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존귀한 사람 - 에바브로디도

하나님아들 2018. 8. 25. 00:22

존귀한 사람 - 에바브로디도

* 빌 2:25-30(신약 320쪽) *

{당신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당신안에 잠자는 거인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Ⅰ. 에바브로디도의 인적사항

➀ 에바브로디도의 뜻 : “사랑스러운”➁ 빌립보 교회의 교인

➂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자

Ⅱ. 시대적 배경

에바브로디도가 등장할 당시에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를 선물을 전달하는 전달자로 보내게 됩니다. 선물을 받은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게 빌립보 사정을 다 듣고 나서 빌립보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게 됩니다.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게 되는 사람이 에바브로디도가 됩니다.

Ⅲ. 에바브로디도의 특징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있어서는 아주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빌립보에서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바울이 기도하는 곳에 가는 길인데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쫓아오면서 계속 비아냥거리면서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인데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몇 날 몇 일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나오라고 명하자 그녀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됩니다. 그랬더니 그 여종의 주인이 돈 벌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난 주인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관아에 넘기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관아에서 옷을 찢기고 매를 맞고 옥에 가두게 됩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지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는데 곤역을 치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던 중에 성령의 인도함으로 감옥에서 출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의 이러한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를 떠나게 되는데 그 이후에도 두 세 번에 걸쳐서 빌립보를 더 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의 말미에는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힌 후에 로마로 압송되어 가게 됩니다.

훗날 로마에서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은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빌립보 교회가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선물을 보내게 됩니다. 이 때 이 선물을 가지고 간 사람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단순히 선물을 전달하는 사자로서의 역할만 감당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머물면서 바울과 동역을 하면서 바울의 필요를 채워준 인물이었습니다.

1. 바울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자연스러운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을 도와 함께 동역을 이룬 에바브로디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를 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빌립보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울을 돕게 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바울이 격어본 에바브로디도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① 나의 형제 :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의 형제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과 함께 신앙을 공유하면서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깊은 애정을 같이 나누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의 형제라고 부른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친밀도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대의 최고 지도자인 방울이, 그리고 빌립보 교회의 영적 지주와 같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초대 목장이 되었던 바울이 에바브로 디도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평가입니다. 이는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얼마나 신임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나의 형제라고 칭함을 받을 정도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② 함께 수고함 : 함께 수고한다는 말은 ‘쉬네르곤’으로서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협력하는 동역자 였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도 바울과 더불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는지 자세히 우리에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동역을 하는 귀한 사람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③ 함께 군사 됨 : ‘군사’라는 표현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세요. 군사는 적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함께 군사된 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바울의 로마의 감옥에서도 얼마나 곤역을 치르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곳에서도 많은 적대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방해꾼들이 있었을 것이고, 적 그리스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함께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견낸 인물로 속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사자 :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먼 여행을 떠나는 대표자로서 에바브로 디도를 세웠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권위를 부여받고 대표자로 바울에게 온 사람입니다.

⑤ 나의 쓸 것을 돕는 자 :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의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에바브로 디도에 대한 많은 수식어를 붙여가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가 얼마나 바울의 신임을 많이 받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형제로, 함께 수고하는 자로, 함께 군사 된 자로,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 그리고 바울의 쓸 것을 잘 도운자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이력을 소개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학벌이 어떻고, 어디서 어떤 일을 했고, 무슨 직책을 맡았고 하는 것을 소개 받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 바울의 신임을 받고 소개받은 것보다 더 큰 신뢰를 가지로 오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영향력있는 사람의 소개를 받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과 좋은 동역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인정을 받고 소개를 받는 사람이 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의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입니다.(26)

에바브로 디도는 바울의 섬기기 위해서 와서 열심히 섬기면서도 빌립보교회에 대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식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항상 빌립보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을 간절히 사모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라는 말은 ‘에피포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갓난 아이가 어미의 젖을 간절히 원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보고싶어 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분입니다.

2:26-27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한 번은 에바브로디도가 바울과 함께 있는 동안에 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 병이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주 심한 병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죽을 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듣고 얼마나 걱정할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이 낙담하지는 않을까? 실족하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근심을 가져오게 되고 누가 될 까봐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에바브로디도가 믿음의 형제인 교회의 동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에바브로 디도의 사랑은 가식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심장으로 걱정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진심이었습니다.

이 마음을 보셨는지 하나님은 에바브로 디도를 긍휼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의 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의 병이 고쳐진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고의 병이 고쳐진 것은 당사자와 바울과 모든 교회의 큰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기쁨의 소식을 빌립보 교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 빌립보서를 부지런히 써서 에바브로디도편에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사랑이 오고가는 것은 에바브로디도의 진실된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녹아질 것입니다. 녹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적대자의 마음, 원수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마음이 굳어버리고, 냉담한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도 사랑의 힘입니다. 진심이 통한다면, 정말 그 사람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전해진다면 누구도 그 사랑의 온기에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도 에바브로디도처럼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3. 존귀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편에 편지를 들려서 빌립보교인들에게 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이와 같은 자를 존귀히 여기라

그렇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존귀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를 존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참으로 귀한 인물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존경하고 그를 귀중한 사람으로 대우하라는 말입니다.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은 보배 중에 보배고, 보석 중에 보석이라는 말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에바브로디도는 자기가 맡은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의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입니다.

빌2: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하는 일에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섬기는 것이 미약하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매우 미얀한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주의 종을 섬긴 것입니다. 목이 축이나고 병을 얻어 죽기에 이르렀어도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에바브로 디도의 희생은 죽기까지 희생한 고귀한 희생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존귀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이들에게 권면하기를 그를 존귀히 여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아프리카 수단을 떠난 둘로스 호는 홍해를 따라 항해하던 중 2005년 4월 12일 수단 아래에 위치한 지부티에 입항했다. 한 미국인 선교사 가정이 우리를 방문했다. 그는 둘로스 호 기도 모임에서 기막힌 얘기를 해주었다. 그가 간 지역은 그리스도인이 불과 몇 명밖에 없었는데 한 명씩 실종 되어 갔다고 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작은 컨테이너 속에 가두고 핍박을 한다고 했다. 그 마을에 마지막으로 남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그는 여덟 살짜리 아들에게 어느 날 아빠가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울지 말고 기뻐해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들이 잠을 자다 새벽에 깼는데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형은 아빠가 울지 말고 기뻐하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동생과 함께 마을을 다니며 기쁠 때 지르는 아프리카식 노래를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하여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데 왜 기쁨의 노래를 부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말을 전했고,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인 선교사가 그 얘기를 우리에게 전해 줄 때까지도 아이들의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울먹이는 마음으로 그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알버트 웰스 2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헌신은 복잡하지 않다. 희생할 때 희생한다고 느끼지 않으며 자신을 내어 줄 때 무엇을 잃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만족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과 정비례한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헌신은 안전이 보장 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뼈가 갈아 없어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목숨이 마지막 순간 주님 때문에 경각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 그리고 어떠한 결과에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참된 헌신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존귀한 피를 흘리고 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존귀한 피를 흘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처럼 우리 모두 존귀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사리에 밝아서 기회를 잘 타는 사람입니까? 인기에 편승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쉬우면서도 자신이 잘 드러나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일에 있습니까? 주의 영광에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영광과 나의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까?

우리도 에바브로디도처럼 주의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여 존귀한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Ⅳ 결론

1. 사람의 인정과 추천을 받을 만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2.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존귀히 여김을 받을 만큼 주의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출처 : 하늘꿈교회 <예피>
글쓴이 : 푸르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