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종교 다원주의!! wcc!!

WCC와 에큐메니칼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20. 1. 2. 00:29

WCC와 에큐메니칼이란 무엇인가?



1. wcc란 정확히 무엇이며 이것이 한국기독교장로교 교단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나요?


2. 에큐매니컬에 대해서 목사님의 의견과 생각은 어떠신지요? (궁금하네요 ㅎㅎ)

 

3. 이 두 가지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 같다고 보아도 되는 건가요?


작성자 부정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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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의 힘'님께서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신 후에, 이 사안과 관련해서 세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물음에 대해 답을 드리면 나머지 물음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생각됩니다. 고로 첫 번째 물음을 중심으로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음 : WCC란 정확히 무엇이며 이것이 한국 기독교 장로교 교단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나요?

 


'에큐메니칼' 용어 정리 

 

WCC(세계교회협의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단체의 신학적 기본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교회연합운동의 실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에큐메니칼’ 혹은 ‘에큐메니즘’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눅 2:1; 마 24:14)에서 직접 사용된 표현인데, ‘거주한다’는 뜻의 ‘오이케오’(oikeo)와 ‘집’ 또는 ‘거처’를 의미하는 ‘오이코스’(oikos)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 혹은 ‘사람들이 거처하는 전 세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만, 초대 교회 이후로 이 말은 ‘복음으로 접촉된 세계와 전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운집된 교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렇게 ‘오이쿠메네’라는 단어가 ‘전 세계 교회의 연합’이라는 신학적인 의미로 확장된 데에는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공헌이 컸습니다. 서머나 감독이었던 폴리캅은 ‘오이쿠메네’와 ‘교회’ 개념을 연결시켰으며, 오리겐은 ‘오이쿠메네’를 ‘교회’와 동일시한 최초의 교부였습니다. 그래서 정통 교회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후에 개최된 초대교회의 회의를 ‘에큐메니칼 공의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령 325년 아리우스의 기독론을 정죄하였던 니케아 공의회를 제1차 에큐메니칼 공회의라는 식으로 말이죠. 당시의 교회 회의들이 교회 전체를 위한 보편타당한 신학과 교리를 정초하였다는 점에서 ‘오이쿠메네’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교회의 ‘에큐메니칼’ 성격을 잘 드러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의 '에큐메니칼' 신학과 변질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가 오랜 세월 집권하면서 ‘에큐메니칼’이라는 개념은 점차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표면상으로는 적어도 16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키프리안식의 전통적인 교회관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세 말에 이르러 스콜라주의의 발흥과 인문주의의 도전가운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종래의 입장을 수정, 변경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트렌트(Trent) 공의회(1545-1563)인데요, 이 시기의 종교개혁자들은 오히려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가르침으로 인해 잃어버린 진리의 초석된 사상(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들을 온전하게 회복하는데 관심을 가졌던데 반해, 로마 카톨릭은 이 회의를 통해 다른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극단적인 배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서, 타 종교에 대해 더 이상 기독교 진리의 유일성을 강조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세기가 흐른 1960년대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진리관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면서 종교 다원주의라는 방식으로서 로마 카톨릭의 생존을 모색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로마 카톨릭은 지금까지 세계 종교들 사이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범세계적 일치운동’(ecumenical ecumenism)을 주도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이론을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파니카라는 사제는 다른 종교간의 대화를 통해 보편적 교회의 신앙을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정상에 이르는 서로 다른 길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면 정상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로서 자신과 로마 가톨릭의 종교다원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대변했습니다. 이처럼 1960년대를 분기점으로 하여 로마 가돌릭에서 주도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종교다원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 하였습니다.

 



W.C.C(세계 교회 협의회)와 개신교의 부정한 만남

 

그런데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개신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W.C.C(World Council of Churches)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W.C.C를 교회간의 연합을 도모하는 협의체 정도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기독교적 종교다원주의 운동의 요체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 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간의 거리가 좁아졌고, 세계 교회들은 국제적 연합과 일치의 충동을 받게 됩니다. 19세기 중반부터 기독교적 동맹과 연합을 목적으로 한 국제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기독교 국제 단체들의 결성은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기독교 사상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의 한계점과 몰락과 함께 20세기 이전의 서구의 식민주의 정책과 궤를 같이 했던 기독교 선교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과 대안을 찾는 흐름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반기독교적 사상이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세계 대전을 전후로 식민지 정책이 종식되고 식민지들이 독립하자, 정복주의 선교 정책은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교지 최일선에서 활동하던 많은 선교사들은 좀 더 현실적인 선교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타 종교, 문화, 사회와의 대립과 갈등 보다는 상생과 공존을 모색하는 선교적 개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첫 번째 W.C.C 총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교단과 교파간의 신학적, 교리적 차이를 접어둔 채, 외형적인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한 W.C.C 는 ‘초교파적 만인구원론의 선교신학’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으며, 급기야 ‘초종교적 만유구원사상으로, 즉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W.C.C에 공(功)이 전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의 관심사를 인권, 자유, 평등과 같은 분야로 확대함으로써 교회의 사회 참여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W.C.C 의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논리는 되려 교회의 속성과 본질을 호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영혼 구원을 사회 문제로부터의 구원으로 변질시켰으며,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을 세상과 인류의 번영과 평화를 위한 조건으로 격하시키고 말았습니다.

