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전 합동신학교 교장,
강변교회 원로)가 고 이성봉 목사에게 12번의 안수기도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큰 영향을 준 분 중 한
분이라고도 밝혔다.
김 목사는 지난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담임목사 이수환)에서 21TV
주관으로 진행한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의 영성을
염원하며”를 주제로 한 특별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대담은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가 김 목사와 함께
출연했으며,
진행은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뉴스파워 대표)가 맡았다.
다음은 김명혁 목사의 발표문 전문.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의 영성을
염원하며”
저는
중학생 시절인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서너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큰 은혜를 받곤 했는데 아마 12번은 참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설교는 특히 천로역정 이야기는 중학생인 저에게 너무 재미가 있었고 너무 감동적이었고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저는 늘 앞자리에 앉아서 이성봉 목사님의 말씀을 듣곤
했는데,
부흥회 도중에 이성봉 목사님께서 찾아서 읽으라는 성경
구절을 미리 암송했다가 성경을 찾지도 않고 즉시 암송하므로 이성봉 목사님의 칭찬을 받곤 했습니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자주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던 말씀
중에는 시 50:15,
시 37:4-6,
시 81:10,
렘 33:3
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을 모두 그대로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고,
성경을 암송하라고 하면 성경을 열심히
암송했고,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를 했고,
은혜를 사모하라고 하면 은혜를
사모했고,
전도를 하라고 하면 전도를 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하고 토요일 새벽에 이성봉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곤 했는데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
라고 하시면서 기도를 해주시곤
했습니다.
아마 12번 정도 안수기도를 받은 것 같은데 얼마나 큰 은혜와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아직까지 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것은 이성봉 목사님께서 안수 기도를 12번 해주신 사랑과 은혜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너무너무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성봉 목사님의 셋째 딸인 이의숙 권사님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2000년 5월 1일 신촌성결교회에서 “이성봉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강의”를 했는데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에 대한 신학적 조명”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의 삶과 신앙을 9가지로 기술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1)
은혜 체험적 삶 2)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 3)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고,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4)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 5)
예수 중심주의 신앙 6)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 7)
성결의 복음 신앙과 8)
신유의 복음 신앙 9)
재림의 복음 신앙이었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성결과 재림”
신앙에 대한 부분을 발췌해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이었습니다.
“회개”를 통한 “중생”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특히 새벽기도회의 시간은 추상같은 권위로 죄를 책망하는
시간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은 죄를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목사님 자신의 삶이 철저한 회개에 기초한 삶이었기 때문에
이성봉 목사님은 항상 죄를 무섭게 지적하며 회개할 것을 강하게 촉구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에게는 대중들을 아부하는 설교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철저한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려는
뜨거운 소원을 지니고 평생토록 스스로 크고 작은 일들을 회개하면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회개하라”
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회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소원이며 뜻이고 회개란 지.정.의.행의 전폭적인 변화라고 폭 넓게 설명했습니다.
“회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주님의 소원이며
뜻입니다.
회개는 구원의 입문이요 기초이니,
복음의 대지가 회개요,
저주와 멸망을 막는 요새가 되는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에 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회개할
것입니까?
그것은 지·정·의·행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메시지는 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저의 삶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사는 3년 동안 새벽기도를 빠진 일은 거의 없었고 주일 성수를 하지 않은 일도
없었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 한번은 잘비스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통역을 하셨는데 잘비스 목사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어른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회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중생”이 구원의 첫 단계요 현재적 단계라고 설명하며 “중생”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임을 강조했습니다.
중생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회개”와 “중생”의 메시지가 점점 사라져 가는 오늘에 비추어 볼 때 “회개”와 “중생”의 복음을 강조한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과 메시지는 우리들에게 심각한 경종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부흥사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은혜 체험적”
그리고 “은혜 사모적”
삶이었습니다.
이성봉은 6살의 어린 아이 때부터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의 훈련과 감화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고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소년 이성봉은 김익두 목사님의 신앙적 감화를 받으며
김익두 목사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청년 시절 이성봉은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치유의 손길을 체험했습니다.
이성봉은 동양선교회 성서신학원(현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신앙 훈련을 받았는데 그곳에서 깊은 회개와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성서신학원을 졸업하자 이성봉 전도사는 목회와 부흥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수원에서의 목회사역과 부흥사역에 회개의 역사와 함께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고 이성봉 전도사 자신은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습니다.
