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기독 역사 속, 정통과 비정통의 6가지 대결 구도 중심

하나님아들 2020. 3. 13. 18:01

기독 역사 속, 정통과 비정통의 6가지 대결 구도 중심

 


 

 

 


1. 개혁파 신앙의 정체성 및 우수성

 

-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올해는 종교개혁 5대 강령(SOLA)을 다룬다. 우리는 개혁파 장로교 신앙의 정체성과 근본을 잘 깨닫고, 왜 이런 신앙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교회 역사 속에 일으켜 주신 이 위대한 개혁과 부흥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잊어버리는 순간, 각종 이단과 변질된 혼합적 신앙이 우리에게 파고들어 참된 신앙을 위협하고 파괴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도 성경, 믿음, 은혜, 그리스도, 영광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개혁파 신앙의 강령인 only와 달리, 무언가를 여기에 덧붙인다.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나 철학을 비슷하게 섞어서 얘기한다면, 그것은 혼합적 사상일 뿐 참된 신앙이 될 수 없다. 이런 혼합적 사상들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뜻과 구원을 향한 길을 잃고 혼란케 만드는 독이다.


- 참고로 우리 주변에 다른 교파들이 이단은 아니며, 우리도 이 점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부족한 기독교, 수준이 떨어지는 기독교라고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성경무오와 삼위일체, 이신칭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정론, 제한속죄 등과 같은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들이 다른 많은 교파들에서 빠져 있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성경의 많은 교리와 주제들 중 몇 가지만 중점적으로 다뤄지거나, 편중된 틀에서 제시된다. 우리는 개혁파 장로교 신앙과 교회가 가장 건전하고 우수하다고 말한다. 7대 교리를 중심으로 신앙의 질서와 내용을 가장 성경적이고 훌륭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독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우수함과 부족함의 차이는 기독교(교회) 역사 속에 분명히 계속하여 존재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속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죽고 사는 문제인 가장 중요한 신앙의 문제에 있어, 빈약한 곳에 속하여 자신을 맡길 필요는 없다. 더 우수한 곳에 속해야 한다.


- 이번 주는 지난 주의 '오직 성경'에 이어, '오직 믿음' '오직 은혜'에 대한 설교이다. 

오늘은 기독교 역사 속에 있었던 6가지 큰 논쟁을 통해,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왜 개혁파 장로교 신앙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가장 우수하고 건전하다고 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2. 기독교 역사 속 6가지 논쟁

 

1)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

 

- 400년대에 있었던, 초대교회의 모든 분란을 요약하는 논쟁이다. 원죄를 부정하며 인간의 행위와 의지로 최선을 다한다면 구원이 가능하다펠라기우스의 주장이 당대를 휩쓸고 있었다. 어거스틴은 이에 대항하여 인간의 전적부패가 전제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신앙을 수호하였다. 그리고 서로 싸우지 말고 이 둘을 반반씩 혼합한 반(semi)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있었다.

-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전적부패와 오직 은혜만이 구원한다는 어거스틴의 주장을 성경을 가지고 나름대로 논박하면서, 그렇다면 인간은 영혼이나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나 바보라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양심이나 도덕적 책임감이 파괴되고 게을러져서 방종에 빠진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당시 기독교인 가운데 세상 사람들로부터 몰상식하고 독선적인 자들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구원파적인 오해와 방종의 사례들이 많았다. 요즘 윤리 등과 관련해 사회적 지탄을 받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는 이런 때에 펠라기우스나 반펠라기우스주의자들과 같은 자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은혜만 강조하면 도덕적 타락을 가져오게 되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또 구원은 취소될 수도 있기에 선행을 끝까지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은혜와 구원은 점진적이고 유보적으로 나중에 확정된다.

- 요즘 우리 시대에도 은혜 반, 행위 반을 절묘하게 섞는 혼합적 구원론이 횡횡하고 있다. 바울을 옛날 관점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새 관점 학파와, 장로교 안에서의 노만 셰퍼드(페더럴 비전) 등이 대표적이다. 오직 은혜, 단회적이고 확정적인 칭의 같은 전통적인 가르침은 성도들의 성화와 최선의 삶을 다 무너뜨리기에, 칭의에 있어서 은혜와 선행을 섞는 혼합적 관점이 바른 구원론이라 내세우고 있다. \

초대교회는 이런 어거스틴, 펠라기우스, 반펠라기우스주의의 3가지 관점 중에, 어거스틴의 '오직 은혜'를 공교회적으로 정립하였다.

