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 오네시모

하나님아들 2018. 8. 25. 00:21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 오네시모

* 몬 1:8-14(신약 351쪽) *

{당신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꽃입니다. }

Ⅰ. 오네시모의 인적사항

➀ 오네시모의 뜻 : “유익한, 도움이 되는” 이란 뜻➁ 골로새 출신

➂ 빌레몬의 사유 노예④ 바울에 의해 회심함

Ⅱ. 시대적 배경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바울을 우연히 만난 시기는 거짓 고소를 당해 로마의 옥중에 투옥되어 있던 시기이다(A.D.61년경). 당시의 로마와 주변 세계의 노예들의 생활여건은 비참한 정도로 가혹했으며, 그들은 살아 있는 도구, 즉 영혼 없는 두발 가진 짐승에 불과했다. 주인들은 자신들의 노예를 마음대로 처형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네시모와 같이 도망친 노에는 그 때의 관습으로는 당연히 사형감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심한 고문을 당하거나 사자가 절단하는 형을 받았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이마에 라틴어 ‘Fugitive’(도망자)의 머리글자인 ‘F’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으로 형이 그치기도 했다. 한편 도망친 노예를 변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는 조항이 있었다. 이 조항은 노에가 도망쳤을지라도 다시 주인에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으며, 또한 주인에게 돌아가기에 앞서 주인의 친구나 동료에게 가서 자신의 안전에 대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절박한 처지에 있는 오네시모의 변호인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Ⅲ. 오네시모의 특징

그리스의 노예는 정복에 의한 포로, 몰락한 소농(小農), 노예 집안 출생 및 팔렸거나 버려진 어린아이, 법률에 의한 채무노예(債務奴隸), 소아유괴(小兒誘拐)에 의한 노예 등으로 이루어졌고, 그 수는 기원전 4세기경의 아테네에 40만명, 다시 말하면 성년 남자 한 사람에 대하여 약 18명의 비율로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농업 노동에 사용되고 일부는 상공업이나 가내 노동에 종사했다. 로마 시대에 들어와서부터 노예 제도는 점점 더 번져서 노예에 대한 수요의 증가 때문에 노예 획득을 위한 전쟁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또한 로마의 대토지 소유 제도하에서도 노예의 혹사가 가능했다는 것과 싼 값으로 얻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 노예가 노동력의 기초를 이루었다.

1. 오네시모는 도망노비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당시에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에 노예라는 것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기입니다. 노예라는 것이 당시 귀족들의 사유 재산 목록에 해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예를 재산 매매를 했습니다. 건강하고 젊은 노예는 값이 많이 나갔고, 늙은 노예는 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시대의 노예가 그렇게 비참하지 많은 않았습니다. 로마시대의 노예는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러한 노예들 안에는 재능이 많은 전쟁 포로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노예들이 가정교사나 장사를 하기도 했고, 보모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의사 같은 일들도 많이 행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해방을 시켜주는 해방노예제도도 있었습니다. 어떤 노예들은 해방이 된 이후에도 그 주인집에서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망노예에 대한 형벌은 매우 가혹했습니다. 주인이 자신의 노예를 마음대로 처형할 수 있었으며, 도망노예가 붙들리면 사형감 이었습니다. 사형을 하거나 사지를 찢거나 심한 고문을 하거나 아니면 도망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본보기로 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가사일을 돌보는 일을 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변호할 때 혹시 오네시모가 불의를 했거나 빚닌 것이 있으면 바울이 대신 갚아 주겠노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오네시모가 도망을 칠 때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났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당시에 오네시모는 노예였고, 돌이킬 수 없는 도망노비가 되었습니다. 붙들리지 않으면 괜잖겠지만 붙들리면 극형을 당해야 하는 신분이었습니다. 사형을 당하던지, 사지가 잘리던지, 아니면 fugitive 라는 낙인으로 F 자가 찍힌 채 평생을 살아야 하는 신분이었습니다. 도망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극한 노동을 해야 하고 감시를 받아야만 하는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돌이킬 수 없는 신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스로는 이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신분이 되었습니다. 항상 숨어 살아야만 하는 신분이었습니다. 평생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기에 한시도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언제 추노꾼이 들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인생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예) 얼마 전에 종영된 추노라는 방송을 보아도 노비의 신세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도망노비는 언제나 쫓는 추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복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오네시모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네시모는 도망노비가 되어 로마 제국을 배회하다가 로마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흘러 들어온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로마제국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틴 지역의 예루살렘에서 호송되어 온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전하는 교리가 얼마나 강력한지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사람도 많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바울이 로마에 호송되어 왔지만 바울이 가택연금 상태였기 때문에 행동이 제한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대는 지장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였다고 했습니다.

