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에서 행한 자 - 가이오
* 요한3서 1:1-8(신약 396쪽) *
{당신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교회에서 행복한 당신을 만나서 행복합니다. }
Ⅰ. 가이오의 인적사항
➀ 가이오의 뜻 : ‘기쁨’. ‘환희’➁ 더베사람
➂ 사도요한에게 칭찬 받는 사람
Ⅱ. 시대적 배경
요한이 요한3서를 쓸 당시에는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나서 약 A.D 90-100년 경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이미 사도 요한의 동료 제자들은 거의 다 순교한 시점이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내부 적으로는 영지주의 같은 이단 들이 더 왕성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사도요한은 자신의 제자인 아주 신실한 가이오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도요한에게 있어서 가이오는 제자같이 친구같이 자녀같이 소중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Ⅲ. 가이오의 특징
가이오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이름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성경에서 가이오라는 이름은 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데, 첫 번째는 바울이 세례를 주고 후에 데살로니가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고린도의 가이오(롬16:23, 고전1:14), 두 번째는 바울의 동역자로 데살로니가와 아리스다고 그리고 에베소에서 고난을 같이 한 마게도냐의 가이오(행19:29), 세 번째는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에서 그리스로부터 마케도냐를 지나 드로아까지 동행한 더베의 가이오(행20:4)입니다.
이 세 사람 가운데 수신자는 정확하게 누구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세기경 사도적 관행이라는 문서에 보면 이 세 번째 가이오가 나중에 사도 요한에 의해서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되어진 것으로 보아서 요한삼서의 수신자로 바로 더베의 가이오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에 사도적 권위를 가진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은 자신의 친구이며 형제이며 자녀 같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이오에게 편지를 썼다는 사도요한이 가이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달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소개하고 있는 가이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 지도자에게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가이오는 당대의 최고의 사도였던 사도요한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세 번이나 걸쳐서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1: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1: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이처럼 사도요한은 가이오를 언급할 때 계속해서 사랑하는 자여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여 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요한이 사랑할 가치가 없는데 사랑하고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해서 쓰는 표현입니다. 한편으로는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잘 견뎌주는 모습, 대견한 모습을 보고 쓰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이미 듣고 기쁨으로 가이오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지도자에게, 스승에게 사랑을 받는 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당대에 최고의 지도자가 사랑하는 자여! 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입니까?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매여! 사랑하는 형제여! 고맙고, 감사하다. 잘 성장한 모습이 대견하다. 기특하다. 너에 대한 소문이 나를 더욱 기쁘게하는 구나!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진리 안에서 행한 사람입니다.
가이오는 영혼이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가이오는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생활 했던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절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그렇습니다. 가이오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가리켜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진리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과 그 분의 삶과 그 분의 가르침과 그 분의 선포는 다 진리였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 되시는 분이 진리의 성취를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3:3-4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가이오는 진리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에게 귀중히 여김을 받았으며 형제들이 가이오를 귀중히 여기고 가이오에 대한 소식을 사도 요한에게 와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의 모습을 보고 사도요한은 가이오의 영혼이 건강하다고 말했습니다.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영혼이 건강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그렇습니다. 이미 가이오는 영혼이 잘 된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서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세상의 물을 자꾸 마시면 곤란합니다. 세상의 물에 취하여 탐욕에 빠지고, 정욕에 빠지고, 잘못된 가치관에 눈이 가리워지면 영혼이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오와 같이 진리 안에서 행하여 영혼이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예화) 헨드릭스 교수는 어느 날 가족을 데리고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공원 정문에서 안내원이 전단을 한 장 주기에 받았더니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란 글이 쓰여 있다. 공원 속으로 몇 킬로 운전해 들어가니까, 큰 간판에 같은 경고가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헨드릭스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곰에게 빵 한 조각, 아니 과자 한줌 던져준다 해서 그게 뭐 그리 위험할까?’ 인쇄물과 간판 내용이 의아했던 헨드릭스 교수는 경비원에게 물었다.