 

2) 종교개혁자들과 로마카톨릭의 논쟁

 

- 1500년대 바로 이 역사적인 논쟁에서 종교개혁 5대 강령(SOLA)과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로마 카톨릭 신앙은 대표적인 반펠라기우스주의(혼합적 구원론)이다. 이는 부족함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참된 구원의 신앙이 아니다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이 논쟁을 촉발시킨 루터는 어거스틴의 저작을 통해 오직 은혜와 이신칭의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출발한 종교개혁 신앙은 거대했던 로마 카톨릭의 혼합적 구원론을 무너뜨렸다. 전적 부패한 존재인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칭의에는 어떠한 인간의 공로적 행위를 보태거나 섞을 수 없다

(개인적 생각 : 잘못된 반펠라기우스 신학의 기반 위에서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나 면죄부, 고행, 미사, 보속, 십자군 전쟁 등이 칭의에 덧붙여지는 선행의 요소로 행하여졌고, 교인들의 영혼과 삶을 망가뜨리고 벼랑 끝에 서도록 했다. 종교심에 따른 진지한 알미니안 신앙의 추구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3) 도르트회의 논쟁(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논쟁)

 

- 로마 카톨릭과 싸우며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약 100년 후(16181619), 알미니안주의자들의 문제 제기로 인해 도로트 총회가 열리게 되었고,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 논쟁이 폭발하게 되었다. 이 역시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싸움이었다. 또다시 알미니안들에 의해 은혜 반, 행위 반(행위로서의 믿음 포함)의 유보적 칭의 및 저항 가능한 은혜에 대한 주장이 대두되었다. 무조건적 선택 및 불가항력적 은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잘 유지하지 못하면 예정과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유보적, 점진적, 예지적 칭의이다. 알미니안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누가 구원을 잘 지켜가는지 지켜보시다가 예정과 구원을 확정하신다는 예지예정을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예정예지와 불변예정, 무조건적인 선택 및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가르치며, 취소될 수 없는 구원, 즉 단회적이고 확정적인 칭의의 은혜와 견인을 가르친다.

- 전에도 말했듯이, 복음이 희미해지고 교회와 성도들의 도덕적 삶이 무너질 때 알미니안의 혼합적 은혜론과 같은 사상이 흔히 창궐한다. 성화가 아닌 칭의에 선행을 첨가하는 이런 혼합적 공로주의는 기복신앙과 연결되기도 한다. 교리를 잘 가르침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선행의 자리에 잘못된 교회 건축이나 맹목적 교회 충성이 들어가고, 그것을 통해 복을 얻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지나쳐 구원까지 연결되는 알미니안 신앙의 한 형태이다. 1648년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배경도 이런 도르트 회의와 궤를 같이 한다. 바야흐로 교인의 90% 이상이 알미니안이 되었고 이를 바로잡고자 함이라는 총회 목적과 배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직 은혜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신앙고백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었다.

 

4) 신앙고백주의와 경건주의 논쟁

 

- 종교개혁, 도르트, 웨민 총회 등을 지나며 주요한 신앙고백서들이 완성되었고, 성경 강해설교와 교리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고백적 교회 및 개혁파 신앙이 세워졌다(1617C). 그런데 차츰 교리를 딱딱하게 여기고, 신앙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지나친 이성주의 및 교조주의의 폐단도 일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18C , 신앙고백 중심 신앙에 대한 반발로 알미니안의 요소를 가진 경건주의가 태동하였다. 신앙고백 및 교리 중심의 객관적 신앙에서, 주관적인 내적 신앙 감정과 뜨거움을 중시하는 풍토가 강해졌다. 먼저 신앙고백 중심의 객관적 신앙을 잘 배우고 나서 이후 주관적 결단과의 싸움인데, 내적 뜨거움이나 강한 신앙 감정이 점점 더 우선적인 기준으로 올라섰다. 강해와 교리에서 주어지는 명확함과 풍성함이 약해지고 사라지다 보니, 성경도 기준 없이 각자 마음대로 읽고 강해설교보다는 제목설교가 행하여졌으며, 원하는 종교적 뜨거움이나 체험, 현상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냉철한 주기도문의 기도는 차갑고 시편의 교리적 찬송은 따분하니, 찬양과 기도도 뜨거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형태로 변해갔다.

