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사무엘하5장1~10절(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하나님아들 2018. 8. 28. 21:49

본문 : 사무엘하5장1~10절

제목 :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아브넬의 죽음, 이스보셋의 죽음으로 사울의 왕가는 몰락하게 되고,

서로 구별된 두 개의 통치영역인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윗을 중심으로 통일이 이루워 집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생애의 정점을 맞이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자,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도로 삼고 40년간 다스립니다.

 

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1~5절)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나아와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라합니다(1절).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3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모든 장로'와 같은 의미로 봅니다.

즉, 이들은 20세 이상의 모든 지파의 인구가 헤브론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온 것처럼 저자가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상 12:23-40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을 위해 헤브론으로 나아온 인구가 무려 약 35만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3절의 '이스라엘 모든 장로'는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1,2절이스라엘 온 지파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장면이며,

3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장로들이 다윗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삼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Leon Wood,Pulpit Commentary).

1-3절은 한 사건을 중복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과정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골육. - 직역하면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thy bone and thy flesh,KJV)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입니다(창 2:23;29:14;37:27;삿 9:2).

따라서 이는 결국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이 전적인 신뢰를 표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2절).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출입하게 하신 분.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치 웨하메비'는 문자적으로 '나오고 들어감'을 의미하나, 주로 이 용어는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출입하는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삼상29:6;왕상3:7;대하23:7;수14:11).

따라서 여기서는 사울 휘하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잘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의 지도력(삼상18:6,7)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 여기서 '목자'란 백성들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신정 왕국(神政 王國)의 왕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먹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 '주권자'란 백성들에 대하여 강한 지도력, 통치권을 행사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왕은 비상시에 군 최고의 통수권자(統帥權者)로서 백성을 효율적으로 관리, 적의 위협을 분쇄해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능률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입각하여 국정(國政)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본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3:9,10,18;삼상 13:14;15:23,26,28;25:30등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이 같은 신탁(信託)은 이미 그 당시 백성들 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3)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습니다(3절).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언약을 세우매. - 왕위 즉위식 이전에 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던 이 언약은 쌍방 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윗 왕이...그들과 언약을 맺으매'라는 본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본 구절의 주어는 '그들'이 아니고 '다윗'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었고 다윗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언약이 쌍방적인 성격이 아니라 일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삼상 13:14;15:23,26,28)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며,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언약은 다윗이나 기타 모든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결정하신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서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군주와 국민들 간의 어떠한 이해관계를 따져 협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므로, 그 나라에 큰 복을 베푸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내용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고 그 반대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을 통해 본 신정 국가의 국가관은, 군주와 국민의 계약 관계를 국가 성립의 근본으로 본 근대의 국가관과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신정 국가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임을 뜻할 뿐입니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 다윗이 사무엘 당시(삼상 16:13), 그리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 받을 당시(2:4)에 이어 마지막 세 번 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대상11:3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덧붙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세 번째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삼상 16:1)을 어김없이 이루신 감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2:4 주석 참조.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 이로써 이제 유다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시금 사울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한 왕 아래 통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아래에서 최초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장(章)강해를 참조하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4절)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삼십 세. -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왕의 나이인 삼십 세는 성경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습니다.

즉, 이 나이는

(1) 레위인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으며(민 4:3;대상 23:3),

(2)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나이였으며(창 41:46),

(3)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습니다(눅 3:21-23).

이와 같은 사실은 적어도 성도는 이 나라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암시적 메시지(message)를 제공해 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람을 적재 적시(適材 適時)에 들어 쓰십니다(삼상 17:41-54).

그러나 인격적 성숙은 나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사실인 것입니다.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5절).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그의 통치 연대를 개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성경 기자들이 왕조(王朝)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술 양식 중 하나입니다(왕상 15:9,10;16:29;왕하 3:1;12:1;13:1;14:2,23;15:27).

 

2. 예루살렘을 새 수도로 삼다(6~10절)

1) 여부스 사람을 치려하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합니다(6절).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그의 부하들이. - 여기서 가리키는 다윗의 부하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그럴듯한 견해가 있습니다.

(1) 다윗에게 서약하기 위해 온 '온 이스라엘의 군대'(1-3절)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대상 11:4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부하들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윗과 행동을 함께 해온 그 정예병(精銳兵)들(삼상22:4;23:13)이라고 주장합니다(Rust,Hertzberg).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견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다시 말해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는 나아갔으나, 실제로 지형적으로 험난한 예루살렘을 공략한 자들은 다윗의 부하들, 곧 요압과 그 정예 군사들이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지형적, 종교적인 이점들 때문이었습니다.

(1) 헤브론(Hebron)은 유다에서 볼 때는 중심 지역이었지만 온 이스라엘로 볼 때는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2:1 주석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Jerusalem)은 온 이스라엘을 치리하기에 아주 좋은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 예루살렘은 주위가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었고 성읍 자체가 고지에 자리 잡고 있는 천혜(天惠)의 방어 요새였습니다(Wycliffe).

(3)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the valley of Kidron)에는 기혼 샘(the spring of Gihon)이 있어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4)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 였습니다(수15:7,8;18:6).

따라서 예루살렘은 두 지파 간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시키며,

더 나아가 온 나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합한 도읍지였습니다.

(5)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중심부로서 중앙 성소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신 12:4-14 강해, '예루살렘 중앙 성소의 의의'참조.

