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하5장11~25절
제목 : 다윗이 하나님께 묻고
다윗이 헤브론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예루살렘을 빼앗고 다윗성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옴기고 더욱 강성해 졌습니다.
다윗이 숱한 시련과 역경 앞에 주저앉지 않고,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께서 함께 계셨기”때문 이었습니다.
내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이룬 다윗은 외적으로도 두로 왕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이스라엘의 숙적이던 블레셋과의 두 차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1. 두로왕 히람과의 우호 관계(11~12절)
1) 다윗 왕과 두로 왕 히람 간의 화친 장면입니다(11절).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본절은 저자가 다윗의 흥왕(10절)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해 앞당겨 기록한 내용일 것입니다.
두로. - 두로(Tyre)는 시돈(Sidon)과 함께 B.C. 8-10세기경 베니게(Phoenicia)의 중심적인 도시 국가였습니다.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약 2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 국가는 지중해 연안 국가로서 일찍부터 목재, 밀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는 무역 국가였습니다.
한편 B.C. 10세기경에는 두로가 시돈을 압도한 듯 했으나,
얼마 후에 두로는 시돈의 지배를 받은 것 같습니다(사 23:2,12).
하지만 그들의 전성 시기에 두로의 상선들은 애굽과 스페인까지도 진출했었습니다.
히람. - 일명 '후람'(Huram)이라고도 하며, 이름의 뜻은'고귀한 자'입니다.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다윗은 물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적극 조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왕상 5:1-12).
백향목.- 레바논이 주산지인 백향목(cedar trees)은 왕궁, 성전(왕상 5:5,6;6:9,10), 배의 돛대(겔 27:5), 우상 등을 건설 또는 만드는 데 사용될 정도로 최고급 건축 자재였습니다.
이 나무는 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으며 또한 내구성(耐久性)이 강하며 방향(芳香)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2)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세우시고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습니다(12절).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여기서 '알다'(perceive,KJV)는 경험을 통해 아는 실제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이말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억이나 어떤 사물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의미하지 않고, 전에는 희미하게(막연히)알았으나 여러 경험을 통해 그 본질을 더욱 확실하게 파악한 체험적인 지식을 의미합니다(창 4:1;18:19;신 1:39;8:5).
따라서 본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왕을 삼으신 것'을 알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한 사건(3절)을 기억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와는 달리, 이 말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정복(6-10절), 블레셋 정복(17-25절),
히람 왕과의 화친(11절)등 만사형통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그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예를 들어 설명하면, '학교'라는 말만 아는 어린이가 직접 학교에 들어가 경험해 봄으로써 날마다 학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듯이,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그 기름 부음의 실제적인 의미를 통하여 더욱 승승장구하는 여러 경험들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 후반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말도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다윗의 아들들(13~16절)
1) 다윗이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났습니다(13절).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그 당시 동양적인 관습에 따르면, 처첩의 수는 곧 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도 그 당시 보편화된 관습에 따라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데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파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으므로(1-5절)더욱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애기해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신 17:17)을 어기고 취한 많은 처첩들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겨 주고 말았습니다. 13-16절 도표 참조.
그리고 훗날 아비 다윗의 영향을 받은 솔로몬 역시 다윗보다 더 많은 처첩을 거느린 결과(왕상 11:3)나라 안에는 각종 이방 우상 숭배 풍조가 만연하였고(왕상 11:4-8) 외환(外患)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왕상 11:14-15).
따라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일부다처주의(一夫 多妻主義), 축첩 행위가 명백히 하나님의 뜻(창 2:24)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그에 따르는 불행 역시 엄청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 부당성'참조.
2) 예루살렘에서 다윗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입니다(14~16절).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1)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이들은 모두 밧세바의 소생입니다.13-16절 도표 참조.
그런데 12:24에는 이들 중 마치 솔로몬이 밧세바의 첫 아들인 양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그 까닭은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부각시키려는 목적에서 기록한 탓일 것입니다.
