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비하의 마지막 행위로,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에 있어서 인간들의 죄로 인해 두렵고 매우 모질고 극도의 고통을 겪었다. 그리스도는 의도적으로 대면했고 인내했다. 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0:18,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동일한 이유로 죽음은 자원적이며 강요된 것이 아니었다. 본 행위는 강함에서 연원하는 것이지 연약함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리스도 자신의 죄책이나 당위적인 의무감의 발로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순종과 우리를 위한 사랑의 발로로 이루어졌다. 본 행위는 승리를 통한 만족을 의도했으며 굴종을 통한 파멸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본 행위는 인간들의 죄들로 인해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비참과 동등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의 형벌을 포함했다. 이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잘려나가는 것이요, 버려지는 것이요, 발아래 밟히는 것이요, 저주요, 슬픔을 쌓아놓는 것 등등으로 불린다. 사53장, 시22편. 본 죽음은 그리스도의 모든 비하의 완성이다. 본 죽음은 그리스도의 비하의 최대의 부분이다.
상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발단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충만한 은혜가 가져올 기쁨과 환희가 스러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영적인 기쁨을 원리적으로만 상실한 것이 아니라 행위와 인식에 있어서 상실했다. 의식적 실현의 관점에서 영적인 죽음의 발단은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고 어둠의 권세에 어느 정도 복속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마실 잔에서 극명하게 표현된다. 마26:39,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진노의 대상은 그리스도 자신은 아니었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보증으로서 겪었던 형벌에게만 연관된다. 어둠의 권세에 대한 복속은 굴종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마음에 느꼈던 고뇌들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영혼은 번민하여 슬픔, 비탄, 두려움, 공포에 잠겨있었다, 마26:39,요12:27,히5:7,눅22:44. 그리스도의 영혼은 직접적으로 밀접하게 고통을 받았으며, 우리의 이름으로 진정한 고난을 겪어야 했고, 육체적 죽음의 공포로부터가 아니라, 영적이고 초자연적 죽음의 의미로 고통을 받았다.
이러한 번민(아고니아)의 두 가지 결과가 있었다. 첫째, 강력한 기도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놀란 마음과 죽음의 쓰라린 고통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본성이 나타나지만, 이는 항상 성부의 의지에 의해 제약되고 이에 복속된다. 막14:35,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요12:27,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두 번째, 여기에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는 일이 일어났다.
눅22:44,예수께서 더욱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그리스도의 영적인 죽음의 발단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 행해져야 할 의무들 즉, 기도, 담화, 경고, 반응들을 위한 시간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완화책이 존재했다. 완화책은 내적인 동시에 외적이다. 내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영혼에서 느꼈던 중압감과 고통이 순간적으로 감소되는 데서 발생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수행했던 직분의 의미, 성부와 자신에게 일어날 영광, 성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의 구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이러한 목적들을 이루기 위해 의식적으로 죽음의 모든 비참함에 직면하기를 결정했다. 죽음에서의 외부적인 완화책이란 그리스도에게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견고하게 했던 천사들을 통해 주어졌다. 눅22: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외적인 죽음의 발단은 상실과 의식적 실현의 단계에서 나타난다. 상실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에게 거부당했고 살인자보다 더 흉악한 자로 간주되었다. 그리스도는 가장 친밀했던 제자들에게도 버림을 받았고, 거절당했으며, 배반당했다. 모든 종류의 인간에 의해, 특히 지도자들과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의해 그리스도는 미친 사람, 기만자,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 귀신들린 자, 마술가, 또 다른 왕국의 찬탈자라고 불렸다. 그리스도는 벌거벗겨졌고 필요한 음식마저도 거절되었다.
