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대한 예화 모음
▣ 깨달음
두 은둔자가 한 번도 다투지 않고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다퉈보세!”
그러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다툴 줄을 모르네.”
다시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내가 자네와 나 사이에 벽돌을 하나 놓고 ‘이건 내 거야!’라고 말하면
자네는 ‘아냐, 그건 내 거야!’라고 말하는 거야. 그럼 싸움이 시작될 걸세.”
그래서 둘 사이에 벽돌을 하나 놓았고,
첫 번째 사람이 “이건 내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이 “아냐, 그건 내 거야”라고 말한 뒤에
이내 마음이 편치 않아 “맞아, 그건 자네 거야. 어서 가져가게”라고 대답했다. 결국 두 사람은 도무지 싸울 수가 없게 되었다.
/사막 교부들, 《깨달음》 중에서
▣ 35세에 깨달은 것
"인생에서 제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35세를 넘어버린다는 겁니다. 처음에 나는 빠른 차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르셰를 샀죠. 그 다음엔 집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샀죠. 그런데 그 다음에 비행기가 한 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한 대 샀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깨달은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것을..."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출처 : 공지영《수도원 기행》 중에서
▣ 깨달음은 큰 복입니다.
길거리 호떡장수에서 1,200여 개 가맹점의 대표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죽 전문점 '본죽'의 CEO가 된 김철호씨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 경험담을 [정성]이라는 책으로 내 놓았습니다. 본죽을 시작하기 전 운영하던 회사를 부도처리로 은행에 넘기고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부도난 회사를 처리하고 남은 것은 승합차 한 대였다고 합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해 문간방에 쓰러져 잠이 들어는데 잠에서 깨어난 순간, 불현듯 어릴 적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답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입니다.
몇 십 년 동안 여자 혼자 몸으로 포목점을 하며 다섯 자녀를 기르신 어머니는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장에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
평범한 말이지만 그에게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장에 가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보게 되는 것처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생기니,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그 말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답니다. 그는 그 후 재기하여 오늘의 기업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복입니다. 깨달음은 힘입니다. 깨달음은 유익을 줍니다. 깨달음이 행동화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사업가의 깨달음은 회사를 살리게 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게 합니다.
이동현 교수는 그의 책 [깨달음이 있는 경영]에서 “백 가지 거창한 기법보다 한 가지 소박한 깨달음이 위기에 빠진 기업을 살린다.”라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의 깨달음은 발명품으로 형상화되어 인류에게 편안함을 제공합니다. 미술가들의 깨달음은 작품으로 형상화되어 보는 이의 사고를 자극하고 정서를 순화시켜줍니다. 음악가의 깨달음은 선율이 되어 귀를 호강하게 하고, 종교인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고 영혼의 만족함을 누리게 합니다. 깨닫는 것은 우연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전에서 ‘깨달음’을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듯이 깨달음은 생각하고 궁리하다 발견하게 되는 진리입니다.
시라쿠사왕 히에론 왕이 어느 날 갓 만든 금관을 구했는데, 그것이 위조물로 순금이 아니고 은이 섞였다는 소문을 퍼졌습니다.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명하여 그것을 감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에게 금관과 금의 부피를 납득시키기 위해 아르키메데스는 고민을 했습니다.
생각에 골몰한 그가 우연히 공중 목욕탕의 욕조에 들어갔는데 욕조의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문득, 자신의 체중과 같은 부피의 물이 욕조 밖으로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유레카, 유레카!(알아냈다. 알아냈다.)" 라고 외치며 알몸으로 뛰쳐나왔는데 이것이 바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된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액체 속의 물체는 그 물체가 밀어낸 액체의 무게만큼의 부력을 받는다는 원리입니다.
"달팽이는 어떻게 고정관념의 틀을 깼을까?"라는 책에서 데이비드 퍼킨스은 이런 것을 쿠데타적 사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바꾸는 깨달음입니다. 몇 마디 말로는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영감에 의해 이뤄진 쿠데타적인 사고가 문명을 형성하고 진보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 들어가는 순간 깨달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까지, 그리고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에서 인상주의까지, 불의 사용에서 레이저까지, 고정관념의 벽을 허무는 쿠데타적인 사고, 사고의 혁신의 소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말합니다.
제 1단계로 오랜 탐색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제 3단계는 일반적으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이뤄진다고 합니다.