(2)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엘리벧렛 -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입니다.
그런데 대상 3:6,8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 다윗의 아들이 두 명 나옵니다.
본절의 '엘리벧렛'은 이 중 대상 3:8에 나오는 '엘리벧렛'입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대상 3:6에 나오는 '엘리벧렛'을 '엘벧렛'(Elpalet, 대상 14:5)으로, 본절의 '엘리벧렛'(Eliphalet)은 그냥 그대로 표기함으로써(대상 14:7) 양자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3. 블레셋과의 두 차례 전투와 승리(17~25절)
1)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갑니다(17절).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은 본절 이하에서 보여 주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가 실제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6-10절)이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 증거로서 몇 가지 점을 들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습니다.
(1)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직후에 다윗과 전쟁을 벌이려 쳐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즉 다윗 왕은 즉위하자마자 블레셋의 대침공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여유(6-10절)가 없었을 것입니다.
(2)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을 직접 공략하지 아니하고 르바임(Rephaim)을 공격했다는 사실입니다(18,22절).
이와 같은 사실은 아직껏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입니다(Leon Wood).
(3)본 절의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찾았다'는 말은 다윗이 아직 예루살렘에 그의 거처를 정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해 줍니다(9절).
(4)더욱이 본문의 평행 구절에 해당되는 23:13,14에서는 다윗이 블레셋의 침공을 맞이하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 줍니다.
이는 그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즉, 그가 이미 예루살렘을 정복했었더라면, 구태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여러 증거들로 볼 때 다윗의 블레셋과의 전투는
예루살렘 정복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임에 틀림없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다 올라오매. - 블레셋 군대가 전에는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다가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곧 그를 죽이려 한 것은 그들의 얄팍한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처지에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삼상 27:1-12).
그 이유는 다윗을 당시 이스라엘이 왕 사울의 견제 세력으로 키워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1-3절), 길보아 전투(삼상 31장)이후 북방 이스라엘 지경에서 크게 세력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2:10 주석 참조.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확장된 세력을 굳히기 위해 이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한편, 본절에서 '블레셋 사람이 다 올라왔다'고 하는 말은 당시 그들이 통일된 다윗의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요새로 나가니라. - 여기서 '요새'가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1) 요새는 다윗이 점령한 예루살렘 요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앞서 일어났던 사건임을 보여준 여러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옳지 못합니다.
특히 본절의 '나가니라'('야라드')는 본래 '내려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원래 높은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예루살렘 요새로 다윗이 내려갔다는 말은 모순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요새'는 분명히 예루살렘 요새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고 볼 수 있습니다(Keil).
(2)이 요새는 아둘람 굴을 의미 한다도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근거로 그들은 평행 구절인 23:13,14에서 다윗이 아둘람 굴에 그의 진영을 설치해 놓았던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견해인데 많은 학자들도 대체로 이에 동의합니다.
한편, 이 아둘람 굴(the cave of Adullam)은 다윗이 사울 왕과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일시 도피하였던 곳으로 이곳에서 다윗은 그를 사모하여 추종한 자들의 장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삼상 22:1,2).
오늘날 이곳은 '텔 에쉬-쉐잎 마두쿨'(Tell esh-Sheikh Madhkur)로 알려지고 있는데 가드와 베들레헴 중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18절).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그 뜻이 '거인의 골짜기'인 것으로 보아 이는 아마 그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거인족 '르바임'(신 2:11)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인 듯합니다.
실제로 그 지명처럼 르바임 골짜기는 길이가 약 5km, 폭이 약 3km 정도나 되었으니 엄청난 수의 병력이 그곳에 포진(布陣)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입니다.
이 골짜기의 북쪽 끝은 유다 지파의 북쪽 접경지인 동시에 또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블레셋 군대가 이곳을 먼저 점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계지인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Leon Wood).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엄청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르바임 골짜기 바로 남쪽에 그들의 요새인 베들레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23:14).