의식적인 실현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는 수치스런 체포, 강제 연행, 종교적, 시민적 정의의 부정, 조롱, 채찍질, 모든 종류의 능욕과 모욕을 받았으며 십자가형을 받으실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완화시키는 요소도 존재했다. 첫째, 그리스도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자 병정들이 땅에 엎드려지고, 말고의 귀를 치유하신 일 등 몇가지 기적들을 통해 신적 위엄이 현현되었으며, 둘째, 하나님의 섭리로 그리스도는 정죄받기 전에 무죄하다는 선언을 받았다. 마27:24,이(옳은)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완성은 최고의 형벌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죽음 자체와 이의 지속이 고찰되어야 한다. 상실로서 영적인 형벌의 완성은 아버지에 의해 버림을 받은 것이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는 모든 종류의 위로를 박탈당했다. 마27:46,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의식적 실현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완성은 저주였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충만히 의식하였다.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이 이러한 저주의 원인과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이에 대한 표징이요, 상징일 뿐이다.
신체적인 죽음의 완성은 신체의 고통과 찢어지는 아픔 속에서 숨을 거둔 것이었다. 여기서는 영혼과 몸이 분리되었지만 이들과 신성과의 결합은 계속 유지되어 인격의 해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지 가장된 것이 아니다. 이는 자연적으로 작용하는 원인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초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이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적인 원리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생명과 힘을 지속시켰으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이를 내버리셨기 때문이다. 요10:18.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가장 낮은 데까지 비하가 계속되었다는 것이지, 고통의 형벌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는 후자, 즉 고통의 형벌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 아래 3일 간 있었다는 것이다. 행2:24,이는 통상적으로 지옥에 계셨던 상태로 서술된다. 그리스도가 3일 동안 장사되었다는 것은 이 상태를 증거하고 보여준다.
23 그리스도의 승귀
그리스도의 승귀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적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승리를 말한다. 눅24: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엡4:8,그가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골2:15,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리스도는 인내함으로, 죄를 대속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고 사탄의 손에서 먹이를 박탈하고 탈취함으로써 사탄에게 승리하셨다. 이러한 승리의 절정과 현현이 그리스도의 승귀다.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진정한 승리가 있었으며, 그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는 장소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의미와 공적에 있어서도 승귀되고 칭송받으셨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는 야전에서 승리하셨고, 승귀에서는 왕의 보좌 혹은 개선 마차 위에서 승리하셨다. 이러한 승리의 영광은 종과 같은 비천한 형상과 부수적, 저열한 상황으로부터 전적으로 천상적인 지고의 복락상태로 옮겨지셨다는 것이다. 빌2:9,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신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승귀는 단지 이것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성에 대해서는 이는 이에 수반되는 상응한 행동을 부여받았다. 인성은 피조된 본성에서 가능한 모든 완전성을 부여받았다. 영혼에 있어서는 원리적으로 기질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행위와 표현에 있어서도 지혜와 은혜가 충만하여졌다. 그리스도의 몸은 순결하고 기민하고 빼어나고 활력이 넘쳤다. 히12:2,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빌3:21,그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리스도의 승귀된 영혼은 영혼이 본성을 갖고 있듯이, 영광의 몸도 몸의 본질과 본질적 속성을 상실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광의 몸이라 할지라도, 편재하거나, 동시에 많은 장소에 현존하거나 또 다른 몸과 삼투적으로 동일한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다. 눅24:51,축복하실 때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마28: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그의 비하와 상응하여 승귀에도 세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조된다. 승천은 무덤과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과 대조된다.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심은 무덤에 남아있고 죽음 혹은 지옥의 상태에 남아있는 것과 대조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에 의해 삼켜진 모든 인성과 관련된다. 영혼에 있어서는 이는 지옥 혹은 지금까지 영혼이 인간 본성의 일부로서 복속해야 했던 죽음의 상태와 권세로부터의 부활을 의미한다. 몸에 있어서는 이는 죽은 자로부터, 무덤으로부터의 부활을 의미한다.
영혼은 다시 부활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몸과 인간 본성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몸과 인간은 실제적으로 그들의 완전성을 회복했지만, 영혼은 몸 안에서 행동하고 완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 부활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내적인 부분으로 이는 영혼과 몸이 결합됨으로써 재생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외적인 부분으로 무덤에서 나와 자신을 회복된 생명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비록 부활의 사역이 성부 하나님에게 귀속된다 할지라도, 또 다른 자의 권능과 허락에 의해 일어나지 않고, 스스로 부활하셨다. 요2:19,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이를 일으키리라. 10:18,나는(목숨을)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부활의 시기는 죽음과 장사 지낸 지 3일만이다. 마28:1,눅24:7,행10:40,고전15:4.
