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6:1-11 / 성령이 하시는 일
- 제자들은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그 나라에서 주어질 높은 지위를 소망하며 주를 따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의 환호를 받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이 꿈꾸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읽고 계십니다. 그들이 소망하고 있는 나라는 한낱 무지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꿈꾸고 있는 나라가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지 않으면 그들 모두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가 기대하고 있는 그러한 미래는 없다. 오히려 정 반대의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대접을 너희도 동일하게 받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요15:18-27).
- 신앙생활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실족하는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내 생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복음의 증인으로 세우실 계획을 갖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들이 교회입니다.
-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교회는 예수님이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동일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길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미움을 받고 배척을 당하신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를 아무리 외면하고 살아도 주님은 우리를 그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벧전2:21).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크기와 무게는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따르는 자라면 예외 없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미움을 받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마10:22). 우리는 세상과 교회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지난 주일에 예수의 증인된 교회가 왜 세상의 미움을 받고 환난을 당해야 하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먼저 세상의 미움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 예수를 증거하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아도 그들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는 세상의 미움을 받을 예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따라야 할 예수입니다. 그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불치병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부자가 됩니다. 사회에서 출세를 하게 됩니다. 그러한 예수를 세상이 미워하고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대 교회는 세상과의 싸움을 포기한 교회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싸움을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몽둥이로 들어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는 세상과 늘 싸우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미움과 배척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증인으로 부름 받았던 사도들, 초대 교회 역시 세상과 치열한 싸움을 치렀던 자들이었습니다.
- 2천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로 존재합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확정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의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은 자신의 택한 백성들을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예수의 피로 모두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날에 이 땅에 태어났던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이 살았던 삶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피조물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심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 영원한 멸망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지옥이 어떤 실체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배운대로 자신들이 예수를 믿었던 자이고 자신이 어떻게 성경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는지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 역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마7:21-23).
- 다시 반복하지만 예수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예수를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예수에게 붙어 있게 할 것이고 예수에게 붙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그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심판을 피할 자들은 예수를 입술로 고백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에게 붙어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들이 교회로 모여 왜 우리가 예수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1절, 4절/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승천하신 후 이 땅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 일이 벌어질 때 제자들 모두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실족한다는 말은 믿음에서 넘어지는 일을 말합니다(cf. 마11:6). 믿음에서 넘어진다는 것은 교회 다니는 일을 중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 제자들이 실족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던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모두 갈팡질팡하며 혼란에 빠지고 결국 실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제자들에게 벌어질 일이란 그들이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출교를 당하게 되고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출교 조치를 한다는 것은 그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성전과 회당 출입이 금지되는 것뿐이 아닌 경제 활동, 사회 활동 모두 금지되는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계13:17).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는 이유는 그러한 일이 벌어질 때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3절). 마26:31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양의 떼가 흩어지는 일이란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모두 흩어지는 일을 말합니다.
- 주님께서 이렇게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벌어졌을 때 제자들 모두 예수를 버리고 각자 제 목숨을 구하고자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새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 당시 주를 버리고 다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을 믿음에서 떠나지 못하게 붙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이 지금 당장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일이 우리에게 벌어질 때 우리 마음 판에 새겨져 있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지 못하게 붙들어 놓을 것입니다. 말씀을 먹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됩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말씀을 내 영혼에 채우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 그냥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 우리는 성경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이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족하게 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이 세상은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의 삶 역시 주님이 계획하신 길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계획대로 되는 법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계획대로 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선 내 선입관, 고정관념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합니다. 마음을 백지 상태로 만들어 놓고 주님의 말씀을 그곳에 써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 2-3절 /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께 열심인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제자들에게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제자들이 바로 그들에 의해 박해를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유대인들이 제자들을 대적하는 이유는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에게 예수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성경의 모든 진리를 무시하고 무너뜨리는 이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유대 사회에서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단을 경계하고 기독교나 자기 교회에 그들이 침투하는 것을 막는 일에 힘쓰는 것 역시 이런 모습과 동일합니다. 어떤 교회도 이단이 설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은 언제나 교회에 몰래 침투합니다. 그래서 만만한 성도들을 접촉하여 자신들의 사상에 물들게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에 이단 사상이 퍼지게 되면 그 교회는 무너지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단에 대해 그 무엇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 문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대교에서 그러한 일을 행한 장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인간 종교를 그 뿌리부터 흔들어 놓습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수호하라고 부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의 증인으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각 교단마다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 그 결과 지금 전 세계에 파송한 선교사만 3만 명이 넘습니다. 엄청난 재정이 이 일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전파되고 확산되고 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마23:15). 오늘날 복음에서 떠나 있는 한국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역 현장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유대인들은 성경을 사랑했지만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실패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는 것과 성경을 바로 아는 일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그들은 올바른 지식을 따르는데 실패한 자들이었습니다.
- 이런 일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신자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힌다는 것입니다. 성경 통독을 하는 교회는 한국 교회밖에 없습니다. 어떤 모임을 가지든 먼저 성경을 공부합니다. 그만큼 성경을 사랑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만나면 나누는 대화 가운데 하나가 성경을 몇 독했느냐는 질문입니다.