 

특히 1961년 뉴델리 총회부터 타종교와의 대화가 본격적인 의제로 다루어지면서 W.C.C는 로마 가톨릭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는 영성 신학을 주제로 삼으면서 극단적인 성령 운동과 동양의 신비주의 운동 등 다양한 이교도적 종교 영성을 공동으로 추구하는 혼합종교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신학적으로는 성경 비평을 일삼는 자유주의 신학을 영입함으로써, 전통적인 기독교 사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절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절충한 제3의 신학이라는 애매모호한 신학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W.C.C와 한국 기독교 장로교회와의 역사적 연관성과 반성

 

장로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W.C.C와의 결합점은 어떠한 형태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불행하게도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에 W.C.C가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에큐메니칼 신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8.15 해방이후의 일입니다. 1960년 이전에 한국 장로교회는 세차례의 분열을 맞게 됩니다. 첫 번째가 신사 참배 문제로 인한 고려파 교단의 분열입니다. 두 번째는 김재준 목사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기동으로 인한 기장측의 분열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가장 큰 분열 사건으로 기억되는 통합측과 합동측의 분리입니다. 그런데 이 분열은 W.C.C 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기장측은 W.C.C의 기독교 연합 운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박윤선 박사를 중심으로 한 보수적인 장로교회 인사들은 W.C.C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이들은 신학적 좌경화의 물꼬를 튼 W.C.C보다는 보다 보수적인 복음주의를 지향하는 N.A.E(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와 연관을 맺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1954년 W.C.C에 총회파 인사 몇 사람이 참석한 이후 총회파 안에서 W.C.C에 찬성하는 측(통합측)과 반대하는 측(합동측)이 형성되면서 양 그룹이 총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힘겨루기를 하던 중에 통합측이 별도의 총회 모임을 가짐으로써, 결국 장로교 총회파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1962).

 

이후 통합측은 기장측과 함께 W.C.C에 적극 가담하고 있습니다. 합동측은 W.C.C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분열된 두 교단과 더불어 한국 교회의 연합 운동의 기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73년부터 교단별 통합행사로 시행되고 있는 부활절 연합 집회와 1970년 후반의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 엑스폴로 대회, 민족복음화 대성회 등의 대규모 대형집회들입니다. 작금에는 이러한 초교파적 대중 집회들에 거의 모든 한국 교회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중에서도 한국 장로교회가 과거의 분열의 아픔 역사를 되새기지 않고, 오늘날 교세를 이용하여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몇 년 전부터 한국 장로교 총연합회라는 특별기구를 만들어서 타교단을 넘어 가톨릭과의 연합을 꾀하려는 모습은 심히 완악하고 부패한 교회의 전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적 교회 연합과 일치

 

사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 개념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교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반드시 성경적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즉 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성경적 조건은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참된 앎과 고백과 실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신학과 교리와 고백이 하나 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한 가지 진리를 말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4장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에 대해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묵상해 보십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행 4:1-15)

 

 

밑줄 친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다. 참된 신앙은 하나이지, 둘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그 분의 부르심과 소망이 하나이며, 믿음(신앙)과 세례(성례)와 주(고백)도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고백 위에서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가능합니다. 이 거룩한 교회의 사명을 위해 더욱 오직 진리가운데 착념하시기 바랍니다.

 

 

P.S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소개해 드립니다.

 

1. 『에큐메니칼 운동과 죽어가는 교회 』(in 명쾌한 글읽기)

2. 『진정한 하나됨을 위하여 』(in vivavox 칼럼)

3. 『위험한 만남 』(in vivavox 칼럼)

4.  『에큐메니칼 운동』(http://www.oldfaith.net/chwtogo/D02-ecumenism.htm)

 




* 출처 : http://blog.daum.net/kkho1105/634

            http://blog.daum.net/hakema/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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