부활의 목적은 첫째, 그리스도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여주기 위함이요, 롬1:4,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으니; 둘째, 죽음에 대한 승리를 인치기 위함이요, 고전15: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셋째, 그리스도의 죽임 이후에 수행할 그의 직분 중 일부를 성취하기 위함이요, 롬4:25,예수는---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넷째, 그리스도가 자신을 의롭다 하고 다른 사람들도 의롭다 하기 위함이요, 고전15: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다섯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이며 육체적인 부활의 본질과 모범과 시초가 되기 위함이다. 고전15:20,21,23,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원리적으로 우리의 부활의 원인이시기 때문이다. 비하와 죽음에 의해 대속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공로적 원인이 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심으로 그리스도는 모범적 원인과 우리를 위한 증거와 시초가 된다.
승천은 승귀의 과정 중 중간단계로서 여기서 그리스도는 지상을 떠나 영광의 보좌인 지고의 하늘로 올라가신다. 이는 전 인격의 승천이지만, 비유적으로는 신성에만 속한다. 신성은 이제 인성과 지고로 결합되며 승천의 원인으로 기능하고 성육신에서 인성을 입으실 때 비우셨던 영광을 발현한다. 승천은 인성에도 적용되는데 여기서 인성은 저등한 지위에서 고등한 지위로 변화된다.
승천은 다음과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의 영화된 인성을 영광의 처소에 두기 위함이요; 둘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심오하고 천상적인 경륜에 참여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요, 요3:13,내가—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셋째, 그가 성부 하나님의 집에서 자신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기 위함이요,요14:3; 넷째, 그리스도가 자신의 이름으로 천상의 왕국을 소유하기 위함이요, 엡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다섯째,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와 권능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행해져야 하는 모든 일을 주관하기 위함이요, 요16:7,(내가) 가면 내가 그(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섯째,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승천을 확신하게 하기 위함이요, 고전15:20,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일곱째, 우리가 생각이나 태도나 말에 있어서 천상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함이요, 골3:1,빌3:20,너희가—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리노니.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은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최대의 영광을 향유하는 승귀의 최고 단계다. 부활과 승천은 본 상태에 이르기 위한 운동들이다. 부활과 승천은 또한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공통적인 것이지만 성부 우편에 좌정하심은 그리스도에게만 속한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부여받은 최고의 영광은 왕적인 영광이다. 행2: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러한 왕적 영광은 자신을 위해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능과 위엄의 충만이다. 시110;1,고전15:25,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이러한 왕적 위엄에는 그리스도가 인간과 천사들의 심판자가 되시는 권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왕적 영광은 다른 직분에까지 흘러 넘쳐서, 그는 왕적 제사장과 왕적 선지자직을 행사하신다. 왕적 제사장직은 우리를 위해 탄원하는 것인데, 이는 수난을 당하고 무릎을 꿇고 겸손히 간구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가 행하고 수난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상기시킴으로서 이루어진다. 히9:24,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는 모든 육체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주시고 자신의 사절들을 파송하고 그들과 함께 사역하고 그들의 사역에 뒤따르는 표징들에 의해 그들의 말을 확증하고, 세상 중에서 자기 백성을 모으시고 이들을 보호하시고 세우시며 보존하심으로 왕적 선지자직을 수행하신다.
24 그리스도의 적용
적용이란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행했고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일정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적용은 특별히 성령에게 귀속된다. 고전12:13,우리가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하지만 첫째, 이는 일정한 사람들이 구속되고 구원되도록 그리스도를 시여한 성부의 작정과 선사에 근거한다. 요6:3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이는 성부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만 그리스도에게 나아갈 수 있다는 데 기인한다,요6:37. 둘째, 이는 성부에 의해 그리스도에게로 정해진 자들을 위해 대속하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의도에 근거한다. 요17:9,11,12,19,내가 저희를 위해 비옵나니---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 것이로소이다.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적용시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협약 아래 이루어졌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결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전달, 수여되었다. 롬5:10,11,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성부와 성자는 이러한 적용을 수행하기 위해 성령을 파송했다고 언명된다. 요14:16,16:7,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내가 그를 보내리니.