- 그러나 성경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과 성경을 아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그토록 사랑했던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제거해 버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놀랍게도 인간의 열심과 싸우시는 분입니다. 한국 교회가 그토록 하나님께 열심인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 내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과 싸우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인간이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종교의 가면을 쓴 자기 욕망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열심이 그리스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지 우리의 열심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은 언제나 하나님의 일을 대적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가만히 서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출14:13).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 그때 일하시는 분입니다.
▪ 5-7절 /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6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을 근심하게 한 주님의 말씀이란 주님이 그들을 떠난다는 말씀을 말합니다(요14:1-3).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여러 번 십자가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이르렀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이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게 했던 것입니다.
- 이렇게 근심이 가득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실 때 즉흥적으로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벌어지는 일들이 그냥 벌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근심과 두려움이 밀려 올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주님이 떠나는 일은 제자들에게는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떠난다는 것은 자신들의 모든 꿈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함께 모여 있어야 할 이유도 사라져버립니다. 주님 때문에 서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근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머물러 있는 한 성령이 그들에게 올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면 성령이 그들에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육신의 예수를 보고 있는 한 영으로 오시는 예수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예수를 포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 손으로 만져지는 예수, 경험되어지는 예수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은 이제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 8절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성령이 와서 세 가지 일 즉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책망하다”(헬, 엘렝코)는 말은 “논박하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이 와서 이것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생각이 세상의 생각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유대인들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생각이 세상과 동일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즉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는 세상과 다르지 않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과, 아버지께로 가시는 예수만이 참 의인이라는 것과,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버지께 구하여 성령을 교회에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이러한 책망 때문에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예수에 붙어 있는 가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9절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성령이 오셔서 바로 잡아 주는 첫 번째 사실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악한 행위를 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죄의 열매로 말합니다. 죄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죄란 인간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사고방식, 생각을 말합니다. 이 죄가 무엇인지 설명해주기 위해 등장한 도구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창2:17)였습니다.
- 그 어떤 사고방식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롬7:16-17, 롬8:5-8). 인간은 이 사고방식을 따라 행동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결국 그 사고방식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겉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삼상16:7).
- 사람들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생각입니다. 죄는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 창6: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행위의 근원인 인간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렘17:9-10절을 보면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로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마12:33-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라고 선언하십니다. 사과 나무에 포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처럼 마음이 부패한 인간에게서 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자체가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모든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 인간의 눈에는 선한 행위가 있고 악한 행위가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일, 헌금 하는 일, 거짓 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삶,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 이런 행위들이 우리 눈에는 분명히 선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행을 행한 자를 의인으로 규정합니다.
-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인간의 어떤 행위도 선한 행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악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는 가지가 좋은 열매를 맺히는 길은 좋은 열매를 맺히는 나무에 접붙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 예수님은 좋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히는 참 포도나무인 자신에게 붙어 있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예수의 말을 거부했습니다. 자신들이 좋은 열매를 맺히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죄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 예수님의 등장으로 드러난 사실은 온 세상이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 죄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의인이 되는 길은 없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등장으로 죄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의인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가 죄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등장으로 이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죄와 상관이 없는 자가 된 것입니다.
▪ 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성령은 의(義)에 대한 세상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깨닫게 해주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알고 있는 의의 기준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참 의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의이어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그 어떤 의도 하나님 앞에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의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행위들이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선행이 하나님께 선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마음이 죄 아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 유대인들은 이러한 성경의 증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든지 의를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 행위에 열심을 냈던 것이고 그러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일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의 생각을 모두 부정하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예수와 유대인들이 충돌했고 결국 예수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의를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한 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버지께로 가신 예수님을 다시 볼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이 의의 기준이라는 것과, 이 세상이 알고 있는 의는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들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의의 옷이 더러운 옷에 불과하다는 것에 눈이 열리게 하십니다(사64:6). 그래서 다른 의의 옷을 구하게 하십니다.
- 마22장 혼인 잔치 비유를 보면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예복을 입지 않은 자를 왕이 쫓아냅니다(마22:10-13). 이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 의의 옷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의의 개념은 성령이 오셔서 가르쳐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 11절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 성령은 심판(審判)에 대한 세상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세상은 심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의인은 보상을 받고 죄인은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말로 심판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무슨 뜻인가요?
- 세상 임금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라고 하지 않으시고 “세상 임금”이라고 하신 이유는 이 세상이 마귀의 사고방식을 추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하나님이 보시는 세상은 이 세상 임금 즉 마귀의 사고방식을 따르고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따라 존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 질서를 마귀가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마귀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세상은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 되어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 행세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창3:5).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하나님의 원수된 인간의 실상입니다.
- 이러한 세상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심판을 받았다는 말은 마귀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이 세상이 심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 신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로 간주되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히 상관없는 자로 언제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측량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고 사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사는 자들입니다.
-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는 모두 마귀의 생각을 좇아 사는 마귀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더러운 귀신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 임금을 따르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새 임금되신 예수를 따르는 자입니다. 이전 임금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더럽고 음란하고 악한 생각인지를 알게 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생각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한지 알게 된 자입니다.
- 이 세상은 죄를 모르고 의를 모르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마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받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음성만을 듣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로 세워가십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다시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저주의 자리에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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