“곰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는 게 왜 위험합니까? 저 곰들은 우리 인간을 증오하는 그런 특종 곰입니까?” 그러자 경비원은 펄쩍 뛰며 헨드릭스 교수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아직 이해 못하셨군요. 사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매년 이때쯤이면 죽은 곰들을 공원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스스로 먹는 능력을 상실한 곰들로 남이 먹여주는 것에만 의존하는 곰들 말입니다. 자, 이제 왜 그런 경고가 나붙었는지 아시겠지요? 바로 곰들 자신을 위해섭니다!”
영혼이 오염되는 것, 진리 안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도 이런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곰에 먹이를 주는 것처럼, 우리의 탐욕에 먹이를 주기 시작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 서서히 탐욕의 맛에 이끌리어 자신을 겸비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리를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상황 논리에 맞게 움직이게 되고, 타협하게 되면서 내 안에 있는 진리로 인한 자생 능력을 상실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 경건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이오는 거룩한 습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리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영국의 성경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진리란 스스로 발견했을 때에만이 유용한 것이다. 스스로 발견한 진리가 아닌 것을 단지 전달할 때에는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쉽게 잊혀 진다. 그러나 스스로 발견한 진리일 때는 자기의 한부분이 되어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찰을 통해 말씀(본문)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발견해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자세히 세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말씀의 숲을 헤쳐 보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생명 되시는 주님, 사랑되시는 주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체험적으로 진리 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해서, 영혼이 건강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내 안에 근심, 걱정, 염려가 밀려오고 있다면, 내 안에 푸념이 생기고 있다면 우리가 이미 진리 안에 숨 쉬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서서히 세상의 염려로 오염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 안에서 숨쉬기 위해 경건을 생활화 하기를 바랍니다.
3. 나그네(형제)를 사랑으로 대한 사람입니다.
가이오는 나그네를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가이오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1:5-6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칭찬하는 내용가운데 형제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칭찬이 있습니다. 이는 이미 형제들이 가이오가 대접한 사랑에 대해서 사도요한에게 증언한 것을 토대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아는 사람이던지 모르는 사람이던지 나그네를 정성껏 사랑으로 대접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나그네라고 하는 형제들은 뜨내기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전도자들은 선교비를 제대로 지원받아서 하는 전도자 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얻어 먹기도 했으며, 동냥 잠을 자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가이오는 그러한 나그네(믿음의 형제들)를 사랑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사실 복음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오히려 가이오에 대해 칭찬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친절 때문에 우리가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하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하고 기억하는 삶을 사는 삶이 얼마나 귀한 삶입니까? 우리도 그런 귀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 의학박사 해론드 터. 블룸필드의 고백
블룸필드는 췌장암에 걸려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있었다. 완고하고 강직하며 고집이 세고 엄격한 아버지가 모든 기력을 잃고 투병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블룸필드에게 아버지가 너무나 안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 다가가 힘없이 앉아있는 아버지를 안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은 경직되고 굳은 상태였다. 불름필드는 그 순간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아버지는 평생 그런 분이셨지 그렇게 살다가 가실 분이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버지가 너무나 안스러웠습니다. 블룸필드는 병실에 올 때 마다 아버지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저를 꼭 안아보세요. 아버지의 고통을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생을 지켜온 아버지 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블룸필드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자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조금씩 녹아 내리듯 아버지의 포옹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블룸필드가 200번째 포옹을 하는 순간 아버지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블룸필드를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널 사랑한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블룸필드는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고 온 몸이 열병이 걸린 것처럼 뜨거움으로 전율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블룸필드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최초의 애정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사랑에도 고마워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재미가 있습니다. 할 만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랑은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싸늘해 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는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쟁으로, 열등의식으로, 경계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뜨거운 가슴이 전달 될 때 까지 포옹하면 그는 녹아지고 그 사랑의 따듯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새로 등록하는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경계심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경쟁자로 대하고 질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냉냉한 사람들, 겉도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 좀 더 진한 사랑을 나눕시다. 참 사랑으로 대하고 돕고, 세워주고 격려하며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동산을 아름답게 가꾸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형제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대접을 잘한다는 것은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을 나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Ⅳ 결론
1. 우리가 먼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야 합니다.
2. 진리 안에서 영혼을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3. 형제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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