- 경건주의자로 독일의 모라비안(진젠도르프, 스패너)이 대표적이었으며, 영미 쪽으로는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을 절대 가르치지 말라고 하며 제거대상 1호로 지목했던 존 웨슬리가 있었다. 칼빈주의도 좋아하셨지만 그런 웨슬리의 여러 부분을 가져온 휫필드, 당대 알미니안과 최 일선에서 싸웠던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경건주의 신앙 풍토는 회중파에서 훨씬 강하였고, 이후 미국 장로교도 구파(신앙고백주의)와 신파(경건주의 신앙풍토)로 분열하게 되었다.

 

5)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논쟁

 

- 1800년대 중반부터 약 200여년간 자유주의 신학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전 논쟁보다 한층 더 나아가, 성경도 그리스도도 은혜도 부인하며, 정통이나 전통 같은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쉽게 말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믿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믿으라는 사조이다. 장로교 개혁파 신앙, 보수주의 신앙은 사도적 신앙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계속해서 함께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맘대로 믿거나 성경을 해석하지 않겠으며 만고불변한 진리와 교리대로 하나님을 믿겠다는 의미이다.


- 자유주의는 이런 보수주의를 독선적이며 교조적이라 비난하는데, 이런 자유주의에는 5가지 학파(5)가 존재한다. 

왜 기독교의 하나님만 신이라 하느냐며, 기독교도 수많은 역사 속의 종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종교사학파와 전승사학파가 있다. 또한 성경 권위를 직접 공격하여 성경은 틀린 것이 많으며 고대 근동 자료들의 짜집기에 불과하다는 양식 사학파 및 편집 사학파가 있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편집한 것이며, 마태와도 다른 것으로 같은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 마태복음도 마태의 얘기일 뿐이다. 이렇게 창세기와 계시록도 그러하고, 결국 구약과 신약이 다 내용이 다르다. 이는 결국 교리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다양한 성경의 내용들이 통일성 아래 일관된 한 교훈(), 즉 교리가 있고 이를 가장 중요시하는 우리와 대조된다. ('교리보다 삶이다', 이것은 자유주의의 유명한 모토였다 : 개인 기억) 

마지막으로 구속사 학파가 있다(칼 바르트 등). 성경을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구원(구속사) 중심으로, 인간의 행복 중심으로 읽자는 것이다. (예수, 복음, 구원 등을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가 아닌 건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그래서 자유주의권에서는 이들을 신정통주의라 불렀다), 성경관 등 7대 교리 모든 측면에서 ()자유주의이다 : 개인 기억) 오늘날까지도 성경을 예수님, 구속사, 언약 중심으로 읽는 성경 신학 등 이 영향이 지대하다. 그러다보니 7대 교리를 중심으로 한 정통적인 접근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오늘날 편파적이고 특정적인 교훈에 더 치우치고 교회 안에 십계명이 가르쳐지지 않는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도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에 반드시 서약하며 졸업 시 시험을 치르던 보수주의의 대표적 신학교였지만, 결국 이 자유주의의 흐름에 좌경화되어 교리와 웨민을 버리고 예정론, 제한속죄 등 정통 가르침을 버리게 되었다. 당시 프린스턴에서 유학한 김재준 박사를 중심으로 한국에는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가 세워졌고, 한국 장로교도 자유주의 계열의 기독교장로회(기장)와 보수주의 계열의 예수교장로회(예장)로 분열을 겪었다.

 

6) 한국 W.C.C 부산 총회 논쟁

 

- 2013 10 W.C.C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를 두고 한국 교회 내에 일대 논쟁이 있었고 참여 여부에 따른 재편이 있었다. W.C.C는 모든 교회가 일치단결해야 한다는 모토 아래, 로마 카톨릭, 정교회, 타종교까지 그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다(바아르 선언문). 개종전도까지 금지하는 명백한 종교다원주의로써, 주변인들이 아직 W.C.C에 가입되어 있는 교회 안에 있다면, 반드시 충고해주어야 할 문제이다. 적어도 최소한의 보수신앙을 지키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밴드, 필그림 요약 작성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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