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갈보리의 세 십자가

하나님아들 2018. 8. 16. 22:10

갈보리의 세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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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865년 4월 14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노예해방을 위하여 싸웠던 숭고한 평화주의자였기에 그의 죽음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후 시신이 일리노이스의 스프링휠드로 운송되었습니다.
장사행렬이 한 간선도로를 지날 때 한 흑인부인이 작은 아들을 높이 쳐들고 “ 꼬마야! 잘 봐두어라. 너를 위해 돌아가신 분이란다.” 울먹이며 링컨의 정신을 아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비록 링컨은 죽었지만 평화와 노예해방 정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며 살아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기독교의 생명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을 앞에 두고 최후의 7일의 행적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고난주간에는 빵과 소금과 식물과 물 이외에 일체의 육류음식을 금하고 금식을 하며 예수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구별되게 지냈습니다.
레오도시우스의 시대는 공사 간 모든 업무를 휴무하고 법정까지도 폐쇄하고 죄수와 노예를 사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기사를 읽으면서 경건하게 고난주간을 지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의 마지막 일주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길 슬픔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죄와 저주와 지옥의 문제 해결과 사단마귀의 문제에서 해결받은 축복의 한주간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다음주 아침까지는 전 세계 기독교는 금식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독교인에게 일년 중 가장 중요한 한 주간은 오늘 종려주일부터 다음 주 부활절까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환영했기 때문에 “종려주일”이라고 하고 오는 금요일을 “성 금요일”이라고 하며, 다음 주일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갈보리 언덕에 세 십자가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양옆에 는 두 강도가 함께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사야53장 시편22편6-8, 18절에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세 십자가가 서 있는 이 언덕을 “갈보리”라고도 하고, “골고다”라고도 합니다.
갈보리는 "라틴어"이고 골고다는 “아람어” 말입니다. 그 말의 뜻은 “해골 곳”이란 뜻인데 헬라어로는 “크라니온”이라고 합니다. “해골 곳”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언덕을 멀리서 바라볼 때 해골처럼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늘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의 의미를 살펴보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1. 자기 죄 값으로 멸망한 강도의 십자가
예수님 양옆에 달린 두 강도는 “행악자”라고 했습니다.
행악자는 “도둑”과 “강도” 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둑은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고 “강도”는 공개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때로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무장한 범죄자입니다.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좌편 강도는 우편강도와 달리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비방하면서 “네가 그리스도라면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면서 끝까지 죄를 뉘우치거나 죄를 회개하지 아니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죄의 벌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고 완악하여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옥은 불평과 탄식은 있어도 회개가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죄를 회개하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십자가
눅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편 강도는 똑같은 강도였으나 예수님을 비방하는 그 강도를 꾸짖으면서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하고,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행한 죄에 합당한 보응을 받는다”고 하는 이 말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진정한 회개를 보여줍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할 줄 모르고 회개할 줄 모르고 끝까지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두 가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나는 죄가 없다는 사람이고”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교회에 못 나가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강도는 회개할 뿐 아니라, 예수를 믿고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는 이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살았을 때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도 들었을 것이고, 이 유명한 사람을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마음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죽으면서 그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강도의 기도를 들으신 예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강도는 평생 죄만 짓고 악한 일만 하던 사람인데 죽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주님의 은혜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은혜”란 말씀과 “믿음”이란 말씀과 “선물”이란 단어가 기독교의 복음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보혈의 능력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면류관을 받고 상급을 받는 것은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 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 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편 강도는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Miriam Le Fenre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죽음을 함께 했네. 그러나 한 사람만 죽었다네! 다른 두 사람 한 강도와 하나님 자신은 랑데뷰 했다네”
오늘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3.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은 구원의 십자가
골고다 언덕의 세 십자가 중에 가운데 우뚝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자기의 죄가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리신 십자가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구원의 십자가이며 기독교의 영원한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호주에서는 많은 양을 키우는데, 가끔 큰 독수리가 날아와서 새끼 양을 잡아 갑니다.
하루는 목동이 이 광경을 보고 언덕 위에 있다가 쫓아 내려가 독수리를 쫓아 버리고 나서 보았더니, 어미 양이 독수리에게 두 눈이 파 먹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 새끼 양은 어미의 네 다리 사이에 숨어서 안전하게 살아 있더랍니다. 이 어미 양의 희생으로 그 새끼 양은 살고 그 어미양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도 부모가 자식이 죽는 대신 기차에 깔려 죽거나 물에 빠져 죽으면서 자식을 구원하는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시므로 죄를 무조건 용서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독생자, 즉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속죄 제물로, 속죄 양으로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 성취입니다.
사53:12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 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 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가 예수님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입니다.
형제가 풀밭에서 놀다가 형이 벌에게 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벌이 동생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동생이 무서워서 도망가려고 하니까 형이 “무서워 말아라. 벌은 한 번 쏘면 죽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므로 사탄은 우리를 더 이상 해치지 못합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히9:13 “염소와 송아지의 피와 암 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며 거룩 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 뇨 ”라고 하셨습니다.
속죄 제물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6.25 사변 때 남편은 군에 나가고 부인 혼자서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쌀도 없고, 미역도 없고, 아이를 낳면 어린 아기 싸줄 옷이나 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는 선교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밤 열 두 시가 지나 눈보라를 맞으며 시골길을 걸어가다가 그만 진통이 심해지면서 아기가 나오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몹시 추운 겨울밤에 다리 밑에 앉아 아기를 낳고, 아기가 얼어 죽을까봐 자기의 속옷과 겉옷을 벗어 아기를 겹겹이 싸 매주고 자기는 피를 흘리는 몸으로 벌거숭이가 된 채 아기를 꼭 껴안았습니다. 몇 시간 안 가서 엄마는 얼어죽고 아기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그 선교사는 잠이 오지 않아 애쓰다가 교회에서 본 그 만삭된 임산부가 자꾸 보이면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교사님은 쌀과 돈을 가지고 짚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그 다리 앞에 와서는 시동이 꺼졌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점검하려고 내렸는데, 다리 밑에서 갓난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서 손전등을 켜고 내려가 보았더니 바로 그 여자가 아기를 낳아 꼭 껴안은 채 얼어 죽었고 아기는 살아 울고 있습니다.
선교사님은 아기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고, 그 엄마는 어느 산비탈에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철들만큼 자라서 자기의 부모에 대해 묻길래 설명을 해 준 다음, 크리스마스 전이라 눈이 소복이 덮힌 무덤으로 데리고 갔더니, 그 아이가 겉옷과 속옷을 다 벗어 무덤을 덮고 알몸으로 그 무덤 앞에 무릎꿇고 앉아서 “나를 살리려고 돌아가시던 날 얼마나 추우셨습니까?”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피 흘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 되는 교리는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교리입니다. 이 두 교리 중에 어느 하나도 믿지 않는다면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요14:4“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를 믿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영생할 수가 없고 천국에 갈수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교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고 지옥과 천국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해결하시고, 사단을 이기기 위해 갈보리에서 십자가는 지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