제 5단계는 혁신은 결국 우주의 정신이나 물질세계를 변형시킨다고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해지며,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보이는 세계만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보이나 데이비드 퍼킨스가 말한 것처럼 신앙을 갖기까지는 신앙적 환경, 누군가의 기도, 오랜 방황 등의 과정들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 태어남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쿠데타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시작된 것처럼 신앙 역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생각의 쿠데타는 갑자기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 이뤄지는 것처럼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은 결국 우주의 정신이나 물질세계를 변형시키는 것처럼 신앙 역시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며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 깨달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힘이며 최상의 복입니다(마16:17). 모든 은혜는 깨달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최상의 은혜는 깨달음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깨달음을 통해 영안이 열립니다. 영적 깨달음도 힘인데 겸손해야 깨닫는 마음이 열립니다(단10:12). 말씀을 들을 때 깨닫습니다(마13:23).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고전2:10).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사50:4)
/열린편지/김필곤 목사
▣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제가 진지하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62년 부터였지만, 처음3년 동안은 ‘도대체 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여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65년에서야 진정한 복음을 찾았습니다. 그때까지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끌어안고 답답해하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여러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교회를 다녀보았지만 별 차이가 없고 결국 기독교라는 것이 도덕의 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기독교의 독특성과 왜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지에 대해 알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야간 신학교를 기웃거리면서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캐나다의 오스월드J. 스미스 목사님이 쓴 [구원의 길]이라는 작은 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구원의 진정한 길이 아닌 것 여러 가지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종교적인 노력과 도덕적인 선행을 통해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나아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갈라디아서 2장 21절이 적혀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저는 저의 노력을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이 십자가에 내 대신 죄 값을 치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깊이 고백했습니다.
“나의 오만했던 지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와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그날 밤의 깨달음은 저에게 형언할 수 없는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복음과 십자가가 참으로 제 눈앞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성경의 말씀이 한 구절 한 구절 저를 지배하고 감격하게 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성경을 들고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라디아서 2:21)
▣ 깨달음의 보물 창고
얼마 전에 거북 두 마리가 우리 가족이 되었다. 큰딸의 성화에 못 이겨 사주었지만, 여러 가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마리가 먹지도 못하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강한 녀석이 등에 올라타 짓누르며 괴롭히는 게 아닌가? 나는 원인을 몰라 어항 뚜껑을 열어 아픈 녀석만 계속 관찰했다. 그 결과, 눈병이었다. 하얀 막이 덮여 있어 앞을 못 보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애처로워 강한 녀석을 피해 먹이 하나라도 더 넣어 주려고 애를 썼다. 그 순간에 아픈 거북을 향한 나의 애타는 마음이 영적, 육적으로 치유 받아야 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통함을 깨달았다. 앞을 보지 못해 시련을 겪는 거북이 나의 지난 모습이자 지금의 모습이었다. 말씀을 봐도 깨닫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려 했던 나의 어리석은 행동들….
우리는 육적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음식으로 공급받는다. 우리의 영적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주님을 향한 열정이 식을 때, 질병으로 고통을 당해 소망이 사라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시지 않고 ‘깨달음’이라는 영적 영양소를 공급하시며 은혜를 주신다. 그 보화를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세상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시각으로 주위를 살펴보라. 곧 마음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는 ‘깨달음’의 보물 창고를 반드시 발견하게 되리라.
「생명의 삶 독자 에세이」/ 한유진
* 기도: 지난날 하나님이 아닌 허탄한 것을 의지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의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제 삶의 모든 어그러진 부분을 회복시켜 주소서.
/생명의 삶
▣ 루터의 깨달음
성경: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마르틴 루터의 고민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근본적인 죄의 문제였습니다. 지금까지 범한 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결하게 충성하려는 그에게 끊임없이 찾아와 그의 정결을 깨뜨리며 주님께 충성하기보다는 썩어질 정욕을 만족시키고 싶어하는 끊임없는 죄의 도전이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본질적으로 썩어버린 인간에게도 소망이 있을까? 이러한 인간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있을까? 마르틴 루터는 죄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해서 기도도 많이 했으며 말씀 묵상 연구도 많이 했으며 저 유명한 28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샘솟는 죄의 정욕은 결코 이러한 루터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를 연구하다가 드디어 이러한 죄인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빛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정욕의 사람, 죄악의 사람, 더러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예수님의 몸에 담당시켰습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인간을 살피시고 인간의 죄악을 미워하며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차라리 그 모든 심판을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께 내리시고 그대신 심판받아 멸망받았어야 할 인간도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자녀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결단을 내리시고 그 일을 행하셨음을 몸으로 깨달아 알았을 때에 루터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공로나 힘, 능력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교황청이 죄의 용서를 빙자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면죄부를 판매한다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루터는 드디어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설교회의 정문 앞에 걸어 놓았으며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삶을 통하여 얻은 몸의 진리요 말씀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진리를 취소하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 루터는 담대히 외쳤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왔소. 이외에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울 것이요. 루터는 힘있게 거절을 하고 종교개혁을 위해서 생명을 다하여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영적 안내자는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 선각자란 앞서 깨달은 사람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깨우칠 수 없다. 깨우치기 위해서는 먼저 깨달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최상의 복은 깨달음의 복이다(마 16:17). 최상의 은혜는 깨달음의 은혜다. 모든 은혜는 깨달음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존귀에 처하는 것보다 깨달음을 더욱 귀히 여기신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 49:20).