아마도 이 베들레헴은 길보아 전투 때에(삼상 31:1)그들의 손 안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2)또한 그들은 아직껏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지인 예루살렘 요새가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17절 주석 참조.
3) 다윗이 여호와께 올라갈 것과 그들을 자기 손에 넘길지의 여부를 물으니 넘기겠다고 하십니다(19절)
“[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 이말은 다윗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당시 다윗과 함께 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2:1 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중요한 일을 당할 때마다 먼저 여호와의 뜻을 구한 다음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그의 훌륭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2:1;삼상 23:9;30:7).
네 손에 넘기리라.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개인의 생명이나 국가의 장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음을 나타내 줍니다(16:8;창 14:20;신 2:30;수 10:8;왕상 20:13).신 1:2 주석 참조.
4) 다윗이 바알브라심에서 그들을 치고 대적을 흩으셨습니다(20절).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바알브라심. - 본절 후반부의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는 말은 이 지명이 옛 부터 내려온 고유의 지명이 아니라 다윗의 대첩(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이 붙여진 이름임을 보여 줍니다.
한편 바알브라심(Baal-perazim)은 '주'(Lord)라는 뜻의 '바알'과 '터치고 나옴','부숴뜨림', 또는 '흩음'을 의미하는 페라침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입니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흩으심의 주'입니다.
즉, 이는 블레셋 대군을 물을 흩어버림과 같이 쉽게 물리쳐 주신 여호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다윗이 만들어 붙인 신지명(新地名)입니다.
한편, 이곳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 종교의 신 '바알'(Baal)과 일치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2:8 주석 참조.
즉 바알 종교로 인해 '바알'이란 명칭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던 후대의 유대인들이 그 명칭을 내포하고 있는 '바알브라심'이란 지명 자체를 말소시켜 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ust).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 다윗은 이처럼 블레셋을 격파시킨 일이 자신의 지략, 용맹성,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19절),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빌 1:20)하여야 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귀감(龜鑑)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습니다(21절).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 본절은
(1) 당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에 있던 블레셋 대군(18절)이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얼마나 혼비백산하게 후퇴했는가를 보여 주며,
(2) 또한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20절)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줍니다(Hertzberg).
한편, 블레셋인들이 전쟁터에 그들의 우상을 가져온 것은 그들의 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당시 고대 근동 국가의 미신적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던 사실(삼상 4:3,4)과 외형상 일치합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 같은 내용의 기사인 대상 14:12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우상을 불태운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우상을 불태운 것은 우상에 대한 여호와의 율법대로 순종한 행위였습니다(신 7:5,25).
아무튼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수년 전 아벡 전투에서 승리한 블레셋 군대(삼상 4장)가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아 들고 행진한 사실(삼상 5:1)과 대조적입니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들고 갔으나 다윗은 그들의 우상을 가증한 것으로 여겨 불태웠던 것입니다(Leon Wood).
6)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22절)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혼비 백산하여 도망갔던 블레셋 군대(17-21절)가 다시 전열(戰列)을 가다듬어 제 2차 공격을 해오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기는커녕 도리어 예기치 않은 역습을 받아 뿔뿔히 도망쳐야 했던 첫 번 째의 실패를 만회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23-2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두번 씩이나 연속해서 대패하므로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7)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뽕나무 수풀 맞은 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라합니다(23절)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여기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고지(高地)에 올아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는 뜻입니다(Keil).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서와 달리(19,20절)이번에는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전을 택하라고 하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즉 당시
(1) 긴장하고 있는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를 완전히 꺽어놓고,
(2) 그들을 이스라엘 지경에서 아주 멀리 쫓아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의 일환 때문이었습니다(Leon Wood).
아마도 블레셋군은 지난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군의 정면 공격을 예상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이번에는 다윗에게 기습 공격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뽕나무 수풀. - 뽕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 가 과연 어떤 나무
를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들이 있습니다.
