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에 임하신 성령 하나님의 은사의 부요성 <8장 3항>
< 김병훈 목사, 합신 조직신학 교수 >
8장 3항: “주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그렇게 연합이 된 그의 인성 안에서 성령 하나님으로 거룩하여졌으며, 기름부음을 넘치도록 받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충만함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일을 기뻐하셨다. 그는 끝까지 그처럼 거룩하고 무해하며 더럽혀지지 않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여, 중보자이며 보증인의 직분을 실행하기에 철저히 준비가 되실 수가 있었다. 이 직분은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며, 그의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이 직분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능과 심판을 그의 손에 맡기셨으며 그 일을 실행하도록 그에게 명령을 주셨다.”
본 항목에서 교훈하는 주제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인성에 부여하시는 은사의 부요성입니다. 이 주제를 언급할 필요성과 중요성은 중보자이시며 보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분과 관련이 됩니다.
8장 2항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2 위격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고 계신 ‘하나님-인간’이십니다. 그런데 특별히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의 실체를 취하여 온전한 인성을 지닌 참 사람이시라는 사실을 고려하면서, 본 항목은 그리스도의 중보직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답을 줍니다. 그 질문은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완전한 참 사람이시라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중보자의 직분을 감당하실 수가 있었는가?”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모든 인간은 원죄로 인하여 부패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속죄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 아래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동일한 참 사람이시면서도 우리와는 달리 원죄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죗값을 치러야 할 죄가 없으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장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교훈을 전하시고 그것에 따라 다스리시는 중보자의 직분을 실행하실 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구원하실 가능성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을 말해줄 따름이기 때문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인성이란 그 자체로 일정한 제한성을 갖는 유한성을 그것의 본질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 항목은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그리스도의 유한한 인성이 어떻게 중보자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몇 가지를 교훈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요한복음 3장 34절,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확인이 됩니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일은 기름을 부어주시는 일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시편 45편 7절의 말씀이 그러합니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공적 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 위에 임하시는 특별한 사건도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음을 드러내줍니다. 이를 테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는 말씀이 지시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신성에 따라서는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며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하는 아들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임하시는 일은 영원한 사랑 가운데 계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신비로움을 암시합니다. 동시에 공적 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예수님에게 부여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2.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이 직분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중보자의 직분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신앙고백서는 본 항목 중반 이후에서 “이 직분은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며, 그의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이 직분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었다.”고 기술합니다. 이것이 신앙고백서에서 고백하는 두 번째 교리입니다.
부름을 받지 않고는 누구라도 직분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취하시고 그 인성에 따라 중보자의 직분을 수행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부름을 받으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는 아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제사장이 된 것과 같아서,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 5:4,5,6,10).
3. 중보자의 직분을 수행함에 필요한 모든 은사들을 충만히 받으셨습니다.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는 세 번째 내용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중보자의 직분을 수행함에 필요한 모든 은사들을 충만하게 넘치도록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충만함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일을 기뻐하셨다.” 이사야서는 이 사실을 미리 보고 말하여 이르기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부으심으로 말미암아,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과 경외라는 성령의 은사들이 종류에 있어서나 정도에 있어서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이 넘치도록 예수님에게 임하게 될 것임을 교훈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고 한 신약성경의 증언은 이사야에서 예언한 이러한 일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졌음을 확증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성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며 또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골 1:19).
4.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시되, “넘치도록” 받으셨습니다.
앞서 살펴 본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한량없이”라는 표현은 “단위를 측량하지 못할 정도로 넘치게” 받으셨음을 표현합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넘치도록” 또는 “한량없이”라는 표현이 “무한”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예수님의 인성에 주어진 것이며, 그 인성은 예수님의 인성이라 할지라도 인성 자체로 유한하며 무한을 수용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부여되는 은사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 인성의 성질에 따라 주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넘치도록” 또는 “한량없이”라는 말은 단순히 무한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중보자의 직분을 수행하시기에 필요한 어떤 것이든지 그 정도나 범위에 있어서 넘치도록 풍부하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받으시는 모든 은사들의 충만함과 관련해서, 이 모든 은사들이 신적인 속성인 완전함을 갖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관련하여 천주교회는 예수님이 위격적 연합으로 인하여, 곧 성자 하나님 한 분께서 신성과 더불어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지식은 전지성을 갖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예수님의 지식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인하여 하늘에 속한 일들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신령한 일들에 관한 지식들을 충만히 가지고 있으셨지만, 인성의 유한함에 따라 예수님도 인성으로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계셨으며,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지식이 그러하듯이 예수님의 지식도 또한 인성에 따라서는 제한이 있었고 성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지식은 키가 자라듯이 자라났습니다(눅 2:52).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날과 때가 어느 때인지를 모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3:32).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따라 절대적 의미에서 모든 것을 언제나 다 알고 계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성에 따라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전지하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인성에 따라서는 일정한 제한 아래 계셨습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지식이 중보자의 직분을 실행하는 일에 필요하는 모든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또 모든 은사들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나 천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절대적으로 부요하며 넘치도록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그처럼 거룩하고 무해하며 더럽혀지지 않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여, 중보자이며 보증인의 직분을 실행하기에 철저히 준비가 되실 수가 있었다.”고 교훈한 신앙고백서의 기술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합니다.
아울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받으시는 은사들은 마치 사람들이 어떤 사물이나 성질들을 어느 한 때에 한 번 받아 가지시고 사용하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예수님의 은사들도 어느 때는 강하게 나타났다가 어느 때는 사라지거나 소멸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예수님에게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은사들은 결코 변동이나 변함이 없이 영구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결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에게 항상 충만히 임하시고 계시고 떠나는 일이 없으셨으며, 아울러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한 은사들도 결코 예수님에게서 떠난 적이 없습니다.
5. 중보자로서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이라는 삼중직과 연결됩니다.
예수께서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것으로 인하여 은사와 은혜를 넘치도록 충만히 누리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중보자로서 그의 선지자 직분과 제사장 직분과 또한 왕의 직분이라는 삼중직과 관련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본 항목에서 표현된 신앙고백서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 끝까지 그처럼 거룩하고 무해하며 더럽혀지지 않았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여, 중보자이며 보증인의 직분을 실행하기에 철저히 준비가 되실 수가 있었다. ...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능과 심판을 그의 손에 맡기셨으며 그 일을 실행하도록 그에게 명령을 주셨다.”
그는 선지자로서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 인하여 지혜와 모든 지식의 부요함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으며, 또한 제사장이시며 제물로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고 이를 감당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거룩함으로 충만하셨으며, 또한 왕으로서 모든 권능과 심판의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통해서 중보자로서의 이러한 삼중직을 실행하시기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철저하게 이루실 수가 있었으며, 과연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을 완전하게 이행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성부 하나님의 뜻, 성자 하나님의 실행, 성령 하나님의 기름부음이라는 공동 사역에 의한 실로 복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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