깨달음은 열림이다. 깨달음이란 영안이 열리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귀가 열리는 것이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다. 깨닫지 못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깨달음이란 지각이 열리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영적 감각이 열리는 것이다. 영적 감각이란 거룩한 사랑의 감각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한순간에 우리의 가슴에 들어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큼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는 것만큼 깨닫게 된다. 사랑하면 모든 감각이 새롭게 태어난다. 그래서 사랑하면 온몸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이다.
깨달음의 운동은 사랑의 운동이다. 사랑하면 모든 감각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깨닫게 되면 모든 영적 감각이 소생케 된다. 깨달음의 극치는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데 있다. 그때 우리는 인생을 알게 된다. 인생의 사계절을 알게 된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인생의 사계절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깨닫기를 사모해야 한다. 깨닫기 위해서는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큼 깨닫게 된다. 깨닫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겸손은 열린 마음이다. 다니엘이 깨닫기를 사모하여 자신을 겸비케 할 때 하나님은 깨달음의 은혜를 베푸셨다(단 10:12).
깨닫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마 13:23).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전 2:10). 깨닫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사야 50장 4절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드린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강준민
▣ 귀중한 것은 그것을 잃을 때 깨닫습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가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레코딩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천만장이 넘는 클래식 음반은 단 두장 밖에 없는데 카레라스가 바로 그 두 장의 주인공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칭송을 받는 그가 그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이 41세로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이 세상을 하직하기에는 억울한 나이였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 열정을 다하여 연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예고도 사전 연락도 없이 다가온 것은 죽음의 선고였습니다. 그러나 호세 카레라스는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손길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만 하고 앉아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골수 이식 수술과 힘든 화학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삶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연 수익금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귀중한 것은 그것을 잃을 때 깨닫습니다. 평소 건강할 때는 건강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물이나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많을 때, 공기가 풍부할 때 그것들의 고마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홍수로 먹을 물이 없을 때 물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닫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는 눈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태가 없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마음으로 봅니다. 그 마음의 문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열립니다. 이솝우화에 하루살이 메뚜기 개구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루살이가 놀다가 내일 만나자고 합니다. 메뚜기와 개구리가 웃습니다. 메뚜기가 가을 지나 봄에 만나자고 합니다. 개구리가 웃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 문제가 아닙니다. 존재의 한계, 인식의 한계 문제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열린편지/열린교회 김필곤 목사 글 중에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그리스도인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없어지는 것을 느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민을 들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게나.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내 귀여운 아기를 품에 안을걸세. 내가 비록 지친 상태에서 피곤해도 어린 천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네. 왜냐하면 아기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 아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마도 거의 사랑하지 않을 거야. 내가 병이 들어 잠을 못 이루고 고통스러워할 때도 아기는 그냥 잠만 쿨쿨 잘 걸세. 혹 마음 아픈 일이 있어서 괴로워할 때도 아기는 혼자서 즐겁게 떠들며 놀 걸세. 그뿐인가?
우리집 꼬마는 나에게 10원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앞으로
끊임없이 돈을 요구할 걸세. 그래도 나는 그것이 고통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걸세. 생각해 보게. 아기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내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이 옳은가?
내가 사랑하기 전에 내가 주는 사랑의 값어치 만큼 무언가를
우리 아기가 내게 해줄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친구의 말을 들은 그리스도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것 같네."
▣ 동태 두 마리
장성한 아들 형제가 있는 김 권사는 주의 종과 성도들을 섬기는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하루는 그녀가 동태 다섯 마리를 사서 목사님 가족은 둘이니 두 마리, 자기 식구는 셋이니 세 마리로 나눴다. 이것이 김 권사의 주의 종 섬기는 자세였다. 그날 김 권사는 강도를 만나 머리에 각목을 맞고 쓰러졌다. 강도가 심방 가방을 일숫돈 가방으로 착각한 것이다. 김 권사는 사흘 만에 깨어났다. 한 아들이 말했다. “예수를 대충 믿으세요. 돈만 생기면 교회에 바치고, 불쌍한 사람 도와줘도 하나님이 지켜준 것 뭐가 있어요? 강도가 휘두른 각목에 어머니만 죽을 뻔했잖아요.” 그때 김 권사의 대답. “얘야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겠니? 내 머리에 이고 있는 동태가 강도의 각목을 대신 맞아줬기에 죽지 않고 산 거란다. 깨달으면 천국이요, 못 깨달으면 지옥인 게야.”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큰 깨달음
한 젊은이가 큰 스승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삶의 그 시종을 다 알 수 없음을 아는 것이지.”
“그 깨달음에 이르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고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이네!”
▣ 진정한 깨달음
어느 날 토레이 목사님에게 어떤 부인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토레이 목사님은 고민하는 이 부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부인, 오늘부터 집에 가서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이 한 가지 기도만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 부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의 충고에 따라 이 부인은 집에 돌아가 이 기도만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십시오.”
이 기도를 계속 하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추하고 불결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자기의 죄악을 보며 절망한 채 일 주일만에 토레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죽어버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녀에게 토레이 목사님은 “이제부터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인은 집에 다시 돌아가 두 번째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때 이 부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절망을 선언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분을 통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으며 그로 인해 깨끗하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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