(1) 배나무로 보는 견해(Rosenmuler,Vulgate).
(2) 한글 개역 성경처럼 뽕나무(mulberry tree)로 보는 견해.
그러나 본래 '울다','통곡하다'라는 뜻을 지닌 '바카' 에서 파생된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우는 나무'(weeping tree)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나무가 운다'라는 것은 '나무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니 이는 곧
'수액(樹液)을 낸다'는 의미입니다(Wycliffe).
따라서 대개의 학자들은 '바카'가 '뽕나무'나 '배나무'를 의미하지 않고
수액(樹液)을 내는 '발삼나무'(Balsam tree)를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한편, 달만(Dalman)은 이 '바카'가 관목류(灌木類)가 아닌 덤불에 가까운 종류라고 하였습니다(Hertzberg).
이렇게 볼 때 바카, 곧 발삼나무 수풀은 이스라엘 군이 매복해 있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8)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하십니다(24절)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 주는 공격 신호(attack sign)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공격 신호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소리였다는 견해입니다.
즉, 이러한 현상은 야곱과 엘리사에게 보였던 하나님의 군대의 진군을 의미한다는 주장입니다(창 32:2,3;왕하 6:17).
이 견해는 '걸음 걷는'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체아다'가 '행군하다','전진하다'는 뜻이며 이번 전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전(聖戰)이었다는 점에 의거할 때 비교적 타당합니다. 수 5:13-15 강해,'성전'(聖戰)참조.
9)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렀습니다(25절)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 14:16에는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본절의 게바(Geba)가 대상 14:16에는 기브온(Gibeon)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대상 14:16의 기브온이 또 다른 필사자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게바로 후퇴했던 블레셋군이 게셀로 도망갈 때 기브온을 거쳐 도망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한편, 블레셋군의 최종 도착지인 게셀은 블레셋 영토의 북동쪽 경계지이며 이번 전투 지점(르바임 골짜기)에서 최소한 24km나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이로 보아 다윗 군대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거두게 하신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블레셋을 격파시킨 일이 자신의 지략, 용맹성,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19절),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다윗 처럼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 물어 행하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두로 왕이 사절단과 함께 고급 자재와 건축가를 보내어 다윗의 궁궐 건축을 돕습니다(11,12절).
다윗은 이 조약과 왕궁 건축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이스라엘이 외교적 안정과 국가적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
순전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자신은 그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안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히람의 선물을 누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는지(2절) 잊지 않습니다.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나에 대한 찬사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더 많습니까?
자신을 높이지 않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2) 예루살렘에서 출생한 아들들의 명단은 다윗 왕가의 번성을 보여줍니다(13~16절).
특히 왕위를 잇게 될 ‘솔로몬’의 이름이 처음 언급된 것은 다윗의 나라가 안정적으로 이어질 요건을 완비했음을 보여줍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번영의 결과지만,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신17:17)고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 그의 보좌에 불길한 미래(왕자의 난)를 예고하는 듯합니다.
3)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위협을 느낀 블레셋이 다윗을 ‘잡기 위해’쳐들어봅니다(17~21절).
나라가 제대로 서기 전에 다윗의 세력 확장을 막고 기세를 꺾으려는 의도를 보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모략과 무기로만 싸우던 사울과 달리,
다윗은 ‘먼저’하나님께 묻고 명령을 순종합니다.
여전히 내가 맞서 싸워야 할 영적 세력은 크고 위협적입니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따른다면
전세는 언제든 뒤바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을 하나님께 아뢰는 작은 습관이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빚어갑니다.
4) 블레셋이 ‘다시’쳐들어왔지만 다윗은 이번에도 ‘늘 하던 대로’ 하나님을 찾고, 정면 공세가 아닌 기습 공격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수행합니다(22~25절).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는 것은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도 아니고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아닙니다.
오직 진정한 목자(5:2, 시23:1)이신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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