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세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로 흘러 들어간 오네시모는 바울의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이라는 사람에게 가서 몰래 찾아 갔을 것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받던 오네시모는 바울이 설파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평생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저주하다가 이제는 극단적인 판단을 하고 도망쳐 나왔지만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으니 이 복음이야 말로 자신을 향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가르침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소식, 복음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차별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네시모의 마음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골 3:11절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 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오네시모에게는 놀라운 복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차별이 없다. 누구든지 새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 구원에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만이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오네시모에게는 엄청난 선언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이 복음을 받아 들이고 바울과의 깊은 만남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진위에 대해서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바울의 간증을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자신이 복음을 증거 할 때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로마까지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소식을 듣게 된 오네시모는 바울의 가르침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본래는 골로새 지역의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여차 저차 해서 도망치게 되었다는 것을 말했을 것입니다. 나 같은 것도 희망이 있느냐? 고 이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바울처럼 완전히 회심을 한 것입니다. 바울이 귀족의 신분으로 회심을 했다면 오네시모는 정 반대로 노예의 신분이었는데 회심을 한 것입니다.

몬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회심을 한 오네시모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바울은 오네시모의 진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의 시중을 들면서 헌신하는 것이 목숨을 걸고 하는 헌신이었습니다. 오히려 노예로서 주인을 모실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바울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노예의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섬겼다면 이제는 스스로 기쁨으로 섬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의 내면이 치료가 됩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미래의 공포 속에 살게 되지만 복음으로 새로워지면 미래의 희망으로 살게 됩니다. 제도적 노예가 아니라 기쁨으로 섬기는 자원하는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복음이 있다면, 그 복음이 우리를 사로잡는다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노도처럼 밀려온다면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장벽을 뛰어 넘습니다. 모든 문제를 풀어냅니다. 모든 상처를 씻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새로운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 내십니다.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사랑의 감격 속에 날마다 젖기를 바랍니다.

복음은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소망의 빛이 됩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새롭게 재설계 합니다. 그 복음의 감격 속에 젖기를 바랍니다.

3.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전에는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도망노예였습니다. 심지어는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난 존재입니다. 오네시모가 끼친 영향은 빌레몬의 집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른 노예들에게도 좋지 않은 전례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무엇 때문에 도망을 쳤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오네시모가 도망친 것은 다른 노예들에게도 좋지 않은 동요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현상범이 되었습니다. 아주 무익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이제는 아주 유익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니 이제는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자신의 심복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심복의 수준을 넘어서 이는 내 심장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1-12절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렇습니다. 이제 바울이 오네시모를 보장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오네시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오네시모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자신의 심장, 자신의 분신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갇힌 자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존재,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특히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도 이제는 아주 유익한 존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 기꺼이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을 씁니다. 그것이 빌레몬서입니다.

그 편지 내용에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도 아주 유익한 존재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이 데리고 있고 싶지만 본래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허락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어떤 의도에서 빌레몬 곁을 떠나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곁을 떠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5절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오네시모가 잠시 떠나있게 된 것은 오히려 오네시모를 빌레몬의 곁에 영원히 두게 하기 위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대할 때 이제는 종처럼 대하기보다는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로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이는 오네시모를 향한 바울의 애절하고 따듯한 사람이 배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감히 오네시모의 손에 편지를 들려 빌레몬에게 보냅니다. 엄청난 모험입니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오네시모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씻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깨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변했습니다. 복음 안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의 옛 주인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무엇이 오네시모로 하여금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생명의 복음, 능력의 복음은 사람을 아주 소중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적용

우리의 과거가 어떻든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내가 창피한 일이 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가문이 좋지 않은 사람, 학벌이 좋지 않은 사람, 죄를 많이 지은 사람, 망나니 같던 사람, 몹쓸 짓을 많이 했던 사람....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족쇄에 묶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회심을 하면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옆 사람하고 인사합니다. 당신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가 분신입니다. 그러므로 한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깁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리고 우리의 형제를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과거를 따지지 마세요. 오늘 새로운 삶의 자리에 서 있는 그 사람을 소중히 여깁시다. 과거를 따지면 우리는 다 죄인이었습니다. 죄의 노예였습니다. 사망의 노예였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Ⅳ 결론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2. 과거를 버리고 서로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출처 : 하늘꿈교회 <예피>
글쓴이 : 푸르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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