똑같이 놀란다.? ?기독교인들만의 모임에서도, 기독교의 교리와 기독교의 윤리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실제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서 기독교적이기보다는 유교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 일점의 오류도 없는 완전한 평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아니 나의 아픈 부분을 찔러 주는 것 같았다. 사랑보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앞서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체면이 앞서고,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내 교회가 앞서고.. 교리에 집착하는 만큼, 윤리에도 철두철미하게 '크리스챤'이 되어야 겠다.
12. 나도 이상은 없는지 폴란드의 피아노 연주가이며 작곡가로 정치가로 유명한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보스톤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는데 열 두, 세 살 되어 보이는 구두닦이 소년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꾸벅하고는 구두를 닦게 해 달라고 했다. 누추한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솔을 들고 있는 소년의 얼굴에는 구두약이 묻어 더러워져 있었지만 귀여웠다. 그래서 파데레프스키는 ?내 구두는 지금 당장 닦지 않아도 좋은데 네 얼굴은 좀 닦아야 하겠다. 네가 얼굴을 닦고 오면 이 은전을 주겠노라“고 하고는. 주머니에서 은전을 꺼내 보였다. 그랬더니 이 소년은?네.?하고 대답하고는, 즉시 세면소로 가서 얼굴을 깨끗이 닦고 돌아왔다. 파데레프스키는 웃으면서 소년을 한 번 안아 주고서는 약속대로 은전을 손에 쥐어 주었다. 소년은 돈을 받았다가 잠시 후 다시 돌려 주면서 하는 말이?이번에는 제가 이 은전을 드릴 터이니 아저씨. 머리 좀 깎고 오세요.?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파데레프스키의 모자 속에는 긴 머리털이 단정치 못하게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에 긴 머리털을 예술가의 자랑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 보기에는 흉하게 여겨지고 있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어린 아이에게 망신을 당한 것이다. 사람들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은 쉽게 보면서도 자신의 결점은 보지 못하는 것이 결점이다.
13. 사랑의 성질 사랑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상대를 고르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환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호의와 선행이 최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최하의 보상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상이란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주시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보상이 그다지 큰 것은 아닙니다. 주머니를 보고 사랑하는 것은 한 1년쯤 갑니다. 얼굴을 보고 사랑하는 것은 한 2년쯤 갑니다. 그런 정도의 만족이라면 미장원에 가거나 신발을 한 켤레 사도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보고 사랑해야 오래 갑니다. 그러니 당신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곱게 쓰십시오. 독이 깨지고 물이 쏟아졌을 때 비평하고 남의 잘못을 꼬집고 탓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분석은 정확하고 비판력이 있음을 과시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누가 그만한 머리가 없어서 비판하지 않는 줄 압니까. 비판은 쉽지만 꿰매기가 어렵습니다.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수습이 힘든 것입니다.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책임지는 사람, 비평하는 편보다는 꿰매는 편에 서십시오. 사랑을 무슨 열매따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나무를 가꾸는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나무도 아이도 사랑도 가꾸자면 땀방울이 어느만큼 들어가야 하고 시간도 지긋이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십자가에 매달리면서?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14. 자신의 들보 두 수도자가 어떤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그런데 개울가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건네주기를 바라는 한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한 수도자는 여인을 못본채하고 개울을 건너가 버렸고 다른 수도자는 여인에게 등을 들이밀며 말했다. “업히지요 건네 드리겠습니다.”하고는 여인을 업고 시내 저쪽에 내려 주었다. 두 소도자는 길을 제촉했는데 좀전에 여인을 업지 않았던 수도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수도하는 몸으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다니 자네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인은 업었던 수도자는 묵묵부답이었다.그러자 다른 수도자는 더욱 화가나서 동료 수도사를 나무랐다. “자네는 단순히 그 여인이 개울을 거널 수 있게 도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여인을 가까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게울임을 잊었는가?” 그 수도자는 계속해서 질책을 퍼부었다. 여인을 업었던 수도자는 계속하여 질책을 하고 있는 다른 수도자를 향하여 비로소 입을 열었다. “ 이 사람아 나는 벌써 두어시간 전에 그 여인을 개울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업고있군 그래” 그 말을 들을 동료 수도자는 자신의 생각이 얕았음을 알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성경은 마 7:5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15. 사람 됨됨이를 판단 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은 불행 자체는 두려워 하면서 불행의 원인을 두려워 할 줄 모른다. 불행은 죄로 말미암아 온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죄를지으면 당연히 불행이 따라 오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죄를 짓는 데까지는 쉽게하고 결과에 대해서만 두려워 한다. 모름직 사람은 죄 자체를 두려워 하여 삼갈 것이다. 바로 거기서 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라면 당연한 일이다. 알고 보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간단하다.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 하는지, 그것을 보면 된다. 죄를 지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냐, 죄를 지어놓고 두려워 하는 사람이냐, 이것을 그 사람의 사람됨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죄 자체를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죄로 빚어진 결과를 두려워한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바보일 수 밖에....., 불행을 두려워 하지 말고 불행의 원인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성도이다.
16. 올바른 판단 “당신의 몸 중에서 가장 높은 부분은 어디요?” 하고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머리 꼭대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3분의 1을 잠자는 데 써 버리는 우리들이니, 누워 있는 사람에게 그 상태에서 가장 높은 부분이 어디냐고 물어 본다면, 아마 대답은 코나 배꼽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판단의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 주는 예이다. 이처럼,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사살이나 진리라고 믿었던 것까지도, 기준이 바꿔지면, 사실이 아니요,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틀린 답이 맞고, 맞은 답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판단할 때에 그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며, 다른 기준에서는 어떠한가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누구나 모두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행동해야 하는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아주 적다. 모든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생각하도록 하고 행동하도록 규제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기며 찾아와 판가름해 달라는 사람들에게 “네가 옳다.”, 그리고 “너도 옳다.”라고 했다는 고사는, 융통성이 없이 한 가지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흑백 논리를 벗어나게 하는 지혜의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 ‘나’만이 바르게 산다는 생각, ‘나’의 판단만이 제일이라는 주장을 다시 한 번 남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수 있는 아량 있는 친구, 너그러운 이웃이 있는 여유 있는 사회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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