즉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의 최적소(최적소)로 예루살렘을 지목하였던 것입니다(Leon Wood).

한편 이와 관련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보다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 위하여서는 대상 11:4-9 강해, '예루살렘'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 - 여부스 족속(Jebusites)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계속 정주(定住)해 왔던 족속입니다(민13:29;수 15:8;18:16). 수 9:1,2 강해,'가나안의 일곱 족속'참조.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일시적으로 패주하기도 했으나(수 10:23,26)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사사 시대에 이르러 유다 및(삿 1:8)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삿 1:21)도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 고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그들의 방어 기지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만 것입니다(7-9절).

한편, 여부스(Jebus)는 한때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수18:16,28;삿 19:10;대상 11:4).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 여부스 족속이 쳐들어 오는 다윗에게 큰 소리 치는 장면입니다.

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독립한 나라로서 이와 같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음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이점 때문이었습니다.

(1)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 민 20:17;21:22;신 2:27)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예루살렘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기드론, 힌놈, 두로베온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천혜의 방어 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큰 소리 쳤던 것입니다.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 메튜 헨리(Mstthew Henry)는 이와 관련, 여부스족들이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에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세워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튼 본절은 당시 예루살렘 성을 과신(過信)했던 여부스인들의 자만을 충분히 증거해 줍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철옹성 여리고도 함락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수 6:1-20)을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2)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7절).

시온 산성. -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되고 난 후 첫 번째 일이 예루살렘 점령에서 정점에 도달합니다.

예루살렘은 가나안의 도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도 속하지 안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지정학적, 전략적 위치는 가나안 민족이나 이스라엘 모두에게 매우 중요 했었지만 다윗 이전 여브스 족속이 장악했던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요세와 같았기에 점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윗 때에야 비로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복속 시켰던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점령을 가장 먼저 시도 했다는 것은 다윗의 안목이 매우 뛰어 났음을 증명합니다.

헤브론에 남아서 그곳에서 남과 북 전체를 통일 했다 할지라도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 전체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던 것입니다.

유다와 북왕국의 접경지역 여전히 가나안 족속이 통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찍어서 점령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삼지 않으면 이스라엘 통일 왕조는 다윗의 지배하에 놓여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유다와 다른 지파로부터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병행본문인 역대상11장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예루살렘 했다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삼하는 자기부하만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고 기록합니다.

삼하가 이와 같은 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루살렘을 다윗성이라 뜻을 설명하고자 햇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 개인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점령했기 때문에 이 후로도 역사 안에서 다른 지파들과 유다의 다른 가문까지라도 예루살렘에 대한 지분을 다윗외는 행사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오랜 기다림이 열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 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사 3:16;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습니다(사 24:23;옵 1:17).

 

3)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는 속담이 생겼습니다(8절)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물 긷는 데’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합니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입니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이라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습니다.

절뚝발이와 소경. -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입니다.

즉 그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았습니다(9절).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밀로. - 채우다(말레아)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읍니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솔로몬히스기야는 이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한 바 있습니다(왕상 11:27;대하 32:5).

 

5)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10절)

[10]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야웨 엘로헤 체바오트')는 '천군 천사(天軍 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는 본래 '군대','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욥 33:23;느 9:6;시 103:21;마 10:27;히 12:22)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 '야웨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됩니다(6:2;삼상 15:2;왕하 3:14;대상 17:24;시 24:10;사 1:9).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군대를 인솔하시어 다윗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니(6-9,17-25절), 그의 왕국이 안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11절)강성해진 것입니다.12절 주석 참조.

 

오늘 말씀은 다윗의 왕위 등국과 이재 맺게될 열매의 근거를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다윗이 왕으로 인정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다윗의 모습과 삶이, 우리 신앙과 삶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치도 있고, 인간 관계도 있고, 경제적인 상황도 있고, 수 많은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 가장 능력이 되는 것, 힘이 되는 것, 출발이 되는 것은 오늘 10절 말씀처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겨셔야 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해 질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함께하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다윗은 더욱 강성해집니다(10절).

그것은 견고한 성채도, 막강한 군대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숱한 시련과 역경 앞에 주저앉지 않고, 반대와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나 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속한 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다스리시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과 언약을 맺고 그를 왕으로 삼습니다(1~5절).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베들레헴의 목동(삼상16:12~13)이 마침내 온 이스라엘의 목자가 됩니다.

들에서 아비의 양을 지키던 소년이 하나님의 기업인 이스라엘을 책임지는 목자가 됩니다.

스스로 넘본 자리도 아니고 백성의 간청(삼상8장)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실 때까지 순복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백성의 순종 그리고 다윗의 기다림 속에서 드디어 다윗 왕조가 출범합니다.

 

2)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지위와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는 사울과 같은 ‘왕’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나님과 백성을 섬기는 신실한 ‘주권자’가 되어달라고 요구합니다(2,3절).

예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을 행사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데만 급급한 지도자는 백성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생계도 모자라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이 시대에 백성의 ‘삶의 자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지도자가 더욱 절실합니다.

 

3) 다윗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깁니다(6~9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중심부에 있기에 유다와 이스라엘을 모두 배려한 곳입니다.

그곳은 한때 여호수아가 점령했고 유다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지만, 사울 시대까지도 미정복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 그곳이 다윗 시대에 정복됩니다.

내 삶의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회복되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출처 : 헤브론선교회
글쓴이 : 빛으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