목포에서의 목회사역과 부흥사역에도 회개의 역사와 함께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신비주의를 주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목포교회에서 목회할 때 신비주의로 나가는 여신도를
책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신의주 동부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부흥사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1937년 서울에서 모인 성결교 총회 기간 동안 이성봉 목사님은 성령의 뜨거운 불세례를
체험했습니다.
1937년부터 이성봉 목사님은 능력의 사자로 가는 곳마다
강한 성령의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1937년 용정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는
2,000여명이 회개하여 자복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1938년에는 한 해 동안에 50여 회 이상 부흥회를 인도하며 회개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1965년 8월 2일 주님 품으로 돌아가시기 까지 37년 동안 한국과 만주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동안 자기
스스로 수많은 영적 체험을 계속하며 기사와 이적을 동반하는 회개와 부흥의 역사를 많이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항상 경계했습니다.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안 된다고
항상 경고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은혜 체험”과 “은혜 사모”를 늘 강조했는데 다음과 같은 귀중한 말을 자주했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혹 사는 법이 있어도 신자들이
은혜 떠나서는 사는 법이 없습니다.”
사실 저는 중학생 때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복
목사님으로부터 나중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는 한국교회의 예레미야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은혜 사모”의 가르침을 받고 또 받았는데 그래서 공부는 둘째 셋째였고
“은혜 사모”와 기도와 예배가 첫째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부흥회를 빠지지 않고 찾아가곤
했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찾아가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지식과 기술과 경영과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교회 목회자들의 삶의 동향에 비추어 볼 때 “은혜 체험”과 “은혜 사모”와 성령의 역사에 붙잡혀서 한 평생을 살며 사역한 이성봉 목사님의 삶과 사역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성결과 청빈의 삶”
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청년 시절부터 아니 평생토록 철저한
회개에 기초를 둔 “성결”과 “청빈”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나 세상에 대한 어떤 애착을 두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성의 정욕과 물질의 탐욕을 항상 경계하는 금욕적
“성결”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마다 사례비를 적지 않게 받으시곤 했지만 그 사례비를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일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작은 교회들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들을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결국 사모님과 세 명의 딸들은 가난한 살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는 친히 거지와 같은
“청빈”의 삶을 평생토록 사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하고 싶지만 시간에 없어서 하지
못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돈과 이성의 유혹에 빠지면 목회자의 삶은
끝장이란 말을 거듭해서 강조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경고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일종의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적 정서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부흥회 때마다 “허사가”를 즐겨 부르곤 했습니다.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일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고난 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영화 장수는 무엇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그래서 어떤 교수는 이성봉 목사님은
“성경과 복음으로 시작해서 허무주의로 마감하는 느낌이다”
라고 혹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허무주의적 정서”를 비판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너무너무 귀중하게 보고
싶습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현세 부정을 통한 내세 긍정적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현세 부정적 요소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 4:7-8).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과 설교에 일종의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적 정서가 나타나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 교회와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성봉
목사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부정한 것이지 세상 안에서의 믿음의 삶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로는 문화변혁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이나 순교적 신앙을
주창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과 돈과 명예를 너무 좋아하는 세속주의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현대교회 목회자들의 삶의 동향에 비추어 볼 때 이성봉
목사님의 “허무주의적 정서”가 깃들어 있는 “현세 초월적”
“청빈”의 삶은 우리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재림”의 복음 신앙 이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은 밤에 자다가 옆 집 방앗간에서 방아 찢는
소리만 들어도 주님이 오시지 않나 하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는 간증을 저는 중학생 때 여러 번 들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비슷한 고백을
하셨습니다.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이 세상은 잠깐 지나는 허무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한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하며,
재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상하고 허무한 이 세상에서
성결하게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에게 있어서 재림은 구원의 셋째 단계 즉 미래적 단계였고 재림은 기독교 신앙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의 최대
계획이요,
성도의 최대 소망입니다.
만물이 고대하는 소망이요 마귀를 진멸하고 세상을 심판하고
성도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당신의 신부들을 영접하시는 주님의 날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날이 임박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서 재림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깨어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 밝게 켜 들고 거룩함과 인애로 신
혼 신을 단장하고 공중 혼연을 고대하는 신부들은 복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언제나
오시렵니까?
택한 신부 맞으시려 언제나
오시렵니까?
일구월심 오래도록 주님 생각 간절합니다 사모하는 나의
주님 속속히 오시옵소서.”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에게서 “종말”
신앙과 “재림”
신앙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세가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몰트만
박사가 지적한 대로 미래에 대한 분명한 종말 신앙은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현재적 삶을 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성봉 목사님의 “재림”
신앙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둔탁해진 우리들의 신앙을
일깨우는 청량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중한 부흥사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