따라서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은 위로부터 성부에게로부터 온다고 말할 수 있다,약1:17. 모든 구원에 관련된 일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전달된다. 이는 그리스도로 인해, 즉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이들은 효과적으로 적용된다,엡1:3,5,11.
따라서 적용은 획득하는 것의 마지막 결과이다. 목적이 성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해 의도되기 때문에 그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이를 획득하는 것은 목적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용은 구속 자체와 동일한 범위를 가지고 있다. 즉 구속은 그리스도와 성부의 의도에 의해 구속이 획득된 자에게만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로 인해 그리스도의 일시적 유익들은 다른 자들에게도 넘친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맺어지고 파기된 언약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을 가장 확고하게 성취하는 이러한 적용을 성경에서는 새 언약,히8:8,10; 생명과 구원과 은혜의 언약,롬4:16, 갈3:18,이라고 부른다. 동일한 의미에서 이는 또한 복음,롬1:16; 하나님의 선한 말씀,히6:5;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딤전1:15; 선한 교훈,딤전4:6; 생명의 말씀,빌2:16; 화목하게 하는 말씀,고후5:19; 평안의 복음,엡2:17과 6:15; 구원의 복음, 진리의 말씀,엡1:13; 여호와의 팔,사53:1;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2:16,로 불려진다. 이는 확고한 약속을 의미하므로 언약이라고 불린다. 이는 값없는 선물이며 선사자의 죽음으로 인해 확증되기 때문에 이를 언약 대신 유언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히9:16.
신약은 구약과 여러 가지 면에서 상이하다. 첫째, 종류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창조자와 피조물들 간의 유대의 언약이지만 신약은 적들 간의 화해의 언약이다. 둘째, 행위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에서는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합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언약하신다. 인간의 죄로 인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적인 언약을 맺을 수 없다. 셋째, 대상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지만 신약은 특별한 방식으로 제한된 자들에게만 속한다. 그 본성상 그리고 정당하게 이는 하나님께서 의도한 자들 즉 약속과 구원의 아들들이요 상속자들이라고 명명된 자들에게 속하며 이들을 지향하고 있다. 창15; 행2:39,3:25; 롬4:16,13; 9:7,8; 갈3:21,29.
넷째, 이들은 원리적으로 혹은 동적 원인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주권의 형태로 자신의 지혜롭고 정당한 경륜을 표현한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오직 자비만 존재한다. 구약에서도 순종에 대한 보답을 정함으로써 일종의 은혜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진정으로 은혜에 의해 지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약은 완전하다. 즉 이는 실제적으로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한다. 다섯째, 이들은 그 기초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인간 자신의 능력에 근거하지만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에 근거한다.
여섯째, 이들은 약속된 것들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생명만을 약속했지만 신약에서 하나님은 의와 모든 생명의 수단을 약속하셨다. 인간은 죽었기 때문에 생명의 지속 혹은 완성이 아니라 (생명으로의) 회복이 필요했다. 일곱째, 이들은 조건들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약속을 시행하기 전에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수행할 일들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요구했다. 따라서 약속은 보답의 형태로 주어진다. 하지만 신약은 선행 조건들을 요구하지도 않고 추후 혹은 매개적 조건만을 요구하는데(이는 은혜의 수단으로 은혜에 의해 주어진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여덟째, 이들은 결과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의로운 것을 가르치고 보여주지만 신약은 그 자체 안에 의를 수여한다. 구약에서는 죄인에게는 죽음이 되었던 죽은 문자가 존재했지만 신약에는 살리는 영이 있다. 이를 받는 모든 자에게 확고한 구원을 야기시킨다. 아홉째, 이들은 존속 기간에 있어서 상이하다. 구약은 신약의 참예자들에게는 낡은 것이다. 현존하는 언약은 존속기간에 있어서도 영원하며- 왜냐하면 새 언약은 본질에 있어서는 끝도 변화도 없기 때문이요- 그 적용에 있어서도 영원하다. 왜냐하면 본 언약의 은혜는 한번 진정으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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